최근 수정 시각 : 2024-04-07 20:57:41

소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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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대 ([ruby(少年隊, ruby=しょうねんたい)])
출신지 일본 파일:일본 국기.svg
멤버 니시키오리 카즈키요, 히가시야마 노리유키, 우에쿠사 카츠히데
결성 1981년
데뷔 1985년 <가면 무도회(仮面舞踏会)>
활동 기간 1985년 ~ 2020년 12월 31일
사무소 쟈니스 사무소

1. 개요2. 멤버3. 활동4. 여담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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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당시의 소년대

일본의 아이돌 댄스 그룹. 1981년에 결성되어 1985년 데뷔한 이후 멤버 구성 변동 없이, 2020년 데뷔 35주년을 맞이할 때까지 쟈니스 사무소에 있던 가장 선배 그룹이었다.[1] 물론 21세기 들어선 그룹 활동은 거의 안하는 수준이긴 하다.[2]

2. 멤버

이름 (한국어) 이름 (일본어) 생년월일 비고
니시키오리 카즈키요 ([ruby(錦織 一清, ruby=にしきおり かずきよ)]) 1965년 5월 22일 ([age(1965-05-22)]세) 도쿄도 출신, 172cm, O형
애칭: 니키, 니시키
우에쿠사 카츠히데 ([ruby(植草 克秀, ruby=うえくさ かつひで)]) 1966년 7월 24일 ([age(1966-07-24)]세) 치바현 출신, 170cm, O형
애칭: 캇쨩
히가시야마 노리유키 ([ruby(東山 紀之, ruby=ひがしやま のりゆき)]) 1966년 9월 30일 ([age(1966-09-30)]세) 가나가와현 출신, 178cm, A형
애칭: 히가시, 동산형님[3], 노리쨩

멤버 3명 모두 노래나 댄스 실력이 당시 일본에선 수준급이었기에 쟈니 키타가와 사장이 생전에 가장 완벽했던 그룹이라고 평가했으며, 쟈니스 선배그룹이었던 시부가키대의 멤버[4]들은 소년대의 데뷔무대를 보고 '절대 이길 수 없다'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1980년대 중반이라서 컨셉이나 의상의 촌스러움은 감안하고 보더라도 공중제비부터 고난이도의 동작과 군무까지 일본 아이돌스럽지 않은(?) 댄스 실력을 보여줬다. 실제 멤버 히가시야마 노리유키가 요즘 쟈니스 후배들 중엔 백턴을 아예 못하는 애들이 수두룩하다는 얘기를 듣고 탄식했을 정도. 다만 이런 아크로바틱스런 안무는 사실 매번 하기엔 위험할 뿐더러 군무 측면에서도 크게 조화스럽진 않아서 아이돌 댄스에서 점점 사장된 것에 가깝다.

3. 활동

소년대는 멤버 3명을 포함해도 당시에는 아직 20~30명밖에 없었던 쟈니스 주니어에 대한 총칭이었다. 그러다가 1981년 10월 6일부터 텔레비전 도쿄에서 시작된 < 더 베스트 텐>의 시작에 맞추어 니시키오리, 우에쿠사, 마츠바라 야스유키의 3명으로 결성된 그룹 'B팀'이 이후에 '쟈니스 소년대'라고 불린다.
  • 1982년: 마츠바라에서 히가시야마로 멤버를 변경한 뒤 현재의 멤버로 소년대가 결성되었다. 그룹 결성 당초는 타하라 토시히코, 콘도 마사히코의 백으로 노래 프로그램이나 콘서트에 출연했다. 6월에는 레코드 데뷔 전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유명 가요 프로그램이었던 후지 텔레비전 "밤의 히트 스튜디오"에 단독 유닛으로서 첫 출연했다. 이후 9월 <석세스 스트리트>에도 레코드 데뷔 전에 이미 10회 전후 단독 아티스트로서 출연한 경험이 있다. 또 1982년 11월에는 "하와이 음악제"에서 금상을 수상했다.
  • 1984년: 4월 2일 우편 저금 홀에서 단독 퍼스트 콘서트를 갖고 하루 5회 공연을 했다. 그 해 5월 비디오 『소년대』를 발매했다. 그 후, 이 비디오 수록곡인 "당신에게 지금 Good-bye"으로 노래 프로그램에 다수 출연했다.
  • 1985년: 12월 12일 <가면 무도회>로 음반 데뷔. 데뷔 때의 캐치 프레이즈는 "일본발 세계행".
  • 1986년: 2집 데카메론 전설(デカメロン伝説)이라는 곡으로 활동. 소년대 주연 뮤지컬 PLAYZONE 개연. 제37회 NHK 홍백가합전에 처음 출전했고 이후 8년 연속 출전했다.[5]
  • 1987년: "브로마이드"의 연간 매출 성적이 제1위에 올랐다.
  • 1994년: 제31회 골든 애로우 상 연극상 그랑프리 수상.
  • 1999년: 소년대 첫 간판 프로그램 <소년대 꿈>이 스타트.
  • 2004년: 쟈니스 빅 서프라이즈 카운트다운 라이브 출연. 소년대로서 첫 출연.
  • 2007년: 뮤지컬 PLAYZONE이 통산 상연 횟수 900회를 맞았다. 또 2007년 공연 <PLAYZONE 2007 Change2Chance>은 협연자였던 아카사카 아키라가 각성제로 현행범 체포된 일로 DVD화가 전격 중단이 되고 말았다.
  • 2008년: 23년간의 소년대 주연 뮤지컬 <PLAYZONE>이 폐막. 이듬해부터는 쟈니스의 후배가 주연.
  • 2020년: 데뷔 35주년, 12월 31일을 끝으로 니시키오리와 우에쿠사가 쟈니스를 퇴소한다고 발표했다. 다만, 팬들을 위해 소년대라는 이름은 없어지지 않고 상징적으로 남아 유지된다고 한다.

4. 여담

당시 일본을 넘어 주변국에도 영향을 끼친 아이돌 그룹으로, 대표적으로 2년 후인 1987년 한국에서 데뷔한 그룹 소방차가 소년대를 모방해 탄생하였고, 대만에도 소년대와 거의 유사한 컨셉으로 소호대(小虎隊)라는 그룹이 있었다.

1986년 NHK 홍백가합전에 백팀의 첫 타자로 첫 출장했던 소년대의 노래 "가면무도회"를 백팀 MC 카야마 유조가 "가면라이더"라고 잘못 소개해버려 21세기에도 종종 회자되고 있다. 자세한 건 NHK 홍백가합전 가면라이더 사건을 참고.

물론 6년뒤 1992년 NHK 홍백가합전에서 가면라이더의 주제가인 Let's go Rider kick!을 실제로 부르긴 했다. 이때 "카야마씨 보고계신가요" 라고 말 한건 덤


[1] 2020년 12월 31일 이후 히가시야마를 제외한 멤버가 쟈니스 사무소를 퇴소했다. [2] 애초에 활동을 하더라도 아크로바틱적인 안무를 할 수 있는 나잇대가 아니다. [3] 히가시야마라는 뜻이 동산이기 때문이다. 국내 한정 별명. [4] 대신 이쪽은 해체되고나서 멤버였던 모토키 마사히로가 배우로 대성하긴 했다. 사실 소년대 결성 이전부터 이들 멤버는 대놓고 불화가 있진 않았지만 서로가 맞지 않았기 때문에 해체 소식을 들었을 때도 다들 미련없이 손절치는 분위기였고 현재도 쟈니스 사무소 시절을 그닥 좋지 않게 생각하는듯하다. [5] 하지만 이 사건의 피해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