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17 02:12:58

S.E.S./결성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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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음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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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S.
(1997. 1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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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a & Eugene & Shoo
(1998. 1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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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 10.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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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story]
(2016. 1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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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01. 02.)
[ 일본 음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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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 1집

めぐりあう世界
(1998. 1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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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 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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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여 음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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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1999 Winter SMTOWN.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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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2000 Winter SMTOWN.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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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12. 04.)
여름 앨범

02 SUMMER VACATION IN SMTOWN.com
(2002. 06. 11.)



1. 개요2. 당시 음악시장 상황
2.1. 국내2.2. 해외
3. 결성 돌입4. 결성 과정
4.1. 바다의 발탁 과정4.2. 의 발탁 과정4.3. 유진의 발탁 과정
5. 결성 비화
5.1. 멤버수5.2. 서로 간의 첫 인상5.3. 의 연습생 이탈과 빛났던 우정5.4. 초기 컨셉과 유진 영입의 영향력5.5. 데뷔 당시 H.O.T. 관련 일화 미공개
6. 여담
6.1. S.E.S.가 될 뻔했던 사람들
6.1.1. 티티마의 소이6.1.2. 오투포의 이가혜6.1.3. 핑클의 이효리6.1.4. 해이6.1.5. 진주6.1.6. 이수영6.1.7. 핑클의 성유리6.1.8. 문희준의 여동생
6.2. 의 혼성그룹 연습생 관련 와전된 내용
6.2.1. NRG의 김환성과 함께 준비 일화6.2.2. SM 이적 후 손호영, 데니안의 멘붕 일화6.2.3. 다른 여배우들과 함께 준비 진위여부
6.3. 기타

1. 개요

S.E.S.의 결성 과정을 정리하는 문서.

2. 당시 음악시장 상황

2.1. 국내

한국 음악시장은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전형적인 남초 시장이었다. 흥행하는 가수는 대부분 남성 가수, 혹은 보이그룹이었다. 심지어 지금은 거의 멸종한 혼성그룹이 당시엔 걸그룹보다 훨씬 잘 나갔다. 여성 솔로 가수는 간혹 등장했지만 남성에 비하면 수가 적었고 흥행력 면에서도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이유는 대중음악을 소비하는 팬층이 여초이기 때문이었다. 2020년대 지금도 대중음악 팬층은 대체로 여초인데, 90년대 당시에는 아예 가수들의 팬질을 하는 것 자체가 여성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남성의 경우 대중음악을 즐겨 듣는 것까지는 뭐라하지 않지만, 아예 플래카드 같은 것을 들고 팬질을 하기 시작하면 남자답지 못한 인간으로 보는 인식이 심했다. 게다가 지금보다 훨씬 유교적 가부장제도 심하였고 성 역할 구분도 훨씬 강했어서, 남성 팬은 여성 가수를, 여성 팬은 남성 가수를 좋아해야 한다는 인식이 매우 팽팽한 상태였다. 그러니 이러한 환경 속에서 남성 가수가 여성 가수보다 훨씬 흥할 수밖에 없었다.

1997년 당시에도 여전히 여자 가수가 히트곡을 내는 건 1년에 두세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었고, 가요 순위 프로그램 상위권도 남자 가수들이 싹쓸이했을 정도로 여자 가수가 입지를 굳히기에는 너무나 척박한 환경이었다. 박미경, 강수지, 신효범, 엄정화, 이소라 정도가 명맥을 유지하며 순위에 이름을 올리는 정도였으며, 이들 모두 여성 솔로 가수였다.

당시 걸그룹 시장은 우리나라 음반 기획자들과 레코드사들에겐 미지의 땅과도 같았다. 1993년, 다수의 걸그룹들이 동시에 등장하며 언론에 걸그룹이라는 단어가 등장하기는 했지만 별다른 성과 없이 자취를 감췄다. 걸그룹의 존재 자체가 거의 없었고, 나왔다고 해도 쇼 프로그램에 몇 번 출연해서 잠깐 인기를 누리다가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질 뿐이었다.

많은 제작사들이 의욕적으로 걸그룹을 기획하고 도전했지만, 결과는 모두 실패로 끝났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레이블이었던 반도음반에서 내놓았던 3인조 애플, 한일 합작으로 일본에도 진출했던 4인조 S.O.S, 2인조 보컬 에코, 언니부대를 겨냥한 3인조 쎄쎄쎄, 한국의 스파이스 걸스를 꿈꾸며 데뷔했던 DR뮤직의 5인조 베이비복스[1], 걸스힙합 컨셉의 3인조 디바 등 많은 걸그룹들이 데뷔하였지만 성과가 크게 만족스러웠던 그룹은 단 한 그룹도 없었다.[2] 남성 팬들의 호주머니를 열게 하기엔 걸그룹 시장의 진입 장벽은 너무나 높았다.

2.2. 해외

당시 해외에서는 미국의 TLC, 영국의 스파이스 걸스, 일본의 SPEED 등과 같은 거물급 걸그룹들이 수백 수천만 장을 팔아치우며 승승장하구고 있었다. 이들의 큰 성공은 국내 음반 기획자들에게 큰 자극과 전략 모델이 되기에 충분하였다.

3. 결성 돌입

당시 현진영과 유영진을 발굴하고 H.O.T.를 데뷔시키며 선견지명을 과시했던 SM엔터테인먼트[3]의 수장 이수만은 걸그룹 시장의 잠재성을 인식하고 1994년부터 걸그룹 프로젝트를 기획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SM엔터테인먼트는 서두르지 않았다. 앞선 수많은 걸그룹들의 선례를 보면서, 여학생 팬들이 확보되어 있는 보이그룹들과는 달리 맨몸으로 부딪쳐야 하는 걸그룹은 조금이라도 어설프게 보여서는 씨도 안 먹힐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걸그룹 기획을 준비하면서 1백 명이 넘는 소녀들이 오디션을 거쳐갔다는 사실이 SM엔터테인먼트의 신중했던 준비 과정을 말해준다. 오랜 오디션 끝에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안양예술고등학교에서 재학 중이었던 최성희, 괌 교포 출신의 김유진, 일본 가나가와현에서 태어난 재일교포 출신의 유수영, 이렇게 세 명의 소녀들이 최종적으로 S.E.S. 정예 멤버로 선발되었다. 가창력, 댄스 실력, 외모, 외국어 실력까지 고려된 결과였다.

S.E.S.라는 이름으로 데뷔할 정예 멤버인 세 사람에겐 각각 바다, 유진,라는 이름이 주어졌고, 각자의 이름자를 따서 S.E.S.라는 그룹명이 결정되었다. 바다가 먼저 리드 보컬로 정해지고 난 뒤, 유진가 서브보컬로 정해졌다.

이렇게 운명적으로 모인 세 소녀는 S.E.S.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다. 훗날 이들은 최초의 여자 아이돌 그룹이자 최초의 K-POP 걸그룹으로 대한민국 걸그룹의 시초가 되고, 한 시대를 풍미한 당대 최고의 걸그룹으로 한국 대중 음악사에 전설 같은 존재가 된다. 이렇게 전설이 시작될 준비가 완료된 것이었다.

4. 결성 과정

S.E.S. 활동 당시 모습은 많은 대중들에게 노출됐지만, S.E.S.가 되기 전 평범한 소녀 시절의 모습은 볼 수 없기에 이들의 결성 과정은 하나의 구전동화처럼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그래서 '했다'보다는 '했다고 한다'등의 설명이 주를 이룬다.

또 직접 보거나 당시의 상황이 영상물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기에 인터넷 상에서는 다소 부정확한 정보들이 사실처럼 떠돌아 다니기도 한다. 어쩌면 이 문서에도.. S.E.S.라는 그룹의 역사를 기록하는 작업에 있어서 어쩌면 가장 재정비가 시급한 부분일 수도 있다.

데뷔 당시 SM엔터테인먼트와 세 멤버들이 여러 언론 매체를 통해 밝힌 발탁 과정 내용은 세 멤버가 활동 종료 후 직접 밝힌 진짜 데뷔 과정과는 꽤 많은 다른 부분들이 있다. 가장 큰 신뢰성을 갖는 건 S.E.S. 세 멤버들이 직접 밝힌 내용들일 것이다.

실제로 S.E.S.라는 이름으로 모이기까지 과정을 살펴보면 매우 드라마틱하고 운명적인 탄생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역시 전설은 아무나 될 수 없는가 보다. 평범한 소녀 최성희, 김유진, 유수영에서 훗날 한국 대중 음악사에 큰 족적을 남기며 전설의 걸그룹이 되는 S.E.S.는 어떻게 대중들에게 모습을 드러내게 됐는지 이들의 탄생 과정을 알아보자.

4.1. 바다의 발탁 과정

S.E.S. 세 멤버 중 가장 먼저 캐스팅 된 멤버는 바다이다. 가장 먼저 캐스팅 된 만큼 연습생 기간도 가장 길다.

우선 데뷔 당시 바다와 SM 측이 여러 언론 매체를 통해 밝힌 발탁 과정은 아래와 같다.

바다가 SM과 첫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바로 고등학교 때 행사를 통해서였다고 한다. 당시 바다는 안양예술고등학교에 재학 중이었다. 재학생들이 찍은 영화를 모아 상영하는 교내의 '연암영화제'가 열린 날, 바다는 노래를 부르는 게스트로 참가하였다고 한다. 이 무대에서 바다는 머라이어 캐리의 <Hero>를 불렀다고 한다. 당시 SM에서 매니저로 일하고 있었던 관계자가 우연히 이 무대를 보게 됐는데, 해당 관계자 눈에 들어 즉석에서 캐스팅 제의를 받았다고 한다.

1998년 3월 9일에 방송된 MBC 《김국진의 스타다큐》에서는 안암영화제에서 바다가 머라이어 캐리의 <Hero>를 부르고 캐스팅 제의를 건넨 사람은 이수만이라고 나왔지만, 데뷔 당시 여러 잡지에서 밝힌 내용에는 SM 관계자라고 일관되게 밝히고 있다. 또한, 2012년에 출판된 이수만 평전에서 밝혀진 내용에 의하면, 이미 학교 측에서 사전에 바다가 무대에 오른다는 것을 SM에게 귀뜸해 줬다고 한다.

S.E.S. 데뷔 당시 각종 방송에서 바다가 머라이어 캐리의 <Hero>를 두 번 정도 커버한 이력이 있다. 이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바다의 평소 좋아하는 애창곡이라는 것을 짐작해볼 수 있다.

S.E.S. 활동 종료 후 바다가 직접 밝힌 발탁 과정은 아래와 같다.

사실 SM 관계자로부터 캐스팅 제의를 받기 이전에 원래 다른 기획사에서 솔로 제의가 들어왔던 상황이었고, 바다도 해당 기획사로 갈 생각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일찍이 바다의 실력, 재능, 끼를 알고 있었던 담임 선생님, 교감 선생님, 교장 선생님 모두 일제히 '는 뭐가 돼도 될 수 있다’며 다른 여러 곳을 소개해줬다고 한다. 그 와중에 SM으로부터 제의를 받게 된 것이라고 한다.

이때 선생님들은 바다에게 '‘ 성희야, 솔로도 좋지만 일단 여기서 데뷔해라’고 했다고 한다. 그 이유로는 일단 H.O.T.를 성공시킨 기획사였다고 한다. 선생님들도 이미 성공 경험이 있는 기획사에서 시작하는 게 더 유리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권유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해당 이유보다 더 강력 추천했던 이유이자 바다의 마음을 결정적으로 기울게 만든 확고한 제안이 있었다고 한다. 바로 이수만이 보내온 '대학교 전액 장학금을 지원하겠다.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다 도와주겠다'는 제안이었다고 한다. 당시 바다는 원래 뮤지컬 배우를 꿈꿨으나, 아버지의 병환으로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대학 진학이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됐다고 한다. 이때 이수만이 대학 학비 전액을 지원해 주겠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하였고, 바다도 이 제안을 적극 받아들여 SM에 입사하여 S.E.S.로서 데뷔 준비를 하게 됐다고 한다.

오디션을 볼 때 불렀던 노래는 장혜진의 <내게로>였다고 한다. 오디션을 진행한 이수만은 그 자리에서 ' 이 사람과 일을 해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바다의 노래가 끝난 후 이수만이 바다에게 건넨 첫 질문은 '는 발라드를 부를 때도 발로 박자를 치니?'였다고 한다. 이에 대한 바다의 답변은 '박자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 그렇게 됐나 봐요. 도 몰랐어요.'라고 한다. 이에 이수만은 '발라드를 박자 치면서 부른 소녀는 가 처음이야'라고 했다고 한다. 본격 이런 재질...? 이 말을 들은 바다는 이수만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고 한다. 통상 그런 질문은 아티스트에게만 하는 건데, 오디션 신분으로 온 자신에게 아티스트로 존중하는 질문을 해줬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때 바다는 이수만이 자신의 사소한 부분은 발끝까지 다 캐치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보통 분이 아니라는 걸 직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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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눈앞에 닥친 현실 앞에서 가장 절실하고 간절했던 것을 해결해 주겠다고 제안한 이수만은 바다에게 있어서 누구나 한 번은 꿈이나 상상 속에서 그려봤을 흑기사 내지 구세주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일 거다. 바다의 결정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고, 또한 바다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예, 아니오'가 아닌 '예' 한 가지였을 것이다.

인재를 발굴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던 이수만에게도 가수로서 타고난 천부적인 재능을 소유하고 있는 바다가 꼭 필요한 상황이었을 테니 서로 간의 이해관계가 완벽하게 들어맞아 완성된 딜이었던 셈이다. 비록 그 당시 바다의 선택은 당장 눈앞에 펼쳐진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게 가장 컸겠지만, 훗날 이 선택은 바다의 인생에 있어서 큰 전환점이자 아티스트로서의 이정표가 세워지는 일생일대의 사건이 된다.

훗날 바다는 자신의 원석을 발굴해준 이수만은 '평생의 은인', '내 인생 최고의 프로듀서'라고 밝혔고, 이수만은 자신의 총아였던 바다에게 '우리나라에 어떤 일이 일어나도 첫 번째 걸그룹의 첫 번째 리드보컬이라는 건 변할 수 없다고. 그게 내가 준 선물'이라고 밝혔다. 서로가 서로에게 최고의 제자이자 스승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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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의 발탁 과정

S.E.S. 세 멤버 중 두 번째로 캐스팅 된 멤버는 이다. 연습생 기간이 두 번째로 길다. 유진과 동갑이지만 생일이 늦어서 그룹 내에서 막내인데, 연습생 기간에 있어서는 유진보다 선배라고 할 수 있다.

우선 데뷔 당시 와 SM 측이 여러 언론 매체를 통해 밝힌 발탁 과정은 아래와 같다.

는 가수가 되고 싶은 마음에 혼자 한국에 왔다고 한다. 이때 가까운 친구가 SM에서 멤버를 찾고 있다는 정보를 주면서 권유를 한 것이 계기가 됐다고 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는 부모님 혹은 어머님과 함께 SM이 주최하는 공개 오디션에 참가하였다고 한다. 오디션에서 김건모의 <아름다운 이별> 을 불러서 합격하였다고 한다. 이수만은 이때 가 먼저 발굴한 바다 유진과 한 멤버가 될 수 있음을 감지했다고 한다.

여기에서 가 직접 밝힌 사실은 오디션에서 김건모의 <아름다운 이별>을 불렀다는 것 딱 하나다. 이외에도 SM 공개 오디션 내용도 명확한 증언이 없긴 하지만, 사실일 확률도 있다. 가 직접 밝힌 내용에 따르면, 잠실 롯데월드 지하상가 쇼핑몰에서 친구와 함께 술래잡기 놀이를 하던 중에 SM 캐스팅 디렉터에게 길거리 캐스팅 제의를 받았고, 며칠 후 이수만 앞에서 오디션을 봤다고 한다. 이 오디션이 SM 공개 오디션일 확률도 있기에, 섣불리 사실이 아니라고 단정 짓기에는 힘든 부분이 있다.

하지만, 사실과는 전혀 다른 내용들도 꽤 있다.

첫 번째로, '가수가 되고 싶은 마음에 혼자 한국에 왔다'는 내용이다. 데뷔 당시 잡지에서 밝힌 다른 내용은 이와 상반되는데 내용인즉슨 이렇다. 고등학교 때 부모님과 함께 한국으로 건너와 학창시절을 보내고 있다는 내용이다. 이 내용이 사실이라고 무게를 실어주는 이유는 이와 같다. 당시 의 어머니는 서울에서 클라쎄라는 카페를 운영하고 계셨고, 지상파 방송에 S.E.S.가 모여서 유진의 생일파티를 해주는 모습도 전파를 탄 적이 있다. 즉, 는 가수가 되고 싶은 마음에 혼자 무작정 한국행을 결정한 것이 아니라, 부모님과 함께 한국으로 거주지를 옮겼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 그룹 활동 종료 후 훗날 밝힌 내용에 따르면 일본에서 한국으로 거주지를 옮긴 시기는 일본에서 중학교 2학년까지 마친 후라고 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중학생이 심지어 당시에는 한국어가 약간 서툴렀던 재일교포 출신이 아무런 연고도 없이 무작정 거주 나라를 바꾼다는 것은 사실상 극히 드문 일이다.

두 번째로, '친구의 소개와 권유가 있었다'는 내용이다. 가 직접 밝힌 내용에 따르면, 친구와 함께 놀다가 길거리 캐스팅 제안을 받은 것이지 친구의 권유가 있었다는 내용은 없다. 다만, 어쩌면 본인만 알고 안 밝힌 내용이 있을 수 있다고 추측을 해보자면, 길거리 캐스팅 제안을 받은 친구가 적극 권유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말그대로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므로 일단 사실과는 다르다.

마지막 세 번째로, '부모님과 함께 SM 공개 오디션을 봤다'는 내용이다. 가장 사실과 동떨어지고 전혀 사실이 아닌 내용이다. 가 2007년 S.E.S. 10주년 기념 단독 팬미팅과 2017년 방송 등에서 밝힌 내용에 따르면, SM에서 연습생으로 들어간 사실을 부모님에게 알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옷을 갈아입고 있는데 과격한 안무 연습 등으로 생긴 멍을 어머니가 보게 되고, 극구 반대하셨다고 한다. 연습생 사실도 모르고 오히려 연습 결과로 몸에 생긴 멍을 보고 반대하셨던 어머니인데, 오디션 현장에 동행했다는 사실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

S.E.S. 활동 종료 후 가 직접 밝힌 발탁 과정은 아래와 같다.

는 SM에서 연습생 시절을 보내기 전 이미 다른 기획사에서 계약서 없이 연습생 신분으로 데뷔를 준비하고 있었다고 한다. 해당 기획사는 큰 규모의 모 잡지사 사장이 차린 연예 기획사로, 당시 혼성 그룹 스페이스A를 발굴한 인터스페이스 201이었다.[4][5]

인터스페이스 201에 덩달아 친구랑 갔는데, 정작 친구는 캐스팅이 안 되고 자신이 캐스팅 되었다고 한다. 본인이 밝힌 내용은 해당 내용이 전부라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친구가 인터스페이스 201에 캐스팅을 보러 간 현장에 함께 동반한 것이라는 추정이 정황상 가장 유력하다.

인터스페이스 201에서는 걸그룹이 아닌 혼성그룹 데뷔를 목표로 연습생 생활을 보냈다고 한다. 당시 함께 연습했던 연습생은 1999년 1월에 보이그룹으로 데뷔한 god의 손호영과 데니안이었다고 한다.

인터스페이스 201에서의 연습생 생활을 그만 두고 SM 연습생으로 들어간 이유는 두 가지가 있었다고 한다. 첫 번째, 인터스페이스 201에서 가능성이 안 보여서 그냥 나갔다고 한다. 두 번째, 인터스페이스 201에서 연습생 시절을 보내던 당시 어느 날 친구들과 함께 잠시 롯데월드 지하상가에 놀러 갔는데, SM 캐스팅 디렉터의 눈에 띄어 명함을 받았다고 한다. 이때 는 친구랑 술래잡기 놀이를 하던 중이었다고 한다. 쇼핑몰이라고 언급한 것으로 보아 바로 이 날이 SM 캐스팅 디렉터에게 캐스팅 제의를 받은 날이 사실상 거의 확실하다. 인터스페이스 201에서 캐스팅 제의를 받은 상황과는 완전히 다르고, 잠실 롯데월드 지하상가에는 쇼핑을 할 수 있는 장소가 구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길거리 캐스팅의 행운을 두 번이나 받은 것이었다. 당시 연예계는 길거리 캐스팅으로 인재를 발굴하는 것이 빈번하였고[6], 길거리 캐스팅을 받는다는 것은 일단 연예인으로서 외모나 스타성을 인정 받은 것이나 다름 없었다. 유진은 줄곧 의 첫 인상을 회고할 때 너무 예뻤다고 말했는데, 당시에도 빼어난 미모 덕분에 길거리 캐스팅의 행운이 있었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SM의 캐스팅 제의를 받은 는 며칠 후 이수만 앞에서 오디션을 봤다고 한다. 이때 노래는 김건모의 <아름다운 이별>을 선보였었고, 춤은 업타운의 <다시 만나줘>를 선보였다고 한다. 의 오디션을 진행한 이수만은 눈빛이 살아 있어서 너무 좋고 바로 계약을 하자고 했다고 한다. 기사 SM 입사가 일사천리로 이뤄진 것이다. 이렇게 는 한 순간에 혼성그룹에서 걸그룹 연습생으로 신분이 뒤바뀌게 된다. 의 인생에 있어서 결정적 전환점이 되는 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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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07 M.net 《비틀즈코드 시즌2》 14회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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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11 채널 A 《글로벌 한식 토크 쇼킹》)

4.3. 유진의 발탁 과정

S.E.S. 세 멤버 중 마지막 세 번째로 캐스팅 된 멤버는 유진이다. 가장 늦게 캐스팅 된 만큼 연습생 기간도 가장 짧다.

유진의 데뷔 과정은 역대 연예인 캐스팅 일화 중 일명 될놈될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일화로 전설처럼 내려져 오고 있다. 또한, 평소 자신이 동경했던 스타를 실제로 본 날을 계기로 자신 또한 누군가에게 동경의 대상이 되는 스타가 되는데, 본격 성공한 덕후의 면모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유진의 데뷔 과정을 보면 현대판 신데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드라마틱하다. 해당 일화를 들은 같은 연예인들도 유진의 드라마 같은 데뷔 과정을 들으며 놀라움을 금치 못할 정도다. 그만큼 정말 운명 같은 계기로 데뷔하게 되었고, 단 5개월이라는 준비 기간을 거치고 데뷔와 동시에 톱의 위치에 올라섰기 때문이다.

우선 데뷔 당시 유진과 SM 측이 여러 언론 매체를 통해 밝힌 발탁 과정은 아래와 같다.

1996년 겨울, 어머니의 친구를 통해 SM에서 멤버를 구한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을 소개하는 비디오를 찍어 1차 오디션에 합격했다고 한다.

S.E.S. 활동 당시 캐스팅 디렉터의 회고와 활동 종료 후 유진이 직접 밝힌 발탁 과정은 아래와 같다.

유진의 가족은 초등학교 5학년 때 미국 괌에 살고 계시는 큰 아버지의 제안으로 괌으로 이민을 가 거주하고 있었다고 한다. 당시 유진은 연예계를 동경하고 있었고, 티비에 나오는 배우나 가수가 되고 싶다는 꿈을 품고 있었다고 한다. 그 당시 괌은 한국 스타들이 많이 쉬러 가는 곳이었다고 하는데, 유진은 괌에 거주하며 평소에 좋아했던 가수 김원준[7], 서태지를 만나 싸인도 받고 함께 사진도 찍었다고 한다.[8]

김원준, 서태지 외에도 당시 SM이 배출한 최고의 보이그룹 H.O.T, 그 중에서도 강타와 장우혁도 되게 좋아했었는데, 1997년 봄 드디어 H.O.T.가 괌에 첫 영상집 촬영 차 방문했다고 한다. 당시 유진의 아버지 친구 분께서는 콜택시를 업으로 삼고 계셨는데, 그분께 정확한 정보를 얻어서 서태지가 머무는 호텔에 찾아간 일도 있었다고 한다. 그만큼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에 대한 팬심이 크고 스타를 보기 위해 자신이 직접 만나볼 수 있는 곳이라면 실천으로 옮기는 적극성을 보여준 유진이었기에, H.O.T.를 직접 실제로 보기 위해 그 현장에 간다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H.O.T.가 너무 보고 싶은 나머지 방문 당일 공항으로 향했는데, 이미 H.O.T.가 괌에 방문한다는 소문이 다 퍼진 상태여서 방문 당일 공항에는 엄청난 인파가 몰렸었다고 한다. 당시 H.O.T.가 <캔디>라는 노래로 활동하며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었을 때라, H.O.T.를 실제로 보면 목에 걸어주기 위해 사탕을 묶어서 준비했다고 한다. 유진의 센스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동생과 친구들이랑 가위바위보를 해서 각자 걸어줄 멤버를 정했다고 하는데, 결국 그 많은 팬들 사이에서 H.O.T.에게 해당 선물을 건네주는데 성공하였다.[9] 당시 유진에게 캐스팅 제의를 한 H.O.T. 매니저 김수현의 회고에 의하면 해당 자리에는 유진의 어머니 고연희 씨도 함께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평소 좋아했던 H.O.T.를 만나는 꿈 같은 시간을 가진 것만으로도 족한데, 이때 유진은 예상치도 못한 뜻밖의 제의를 받게 되었다고 한다. 바로 당시 H.O.T. 매니저이자 후에 전설의 캐스팅 디렉터로 활약하는 김수현이 영어를 구사할 줄 아는 유진에게 다음날 H.O.T.와 일행들이 쇼핑하러 쇼핑몰에 갈 예정인데, 간단한 통역을 해줄 수 있냐는 부탁이었다고 한다. 유진은 해당 부탁을 흔쾌히 받아들였다고 한다. 평소 좋아했던 스타를 가까이서 오래 볼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이기에 거절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함께 동행하며 통역도 해주고, 김수현이 H.O.T.와 함께 사진도 찍게 해줬다고 한다. H.O.T.의 괌 체류 기간은 3박 4일이었는데, 김수현의 회고에 의하면 유진이 3박 4일 동안 계속해서 H.O.T.를 쫓아다녔다고 한다. 김수현은 예정된 일정을 마치고 괌을 떠나 서울로 가기 전에 유진에게 명함을 주었고, 유진의 연락처를 적어왔다고 한다.

평소 좋아했던 가수를 옆에서 오래 볼 수 있는 꿈 같은 하루를 보내고 부푼 마음으로 집에 가려고 향하는 중에, 해당 쇼핑몰 앞으로 고급 세단 하나가 딱 멈추고 까만 창문이 내려가며 누가 유진을 불렀다고 한다. 해당 차에서 얼굴을 드러낸 사람은 바로 H.O.T.와 훗날 유진이 몸담게 될 S.E.S.를 제작한 이수만 프로듀서였다고 한다. 유진은 속으로 '어 이수만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이수만이 유진에게 건넨 말은 '재미 교포인가? 혹시 연예계 쪽에 관심 있나?'였다고 한다. 평소 연예계를 동경해왔던 유진은 서슴 없이 '네.'라고 대답하였고, 연락처를 달라는 이수만의 부탁에 연락처를 건넸다고 한다.

훗날 유진은 이 날을 회고하며 정말 영화 같았다고 말하였다. 단 한번이라도 받기 힘든 길거리 캐스팅 제의를 무려 두 번이나 그것도 대형 기획사의 사장과 매니저 주요 인물에게 동시에 받은 것이니 정말 운명과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가수로서 어떠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지 아무것도 검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오직 외모 하나만으로 캐스팅된 것이었으니, 당시 유진의 미모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하게 할 수 있는 대목이다.[10]

김수현이 훗날 밝힌 인터뷰에 따르면, 당시 유진을 보고 처음엔 외국인[11]인 줄 알아서 말을 걸지 못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유진이 김수현에게 종이와 펜을 건네며 '아저씨, 사인 좀 받아주세요.'라고 말을 했으며, 그 말을 듣는 순간 유진이 한국인이라는 것에 깜짝 놀랬고 그 사실에 기뻐하며 계속 주시하였다고 한다. 당시 김수현은 유진을 처음 만난 날을 회고하며 이국적이면서 청순한 외모는 물론 티 없는 성격도 인상 깊었다고 밝혔다. 한국에 돌아온 후 김수현은 이수만에게 유진의 사진을 보여줬다고 한다. 하지만, 이미 이수만도 괌에서 유진에게 캐스팅 제의를 보낸 상황이었고, 김수현은 이 사실을 몰랐던 것으로 보인다.

이수만과 H.O.T. 매니저에게 연락처를 건넨 후, 며칠 후 이수만으로부터 오디션을 보기 위해 잠시 한국으로 올 수 있냐는 전화가 왔다고 한다. 당시 유진의 어머니 고연희 씨도 유진이 연예계 일을 하고 싶어하고, 동경하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이에 대한 반대가 전혀 없었다고 한다. 되려 '이렇게 기회가 온 것도 인연일 수 있으니까 한 번 해보자'라는 말로 유진의 꿈을 응원해주며, 유진의 한국행에 동반했다고 한다.

당시 방배동에 위치하고 있었던 SM에 찾아가서 미팅을 가졌다고 한다. 해당 자리에서 '가수를 해 볼 의향이 있나'라는 이수만의 질문에, 유진은 흔쾌히 '예.'라는 답변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당시 유진은 17세의 나이로 학업을 병행하고 있었던 학생의 신분이라 다시 괌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괌으로 돌아가기 전 이수만은 '이런 춤을 한 번 연습해 봐'라며 연습해야 할 춤을 비디오로 찍어서 건넸다고 한다.

학업 때문에 다시 괌으로 돌아온 유진은 이수만이 일단 연습해 보라고 했으니, 그 말에 따라 열심히 연습을 이어나갔다고 한다. 당시 SM은 S.E.S. 초기 컨셉으로 여자 H.O.T. 버전의 힙합 여전사를 만들 계획이어서 보통 남자 연습생들도 따라가기 힘든 고난이도의 강도 높은 안무 연습을 받았다고 한다. 주변에 특별히 도와줄 전문가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힘으로 안무를 해나간 것이다. 유진이 얼마나 성실한 자세로 응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12]

데뷔 당시 SM 측에 자신의 끼와 실력을 어필하는 모습을 녹화한 비디오 테이프를 SM에 보내서 최종 합격했다고 밝혔는데, 여러 정황상 괌에 돌아간 후 연습 모습을 찍어서 SM측에 보냈던 과정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정이 유력하다. 또한, 이러한 추정에 강력하게 힘을 실어주는 내용이 2012년에 출판된 이수만 평전에서 밝혀진다. 해당 자서전에 기고된 내용에 따르면 괌에서 캐스팅 제안을 받은 것을 계기로 유진이 한국으로 귀국하였고, 그 후 유진이 SM에 보낸 사진과 비디오 자료가 심사를 통과함으로써 비로소 정식으로 연습생이 되었다고 한다. 물론 유진이 해당 타임라인까지 밝힌 언론 매체 문헌은 발굴되지 않은 상태이기에 이 또한 100% 정확한 사실이 아니지만, 여러 타임라인과 정황상 거의 맞다고 보여지는 게 정설이다.

그리고 드디어 1997년 6월, SM과 계약을 체결하고 연습에 합류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고 한다. 그야말로 속전속결로 데뷔가 이뤄진 셈이었다. 그 당시 바다는 이미 캐스팅이 돼서 연습을 하고 있었고, 유진이 가장 늦게 합류했다고 한다. S.E.S. 세 멤버 중에서 연습생 기간이 5개월로 가장 짧은 기간을 거쳤다.

훗날 유진은 이러한 데뷔 과정을 언급하며 당시에는 너무 갑자기 온 기회라 데뷔하는 것만 보였고, S.E.S.로 데뷔한 일이 자신의 인생을 바꿨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유진의 영입은 향후 S.E.S.의 팀 색깔을 완전히 바꿔 놓으며 가요계를 뒤흔드는 역사적인 사건으로 이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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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20 KBS 《해피선데이 불후의 명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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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20 SBS 《티키타카》 전문)

5. 결성 비화

5.1. 멤버수

S.E.S. 멤버수는 최종적으로 3인조로 결정됐다. 하지만, 원래는 3인조보다 더 많은 인원으로 기획된 그룹이었다고 한다.

우선 많은 팬들과 대중들이 알고 있는 것 처럼 원래는 중국어를 담당할 수 있는 멤버를 포함해 4인조로 나올 생각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가 2010년 12월 1일에 SBS funny fun 《탁재훈의 스타일》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에 따르면, 당시 SM엔터테인먼트에서는 여성판 H.O.T. 그룹을 목표로 만들 계획을 세우고 있었고, 멤버수도 H.O.T.와 동일하게 다섯 명으로 만든다는 얘기가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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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01 SBS funny fun 《탁재훈의 스타일》)

최종적으로 5인조 구상은 무산되고 4인조로 변경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4인조도 끝내 최종적으로 무산됐다고 한다. 그 이유는 그룹 내에서 중국어를 담당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던 연습생이 학업을 사유로 그만둬서였다고 한다. 바로 이 소녀가 1999년 5월에 걸그룹 티티마의 멤버로 데뷔하는 소이다. 소이에 관한 이야기는 아래에 서술될 ' S.E.S.가 될 뻔했던 연예인들'에서 보다 자세히 등장하게 된다. 가 밝힌 내용에 따르면, 이수만은 당시에도 중국과 일본 시장을 강조하며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훗날 이수만도 이와 관련해 밝히길, 중국어를 담당하는 연습생은 빠졌지만 일단 일본어가 가능한 가 있으니 일본은 갈 수 있지 않겠냐며, 결국 최종적으로 S.E.S.는 3인조가 되었다고 한다.

참고로, 만약 S.E.S.가 4인조로 나왔다면 핑클은 5인조, S.E.S.가 5인조로 나왔다면 핑클은 6인조가 됐을 뻔했다.

5.2. 서로 간의 첫 인상

5.3. 의 연습생 이탈과 빛났던 우정

5.4. 초기 컨셉과 유진 영입의 영향력

SM이 S.E.S. 기획 초기에 계획했던 컨셉은 힙합 여전사들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SM의 이러한 계획을 틀어버리게 한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역대 걸그룹 비주얼 센터의 시초라고 불리는 유진이다.

1997년 봄, H.O.T.가 영상집 촬영 차 들렀던 괌에서 유진을 캐스팅했던 캐스팅 디렉터 김수현의 회고에 따르면 당시 유진을 처음 보고 외국인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이국적이고 청순한 외모의 소유자였다고 한다. 당시 현장에 함께 있었던 H.O.T.의 문희준은 그때 유진의 모습을 회고하며 당시에도 그 많은 팬들 사이에서 요정 같은 미모를 자랑했다고 밝혔다.

결국 유진의 미모로 인해 초기에 기획된 힙합 여전사 컨셉에서 하얀색 옷에 청순미를 강조하는 청순 컨셉으로 급 선회하였고, 결과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S.E.S.가 데뷔와 동시에 초 대박을 터뜨리고 걸그룹으로서 유례 없는 인기를 누릴 수 있었던 데에는 다양한 요소로 풀이되지만, 그 요소 중 유효했던 전략이 바로 이 '청순 컨셉'이다. 더 나아가 청순 컨셉에 연습생 시절 갈고 닦았던 파워풀한 안무가 더해져서 시너지 효과를 냈다. 안일하게 청순함만을 강조하고 가요계의 정상을 노렸던 기존 걸그룹들과는 아예 차원이 다른 무대 매너를 보여준 것이다.

당시 가요계에 등장했던 걸그룹들은 대부분 세거나 섹시한 콘셉트로 일관한 것에 반해, S.E.S.는 이전 걸그룹들과는 다르게 화장부터 옷차림까지 청순 그 자체였다. S.E.S.가 데뷔와 동시에 '요정'이라는 칭호를 얻으며 '누나부대' 신드롬을 일으킬 수 있었던 데에는 유진의 미모로 인한 콘셉트 선회가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후에 S.E.S.가 제시한 청순 콘셉 성공 전략은 S.E.S.로부터 시작된 25년 걸그룹 역사에서 섹시 콘셉으로 대중들의 피로감이 극에 다다를 때, 차별화를 두며 가요 팬들에게 확실하게 눈도장을 찍을 수 있는 스테디 컨셉으로 자리잡으며 되풀이된다. 이 뿐만이 아니라 청순 콘셉에 파워풀한 안무가 더해진 '파워 청순' 콘셉트 또한 걸그룹 역사에서 교본이 되었다. 어떻게 보면 유진의 미모가 걸그룹 역사에 '기본'이 세워지는 데 큰 기여를 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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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18 MBC 《해피타임》 전문)

5.5. 데뷔 당시 H.O.T. 관련 일화 미공개

유진 같은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발탁 계기를 각색할 수 밖에 없는 당시 시대적 상황이 있었다. 알다시피 S.E.S.를 제작한 SM엔터테인먼트는 이미 S.E.S. 이전에 H.O.T.라는 보이그룹을 선보였었고, H.O.T.는 사회현상이라고 불릴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였다. H.O.T. 팬덤은 당시에 거의 신흥 종교 수준으로 연예인에 대한 맹목적인 팬심을 보여주기로 유명하였고, 사실상 팬덤의 성별이 거의 대부분이 10대 여성 소녀들이었다. 이 소녀팬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H.O.T. 오빠들에 대한 열애설에 굉장히 예민하게 반응하였다. 실제로 문희준과 열애설이 난 베이비복스의 간미연에게는 수차례 살해 협박 및 테러 행위를 가했던 건 후 시대 사람들도 알 정도로 너무나 유명한 사건이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S.E.S. 데뷔와 동시에 이런 핵폭탄이 터졌다. 바로 PC 통신 등을 통해서 유진과 H.O.T. 멤버가 그것도 두 명과 사귄다는 루머가 돌았던 것이다. 이 외에도 데뷔 당시 유진은 젝스키스의 고지용, NRG의 故 김환성과도 허위 열애설이 있었다. 그래서 무대 위에서 해당 팬들에게 꺼져라 아유를 듣게 된다... 물론 이는 엄연히 헛소문이었고 사실이 아니었다. 당시 SM엔터테인먼트 측에서도 여러 보도 자료나 인터뷰를 통해 절대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유진이 자신들은 한 번 가까이서 볼까 말까한 H.O.T. 오빠들을 통역까지 해줘가면서 오래 보고, 심지어 그것을 계기로 캐스팅까지 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이러한 근거 없는 루머는 꽤 타당성을 가지고 퍼져나갔을 것이며, 결국 S.E.S.에게는 전혀 득될 게 없는 상황이었다. 때문에, SM엔터테인먼트 측이 자사의 두 그룹에게 모두 피해가 안 가게 이러한 위험성을 미리 차단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캐스팅 일화뿐만이 아니다. S.E.S.의 데뷔 곡이자 걸그룹 시대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기념비적인 곡 < I'm Your Girl> 후렴 부분에 등장하는 일명 '둥근해 춤'은 걸그룹 최초로 유행하는 안무로 자리잡을 만틈 메가히트를 기록하였는데, 이 안무에도 놀라운 사실이 숨겨져 있다.

S.E.S. 데뷔 후 11년이 되는 2008년 8월 25일에 방송된 MBC 《놀러와》에 1세대 6대 천왕 아이돌 특집편에 유진과 H.O.T. 문희준이 함께 출연하였다. 해당 방송에서 유진이 밝히길 < I'm Your Girl>의 '둥근해 춤' 안무는 H.O.T.의 문희준이 만들어 준 것이라고 한다. 훗날 문희준이 밝힌 내용에 따르면 해당 안무를 S.E.S.에게 직접 알려줬다고 한다. S.E.S. 데뷔 당시 SM엔터테인먼트 측은 이러한 사실을 일체 알리지 않았었다. 안무 제작에 대한 언급은 안무가 박재준이 맡았다는 이야기만 있었을 뿐이었다. 만약 당시에 해당 사실까지 알려졌다면 S.E.S.에 대한 H.O.T. 팬덤의 안티 행위는 급속도로 퍼져나갔을 것이다.

2008년 2월 21일, 가 H.O.T.의 문희준이 진행하는 KBS Cool FM 라디오 《정재형 문희준의 즐거운 생활》에 스페셜 DJ로 출연해 직접 밝힌 내용에 따르면 '당시 회사 내에서 H.O.T. 선배님들에게 인사를 하면 안 되는 규정이 있었다. 인사하면 장난 아니었다. H.O.T. 팬들에게 욕 먹을까 봐 더욱 그랬다.'라고 밝혔다. 실제로 S.E.S. 데뷔 당시 SM엔터테인먼트 내에서 H.O.T.와 엮이지 않으려는 철저한 관리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6. 여담

6.1. S.E.S.가 될 뻔했던 사람들

의 회고에 따르면 당시 S.E.S. 후보였던 연습생으로 많은 이들이 있었다고 한다. SM엔터테인먼트 측에서 나오지 말라고 하면 그날로 연습생 생활은 끝이었을 정도라고 한다. 데뷔 당시에 보도된 잡지 내용에는 S.E.S.가 탄생하기까지 무려 1백 명 정도의 인원이 거쳐갔다고 한다. 당시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면 엄청난 인원이다. 그만큼 SM엔터테인먼트 측에서 얼마나 사활을 걸은 프로젝트였는지 알 수 있다. 이들 중에서 살아남아 왕관을 쓰게 된 자들이 바로 바다, 유진, 이 세 명의 소녀들이었다.

기재 순서는 연습생 경험이 긴 순서부터다. 이외에 더 많은 사람들이 있겠지만, 공식적으로 밝혀진 사람들은 이 정도다.

아래 열거된 사람들 외에 걸그룹 쎄쎄쎄의 임은숙이 S.E.S.가 될 뻔했다고 밝힌 적은 있지만, 어디까지나 본인만의 주관적인 견해로 큰 신빙성은 없다. SM엔터테인먼트에서 가수 제안을 해왔는데 거절했고, 만약 다시 수락했으면 S.E.S.가 될 뻔했다는 주장이다. 즉, 오디션을 본 적도 없고 연습생 생활을 함께 가진 적도 없다. 또한, 해당 내용을 밝힌 방송에서 다른 멤버가 S.E.S.가 쎄쎄쎄를 따라 잡기 나왔다는 등의 사실이 아닌 순전히 자신만의 생각으로 말한 내용도 있어서 이 리스트에 따로 이름을 올리기에도 부족하다. 당시 방송에서 밝힌 팩트는 딱 하나, S.E.S. 2집 후속곡 < 너를 사랑해>가 원래는 쎄쎄쎄한테 먼저 갔으나 그룹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아서 거절했다는 것이다.

6.1.1. 티티마의 소이

S.E.S.가 될 뻔했던 연예인들 중에 가장 유명하며, 가장 연습생 생활이 길다. 사실상 엄밀히 말하면 정말 데뷔 직전까지 갔던 유일한 사람이다. 소이가 얼만큼 연습생 생활을 함께 오래했는지 알 수 있는 일화가 있다. 연습을 끝나고 가는데 너무 힘드니까 유진이 소이를 업고 갈 정도였다고 한다. S.E.S.가 될 뻔했던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꽤 오랜 연습생 기간을 보냈고 멤버들과도 함께 연습생을 보내는 등 가장 관계가 깊은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대중들도 소이가 S.E.S의 후보 멤버였다는 걸 알고 있을 정도로 널리 퍼진 이야기다.

소이는 중국 시장까지 고려하여 중국어가 가능한 멤버를 고려한 선택이었다고 한다. 외교관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중국어에 능통하다고 한다. 이수만에게 캐스팅 제의를 받았는데, 사실 우연한 행운으로 얻어 걸린 것이었다. 그런데 그 행운을 박치고 나간 게 본인... 애초에 캐스팅 제의 대상이 소이가 아니었다고 한다.

이수만과 유영진이 S.E.S. 멤버를 찾기 위해 미국에 있는 소이 집까지 찾아갔는데, 이때만 하더라도 이수만이 점 찍어둔 사람은 소이가 아닌 그의 친언니 해이였다고 한다. 아무래도 알앤비 풍이 기본이 되는 S.E.S. 음악적 색채에 해이의 음색이 잘 맞아 떨어진다고 판단했던 모양이다. 정작 멤버로 영입하고자 했던 해이는 쑥스러워서 도망가고, 되려 소이가 춤 추는 걸 좋아해서 두 사람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연습생 생활을 시작했는데 당시 보이그룹이 출만한 힘든 안무에 지치기도 했고, 학업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해 결국 학업을 선택하고 연습생 생활을 그만뒀다고 한다. 하지만, S.E.S.가 데뷔 후 엄청난 후회를 했다고 하는데, 이유는 정작 데뷔한 걸 보니 연습생 때 연습했던 춤보다 훨씬 쉬워서였다고 한다. 데뷔 때 안무도 충분히 파워풀 했는데 대체 어느 정도였다는 건지..?

어쨌든 결과적으로 소이는 자신에게 온 행운을 걷어찬 셈이었고, 결과적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당대 최고의 걸그룹 멤버라는 타이틀로 얻을 수 있는 명예와 부를 그렇게 떠나보내야 했다. 근데 소이 집안 자체가 부자라서 부는 별로 안 아까울지도. 하지만 명예는 돈 주고도 못 사는 것이니.. 이후 1999년 걸그룹 티티마로 데뷔하지만,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하는 데는 실패하였고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게 된다. 이래서 인생은 선택과 타이밍이 중요 다만 소이도 티티마 멤버들 중에서는 유일하게 인지도를 크게 얻었고 해체 이후에도 나름 괜찮은 활약을 하긴 했다.

하지만, 이때의 인연으로 활동 당시에도 지금까지 유진와는 친분을 이어나가며 우정을 쌓고 있다. 1세대 여자 아이돌 가수의 건전한 사모임인 야채파 멤버이기도 하다.

6.1.2. 오투포의 이가혜

S.E.S. 세 멤버와 함께 연습을 하는 도중에 나갔다고 한다. 티티마의 소이와 핑클의 이효리 외에도 연습생 단계까지 간 사람이다.

다만, 다른 둘에 비해 인지도가 낮고, 지금은 연예인 활동을 안 하고 있기도 하고, 기사 한 줄로 한 번만 언급된 경우라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사실 본인이 직접 언급한 문헌 기록이 없고, 그룹 활동이 종료된 후 오랜 시간이 흐른 2006년에 기사 한 줄로만 언급됐고, 기사에 나온 내용도 어느 경로를 통해서 나온 내용인지 없어서 정확한 내용인지는 검증이 안 됐다. 그 당시에는 잡지를 통한 인터뷰가 굉장히 많았기 때문에 잡지 등에서 본인이 직접 밝혔을 가능성도 있다.

어쨌든 여러 사실이 검증된 다른 연예인의 사례와 함께 유수 언론에 소개된 내용이라 일단 라인업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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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3. 핑클의 이효리

SM에서 일했던 캐스팅 디렉터 김수현 씨가 방송에서 밝힌 일화로, 이효리도 S.E.S. 결성 과정에서 후보 멤버였다고 한다. #

이효리는 고등학생 때부터 예쁜 걸로 워낙 유명해 기획사 명함 받는 일이 일상처럼 있었고, H.O.T.의 공식 스케줄을 따라다닌 적도 있어서 당시 H.O.T.의 매니저를 맡고 있던 김수현이 이효리를 눈여겨보고 사무실로 데리고 왔다고 한다. 이효리 본인도 이수만 앞에서 오디션을 봤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다만 장기적으로 연습생 생활은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김수현의 인터뷰에 따르면, S.E.S.에 대한 프로젝트를 전해듣고 이효리와 계약을 한 뒤 연습을 시켰는데 도망가버렸다고(...) 이후 이효리는 월드뮤직으로 가서 김동완, 이지혜와 혼성그룹을 준비하거나 윤미래, 임유진과 힙합 걸그룹을 준비하는 등의 생활을 보내다 DSP미디어(당시 대성기획) 대표였던 이호연의 캐스팅을 받아 최종적으로 핑클로 데뷔, S.E.S.와 걸그룹 양대산맥을 형성하며 선의의 경쟁을 펼쳤다.

6.1.4. 해이

6.1.5. 진주

6.1.6. 이수영

6.1.7. 핑클의 성유리

6.1.8. 문희준의 여동생

정확히는 S.E.S.의 후보로 연습생 생활을 한 게 아니라 잠깐 거론만 됐던 인물.

문희준이 H.O.T.로 데뷔한 뒤, 이수만이 문희준의 집을 방문했다가 여동생을 보고 예쁘다며 연습생이 되볼 것을 권했다고 한다. 여동생인 문혜리 씨는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문희준이 강력하게 반대해서 결국 무산되었다고. 이유는 문희준이 여동생의 재능으로는 가수가 되기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반대한 거라고 한다.


6.2. 의 혼성그룹 연습생 관련 와전된 내용

사실 엄밀히 말해 해당 내용은 S.E.S. 결성 과정으로 설명할 만한 내용이 전혀 아니며, 그 가치 또한 전혀 없다. 다만, 정확하지 않은 사실이 다소 퍼져 있기에 정정이 필요한 부분이라 언급된 것이다. 드러난 사실과 찾을 수 있는 최대의 문헌을 통해 정리된 내용이다.

6.2.1. NRG의 김환성과 함께 준비 일화

S.E.S. 슈(S.E.S.), 그리고 김환성 문서 등에 가 타 기획사에서 혼성그룹 데뷔를 목표로 연습생 시절을 보냈던 당시 보이그룹 NRG의 김환성과도 함께 연습생 시절을 보냈다는 내용이 적혀져 있었던 적이 있고 해당 나무위키 내용을 참고하여 보도한 것으로 추정되는 언론 기사들이 있으나, 이는 정확한 사실 관계를 알아보지 않고 기여한 사용자 때문에 사실과 다르게 와전된 내용이다.

가 여러 언론 매체에서 해당 일화를 언급했을 때 김환성을 언급했던 매체는 2012년 6월 7일에 출연하였던 M.net 《비틀즈코드 시즌2》 14회 딱 한 번 뿐으로 확인된다. 이 방송에서 가 말하길 자신이 빠진 혼성그룹 연습생 자리를 NRG의 김환성이 메꿨다고 말하였지, 엄밀히 말해 함께 연습생 시절을 보냈다는 말은 한 적이 없다.

다만 생전 김환성과 S.E.S. 멤버들은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다. 2000년 김환성의 장례식 때도 멤버들이 모두 참석했다.

6.2.2. SM 이적 후 손호영, 데니안의 멘붕 일화

나무위키 S.E.S./활동 문서에 가 SM엔터테인먼트로 이적하고 함께 혼성그룹 데뷔를 목표로 연습하고 있었던 god의 손호영과 데니안이 이 때문에 멘붕에 빠졌다는 내용이 적혀져 있었던 적이 있지만, 이 또한 정확한 사실 관계를 알아보지 않고 기여한 사용자 때문에 사실과 다르게 와전된 내용이다.

가 여러 매체에서 언급했을 때도 이러한 내용은 전혀 언급한 적이 없었다. 또한, 2009년 10월 26일에 방송된 MBC 《놀러와》 266회 S.E.S. 특집 편에 해당 일화의 당사자인 god의 데니안도 함께 출연한 적이 있었는데, 데니안 또한 이런 내용을 전혀 언급한 적이 없다. 마찬가지로 god의 손호영과 데니안이 다른 언론 매체에서 이러한 내용을 언급한 문헌은 존재하지 않는다.

god의 손호영과 데니안이 방송에서 출연해서 자신들과 함께 혼성그룹 데뷔를 목표로 연습생 시절을 보낸 여자 보컬에 대해 언급한 방송이 있는데, 바로 2011년 3월 24일에 방송된 MBC 《추억이 빛나는 밤에》 12회 '전설의 아이돌 동창회 H.O.T. vs god' 편이다. 해당 영상 3:58부터

해당 방송에서 데니안이 말하길 자신들과 2년 동안 여자 보컬로 연습했던 사람은 자신보다 2살 많은 누나라고 언급했다는 것부터 는 전혀 해당사항이 없다. 또한, 함께 연습생으로 있었던 기간이 2년이라고 하였는데, 의 연습생 기간으로 미루어보아 전혀 해당사항이 없다.

당시 god는 남자 멤버 5명, 여자 멤버 1명으로 구성된 혼성그룹으로 나올 예정이었고, 해당 여자 멤버는 바로 배우 김선아였다. god의 박준형이 직접 말하는 영상 데니안이 1978년 생이고 김선아가 1973년 생이지만, 김선아가 데뷔 당시 원래 나이보다 어린 1975년 생으로 홍보했다. 기사 데니안과 3살 차이로 데니안이 말한 2살보다 1살이 더 많기는 하지만, 얼핏 나이대도 맞고, 데니안이 잠시 헷갈린 것일 수도 있다. 여러 정황상 김선아가 맞다.

6.2.3. 다른 여배우들과 함께 준비 진위여부

해당 내용은 잘못 와전된 내용은 아니지만, 딱히 이 내용 하나 때문에 카테고리를 만드는 것도 비효율적이고, 자칫 와전될 수 있는 요소가 있어서 미리 예방 차원에서 해당 카테코리에 함께 언급되었다.

가 여러 언론 매체에서 타 기획사에서 혼성그룹 데뷔를 목표로 연습생 시절을 보냈던 시절을 언급할 때 채림과 권민중도 함께 언급했던 적이 두 번 있어서 얼핏 들으면 혹시 두 사람과도 함께 연습생 시절을 보낸 거 아니냐고 생각될 수 있지만, 여러 정황상 두 사람은 배우로 소속되어 있었던 것이 거의 확실하다.

가장 첫 번째 이유로, 가 언론 매체에서 혼성그룹 멤버 연습생 시절에 대해 말 했을 때 쭉 일관되게 god의 손호영, 데니안과 함께 연습생 생활을 했다고 말해왔다. 혼성그룹 목표를 데뷔로 함께 연습했다고 말한 사람은 god의 손호영, 데니안 이 두 명이 유일하다.

두 번째 이유로, 가 방송에서 두 번 채림과 권민중을 언급한 적이 있긴 하지만, 같은 소속사에 있었다는 말을 했지, 엄밀히 말해 함께 혼성그룹 데뷔를 목표로 연습했다는 말은 한 적이 없다.

세 번째 이유로, 채림과 권민중의 데뷔 시기나 활동 내역으로 보아 그럴 가능성은 사실상 거의 희박하다. 채림은 1994년 이미 배우로 데뷔한 상태였었고, 와 함께 같은 소속사에 있었던 시기로 추정되는 1996년과 1997년에도 이미 배우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던 시기였다. 권민중은 1996년 5월 24일에 개최된 제40회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 참가하여 한국일보 협찬사상을 수상한 후 배우로 연예계에 입문하였다.

6.3. 기타

  • 바다는 SM엔터테인먼트 입사 전인 1995년 가을 무렵에 당시 김건모, 신승훈 등을 배출한 굴지의 음반사 덕윤산업에서 오디션을 봤다고 한다. 이 오디션 현장에는 홍경민도 있었다고 하는데, 비록 계약이 성사되지는 않았지만 홍경민과 함께 관리 대상으로 낙점 받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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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E.S. 멤버를 선발하는 오디션에 1만 명, 3만 명의 인원이 거쳐갔다는 내용이 나무위키 문서를 필두로 온라인 상에 떠돌고 있으나, 정작 관련 문헌이 담긴 실제 자료가 공개된 적은 없다. 오히려 당시 잡지 문헌에 의하면 1백 명 정도라고 나온다. 1백 명 자체로도 당시 시대적 상황으로도 엄청난 인원이다. 만약 1만 명, 3만 명이라는 내용의 실제 문헌이 나오면 해당 정보에 맞게 수정되면 되지만, 설령 실제로 문헌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해당 내용은 너무 지나치게 부풀려졌거나 부정확한 내용을 보도한 것일 확률이 크다. 한마디로 이거일 확률이 크다는 것. 아니면 문헌 자체가 없는데 누가 뇌피셜로 날조한 내용일 수도 있다. 당시 시대적 상황이나 준비 기간, 인구 대비 등 여러 정황상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 S.E.S. 연습생 시절에 유진이 한국 학교에서 교회 합창단 공연 자격으로 참석한 날 피아노를 연주하는 직캠 영상이 있다. 데뷔 전 직캠이 있는 유일무이한 1세대 아이돌이다. 모든 역대 아이돌을 통틀어서 이러한 사례가 있을까 싶을 정도다.[14] 해당 직캠에서 유진은 데뷔 전인데도 불구하고 올리비아 핫세를 연상시키는 서구적이고 입체적인 미모를 뽐내고 있다. 역대 걸그룹 비쥬얼 센터 시초의 위엄
  • S.E.S.와 함께 연습생 시절을 보낸 동기는 보이그룹 신화다. 비록 데뷔 시기는 S.E.S.가 빠르고 신화가 늦지만 사실상 동료인 셈이다. 그래서 그런지 두 그룹은 데뷔 후에도 선후배 관계가 아닌 동료처럼 지낸다. 아예 서로가 서로에 대해 선후배가 아닌 동료로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단 한 번 신화한테 선배 대접을 받은 적이 있었으니 바로 비슷한 시기에 S.E.S.가 20주년 앨범으로 재결합 하고, 신화도 새 앨범을 발매했던 22017년 1월 정도 시기다. 신화 하지만 이마저도 진심이 아닌.. 아무래도 S.E.S.가 신화에게 선배 대접을 받는 건 영영 불가능에 가까울 듯..
  • 유진이 여러 언론 매체를 통해 괌에서 캐스팅 제의를 받은 당시를 언급할 때 H.O.T. 일정에 대해 공연, 뮤직비디오 촬영, 휴식 등으로 매체마다 다르게 말한다. 사실 해당 H.O.T. 일정은 S.E.S. 결정 과정에 있어서 크게 중요한 내용은 아니지만, 훗날 당시 유진에게 캐스팅 제의를 건넨 김수현의 밝힌 내용에 의하면 정확하게 영상집(화보집) 촬영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H.O.T.가 미국에서 찍은 것으로 보이는 화보집 사진이 있다. 링크 유진이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 하는 이유는 아마 워낙 오래된 일이기에 헷갈릴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당시에 유진도 일단 괌에 H.O.T.가 방문한다는 정보만 입수하고 정확히 어떤 일정 차원에서 방문했던 거까지는 몰랐을 수도 있을 것이다.
  • S.E.S. 당사자에게 직접 데뷔 과정을 가장 많이 들은 연예인은 탁재훈이다. 탁재훈이 진행자로 활약하는 프로에서 나와서 밝힌 적이 많다. 2008년 1월 20일, KBS2 《해피선데이 불후의 명곡》에 S.E.S. 특집 편에 모든 멤버가 초대되어 자신들의 데뷔 경험담을 밝혔다. 2012년 7월 11일, 채널 A 《글로벌 한식 토크 쇼킹》에 게스트로 가 초대되어 자신의 데뷔 경험담을 밝혔다. 2021년 6월 20일, SBS 《티키타카》에 게스트로 유진이 초대되어 자신의 데뷔 경험담을 밝혔다. 심지어 함께 방송에 출연한 건 아니지만, 탁재훈이 진행자였던 프로그램 자료화면으로도 S.E.S.의 데뷔 과정이 나온 적이 있다. 2010년 12월 1일, SBS funny fun 《탁재훈의 스타일》에 S.E.S.와 핑클 특집 편이 방송됐는데 자료화면으로 2008년 《해피선데이 불후의 명곡》에서 말한 데뷔 과정 영상이 자료화면으로 나온 것이다.


[1] 베이비복스는 여러번의 멤버와 컨셉 변화 이후 꽤 성공한 그룹으로 기억되고 있지만, S.E.S.가 데뷔하기 전에 발매했던 1집까지만 해도 부진을 면치 못했던 상황이었다. [2] 그나마 에코가 가요톱텐 1위 후보에 올라서 2위까지 기록하였고, 디바도 지상파 음악방송 상위권에 입성하는 등 어느 정도의 성과는 있었던 편이었다. 단, 가요계의 지형과 판도를 뒤바꿀 만큼의 파괴력은 아니었다는 것일 뿐. [3] 이하 해당 문서에서 SM으로 줄여서 통칭한다. [4] 2016년 7월 5일, god의 손호영이 MBC 라디오 FM4U 《두시의 데이트 박경림입니다》에 출연해 같은 멤버 데니안과 함께 당시 스페이스A 소속사에서 혼성 그룹 연습생 신분으로 데뷔를 준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밝혔었다. 기사 [5] 스페이스A 활동 당시 소속사에 대한 언론 문헌은 남아있지 않지만, 정보를 알고 있는 팬덤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나무위키 문서에 당시 소속사 이름이 '인터스페이스 201'이라고 정리된 내용을 참고한 것이다. [6] 지금이야 오디션 시스템이 활성화된 데다가 기초적으로 요구하는 수준이 너무 높아져 길거리 캐스팅으로는 원하는 인재를 발굴하는 것이 힘들어졌고, 무엇보다 길거리 캐스팅을 빙자한 사기, 유괴, 성폭행 등의 범죄 사례가 늘어나면서 길거리 캐스팅 자체가 많이 사라졌다. 그나마 현재 있는 길거리 캐스팅도 대부분은 방송국/콘서트 현장 등 업계 관계자들이 많은 곳에서의 캐스팅이다. [7] 2000년 1월 3일, KBS2 《스타 데이트 최고의 만남》 S.E.S. 특집 편에서 괌에서 김원준과 함께 찍은 사진을 공개하였다. [8] 1998년 S.E.S. 1집 활동 당시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서태지와 함께 찍은 사진을 공개했다고 한다. 영상 자료는 남아있지 않다. [9] 당시 찍힌 사진도 있다. [10] 유진의 데뷔와 동시에 한국에 올리비아 핫세 닮은 소녀가 등장했다고 들썩일 만큼 엄청난 비쥬얼 쇼크를 주었다. [11] 실제로 유진은 어렸을 때부터 혼혈이냐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고 한다. [12] 실제로 유진 S.E.S. 활동 당시 춤선이 예쁘다는 평을 많이 받았는데, 연습생 기간이 불과 5개월 밖에 안 되는데도 불구하고 춤에 대한 소질을 어느 정도 갖추고 있었던 셈이다. [13] 원본 기사 주소는 현재 삭제되었다. [14] 소녀시대의 데뷔 전 모습이 유출된 적이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직캠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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