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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로스트 메모리즈/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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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
2.1. 프롤로그2.2. 이노우에 재단 공격
3. 월령을 조사하다4. 월령을 빼앗기다5. 누명을 쓰다6. 후레이센진 아지트에서
6.1. 진실6.2. 총격전6.3. 최후의 결전
7. 결말

1. 개요

2009 로스트 메모리즈의 줄거리를 설명하는 문서.

2. 상세

2.1. 프롤로그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안중근은 초대 한국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기 위해 총을 가지고[1] 변장을 한 채 하얼빈역으로 간다. 하얼빈역은 이토 히로부미를 환영하기 위해 일장기를 흔드는 군중들과 의장대를 포함한 일본군들로 북적였다.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가 열차에서 내리자 총을 꺼내기 위해 정장 주머니 안으로 손을 집어 넣는다. 그 순간 사열 중인 한 군인이 이 모습을 발견한다.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기 위해 빠르게 앞으로 치고 나가서 총을 겨누는데 그 순간 반대편에서 자신의 행동을 눈치챈 군인이 총을 겨누자 안중근은 당황해 총을 쏘지 못한다. 그 순간 군인은 안중근에게 총을 쐈고 이토 히로부미는 경호원들과 함께 대피했으며 하얼빈역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한다.

안중근은 왼쪽 어깨에 총을 맞아 피를 흘리면서 총을 떨어뜨렸다. 그때 일본군 11명이 총을 들고 안중근에게 다가와 총을 쏜다. 안중근을 총을 맞으며 무릎을 꿇게 되었고 그가 고개를 들자마자 머리에 총을 맞고 관통당하며 사망한다. 군인 11명을 총을 맞고 사망한 채로 누워있는 안중근에게 총을 겨누며 다음과 같은 자막이 나온다.
조선통감 이토 히로부미 암살미수사건.
저격수 안중근 현장에서 사살.

그 이후 세계의 역사는 이렇게 흐른다. 웅장한 음악이 나온다.
  • 1910년 조선합병, 이토 히로부미 초대 총독 위임
  • 1919년 3월 1일 파고다공원 불법집회 무산
  • 1921년 이노우에 2대 조선 총독 위임[2]
  • 1932년 상해 홍구 공원, 윤봉길 현장에서 사살
  • 1936년 미.일 연합군 2차대전 참정
  • 1943년 일본군 만주국 점령
  • 1945년 베를린 원폭투하, 2차 세계대전 종료
  • 1960년 일본 UN 상임이사국 가입
  • 1965년 사쿠라 1호 위성 발사
  • 1988년 나고야 올림픽 개최[3]
  • 2002년 일본 월드컵 개최[4]

프롤로그에서는 역사가 이렇게 흘러갔다며 알려준 이후 한글 알파벳으로 각각 '2009-로스트 메모리즈' '2009-LOST MEMORIES'라고 영화 제목이 뜨며 영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2.2. 이노우에 재단 공격

2009년 경성, 이토 히로부미 암살 미수 사건이 일어난지 100년이 되는 해다. 영화는 밤에 광화문 광장에서 좌측통행을 하고 있는 차량들과 일본어로 된 간판들로 화려한 도시, 일본에서 생산된 브랜드의 자동차들을 보여주며 일본어로 조선총독부로 가능 방향을 알려주는 표지판에 결정적으로 광화문 광장에 있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동상과 뒤 편에 화려하게 빛나는 조선총독부 청사의 모습이 나온다.

이토 회관에서는 이노우에 소장품 최종전시회가 열린다.[5] 이곳을 조선 독립을 원하는 후레이센진이 습격했다. 후레이센진의 습격으로 JBI가 총출동한다. 여기에는 사카모토 마사유키 사이고 쇼지로도 오게 된다.

3. 월령을 조사하다

4. 월령을 빼앗기다

5. 누명을 쓰다

6. 후레이센진 아지트에서

6.1. 진실

6.2. 총격전

6.3. 최후의 결전

7. 결말



[1] 안중근이 사용한 총은 FN M1900이다. [2] 이노우에는 하얼빈역에서 안중근의 행동을 눈치채서 먼저 총을 꺼내 이토 히로부미를 구해낸 바로 그 군인이다. [3] 이때 IOC 위원장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의 나고야라고 부르는 음성이 나온다. 원래는 당연히 서울(쎄울), 코리아라고 외쳤다. 이 세계관에서는 한국이 일본의 일부이기 때문에, 같은 일본의 도시끼리 올림픽 개최를 하기 위해 경쟁을 해서 나고야시가 개최에 성공한 것이다. [4] 이때 이동국이 나오는데 이동국이 입은 유니폼에 일장기가 있다. 이건 이동국과 그의 가족들에게 허락을 받은 것이다. 실제로는 삼족오가 있어야 맞지만 아무래도 더 직접적으로 와닿게 하기 위해 일장기로 정한 듯하다. 축구를 보지 않거나 일본 축구에 관심이 없는 관객들에게는 실제 삼족오가 있는 엠블럼을 넣어봤자 그것이 일본 대표팀의 상징인지 알아차리지 못해 와닿지 않는다. [5] 이토 회관은 현재의 전쟁기념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