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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방상원 | 3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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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독일 북부에 위치한 도시주. 한국의 광역시처럼 한 도시가 그대로 주(State)이기도 한 곳이다. 독일어로는 der Stadtstaat.북해 연안에서 독일 최대의 항구[4]이며 엘베강 하구 110km 상류 양안에 걸쳐 위치해 있다. 베를린에 이어 독일 제2의 도시이다.[5] 유럽 전체로 따지면 6번째로 큰 도시이다.
독일 전체에서 1인당 주민소득 1위[6]를 달릴 정도로 부촌이다. 2014년 기준으로 함부르크에 거주하는 이른바 ' 백만장자'의 숫자만 4만 2천 명에 달하는데, 독일에서 가장 많은 숫자이다. 2014년 기준으로 함부르크에 거주하며 1년 연봉이 백만 유로(약 십여 억 원)를 넘는 사람들의 숫자만 해도 1천 명이 넘는다.[7] 이는 독일에서 가장 많은 숫자이다.
그 밖에 세계 각국에서 온 3천여 곳이 넘는 회사들이 수입과 수출 거래를 위해 함부르크에 상주하고, 한국을 비롯해 각국의 영사관도 95개가 넘게 있다.
함부르크는 일찍부터 개방되고 자유로운 도시라는 명성이 있었다. 역사학자 에크하르트 클레스만이 '외부로부터의 끊임없는 유입이 없었다면 함부르크는 살아남지도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을 정도로, 함부르크는 옛날부터 외국인이 많은 도시였다. 그러한 역사를 비추듯, 1952년에 제정된 함부르크 헌법 전문은 명시적으로 도시의 세계개방성을 규정한다. "자유 한자도시 함부르크는 역사와 지리를 통해 주어진 세계 항구도시로서의 특별한 임무를 독일 인민을 위해 수행해야 한다. 그것은 자유의 정신 속에서 세계의 모든 나라, 모든 인민간의 매개자가 되는 것이다."가 그것이다.[8]
전 세계인이 즐겨찾는 음식 햄버거(Hamburger)의 어원이 된 도시다. 함부르크를 비롯한 독일 북부에 고기를 다진 후 빚어서 구운 요리가 있었는데, 19세기에 독일 이민자들이 미국에 정착하면서 '함부르크의 스테이크'라는 뜻으로 햄버그(Hamburg) 스테이크라고 불렀고, 이후에 햄버그 스테이크와 채소를 빵 사이에 끼운 샌드위치가 개발되어 현재의 햄버거가 되었다.
함부르크의 전통의상은 이렇게 생겼다. 사진의 의상은 정확히는 남동쪽 외곽지역인 피어란데라는 곳에서 입는 형태이다. 예전에는 Rama라는 마가린 브랜드에도 저 함부르크 전통복장을 입은 여성이 그려져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사라졌다.
2. 역사
함부르크 일대는 북해와 가까이 있으면서 엘베 강 하구를 끼고 있다는 천혜의 지리적 요건을 갖춘 지역이기 때문에, 옛날부터 사람들이 많이 살았다.[9] 기원전 4세기부터 이곳에 사람이 살았다는 기록이 있고, 그 유물도 이미 발견된 바 있다.[10] 4세기부터 6세기까지는 작센족이 이곳에 몰려와 정주하며 부족의 근거지를 만들었다. 이후 작센족은 독일에서 한때 가장 강성한 부족이 되었지만, 8세기 프랑크 왕국의 카롤루스 대제가 가톨릭 선교를 구실로 이곳을 침공하였다. 프랑크족의 침공을 받은 작센족은 자신들의 종교를 수호하기 위해 무려 40년에 걸친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했고 이 과정에서 다수의 작센족이 카롤루스 대제에 의해 집단 학살당했다. 작센족은 그들의 종교를 수호하기 위해 근 반세기 가량 목숨을 걸고 싸웠으나, 중과부적으로 종족의 몰살 위기에 처했고, 결국 살아남은 작센족들의 다수는 결국 카롤루스 대제에게 굴복하여 가톨릭으로 개종했다.작센을 거의 평정한 카롤루스 대제는 810년 이곳에 가톨릭 교회를 건립했다. 하지만 항복을 거부하고 외지에 숨은 작센족들이 이곳을 수복하기 위해 다시 공격해 올 것을 대비해 알스터강이 엘베강으로 합류하는 지점에 함마부르그라는 성을 쌓았다. 이것이 오늘날 함부르크라는 도시의 이름의 유래가 되었다. 이름이 함마부르그가 된 이유는 주변에 있던 큰 숲의 이름이 Hamm(함)이었기 때문이다.[11] 831년에는 루드비히 신성왕이 이곳에 교구를 세웠고, 834년에 대교구로 승격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함부르크 교회는 이미 베르됭 조약 때부터 바이킹들의 출몰로 파괴되었고, 이후에는 슬라브족들이 함부르크를 침공하였기 때문에, 대주교좌는 함부르크에서 브레멘으로 옮길 수밖에 없었다.
그 후 12세기에 샤우엔부르크-홀슈타인 공작 아돌프 3세가 이곳 함부르크에 다시 시장을 열었고,[12] 1189년에 프리드리히 1세 황제가 함부르크에 항구로서의 특권 및 무역의 특권을 부여하여 이곳에 대단히 융성한 중세무역도시가 만들어졌다.[13] 1241년에 뤼베크와 방위조약을 체결하여 독일 한자동맹(Hanseatic League)의 기초를 굳히고 14세기에 함부르크는 한자동맹의 일원이 되어 북해와 동해 사이의 중개무역 중심지 역할을 했고, 1510년부터는 도시국가로서의 독립된 주권을 인정받았다. 1558년에는 세계에서 두 번째, 독일에서 최초의 증권거래소가 이곳 함부르크에 만들어졌고,[14] 1678년에는 지금의 갠제마르크트 근처에 독일 최초의 오페라극장이 건설되어 헨델이나 텔레만 등의 음악가들이 이곳에서 활동하기도 하였다.[15] 종교개혁 당시에는 아무런 유혈사태 없이 개신교의 도시국가가 되었고,[16] 1767년에는 함부르크 국립극장이 만들어져, 북유럽의 예술 중심지로 각광받기도 하였다.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에서는 '약재상으로 살아가는 도시'라며 까인다.
함부르크 국립극장의 모습
한자동맹의 몰락 및 산업화 이후에도 함부르크는 계속해서 북독일의 경제중심지로 성장을 거듭하였는데 이때 이미 함부르크는 독일 전체에서 베를린 다음의 대도시가 되었다. 또한 아메리카 대륙과도 무역을 하면서 덴마크와 독일 간의 국경무역으로 많은 돈을 벌어들이기도 하였으나, 19세기 초 나폴레옹 전쟁 당시 프랑스 군의 점령으로 인해 많은 피해를 입었다. 이후 1813~1814년에 함부르크는 러시아군에 의해 점령되기도 하였지만 1815년 자유국가가 되었다. 하지만 1842년의 대화재 때에는 도시 건물의 거의 대부분이 불에 타 없어지는 피해를 겪었다. 그러나 함부르크의 지리적 위치가 워낙 좋았기 때문에, 대화재 이후에도 매우 빠른 속도로 옛날의 입지를 회복하였으며, 전화위복으로 함부르크는 오히려 도시 전체의 리모델링을 새롭게 할 수 있었다.[17] 이 대화재와 2차 대전으로 인한 파괴 때문에 역사적인 건축물들은 현재 거의 남아있지 않다.
이후 독일 제국에 편입되어 함부르크 제국도시가 되었으며 일정한 자치를 누렸다.
함부르크 구 항구의 모습.
1920년대의 함부르크
1940년경의 함부르크. 1분 12초에 빌헬름 구스틀로프호의 모습이 보인다.
1943년 연합군의 폭격으로 파괴된 함부르크
1945년 패망 직후의 함부르크
1959년의 함부르크
그러나 독일이 두 차례의 세계 대전으로 패망하고 난 뒤, 동독이 공산화되고 동유럽과의 무역이 거의 없어지면서, 함부르크는 옛날만큼의 명성을 보유하지는 못하게 되었다. 물론 서독이 '라인강의 기적'을 일으키면서 함부르크의 경제 역시 급속히 성장하긴 하였으나, 최전성기인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성세에 비하면 아직은 부족함이 있음이 사실이다.
하지만 20세기 말 이후 철의 장막이 걷히고, 동서독이 통일되고, 유럽이 통합되어 국경이 사라지면서, 함부르크는 서유럽과 동유럽, 북유럽을 연결하던 지리적 요충으로서의 옛 명성을 급격하게 회복해가고 있다. 아직까지도 총 물동량 면에서는 네덜란드의 로테르담 등에 밀리지만[18] 최소한 구 동독 지역과 체코, 슬로바키아와 같은 중부유럽으로 향하는 물건들을 내리고 싣는 데에는 함부르크만한 인프라와 지리적 이점을 가진 곳도 없기 때문에 동유럽 지역의 성장과 맞물려 꾸준히 발전하고 있다.[19] 함부르크에는 베르사유 조약으로 인해 3만 제곱미터에 달하는 체코의 조차지가 있다.
현재는 18세기, 19세기에 대규모 창고단지들이 지어졌던, 구항구 지역(현 하펜시티)을 재개발 하면서 도시 외관이 미래 도시로 거듭나고 있는 중이다.[20] 창고 건물들은 주거지역과 갤러리, 박물관 등으로 개발되어 지금도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으며, 빈 항구 부지와 개간지 등에는 친환경 주거건물과 호텔, 사무실, 대학 등이 건설되었다. 만년 '내년 완공' 조롱을 들은 끝에 완공되어 랜드마크가 된 엘프필하모니도 이 지역에 지어졌다. 물론 이곳도 구도심의 일부이기 때문에 2차 세계 대전으로 탑만 남기고 사라진 Nicolai 성당보다 높은 고층건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3. 지리/교통
엘베 강 하류에 위치해 있으며 서-남쪽으로는 니더작센주, 북쪽으로는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에 접한다. 동쪽의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주와는 경계를 직접 접하지는 않지만 광역권의 일부가 여기까지 이어진다.독일 제2의 대도시이기는 한데 북쪽에 치우쳐 있다 보니 육로를 통해 독일 서부나 남부로 가는 경우 제법 멀다. 함부르크 중앙역[21]에서 ICE로 소요시간은 브레멘이 1시간, 하노버가 1시간 10분, 베를린이 1시간 50분, 프랑크푸르트가 3시간 40분, 쾰른이 4시간, 뮌헨이 5시간 40분 정도이다. 국제 노선으로는 덴마크 코펜하겐, 체코 프라하, 헝가리 부다페스트로 가는 EC가 다닌다. 함부르크 중앙역 근처 버스터미널(ZOB)에는 플릭스부스 위주로 노선이 다니는데, 하노버가 2시간 10분, 베를린은 3시간 30분, 프랑크푸르트는 9시간, 뮌헨은 중간 경유에 따라 11시간 30분은 각오해야 한다.
함부르크 국제공항[22](HAM)은 중앙역에서 S1 노선으로 30분 정도에 연결된다. S반 1호선은 서울 5호선과 비슷한 분기 형태로 되어 있다. 공항의 접근성 향상을 위해 공항역을 신설하면서 올스도르프역에서 공항 방면과 포펜뷔텔 방면으로 갈라지는 형태가 된 것. 하지만 서울 5호선과 달리 3량 2편성 중련 운행 방식으로, 양 방향 모두 배차간격이 10분으로 동일하여, 공항에서 함부르크 시내로의 접근성이 양호한 편이다.
영국 런던행 저가 항공편은 일찍 싸게 구하면 편도 10유로 대에도 구할 수 있다. 거의 모두 유럽내 단거리 노선이지만 에미레이트 항공의 두바이 노선이 있다.
지하철과 버스는 HVV에서 일괄적으로 관리하며, S반과 RE는 도이체반에서 운행하며, 독일 제2도시답게 잘 되어있다.[23] 버스 관련 자세한 내용은 문서를 참조하면 된다.
또한 절대다수가 비보호 좌회전인 유럽에서 희귀하게 좌회전 전용신호가 꽤 발달되어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그만큼 유동량, 물동량이 엄청나다. 실제로 함부르크에서는 더 대도시인 베를린보다도 주요도로에서 교통체증으로 차량통행이 꼬이는 현상이 자주 목격된다.[24]
4. 산업
함부르크 경제의 중점은 항구업과 무역업에 있다. 세계적인 해운 회사들이 함부르크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매우 큰 매출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Hapag-Lloyd와 Hamburg Süd의 본사가 이곳에 위치해 있다. 여행사로서 유럽 전체에서 상위 랭킹을 휩쓸다시피 한다. 제조업으로는 북독일 최대 산업체인 에어버스[25]와 금속, 조선 등의 대기업이 있다.함부르크 경제의 새로운 중점은 요즘 정보산업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 함부르크는 옛날부터 독일 최고의 신문 잡지들을 거느린 독일 언론의 중심지였고, 오늘날에도 3,300개의 정보산업체를 보유한, 독일 정보산업의 명실상부한 메카이다. 슈피겔, 슈테른, 짜이트 등 독일에서 유명한 언론사의 다수가 함부르크에 있으며,[26] 대부분의 독일인들은 매일 함부르크에서 발행된 신문과 주간지를 읽으며 정치, 경제, 사회문제를 조망한다. 물론 한국의 대부분의 전자정보업체들도 그 지사를 함부르크에 두고있다.
현재 함부르크의 1인당 GRP는 79,000유로[27]로, 독일에서 가장 부유한 지방이다. 함부르크에 본사를 두고 있는 유명 기업으로는 하파그로이드,[28],함부르크 수드, 바이어스도르프,[29] 몽블랑,[30] 바우어그룹,[31] 오토(OTTO)사,[32] 치보사,[33] 피터돌레사,[34] 코너지사,[35] 한제-메르쿠어[36] 등이 있다.
5. 정치
함부르크 주의회의 원내 구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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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립여당 | ||||||
[[독일 사회민주당|
사회민주당 54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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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맹 90/녹색당|
동맹 90/녹색당 33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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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 | |||||||
[[독일 기독교민주연합|
기독교민주연합 15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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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당(독일)|
좌파당 13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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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을 위한 대안|
독일을 위한 대안 7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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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민주당(독일)|
자유민주당 1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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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적 123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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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르크는 도시주이면서 항구인 특성 때문에 노동자 계층이 많고 전통적으로 가족단위의 사회민주당 지지층이 많아, 주의회에서 사회민주당이 단독으로 과반수를 장악할 수 있는 주 중 한 곳이다.[37] 단독으로 과반수를 차지하지 않더라도 원내 제1당으로서 연립여당의 시장직은 사회민주당이 차지한다. 전후 19차례의 주(州) 내각 중 사회민주당 단독 내각이 10차례, 연립내각이 5차례이다. 1987년 이전에 사회민주당이 과반수가 되지 못 한 경우가 단 한 차례, 여당이 되지 못한 경우가 단 한 차례일 정도. 다만 함부르크에서 녹색당이 확실하게 자리잡은 1987년 이후에는 녹색당과 연립내각을 구성하는 경우가 많고, 2001년부터 2010년까지는 기독교민주연합이 여당이었다. 물론 그 마저도 올레 폰 보이스트 원맨 인기파워로 기독교민주연합이 여당이 된 것이고, 자세한 내용은 후술.
제2차세계대전 이후 함부르크 역대 지방선거 결과는 다음과 같다.
- 1946년 110석. 사회민주당이 83석으로 단독과반수
- 1949년 120석. 사회민주당이 65석으로 단독과반수
- 1953년 120석. 기독교민주연합과 자유민주당이 연합한 '함부르크 연대'가 62석으로 여당, 사회민주당은 58석
- 1957년 120석. 사회민주당이 69석으로 단독 과반수
- 1961년 120석. 사회민주당이 72석으로 단독 과반수
- 1966년 120석. 사회민주당이 74석으로 단독 과반수
- 1970년 120석. 사회민주당이 70석으로 단독 과반수
- 1974년 120석. 사회민주당이 56석으로 자유민주당과 연립내각 구성
- 1978년 120석. 사회민주당이 69석으로 단독 과반수
- 1982년 120석. 사회민주당이 64석으로 단독 과반수
- 1987년 120석. 사회민주당이 55석으로 녹색당과 연립내각 구성
- 1991년 121석. 사회민주당이 61석으로 단독 과반수
- 1993년 121석. 사회민주당이 58석으로 녹색당과 연립내각 구성
- 1997년 121석. 사회민주당이 54석으로 녹색당과 연립내각 구성
- 2001년 121석. 기독교민주연합이 33석-Schill(기독교민주연합 탈당파)이 25석으로 자유민주당과 연립내각 구성, 사회민주당은 46석으로 원내 제1당
- 2004년 121석. 기독교민주연합이 63석으로 단독 과반수, 사회민주당은 41석(제2차세계대전 이후 역대 최소)
- 2008년 121석. 기독교민주연합이 56석으로 녹색당과 연립내각 구성, 사회민주당은 45석
- 2011년 121석. 사회민주당이 62석으로 단독 과반수
- 2015년 121석. 사회민주당이 58석으로 녹색당과 연대
- 2020년 121석. 사회민주당이 54석이지만, 녹색당이 무려 18석을 늘렸다.
함부르크는 독일 성소수자 정치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사례가 있는 곳인데, 2001년부터 기독민주연합 소속으로 함부르크 시장을 역임한 올레 폰 보이스트(Ole von Beust)의 행적 때문이다.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숨기고 있던 그는 2004년 재선에 도전할 때 정적인 쉴로부터 동성애자임을 폭로하겠다는 협박을 받았고,[38] 부모님과 상의한 끝에 협박에 굴복하지 않고 공개 기자회견에서 대중에게 커밍아웃하였다. 처음엔 보수주의 정치인으로서 보수적 유권자들에게서 지지를 잃어 재선에서 실패할 꺼란 우려 때문에 동성애자임을 숨겨왔던 거지만 오히려 커밍아웃 이후 솔직하고 용기있다라는 대중의 반응과 함께 지지율이 크게 오르며 함부르크 역사상 기민련 최초 단독 과반의석 승리로 재선에 성공하였다.[39] 반면 정적인 쉴이 다른 시의원과 기민련에서 집단 탈당해 만든 25석의 법과 정의 수호 정당은 호모포비아 정당이란 타이틀을 쓰며 선거에서 0석의 수모를 겪으며 완전히 몰락했다. 2001년 베를린 선거에서 클라우스 보베라이트가 명문으로 동성애자임을 커밍아웃하고 당당히 시장에 당선된 일과 함께 이 일로 동성애자임에도 표를 의식해 커밍아웃을 꺼리던 정계에 큰 바람을 일으키며 현재 독일 정치계에서 공개적으로 커밍아웃한 동성애자/양성애자/트렌스젠더 정치인들도 당당히 정치 활동을 할 수 있게 앞길을 다져주게 되었다. 자민당 당수로서 당 역대 총선 대승을 이끌고 독일 연방 부총리를 역임했던 기도 베스터벨레도 한 예.
함부르크는 독일 내에서도 부자 인구가 많은 곳이고, 물가도 매우 높은 곳이어서 한국 사정에 비교되어 좌파 지지율이 낮을 것이라 오해하기 쉬우나, 유럽이나 미국에서의 좌우지지는 소득보다는 소득경로가 더 중요하며 도시에 사느냐, 지방에 사느냐에 따라 더 크게 좌지우지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연방총선에서도 함부르크내 지역구는 사민당이 다수의 지역구에서 승리할 정도로 사민당의 텃밭이다. 그러나 2021년 총선에서는 알토나 구와 아임스뷔텔 구 2개의 지역구에서 녹색당이 승리하기도 하여 변화의 바람이 불기도 했다.
6. 행정 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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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Bezirk) | |||
함부르크미테 Hamburg-Mitte |
함부르크노르트 Hamburg-Nord |
알토나 Altona |
아임스뷔텔 Eimsbüttel |
|
반츠베크 Wandsbek |
베르게도르프 Bergedorf |
하르부르크 Harbur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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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행정구역 |
7. 교육
함부르크에는 대학교 9곳에서 학생 6만 8천 명이 공부하고 있다. 9개의 대학교는 종합대학교(Universität)인 ( 함부르크 대학교), 함부르크 직업전문대학, 함부르크-하부르크 공과대학, 경제정치전문대, 연방방위군대학교, 음악예술전문대(세계적인 거장들이 교수진으로 있는 함부르크 음대), 미술전문대, 개신교 사회교육전문대, 공공행정전문대이다. 특별한 연구기관으로서는 막스플랑크 비교사법연구소, 함부르크 세계경제문고, 하인리히 페테 베른하르트 녹흐트 바이러스 면역학 연구소를 비롯한 250개의 연구기구를 꼽을 수 있다.함부르크 대학교 캠퍼스 모습.
함부르크에서 대부분 대학들은 시 한가운데에 있다. 교수 900명에 학생 4만이 있는 종합대학교 함부르크 대학교는 함부르크 도심에 해당하는 담토어역에서 도보로 갈 수 있는 시내의 알짜배기 부지에 위치했을뿐더러, 점차 부지의 면적을 확대하고 있다. 바렌펠트와 플롯벡 그리고 슈텔링엔에 있는 새로운 캠퍼스는 전산학을 비롯한 새로운 자연과학 분야에도 최적의 조건을 제공한다.
8. 환경
한국의 서울과 비슷한 면적을 가졌으면서도 인구는 서울의 5분의 1밖에 안 된다. 시 전체 면적의 14%가 녹색 숲으로 뒤덮여있는 것 뿐만 아니라 시청건물을 보아도 알 수 있듯 다른 도시에 비해 녹색 지붕을 가진 건물들이 많다. 또한 산이 없고 대부분 호수와 평야로 뒤덮여 있는 북독일의 특성상 호수가 많다는 것도 함부르크의 특징이다. 호수와 강, 그리고 수로가 시면적의 8%에 달하고 있다. 그리고 도시 전 면적의 28%가 경관보호 및 자연보호 지역이며, 120개가 넘는 공원에 가로수만 20만 그루가 넘어 독일 최고의 녹색 도시로 평가받는다. 참고로 이 도시에서 가장 높은 언덕은 하셀브라크 언덕으로 해발고도가 겨우 116 m에 불과하다.9. 기후
해안가 평야지대 특성상 서안 해양성 기후에 속한다. 평균기온은 오히려 남부 산악지대보다 더 높다. 1월 평균기온 1℃[40], 7월 평균기온 17℃, 연 평균 기온은 9℃로 태백시와 비슷하다. 1년 총강수량은 760mm이지만 강수일수는 겨울에 집중되며, 냉습(Nasskalt)하므로 체감적으로 서울보다 따뜻하다고 보기 어렵다.연 평균 일조량은 1560.7시간이며 7~8월에 가장 햇빛이 많다. 독일 내에서도 'Schmuddelwetter'(슈무델베터)라 해서 겨울 날씨가 매우 나쁘기로 악명이 높다. 멕시코 만류의 습기를 머금은 서풍이 아주 강하게 부는데다 이를 막아줄 산이 없기 때문이다.
10. 관광
처음 함부르크에 도착하면 다른 유럽의 대도시들과는 달리 옛 건물들보다는 현대 건물들의 비중이 높아 볼 거리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함부르크에는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41] 단, 도시의 역사가 길다 보니 관광지들이 여기저기 띄엄띄엄 흩어져 관광 편의성은 떨어진다.수많은 선박들의 불빛으로 찬란한 엘베 강의 야경과 이를 굽어보는 미하엘리스 교회(일명 미헬)의 132m 높이는 함부르크 경치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알스터 호수도 볼거리로서 빼놓을 수 없다. 알스터 호수는 지금으로부터 810년 전인 1190년에 인공적으로 함부르크 중앙에 만들어진 호수로서, 원래의 목적은 함부르크에서 커다란 물레방앗간을 돌리기 위한 저수지 용도였다. 크기는 274만m² 정도이고, 1620년에 함부르크시가 요새로 재건되면서 롬바르스브뤼케, 케네디브뤼케 두 다리에 의해 비넨(內)알스터와 아우센(外)알스터로 나뉘어졌다.
레퍼반과 함께 함부르크에서 가장 유명한 거리인 융페른슈티크(Jungfernstieg) 가로 양쪽에 보리수가 쭉 늘어서있고, 아름다운 건물들이 즐비하며, 반대편에는 백조들이 헤엄치고 다니는 조그마한 호수가 있다. 이 융페른슈티크의 아름다움은 일찍이 하인리히 하이네도 감탄하여 노래한 적이 있다. 그리고 융페른슈티크역 출구에서 나오면 거대한 애플스토어가 있다.
애플스토어의 사진.
융페른슈티크의 사진.
함부르크 시청의 전면 모습.
함부르크 시청 건물의 아름다움도 매우 유명하다. 시청 전면 가까이로 가보면 "선조가 쟁취한 자유를 후세들이 지켜내기를 바라며"라는 라틴어 글귀와 함모니아 벽화로부터 시작해서, 독일 황제 20명의 입상들과 여러가지 조각들이 아름답다. 내부로 들어가보면 으리으리한 회랑과 고급스런 장식, 미술품 등이 한마디로 여긴 궁전이지 절대 시청이 아님을 과시한다.[42] 겉보기보다 크기도 꽤 커서, 지상 112m, 지하 70m에 폭 111m, 방 647개를 자랑하는, 영국의 버킹엄궁(방 641개)보다도 더 큰 건물이며, 건물 안마당에 들어가보면 크고 아름다운 나체의 남녀동상들이 주위를 감싸고 있는 휘기아이아 분수대도 볼 수 있다.
함부르크 시청 내부 모습.
운하를 건너 있는 하펜시티의 위용도 대단하다. 근대에 무역기지로 쓰였던 옛 벽돌 건물들을 그대로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다. 똑같이 생긴 벽돌 건물들이 운하를 사이에 두고 쭉 펼쳐져 있는 모습은 상당한 장관. 최근에는 이 곳에 오페라 하우스 등의 다양한 개성을 지닌 현대 건축물들이 들어서고 있어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 외에도 엘베 강을 건너는 지하터널, 브람스 박물관 등의 볼거리가 많다. 이밖에도 미니어처 분더란드는 필히 가 보자. 세계에서 가장 큰 철도 모형을 포함해 실제로 모형 항공기가 이착륙하는 공항, 도시의 모형을 보유하고 있다. ( 소개 영상)
함부르크 근교에는 프리드리히스루(Friedrichsruh)라는 조그마한 마을이 있는데, 이곳에 오토 폰 비스마르크 박물관이 있다.(정확히말하면, 비스마르크가 말년에 보낸곳) 가려면 S반 타고 가야한다.
함부르크는 독일 북서부 지역의 교통 요충지인 만큼, 이 곳을 기점으로 근처의 도시들을 방문하기도 용이하다. 브레멘, 올덴부르크, 뤼네부르크, 슈베린, 뤼베크 등을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있다.
10.1. 전시장
- 함부르크 메세: 2017 G20 함부르크 정상회의 개최지.
11.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대항해시대 2에서는 안트베르펜(게임내 표기로는 엔트워프)과 함께 공업투자 몰빵하면 쉽이 나오는 도시로 유명하며, 용기 80 이상일 때 이곳에 있는 월프 박사가 포술을 가르쳐준다.대항해시대 온라인에서는 북해에서 주조 스킬을 연마한다면 반드시 들러야 할 도시로, 플리머스와 함께 북해 주조 투탑. 투자를 안 해도 주조스킬 랭작에 필요한 석탄, 납광석, 동광석, 주석, 철광석이 모두 나오는 것이다. 플리머스가 잉글랜드 영지인 관계로 타국 사람들이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투자도 많이 하는 곳.
게다가 보석과 공예품 내성항이기 때문에 과거 보석무역이 흥했을 때는 함부르크가 보석 드랍 장소 중 하나였다.[43] 보석무역이 쇠락하고, 2nd Age 패치 기준으로 남만무역이 쇠락함에 따라 공예품도 메리트가 떨어져서 내성항으로서의 가치는 다소 낮아졌지만 그래도 주조 스킬 랭작과 함께 북해에서 중요한 도시.
지중해에 비해 투자경쟁이 널럴한 북해에서 오슬로와 함께 잉글랜드와 네덜란드의 투자전이 가장 활발하게 벌어지는 항구이다.
게임 네이비필드, 월드 오브 워쉽에선 독일의 항구로 나온다.
존 르카레의 원티드 맨은 이 도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 3 캠페인 'Goal Post' 미션에서 등장한다. 미-러 평화회담이 벌어지는 장소였지만 국수주의파 러시아군의 기습으로 미군과 러시아군의 공방전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 맵 배경에 Kohlbrand 다리를 모티브로 한듯한 사장교가 등장하지만 실제 함부르크에서 Kohlbrand 다리가 있는 곳은 산업 부두로, 미션에서 등장하는 함부르크 시청이 위치한 지역과는 완전히 다른 곳이다. 게임 내 허용이라고 봐야할듯.
신세기 에반게리온에서 네르프 독일 지부가 위치한 곳이며, 카지 료지가 거기에서 유학하고 나서 독일 지부에서 근무하였다.
파티흐 아킨의 영화 소울 키친의 배경. 시나리오를 함께 집필한 지노스 역의 아담 보스도코스와 파티흐 아킨은 고향 친구인데 이들의 고향과 활동 배경도 함부르크 알토나라고 한다. 때문에 아킨 영화 중 알토나 배경인 영화가 좀 있다.
12. 기타
함부르크는 바덴 해 앞바다의 작은 섬들인 노이베르크 제도를 소유하고 있다. 함부르크의 젖줄인 엘베 강을 지키기 위해 1286년 당시 작센[44] 공작에게 허가를 맡고 엘베 강 어귀에 있는 이곳을 요새화한 것이 기원. 오늘날에는 새 보호 구역이 되어 인간이 접근할 수 없다.함부르크는 그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햄버그 스테이크의 원산지이며, 이것이 미국에 전파되어 미국인들이 빵 사이에 햄버그를 끼워서 먹은 것으로부터 햄버거가 유래되었다.[45] 여기 사는 '함부르크인'이라는 표현도 함부르거(Hamburger)다.[46]
항구도시라서 그런지 이곳 사람들은 확실히 생선을 즐겨 먹는다. 거의 내륙국이나 마찬가지인 독일인들은 생선보다 육류를 더 즐겨먹는 편인데, 함부르크 사람들의 식성은 좀 특이한 편이라고 할 수 있다. 매주 일요일 새벽마다 항구에서 대규모로 열리는 어시장(Fischmarkt)도 있다.
비틀즈로도 유명한 도시이다. 존 레논은 "나는 리버풀에서 태어났지만 함부르크에서 자랐다" 라고 했을 정도로 함부르크 생활은 초창기 비틀즈 멤버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1950년대 후반부터 1962년까지 함부르크에서 머물면서 여러 우여곡절을 겪다가, 방화 혐의로 존과 피트 베스트가 독일에서 추방되면서 함부르크 시절이 끝났다. 당시 비틀즈는 16시간을 논스탑으로 공연해야했고 약물에 관심 없었던 피트 베스트를 빼면 모든 멤버가 각성제에 손을 대야했을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여러모로 함부르크가 기억에 남았던지 비틀즈 멤버들은 출세한 이후 She Loves You와 I Want To Hold Your Hand를 발매할때 독일어 버전도 같이 불러서 발매했다.[47] 조지 해리슨의 독일어 실력 폴 매카트니의 독일어 실력 그 외에 다른 유명한 뮤지션은 디지탈리즘과 Fire로 유명한 스쿠터가 이 곳 출신이다.
함부르크에는 체코의 조차지가 있다. 몰다우하펜(Moldauhafen)이라고 불리는 곳으로, 독일 제국의 제1차 세계 대전 패전 이후 맺어진 베르사유 조약에서 내륙국인 체코슬로바키아의 무역을 위해 이곳을 체코슬로바키아의 조차지로 지정했기 때문이다. 체코슬로바키아는 이런 식으로 당시 독일의 영토였던 슈체친[48]도 조차했는데 이 지역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폴란드 인민 공화국의 영토가 되면서 조차를 포기했고, 그래서 몰다우하펜만 조차지로 남아 있다. 1929년부터 체코슬로바키아가 99년 조차를 시작했고, 1939년 히틀러의 체코 병탄으로 몰다우하펜도 나치 독일한테 돌아갔다.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에는 체코슬로바키아의 대서방 창구로도 사용되었다. 연합군 점령하 독일 시기에는 함부르크가 영국의 점령지였기 때문에 몰다우하펜에 체코슬로바키아 측 인사가 출입하려고 해도 영국의 허가를 받아야 했다. 1952년에는 체코슬로바키아에서 항만 직원 숙소용 선박을 보냈다. # 냉전기에는 몰다우하펜을 통해서 공산주의 체코슬로바키아를 탈출하려는 시도도 있었고 이에 따라서 정보기관의 감시도 증가했지만, 서독과의 경제적 교류용 창구로 활용하기도 했다. 1989년 벨벳 혁명 이후에는 체코슬로바키아에서 굳이 통제된 내륙 수운으로 함부르크까지 화물을 보낼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에 몰다우하펜의 활용도 줄어들었고, 체코슬로바키아 국영 선박회사도 2002년에 파산했다. 1993년 1월 1일부로 체코슬로바키아가 해체되면서 조차 권리는 체코가 승계했다. 2028년에 조차가 종료될 예정이다. 홍콩 신계처럼 넓은 땅이 아니라 항구 중 1개의 도크이다.[49] 그래서 2021년 지금도 함부르크 항구 전체를 독일이 관리하면서 체코 선적의 선박이 드나들 때 몰다우하펜 도크로 보내서 편의를 제공하는 정도로만 활용하고 있다. 체코가 바다로 나갈 수 있는 출구이다.
공창제를 인정하고 있는 독일 내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거대한 환락가를 가지고있는 도시이다. 도심 서쪽 장크트 파울리 지역의 레퍼반(Reeperbahn)이라고 부르는 번화가가 유명한데, 이 레퍼반 안에 헤르베르트슈트라세(Herbertstraße)라는 30m도 안 되는 곳에 집창촌이 가득하다. 이 환락가는 엄청나게 유명해서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과 함께 유럽의 양대 환락가로 꼽힌다.[50] 물론 이 매춘지역은 단지 일부분일 뿐이고, 레퍼반에 사람들이 모여드는 가장 큰 이유는 수많은 클럽과 술집들이 모여 있기 때문이다. 꼬꼬마 시절의 비틀즈가 공연을 했던 클럽들도 바로 이 지역에 있던 클럽들이다. 지금은 단체 투어도 매일 열리고 있는 어엿한 관광지이다.
독일 최고의 부촌(富村)도 함부르크에 위치해 있다. 로터바움, 블랑케네제, 아우쎈알스터 지역에는 커다란 단독주택들과 빌라들이 밀집해 있는데, 여기에 사는 사람들은 수백년 된 귀족, 재벌 가문의 직계 후손 아니면 은퇴한 대기업 CEO들, 연예인들, 함부르크에 있는 커다란 무역회사의 사장들도 많다. 이 곳에 있는 부동산의 시가는 우리나라 성북동, 청담동, 압구정동, 방배동의 부동산 시가에 맞먹는다.
함부르크, 브레멘, 슐레스비히-홀슈타인, 니더작센 주[51]를 관할하는 총영사관이 시내에 있다.
함부르크 SV와 FC 장크트파울리의 연고지이다. 함부르크 SV은 공격수로 뛰었던 손흥민 선수의 활약으로 한국인들에게 많이 친숙해졌다. 함부르크 SV에는 선수와 FC 장크트파울리의 박이영 선수가 2군 선수로 소속되어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건축가이자 군수장관이었던 알베르트 슈페어가 체포된 곳이 바로 함부르크이다. 또한 대전기 아서 해리스에 의해 쾰른, 드레스덴과 함께 3대 주요 폭격 목표가 되었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군 최후의 저항 도시였다. 대부분의 인원이 사망한 제1공수사단만이 이 지역을 지키고 있었으며, 영국군이 이곳으로 진격했다. 독일군은 열악한 장비로 분투했으나 소련군의 베를린 포위로 지원마저 끊어졌고 5월 1일 베를린이 함락되면서 전선이 급격히 붕괴되었다. 일부는 항복했으며 생존자의 대부분은 킬 항구로 퇴각했다.
독일 내에서 18-39세 남성의 평균 신장이 185.6cm, 18-39세 여성의 평균신장이 172.4cm로 가장 큰 지역이다. 물론 대한민국의 신검처럼 전수조사는 아니다. 참고로 다른 유럽 국가들처럼 독일도 지역에 따라 평균키 차이가 큰 편이다. 함부르크 남성 평균 키는 185.6cm인 반면, 작센안할트 남성 평균 키는 175.7cm, 튀링겐 남성 평균 키는 175.4cm로 한국보다 약간 큰 수준에 불과하다.
2022년 4월 24일 키이우와 '연대와 미래를 위한 협정'을 체결하여 전략적 파트너쉽 관계가 되었다. 이 협정은 함부르크 상공회의소의 지원과 #WeAreAllUkrainians 이니셔티브 및 Hanseatic Help Association의 협력으로 시행될 계획이다. 함부르크가 키이우의 재건을 지원하고 함부르크 시민들의 인도적 지원을 모을 것이라고 하며, 향후 두 도시간에 교육, 문화, 과학, 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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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문장학적 요소가 생략된 방패문장도 사용된다. [2] 출처 [3] Peter Tschentscher [4] 예전에는 유럽 최대의 항구였으나 지금은 네덜란드의 로테르담이나 벨기에의 안트베르펜에 꽤 밀린 상태. [5] 2024년 기준 베를린 387만 명, 함부르크 191만 명, 뮌헨 158만 명 순이다. 많은 사람들이 바이에른 주도 뮌헨을 독일 제2의 도시로 알고있으나 함부르크가 더 큰 도시이다. 독일에서 일반적으로 대도시로 꼽히는 프랑크푸르트(77만)와 슈투트가르트(63만), 뒤스부르크(50만) 인구를 다 합쳐야 겨우 함부르크 한 도시 인구에 미칠 수 있다는 점으로 미루어 함부르크가 얼마나 큰 도시인가를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광역행정 권역(Metropolregion Hamburg)의 인구는 542만 명에 달한다. 함부르크와 부산은 자매 결연을 맺고 있으며, 부산을 비롯해 자매결연을 맺은 도시들을 살펴보면 마르세유, 상트페테르부르크, 상하이, 오사카 등 전부 제2의 도시이자 항구도시이다. [6] 무려 8만 유로에 육박한다. 이웃하는 주들보다 2만 유로가 더 많은 1인당 주민소득을 자랑한다. 다만 주(State)가 아닌 도시 단위로 평가하면 1인당 10만 달러를 넘나드는 볼프스부르크나 잉골슈타트, 에를랑겐 등에 뒤쳐진다. [7] 함부르크에서도 가장 부자 동네인 니엔슈테텐 지구의 경우 주민 1인당 평균 연봉이 2억 원에 육박한다. 가구당 평균 연봉이 아니라 1인당 평균 연봉이 그렇다. [8] 독일 민족, 모든 민족이라고도 번역하나 헌법 전문을 보면 Volk라고 명시되어 있는데 이는 민족이 아니라 인민에 해당하는 단어이다. 참고로 독일은 나치즘 이후로 '민족'이란 단어 사용을 매우 기피하는 국가이다. [9] 다만 예전 중세시대에는 뤼베크보다 인구 수가 더 적었던 시대가 있었다. [10] 클라우디오 프톨로모이스라는 고고학자가 그 유물을 발견했다. 지금의 페트리교회 바로 남쪽이 그곳이다. [11] 함부르크를 어원으로 한 음식 햄버거의 햄은 고기가 아니라 숲이라는 것. 함은 지금은 함부르크 미테 구의 동 단위 행정구역으로 편입되어 있다. 또한 독일의 도시 가운데 '~부르크'란 단어가 뒤에 붙은 도시들은 모두 옛날에 성곽도시들이었다. [12] 더 정확히 말하자면 지금의 알스터 호수 서쪽편에 시장을 열었다. 참고로 슈테른샨체를 중심으로 한 알스터 호수 서편은 현재에도 함부르크에서 가장 힙한 지역구이다. [13] 그 당시부터 이곳 함부르크에는 이미 양조장 600곳이 있었다고 하니, 얼마나 도시가 컸는지 짐작할 만하다. [14] 세계 최초의 증권거래소는 벨기에의 안트워프에 세워졌다고 함. [15] 작곡가 하세와 멘델스존, 브람스의 고향이기도 하다. [16] 그 당시 30년 전쟁에서 아무런 피해를 보지 않은 덕에 함부르크는 뤼벡, 브레멘 등의 여러 경쟁도시들을 앞질러 한자동맹의 여러 도시들 가운데 가장 번성한 도시가 되었다고 한다. [17] 이와 비슷한 도시가 시카고로, 당시에도 오대호 지역의 수운 중심지 역할을 했지만, 1871년 대화재로 시내 대부분의 건물이 소실되었다. 이로 인하여 도심을 리모델링할 수 있게 되었고, 건축공학의 수준이 높아진 시절이라 마천루가 다수 들어섰다. [18] 독일의 산업 중심지인 루르 지역은 함부르크나 브레멘 등 독일 북부에 비해 오히려 로테르담 등 베네룩스 3국이 더욱 가깝다. [19] 대안이라 할 수 있는 슈테친이나 그단스크는 결국 발트해에서 덴마크를 빙 돌거나 좁은 킬 운하를 따라 북해로 다시 빠져나가야 하기 때문에 바로 북해로 빠져나가는 함부르크를 이용하는 것이 이득이다. [20] 실제 중세부터 있던 원 항구지역은 시대가 지면서 항구를 도시 외곽으로 이전 확장해가며 개간되고 개발되었기 때문에 현재는 흔적을 찾기 힘들다. [21] 이용객 수 기준으로 독일 최대의 역이다. [22] 1911년에 개항한 공항으로, 세계 최초로 개항한 국제공항이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 [23]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 일일 자유이용권인 Schleswig-Holstein-Ticket을 이용하면 정작 함부르크에서는 기차 포함 지하철과 버스가 이용 가능한데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에서는 기차만 이용 가능하다.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는 주도인 킬에도 지하철이 없고 킬 버스는 민영이라 슐레스비히-홀슈타인 티켓 적용이 안되고 따로 표를 구매해야 하는데 플렌스부르크같은 주내 다른 주요 도시들도 마찬가지이다. [24] 전용 신호가 없지는 않지만, 직진신호를 받고 교차로로 진입, 맞은편에서 차가 안온다면 비보호로 들어가거나 차가 계속 온다면 직진신호가 꺼진 이후 횡단보도 신호 전까지 약 2~5초간 점등되는 좌회전 신호가 진행방향의 좌측에 있다. 사실상 횡단보도 켜지기 전 잠깐 켜주는 신호에 불과하기 때문에 유럽식 비보호 좌회전은 대도시의 교통량을 감당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 독일 최대 도시인 베를린조차도 95% 이상 이런 방식이다. [25] A320 시리즈 최종조립과 A380 인테리어, 전기종 부분품 생산 기능. [26] 주간지가 우세하고, 전국 일간지는 쥐트도이체 차이퉁(뮌헨),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프랑크푸르트), Die Welt(베를린) 등에 밀린다. 다만 어디 가나 지방색이 강한 독일답게 지방지로는 Hamburger Abendblatt가 있으며, 부수로 압도하는 Bild의 지방판도 있다. [27] 2023년 현재 [28] 세계 제2위의 해운-여행사이다. [29] 13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케어제품 제조회사이다. 대표 상품은 니베아 크림이다. [30] 고급필기구, 액세서리 회사로 만년필이 특히 유명하다. [31] 그라지아(Grazia), FHM, 영국에서 주(Zoo) 등 잡지를 발간하고 있다. [32] 세계 제1위의 통신판매회사이다. [33] 세계적인 커피 제조 및 유통회사이다. 전세계 11개국에 12개의 커피공장을 두고 있고, 독일 내 약 400여 점포와 유럽 및 미주지역에 350여 개 직영 커피 체인점을 운영하고 있다. [34] 150여 척의 선박을 운용하고 있는 세계적인 컨테이너선사이다. [35] 세계적인 태양광전지 회사이다. [36] 함부르크에 본사를 둔 세계적인 보험사이다. [37] 브레멘도 이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한편 마찬가지로 도시주인 베를린은 좌파당과 녹색당 지지율이 높아서 사민당 단독 집권은 가능성이 거의 없는 편이다. [38] 같은 기민력 소속의 쉴은 함부르크 부시장이였는데, 상습적인 극단적 발언과 마약 스캔들로 인해 2003년 보이스트에게 경질당하였다. [39] 이후 보이스트는 2008년 3선에도 성공했다. 하지만 2010년 은퇴를 선언했고, 보이스트의 중재 덕에 기민련과 연정을 꾸리던 녹색당은 연정 정부의 종결을 선포하며 조기 선거를 열었다. 보이스트가 없는 기민련은 2011년에 열린 조기 선거에서 대패했고, 올라프 숄츠를 간판으로 앞세운 사민당이 대승을 거두며 10년만에 시정에 복귀하였다. 한편 숄츠는 이 때부터 2018년까지 시장직을 수행하다 앙겔라 메르켈에 의해 부총리 겸 재무장관으로 콜업되며 물러났다. [40] 대구광역시, 광주광역시, 삼척시 등지와 비슷하다. [41] 옛 건물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중앙역 근방은 아무래도 현대 건물들이 많은 편. [42] 당시 함부르크시청 내부를 장식하는 데 독일에서 내로라하는 최고의 미술가들이 모두 집결, 참여해서 완성했다고 하니, 이 건물 하나 만드는 데 돈을 얼마나 쏟아부었는지 알 수 있다. [43] 또다른 보석 내성항 암스테르담은 네덜란드 본거지이기 때문에 이윤이 덜 나온다. [44] 작센의 역사를 보면 알겠지만, 이 작센은 오늘날의 니더작센을 말하는 것이며 오늘날의 작센과는 별개의 지역이다. [45] 그래도 함부르크시에 가보면 원조 햄버거를 판매한다는 가게들이 있다. [46] 함부르크 사람들은 영어로 자기 자신들을 지칭할 때 "아이엠 햄버~ㄹ거ㄹ"라고 말한다. [47] 독일어 제목은 Sie liebt dich, Komm gib mir deine Hand. 들어보면 멜로디에다가 독일어 음성만 새로 입힌 것으로 보인다. [48] 독일어명 슈테틴/Stettin [49] 1922년에 만든 도크라 굉장히 좁다. [50] 지뢰진 2권에 자세하게 나온다. 이우일과 선현경의 신혼여행기에도 언급된다. 다만 단일 시설로는 쾰른의 12층 빌딩만큼은 아니다. [51] 여기서 이 4개의 주는 북해에 접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4개 주와 메클렌부르크-포어폼메른(발트해에만 접해 있음)를 제외한 나머지 11개 주는 바다에 접하지 않는 내륙주들이다.
이렇게 문장학적 요소가 생략된 방패문장도 사용된다. [2] 출처 [3] Peter Tschentscher [4] 예전에는 유럽 최대의 항구였으나 지금은 네덜란드의 로테르담이나 벨기에의 안트베르펜에 꽤 밀린 상태. [5] 2024년 기준 베를린 387만 명, 함부르크 191만 명, 뮌헨 158만 명 순이다. 많은 사람들이 바이에른 주도 뮌헨을 독일 제2의 도시로 알고있으나 함부르크가 더 큰 도시이다. 독일에서 일반적으로 대도시로 꼽히는 프랑크푸르트(77만)와 슈투트가르트(63만), 뒤스부르크(50만) 인구를 다 합쳐야 겨우 함부르크 한 도시 인구에 미칠 수 있다는 점으로 미루어 함부르크가 얼마나 큰 도시인가를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광역행정 권역(Metropolregion Hamburg)의 인구는 542만 명에 달한다. 함부르크와 부산은 자매 결연을 맺고 있으며, 부산을 비롯해 자매결연을 맺은 도시들을 살펴보면 마르세유, 상트페테르부르크, 상하이, 오사카 등 전부 제2의 도시이자 항구도시이다. [6] 무려 8만 유로에 육박한다. 이웃하는 주들보다 2만 유로가 더 많은 1인당 주민소득을 자랑한다. 다만 주(State)가 아닌 도시 단위로 평가하면 1인당 10만 달러를 넘나드는 볼프스부르크나 잉골슈타트, 에를랑겐 등에 뒤쳐진다. [7] 함부르크에서도 가장 부자 동네인 니엔슈테텐 지구의 경우 주민 1인당 평균 연봉이 2억 원에 육박한다. 가구당 평균 연봉이 아니라 1인당 평균 연봉이 그렇다. [8] 독일 민족, 모든 민족이라고도 번역하나 헌법 전문을 보면 Volk라고 명시되어 있는데 이는 민족이 아니라 인민에 해당하는 단어이다. 참고로 독일은 나치즘 이후로 '민족'이란 단어 사용을 매우 기피하는 국가이다. [9] 다만 예전 중세시대에는 뤼베크보다 인구 수가 더 적었던 시대가 있었다. [10] 클라우디오 프톨로모이스라는 고고학자가 그 유물을 발견했다. 지금의 페트리교회 바로 남쪽이 그곳이다. [11] 함부르크를 어원으로 한 음식 햄버거의 햄은 고기가 아니라 숲이라는 것. 함은 지금은 함부르크 미테 구의 동 단위 행정구역으로 편입되어 있다. 또한 독일의 도시 가운데 '~부르크'란 단어가 뒤에 붙은 도시들은 모두 옛날에 성곽도시들이었다. [12] 더 정확히 말하자면 지금의 알스터 호수 서쪽편에 시장을 열었다. 참고로 슈테른샨체를 중심으로 한 알스터 호수 서편은 현재에도 함부르크에서 가장 힙한 지역구이다. [13] 그 당시부터 이곳 함부르크에는 이미 양조장 600곳이 있었다고 하니, 얼마나 도시가 컸는지 짐작할 만하다. [14] 세계 최초의 증권거래소는 벨기에의 안트워프에 세워졌다고 함. [15] 작곡가 하세와 멘델스존, 브람스의 고향이기도 하다. [16] 그 당시 30년 전쟁에서 아무런 피해를 보지 않은 덕에 함부르크는 뤼벡, 브레멘 등의 여러 경쟁도시들을 앞질러 한자동맹의 여러 도시들 가운데 가장 번성한 도시가 되었다고 한다. [17] 이와 비슷한 도시가 시카고로, 당시에도 오대호 지역의 수운 중심지 역할을 했지만, 1871년 대화재로 시내 대부분의 건물이 소실되었다. 이로 인하여 도심을 리모델링할 수 있게 되었고, 건축공학의 수준이 높아진 시절이라 마천루가 다수 들어섰다. [18] 독일의 산업 중심지인 루르 지역은 함부르크나 브레멘 등 독일 북부에 비해 오히려 로테르담 등 베네룩스 3국이 더욱 가깝다. [19] 대안이라 할 수 있는 슈테친이나 그단스크는 결국 발트해에서 덴마크를 빙 돌거나 좁은 킬 운하를 따라 북해로 다시 빠져나가야 하기 때문에 바로 북해로 빠져나가는 함부르크를 이용하는 것이 이득이다. [20] 실제 중세부터 있던 원 항구지역은 시대가 지면서 항구를 도시 외곽으로 이전 확장해가며 개간되고 개발되었기 때문에 현재는 흔적을 찾기 힘들다. [21] 이용객 수 기준으로 독일 최대의 역이다. [22] 1911년에 개항한 공항으로, 세계 최초로 개항한 국제공항이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 [23]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 일일 자유이용권인 Schleswig-Holstein-Ticket을 이용하면 정작 함부르크에서는 기차 포함 지하철과 버스가 이용 가능한데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에서는 기차만 이용 가능하다.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는 주도인 킬에도 지하철이 없고 킬 버스는 민영이라 슐레스비히-홀슈타인 티켓 적용이 안되고 따로 표를 구매해야 하는데 플렌스부르크같은 주내 다른 주요 도시들도 마찬가지이다. [24] 전용 신호가 없지는 않지만, 직진신호를 받고 교차로로 진입, 맞은편에서 차가 안온다면 비보호로 들어가거나 차가 계속 온다면 직진신호가 꺼진 이후 횡단보도 신호 전까지 약 2~5초간 점등되는 좌회전 신호가 진행방향의 좌측에 있다. 사실상 횡단보도 켜지기 전 잠깐 켜주는 신호에 불과하기 때문에 유럽식 비보호 좌회전은 대도시의 교통량을 감당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 독일 최대 도시인 베를린조차도 95% 이상 이런 방식이다. [25] A320 시리즈 최종조립과 A380 인테리어, 전기종 부분품 생산 기능. [26] 주간지가 우세하고, 전국 일간지는 쥐트도이체 차이퉁(뮌헨),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프랑크푸르트), Die Welt(베를린) 등에 밀린다. 다만 어디 가나 지방색이 강한 독일답게 지방지로는 Hamburger Abendblatt가 있으며, 부수로 압도하는 Bild의 지방판도 있다. [27] 2023년 현재 [28] 세계 제2위의 해운-여행사이다. [29] 13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케어제품 제조회사이다. 대표 상품은 니베아 크림이다. [30] 고급필기구, 액세서리 회사로 만년필이 특히 유명하다. [31] 그라지아(Grazia), FHM, 영국에서 주(Zoo) 등 잡지를 발간하고 있다. [32] 세계 제1위의 통신판매회사이다. [33] 세계적인 커피 제조 및 유통회사이다. 전세계 11개국에 12개의 커피공장을 두고 있고, 독일 내 약 400여 점포와 유럽 및 미주지역에 350여 개 직영 커피 체인점을 운영하고 있다. [34] 150여 척의 선박을 운용하고 있는 세계적인 컨테이너선사이다. [35] 세계적인 태양광전지 회사이다. [36] 함부르크에 본사를 둔 세계적인 보험사이다. [37] 브레멘도 이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한편 마찬가지로 도시주인 베를린은 좌파당과 녹색당 지지율이 높아서 사민당 단독 집권은 가능성이 거의 없는 편이다. [38] 같은 기민력 소속의 쉴은 함부르크 부시장이였는데, 상습적인 극단적 발언과 마약 스캔들로 인해 2003년 보이스트에게 경질당하였다. [39] 이후 보이스트는 2008년 3선에도 성공했다. 하지만 2010년 은퇴를 선언했고, 보이스트의 중재 덕에 기민련과 연정을 꾸리던 녹색당은 연정 정부의 종결을 선포하며 조기 선거를 열었다. 보이스트가 없는 기민련은 2011년에 열린 조기 선거에서 대패했고, 올라프 숄츠를 간판으로 앞세운 사민당이 대승을 거두며 10년만에 시정에 복귀하였다. 한편 숄츠는 이 때부터 2018년까지 시장직을 수행하다 앙겔라 메르켈에 의해 부총리 겸 재무장관으로 콜업되며 물러났다. [40] 대구광역시, 광주광역시, 삼척시 등지와 비슷하다. [41] 옛 건물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중앙역 근방은 아무래도 현대 건물들이 많은 편. [42] 당시 함부르크시청 내부를 장식하는 데 독일에서 내로라하는 최고의 미술가들이 모두 집결, 참여해서 완성했다고 하니, 이 건물 하나 만드는 데 돈을 얼마나 쏟아부었는지 알 수 있다. [43] 또다른 보석 내성항 암스테르담은 네덜란드 본거지이기 때문에 이윤이 덜 나온다. [44] 작센의 역사를 보면 알겠지만, 이 작센은 오늘날의 니더작센을 말하는 것이며 오늘날의 작센과는 별개의 지역이다. [45] 그래도 함부르크시에 가보면 원조 햄버거를 판매한다는 가게들이 있다. [46] 함부르크 사람들은 영어로 자기 자신들을 지칭할 때 "아이엠 햄버~ㄹ거ㄹ"라고 말한다. [47] 독일어 제목은 Sie liebt dich, Komm gib mir deine Hand. 들어보면 멜로디에다가 독일어 음성만 새로 입힌 것으로 보인다. [48] 독일어명 슈테틴/Stettin [49] 1922년에 만든 도크라 굉장히 좁다. [50] 지뢰진 2권에 자세하게 나온다. 이우일과 선현경의 신혼여행기에도 언급된다. 다만 단일 시설로는 쾰른의 12층 빌딩만큼은 아니다. [51] 여기서 이 4개의 주는 북해에 접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4개 주와 메클렌부르크-포어폼메른(발트해에만 접해 있음)를 제외한 나머지 11개 주는 바다에 접하지 않는 내륙주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