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9:35:31

한국이란인교회

1. 개요2. 성향3. 행적
3.1. 2020년 한국 이슬람화 드립
4. 주장 및 논란
4.1. 주장에 대한 반박
5. 여담6. 관련 문서

1. 개요

이란의 외국인 교회로 4HIM이라고 불린다. 담임 목사는 이슬람선교훈련원의 이만석이며 사이트는 이곳으로 추정된다. #

그러나 실상은 국외에 체류하는 사람들에게 편의와 상부상조를 제공한다는 국외 교포 교회의 취지를 망각하고[1] 이슬람공포증을 이용해 코인을 얻는 데만 몰두하는 극우 집단이다. 실제로 담임 목사 이만석은 기독교 방송이나 교회의 설교에 나가 이슬람을 왜곡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이 교회의 명목상 운영 목적은 무슬림들을 전도하겠다는 것이며 이름인 '4HIM'은 'for Him', 즉 '주에게로 인도하겠다'는 뜻이다. 페르시아어를 할 줄 아는 목사가 전세계적으로 드물기 때문에 영국인들이 운영하는 이란 선교 방송에도 참여한다고 한다.

이만석 담임목사의 약력은 다음과 같다.

-서울장신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원 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 선교문학석사(MA)와 선교학석사(Th.M)
-미국 Grace신학대학원 선교학박사(D.Miss)
-이슬람권 현지 선교사(86.4~2004.11)활동

현재
-한국이란인교회 담임
-4HIM운동 대표
-한국장로교총연합회 이슬람대책위원장
-한국교회연합 이슬람대책연구원장

저서
-<무함마드의 계시는 왜 자꾸 바뀔까>[2]
-<베일 벗긴 이슬람>[3]
-<이슬람의 알라는 기독교의 하나님인가> [4]

2. 성향

이만석 원장과 한국이란인교회는 이슬람공포증 조장 문제로 지적을 받고 있으며 차별금지법에 대해서 완강하게 반대하는 포지션인데 차별금지법이 입법되면 "이슬람은 암세포이므로 배척해야 한다"는 식의 강경한 증오 발언을 할 경우 처벌받기 때문이다. 이슬람 전문가[5]라고 자처하지만 이슬람 극단주의 및 신학 관련한 학술적 비판 대신 그저 반이슬람 코인 팔이에 치중하는 점이 한계로 지적된다. 이란인들을 대상으로 선교를 한다지만 정작 그의 이슬람 교리 비판은 주로 와하브파 교리 비판[6]에 치중되어 있는데 이란인 시아파들은 와하브파와 사이가 대단히 나쁘다.

3. 행적

담임 목사인 이만석은 1986년에 이란의 테헤란에 이 교회를 차려 운영하다가 2005년 11월 더 이상 당국으로부터 비자가 나오지 않게 되면서 대한민국으로 돌아와 활동하기 시작했다. 2004년까지만 해도 이란에 있었다. 기사를 보면 "이슬람의 땅에서 하나님을 경배하며 복음을 지킨..."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어쩌면 이때부터 뭔가 이슬람에 대한 혐오가 자리잡고 있었다고 판단된다.

3.1. 2020년 한국 이슬람화 드립

2005년 즈음에 나온 한국 이슬람 중앙회의 선교전략 책자를 바탕으로 "2020년 한국 이슬람화 전략 저지"라는 이름 아래 이슬람 저지운동을 벌였다. # 실제로 sns가 발달하기 전인 2000년대, 2010년대에 이슬람을 네이버 등 포털사이트에 검색하면 여러 목사들의 왜곡 주장이 많이 보였다. 2006년 한국으로 돌아와 이슬람공포증을 악용해 극우 단체의 코인을 타낼 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2009년에도 활동했다.

사실 한국 보수 개신교계는 80년대까지는 주로 한국 불교와 많은 싸움을 벌였으나 이후 불교계와 기독교계간의 갈등이 과거에 비해 줄어들고 결국 보수 기독교계는 불교 대신 때릴 대상을 물색하기 시작했는데 이 과정에서 이슬람이 새로운 공격 대상으로 안성맞춤이었다. 이슬람은 불교와 다르게 주변에 믿는 한국인이 많이 없어서 대놓고 왜곡, 비방해도 문제가 적을 뿐더러 이슬람주의자들이 사고친 일이 뉴스에 자주 나오는 것 자체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당장 대구 대현동 모스크 건축 논란, 연천군 이슬람 캠핑장 건립 논란 [7]등을 보면 한국인의 이슬람에 대한 인식이 최악임을 알 수 있다. 그러다보니 무슬림들과 일반 비이슬람 한국인과의 갈등이나 오해가 깊을 수밖에 없다.[8]

1, 2
전 박사는 이슬람이 일부 사람들이나 언론 등에 의해 ‘평화의 종교’로 가장되거나 하나의 문화로써 일반인들에게 소개되는 점 역시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대학생들을 타깃으로 펼치는 적극적인 선교활동에 대해서도 언급했다.[9] 이슬람은 아랍어를 제2외국어로 채택하는 운동을[10]벌이며 아랍어과 학생들에게 장학금 혜택을 주거나[11] 중동으로 유학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중동에 소재한 대학원에서 학위를 받으려면 유학생들은 십중팔구 코란을 읽고 이슬람으로 개종할 수밖에 없다.[12] 이 외에 전략적으로 한국 여성이나 농어촌 총각과 결혼해 자녀를 무슬림화 한다든지[13] 중동에 있는 한국인 근로자나 자이툰 부대원을 대상으로 이슬람교를 전파하기도 한다.[14] 무슬림들은 교회에도 적극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외국인근로자교회의 사역자들을 이슬람 행사에 초청하고 국내 일부 대형교회 앞에 사무실을 열어 교회활동을 모니터링하는 것이 그 예다.[15] 국내 무슬림 외국인 근로자들에 의해서는 부평에 모스크가 건립됐으며, 사우디아라비아 정부 지원으로 한국어 코란은 재번역 됐다.[16] 2007. 03. 16 크리스천 투데이

물론 결과는 완전한 거짓말로 증명되었다. 2020년대부터 한국 총 주민등록 인구가 감소해 분모가 감소한 것을 감안해도 이슬람의 증가는 없었다. 통계청 인구 센서스에서 기타종교로 집계되긴 해서 집계가 어렵긴 하지만. 한국 이슬람중앙회에서는 명부를 관리하지 [17] 한국인들 중에는 개종한다고 해 놓고 이슬람을 성실하게 지키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한다.[18]오히려 무슬림 이단, 사이비 종교 취급받는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 여호와의 증인, 증산도 등의 신도들보다도 적다. 아마 2020년 이슬람화 드립을 친 건 1992년 휴거 드립과 같이 무언가 숫자에 끼워 맞춰야 그럴듯해 보인다고 생각한 것 같다고 판단된다.

사실 이슬람화는 15년만에 이뤄지기 힘들다. 역사의 사례를 보면 현재보다 인구가 적었는데도 인도네시아 및 말레이시아 브루나이를 이슬람화 하는 데는 500년이 넘는 시간이 필요했으며 스페인 레콩키스타 이전에 이슬람화되는 데 200년이 넘게 걸렸다. 알바니아의 경우에도 아예 오스만제국이 강제로 개종시키려고 시도했지만 알바니아 북부 중부가 이슬람화 되기에는 200년이 넘게 걸렸다. 보스니아의 경우에도 이슬람교와 유사한 5번의 기도가 존재하던 보고밀파를 믿었음에도 보스니아의 과반수가 무슬림이 되기에는 300년 정도가 필요했다. 인구가 적은 고대, 중세에도 이 정도였는데 21세기에 인구가 5천만명이 넘는 한국을 갑자기 이슬람화시킨다는 건 말이 맞지 않는다. 현대 사회에서 무종교인의 비중도 높은데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다. 무력을 동원해 대한민국을 제압한다면 불가능하진 않겠지만.[19]

이후에는 이슬람을 그럴듯하게 왜곡하는 방향으로 선회한 모양이다. 이슬람 파트와 사이트나 하디스등을 인용하는 방식으로 왜곡하는 시도를 하는 듯한데 아마 해외 안티 이슬람 진영측의 영어 자료를 찾아서 이용을 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왜냐하면 보통 많이 쓰이는 islamqa[사우디아라비아의]나 공신력 있는 기관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이슬람도 개신교랑 비슷하게 사실 누구나 이맘을 할 수 있으며 파트와도 종파마다 다르다(4대 마드하브). 그렇기에 어떤 특정한 세력이나 이맘 파트와 사이트가 주장을 한다고 해서 그게 이슬람 전체를 대변하긴 어렵다. 가령 사우디쪽에서는 스핑크스를 파괴하자는 파트와를 냈지만 이집트측에서는 무함마드의 행적을 이유로 스핑크스를 보존해야 한다는 파트와를 내기도 하는등 반드시 이슬람 파트와가 이슬람 전체의 성향을 대변한다 보기엔 어렵다. 개신교측에도 장로회나 성공회등 다양한 종파가 존재하는데 특정종파가 개신교 전체를 대변한다 보기엔 더더욱 어렵다.

이슬람 마드하드조차도 같은 사항에 대해서 차이가 많이나며 모로코와 인도네시아 그리고 카잔쪽 무슬림과 잔지바르 무슬림들의 차이는 크게 난다. 알바니아의 벡타시 이슬람과 와하비즘을 보면 같은 종교가 맟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인데 극단적인 쪽의 무슬림 파트와만 들고와서 주장하는 것은 조금 무리가 있다.

4. 주장 및 논란

이만석 목사를 비롯한 한국이란인교회는 주로 기독일보나 4him 등에 칼럼을 올리면서 이슬람에 대해서 개신교적인 관점으로 비판하는 것을 넘어 왜곡하고 있다. 우선 최대한 종교중립적인 표현을 사용하고 사실관계에 입각하여 반박하는 것을 지침으로 한다. 인용된 글들은 모두 이만석 목사가 직접 타이핑해서 작성한 글임을 밝힌다. 문단이 길어져 인용은 링크로 대체하였다.

1, 2, 3, 4, 5, 6, 할랄 괴담

여기를 보면 쿠란의 메디나 계시가 이슬람 젊은이들을 테러리스트로 만들고 있다는 이야기를 퍼뜨리고 있다.[21]

이슬람은 여성 차별적 종교라는 주장을 보면 ' 꾸란 4장 34절은 남편이 아내를 구타할 수 있다'고 주장함을 알 수 있다. 반박은 쿠란/논란 항목 참조.
타끼야(Taqiya): 두려울 경우는 거짓말을 허용함.[22] 나지스(Najis): 비무슬림들은 불결하니 손대지 말라.[23] #[24] 우스와 하사나(Uswa Hasana): 무함마드가 했던 말고 행동은 좋은 모범이니 무조건 본 받으라. #[25] 만쑤크 나쓰크(Mansukh, Naskh): 이전 계시와 나중 계시가 서로 모순될 경우는 나중 계시에 의해서 이전 계시는 대체되거나 취소된다. 다르아스 살람, 다르알 하릅(Dar al salam, Dar al harb):세상은 이슬람의 집과 전쟁의 집으로 나눈다. 비무슬림들과는 항상 전쟁상태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런 교리 때문에 무슬림들이 비무슬림들과 평화롭게 공존한다는 것은 무슬림들이 힘이 없을 때만 그렇습니다. #[26]

위 주장은 이만석 목사가 주장한 내용이며 2022년 11월 15일에 보내온 것임을 밝힌다.

파일:한국이란인교회 답변.png

[27]

4.1. 주장에 대한 반박

주장에 대한 반박에 앞서 인용한 쿠란, 순나, 하디스는 모두 공신력이 확보된 최영길 역 쿠란, 순나, 하디스는 sunah.com에서 가져온 것임을 밝히며 파트와를 인용할 때는 공신력을 위해 튀르키예 정부에서 운영하는 터키 종무청의 해석을 인용하였다. 이슬람의 종교적인 근거를 위해 한국 무슬림 등에게 자문을 구하였지만 최대한 세속주의 원칙을 준수하는 방향으로 서술했다. 반박문은 이슬람의 입장을 대변하고 무조건 옹호하려는 의도로 작성된 것은 아님을 밝힌다. 파트와 링크의 열람을 원한다면 링크의 번역을 활용하면 좋다.
1.이슬람교는 폭력적이며, 기독교 유대교도들을 증오하고 저주하고 있다.
우선 "safk.." 이하로 비롯된다며 속담이 있다고 하는데 구글에 검색하면 4him이나 그에 동조한 스크랩글 정도만 보이고 한국 외의 웹사이트에서는 검색되는 것이 아니며 애초에 이슬람 속담이라면 아랍어로 된 원문이 존재한다. 하다못해 시아파라면 페르시아어 원문을 첨부해야 하는데 라틴 문자로 발음을 표시해 놓은 것은 제대로 된 것이 아니다. 하다 못해 튀르키예어 인도네시아어라면 그럴듯해 보이겠지만.

두번째의 순나를 인용한 글을 찾아보면( 해당 순나) 순나 부라카위 3권은 지식에 관한 글이며 3권은 number 56부터 시작된다. 즉, 없는 순나를 인용한 것이다. 찾아보면 숫자가 비슷한 volume1, book2, number 11인 구절은 있는데 해당 내용처럼 비무슬림을 죽이는 무슬림은 사형되지 않는다는 내용은 없다. 2권은 믿음에 관한 사항이기 때문이다.

Volume 1, Book 2, Number 11을 보면 아무리 봐도 죽이라는 내용은 존재하지 않으며 해당 기사의 순나 인용은 잘못된 것이다. 오히려 이슬람에선 이유 없이 비무슬림을 죽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무슬림이 아닌 사람과 전쟁을 지속하라는 것은 해석이 두 가지로 나뉘는데 이만석 목사가 주장하는 대로 모든 사람이 무슬림이 될 때까지 전쟁을 하거나 이슬람과 다른 종교가 공존하고 소요가 없을 때까지로 해석할 수 있다.(튀르키예 종무성 타프시르) 그런데 튀르키예 등 하나피파를 따르는 나라들은 이러한 구절의 해석을 후자로 한다. 모든 무슬림이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틀린 주장이다. 물론 한발리파 와하브파 등을 따르는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나라나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에서는 그렇게 해석하고 개인이 사사로이 처벌하는 등 문제가 나타나고 있고 심각한 인권침해가 일어나는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무슬림이 전쟁을 해서 비무슬림을 죽여야 한다고 해석하지는 않는다.

기독교인들은 전쟁 중이라는 개념이 없다고 하지만 영적 전쟁이다 하면서 이슬람, 적그리스도를 이겨야 하는 전쟁을 수행한다고 주장하는데 앞뒤가 맞지 않는다.

기독교, 유대교도와 친구하지 말라는 해석에 대하여 터키 타프시르를 인용해 보면 그것이 꼭 기독교인과 진짜 친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이슬람이 통치하는 국가에서는 주요한 기밀을 공유하는 사이가 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즉 비유하자면 정치적 성향이 다른 사람이 친구가 되어도 엄청나게 친밀한 단계까지는 가기 어렵다는 것이다. 기독교도들이 이슬람교도에 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무슬림들은 그들에게 친절을 베풀어야 한다고 튀르키예 종무성에서는 가르치고 있다. 튀르키예가 모든 이슬람을 대변하지는 않겠지만 분명한건 한국의 주간 무슬림 주간지와 다르게 가르치는 이슬람 국가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물론 극단적인 살라피스트들은 기독교도들과 배척하자고 하며 주간 무슬림 등에서도 비무슬림에게 평화를 기원하면 안 된다는 등 와하브파, 살라프파에 근거하여 이슬람을 가르치는 것은 문제가 있다. 한국에는 아무래도 한국인 무슬림은 드물고 대부분의 무슬림이 외국인 노동자와 결혼이민자라 그들만으로 재단을 운영하기 어려워 일어나는 문제로 보인다.

사실 쿠란 60:8를 보면 무슬림은 비무슬림이 적대적이지 않는 한 무슬림에 친절하다면 비무슬림에게 친절하라는 의무가 명시되어 있다.

98:6의 구절은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은 분명하고 현대의 인권 관점, 정교분리, 세속주의 원칙에 맞지 않는 문제점이 있지만 대부분의 종교는 자기 종교가 진리라고 가르치며 유일신교는 이러한 특징이 강조된다. 사실 유대교에서도 자기들 민족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가르치고 기독교도 기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천국에 가기 어렵다고 가르치는 등 단순히 이슬람의 문제라고만은 보기 어렵고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의 문제점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알 파티하에서 방황하는 자들과 다르게 자신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해 달라는것은 문제가 되는 소지가 없다. 자기 종교 입장에선 그렇게 보일 수 있는 것이고 이건 개신교도 예외가 없다. 도덕적인 문제는 미미하기 때문이다. 물론 기독교인들의 입장에서는 모욕했다고 느낄 수는 있겠으나 정작 이만석 목사를 비롯한 한국이란인교회는 기도 때 속은 무슬림에게 기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무슬림을 이겨야 할 상대로 여기고 있다.

이슬람선교훈련원에서 수업을 받으면 무슬림을 전도할 수 있다고는 하는데 전도라는 것은 군대 훈련과 달리 쉬운 것이 아니다.[28] 이슬람교가 겪는 문제점들에 대한 회의로 배교하는 경우가 많지 나무위키 전도사 항목에는 개신교에서 신학대학 등을 졸업하고 안수를 받지 못한 사람이 전도사로 활동한다고 서술되어 있는데 선교훈련원에서 수업만 받았다고 전도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문제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

이만석 목사는 전쟁에서 배교자 처형 구절을 무슬림들의 예전 전쟁 시의 구절이라면서 반박하면 빠져나간다며 맹비난했지만[29] 정작 개신교 근본주의자들도 성경의 논란이 되는 구절에 대해 똑같이 물으면 그 구절은 예수가 오면서 완성되어 의미가 없다고 빠져나가는데 원인은 이슬람이나 기독교나 유대교가 비슷한 뿌리에서 나왔고 공동의 성지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자세한 건 쿠란/논란, 성경/논란/윤리적 문제 항목 참조.
2. 무슬림은 피해자이며, 한국이란인교회가 그들을 개종시켜 예수님의 제자로 만들어야 한다.

6월 언행에서는 무슬림을 마치 다단계 판매 피해자마냥 비하하고 혐오하고 있다. 이렇게 세미나에서 설교하는 이만석 목사가 과연 알파티하에서 기독교인을 보고 방황하는 자라고 했다고 무슬림들을 비판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스럽다. 애초에 현대 한국이나 사회에서 종교의 자유가 존재하는 마당에 그것을 따라 믿는 사람을 피해자라고 이야기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정작 대부분의 평범한 무슬림들은 이슬람을 믿으면서 내면의 평화를 찾고 있고 행복하게 살고 있는데 어떻게 피해자가 될 수 있는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한 종교의 자유가 인정된다. 대한민국에서는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 같은 사이비 종교조차도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는 마당에 무슬림을 피해자라고 매도하기에는 논리적 근거가 부족하며 이슬람에서 기독교인을 방황한다고 여기면서 기도한다고 가르치니 나도 이슬람을 비난해도 된다는 것은 결코 정당한 논리가 아니다. 사실 일부 근본주의 개신교에서도 무슬림들을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가여운 어린 양이라고 하거나 무함마드를 믿는종교 혹은 알라는 사탄이라는 식의 네거티브 전략을 취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3. 이슬람의 알라와 기독교의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세번째 주장에 대해서는 나무위키의 야훼, 알라 항목 참조. 속성은 다를 수 있지만 섬기는 대상이 같음은 부정할 수 없는 객관적인 사실이다. 기독교의 종파인 가톨릭에서는 교황이나 천주교 질문집에서도 알라와 하나님이 같다고 인정하며 몰타어에서도 하나님은 alla라고 부른다. 만일 이만석 목사의 주장대로라면 아랍에 있는 1억명 정도의 기독교도들과 몰타의 기독교도들은 죄다 무슬림이라는 소리다.
4. 무슬림들은 엄격한 율법아래 고통받고 있고, 율법에 얽매여 있으며 얘배 하지 않는 순간 배교자가 된다.

문화상대주의를 갖추지 않고 개신교의 시각에서 편협하게 바라본 잘못된 비판이다. 오히려 역으로 무슬림들은 이만석 목사에게 방종한 거 아니냐고 할 것이다.[30] 이렇듯 율법을 지키느냐 아니냐는 현대 윤리에 어긋나지 않는 한 종교의 성격의 차이에 불과하다. 예배에 대한 자세한 사상은 예배 항목의 이슬람의 예배 여담 참고 바람. 생각보다 이슬람에서 예배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가 존재하고 예를 들면 생리중엔 예배하지 않아도 된다는 규정이 있다. 또 예배가 신앙의 측면이라고는 하지만 다른 돼지고기 문제나 비할랄 식품의 경우 먹는다고 배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여담이지만 이만석 목사는 같은 아브라함 계열의 종교인 유대교에 대해서는 비판하지 않는데, 이만석 목사가 친화적으로 바라보는 유대교 역시 엄격한 율법[31]을 따르고 있는데 이 유대인들에 대해서는 비판이 없다. 이는 결국 율법을 이슬람을 비판하는 도구로 활용하는 에 지나지 않는다.
5. 이슬람은 무조건 전쟁상태에 있다. 그러므로 공존이 불가하다.

이슬람에서 다르 알 이슬람, 다르 알 하브라고 하면서 이슬람은 전쟁 상태에 있다며 호전성 있는 종교라고 주장하지만 이와 반대되는 주장도 있다. 국제법을 준수해야 한다는 파트와

이슬람에서 충분히 전쟁에서 국제법을 준수해야 한다는 취지의 파트와가 나올 수 있다. 따라서 무조건 모든 무슬림이 전쟁에 미쳐 있는 광전사라고 볼 수는 없다. 쿠란에는 종교에 대해서 강요할 수 없다는 구절과 비무슬림에게 선빵 걸지 말라는 구절도 존재한다. 물론 쿠란/논란 항목을 보면 이만석 목사의 주장대로 호전적인 구절도 있지만 그것이 전쟁 상태에 있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쿠란 60:9를 보면 그렇지 않은 구절들도 몇 개 존재하기 때문에 무조건 전쟁 상태에 있다고 보긴 어렵다.

종교적를 떠나서 정치, 역사적으로 보면 전쟁 상태에서도 휴전 등으로 공존할 수는 있다. 양안관계, 남북관계 등을 보면 서로 여전히 전쟁 상태에 있는 대만, 중국[32]이나 휴전 상태에 있는 북한, 남한의 사례를 보면 알겠지만 대치 중이어도 공존은 가능하다. 양 측 모두 한때는 서로의 전쟁을 당연시하기도 했고 지금도 흡수통일을 주장하거나 추진하고 있는데 전쟁 상태에 있다고 해서 공존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지금 그렇게 공존한다고 중국인 대만인, 한국인 북한인을 폭력적인 민족이라고 말할 수 있지는 않다.
6. 대한민국 역사 교과서는 이슬람에 편향적으로 서술되어 있다.

이만석 목사는 이슬람이 한국에서 친이슬람적으로 가르쳐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우선 한국에서의 이슬람 및 중동에 대한 교육의 역사를 살펴보면 과거에는 서구권의 영향으로 이슬람에 대해 "한 손에는 코란 한 손에는 칼"이라는 말과 함께 이슬람교가 강요로 확산되었다는 서구적 시각으로 가르쳤으나 2000년대에 이르러 7차교육과정이후에는 이슬람교에 대해서 비교적 중립적으로 서술하려고 하였다. 다만 이 시절에는 지즈야에 대해서 세금만 내면 종교의 자유를 보장했다는 식으로 가르치는 문제는 있었다. 이후에는 지즈야에 대해서 차별이긴 하다는 식으로 가르치기는 한다. 이를 비추어보면 이슬람이 마냥 한국에서 친이슬람적인 교육으로 교과서에 나온다고 보기는 어렵다.

또한 이만석 목사는 종교의 비율에 따라서 교과서 분량을 배분해야 한다는 주장을 한다. 하지만 이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주장인게. 대한민국은 엄연한 세속 국가이기 때문에 종교에 대해서 중립적이여야 한다. 따라서 종교의 비율에 따라서 기독교가 많이 들어가야 하고 불교, 이슬람은 적게 들어가야 한다는 주장은 세속 국가인 대한민국의 헌법정신에 어긋나는 것이다. 교과서는 엄연히 교육과정 내에서 서술된다. [33]

다음은 교육부 고시 제2018-162호 별책7의 2015 개정 교육과정 세계사 성취기준 출처을 인용한 것이다.
(다) 교수・학습 방법 및 유의 사항 서아시아에 등장한 여러 제국의 전체적인 흐름을 살펴보고 그 특징을 다루되, 이를 지나치게 파편화 하여 학습하기보다는 여러 제국이 공유하고 있는 측면에 초점을 맞춰 이해하도록 한다. 모둠별 협동 학습을 통하여 이슬람교에서 비롯된 풍속, 문화를 학습하여 오늘날의 서아시아 지역을 이해할 수 있는 단초를 찾도록 하되 종교적 편견은 갖지 않도록 유의한다. 분열되어 있던 인도 지역에서 등장한 여러 왕조의 통일 과정을 알아보고 이 과정에서 다양한 종교와 문화가 출현하게 되는 역사적 맥락을 짚어보도록 한다. 또한 인도 사회가 동서 문명의 발전과 교류에 있어 수행한 역할을 통해 인도 문화가 주변 지역으로 확산되는 모습을 조사하도록 한다.
(라) 평가 방법 및 유의 사항 오늘날 서아시아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러 분쟁의 원인이나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올바른 시각을 정립할 수 있도록 신문 기사 스크랩이나 관련 자료의 수집을 통한 포트폴리오 작성 등의 수행평가를 실시할 수 있다 이슬람교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궁금한 점들을 목록화해 조별로 조사한 후 발표함으로써 서로의 의견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한다. 인도에서 다양한 종교와 문화가 등장한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와 관련된 유명 유적지를 찾아보고관광 안내서 만들기 등의 수행평가를 실시할 수 있다.

교육과정 방침상 이슬람에 대하여 종교적인 편견은 갖지 않도록 유의하는 방향에서 교육하라고 지도하고 있다. 교과서의 취지에 따라 서술한다면 이만석 목사의 주장이나 친이슬람적인 서술은 역사 교과서에 서술 될 수 없다.

2020년부터는 이러한 문제가 시정되었다고는 하는데 이슬람이 기독교과 같다는 점은 여전히 가르치고 있다. 단적인 예로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9월 모의평가의 오스만 제국에 대한 문제인 14번 문제의 "그들은 우리와 같은 신을 믿고 있소..."라는 사료를 통해 여전히 이슬람의 신은 기독교의 신과 같다는 것이 교과서에 실려 있음을 알 수 있다.

시정된 부분은 이슬람이 평화의 종교이고 무조건 관용을 베풀었다는 식의 서술을 지양했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때 무슬림들이 불관용을 보인 부분이 엄연히 있으므로 논란의 여지가 되기 충분하기 때문이다.[34] 다만 이만석 목사가 주장하는 대로 최근의 교과서는 이슬람이 무조건 평화의 종교라고 가르치지는 않는다. 또한 무조건적인 평화의 종교라고만 이야기 하지 않는게 올바른 역사 교육이다. 이슬람교의 성립과 인류에 미친 영향을 객관적으로 가르치고 판단은 개인에게 맡기는 것이 바람직한 역사 교육이다.
7. 이슬람교는 나지스(오물)이라는 개념으로 비무슬림을 불결하다고 여긴다.
사실 나지스는 튀르키예 정부 이슬람 백과사전을 참고해 볼 때 타하렛 항목과 연계되어 있고 그 개념을 정리해 보면 의식적으로 부정한 것을 의미하는데 대표적으로 오물 등이 해당한다. 나지스에는 깨끗이 할 수 없는 나지스와 접촉하면 나지스가 되는 것이 있다. 여담이지만 살아 있는 돼지와 개는 말리키파에서는 불순하지 않다고 한다. 다만 시아파에서는 시체와 불신자를 나지스에 포함시키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수니파를 따르는 TDV islam(튀르키예 정부 디야넷 이슬람 백과사전)의 항목을 참조하면 인간의 몸은 기본적으로 청결한 상태라고 언급되어 있기 때문에 비무슬림은 불결하다는 말은 거짓임을 알 수 있다. 사실 할랄 푸드 규정을 보면 간단하게 논박이 가능한데 쿠란 5:5를 보면 성서의 백성(유대교, 기독교)인들이 도축한 고기를 먹어도 된다고 하는데 만일 비무슬림이 나지스라면 왜 쿠란에서 성서의 백성들이 도축한 고기를 먹을 수 있게 하겠는가? 지금도 한국에서 무슬림들은 할랄이 없을 경우 뉴질랜드, 호주산 소고기, 양고기를 할랄 대용으로 섭취한다.

단, 성서의 백성이 도축한 고기는 돼지고기 같이 하람 푸드는 제외한 경우만 허용된다. 즉 닭고기나 양고기 같은 건 기독교인이 도축한 걸 먹어도 하람이 아니라는 소리다.

기타 주장들
  • 타끼야에 대해서는 타끼야 항목 참조. 칼럼에서 아라비아 숫자는 사실 인도 숫자의 변형이라고 주장하는데 아라비아 숫자 항목을 보면 우리가 흔히 쓰는 1, 2, 3 같은 숫자는 서아라비아 숫자, 즉 후우마이야 왕조 시대에 스페인에서 만들어진 숫자인데 당시 스페인은 이슬람의 지배 영역이었으므로 이슬람에서 만들어진 숫자가 맞기는 하다.
  • 이슬람이 음악을 증오하고 예술을 증오하기 때문에 미풍양속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한다.[35] 반박에 대한 자세한 건 와하브파 항목 참조. 이만석 목사는 주간 무슬림을 근거로 이슬람은 무조건 예술을 혐오한다고 가르치니 배척해야 하는 종교라고 왜곡한다.[36]

    학파마다 의견이 다른 사한도 있어 이만석 목사의 주장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에 가깝다. 물론 한국 이슬람 중앙회는 사우디아라비아 등의 지원을 받아 와하브파 한발리파에 기초하여 극단적인 해석을 하는 경우가 있어 문제가 되고 있기는 하다. 예를 들어 사우디에서 공부한 어느 한국인 무슬림은 5살짜리 딸에게 음악을 금지하여 한국 네티즌들의 경악을 불러온 적이 있다.

    해당 무슬림은 와하브파와 한발리파에 근거한 해석으로 논란을 빚은 적이 있지만 이만석 목사의 주장대로 모든 이슬람이 음악, 예술을 지옥에 간다고 가르치지는 않는다. 우선 음악을 예로 들면 실제로 아이샤가 결혼식에 악기를 사용한 하디스가 존재하기도 하는 것을 볼 때 이슬람 자체적으로 음악을 절대 금기시 하는 것은 아님을 확인 할 수 있다. 아이샤는 모든 무슬림의 어머니로 여겨지는 중요한 존재인데, 그 아이샤를 부정하면 심히 곤란해지기 때문.
    그리고 정작 음악을 술마냥 금지하는 이슬람국가들은 다에시정도 레벨이 아니면 한 곳도 존재하지 않는다. 문명4에서 사용된 OST인 바바예투(baba yetu)가 UAE에서 분수에서 브금으로 멀쩡하게 나오고 있다 #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조차도 퇴폐적인 음악이 아닌이상에 금지하지 않는다. 사우디에 QUSAI라는 이름의 가수도 존재하는걸 볼때에 이는 명확하다. # 또한 아랍식당등 이슬람문화권의 식당에서도 정작 가요정도는 다 나온다.
    만일 이만석 목사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슬람권에서 전반적으로 음악을 금지하거나 최소한 규제를 빡빡하게 해야하는데 그런 모습이 존재하지 않는다.

    기타 예술 미술이나 스포츠등을 보더라도 우선 초기 이슬람 양식에서는 모자이크를 그린적이 있으며 이후에는 아라베스크 양식이라는 독특한 미술이 발전했다. 우상은 만들지 않지만 나름 이슬람적인 건축이 발전했다. 스포츠도 폴로나 승마같은 스포츠등은 발전했다. 터키에서는 올리브유를 바르고 레슬링을 하는 사례등도 있다. 이슬람이 무조건 예술에 부정적인 영향만 준것이 아님을 증명하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만석 목사의 주장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에 가깝다.
  • 만수크에 대해서는 만수크 항목 참조.
  • 다으 알 살람, 다르 알 하르브는 위키백과를 참조하면 다음의 3가지 조건을 만족해야 분류될 수 있다.
Abu Hanifa에 따르면 토지가 다르 알 하르브로 분류되려면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합니다. 비무슬림의 법을 공개적으로 시행하고 더 이상 이슬람 규칙을 시행하지 않는다. 또 다른 다르 알하르브 경계 비무슬림이 권력을 잡기 전처럼 안전한 무슬림은 없습니다. dar al-Islam과 dar al-harb를 구별하는 목적은 그 땅을 이슬람교도에게 안전한 곳 또는 두려움의 곳으로 식별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무슬림이 일반적으로 땅에서 안전하고 두려움이 없다면 dar al-harb로 분류될 수 없습니다.

출처: 영어 위키백과 이슬람 세계의 분열 문서

3가지 조건이 붙어야 하는 것으로 미루어 보면 "무조건"적인 전쟁 상태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비무슬림이 지배하는 지역이어도 무슬림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면 다르 알 하르브는 아니다.

사실 쿠란 8:61(알 안팔) 장을 보면 그들(적))이 평화로 기울면 그쪽으로 향하라고 하기 때문에 항상 전쟁이라는 말은 근거가 없다.
  • 이슬람의 메카의 카바 신전의 일화(아담과 이브가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일화)가 고대의 고고학적인 근거가 없고 고대의 기록에 없으니 이슬람이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는데 정작 자기가 믿는 기독교에서도 노아의 방주의 흔적이나 그동안의 고고학 연구와는 반대되는 연구결과가 나오는 게 함정이다. 종교에 고고학을 가져와서 비난하는 것은 객관적인 비판이라고 볼 수 없다.[37] 이슬람적으로 쿠란이나 하디스에서 카바가 아담과 이브가 만들었다는 근거는 사실 없다.
  •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이슬람 이전의 메카 유적이 박물관에 없고 메카 주변을 개발하면서 유적을 파괴하는거 아니냐면서 이슬람의 신뢰성을 비판하는데[38] 사실 메카의 도시개발은 메카 성지순례객의 수요 폭등으로 인해 이루어진 것이다. 만일 그러한 논리라면 기괴한 논리가 탄생하는데 대힌민국의 송파구 풍납동 임나일본부설을 덮기 위해 대한민국 정부가 일부러 마구잡이로 개발시킨 것인가? 당연히 그렇지 않다는 것을 상식적으로 알 수 있다. 그리고 결정적인건 사막지역이라는 특성으로 인해 인구밀도가 고대부터 낮았으며 문명이 발달하기에 좋은 장소가 아니였기에 유적이 많지 않은것이다.
  • 이슬람 이전인 청동기 시대부터 아랍에 사람들이 살긴 하였으나 통일된 중앙집권왕조가 들어서지는 않았고 유목민이였기 때문에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돌궐이나 튀르크, 몽골 같이. 메카에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고 해서 반드시 메카가 조작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고대에 알렉산드리아 대도서관 화재 등의 사건이 있어서 기록이 되었는데 소실되었을 개연성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 위의 메일에서 기독교인이라고 이슬람인에게 죽임을 당하는 나이지리아의 사례, 여성인권을 옹호하는 글을 올렸다는 이유로 징역을 살게된 사우디 여성의 사례를 통해 이슬람에 속으면 안된다고 주장하지만 앞서 위에서 반박했듯 이슬람에서 이를 권장하거나 조장하지 않는다는 점으로 반박할 수 있으며 사우디의 사례의 경우 표현의 자유에 대한 문제로 해석해야지 종교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엠네스티 같은 인권단체들도 이슬람교를 문제 삼기보다는 문화나 사회분위기의 개선을 요구한다. 이란 히잡 시위에도 이란의 신정을 비판했었다. 이를 보면 종교의 문제라고 보긴 무리가 있으며, 과거 가톨릭 교회가 지배하던 중세시대, 종교개혁 시기 개신교도들도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지 않았었다. 그렇다고 그게 가톨릭이나 개신교의 문제로 이어질 수는 없다. 사우디는 절대왕정으로 권위주의적인 정권이다. 빈 살만 시기 나아졌다고 해도 근본적으로는 절대왕정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문제로도 볼 수 있는데 종교적인 문제로만 이것이 일어난다고 주장하는 것은 성급한 일반화이다. 나이지리아의 경우에도 북부와 남부의 소득차이 그리고 다른 민족이라는 문제도 있는데 종교가 다르다고 충돌한다고만 볼 수는 없다.
  • 알왈라 알바라의 경우, 영문위키 #를 참고했을 때에 충성과 부인이라는 뜻으로 신을 위해 사랑하고 분노하라는 의미로 파악할 수 있다. 1, 2 두가지 살라피에 가까운 파트와를 보아도 신을 위해 사랑하고 분노하라는 의미이고 분노를 비무슬림에 대한 폭력으로 이용하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다. 즉 그들이 알라를 따르지 않는 것에는 분노해야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목을 치라는 것으로 이해되어선 안된다는 의미로 가르치는 것을 비추어보면 이만석 목사의 주장은 사실이 아님을 알 수가 있다. 그리고 이슬람 율법의 기초라고 주장했지만 쿠란의 경우에 이 알왈라 알바라라는 단어가 직접등장하지 않으며 하디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이만석 목사의 주장은 돕고 비무슬림과 어울리지 말라고 하지만 그것 역시 틀렸다. 비무슬림과 어울리지 말라는 것에 대한 것은 위에서 반박이 되어있고 신을 사랑하라는 것이지 무슬림끼리만 놀라는 의미가 아니다. 만일 그랬다면 중세시절에 바그다드같은 대도시에 비무슬림들도 많이 교역했다는 것을 설명할 수 없고 현대의 UAE 두바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같은 도시들도 설명이 불가능하다.
  • 무함마드가 622년 메카로 와서 여자를 빼앗고 폭력적으로 행동했다고 주장하지만 우선 무함마드의 결혼은 정략결혼으로 볼 수도 있는 견해가 존재하며 메카에 와서 비무슬림들에게 개종 후 잔류 혹은 이주라는 선택지가 존재했다. 유대인의 경우에도 유대인들이 메카의 다신교도들과 붙었다는 사정도 있는 만큼 무함마드가 반유대주의자 혹은 폭력주의자, 소아성애라고 주장하기엔 다소 애매한 측면이 존재한다.
  • 이슬람교의 비중이 5% 이상이면 테러가 존재한다는 괴담을 이야기하는데 이는 이만석 목사가 과거 2020년 한국 이슬람화 전략이라는 괴상한 주장을 펼칠때도 인용한 주장으로, 유럽내에서 5%가 넘는 전통적인 이슬람지역(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알바니아, 코소보,북마케도니아, 러시아 카잔, 다게스탄등)에서의 평화[39]를 설명할 수 없다. 만일 그렇다면 보스니아나 알바니아는 허구헌날 폭탄테러가 터지는 사람 살곳이 안되어야 하지만 보스니아, 코소보, 북마케도니아는 모두 세속국가이다. 심지어 코소보는 거의 인구의 95%이상이 무슬림이다.. 유럽에서 치안 불안 및 테러의 문제는 이민자들이 융화되지 못하여서 발생하는 문제이다. [40] 한국도 조선족들의 범죄나 외노자 범죄등이 일어나는데 그들의 종교[41]가 문제여서가 아니라 기존 집단과의 불화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이다. 이민문제를 종교 문제로 돌리는 전형적인 논점 일탈의 주장에 해당된다. 수학마냥 몇%가 넘는다고 문제가 터진다는 주장도 논리적이지 않다. 그렇다면 자기들이 주장하는대로 이슬람교가 단 한명이라도 존재할때는 왜 문제가 안터지고 꼭 5%가 넘으면 문제가 터지는 것인가? 1명이라도 존재하면 터져야 하는게 그들의 논리에 맞게 설명하는거 아닌가? 이러한 주장은 "암세포" 이슬람교와 모순적이다. 결국 이슬람교 존재자체가 위협이라면서 5%가 넘어야만 문제가 터진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이전에 언급했듯 숫자를 통해 강조하려는 수법으로 파악된다. 이슬람교도들은 프로토스의 광전사 마냥 전투와 살육에 목마른 사람들이 아니다.
  • 이만석 목사는 무슬림들이 쿠란의 실제 뜻과 다르게 번역하여 왜곡하고 있으며 정작 번역을 금지하는데 왜 왜곡하냐는 식으로 주장을 하는데, 쿠란에서 번역을 금지한다기보다는 번역한 것을 쿠란으로 여기지 말라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사실 쿠란을 아랍어로 읽을 것을 권장하고 있어서 오히려 아랍어를 배우라고 권유한다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비 아랍권 이슬람 국가들에서도 이슬람 신학과에선 아랍어 원문으로 수업한다.
전근대면 몰라도 만일 이슬람이 아랍어 내용과 비아랍어 내용이 달랐으면 이슬람은 지금쯤 지구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조금만 생각해 보아도 말이 안 되는 주장을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번역과 관련한 파트와를 소개하겠다. 1997.4.12 종무청 103호
파트와를 참조해 보았을 때 이만석 목사의 꾸란의 번역이 허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은 명백한 사실이지만 꾸란의 번역, 의미, 설명을 읽는 것도 보람있는 일이며 신앙생활의 일종이라고 하는 것을 보았을 때 이만석 목사의 주장은 왜곡임을 알 수 있다.

다만 위의 주장들을 통해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이슬람쪽의 주장과는 달리 이만석 목사가 무조건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최대한 순나, 하디스는 출처를 가져오기는 하고 파트와의 경우도 어디서 가져왔는지 출처는 밝히는 편이다.[42] 문제는 가져온 구절을 자기가 해석하고 싶은 대로 해석하는 데다 개신교적인 관점으로만 이슬람을 비판하기 때문에 객관적인 비판이라고 할 수 없다는 점이다.

객관적인 비판은 아무런 이해 관계가 없는 사람이 객관적으로 할 수 있는데 이슬람을 그저 선교의 대상으로 보는 사람이 객관적으로 비판할 수 있을 리는 없다. 심지어 단순히 무슬림들이 어떻게 예배를 하는가라는 정보전달을 하기 위한 글에서조차도 이슬람에 대한 증오를 부추기고 있다.[43] 특히 교과서에서 대한민국 종교 인구 비율대로 분량을 서술해야 한다는 말 부터 이미 교과서에도 자신의 입장을 서술하고 싶어하는 것이 보인다.

본인은 이슬람이 증오를 선동한다며 문제삼고 있으나 정작 할랄 푸드부터 시작해서 이슬람에 대한 모든 것을 증오하고 있다. 이 정도면 알칼리, 알코올 같은 아랍어에서 유래한 단어는 물론이고 아랍어, 아라비아 숫자도 이슬람화 염려가 있으니 쓰지 말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이런 논리라면 독일어를 공부하면 네오나치가 되고, 러시아어를 공부하면 러우전쟁을 옹호하는 대안우파가 되고, 중국어를 공부하면 마오주의자가 되는 기적의 논리가 탄생한다.

5. 여담

당연히 한국 이슬람 측과 종종 물의를 빚었다. 한국 이슬람계에서 항의했지만 본인은 들은 척도 안 하고 아예 CTS 방송국에까지 나와서 저러고 있다. # 본인이 귀 틀어막고 자기 할 말만 하니 한국 이슬람계에서도 극우 단체니까 그러려니 하고 무시하는 편이다. 사실 무슬림 중에서 한국인은 극히 드물고 외국인들만 많은데 대부분 유학이나 근로를 위해서만 잠시 머물다 가는 사람들이다 보니... 이만석 목사에게 관심을 가지기 힘들다.

한국 이슬람이 하는 사업들, 가령 이슬람캠핑장, 이슬람대학, 대현동 모스크 건립 등에 대해서 기독교의 반발이 제일 심하기도 하고 기독교 방송에 나와 왜곡을 설파하고 다니는 유명인이라 무슬림들 중에는 모르는 사람이 드물다.

충분히 온건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면서도 복음을 전달할 수 있다. 실제로 온건하게 이야기하는 개신교 목사들도 있다. # 사실 이런 방법이 반발을 사지 않으면서도 자기들이 말하는 "복음"을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물론 이 목사도 종교인이기 때문에 기독교만이 진리라는 것은 이만석 목사와 같이 부정하지는 않는다.

이만석 목사가 주장하는 유라비아 우려나 이슬람 극단주의 등 종교적 극단화, 무슬림 이민자들이 오일머니를 등에 업고 유럽에 가서 살라피즘을 마구마구 퍼뜨리고 샤리아 경찰이라면서 비무슬림들에게 깽판을 치고 심지어 테러를 일으키거나 2016년 쾰른 집단 성폭행 사건, 악마의 시, 반 고흐 화가 살해 사건과 같이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고 민주주의와 세속주의 원칙을 준수하지 않는 행동을 하는 사례 때문에 유럽에서 거의 나치나 다름없게 무슬림의 평판이 개판이 된 점 등은 사실이긴 하지만 무슬림 개인에 대한 혐오로 변질시키지 않고도 그것들을 통해 충분히 이슬람, 무슬림을 비판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이만석 목사의 이런 주장은 결국 무슬림에 무조건적인 배척, 다문화 반대주의, 제노포비아 등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으며 "암세포"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까지 비하하는 것을 보면 그의 자료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교회에서 배포하는 반이슬람 자료의 출처는 한국이란인교회인 경우가 많다. 그의 자료를 본다면 사실관계를 파악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2023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발발하기 전인 2021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하마스) 갈등의 역사 및 원인 대한 칼럼을 상세하게 기재하였는데 여기서 이슬람권 국가들이 이스라엘 및 유대인을 미워하는 이유를 쿠란을 근거로 서술하였다. #[44]

6. 관련 문서

  • 이슬람선교훈련원 - 해당 교회와 동일 인물이 운영하는 단체다.
  • 이만석 - 한국이란인교회 원장. 정치적으로 극우 성향을 띈다.
  • 만수크 - 이슬람이 쿠란 구절을 폐지하고 멋대로 바꿔 선교에 유리하게 왜곡한다는 주장. 항목 참조.
  • 타끼야 - 이슬람이 거짓말을 옹호하는 종교라고 주장한다. 항목 참조.
  • 개독교 - 몇몇 극단적, 광신적 신자들 때문에 기독교가 "개독"이라며 비난받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1]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알겠지만 사실상 한국에서 운영되는 것이 맞다고 봐야 한다. 실제로 이란 현지에 활동하는 선교사들과 비교하면 실례일 정도다. [2] 정작 이슬람에서 계시가 "자주" 바뀌지는 않았으며 자신이 믿는 개신교도 구약에서 신약으로 계시가 바뀐 적이 있다는 게 함정이다. 사실 예루살렘에서 메카로의 기도 방향, 여성의 숙려기간 등은 바뀌었지만 "자주" 바뀐 것은 아니다. 자세한 건 만수크 항목 참조. [3] 강서도서관 등에도 비치되어 있는 도서다. 지금도 종종 시중의 이슬람 서적 중 이런 이슬람포비아적 도서들을 찾기 어렵지 않다. [4] 알라항목 참조. 이만석 목사의 주장대로면 아랍기독교도들은 다른 신을 믿는 이단이 되어버린다... [5] 정작 그를 찾아주는 방송이나 대중매체는 없다. 당연하지만 지나친 편향성 때문이다. [6] 사이트의 글들을 보면 시아파의 이맘이나 개념에 대한 비판은 잘 없다. 시아파의 예배 아잔은 수니파와 차이가 있는데 주로 수니파에 집중되어 있다. [7] 이에 대해서도 이만석 목사가 반대하는 글을 올리기도 한다. 대현동 모스크 건축 논란과 비슷하게 캠핑장이 들어오면 이슬람교가 확산된다는 논리로 반대를 한다. 마치 이슬람교가 옴진리교 마냥 문제가 있다는 헤이트스피치이다. [8] 네이버나 다음등 포털사이트의 댓글이나 에펨코리아 같은 커뮤니티에서 이슬람에 대한 혐오발언이나 가짜뉴스들이 많은 것이 그 증거. 물론 무슬림들이나 이슬람권의 사고( 하마스 다에시)같이 잘못이 존재하지만 여전히 한국에서 이슬람교도들에 대한 인식은 좋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9] 정작 이슬람에는 초대(다와)라는 개념의 선교 비슷한 것이 있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초대이기 때문에 대학생을 대상으로 개신교처럼 길거리 전도를 하는 경우는 드문 편이다. 무슬림들은 주로 자기 종교를 알고자 하는 사람에게 친절하는 식으로 이슬람을 알리는 경우가 많다. 사실 한국의 이슬람교에서 자기들을 알리고 홍보하는 수단은 한국에선 채팅이슬람온라인 같은 온라인 사이트정도가 다이다. 이외에는 이슬람교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길거리 전도를 하지는 않는다. [10] 수험생이면 알겠지만 아랍어를 제2외국어로 삼은 이유는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이전 이야기이긴 하지만 서울대학교의 제2외국어 필수화, 그리고 한국외국어대학교 등의 일부 대학은 사회탐구를 대신하여 수능최저 산정과목 중 하나로 인정해 준 적이 있는데 제2외국어를 학습할 시간이 부족한 수험생들이 비교적 다른 수험생들도 베이스가 부족한 아랍어를 응시해서 잘 찍으면 로또처럼 1등급을 받을 수 있다는 소문이 퍼져 수험생들 스스로가 수능에서 아랍어를 제2외국어로 선택한 것이기 때문이다. 아랍어과에도 개신교인들이 은근히 존재하는데 선교를 위해서 아랍어를 배우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11] 희소한 언어는 대한민국 정부에서 혜택을 주고 있다. 특수외국어 교육 진흥에 관한 법률 문서 참조. [12] 개종을 할 수밖에 없다고는 서술했지만 애초에 카타르나 사우디같은 곳의 이슬람코스는 무슬림이 아니면 받지 않으며 대부분 이슬람권에서 쿠란을 외워오는 수재들이 많아서 들어가기도 쉽지 않다. 들어가더라도 영어와 아랍어 둘다 잘해야 하는데 수료하기도 쉽지가 않다. 국내에 이슬람 코스를 수료한 무슬림 이맘 이주화 같은 사람 말고는 거의 없다. 아랍어 코스는 비무슬림들도 들어갈 수 있는데 아랍에도 기독교도들이 생각보다 많기 때문이다. 시리아에 가장 많다. 또 아랍=이슬람이라고만 보는 것은 스트레오 타입에 가깝다. 동아시아인=중국인이 아니듯 아랍인들이라 해서 모두가 무슬림이 아닌데 전형적인 오리엔탈리즘적인 시선이다. 또 이런 논리라면 독일어를 배우면 네오나치가 된다는 개소리도 정당화 하게 된다. [13] 정작 과로사 같은 유튜버를 보면 글쎄...과로사의 경우 무슬림 아버지를 두었지만 정작 본인은 비종교인이다. 가끔씩 다문화 프로그램에 나오는 국제결혼한 부부들을 보면 이슬람에서 다른 종교로 바꾼 사례도 나오는등 꼭 무조건 이슬람을 고수한다는 것은 편견이다. [14] 개종은 그들 스스로 한 것이지 누가 칼들고 협박해서 한 게 아니다. [15] 우선 교회에 모니터링을 한다거나 하는 일은 사실이 아니다. 한국이슬람중앙회는 박정희 정부 시절인 1970년에 지은 서울성원 재건축 자금도 없어 허덕이는 중인 게 함정이다. 또한 이슬람대학교도 과거에 조성하려고 하였지만 이슬람대학교 계획은 엎어졌다. 대한뉴스에서 이슬람대학교 기공식 영상을 확인해볼 수 있다. 오죽하면 튀르키예 종교부가 재건축 비용을 지원하겠다고 하겠는가. 현실이 이런데 어떤 돈이 있어서 교회가 편의점보다 많은 한국에서 건물을 임대할까. 네이버 지도 및 구글지도를 모니터링 해도 수도권 내에 모스크는 대부분 접근성이 좋지 않거나 혹은 오래된 건물을 임차한 경우가 많다. 있더라도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은 곳 주변에 있다.차라리 그 돈으로 수도권에 모스크를 화려하게 짓는것이 더 현실성이 높을 것이다. [16] 한국인 무슬림들의 말에 따르면 현재 쿠란은 과거 명지대 교수 최영길 교수의 번역 말고는 번역된 것이 부족하다고 호소하고 있는데 이유는 생각보다 최영길 교수의 번역이 오타나 오류가 많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들은 재번역을 바라고 있으나 중앙회의 자금 부족, 이슬람, 아랍어에 정통한 한국인 무슬림의 부족 때문에 여전히 신기루다. [17] 최근에는 미등록 한국인 무슬림을 조사하고는 있기는 한데 이러한 조사는 중앙회에서 명부를 확실하게 관리하지 못함을 의미한다. [18] 당장 주마(금요일)예배는 오후 1시에 실시하는데 한국에서 대학생이나 직장인이면 이 시간에 이슬람사원에 가서 주마를 드리기가 어렵고, 예배의 경우에도 시간 맞춰서 지키기가 어렵다. 할랄푸드 문제도 심각한게 정말 보수적인 기준에 맞추면 채식을 해야하고, 널럴하게 적용해도 돼지고기만 안먹으려고 해도 지키기가 쉽지 않다. [19] 사우디에서도 그렇고 요즘 mz세대들의 경우 이슬람을 과거에 비해 독실하게 믿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무력을 동원해도 모든 사람들을 독실하게 믿게 하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에 가깝다. [사우디아라비아의] 파트와 사이트로 와하비즘적인 성향이 강하지만 보통 채팅이슬람측에서도 안내를 이쪽으로 해준다. [21] 사실 메디나 계시=폭력 메카 계시=평화 이라고 보긴 애매한데 바까라 장은 메디나에서 계시가 내려왔음에도 종교에는 강요가 없다는 2:256절이 있다. 따라서 단순 이분법으로 보긴 무리가 있다. 디야넷 2:256 타프시르에도 이는 명확하게 명시되어있다. 디야넷 설명 [22] 타키야항목 참조. [23] 채팅이슬람측에서 질의결과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함.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예배상태에서 청결여부를 따질 수 있다고 주장함. [24] 영문위키를 참조시에도 사람의 성품은 불결할 수 있다하지 사람 자체가 불결하다는 내용은 없다. [25] 소수지만 쿠란주의자 같은 경우 무조건적인 복종을 하라는게 아니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26] 영문 위키백과에 따르면 dar al-Islam,(문자그대로 이슬람 영토) dar al-sulh,(조약의 영토) dar al-harb(전쟁의 영토) 이 세가지로 나뉜다고 한다... 이것만 봐도 이만석 목사의 글들이 전반적인 전문성이 떨어짐을 알 수 있다. [27] 위의 답변에 대한 반박은 밑의 "기타반박" 항목을 참조할 것. 여담이지만 일방적인 헤이트 스피치 등에 대해 자제해 달라 메일을 보낸 것에 대한 답변이다. 각종 세속주의에 근거한 반박을 해도 어떻게든 이슬람을 비판하는 데 몰두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일단 자기에 반대되면 속고 있는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으로 보면 왜곡과 아집으로 가득한 것을 알 수 있다. [28] 상대가 나름의 논리를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논리를 깨기가 쉽지 않다. 무함마드나 이슬람교의 풍습에 대해서 나쁘다고 인지하게 해야 논리를 겨우 깰 수 있기 때문에 결국 네거티브 전략으로 나올 수 밖에 없는것이다. [29] 정작 미군이나 한국군도 전시상황에서 배신은 사형이라는 법이 현재 존재한다. 그런 식이라면 미군도 폭력적인 집단이 되는 것인가? [30] 실제로 반기독교를 주장하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은 기독교인의 돼지고기 섭취나 구약/신약 차이등으로 공격하거나 기독교인들이 성적으로 방종하다는 등으로 기독교를 공격하기도 한다. [31] 코셔푸드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유대교 코셔는 할랄보다 더 엄격하다. 가령 우유랑 소고기를 같이 먹으면 안된다거나 하는 율법도 있다. 이슬람에서는 하나피만 해당하는 비늘 없는 생선 금지를 유대교는 엄격하게 따르는 종파가 더 많다던가.. [32] 여전히 국공내전은 종결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1949년에 난징이 함락되고 1949년 12월 7일 중화민국 행정원이 타이완으로 이전하긴 했어도 서로 휴전이나 종전을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자세한 건 국공내전 문서 참조. [33] 만일 이만석 목사 주장대로 서술하면 역사의 맥락을 오용하게 되는데 우선 한반도에 전래된 종교를 보면 불교,유교,도교,천주교,기독교,이슬람교등이 있다. 불교가 비교적 기독교나 천주교에 비해 오래들어왔으며 왕즉불, 유불신 사상, 호국불교등으로 한반도의 역사에 오래 영향을 미쳤다. 또한 우리가 쓰는 인연,식당,점심등의 용어도 불교에서 온 단어이다. 불교는 이처럼 한반도 역사에서 오래 지배적인 종교로 영향을 끼쳤으며 조선시대의 숭유억불 시기에도 신앙으로 존재할 수 있었다. 기독교와 천주교는 이에 비해 전래가 늦게 되었고 역사적으로 영향을 미친 시기는 비교적 적다. 선교사들의 문맹개선이나 의료개선이나 해방이후 빈민 구제, 일제시대때의 신사참배 저항 이정도로 역사를 서술할 수는 있겠다. 역사에 영향을 미친 순위로 따지면 불교가 많고 그 다음이 기독교이다. 즉 이만석 목사가 기대한 기독교분량이 많은 서술은 불가능하고, 이만석 목사의 의도대로 되지 않는다. 세계사에서는 가능하지 않냐고 하지만 세계사에서도 중세 기독교의 역사에 대해서 다루지만 불교나 힌두교 이슬람교에 대한 역사도 일정 분량 서술하고 있다. 왜냐하면 세계적인 역사이기 때문에 특정종교만 많이 서술할 수는 없다. 이러한 중립을 어기려고 시도하는게 인도의 모디 정부나 터키의 에르도안 정부인데 이 두정권은 세속주의자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하고 있다. [34] 지즈야도 어떻게 보면 결국 불평등한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다지같은 세계사 강사들도 이 부분은 언급을 한다. [35] 수피즘같이 음악에 친근한 경우도 많다. 튀르키예에서도 수피 전통음악이나 댄스등은 문화차원에서 보존되고 증진되고 있다. [36] 정작 개신교 보수주의자들은 CCM도 혐오하는 형편이다. 극과 극은 통한다. [37] 그런 근거로 하면 사실 기독교 또한 자유롭지 못하다. [38] 물론 사우디 와하비즘 정권이 무함마드 어머니의 묘역이나 초기 이슬람 유적을 파괴한 경우가 있지만 이는 이슬람 이후의 유적이다. [39] 1997년 알바니아 금융위기로 일어난 혼란 혹은 유고내전등이 있지 않냐고 하지만 이는 종교의 문제보단 민족의 문제가 강하다. 유고 해체 전에는 종교문제가 잘 발발하지 않았었다. 현대에는 종교 충돌 문제는 거의 없다 싶이 하다. [40] 여담으로 세계로 넓혀볼 때 이슬람 비중이 높은 싱가포르(15% 이상이 무슬림이다)에서는 이슬람 테러문제가 거의 없다 싶이하다. 참고로 싱가포르에서는 MUIS #라는 싱가포르 정부 기관에서 이슬람교를 관리한다. 싱가포르에선 배교등에 대해서 자유로우며 샤리아에 대해서 일부적인 재판은 가능하다.이만석 목사의 주장이라면 싱가포르에서도 폭탄테러가 터지고 난리 나야하지만 싱가포르에선 그런 문제가 없다. 브루나이에서도 그러한 문제는 없다. 심지어 근본주의 국가인데도! 수리남이나 피지 이런 곳도 무슬림 이민자가 제법 있는데도 폭탄테러등의 문제가 있지는 않다. 속령으로 범위를 넓히면 마요트처럼 프랑스의 한 지방으로 멀쩡히 존재하는 인구 대부분이 무슬림인 지역도 있다!. 참고로 마요트 무슬림 주민들이 직접 프랑스의 주로 편입을 요청했었으며, 프랑스는 가톨릭이 많으며 이슬람세계에선 프랑스가 이슬람의 적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즉 퍼센트로만 이슬람교의 폭력성을 따지는건 마치 개신교 믿는 국가는 다 잘산다 같은 논리적 비약에 불과하다. [41] 주로 불교나 도교 유교가 많은데 이러한 종교가 문제라고 주장하는 한국인은 거의 없다. [42] 다만 파악해 보면 구절이 없는 하디스를 가져와 인용하는 경우도 있어서 영미권 개신교의 자료를 번역해서 쓰는 것으로 보인다. 그럴듯하게 보이려고 시도는 하고 있다고 보는게 타당하다. 예전처럼 황당하게 비판하면 사람들이 거짓인걸 알기 때문이다. [43] 무슬림들이 방구를 뀌면 예배가 무효가 된다는 것도 태클을 걸기도 하는데, 이것은 문화적인 상대주의로 접근할 수 있는 문제임에도 이를 비판하기도 한다. [44] 하지만 이것을 객관적으로 볼 수 없는게 중세 시대 이슬람-유대교 협력관계를 설명할 수 없다. 물론 중세에도 이슬람-유대교 갈등이 있긴 했지만 지금과 같지는 않았다. 적어도 이슬람과 유대교가 서로 공존하기도 했으며 다윗의 별도 이슬람에서 상징으로 사용했던 적이 있었던 만큼 이스라엘-하마스 갈등이나 이슬람권에서 유대인을 미워하는게 쿠란때문이라고 보기도 애매하다. 만일 그렇다면 팔레스타인 기독교도들은 PLO에 가입도 하지 않고 이스라엘 편을 들거나 방관했어야 하는데(쿠란이 아니라 성경을 따르니까) 팔레스타인 기독교도들이나 레바논 기독교도들도 PLO나 헤즈볼라에 동조하는 경우가 제법있다. 단순한 종교의 문제라고 보는것은 객관적인 역사 서술이 아니다. 현대 학자들은 팔레스타인 갈등은 민족문제에서 시작된 것라는 시선이 우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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