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리히 뮐러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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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스위스 세리에 A 우승 당시 빈터투어 선수단. 맨 윗줄 오른쪽 2번째 선수가 하인리히 뮐러. | |
이름 |
하인리히 뮐러 Heinrich Müller |
출생 | 1888년 |
사망 | 1957년 5월 11일 |
국적 | 스위스 |
출신지 | 불명 |
포지션 | 풀백 |
신체조건 | 불명 |
소속팀 |
FC 빈터투어 (1904~1911) 토리노 FC (1911~1912) FC 빈터투어 (1912~1917) |
국가대표 | 11경기 1골 ( 스위스 / 1909-1913) |
감독 | 스위스 대표팀 (19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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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위스의 전 축구인.2. 생애[1]
2.1. 선수 생활
2.1.1. 클럽
뮐러는 1904년부터 FC 빈터투어(Winterthur)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고 빈터투어는 1906년과 1908년에 스위스 세리에 A 우승을 차지했다.뮐러는 1911-12 시즌을 토리노 FC에서 보낸 것을 제외하면 모든 커리어를 빈터투어에서 보냈고 토리노에서는 수비수임에도 13경기 3골의 기록을 남겼다.
1916-17 시즌에 빈터투어는 다시 한 번 스위스 세리에 A 정상에 등극했고 뮐러는 이 시즌을 마지막으로 축구화를 벗었다. 빈터투어는 이 시즌 이후로 현재까지 스위스 축구 1부 리그 우승을 차지하지 못하고 있으며 뮐러는 빈터투어의 세 차례 우승을 모두 경험한 유일한 선수로 남아 있다.
뮐러는 1913년부터 1916년, 1921년부터 1924년까지 친정팀 빈터투어의 회장직을 맡기도 했다.
2.1.2. 국가대표
뮐러는 1909년 4월 4일, 카를스루에에서 열린 독일과의 원정 경기에서 대표팀 신고식을 치렀고 그 경기에서 주장으로 출전했다는 기록이 있다.1910년 잉글랜드 아마추어 팀과의 시합에서 뮐러는 원래 경기에 참가할 계획이 없었지만 이 경기에서 주장으로 나섰던 에밀 글레이저(Emile Glazer)가 부상을 입는 바람에 경기 시작 8분 만에 주장 완장을 이어 받고 남은 경기를 치렀다.
뮐러는 1913년까지 13경기의 대표팀 경기를 치러 은퇴할 때엔 스위스 대표팀 역대 최다 출전 기록 보유자이기도 했다.
2.2. 감독
뮐러는 1924년부터 1943년까지 스위스 대표팀 기술 위원회에서 일했고 1934년 월드컵에는 스위스 대표팀의 감독으로 출전했다.그리고 뮐러는 스위스의 첫 월드컵에서 팀을 2라운드에까지 진출시켰다.
3. 수상
3.1. 클럽
- 스위스 세리에 A 우승 3회: 1905-06, 1907-08, 1916-17(FC 빈터투어)
- 세리에 A 준우승 2회: 1908-09, 1915-16(FC 빈터투어)
[1]
출처: 위키피디아, 11v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