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a81919><colcolor=#fff> 튜더스 The Tudor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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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 사극, 드라마, 로맨스 | |
방송 기간 | <colbgcolor=#a81919><colcolor=#fff> 시즌 1 | 2007년 4월 1일 ~ 2007년 6월 10일 (10회) |
시즌 2 | 2008년 3월 30일 ~ 2008년 6월 1일 (10회) | |
시즌 3 | 2009년 4월 5일 ~ 2009년 5월 24일 (8회) | |
시즌 4 | 2010년 4월 11일 ~ 2010년 6월 20일 (10회) | |
채널 |
BBC Two CBC Television Showtime TV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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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사 |
Peace Arch Entertainment Showtime Network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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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 | 마이클 허스트 外 | |
극본 | 마이클 허스트 | |
의상 | 조안 버진 | |
출연 |
조나단 리스 마이어스,
헨리 카빌,
샘 닐,
피터 오툴 마리아 도일 케네디, 나탈리 도머, 제임스 프레인, 조엘리 리처든슨 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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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 |
국내 스트리밍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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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목 그대로 튜더 왕조의 헨리 8세의 일대기를 다룬 캐나다, 아일랜드 합작 드라마. 다채로운 캐스팅, 화려한 세트와 의상 등으로 주목을 받았다. 한 시즌이 10화 정도기 때문에 스토리 진행이 빠른 편. 19금 장면들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등 뒤를 주의해야 할 드라마이기도 하다.국내에선 2007~2009년 채널CGV에서 방영했는데 무삭제판으로 방영함과 동시에 19금 장면들을 편집하고는 명명하길 특집 '순결한 튜더스'(...). 시즌 3까지는 방송했지만, 마지막 시즌4는 국내 방영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흑역사급으로 간주되지만, EBS 세계명작 드라마로 방영된 적이 있다. 하지만 꾸준히 더빙 하던 세계명작 드라마가 튜더스 방영부터 더빙을 포기하고 자막 방영으로 결정하였고 자막으로 내보낸 인물 해설도 채널CGV판보다 좋지만... 아무래도 삭제가 너무 많아서 인기가 없었다.
사극 전문 케이블 채널인 CNTV에서 2016년 3월부터 시즌 1을 시작으로, 국내 처음으로 전 시즌 연속 방영을 실시했다. 주당 2편(수/목요일), 심야 시간대에 6월 하순부터 마침내(!) 마지막 시즌 4가 방영을 시작하여 7월 20일에 종영되었다.
2. 시놉시스
6명의 아내들 중 2명은
이
혼, 2명은
처
형, 1명은
사별, 1명은
생존... 당신은 이 이야기를 알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당신은 겨우 결말만 알고 있을 뿐이죠. 이 이야기의 본질을 알고 싶다면 다시 이야기의 시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
3.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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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1 | 시즌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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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3 | 시즌 4 |
3.1. 특징
컨셉은 록큰롤 스타 같은 군주. 보고 나면 왕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영국이 무대이지만, 영국 드라마가 아니다. 캐나다와 아일랜드 합작. 물론 뒤에 BBC를 통해 방영되기는 했다.[1]
특이점이라면 그간 헨리의 자식들 중에서는 엘리자베스 공주가 가장 주목받았지만 이 드라마는 메리 공주를 더 주목했다는 점이다.
시즌을 거듭할 수록 인물이 물갈이되면서 오프닝에도 변화가 일어난다. 드라마를 안 본 사람들도 이 오프닝에 대한 평은 좋은 편. #
정사신도 눈길을 끌었지만 중세의 다양한 고문이나 처형 방식에 대한 묘사도 일품(?)이다. 시즌 4에 가서는 Hanged, Drawn and Quartered도 묘사된다. 물론 지나치게 잔인하다 싶으면 적절히 끊어주는 센스가 있으므로 괜히 쏘우 같은 영화를 생각할 필요는 없다.
시즌 1은 사극이 아닌 트렌디 드라마라고 욕을 꽤 먹었는데, 뒤로 갈수록 전통 사극의 맥락에 맞추어간다. 시즌이 계속되면서 인물들의 연기력이나 사극으로의 적응이 되는 것도 볼만한 장면. 특히 시즌 4의 마지막 장면은 웬만한 사극의 마지막회 이상의 감동을 준다.
시즌별로 유명 영화배우가 나온다. 시즌 1에서는 토머스 울지 추기경 역으로 샘 닐, 시즌 2에서는 교황 바오로 3세 역으로 피터 오툴, 시즌 3에서 오토 폰 발트부르크 추기경 역으로 막스 폰 시도(Max Von Sydow), 시즌 4에서는 캐서린 파 역으로 졸리 리처드슨(Joley Richardson)이 출연한다.
헨리 8세의 결혼 생활과 거기서 파생되는 갈등 구조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결혼 생활을 다 그릴 수는 없다 보니 왕비들과의 갈등 구조가 굉장히 짧고 드라마틱한 편이다. 그러다 보니 긴 시간대에서 점진적으로 진행된 실제 역사도 그러한 갈등 구조에 속도를 맞춰간다. 그래서 실제로는 긴 시간대가 드라마 내에서는 굉장히 압축되어 있는게 특징이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좀 어색한 부분도 없잖아 있다. 에피소드를 연달아 보다보면 잉글랜드와 프랑스, 스페인이 매 화마다 서로를 밥 먹듯이 배신하기 때문에 정신이 없다(...). 사실 관객에게는 불친절할 수 있어도 사극으로서 보자면 오히려 이게 고증이다. 잉글랜드 대외정책사에서 헨리 8세 치세인 16세기 초반은 종교개혁과 전 유럽의 교파별 분열과 대립, 그 와중 스페인의 범유럽 가톨릭 세력 수장으로서 부상과 반대로 프랑스의 종교, 정치적 난항으로 인한 정치적 카톨릭 이념의 약화, 잉글랜드의 미완의 종교개혁이란 요소로 인해 스페인, 프랑스, 잉글랜드 삼각관계가 하루가 멀다하고 뒤집어졌다. 그나마 스페인-프랑스 양자 관계야 이탈리아 전쟁과 합스부르크(오스트리아) vs 발루아(프랑스) 가문 대립 때문에 3차 이탈리아 전쟁과 캉브레 동맹 전쟁 이후 확실한 라이벌 관계에 들어갔지만, 잉글랜드는 여전히 지정학적 논리에 따라 전통적으로 프랑스를 견제할 대륙 열강으로 스페인과 동맹을 맺느냐, 아니면 종교 및 이념적 논리에 따라 스페인을 적대할 것이냐, 그렇다면 지금까지 대불관계는 어찌 되느냐에 대해 기존 잉글랜드 외교사의 경험이 통하지 않던 엄청난 과도기적 시대였다.
그나마 헨리 8세 이후 즉위했다가 단명한 아들 에드워드 6세, 훗날 엘리자베스 1세 시절을 거치고 스페인과 무적함대라는 거한 무력충돌도 겪으며, 잉글랜드는 전통적인 적이었던 프랑스보다 새로운 신흥 적인 스페인을 더 적대하는 방향으로 방향을 확실하게 잡았다. 그러나 헨리 8세 시절엔 애초에 잉글랜드 종교 개혁도 수장령만 내렸을 뿐이였다. 더군다나 이때만 하더라도 결과론적으로 이루어진 수준의 영구적이고도 근본적인 가톨릭 교회와의 결별은 잉글랜드에서 거의 영향력이나 입지가 없었던 극소수의 루터, 칼뱅 유럽 대륙식 종교개혁의 영향을 받은 본격적 신학적 개신교도들을 제외하곤 헨리 8세 본인 포함해 누구도 상상못한 결과였다. 뒤집어 말하면 헨리 8세 시절 땐 당장 잉글랜드의 주적도 전통적인 프랑스인지 스페인을 새로 적으로 설정해햐 할지, 잉글랜드의 나머지 가톨릭 교회와의 결별은 가톨릭 세력의 수장인 스페인 측에서 어느정도 묵인하고 여전히 외교적 우호관계를 맺을 수 있는 수준인지, 도저히 묵과할 수 없을만큼 근본적인 차이였는지, 문자 그대로 모든게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던 시점이다. 근세 유럽의 종교 분열기 가톨릭 세력의 수장인 스페인 vs 종파는 좀 별나도 엘리자베스 시절쯤 되면 확고히 신학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국제 개신교 세력의 메이저 중 하나로 등극한 잉글랜드 vs 가톨릭도 중요하지만 만만치 않은 위그노 세력간에 갈팡질팡하다 결국엔 아예 근대 세속주의적 정치논리의 토대를 깔아버린 후기 발루아-초기 부르봉 프랑스간의 삼자 대립은 오히려 헨리 8세 치세가 거의 끝날무렵 프랑스에선 내전이 펑펑 터지고, 잉글랜드 국교회는 이미 개신교적 정체성을 굳혔고, 반대로 스페인의 가톨릭 교조화는 펠리페 2세 치세를 겪으며 한층 강화되면서 이르게 잡아도 잉글랜드 기준에선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양쪽의 메리 여왕 사후에 들어서는 체제이다. 헨리 8세 시절의 잉글랜드 대외정책은 전형적인 과도기에다가 외부적으론 종교 개혁과 분열로 인한 유럽의 정치적 대립이 본격적인 근대적 이데올로기적 대립의 형태를 띄기 전, 여전히 문화와 종교를 공유하는 범유럽 기득권 내의 이권충돌 성격이 강해 국제적으로 엄청나게 다양하고도 정신없는 동맹과 통수, 원수 관계를 낳았던 이탈리아 전쟁과 맞물려 잉글랜드, 프랑스, 스페인 삼국의 외교관계가 하루가 멀다고 휙휙 바뀌던 시절이 맞다.
하지만 시청자들이 느끼는 시간대는 굉장히 짧아 보이기 때문에 헨리 8세와 그 주변인들은 엄청난 동안으로 나온다. 제작진도 뭔가 이상하겠다 싶었는지 마지막화 바로 이전 에피소드에서 주요 인물들의 분장을 확 바꿔 버린다. 특히 왕이 급노화해서 골골거린다.[2]
늘 그렇듯 자잘한 고증오류들이 존재하지만 개중에서도 문제가 있다면 너무 스캔들에만 집착하다보니 헨리가 왕비 갈아치우는게 여자후리고 다니려는 목적 때문으로 보인다. 당연히 이는 사실이 아니며 헨리 8세는 20대 후반부터 자신보다 6세 연상인 아라곤의 카탈리나가 여러 번의 사산과 유산을 반복하면서 더 이상 후계자를 낳기 어렵다는 게 확실해지자, 그 때부터 캐서린 왕비와의 사이는 공식적인 관계만 유지하며 이혼을 시도했다. 특히나 정부 엘리자베스 블런트에게서 사생아 헨리 피츠로이를 얻게 되자 토머스 울지를 닥달하여 이혼 시도를 했다. 그러니 드라마처럼 앤 불린에 홀딱 반해서 사이좋던 조강지처를 버린 게 아니라는 것.
게다가 헨리 8세가 이혼을 처음 시도했을 때는 드라마처럼 앤 불린을 만나고 난 뒤가 아니라 앤 불린이 어릴 때부터였다. 헨리 8세가 아라곤의 카탈리나와 이혼하려고 했던 이유는 여색질에 미쳐서가 아니라 적법한 남자 계승자를 얻어서 왕국을 튼튼하게 하려는 욕구 때문이었다. 당시 헨리 8세의 유일한 적자녀였던 메리 공주는 당대의 풍습에 따라 헨리의 누나(스코틀랜드)나 여동생(프랑스)처럼 다른 유럽 왕실에 시집을 보내야했는데, 이는 하나 남은 계승권이 외국 왕실로 넘어가는 거였고 이런 상황을 영국의 신하들도 매우 크게 우려하고 있었다. 때문에 헨리 8세의 이혼 시도는 왕이 새장가를 가서 든든한 후계자를 보는 것에 좀 협조해주자는 의견이 영국의 신하들 사이에서도 많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다만 헨리 8세가 아들을 낳는 것에 집착하고 아내들을 닥달하는 모습은 드라마 내에서도 어느 정도 묘사된다.
그리고 의외라면 드라마가 기존 대중역사서나 소설에서 반복하던 휘그 사관의 오류를 적극적으로 부정하고, 20세기 중반 이후의 현대 영국사학계 견해를 적극적으로 극에 반영했다는 것이다. 때문에 먼나라 이웃나라 등 대중역사서에 익숙한 시청자는 본작이 '친가톨릭적 드라마'라 오해할 수 있는데, 이는 휘그 사관의[3] 오류가 정정되면서 생긴 차이이다.
물론 역사학계는 인물 개개인에 대한 도덕적 평가를 가급적 지양하므로,[4] 극중의 캐릭터 해석은 '전적으로 역사학적인 평가'가 아니라 '드라마의 해석이 섞인 평가'이다. 그러나 이게 본작이 '반개신교'[* 애당초 헨리 8세의 종교 정책에 대한 시니컬한 평가를 '반개신교'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헨리 8세는 개신교라기보다는 '교황 없는 가톨릭'을 원한 거에 가까웠는데, 그의 종교 정책에 대한 냉소적 평가가 왜 반개신교이겠는가. 에드워드와 엘리자베스의 교의적(전례적X) 정체성은 개신교였지만, 이들 역시도 비국교회 개신교에는 적대적이었고 탄압적이었다. "The regimes of Henry VIII, Edward VI, Elizabeth and James I all put Protestants to death as well, for beliefs that were more radical than those permitted by the established Church of the time. In addition, Elizabeth executed almost 200 Catholics, in theory for treason but actually just for attempting to practise their religion. The executions that followed the rebellion of the northern earls add another couple of hundred to that figure."
[
헨리 8세, 에드워드 6세, 엘리자베스 1세와 제임스 1세 모두 비국교회 개신교 신자들을 죽음으로 몰고갔다. 당대 국교회가 허용하던 것보다 더 급진적인 믿음을 이유로. 게다가 엘리자베스는 200명의 가톨릭 신자들을 처형했는데, 이론상으론 반역죄이지만 실제로는 단지 가톨릭 신심 행위를 시도했기 때문이었다. 이와 별개로 북부 백작들의 반란에 이어 일어난 처형 건수 수백명이 있다. (
《A Brief History of Britain 1485-1660: The Tudor and Stuart Dynasties》.
Ronald Hutton)] 혹은 '친가톨릭' 드라마라는 소리라는 건 말도 안되는 오해이다. 예컨대, 오늘날 임진왜란을 다루는 사극이 선조를 '암군'이 아니라 '똑똑한 소인배'로 묘사했다면, 구체적인 캐릭터 묘사에선 당연히 극의 해석이 들어가지만, 기존의 통념보다는 역사학적 시선에 더 다가선 것이다.[* 헨리와 에드워드의 정책이 많은 반발을 불렀다는 것은 학계 시선에 부합한다. 당시 잉글랜드에서 개혁적인 성향을 띄던 사람들도 대다수는
토머스 모어와
에라스뮈스의 노선이었지, 로마
교황청으로부터의 단절을 주장했던 것이 아니다.(Duffy, 2017) '젠트리의 열광적 지지' 같은 것도 전혀 사실과 거리가 멀었다.
헨리 8세로부터
수도원 자산을 매각한 일부 귀족들을 제외하면 대다수는 헨리 8세의 종교정책에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잉글랜드 교회가 완전히
개신교로 자리잡은 것은
엘리자베스 1세 치세 막바지나 되어서야 가능했고, 그때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충돌이 있었다. 이러한 가톨릭 교도의 반발은 역사학자 Ronald Hutton 교수의 말대로 이는 당시 잉글랜드의 가톨릭 교회가 '유럽에서 가장 덜 부패한 교회'였으며 가톨릭에 대한 대중들의 충성도도 높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다수의 백성들은
수도원 폐쇄와 여러 대중신심 행위를 폐지당한 것에 대한 여파를 날카롭게 느끼고 있었고, 시즌 3에서 비중있게 묘사된 헨리 8세 시기의 '은총의 순례' 반란과 엘리자베스 1세 시기의 '북부 지방 봉기'에 이르기까지 대대적인 반발을 일으켰다.(Cunich, 2009) 오히려 메리의 종교 정책은 가장 인기가 좋았다. "The total import of the evidence of both rebellion and will-making is that Mary's Catholicism attracted more spontaneous support from the English than Edwardian Protestantism or that of the early reign of Elizabeth."[
전체적인 반란과 유언서들의 증거들을 종합해볼때 메리의 가톨릭 신앙은 에드워드의 개신교 신앙이나 엘리자베스 치세 초기의 그것보다 더욱 자발적인 지원을 잉글랜드인들로부터 이끌어내었다. (
《A Brief History of Britain 1485-1660: The Tudor and Stuart Dynasties》. Ronald Hutton) 유언장을 조사한 이유가 의아할 수 있는데, 튜더 시대 잉글랜드는 소수의 열렬한 특정 교단 신자들과 대다수의 방관자들로 구성되어있기에 정확한 종교 통계를 위해선 당대인들이 남긴 유언장에 어떤 신심이 들어가있는지를 조사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엘리자베스 치세를 초기로 한정한 이유는 에드워드(6년)나 메리(5년)에 비해 훨씬 오래 재위(45년)하였기 때문이다.] 애당초 튜더스는 무슨 종교방송 드라마가 아니라, 애로씬이 난무하는 21세기 영어권 상업드라마이다.현재를 기준으로 보아도 막장드라마로 분류될만큼 파격적인 전개를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실제 역사를 크게 왜곡한 건 별로 없다. 오히려 등장인물의 대사 등등에서 문헌 고증에 매우 충실한 장면들이 넘쳐난다.
4. 등장인물
4.1. 잉글랜드
4.1.1. 튜더 왕조
- 아라곤의 캐서린: 마리아 도일 케네디
- 클레베의 앤: 조스 스톤
- 캐서린 하워드: 탬진 머챈트
- 캐서린 파: 졸리 리차드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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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렛 공주:
가브리엘 앤워
헨리의 누나. 콧대높고 세상물정 모르는 그야말로 공주님이다. 앤 불린을 무시하고 그녀가 왕비가 되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원래 나이많은 포르투갈 왕과 정략결혼을 하기로 되어있었으나 한번 갔다가 다시 영국으로 돌아와서 찰스와 결혼한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찰스 브랜던 항목 참조.
4.1.2. 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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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울지
추기경. 시즌 1의 핵심인물로서 거의 모든 사건에 관여하고 있다. <쥬라기 공원> 시리즈의 앨런 그랜트 박사로 유명한 샘 닐이 담당.
성직자임에도 불구하고 권력과 재물에 대한 탐욕이 상당하며[5], 노련한 정치가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헨리에게 능력을 인정받아 위세가 대단했으나 적을 지나치게 많이 만드는 바람에 몰락한다. 헨리의 바람기를 눈감아주고 부추겼으며 캐서린과의 결혼 무효화를 담당했다는 이유로 캐서린을 비롯한 스페인 왕가와 적이 되었고, 출신이 보잘것 없어 무시했다는 이유로 찰스 브랜던과 적이 되었다. 또 울지가 가진 기득권을 빼앗기 위해서 노포크 공작과 불린 가문이 손을 잡게 된다. 앤 불린은 개인적인 이유로 울지를 미워했다.
시즌1 종반부에 찰스 브랜던, 토머스 불린 등에 의해 권력에서 밀려난 직후 캐서린 왕비와 내통하여 앤 불린을 몰아내려 했지만, 발각되어 런던으로 압송되던 중 죽었다. 다만 극중에서 칼로 자살한 것은 픽션이며, 실제로는 런던에 도착하기 전 병들어 죽었다. 체포되면서 "내가 왕에게 충실했던 것만큼 하느님께 충실했다면, 이런 꼴은 당하지 않았을텐데..."라고 한탄한 장면은 실제 역사를 반영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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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컬페퍼
시즌4에서 등장. 배우는 토렌스 쿰스. 어떻게 보면 잘 생겼고 어떻게 보면 정말 정말 느끼하게 생긴, 냉철하면서도 거친[6] 성격의 왕실 비서로 왕을 측근에서 보좌하고 있다. 헨리를 보좌하며 헨리 8세의 오랜 창상을 직접 치료하기도 한다. 캐서린 하워드 왕비에게 한눈에 반하지만 왕비란 이유로 처음엔 가까이 가지 못한다. 헨리의 전언을 캐서린에게 전하기도 하는 역할로 후에 가까워질 기회를 얻는다. 극중에선 조지 불린의 미망인인 시녀장 로치포드 부인과 내연 관계로 캐서린이 과거에 성실하지 못한 과거를 가졌다는 정보를 얻어내기도 한다. 로치포드 부인의 뚜쟁이질로 맺어지게 된 컬페퍼와 캐서린 하워드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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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홀바인
헨리의 궁정 화가로 다른 신하들에게는 엄격하고 잔인한 면모를 보이는 헨리로부터 유난히 총애를 받는다. 어느 여인의 나체를 그리던 도중 여인의 약혼자가 찾아와서 방해를 하자 밀쳐서 넘어뜨린 후 헨리에게 달려가 용서를 빌었는데[7] 헨리는 "자네가 폭력도 쓸 줄 아나? 허허허" 이러고 넘어갔다. 반면 약혼자가 홀바인을 처벌해달라고 간청하러 왔을때는 "내게 7명의 농부가 있으면 그들을 7명의 귀족으로 만들 수는 있지만, 귀족이 7명 있어도 홀바인 1명을 만들 수는 없다"라며 약혼자를 위협하여 돌려보낸다. 또한 크롬웰이 클레베의 앤과사기결혼을 추진한 죄로 목이 달아날 때도 크롬웰의 지시로 실제보다 외모를 미화해서 초상화를 그린 홀바인은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다.
4.1.2.1. 하워드 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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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하워드(노포크 공작)
당대 영국 최고의 명문가인 하워드 가문의 수장. 실제 역사에서도 찰스 브랜던이 서퍽 공작위를 받기전 왕족이 아닌 유일한 영국의 공작이었다.
시즌1에서 앤 불린의 외삼촌이자[8] 그녀의 후견인. 왕국의 실권자인 울지 추기경을 매우 싫어했으며, 토마스 불린과 서포크 공작과 연합하여서, 아라곤의 캐서린을 몰아내고 울지 추기경을 무너뜨린 뒤, 앤을 왕비로 올리는 데 1등 공신의 역할을 하였다. 시즌 2에서도 앤 불린의 외척으로 중요한 역할을 할 줄 알았으나, 어째선지 이후의 등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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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하워드(서레이 백작)
시즌4에서 등장. 배우는 데이비드 오하라. 노포크 공작 토머스 하워드의 장남으로 자존심 강하고 야망이 큰 인물이지만, 지나치게 폭력적이라 행동을 종잡을 수 없다. 대대로 왕비와 왕 주변에 아첨하며 권력을 키워온 하워드 가문(노포크 공작)의 장남이지만, 프랑스에서 기사도 수업을 하느라 늦게 등장한 것으로 그려진다. 캐서린 하워드가 그의 조카라고는 하지만 가깝지 않은 혈연으로 묘사된다. 용맹한 군인으로 각종 전쟁에 헨리의 명으로 출전하여 승전하기도 했다. 또한 토마스 와이어트와 함께 소네트를 영국에 도입한 문학적 공로도 있으며, 극중에서도 왕실을 들락거리는 비천한 귀족들에 대해 험한 시를 쓰는 걸로 등장한다.[9] 왕실에서 받은 훈장을 술집에서 조롱하는 등 예상외의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프랑스와의 전쟁으로 차지한 불로뉴[10]를 방어하는 데 실패하며 정적들의 비판을 초래했고, 이후 에드워드 6세를 납치하려는 시도가 발각되면서 반역 혐의로 처형된다.[11] 훗날 그의 아들 토머스 하워드는 영국 내 가톨릭 세력의 우두머리로 활약하며 스코틀랜드의 메리 여왕과의 결혼도 진행됐지만, 엘리자베스 1세를 암살하고 메리를 영국의 여왕으로 추대하려 한 가톨릭 세력과 손을 잡는 바람에 반란죄로 처형당했다.
4.1.2.2. 불린 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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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불린
앤 불린, 메리 불린, 조지 불린의 아버지로 매우 계산적인 인물. 큰딸 메리가 헨리에게서 잊혀지자 작은딸 앤이 왕을 유혹하도록 하고, 마침내 앤을 왕비의 자리에 앉히지만, 그 이후로도 앤이 왕자를 낳지 못하는 것에 계속 경고한다. 그러나 그 말로는...결국 아들인 조지가 처형당하고 자신도 죽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냥 풀려난다. 이 때, 풀려나기 전에 독대한 찰스 브랜던에게 딸의 안위 대신 영지의 안위를 먼저 생각하는 행각을 보여 찰스에게 경멸을 받기까지 한다. 또한 앤이 탑안에 갇혀 창문을 통해 죽기전 마지막으로 애써 웃어보이며 자신에게 인사를 하지만, 그것을 무시하고 가버리기까지 했다. 인간으로써 최악이라 할 만하다. 시즌 4 1화에서 죽었다는 소식이 찰스 브랜든과 차푸이스의 대사로 언급되었다. 장례식에 아무도 오지 않았다는 말과 함께(...).
그러나 앤의 회상속에서 어릴 적의 앤을 대하는 모습은 정말로 좋은 아버지. 그야말로 권력욕에 찌들어 타락해진 인간의 전형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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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불린
앤 불린의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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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파커(로치포드 부인)
조지 불린의 아내. 억지로 한 정략결혼인데다가 조지가 아내를 인격적으로 무시하고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웠기 때문에 남편을 몹시 미워한다. 시누이 앤 불린을 몰락시키기 위해, 앤과 조지의 근친상간 혐의가 제기되었을 때 그 혐의를 입증하는 증언을 해서 남편을 처형시키는데 큰 몫을 했다. 미망인이 된 후에 마음씨 착한 제인 시모어가 왕비가 되면서 왕비의 시녀장으로 발탁된다. 5번째 왕비인 캐서린 하워드 때도 시녀장 자리에 있었는데, 왕비와 토머스 쿨페퍼의 불륜을 조장하고 은폐한 죄로 함께 처형당했다.[12]
4.1.2.3. 시모어 가문
- 존 시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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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시모어
헨리 8세의 3번째 왕비 제인 시모어의 오라비로, 앤 불린의 아버지 못지 않은 야심가로 에드워드가 태어난 이후 종종 왕자의 외삼촌이라는 위치를 조심스럽게 나타내며 자신의 정적을 제거해나간다. 찰스 브랜던과는 협력관계이나 때때로 찰스가 그가 나서는 것에 대해 제지해서 충돌하곤 한다. 개신교도로서 시즌 4 막판에 가드너 주교를 위시한 친가톨릭 세력의 역공을 받을 뻔 했지만, 위기를 면하면서 극 종반부 기준으로 차기 실권자의 입지를 굳히는 데 성공한다.
부인 앤과는 사이가 좋지 못한 것으로 묘사되는데, 부인이 미모가 있는 편이라서 시즌 3부터 여러 남자들(심지어는 시동생(!)까지)의 구애를 받고 있다. 그런데 에드워드는 자기 부인이 바람을 피워대는 건 어느 정도 눈치챘지만, 여전히 정치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고 부인은 자신이 정숙하길 바라지 말라고 대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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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시모어
제인, 에드워드 시모어의 형제로 형인 에드워드에게 때때로 협력하지만 형보다는 권력에 대해 별 관심이 없는 듯 하다. 캐서린 파와는 내연관계였으나, 하지만 하필 헨리 8세가 그녀에게 눈독을 들이는 바람에 네덜란드 대사로 보내버렸다(...). 얼마 후 헨리 8세가 프랑스와의 전쟁에 돌입하자, 해군 총사령관으로 임명되어 참전했다. 그런데 형수인 시모어 부인과도 무언가 분위기가 이상하더니... 시즌4 2화에서 형 에드워드가 스코틀랜드 국경 수비사령관에 임명되어 궁을 비우자, "도련님도 형을 좀 배워요. 형은 늘 원하는 걸 얻어내잖아요?"라고 말하는 형수와 동침했다. 5화에 출산을 앞둔 시모어 부인이 토마스에게 이런 대사를 친다. "What shall we call your child, Thomas?"(당신 아이의 이름은 뭘로 지을까?) 결국 형수를 임신시켜 자식을 얻은 것. 한술 더 떠서, 태어난 아이의 이름도 '토머스'로 지었다.
4.1.3. 은총의 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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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아스크
요크셔의 법률가. 시즌 3에서 종교정책에 반발하는 영국 북부의 백성들을 모아서 은총의 순례(Pilgrimage of Grace)를 이끈 인물이다. 왕인 헨리에게는 반란으로 보였지만 그 목적에는 깊은 신앙심이 있었기 때문에 왕비 제인과 메리 공주의 지지를 받는다. 헨리는 찰스 브랜던을 보내 아스크와 협상하게 했고 은총의 순례는 일단 해산한다. 헨리는 주동자였던 아스크를 궁정으로 초대해서 선물을 주는 등, 이들을 진정으로 용서하는 것처럼 보였으나...헨리의 성격상 그냥 넘어갈 리가 없었다. 결국 끔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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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다시
배우는 뮤지컬 레미제라블로 유명한 콤 윌킨스Colm Wilkinson. 폰트프랙트 성의 남작. 헨리가 은총의 순례자들을 반란군으로 부르며 다시에게 이들을 막으라는 명령을 내렸지만, 성에는 이들을 막을 무기나 인력도 부족했고 무엇보다도 그 또한 은총의 순례의 목적에 동의했기 때문에 순순히 성을 열어주고 본인 또한 은총의 순례자가 된다. 찰스 브랜던과 친분이 있었지만 결국 사형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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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프 엘레커 경
요크셔의 젠트리. 은총의 순례의 간부 중 유일하게 사면을 받고 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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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콘스타블
요크셔의 평민이자 전직 군인. 은총의 순례 중에서도 제일 막가파다.[13] 결국 마지막에는 헨리가 은총의 순례를 당당히 무장 진압하게 만드는 빌미를 제공하며 본인은 붙잡혀서 에드워드 시모어에게 잔인하게 고문을 받고 사형당한다.
4.2. 그 외의 세력
- 스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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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 5세
스페인의 국왕으로 아라곤의 캐서린은 그의 이모가 된다. 시즌 1에서 헨리의 딸 메리와 약혼 이야기가 오가게 되자 잠시 영국에 들러 얼굴을 드러낸다.[14] 하지만 나중에 정치적인 이익을 따져 메리가 아닌 포르투갈의 이사벨라와 결혼한다. 이것에 대해 헨리가 노발대발하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 애초에 어린 꼬맹이와 다 큰 어른을 결혼시키는 게 무리수였다.(...) 배우가 참으로 크고 아름다운 턱을 가졌다. 나이스 캐스팅이란 말이 나올 정도. -
유스타스 차푸이스
전 시즌에 걸쳐 등장.[15] 스페인 대사로서 런던에 머물고 있으며 스페인의 공주였던 캐서린 왕비를 여러모로 걱정하며 헨리 8세가 캐서린 왕비와 이혼하려고 하는 문제로 노심초사하고 있다. 당연히 캐서린을 쫒아낸 앤 불린을 무척 싫어하며, 헨리에 대해서도 썩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만 외교관으로서 주재국의 국왕인 헨리와 일종의 애증 관계를 유지한다. 신분이 격하된 메리 공주를 때때로 찾아가 여러가지로 충고하기도 하고 위로하기도 하는데, 그녀가 다시 궁에 돌아온 뒤에도 도움을 아끼지 않는다. 메리가 부친의 변덕 때문에 힘들어하는데 그것을 어찌 해줄 수 없는 상황이라 안타까워하기도 하는 등, 메리에게는 단순히 정치적인 조력자나 우호세력이 아니라 아버지나 스승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16] 시즌4부터는 수염을 기른 모습으로 출연하는데 통풍으로 몸이 안 좋아져 지팡이를 짚고 다니다가, 건강이 악화되어 8회에서 메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결국 스페인으로 돌아간다. 바로 다음회인 9회에서 그의 부고가 메리에게 전해진다.[17]
5. 인물들의 후일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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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모어 형제
이들 형제는 마지막 화에서 보듯이 절대적인 위치에 자리잡지만, 동생인 토머스가 막 나가기 시작하면서 슬슬 파멸하게 된다. 토머스 시모어는 헨리 8세 사후 왕비였던 캐서린 파와 결혼했지만 캐서린 파가 끙끙 앓는 중에, 당시 13세였던 엘리자베스 공주와 포옹하는 장면을 딱 걸리면서 엘리자베스 공주는 캐서린 파의 집을 떠나게 된다. 엘리자베스도 토머스 시모어와 결혼할 생각은 있었지만 망설였던 듯. 여하간 토머스는 1549년에 횡령죄로 기소는 됐는데 증거가 부족했던지 선대 때에 사용했던 효과적인 무기인 수권박탈법으로 처형되었고[18], 형 시모어도 이후 영국 내에서 반란이 일어나면서 그의 입지가 좁아지기 시작한다. 정국을 잘못 운영했다는 거대한 비판에 직면하게 된 틈을 타서 존 더들리[19]에게 정국의 주도권을 빼앗기게 되고, 1550년에는 무사히 넘어갔으나 더들리를 제거하려다 역으로 걸려 1552년에 목이 달아나게 된다. 형제가, 그것도 왕의 외삼촌들이 싸그리 목이 달아난 것이다(...).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이 존 더들리도 1년 후에 목이 달아나게 된다는 것(...). 자세한 것은 제인 그레이 항목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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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탈리스
시즌1에서 윌리엄 컴튼과 찐한(?) 사이를 보여줬던 인물. 시즌1 피날레까지만 나오고 그 뒤는 안 나왔으나, 무려 엘리자베스 1세 시대까지 살았으며 영국 교회음악의 아버지로서 많은 교회음악을 작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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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하워드(노포크 공작)
역사에서는 이후 헨리 8세 치세 말기에 작위를 빼앗기고 런던탑에 갇히기도 했으나[20], 메리의 도움으로 풀려나 메리 1세가 여왕으로 올랐을 때 그녀를 보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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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와이어트
앤 불린의 전 약혼자이자 시인. 앤과의 사랑을 잊지 못하는 순정남의 이미지로 나오며, 그녀를 그리워 하는 시를 짓기도 한다. 외교관의 자리까지 올라서 앤과 서로의 상승한 지위를 확인하며 기뻐하는 등 여러므로 출세한 인물. 앤과의 불륜 혐의로 구속되지만, 상관인 크롬웰의 비호로 간신히 목숨을 부지한다. 이후, 과거의 애인이었던 앤의 처형을 눈물을 흘리며 지켜보게 된다. 앤의 처형 이후 등장하지 않았으나, 정사에서는 나중에 결혼도 했으며, 캐서린 하워드가 왕비인 시절에 반역 혐의를 받기도 했다. 캐서린 하워드의 처형 이후 살아 남았으나, 얼마 살지 못하고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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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크랜머
시즌 2에 등장. 크롬웰과 함께 영국의 종교개혁을 이끌었으며, 영국의 국교가 바뀌기 전 앤 불린과의 결혼에 찬성하고 왕비와의 이혼에 찬성한 신학자였기 때문에 헨리 8세가 켄터베리 대주교가 임명했던 인물. 아이러니하지만 헨리 8세가 막나가는걸 막아보고 달래려고 대주교 서품의 교황청의 승인까지 받았다. 에드워드 6세 시절 잉글랜드 종교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했고 그러나 메리 1세가 즉위하여 영국 국교회를 독립 상태에서서 로마 교황청 휘하로 들어가자 회유 설득 협박끝에 일시적으로 포섭하나 크랜머가 다시 번복하자 화형시켰다. 회유에 찬성하는 문서에 서명했기 때문에 반성하는 의미에서 화형 당할때 오른손을 먼저 들어 태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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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날드 폴
시즌 3에서 프란시스 브라이언이 그렇게 잡으려고 애를 썼던 추기경. 그 후로도 살아남아 메리 1세 시절 잠깐 그녀의 남편감으로 거론되기도 했으나[21], 크랜머가 화형되자 마지막 가톨릭 캔터베리 대주교가 된다. 메리 1세가 죽은 지 12시간 후에 죽어서 목이 달아나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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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 브라이언
앤 불린의 사촌 오빠. 애꾸눈의 강력한 포스를 지닌 인물로, 시즌3에서 등장. 헨리 곁에서 여러 일을 하긴 하는데 완전 난봉꾼에 이쪽도 정상은 아니다. 극중 스파이에 암호해독가로 활약하면서 메리 튜더에게 폭언을 퍼부으며 성공회로의 개종을 강요하는가 하면, 제인의 시녀인 우르슐라 미쉘든, 에드워드 시무어의 아내인 앤과 불륜을 저지른다거나, 레지날드 폴을 잡으러 동분서주하거나, 캐서린 하워드를 발견해 데려오는 등 여러가지 활약상이 나온다. 원래 크롬웰과 사이가 나빴는지, 크롬웰에 의해 좌천되기도 했었으며, 그 때문인지 망나니에게 술을 먹여서 다음날 숙취 때문에 크롬웰이 고통스럽게 죽어가는데 한 몫한다. 이후 드라마에서는 등장이 없으나 역사 기록에서는 스스로를 '검은 교황'이라 불렀으며, 크롬웰이 참수된 후엔 함대 부함장이 되어 궁을 떠난 후 나중에 되돌아와서 에드워드 6세 시절에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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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오로 3세
시즌 1에서는 언급만 되다가 시즌 2에 등장. 로마 교황으로서 헨리와 대립한다, 시즌 2에 특별 게스트로 대배우 피터 오툴이 출연해 우리에겐 군대가 없으나 다른힘이 있다며 유럽 군주들 사이의 틈을 이용하여 교황권 강화에 힘을 쏟는다. 프랑수아 1세가 로마 방문시 이단들 때려잡을거지?! 하며 등떠 밀었지만 본국가서 쌩깐건 함정... 더군다나 무슬림인 터키와 손을 잡아버린다. 한편으로는 미켈란젤로에게 성화를 그리게 하는 장면에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가 아주 짤막하게 지나간다. 회의 와중에 손자인 알렉산드로 파르세네[22]가 방문하자 무척 반가워하면서 다른 추기경들에게 손자가 좋은 추기경이 될 것이라 말한다. 실제로 그의 손자 둘은 모두 추기경이 되었다. 또한 반종교개혁의 일환으로서 예수회를 지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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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 발트부르크 추기경
시즌 3에 등장. 교황청의 뜻대로 영국 국교회를 해산하고 헨리 8세를 예속시켜, 자신들의 세력권 안에 두고 영국의 신앙 회복을 추구한다. 영국과 꾸준히 연락하는 레지널드 폴 신부를 추기경으로 임명하고 영국 내에서 활약하도록 한다. 실제 역사에서도 이 인물은 신성 로마 제국의 고문관이었고 신교도에 몹시 반대하는 인물이었다. 종교개혁에 반대할 만한 개인사를 가진 인물로 설정되었다.[23] 극중 시기로 따지면 실제 역사에서는 나이가 훨씬 어렸다고 하는데, 이 드라마에선 나이든 노인으로 설정하였다.(배우가 직접 자신의 이름을 sydov로 발음하도록 표기했다고 한다. 엑소시스트로 유명한 명배우)
결국 그가 원하던대로 심복이나 다름없었던 폴 신부는 레지널드 폴 추기경이 되었고, 메리 1세 시절 영국으로 귀환하여 켄터베리 대주교가 된다. 다만 메리와는 종교정책으로 갈등을 빚었으며 별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폴 추기경은 헨리 8세 시기 영국 교회에서 자라난 복음주의 세력과 타협하고 온건한 정책을 펴길 원했으나 거부당했고, 켄터베리 대주교 자리만 지킨 채 국내 기반도 없는 상황에서 메리나 국정에서의 영향력이 거의 없었다.[24]
6. 기타
- 시즌 4의 메인포스터가 은근히 시청자들을 낚고 있다. 클레베의 앤은 저렇게 도발적인 자세를 취할 만한 캐릭터가 아니었고, 등을 섹시하게 드러내고 있는 제인 시모어는 사실 정사신이 한 개도 없으며 노출도 전혀없다.
[1]
일본이나 중국의 역사를 다룬 사극을 한국에서 한국인 배우들로 제작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캐나다와 아일랜드는 영국 왕실과 완전히 남남은 아니다. 일단 캐나다는 영국의 군주가 자국 군주인
영연방 왕국일 뿐만 아니라 영국계의 후손들이 살고 있고, 아일랜드 역시
아일랜드 왕국의 군주를 헨리 8세가 겸하고 있었다. 물론 실질적으로는 식민지나 다름없이 대우했고 이 때문에 아래에 후술하듯 친가톨릭 성향을 보이고 있으나, 일단은 자국 역사의 군주이다. 오히려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등 대륙의 국가들이 한중일처럼 남의 역사에 가까우며, 심지어 헨리 8세는 아니지만 해당 국가들도
노르만 왕조~
플랜태저넷 왕조,
조지 1세,
윌리엄 3세처럼 자국의 지도자나 제후가 잉글랜드~영국 왕을 겸하기도 했다. 이런
동군연합 문화는 고립된 구조의 동아시아에서는 익숙한 모습이 아니다. 거기다 캐나다가 영국계의 후손인 것은 덤이다.
[2]
4기 처음부터
헨리 8세의 머리가 희끗해지기 시작해지고 목소리가 약간 걸걸해지긴 하는데 이것도 장면마다 조금씩 달라서 노인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게다가 실제 역사상
캐서린 파와의 결혼 기간이 4년 정도였기 때문에 역사를 생각하면서 보면 아주 짧은 기간 내 팍 삭은 것이다.
[3]
휘그 사관은 18-19세기는 물론 20세기 중반까지 영국사 해석에 있어서 막강한 영향력을 미친 역사관으로, 영국의 역사를 ㄱ. 입헌군주제 ㄴ. 의회민주주의 ㄷ. 개인의 자유를 위한 발걸음으로 해석하는 목적론적이고 결정론적인 역사관이다. 휘그 사관은 여기서 이 '목적'을 위한 엔진으로 영국의 프로테스탄트화를 꼽는다. 이러한 목적론적 역사관에 사실을 끼워맞추다보니 동시대의 두 여왕 자매가 거울에 비친 듯한 종교정책을 폈음에도 불구하고, 메리 1세는 "영국사의 흐름을 거스른 일탈 내지는 반동"으로 엘리자베스 1세는 "휘그 사관에 부합하는 모범적 왕"으로 묘사된 것이다. 그러나 20세기 중반 이후 휘그 사관은 엄청난 반박들에 부딪혔으며, 학계 다수설의 위치를 상실하였음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휘그 사관'이라는 말이 현재 학계에서 결정론적 역사관을 조롱하는 의미로까지 쓰이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휘그 사관이 역사학적으로 그릇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체적인 문학적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기에 오늘날에도 소설이나 영화 등의 대중매체와
아동용 만화책 등에서는 여전히 즐겨 쓰인다는 것이다. 확실히 이런 문학적 내러티브는 깔끔하고 재미있으며 극적이지만, 그만큼이나 현대적 역사 서술에서는 피해야 할 태도이다. 사학자 Eamon Duffy가 괜히 학술서적도 아니고 대중서적인 《
울프 홀》을 자기 학술서에서 직접 언급하며 비판한 게 아니다.
[4]
사실 이것도 '아예 안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가령 초기 근대 종교개혁사의 거장인 역사학자
피터 마셜(Peter Marshall)이 그의 저서
「종교개혁」 (
the Reformation: A Very Short Introduction)에서 헨리 8세에 대해 한 평가를 들 수 있다: "제 잇속을 차리기 위해 종교 정책을 추진한 가장 노골적인 사례는 1530년대 초에 결혼생활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교황의 권위에 반대할 이유를 찾아낸 헨리 8세이리라. 그러나 이런 헨리조차 자신이 신의 뜻에 부합하게 행동한다는 것을 진심으로 믿었던 것으로 보인다." (
피터 마셜(Peter Marshall).
「종교개혁」)
[5]
작중에서 정적에 의해 헨리에게 가야하는 자금을 빼돌렸다는 것이 발각되었다. 축적한 돈이 많아서
햄프턴 궁전이라는 일개 성직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대규모 호화 궁전을 지었지만 헨리가 이걸 보고 "잉글랜드 최고의 궁전이구려, 나한테는 이런 거 없는데^^"라고 눈치를 주자, "전하의 것입니다"라고 말한 후 실제 역사와 동일하게 궁전을 헌납당한다. 이후 헨리가 안에 있는 가구도 포함이냐고 물어보는 게 백미
[6]
시즌 4 2회에서 국왕 영지 공원의 관리인 집으로 들이닥쳐서 멋대로 아내를 겁탈하고, 이에 항의하는 관리인에게는 돈으로 회유하려다가 거부하자 칼로 찔러 죽이는 만행을 저질렀다.
[7]
궁내 폭력은 법에 의해 금지됨
[8]
캐서린 하워드의 삼촌이기도 하다.
[9]
극중에는 에드워드 시모어도 시를 통한 디스 대상에 포함되어 있었는데, 여기에는 에드워드의 부인 앤이 자신의 구애를 거절한 것에 따른 앙심도 반영되었다.
[10]
노르망디 남단, 낭트와 라로셸 사이에 있다.
[11]
처형 방식은 교수척장분지형. 다만 증거가 부족한 상태에서 판결이 내려진 거라 청중들은 납득하지 못하고 야유를 퍼부어 댔다고 한다.
[12]
런던탑에 갇혀 있는 동안 미쳐버렸는데, 원래 미친 사람은 죽일 수 없었으나 열받은 헨리가 법을 고쳐서 처형해버렸다.
[13]
비록 겉모습에 불과했지만 헨리 8세가 은총의 순례에 가담한 이들에게 관대한 사면령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토머스 크롬웰의 계략에 넘어가 헨리 8세를 의심하고 그의 명령마저 무시하는 모습을 보인다. 결국 로버트 아스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찰스 브랜든과 체결한 조약마저 어긴채 순례를 진행한다. 이게 은총의 순례를 무장 진압하게 되는 결정적인 원인이 된다.
[14]
이 때 메리는 카를 5세의 딸이라고 해도 될 꼬꼬마 어린애(...)인데다가 카를 5세와는 이종사촌. 하지만 아버지 헨리나 캐서린은 이 결혼을 지지했던 모양. 카를 5세는 어린애인 메리를 보자 "네가 클 때까지 기다려야겠구나!!"라는 말을 던졌다.
[15]
다만 시즌 1에서는 멘도자라는 인물이
스페인 대사로서 주로 출연했고, 종반부에서야 후임 대사로 등장했다.
[16]
차푸이스가 결국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메리가 눈물을 글썽이며 '이제 나는 완전히 혼자로군요'라고 말할 정도로 차푸이스를 신임하고 의지했다.
[17]
다만 실제 역사에서는 차푸이스 대사가 더 장수했다고 전해진다.
[18]
형인 에드워드 시모어가 이 조치를 묵인할 수밖에 없었다.
[19]
John Dudley, 초대 노섬벌랜드 공작.
제인 그레이의 시아버지이자 그녀를 옹립한 장본인이다.
[20]
런던탑에 갇혔다는 것은 웬만해서는 죽음을 의미한다. 이 장소가 중범죄인, 특히나 왕에 대한 반역죄를 저지른 사람들의 처형 장소로 쓰였기 때문인데, 이 양반은 거기에서 살아돌아온 케이스. 원래는 아들의 반역죄를 숨겼다는 것을 법정에서 인정했고,
헨리 8세가 노포크 공작의 처형에 서명하면서 완벽하게 목이 달아날 운명이었지만, 아들의 목이 달아난 며칠 후에
헨리 8세가 죽어버리는 바람에 왕위를 계승하는
에드워드 6세의 즉위식을 피로 물들일 수 없다 하여 사면, 석방되었다. 정말로 헨리 8세가 하루 이틀 정도만 더 살았으면 당대에 처형당한 사람들 명단에 올라갔을 것이다. 바꿔 말하면
헨리 8세가 한 열흘만 빨리 죽었어도 아들도 살아났을 거라는 이야기...
[21]
플랜테저넷 왕가의 혈통인지라 유력한 남편감 후보가 되었고,
교황청의 특별허가를 얻으면
환속하는데 아무 지장이 없었다. 그러나 메리가 레지널드 폴의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22]
4명의 사생아가 있어서
추기경 시절에 공격받았다. 떳떳한 것은 아니었으나
교황은 되었다. 그러나 후에 16살, 14살짜리 손자를 추기경으로 임명하고 사생아에게 파르마와 피아첸차 통치자로 꽂아주려고 전쟁을 벌여서 훗날
바오로 4세가 되는 카라파 추기경에게 대놓고 욕을 먹었다. 다만 직권남용 친족등용은 중세와 르네상스시기 일반적인 일이었다.
[23]
자신의 누이가 루터파 농민 반란군에게 잔인하게 겁탈, 살해당했다고 한다.
[24]
윈체스터의 주교 스티븐 가드너가 실제로 영국교회를 좌지우지 했는데, 메리에 온정적이며 변호적인 평가는 강경파 스티브 가드너에 메리가 휘둘렸다고 보는 측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