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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진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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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진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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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 2009 · 2010 |
강원 FC 코치 | ||
Gangwon FC | ||
|
||
<colbgcolor=#dd5828><colcolor=#fff> 이름 |
최효진 崔孝鎭 / Choi Hyo-Jin |
|
출생 |
1983년
8월 18일 ([age(1983-08-18)]세)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
신체 | 키 172cm / 체중 71kg | |
직업 |
축구선수 (
수비수[1],
미드필더[2] / 은퇴) 축구코치 |
|
학력 | 파주연풍초 - 중동중 - 중동고 - 아주대 | |
소속 | <colbgcolor=#dd5828><colcolor=#fff> 선수 |
인천 유나이티드 FC (2005~2006) 포항 스틸러스 (2007~2009) FC 서울 (2010~2014) → 상주 상무 피닉스 (2011~2012 / 군 복무) 전남 드래곤즈 (2015~2021) |
감독 |
전남 드래곤즈 (2021 / 플레잉 코치) 전남 드래곤즈 (2022 / 코치) 제주 유나이티드 FC (2023 / 수비 코치) 강원 FC (2024~ / 코치) |
|
국가대표 | 18경기 1골 ( 대한민국 / 2008~2012) | |
종교 | 불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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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前 축구선수이자 現 축구코치. 아주대까지는 공격수로 뛰었고, 프로 데뷔 후 오른쪽 미드필더로 활약하다 포항 스틸러스에서 수비수로 정착했다. 주 포지션은 오른쪽 측면 수비수지만 오른쪽 윙어 그리고 공미도 가능한 멀티 플레이어였다.
2. 클럽 경력
2.1. 인천 유나이티드 FC
- 유망하던 장외룡의 아이들 시절
중동고- 아주대를 거친 측면 자원으로, 2005 시즌을 앞두고 신인 계약을 통해 인천 유나이티드에 입단했다.
대학시절 굉장히 유망한 공격수였으나, 인천 입단 직후 당시 우측 윙백 포지션에 마땅한 적임자가 부족했기에, 우측 윙백으로 포지션을 바꿔 주전으로 낙점되어 주전으로 기용되었다. 그해 K리그 준우승에 공헌하였다. 인천은 2005 시즌에 좌 전재호 - 우 최효진이라는 막강한 윙백 라인을 가동했고, 시즌 중반에는 김치우까지 팀에 복귀하였다. 그 외
그렇게 신인임에도 장외룡 감독의 신임을 받으며 리그와 리그컵에서 34경기에 출전했고 인천의 통합 리그 우승으로 챔피언 결정전 진출에 기여했지만 최종 준우승을 거두고 말았다.
이듬해에는 공격적 재능이 더욱 만개하며 자신의 한 시즌 리그 커리어 최다인 4골을 터뜨리는 등, 공수 양면에서 인천의 핵심으로 평가받았다.
인천에서 2년간 70경기를 소화하며 팬들의 애정을 받던 최효진이었지만, 인천 준우승의 주역들이 하나 하나 팀을 떠나는 와중에 최효진에게도 작별의 시간이 다가왔다.
2.2. 포항 스틸러스
그를 눈여겨 본 세르지오 파리아스 감독은 강력한 요청을 하면서 그를 노렸고, 결국 김태원 + 현금과 트레이드되어 2007년 포항 스틸러스로 이적했다. 계약 기간은 3년. #한편 인천은 그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 윤주일을 이근호와 트레이드하여 영입했지만, 결과적으로 김태원도, 윤주일도 완전히 실패하면서 트레이드로 큰 손해를 봤다. 훗날,소문에 의하면 최효진은 이적하기 싫으며,인천에 남고싶어했고 또한 지방구단으로 가기싫다고 반발이 심했었다고 한다.
오범석이 중앙 미드필더로 나서다 팀을 떠난 2007 시즌, 왼쪽의 박원재와 함께 팀의 측면을 책임진 최효진은 팀의 K리그 우승과 FA컵 준우승, 2008 FA컵 우승에 큰 공헌을 하였다. 2009년 파리아스의 팀이 완성되기 이전까지 포항의 가장 강력한 공격루트는 좌원재-우효진을 앞세운 강력한 측면 공격이었다.
2008년 FA컵 우승 당시 대회 MVP를 수상했고, 한국프로축구연맹 주관 베스트 11에 선정되었으며 대한축구협회 주관 최우수선수 부문을 수상했다. 2008, 2009년 2년 연속으로 K리그 올스타에 선정되기도 했다.
2009년에는 더욱 업그레이드 된 팀에서 우측 풀백 뿐만 아니라 2선 프리롤 공격수로 나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등 공수에 걸쳐 맹활약했고, 팀의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절대적인 기여를 하며 K리그에서 가질 수 있는 모든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2009시즌을 끝으로 FA가 돼 포항을 떠났다.
2.3. FC 서울
2010 시즌을 앞두고 FA로 서울에 입단했다. 계약 기간은 4년. #기존의 오른쪽 풀백이었던 이종민의 잦은 부상, 최원권의 입대, 안태은의 (부정적인 의미로)미칠듯한 수비 때문에 애를 먹던 서울은 최효진의 합류로 현영민- 아디- 김진규(or 박용호)-최효진으로 이어지는 리그 최강의 포백 라인을 구축할 수 있었다.
넬루 빙가다 감독의 지휘 아래 공수에서 균형잡힌 활약으로 제 몫을 톡톡히 했다.
2010시즌 리그와 리그컵에서 34경기 3골 4도움을 기록하며 K리그 기준 개인 커리어 한 시즌 최다 공격 포인트를 작성했고, 팀의 리그, 리그컵 더블에 기여했다.
팀이 K-리그 챔피언에 오른 다음날 입대해 2011, 2012시즌 상주 상무에서 뛰었고 팀 사정상 측면 공격수로 주로 출장하여 좋은 활약을 보여주며 53경기 2골 2어시스트를 기록했다. 2012년 9월 전역했다.
전역 이후 고요한, 차두리 등 국가대표급 우측 풀백과의 주전 경쟁에서 밀리며 백업 선수로 뛰었다.
2.4. 전남 드래곤즈
결국 14시즌 종료 후 주전으로 뛸 만한 팀을 찾아나섰고 전남 드래곤즈에 둥지를 틀었다. 계약기간은 2016년까지다. #전남에서 초기에는 현영민과 함께 좌우측을 책임지며 베테랑 수비 라인을 형성했다. 그리고 클래스가 있는 선수들이라서 꽤 좋은 모습을 한동안 보여주었지만, 현영민의 노쇠화가 진행되면서 좌측에서는 이슬찬이 경쟁에 뛰어들었다. 그러는 상황에서도 최효진은 계속 자리를 유지했지만, 최효진도 나이를 점차 속이기는 힘들었는지 노쇠화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이에 전남은 이슬찬을 우측에 활용하기도 했고, 2017 시즌을 앞두고는 박대한을 영입한 데 이어 이유현까지 프로에 콜업하여 다양한 대비를 시도했다.
2년차인 2016 시즌 팀의 주장으로 선임되었고, 리그에서만 31경기 2골 4도움을 기록하며 개인 커리어 한 시즌 리그 최다 도움 타이를 기록했다. 팀 역시 상위 스플릿에 오르는 등, 팀과 함께 최고의 활약을 보였고, 활약을 인정 받아 2017시즌을 앞두고 2년 재계약과 함께 2년 연속 팀의 주장으로 선임되었다. 2017년에는 22경기만 뛰었고, 팀은 강등 경쟁에서 겨우 잔류에 성공했다.
2.4.1. 2018 시즌
2018년 풀백 파트너 현영민이 은퇴했다. 유상철 감독 부임과 함께 주장 완장을 유스 출신 김영욱에게 내주었다. 이슬찬, 이유현, 박광일 등에게 시즌 초반 주전 경쟁에서 밀렸다. 설상가상으로 부상을 당해 7월까지 한 경기밖에 나서지 못했다.8월 8일 FA컵 16강전 춘천시민축구단과의 경기에서 주장 완장을 달고 풀타임 출전하며 복귀했다.
8월 12일엔 리그 경남전에서 복귀해 15일 강원전까지 두 경기 연속 풀타임을 치렀다. 그러나 팀의 6연패를 막지 못했고, 강원전 이후 유상철 감독이 사임했다. 8월 26일 포항과의 경기에 출전, 팀의 3-2 대역전승에 기여했다. 이후 이슬찬, 박광일과 번갈아 나오며 리그 12경기에 출전해 전남에서 처음으로 리그 20경기도 뛰지 못했다. 결국 팀의 최하위를 막지 못하며 팀과 함께 개인 커리어 첫 강등을 당하게 됐다.
2.4.2. 2019 시즌
팀은 강등당했지만 팀과 2년 재계약하며 팀에 잔류했고 파비아누 소아리스 페소아 감독 아래서 다시 주장을 역임하며 왼쪽 풀백 주전으로 뛰었다. K리그2 28경기 1득점 3도움2.4.3. 2020 시즌
이유현과 번갈아 가며 오른쪽 풀백으로 출전하고 있다.15라운드 충남 아산전에서 완벽한 크로스로 이유현의 선제골을 어시스트했다. 20시즌 출전 기록은 리그 14경기 1도움에 FA컵 2경기 출전.
2.4.4. 2021 시즌
플레잉 코치로 팀과 1년 재계약하며 2021 시즌을 시작하게 되었다. 염기훈과 함께 K리그 유이한 A급 지도자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는 최효진은, 향후 P급 자격증을 조기 보유하기 위해 플레잉 코치를 시작하게 됐다고 한다.8월 1일자 리그 23라운드 안산 그리너스 전에서 오랜만에 선발로 출전했다. 8월 11일의 FA컵 8강 포항 스틸러스 전에서도 선발로 나섰는데, 후반전 시작과 동시에 엄청난 오버래핑을 선보이며 사무엘의 골을 어시스트했다. 21시즌 출전 기록은 리그와 FA컵을 합쳐 4경기 1도움.
시즌이 끝나고 12월 30일 본인 인스타그램에 은퇴 소식을 알리며 선수 생활을 마감하였다.
2022년 3월 6일, 드래곤 던전에서 열린 전남과 충남 아산 FC와의 K리그2 3라운드에서 은퇴식을 치른 뒤 공로상을 수상했다. 풀영상 3분 20초부터.
3. 국가대표 경력
2008년 6월 14일, 2010년 FIFA 월드컵 예선에서 투르크메니스탄과의 경기로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오범석과 함께 2000년대 후반 리그 최고의 라이트 백으로 꼽혔기에 국대에서도 중요받을 수 있을것으로 예상되었으나 오른쪽도 소화할 수 있는 이영표와 막강한 피지컬을 가진 차두리, 수비력에서 좀 더 안정적이라는 평가를 받은 오범석에 가려 자주 출장하지 못했다.전성기를 구가할때 맞이한 남아공 월드컵때도 유럽, 아프리카의 막강한 피지컬에 맞설수 있는 차두리가 한 자리를 차지한 상태에서 오범석과 경합을 벌였으나 밀렸다. 이후 플랫3에 좌우 윙백에게 공수에서 엄청난 활동량을 요구하는 조광래가 대표팀 감독시절을 맡았을때 잠깐 발탁 되어 나이지리아와의 평가전에서 골을 성공시키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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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룡 · 2
최효진 · 3
황재원 · 4
조용형 · 5
곽태휘 · 6
이용래 · 7
박지성 C · 8
윤빛가람9 유병수 · 10 지동원 · 11 손흥민 · 12 이영표 · 13 구자철 · 14 이정수 · 15 홍정호 · 16 기성용 17 이청용 · 18 김보경 · 19 염기훈 · 20 김신욱 · 21 김용대 · 22 차두리 · 23 김진현 |
조광래 박태하 스태프
서정원 ·
김현태 ·
알렉산드레 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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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아시안컵 최종 명단에도 들었다. 그러나 2012년 최강희호 초반에 중용된 이후로 국대와는 인연이 없다.
4. 지도자 경력
은퇴 이후 곧바로 전남 드래곤즈 코치진으로 합류했다.시즌 중반 전경준 감독이 물러나고 이장관 감독이 새로 부임했지만 팀에 남아 팀을 지도했고, 시즌 종료 후 8년 만에 전남을 떠났다. 인스타그램
2023 시즌을 앞두고 서울시절 동료였던 하대성과 함께 제주 유나이티드 FC 코치로 합류하였다. 아내 간호 때문에 팀을 떠난 마철준 코치를 대신해 수비 코치로 활약할 것이다. 선수 시절 서울에서 한솥밥을 먹던 한 살 동생 정조국 수석코치의 영향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시즌 중반 남기일 감독이 팀을 떠났고 시즌 종료 후 코칭스태프가 개편되며 팀을 떠났다.
2024년 1월 4일 강원 FC 코치로 합류했다. 2024시즌 구단 창단 이래 최고의 전반기를 보내는 데 기여하고 있다.
5. 기록
5.1. 대회 기록
- 포항 스틸러스(2007~2009)
- K리그1 : 2007
- 대한축구협회 FA컵 : 2008
- K리그 리그컵: 2009
- AFC 챔피언스 리그 : 2009
- FC 서울(2010~2014)
- K리그1 : 2010, 2012
- AFC 챔피언스 리그 : 2013(준우승)
- 대한축구협회 FA컵 : 2014(준우승)
- 전남 드래곤즈(2015~2021)
- 대한축구협회 FA컵 : 2021
6. 플레이 스타일
공격수 출신으로 전성기였던 07년~10년에는 K리그 측면 수비수 통틀어 독보적인 공격력을 뽑냈다. 빠른 발에 체력이 좋아 중앙과 측면을 바지런히 오가며 시원시원한 돌파력을 보여줬고 좁은 공간에서 다수의 수비수와 벌이는 경합 능력과 동료 선수를 활용하는 연계 플레이도 우수했다. 2009년 AFC 챔피언스리그 뉴캐슬 제츠전에선 해트트릭을 기록하기도 했다.단점이라면 가끔씩 공격본능을 주체 못해 상대팀에게 엄청난 뒷공간을 내주다는 점과 전성기에도 유럽이나 남미의 대표급 공격수들과 겨루기에는 피지컬이 많이 떨어졌다는 점. 공수불균형은 꾸준한 경험축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지만 피지컬은 시간 지난다고 극복할 수 있는게 아니어서 허정무호와 FC 서울에서 차두리에게 밀려나는 원인이 되었다.
수비 불안이나 뒷공간 문제 등을 보면 포항에서 가장 잘나가던 시절 포지션이던 3백 시스템에서의 오른쪽 윙백이 가장 적성에 맞아보인다.
7. 여담
- 가는 팀마다 팬들의 사랑을 받던 선수이다. 특히 2년 정도 있었던 데뷔팀 인천 유나이티드 팬들은 아직도 그가 원정경기를 오면 박수쳐주는 사람도 있으며, 짧은 기간이였지만 구단 역대 베스트 11에도 뽑을 정도다.
- 2007년 포항에서 뛸 때 갑상선 질환 진단을 받은 뒤, 2012년 상주에서, 그리고 전남으로 이적한 후에도 갑상선 질환을 안고 선수생활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6년간 매 시즌 두자리 수 경기에 나설 만큼 자기관리가 철저한 것으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