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2-09 15:06:17

창덕궁 건무문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5
대보단
건무문 광지문 수문
청의정 태극정 농산정 옥청문
농포
소요암 옥류천
소요정 수문
취한정
수복방 신선원전 진설청
괘궁정 취규정
재실
능허정
의효전 사가정 청심정 천향각
몽답정 산단
백운사
천성동 태청문
청연각
존덕정
외삼문 폄우사 척뇌당
관람정
한려청 반도지
승재정
부군당
반빗간 태일문
통벽문 우신문 농수정
연경당 선향재
국출신직소 수인문 장양문
장락문
창덕궁 애련정 수궁
어수당 애련지
불로문
석거문 금마문 영춘문
운경거 의두합
희우정 천석정
서향각 주합루
어수문
사정기비각 부용지 영화당 춘당대 서총대
부용정
요금문 수문장청 서소 개유와 열고관
창송헌 수정전 가정당
수궁 습취헌 집상전
영모당
생물방 경복전 경훈각 징광루 함원전
소주방 청향각
숙경재 의풍각 융경헌 대조전 흥복헌
수랏간 관리합
만수전 태화당 재덕당 정묵당 요휘문 경극문 창경궁
경추문 수문장청 보경당 선평문 양심합 여춘문 병경문
함양문
서북 진설청 내재실
선원전
서남 진설청 동남 진설청
만수문 건중문 희정당 자선재 영안문
양지당 만안문 관광청 선정전 유덕당 건인문
책고 인정전 관물헌 석유실 어휘문
봉모당 억석루 연경문 만복문 향실 선정문 성정각 보춘정 양성재 중희당 칠분서 해당정 수방재 연영합 평원루 취명문
운한문 영의사 예문관 서방색 소주방 선화문 자시문 삼삼와 승화루 한정당 보화문
숭범문 선전관청 장방 영현문 전의사 취운정 협문
훈국초관인직소 이문원 검서청 약방 내삼청 광범문 대전장방 내반원 낙선재 석복헌
훈국초관인직소 홍문관 당후( 승정원) 문서고 궁방 사옹원 등촉방 대은원 수강재
훈국군파수직소 정청 육선루
악기고
승정원 상서성 연영문 협양문 무예청 장락문 주명문
남소
위장청
인정문 + 양사( 사간원) 공상청 사알방 누국
수문장청 금천교 진선문 숙장문 건양문 일영대
금호문 결속색
정색
내병조
(창덕궁관리소)
호위청 상서원 배설방 금위군번소 패장직소 별감방 전루 문기수번소 저승전 낙선당
무비사
의장고
전설사 빈청
(어차고)
진수당 장경각 계방
수문장청 돈화문 수문장청 교자고 상의원 치미각 시민당 군옥재 춘방 등룡문
원역처소 수문장청 전루 별감방 등촉방 배설방 훈국군번소 사주문
단봉문 종묘 북신문 +
경복궁 · 창덕궁 · 창경궁 · 덕수궁 · 경희궁
}}}
}}}}}}}}} ||

파일:정부상징.svg 대한민국 사적 제122호 창덕궁
<colbgcolor=#bf1400> 창덕궁 건무문
昌德宮 建武門
소재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99 ( 와룡동 2-71번지)
건축시기 창건연대 미상
1. 개요2. 이름3. 역사4. 구조5. 여담

[clearfix]

1. 개요

창덕궁의 궁문이다. 북쪽 궁장에 있다.

창덕궁 후원과 바로 통하며 산등성이에 위치한 특성 상 평소에는 닫았다.

2. 이름

'건무(建武)' 뜻은 '무(武)를 세운다(建)'이다. 여기서 '무(武)'는 사신(四神) 중 하나인 현무(玄武)를 말한다. 현무는 북방을 나타내는 동물이다. 즉, 북쪽 문이란 뜻이다.

3. 역사

원래 창덕궁의 북문은 광지문이었다. 그러나 인조 이후 광지문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 없다. 《 승정원일기》의 1784년(정조 8년) 6월 22일 자 기사부터 건무문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 #

광지문이 건무문으로 이름이 바뀐 것인지, 아니면 광지문 대신 건무문을 새로 지은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4. 구조


파일:건무문 동궐도.png }}}||
<colbgcolor=#bf1400> 《동궐도》 건무문
다른 궁문처럼 을 따로 세운 게 아니고, 담장의 일부인 형태로, 평대문이다. 다만 《 동궐도》에는 문이 한 칸 짜리로 따로 있어서 나중에 모습이 바뀐 듯 하다.

파일:건무문 현판.jpg }}}||
<colbgcolor=#bf1400> 건무문 현판
현판을 문 안쪽에 걸었다. 바탕에 칠을 하지 않았다. 글씨는 원래 검은색이었던 듯 하나 후에 변색된 듯 하다.
  • 현재는 일반인의 접근이 불가능하다. 문 밖에는 성균관대학교 대운동장이 있다.

5. 여담

1884년(고종 20년) 갑신정변 청나라의 개입으로 개화파가 수세에 몰리자, 창덕궁에 있던 고종이 북묘[1]로 피신할 때 이 문으로 빠져나갔다. 이 때 정변을 주도한 홍영식, 박영교 등이 고종을 호위하다 이 근처에서 살해당했다. #

[1] 1883년에 지은 관우를 모신 사당.

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