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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서향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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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정부상징.svg 대한민국 사적 제122호 창덕궁
<colbgcolor=#bf1400> 창덕궁 서향각
昌德宮 書香閣
위치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99 ( 와룡동 2-71번지)
건축시기 1776년 (창건)
파일:서향각.png
<colbgcolor=#bf1400> 서향각[1]
문화재청에서 제작한 3D 입체 영상.
주합루, 희우정, 사정기비각, 천석정과 같이 소개한다.
1. 개요2. 이름과 현판3. 역사4. 구조5. 여담

[clearfix]

1. 개요

창덕궁 주합루 서쪽에 있는 건물이다. 동쪽을 향해 서 있다. 현재 일반 관람객의 출입은 막혀있다.

2. 이름과 현판

파일:서향각 현판.png
<colbgcolor=#bf1400> 서향각 현판. 맨 위 현판 글씨가 '서향각(書香閣)'이고,
중간 현판의 글씨가 '친잠권민'(親蠶勸民)'이다.[2]
이름은 '책(書) 향기(香)가 난다'는 뜻으로 주합루와 같은 시기에 지었다. 현판 글씨는 정조 때 서사관(書寫官) 조윤형(曺允亨)이 썼다. 초기에는 신주 영정 등을 옮겨 모신다는 뜻인 이안각(移安閣)으로 불리기도 했다.

후술하겠지만, 순종 창덕궁에 살 때에는 순정효황후가 이곳을 양잠소로 사용했다. 그래서 그때 설치한 '친잠권민'(親蠶勸民, 왕실에서 친히 누에를 치는 것은 백성들에게도 권해야 한다)이라는 게판과 서향각 기둥에 붙은 '어친잠실(御親蠶室, 왕비가 친히 누에를 치는 방)'이란 주련이 같이 걸려 있다.

3. 역사

1776년(정조 즉위년)에 정조가 후원에 주합루를 세우면서 같이 지었다. 원래는 서책, 그림 등을 보관하면서 각종 도서, 어진과 어필 등을 말리던 포쇄소였다. 포쇄란, 좀이나 습기로 망실되는 것을 막고자 햇볕에 내놓고 말리는 것을 의미한다. 이 곳에서 신하들이 모여 임금 토론하거나, 어진을 그리고 보관하는 용도로 사용했다.


이후 정조에 대한 계승의식이 높았던 고종황제가 즉위하며 정조와 같은 용도로 사용한다. 황제가 경운궁으로 이어하면서 서향각의 역할은 정관헌이 이어받았다.
파일:순정효황후 친잠례.png
<colbgcolor=#bf1400> 서향각에서 친잠례[3]를 한 후 기념촬영을 한 순정효황후 및 참석자들
일제강점기에는 양잠소[4]가 되면서 순정효황후가 이 곳에서 양잠[5]했다. 친잠은 황후가 내・외명부를 통솔하고[6] 국왕의 친경 의식과 더불어 권농을 하는 행사다. 농업의 신인 선농에게 제를 지내는 절차를 포함한 친경 의식과 마찬가지로 친잠에서는 양잠의 신인 선잠에게 제를 지냈다. 기능면에서는 당초의 포쇄소 기능보다 격상된 것이다.

그래서 한동안 창덕궁을 안내할 때 양잠소로 언급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서향각 본래 기능으로 소개한다.

4. 구조

  • 정면 8칸, 측면 3칸의 총 24칸으로 지붕은 팔작지붕, 처마는 겹처마, 공포는 초익공 양식이다. 용마루와 추녀마루, 내림마루는 전부 기와로 마감했고 용두와 취두를 두었으나 잡상은 두지 않았다. 정면 기준 출입하는 칸을 제외하고는 창과 툇마루 앞에 전부 난간을 설치했다. 측면의 외부는 창문의 높이를 짧게 한 다음 머름을 두고 그 밑을 벽돌로 마감했으며 측면 가운데 칸의 경우, 머름 밑에 교창을 두고 그 아래를 벽돌로 마감했다.
  • 〈동궐도형〉을 보면 정면을 기준으로, 왼쪽부터 누마루 1칸, 온돌방 2칸, 대청 2칸, 온돌방 2칸, 그리고 다시 누마루 1칸으로 되어있다. 앞면과 뒷면은 툇마루로 꾸몄으며 누마루가 있는 칸의 앞면과 뒷면에는 툇마루를 두지 않고 누마루로 구성했는데 누마루의 밑은 일반적인 경우와 달리 공간을 비워두지 않고 벽돌로 마감했다. 창호는, 건물 외벽의 창의 경우 정(井)자 살로, 건물로 들어가는 출입문은 띠살로 만들었다.

5. 여담

  •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창덕궁관리소에서 2021년 4월 28일부터 5월 8일까지 〈후원에서 만나는 한 권의 책〉 행사를 개최했다. 이때 그동안 일반인들의 관람이 제한됐던 서향각, 희우정, 천석정의 실내를 한시적으로 개방해 시민들이 책을 읽을 수 있게 했다. 매주 수요일부터 토요일까지 1일 2회 운영했으며 티켓 11번가에서 예매를 해야 했다. 참가비는 후원 입장료를 포함한 15000원이었다. # 2021년 11월 14일부터 17일까지는 하루에 2번 예약자들에 한해 주합루, 서향각, 희우정, 천석정을 개방했고 특히 서향각은 내부까지 공개했다. 독서의 계절인 가을을 맞아 서향각 이름 뜻 그대로 책 향기를 사람들과 나눈다는 의미였다. # #

[1] 사진 출처 - 문화재청. [2] 사진 출처 - 문화재청 《궁궐의 현판과 주련 - 창덕궁》: 〈주합루 권역 2〉. [3] 왕비가 직접 누에를 치고 고치를 거두던 의례. [4] 비단을 만들기 위해 누에를 치는 곳. [5] 누에 치기. [6] 황후 오른편에 의친왕비가 시립해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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