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30 21:57:49

웨스 언셀드

웨스 언셀드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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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A 75th Anniversary Team
(NBA 75주년 팀) /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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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림 압둘자바 야니스 아데토쿤보 네이트 아치발드 찰스 바클리 밥 쿠지
데이브 코웬스 케빈 듀란트 줄리어스 어빙 조지 거빈 할 그리어
제임스 하든 엘빈 헤이즈 제리 루카스 모제스 말론 케빈 맥헤일
조지 마이칸 스티브 내시 디르크 노비츠키 하킴 올라주원 밥 페팃
윌리스 리드 오스카 로버트슨 데이비드 로빈슨 빌 러셀 존 스탁턴
폴 아리진 릭 배리 래리 버드 윌트 체임벌린 클라이드 드렉슬러
팀 던컨 패트릭 유잉 월트 프레이저 케빈 가넷 존 하블리첵
앨런 아이버슨 매직 존슨 샘 존스 마이클 조던 칼 말론
로버트 패리시 크리스 폴 스카티 피펜 빌 셔먼 아이제아 토마스
네이트 서몬드 웨스 언셀드 빌 월튼 제리 웨스트 제임스 워디
레이 앨런 카멜로 앤서니 엘진 베일러 데이브 빙 코비 브라이언트
빌 커닝햄 스테판 커리 앤서니 데이비스 데이브 드부셔 르브론 제임스
제이슨 키드 카와이 레너드 데미안 릴라드 피트 마라비치 밥 맥아두
레지 밀러 얼 먼로 샤킬 오닐 게리 페이튼 폴 피어스
데니스 로드맨 돌프 셰이스 드웨인 웨이드 러셀 웨스트브룩 레니 윌킨스
도미니크 윌킨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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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년 미국 스포츠 사이트 the Athletic에서 NBA 출범 75주년을 기념하여 농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75명을 발표했다.
<rowcolor=#fff> 1위 2위 3위 4위 5위
마이클 조던 르브론 제임스 카림 압둘자바 빌 러셀 매직 존슨
<rowcolor=#fff> 6위 7위 8위 9위 10위
윌트 체임벌린 래리 버드 샤킬 오닐 팀 던컨 코비 브라이언트
<rowcolor=#fff> 11위 12위 13위 14위 15위
하킴 올라주원 오스카 로버트슨 케빈 듀란트 제리 웨스트 스테판 커리
<rowcolor=#fff> 16위 17위 18위 19위 20위
칼 말론 케빈 가넷 모제스 말론 줄리어스 어빙 데이비드 로빈슨
<rowcolor=#fff> 21위 22위 23위 24위 25위
디르크 노비츠키 찰스 바클리 엘진 베일러 야니스 아데토쿤보 존 스탁턴
<rowcolor=#fff> 26위 27위 28위 29위 30위
아이제아 토마스 릭 배리 드웨인 웨이드 존 하블리첵 크리스 폴
<rowcolor=#fff> 31위 32위 33위 34위 35위
밥 페팃 스카티 피펜 제임스 하든 카와이 레너드 조지 마이칸
<rowcolor=#fff> 36위 37위 38위 39위 40위
제이슨 키드 패트릭 유잉 스티브 내시 밥 쿠지 앨런 아이버슨
<rowcolor=#fff> 41위 42위 43위 44위 45위
엘빈 헤이즈 조지 거빈 클라이드 드렉슬러 윌리스 리드 월트 프레이저
<rowcolor=#fff> 46위 47위 48위 49위 50위
러셀 웨스트브룩 레지 밀러 게리 페이튼 케빈 맥헤일 폴 피어스
<rowcolor=#fff> 51위 52위 53위 54위 55위
도미니크 윌킨스 레이 앨런 앤서니 데이비스 밥 맥아두 트레이시 맥그레이디
<rowcolor=#fff> 56위 57위 58위 59위 60위
드와이트 하워드 데이브 코웬스 얼 먼로 제임스 워디 웨스 언셀드
<rowcolor=#fff> 61위 62위 63위 64위 65위
돌프 셰이스 데니스 로드맨 카멜로 앤서니 빌 월튼 크리스 웨버
<rowcolor=#fff> 66위 67위 68위 69위 70위
빌리 커닝햄 네이트 아치발드 데미안 릴라드 알론조 모닝 할 그리어
<rowcolor=#fff> 71위 72위 73위 74위 75위
알렉스 잉글리시 제리 루카스 피트 마라비치 로버트 패리시 레니 윌킨스
출처 }}}}}}}}}}}}

The 50 Greatest Players in National Basketball Association History
NBA 역사상 위대한 선수 50인
in 1996. 파일:ESPN 로고.svg /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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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트 서몬드 네이트 아치발드 데이브 빙 데이비드 로빈슨 데이브 코웬스
돌프 셰이스 레니 윌킨스 래리 버드 로버트 패리시 릭 배리
마이클 조던 매직 존슨 모제스 말론 밥 페팃 빌 러셀
빌 셔먼 빌 커닝험 빌 월튼 샤킬 오닐 샘 존스
스카티 피펜 아이제아 토마스 얼 먼로 엘빈 헤이즈 엘진 베일러
오스카 로버트슨 웨스 언셀드 윌리스 리드 윌트 체임벌린 월트 프레이저
제리 루카스 제리 웨스트 제임스 워디 조지 거빈 조지 마이칸
존 스탁턴 존 하블리첵 줄리어스 어빙 카림 압둘자바 칼 말론
케빈 맥헤일 클라이드 드렉슬러 폴 아리진 패트릭 유잉 피트 마라비치
하킴 올라주원 할 그리어 찰스 바클리 밥 쿠지 데이브 드부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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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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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A 파이널 MV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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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69 1969-70 1970-71 1971-72 1972-73
제리 웨스트 윌리스 리드 루 앨신더 윌트 체임벌린 윌리스 리드
1973-74 1974-75 1975-76 1976-77 1977-78
존 하블리첵 릭 배리 조 조 화이트 빌 월튼 웨스 언셀드
1978-79 1979-80 1980-81 1981-82 1982-83
데니스 존슨 매직 존슨 세드릭 맥스웰 매직 존슨 모제스 말론
1983-84 1984-85 1985-86 1986-87 1987-88
래리 버드 카림 압둘자바 래리 버드 매직 존슨 제임스 워디
1988-89 1989-90 1990-91 1991-92 1992-93
조 듀마스 아이제아 토마스 마이클 조던 마이클 조던 마이클 조던
1993-94 1994-95 1995-96 1996-97 1997-98
하킴 올라주원 하킴 올라주원 마이클 조던 마이클 조던 마이클 조던
1998-99 1999-00 2000-01 2001-02 2002-03
팀 던컨 샤킬 오닐 샤킬 오닐 샤킬 오닐 팀 던컨
2003-04 2004-05 2005-06 2006-07 2007-08
천시 빌럽스 팀 던컨 드웨인 웨이드 토니 파커 폴 피어스
2008-09 2009-10 2010-11 2011-12 2012-13
코비 브라이언트 코비 브라이언트 디르크 노비츠키 르브론 제임스 르브론 제임스
2013-14 2014-15 2015-16 2016-17 2017-18
카와이 레너드 안드레 이궈달라 르브론 제임스 케빈 듀란트 케빈 듀란트
2018-19 2019-20 2020-21 2021-22 2022-23
카와이 레너드 르브론 제임스 야니스 아데토쿤보 스테판 커리 니콜라 요키치
2023-24 2024-25 2025-26 2026-27 2027-28
제일런 브라운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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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56 1956-57 1957-58 1958-59 1959-60
밥 페팃 밥 쿠지 빌 러셀 밥 페팃 윌트 체임벌린
1960-61 1961-62 1962-63 1963-64 1964-65
빌 러셀 빌 러셀 빌 러셀 오스카 로버트슨 빌 러셀
1965-66 1966-67 1967-68 1968-69 1969-70
윌트 체임벌린 윌트 체임벌린 윌트 체임벌린 웨스 언셀드 윌리스 리드
1970-71 1971-72 1972-73 1973-74 1974-75
루 앨신더 카림 압둘자바 데이브 코웬스 카림 압둘자바 밥 맥아두
1975-76 1976-77 1977-78 1978-79 1979-80
카림 압둘자바 카림 압둘자바 빌 월튼 모제스 말론 카림 압둘자바
1980-81 1981-82 1982-83 1983-84 1984-85
줄리어스 어빙 모제스 말론 모제스 말론 래리 버드 래리 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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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리 버드 매직 존슨 마이클 조던 매직 존슨 매직 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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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조던 마이클 조던 찰스 바클리 하킴 올라주원 데이비드 로빈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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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조던 칼 말론 마이클 조던 칼 말론 샤킬 오닐
2000-01 2001-02 2002-03 2003-04 2004-05
앨런 아이버슨 팀 던컨 팀 던컨 케빈 가넷 스티브 내시
2005-06 2006-07 2007-08 2008-09 2009-10
스티브 내시 디르크 노비츠키 코비 브라이언트 르브론 제임스 르브론 제임스
2010-11 2011-12 2012-13 2013-14 2014-15
데릭 로즈 르브론 제임스 르브론 제임스 케빈 듀란트 스테판 커리
2015-16 2016-17 2017-18 2018-19 2019-20
스테판 커리 러셀 웨스트브룩 제임스 하든 야니스 아데토쿤보 야니스 아데토쿤보
2020-21 2021-22 2022-23 2023-24 2024-25
니콜라 요키치 니콜라 요키치 조엘 엠비드 니콜라 요키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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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53 1953-54 1954-55 1955-56 1956-57
돈 메이네케 레이 펠릭스 밥 페팃 모리스 스톡스 톰 하인슨
1957-58 1958-59 1959-60 1960-61 1961-62
우디 솔즈베리 엘진 베일러 윌트 체임벌린 오스카 로버트슨 월트 벨라미
1962-63 1963-64 1964-65 1965-66 1966-67
테리 디싱거 제리 루카스 윌리스 리드 릭 배리 데이브 빙
1967-68 1968-69 1969-70 1970-71 1971-72
얼 먼로 웨스 언셀드 루 앨신더 데이브 코웬스
제프 페트리
시드니 윅스
1972-73 1973-74 1974-75 1975-76 1976-77
밥 맥아두 어니 디그레고리오 자말 윌키스 앨번 애덤스 애드리언 댄틀리
1977-78 1978-79 1979-80 1980-81 1981-82
월터 데이비스 필 포드 래리 버드 대럴 그리핀 벅 윌리엄스
1982-83 1983-84 1984-85 1985-86 1986-87
테리 커밍스 랄프 샘슨 마이클 조던 패트릭 유잉 척 퍼슨
1987-88 1988-89 1989-90 1990-91 1991-92
마크 잭슨 미치 리치몬드 데이비드 로빈슨 데릭 콜먼 래리 존슨
1992-93 1993-94 1994-95 1995-96 1996-97
샤킬 오닐 크리스 웨버 그랜트 힐
제이슨 키드
데이먼 스타더마이어 앨런 아이버슨
1997-98 1998-99 1999-00 2000-01 2001-02
팀 던컨 빈스 카터 엘튼 브랜드
스티브 프랜시스
마이크 밀러 파우 가솔
2002-03 2003-04 2004-05 2005-06 2006-07
아마레 스타더마이어 르브론 제임스 에메카 오카포 크리스 폴 브랜든 로이
2007-08 2008-09 2009-10 2010-11 2011-12
케빈 듀란트 데릭 로즈 타이릭 에반스 블레이크 그리핀 카이리 어빙
2012-13 2013-14 2014-15 2015-16 2016-17
데미안 릴라드 마이클 카터윌리엄스 앤드류 위긴스 칼앤서니 타운스 말콤 브록던
2017-18 2018-19 2019-20 2020-21 2021-22
벤 시몬스 루카 돈치치 자 모란트 라멜로 볼 스카티 반즈
2022-23 2023-24 2024-25 2025-26 2026-27
파올로 반케로 빅터 웸반야마 - - - }}}}}}}}}}}}

{{{#!wiki style="margin: -10px -10px" <tablewidth=100%><tablebgcolor=#e31837><tablebordercolor=#e31837> 파일:워싱턴 위저즈 로고.svg 워싱턴 위저즈
기록 보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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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00
<colbgcolor=#e31837><colcolor=#FFFFFF> 최다 출장 웨스 언셀드 (Wes Unseld)
- 984경기 (1968~1981)
최다 득점 엘빈 헤이즈 (Elvin Hayes)
- 25551점 (1972~1981)
최다 어시스트 존 월 (John Wall)
- 5282개 (2010~2020)
최다 리바운드 웨스 언셀드 (Wes Unseld)
- 13769개 (1968~1981)
최다 블락 엘빈 헤이즈 (Elvin Hayes)
- 1558개 (1972~1981)
최다 스틸 존 월 (John Wall)
- 976개 (2010~2020)
}}}}}}}}}}}}}}} ||

{{{#!wiki style="margin: -10px -10px" <table align=center><table width=100%><table bordercolor=#e31837> 파일:워싱턴 위저즈 로고.svg 워싱턴 위저즈
영구 결번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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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ccac00> No. 10 No. 11 No. 25 No. 41 No. 45
<rowcolor=#c4ced4> 얼 먼로
(Earl Monroe)
엘빈 헤이즈
(Elvin Hayes)
거스 존슨
(Gus Johnson)
웨스 언셀드
(Wes Unseld)
필 체니어
(Phil Chenier)
}}}}}}}}} ||

네이스미스 농구 명예의 전당 헌액자
파일:명예의 전당 웨스 언셀드.jpg
웨스 언셀드
헌액 연도 1988년
}}} ||
파일:언셀드.jpg
<colbgcolor=#e31837><colcolor=#fff> 워싱턴 위저즈 No. 41
웨슬리 시셀 언셀드 시니어
Westley Sissel Unseld Sr.
출생 1946년 3월 14일
켄터키주 루이빌
사망 2020년 6월 2일 (향년 74세)
메릴랜드주 캐튼스빌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출신학교 루이빌 대학교
신장 201cm (6' 7")
체중 111kg (245 lbs)[1]
포지션 센터
드래프트 1968 NBA 드래프트 1라운드 2순위
볼티모어 불리츠 지명
소속 팀 볼티모어-캐피탈-워싱턴 불리츠 (1968~1981)
지도자 워싱턴 불리츠 코치 (1987~1988)
워싱턴 불리츠 감독 (1988~1994)
프런트 워싱턴 불리츠 (1981~1987 / 부사장)
워싱턴 불리츠-위저즈 (1994~2003 / 부사장)
워싱턴 불리츠-위저즈 (1996~2003 / 단장)
등번호 41번 - 워싱턴
가족 아들 웨스 언셀드 주니어

1. 개요2. 일생3. 플레이 스타일4. 수상 내역5. 기타6. 참고 자료

[clearfix]

1. 개요

미국의 농구인으로, 워싱턴 불리츠/위저즈의 70년대대 전성기를 이끈 선수이자 팀의 기둥이었기에 '불릿츠의 수호신'으로도 불렸다. 찰스 바클리와 더불어 유니크한 체형의 강력한 리바운더로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2. 일생

1946년 켄터키 주 루이빌에서 아버지 찰스 도시 언셀드(1915~1980)와 어머니 코넬리아 시셀(1917~1989) 사이에서 9남매 중 하나로 태어났는데, 아버지는 권투선수, 니그로리그 팀 '인디애나폴리스 클라운즈'의 야구선수, 건설 노동자 등으로 생계를 꾸려왔다. 언셀드는 세네카 고등학교 재학 시절 밥 멀카히 감독에게 농구 수업을 받으며 켄터키 주 챔피언쉽을 2번이나 차지하면서 주목을 받은 선수였고(1964년, 1965년), 특히 1964년 결승전에선 버치 비어드[2]가 이끄는 브리킨리지 고교를 꺾은 바 있다. 이후 루이빌 대학교에 진학한 뒤 버나드 힉맨(1911~2000)[3]과 존 드로모(1916~1992) 두 감독에게 지도를 받으며 후배 비어드와 다시 만나 1967 및 1968년에 두 차례 NCAA 전국대회에서 16강을 각각 찍었고, 이 공로로 올 아메리칸까지 2년 연속 선발됐다.

언셀드는 대학 졸업과 함께 ABA의 고향 팀 켄터키 콜로넬즈와 NBA의 볼티모어 불리츠에 동시에 지명을 받았다. 언셀드는 NBA를 선택했고 첫 해부터 신인왕 + 시즌 MVP[4]라는 대활약을 하면서 팀에 활기를 불어넣게 된다. 이후 얼 먼로 뉴욕 닉스로 트레이드되면서 언셀드는 앨빈 헤이즈와 함께 팀의 미래를 맡게 되었고, 당대 최고수준의 빅맨 듀오였던 둘의 시너지 효과로 70년대~80년대초 불리츠는 전성기를 맞는다.

그는 총 4번의 파이널 진출, 1번의 파이널 우승을 이뤄냈으며, 1978년 파이널 때 팀의 우승에 기여한 공로로 MVP를 받았다. 1981년에 선수 은퇴 후 팀은 그를 기리기 위해 등번호 41번을 영구 결번시켰다. 불리츠-위저즈 프랜차이즈의 역사는 '언셀드의 시대와 그 이외'로 구분된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프랜차이즈에서 커다란 존재감을 가진 선수였고, 구단 역사상 시즌 MVP와 Finals MVP를 수상한 유일한 선수이기도 하다. 당연하게도 1988년 네이스미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은퇴 이후 그는 친정팀의 부사장으로 일하다가 1987년부터 어시스턴트 코치가 됐고, 1988년 2월에 케빈 로커리 감독이 쫓겨나자 감독으로 복귀하여 기술을 중시하는 심플한 농구를 추구했으나, 당시 팀 플레이 추세와 역행하는 개인 플레이 중심의 옛날식 플레이만 선보인 탓에 임기 6년간 포스트시즌 진출은 1회에 그쳤다. 그 1회마저도 감독대행 때 한 것. 1993-94 시즌을 끝으로 팀에 염증을 느낀 채 감독직에서 물러났다가 1994년 11월에 부사장으로 돌아온 후 하비 그랜트, 로드 스트릭랜드 등을 영입하거나 사들여 1996/97 시즌 포스트시즌 진출에 기여했고, 1996년에 단장을 겸했다가 2002-03 시즌을 끝으로 팀과 인연을 끝냈다.

2006년 미국 대학농구 명예의 전당에도 헌액됐으며, 2020년 6월 2일 화요일에 폐렴으로 인한 건강 악화로 세상을 떠났다.[5]

3. 플레이 스타일

웨스 언셀드의 사진을 찾아봐도 알 수 있겠지만 그는 매우 두툼한 체격에 비교적 짧은 키, 그리고 긴 팔을 가진 선수였다. 동년대의 다른 슈퍼스타 센터들보다 10cm 이상 가량 작았지만 그럼에도 타고난 힘이 넘치던 상당한 장사였고 무게중심도 낮아 이러한 힘을 바탕으로 골 밑 수비에 자신보다 키가 큰 상대의 백다운에도 밀리지 않았으며 또한 이런 피지컬을 적극 활용해서 가드를 막는 수비수들을 방해하는 스크린 플레이 즉 픽에 상당히 능해서 동료들의 스크린 어시도 능했으며 또한 픽앤롤, 픽앤팝도 잘했다. 또한 리바운드 능력으로 골 밑에 벽이 서있는 것 마냥 림 프로텍팅을 수행했고 이렇게 강력한 센터가 있으니 자연히 팀도 숨통이 트일 수 있었다.

아쉽게도 이런 재능을 가지고도 언셀드는 수상 기록은 적은데 같은 시대 NBA에는 빌 러셀, 윌트 체임벌린, 윌리스 리드, 카림 압둘자바, 빌 월튼이 뛰고 있는 그야말로 센터 우주전쟁이 열렸기 때문. 이 기라성 같은 별들 중에 하나가 언셀드였고 그는 그렇게 불리츠의 수호신이 되었다.

루키시즌에 18.2 리바운드를 기록했을 정도로 뛰어난 보드장악력에 훌륭한 수비력을 가졌지만 득점력은 이에 미치지 못했다. 평득 15점을 넘긴 시즌이 한 시즌 뿐이고, 뛰어난 공격수였던 엘빈 헤이즈가 들어온 이후로는 안그래도 많지 않았던 샷시도가 더욱 줄어들어 평균득점이 한자리수 득점으로 내려앉았을 정도. 커리어 통산은 10.8득점으로, 명백하게 득점력이 좋은 파트너들이 필요했던 타입.

물론 하이 스코어러와는 거리가 멀었을 뿐, 그는 스포모어 시즌에 커리어 하이인 16.2점을 당시로썬 상당히 준수한 야투율이었던 50%대의 확률로 넣을 정도로 득점 방면에서 역량 자체는 충분히 있는 선수였다. 그러나 당시 워싱턴에는 헤이즈 비롯 득점을 해줄 선수들이 여럿 있었기에 언셀드는 철저하게 수비, 리바운드, 스크린, 허슬 등에 에너지를 쏟은 것. 그는 또다른 간판이었던 헤이즈보다 멘탈이 훨씬 좋으며 이타성이 강한 선수였고, 팀 사정이 좋다면 자진해서 궂은 일에만 집중할 수 있는 선수였다. 또한 그는 커리어 평균 3.9 어시스트에 한 시즌 5.2 어시스트를 기록한 바가 있는데, 이는 당시 볼소유가 적은 센터치고 상당히 훌륭한 수치인데 특히 리바운드를 잡고 반대편 골문으로 뛰는 동료들에게 던지는 속공 플레이 즉 아웃렛 패스가 매우 정확했고 상당히 빨랐으며, 킥아웃이라든지 포스트 플레이메이킹에도 능했던 당대 최고의 빅맨 패서였다.

또한 언셀드가 수비로 이름을 남긴 수비형 센터인 건 맞지만 수비형 센터로 역사에 이름을 남긴 디켐베 무톰보나 언셀드와 같은 언더사이즈 빅맨의 대명사인 벤 월러스 같은 선수들은 공격이 골문 근처였기에 동료들의 도움이 없으면 혼자서 스코어를 만들기 어려운 받아먹기에 능한 선수들이었지만 의외로 잘 안 알려진 사실로 언셀드는 이들과 달리 미드레인지 샷이 뛰어났으며 선수 커리어 말년 쯤인 79-80시즌부터 NBA가 3점을 기록하기 시작했는데 79-80시즌과 커리어 은퇴 시즌인 80-81시즌에 모두 3점 슛 성공률이 5할이었다. 비록 언셀드가 3점을 별로 안 던졌지만 3점 슛도 넣을 줄 아는 선수였다. 즉 뛰어난 포스트 플레이메이커이자 슛팅력도 갖춘 다재다능한 센터였다.

다만 상당한 리바운더이자 보드 장악력이 대단했지만 블락 능력은 언더사이즈 빅맨이라는 한계로 인해 커리어 평균 1개에 못 미친 0.6개 밖에 못했다. 물론 커리어 초기에 NBA에선 블락 슛을 집계하지 않았기 때문에 5시즌을 손해봤던 점을 감안해 좀 더 나았을 수도 있지만 1개를 넘진 못 했을 거로 보이며 이건 언더사이즈 빅맨의 한계였지만 이 점을 본다면 본인보다 1인치 작은 바클리가 필라 시절 평균 1개 조금 넘게 찍은 게 대단한 거라고 볼 수 있으며 [6] 더 대단한 건 언셀드와 같은 키를 가진 벤 월러스도 커리어 하이 3.5개 커리어 평균 2개를 기록했을 정도로 언더사이즈 빅맨의 한계를 넘는 능력을 보여줬다.

80년대 중반 등장한 찰스 바클리, 10년대 후반에 등장한 자이온 윌리엄슨과 함께 두툼한 프레임과 굵직한 팔다리를 가진 유니크한 체형에 속한다. 길쭉길쭉한 인상의 여타 흑인 농구선수들보단 마치 몽골인 장사를 보는 듯 한 체형.

다만 언셀드는 바클리와 자이언과 다르게 본인의 운동능력으로 날아다니면서 호쾌하게 덩크를 꽂는 플레이는 못했다. 슛팅력은 저들보다 좋았을 지 몰라도 저들보다 운동능력이 떨어지고 본인이 그러한 플레이를 할 생각도 없었던 듯 보인다. 즉 저 사이즈로도 정통 센터처럼 움직였으며 덩크보단 드라이빙 레이업을 선호한다든지 리바운드 풋백을 잘했다.

4. 수상 내역

수상 내역
NBA 파이널 우승 (1978)
NBA 파이널 MVP (1978)
NBA 시즌 MVP (1969)
NBA 올스타전 5회 (1969, 1971-1973, 1975)
ALL NBA 퍼스트팀 (1969)
신인왕 (1969)
NBA ALL 루키 퍼스트팀 (1969)
NBA 리바운드왕 (1975)
J 월터 케네디 시티즌 어워드 (1975)
NBA 역사상 위대한 농구인 50인
워싱턴 위자즈 영구결번 (41번)
네이스미스 농구 명예의 전당 (2006)

5. 기타

  • 유족으로는 부인 코니와 1남 1녀가 있는데, 부인 코니는 1979년 볼티모어에 유치원부터 중학교까지의 과정을 지닌 사립학교 '언셀드 스쿨'을 세웠으며, 딸 킴벌리는 이곳의 교사로 재직 중이다. 아들 웨스 주니어(1975년생)는 로욜라 블레이크필드 고등학교 및 존스홉킨스 대학교 재학 시절 농구부에서 뛰었으나 아버지만큼 실력에서 두각을 드러내지 못해 1997년 NBA 드래프트에 신청했으나 탈락했고, 졸업 뒤 워싱턴 위저즈에 스카우터로 입사하여 단장이던 아버지를 돕다가 2005년에 이 팀에서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고, 이후 덴버 너기츠, 올랜도 매직 등을 전전하다가 2021년에 마침내 위저즈 감독까지 승진했다.
  • 위저즈 프랜차이즈의 가장 위대한 선수로 꼽히고, NBA에서 가장 굵직한 족적인 시즌 MVP와 파이널 MVP를 모두 보유한, 한마디로 완성도가 높은 커리어를 보유한 선수이다. 그러나 그 수상 하나하나를 따지고 보면 이견이 꽤 많은 편이기도 하다.
  • 우선 루키시즌(68-69)에 전경기 출장하며 13.8득점 18.2리바운드를 기록했고, MVP 터줏대감인 윌트 체임벌린 빌 러셀이 전성기에서 내려오기 시작하던 와중 팀 성적을 전년도보다 드라마틱하게 끌어올린 공로를 인정받아 루키임에도 MVP를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어냈지만, 기록만 보면 마찬가지로 전경기 출장에 평균 45.1분 28.4득점 17.1리바운드의 괴물같은 활약을 펼친 엘빈 헤이즈가 같은 루키로서 더 파격적이었다. 또한 2위에 그친 윌리스 리드가 MVP로는 더 적합했다는 여론도 적지는 않았고, 그 외에도 활약상 자체만 보면 섣불리 언셀드 아래에 두기 어려운 선수들이 여럿 존재했던 것. 어떤 의미로는 역대 MVP 중에서도 가장 압도적인 느낌이 덜 한 수상자 중 하나라고도 볼 수 있다.
  • 1978 NBA 파이널에서 팀의 또다른 간판인 엘빈 헤이즈가 두 표를, 언셀드가 세 표를 가져가며 최종적으로는 언셀드가 Finals MVP로 선정된 것에 대해 이견이 많다. 기록이 다는 아니라지만 당시 파이널을 비롯한 플레이오프에서 헤이즈는 언셀드의 두배 가량 득점을 올리면서도 리바운드도 언셀드 못지 않게 잡아냈기에 활약면에서 차이가 컸음은 부정하기 어렵기 때문.[7] 이는 헤이즈가 파이널 6경기 도합 133득점을 기록했으나 그 중 4쿼터 득점은 19득점에 그칠 만큼 중요한 순간에 활약하지 못했던 측면이 있고, 그 외에도 이타적이고 희생적이며 팀의 간판이자 성골이었던 언셀드와 달리 멘탈 이슈를 달고다니던 헤이즈가 표심에서 불리한 측면도 있었을 것이라 추측된다.
  • 이러한 측면에서 언셀드는 슈퍼스타임에도 본질은 블루워커에 더 가까운 선수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커리어 전반적으로 눈에 보이는 수상(시엠+파엠) 만큼의 압도적인 선수였는가 하면 애매한 구석이 없잖아 있지만 팀의 성장과 결실에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커다란 지분을 가지고 있고, 특유의 허슬과 열정 및 희생정신으로 팬들과 투표자들의 마음을 가져간 선수인 것이다. 반대로 기량면에서는 명백히 더 뛰어났지만 팀원들을 살피기보단 블랙홀에 가까운 면모를 보였던, 또한 최고의 육체에 걸맞지 앉은 멘탈로 미운 소리를 들었던 헤이즈와의 결정적인 차이가 이것이었던 셈. 어찌보면 빌 러셀 윌트 체임벌린의 같은팀Ver.이라 부를 만 했던게 바로 언셀드-헤이즈 듀오였던 것이다.

6. 참고 자료



[1] 가장 많이 나갔을 때는 270 lbs 정도 나갔다고 한다. [2] 1969년 NBA 드래프트에서 10번으로 애틀랜타 호크스에 지명된 후 1979년 은퇴 시까지 총 5팀을 거쳤고,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시절인 1972년에 올스타로 1번 뽑혔으며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에 몸담던 1974-75 시즌에는 우승을 경험했다. 은퇴 후 1980년대에는 MSG 네트워크 해설위원으로서 뉴욕 닉스의 중계를 담당했고, 1990년에 하워드 대학교 농구부 감독으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해 뉴저지 네츠(1994~1996), 모건 주립대학교(2001~2006) 등을 거쳤으나 지도자로서는 두각을 못 드러냈다. [3] 켄터키 주 센트럴시티 출신. 센트럴시티 고등학교 시절 조지 테일러 감독에게 배우며 주 대회에 네 번 진출시켜 두각을 드러낸 후, 웨스턴 켄터키 대학교로 진학해서 체육학을 전공하며 훗날 그 학교의 명장이 될 에드가 디들(1895~1970) 감독 밑에서 배우고 1944년 켄터키 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체육학 석사까지 땄다. WKU 졸업 후 호젠빌 고등학교와 밸리 고등학교서 코치를 맡다가 1944년부터 23년간 루이빌 대학교의 체육부장 겸 감독으로서 1956년 NIT 우승, 1958년 NCAA 전국대회 4강 진출을 각각 일궈내며 옆동네 켄터키 대학교의 명장 아돌프 러프(1901~1977)와 쌍벽을 이뤘다. 언셀드와 비어드 외에 찰리 타이라, 웨이드 휴스턴(전 테네시 대학교 감독, 앨런 휴스턴의 부친) 등을 발굴/육성했고, 특히 웨이드 휴스턴은 켄터키 주내 대학들 중에서 처음 영입한 흑인 선수 2명 중 하나였다. 1967년에는 오른팔이던 존 드로모 코치에게 감독직을 맡긴 뒤, 1973년까지 6년 더 체육부장직에 머무르며 훗날 그보다 더한 명장이 될 데니 크럼(1937~2023, 전 UCLA 코치)을 감독으로 발탁했다. [4] 다만 이때 MVP는 윌리스 리드가 받아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스탯에서 크게 차이가 나기 때문. 언셀드가 신인으로 대단한 활약을 했기 때문에 그 임팩트로 수상한 것. [5] AP통신 영문기사 [6] 바클리도 결국 부상으로 인해 운동능력을 잃게 되면서 커리어 초기 평균 1개 넘게 했던 블락 능력을 잃게 되면서 커리어 전체 평균 0.8개로 내려앉게 된다. [7] 14-15 파이널에서 안드레 이궈달라가 르브론을 상대로 보여준 호수비로 스테판 커리를 제치며 파엠을 수상하기도 했으나, 헤이즈는 디펜팀을 두번이나 수상했을 정도로 수비가 좋은 선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