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8-28 21:26:16

조 듀마스

조 듀마스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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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FIBA 농구 월드컵 로고.svg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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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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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A 파이널 MV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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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69 1969-70 1970-71 1971-72 1972-73
제리 웨스트 윌리스 리드 루 앨신더 윌트 체임벌린 윌리스 리드
1973-74 1974-75 1975-76 1976-77 1977-78
존 하블리첵 릭 배리 조 조 화이트 빌 월튼 웨스 언셀드
1978-79 1979-80 1980-81 1981-82 1982-83
데니스 존슨 매직 존슨 세드릭 맥스웰 매직 존슨 모제스 말론
1983-84 1984-85 1985-86 1986-87 1987-88
래리 버드 카림 압둘자바 래리 버드 매직 존슨 제임스 워디
1988-89 1989-90 1990-91 1991-92 1992-93
조 듀마스 아이제아 토마스 마이클 조던 마이클 조던 마이클 조던
1993-94 1994-95 1995-96 1996-97 1997-98
하킴 올라주원 하킴 올라주원 마이클 조던 마이클 조던 마이클 조던
1998-99 1999-00 2000-01 2001-02 2002-03
팀 던컨 샤킬 오닐 샤킬 오닐 샤킬 오닐 팀 던컨
2003-04 2004-05 2005-06 2006-07 2007-08
천시 빌럽스 팀 던컨 드웨인 웨이드 토니 파커 폴 피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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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런 브라운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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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96 1996-97 1997-98 1998-99 1999-00
조 듀마스 테럴 브랜든 에이버리 존슨 허시 호킨스 에릭 스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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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d428a><colcolor=#FFFFFF> 최다 출장 조 듀마스 (Joe Dumars)
- 1018경기 (1985~1999)
최다 득점 아이제아 토마스 (Isiah Thomas)
- 18822점 (1981~1994)
최다 어시스트 아이제아 토마스 (Isiah Thomas)
- 9061개 (1981~1994)
최다 리바운드 빌 레임비어 (Bill Laimbeer)
- 9430개 (1982~1993)
최다 블락 벤 월러스 (Ben Wallace)
- 1486개 (2000~2006)
최다 스틸 아이제아 토마스 (Isiah Thomas)
- 1861개 (1981~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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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구결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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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ccac00> - - No. 1 No. 2 No. 3
<rowcolor=#ffffff> 빌 데이비슨
(Bill Davidson)
잭 매클로스키
(Jack McCloskey)
천시 빌럽스
(Chauncey Billups)
척 데일리
(Chuck Daly)
벤 월러스
(Ben Wallace)
<rowcolor=#ccac00> No. 4 No. 10 No. 11 No. 15 No. 16
<rowcolor=#ffffff> 조 듀마스
(Joe Dumars)
데니스 로드맨
(Dennis Rodman)
아이제아 토마스
(Isiah Thomas)
비니 존슨
(Vinnie Johnson)
밥 레이니어
(Bob Lanier)
<rowcolor=#ccac00> No. 21 No. 32 No. 40
<rowcolor=#ffffff> 데이브 빙
(Dave Bing)
리처드 해밀턴
(Richard Hamilton)
빌 레임비어
(Bill Laimbe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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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스미스 농구 명예의 전당 헌액자
파일:명예의 전당 조 듀마스.jpg
조 듀마스
헌액 연도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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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조듀마스.jpg
<colbgcolor=#1d428a> 디트로이트 피스톤즈 No. 4
<colcolor=#fff> 조 듀마스 3세
Joe Dumars III
출생 1963년 5월 24일 ([age(1963-05-24)]세)
루이지애나 주 슈리브포트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출신학교 맥니스 주립대학교
신장 191cm (6' 3")
체중 86kg (190 lbs)
포지션 슈팅 가드 / 포인트 가드
드래프트 1985 NBA 드래프트 1라운드 18순위
디트로이트 피스톤즈 지명
소속 팀 디트로이트 피스톤즈 (1985~1999)
등번호 4번 - 디트로이트

1. 개요2. 커리어
2.1. NBA 입성 이전2.2. NBA 커리어
3. 프런트 경력4. 행정가 경력5. 수상 내역6. 이것저것7.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미국의 농구인이자 현재 NBA 수석부사장, 농구운영 책임자. NBA 현역 선수 시절 배드 보이즈의 일원으로 아이제아 토마스의 팀메이트 가드였다. 매직 존슨을 가장 효과적으로 막은 선수 중 하나로 기억되며, 마이클 조던 본인이 스스로 "역사상 나를 가장 잘 막은 선수" 라고 칭할 정도로 수비에 뛰어났다. 조던 룰에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맡은 선수로, 아이제아 토마스가 고안한 조던 룰을 성공시키기 위해 큰 공을 세운 선수였다. 비록 배드 보이즈의 멤버였긴 했지만 그 중에서는 가장 매너가 좋은 선수로 알려졌고, 가장 매너가 좋은 선수들에게 주는 "스포츠맨 선수상" 을 받은 선수로 받은 첫 선수로 이 상은 나중에 조 듀마스 상으로 바뀌게 된다.

사실상 듀마스와 존 샐리를 제외한 전원이 매너가 개차반이었던 피스톤즈 선수단에서 뿐 아니라 리그에서 가장 스포츠맨쉽이 좋은 선수 중 하나였다. 상 자체에 이름이 붙은 걸 봐도 짐작할 수 있겠지만...게다가 그랜트 힐같은 후배들을 따뜻하게 지도해주던 좋은 멘토이자 리더에 실력까지 확실하니 그야말로 이상적인 선수였다. 다만 듀마스도 코트 위에서 트래쉬 토킹을 안 한건 아니었는데 그 방식이 교묘해서 레지 밀러에게 "너 골밑으로 돌파하면 빌 레임비어랑 릭 마혼한테 맞을텐데 돌파할거냐?"면서 은근히 약을 올렸다고... 정확히 말하자면 "나라면 돌파 안하고 그냥 여기서 슛 쏠거야", "무슨 소리야?" 듀마스가 아무말도 하지 않고 뒤 쪽을 가리키면, 그 곳에는 레임비어와 마혼이..[1]
선수 은퇴 이후에는 2000년 이후로 친정팀인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의 사장으로 취임했으며, 2002-2003 시즌에 올해의 경영자 상을 받기도 했다.

2. 커리어

2.1. NBA 입성 이전

듀마스는 루이지애나 주 슈레브포트라는 작은 도시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조는 트럭 운전수였고, 한 대학의 관리인이었다. 그는 운동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처음부터 듀마스는 농구에 관심을 보였던 건 아니다. 형제들을 따라 미식축구를 하였고 조 역시 형제들을 따라 미식축구를 했는데, 한번은 미식축구를 하다 크게 다쳤고 그 이후로 농구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그의 아버지는 그를 위해서 자전거 바퀴를 사용해서(...) 농구대를 만들어줬고 수많은 연습을 통해 그는 농구 실력을 키우게 된다.

맥니스대학 진학 후 듀마스는 조용히 실적을 쌓으면서 4학년 당시에는 미국 대학 농구 전체에서 득점이 6위가 될 정도로 활약했다. 결국 그는 NCAA 득점 역사에서 11위를 기록하며 대학을 마쳤다. 대학을 마친 후에 그는 NBA 드래프트를 신청했다.

2.2. NBA 커리어

파일:external/nbaat90s.files.wordpress.com/dumars.jpg
1985년 1라운드 18순위로 피스톤즈에 지명됐다. 이 때 듀마스는 아이제아 토마스를 우상으로 삼고 농구를 하고 있었는데, 얼마나 좋아했냐 하면 자신의 방에 아이제아의 포스터를 걸어놓을 정도라고 한다. 그런 그와 동료로 뛸 수 있었으니 그에게는 큰 축복이라고 할 수 있겠다. 듀마스가 합류하면서 디트로이트는 강력한 팀이 되며 강한 팀이 되기 시작한다.[2] 그 후에 데니스 로드맨, 존 샐리 등이 합류하면서 이미 있었던 릭 마혼, 빌 레임비어 그리고 아이제아 토마스와 함께 피스톤즈를 동부의 강호로 만들게 된다. 그들은 매번 래리 버드가 이끄는 보스턴 셀틱스에 의해 좌절 되었지만, 결국 그들을 물리치고 매직 존슨이 이끄는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와 우승 결정전인 NBA 파이널까지 갔다. 매직 존슨은 효과적으로 막아냈지만 5차전의 시원치 않은 판정과 아직은 우월했던 레이커스의 조직력 앞에 좌절하며 결국 듀마스의 피스톤즈는 준우승에 머무르고 만다.

바로 그 다음 년에 복수를 다짐하며 동부 지구 우승에 다가왔는데 이번에 그들 앞에선건 역으로 작년 디트에게 털려 복수를 다짐중이었던 시카고의 조던. 초반에 그에게 탈탈 털리며 쩔쩔맸지만 결국 토마스가 조던 룰을 고안해 오고 듀마스는 그 안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함으로 시카고 불스와 조던을 또 한번 침몰시키고 다시 매직이 이끄는 레이커스와 붙게 된다. 이때는 매직 존슨을 비롯한 레이커스의 주축들이 모두 부상을 달고 있었고 복수의 칼을 갈던 토마스와 배드 보이스에게 자비란 없었다. 듀마스는 공수에서 매직을 상대로 뛰어난 활약을 보였고, 결국 매직은 두번째 게임에서 햄스트링 부상을 당해 그 이후로는 나오지 못했고 디트로이트가 4전 전승으로 레이커스를 처참히 발라버리고 우승했다. 이때의 활약으로 듀마스는 파이널 MVP를 받았다.

그 다음시즌인 1989-1990시즌에는 같은 동부지구 시카고 불스의 강력한 도전이 있었으나[3] 이겨내고 파이널에서 포틀랜드 트레일 블레이저스를 맞이하여 4승 1패로 다시 우승하는데 이 과정이 좀 극적이다. 당시 듀마스는 엄청나게 슈팅 감각이 좋았는데 그 경기가 끝나고 듀마스는 슬픈 소식을 듣게 된다. 바로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것. 그의 가족은 듀마스가 경기에 집중할 수 있도록 경기가 마칠 때까지 이야기하지 않았던 것. 아무튼 그런 상황에서도 끝가지 싸워서 피스톤즈는 결국 연속 우승을 하는 쾌거를 거두게 된다.

하지만 1990-1991 시즌 이후로 토마스와 배드 보이스 1기의 번영은 끝이 났다. 시카고 불스에 의해 4전 전패로 컨퍼런스 결승전에서 무너지고 난 뒤 팀의 성적은 내리막을 걸었다. 불스와의 마지막 경기에서 듀마스와 토마스의 평가가 극과 극으로 갈리게 된다. 승부가 기울자 데일리 감독은 주전 멤버들을 모두 뺐고 이들은 홈 관중들로부터 기립박수를 받으며 코치진과 포옹을 하는 등 훈훈한 분위기였는데, 토마스와 레임비어를 필두로 한 주전 멤버 대부분은 경기 종료 7.9초를 남겨두고 퇴장해버렸다. 이때 불스 벤치 앞을 지나갔는데 조던을 포함한 불스 주전멤버들의 표정이 썩어들어가는 걸 감상할 수 있다. 사실 퇴장 자체는 그렇게까지 큰 문제는 아니었지만 이들이 경기 직후 관례로 되어있는 상대팀과의 악수(친한 선수들의 경우 포옹)를 거부한 것 때문에 비난을 받았다. 이 와중에서 불스와 악수를 한 것은 바로 듀마스와 존 샐리 둘 뿐이었다. (이후 샐리는 불스에서 뛰기도 했다.)[4][5]

이후 배드 보이즈는 하나하나씩 은퇴 및 팀을 떠나며 끝나게 되었고, 듀마스는 1999년 은퇴 직전까지 피스톤즈에서 14년을 뛰면서 16000 득점, 4600 어시스트, 2200개의 리바운드와 900여개의 스틸을 기록하였다. 후반에는 포인트가드로 뛰기도 하였다.

3. 프런트 경력

2000-01 시즌을 앞두고 디트로이트의 단장 겸 사장으로 취임한다. 변경하였던 팀 엠블럼과 유니폼을 배드 보이스 당시의 그것으로 되돌렸고 팀은 약체 신세였지만 배드 보이즈에 버금가는 조직력 농구를 위해서 선수들을 하나씩 모으기 시작한다. 강력한 수비수로 떠오르던 빅벤 벤 월러스를 중심으로 강력한 수비를 구축했고, 공격력에서 약점을 드러내자 리처드 해밀턴, 천시 빌럽스와 계약을 했으며, 드래프트로 테이션 프린스와 메멧 오쿠어 등을 뽑았고, 대학 농구의 명장이었던 래리 브라운을 영입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성격문제로 말이 많았던 라시드 월러스 애틀랜타 호크스에서 데려옴으로써 2004 NBA 파이널에서 샤킬 오닐, 코비 브라이언트가 이끄는 전당포 라인업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며 배드 보이즈의 1990년 우승 이후 첫 우승을 차지한다.

빌럽스의 노련하고 차분한 경기 운영과 슈팅, 해밀턴의 지치지 않는 활동량과 비수같은 중거리 슈팅, 테이션 프린스의 긴 신체를 활용한 협력 수비와 준수한 득점력, 팀의 정신적 지주이자 충만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몸싸움, 리바운드에서 제 역할을 하고 빅맨으로써 코트 어디서나 슛을 던질 수 있는데다 개인 득점능력을 갖춘 라시드 월러스, 중앙에서 끝판왕 포스를 풍기는 철문수비 센터 벤 월러스. 이렇게 피스톤즈는 단단하고 내실있는 진용을 갖추게 된 것이다.[6]

이 라인업으로 피스톤즈는 한동안 르브론 제임스의 앞길을 가로막으며 2000년 중반까지의 강호로 군림하였고, 6년 연속으로 동부 컨퍼런스 파이널에 진출하는 큰 성과를 거두게 된다. 이러한 공으로 그는 2002-2003 시즌에 올해의 경영자 상을 받는 쾌거를 이루게 된다.

하지만 2000년대 후반에 들어서기 시작하며 듀마스는 비효율적인 선수들에게 거금의 계약을 안겨주고 여러 선수들이 팀을 떠나면서 경영자로써 성공과 실패를 동시에 경험하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로드니 스터키를 전면에 세워 차세대 포인트 가드로 키우려 했지만 실패하였고, 시카고의 에이스 벤 고든, 스트레치형 빅맨 찰리 빌라누에바, 수비가 떨어지는 크리스 윌콕스 등을 영입했다 피를 보고 라인업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또한 13-14 시즌을 앞두고는 브랜든 제닝스 조쉬 스미스를 영입하여 코트를 뻑뻑하게 만들며 밸런스가 엉망인 로스터를 구성하며 암흑기를 더 연장시킬 뻔했다. 결국 이 로스터는 전권을 쥐게 된 스탠 밴 건디가 조쉬 스미스와 그렉 먼로, 브랜든 제닝스를 전부 내치며 로스터를 재구성하며 00년대 후반~10년대 초반 최악의 팀중 하나인 디트로이트를 플옵경쟁력이 있는 팀으로 탈바꾸긴 했다.

경영자로서의 그의 성적은 다음과 같다. 595승 536패 (52.7% 승률), 6년간 지구 우승 및 동부 우승전 진출, 두 차례의 동부 지구 우승 및 1차례의 NBA 우승. 말년의 삽질이 아쉽기는 하지만 꽤나 성공적이었던 경영인이라 볼 수 있다.

다만 듀마스의 행정가로서 경력을 평가하기가 애매한 이유가 내내 잘하다 말년에 못한거나, 초반만 반짝 잘하다가 내내 못한게 아니라 잘한 기간과 잘못한 기간이 절반 정도이기 때문이다. 듀마스는 14년 동안 재직했는데, 단장 말기에 잘한 것은 2006년 오프시즌에 벤 월러스를 잡지 않은 것, 그리고 그의 공백을 미시건 출신 크리스 웨버를 싸게 데려와서 메운 것 정도였다. 이 시즌은 노장 빅맨 안토니오 맥다이스와 포인트 가드 로드니 스터키를 드래프트한 것 정도는 별다른 영입이 없었으니 이 시즌의 성공은(60승, 동부 결승) 사실 기존의 전력을 재정비한 감독 플립 손더스와 선수단의 공헌이라고 봐야 한다. 08-09시즌부터 그의 삽질이 시작되었는데, 아직 실력이 건재하던 천시 빌럽스를 트레이드해 팀과 전혀 안 맞는 앨런 아이버슨을 데려온 것. 이때 피스톤즈는 라쉬드 월러스까지 포기했는데, 60승 팀의 코어가 건재한데 왜 갑자기 한 시즌만에 무리해서 리셋을 했는지 의문. 게다가 확실히 리빌딩에 들어간 것도 아닌 것이, 상술했듯이 벤 고든과 찰리 빌라누에바를 비싸게 데려왔기 때문이다. 2008년 이후부터 그가 경영인에서 물러나기 까지 잘한 것은 안드레 드러먼드를 드래프트한 것 정도 뿐이었다. 2011년 드래프트에서 뽑은 브랜든 나이트도 조력자로 나쁘진 않았지만, 그 이후에 뽑힌건 켐바 워커, 클레이 톰슨, 카와이 레너드, 니콜라 부세비치, 지미 버틀러 등이었다.[7]

4. 행정가 경력

2022년 NBA의 수석부사장으로 영입되었다.

5. 수상 내역

수상 내역
파일:NBA-Champion.png NBA 챔피언 2회 (1989, 1990)
파일:NBA-Champion.png NBA 파이널 MVP (1989)
파일:NBA 로고.svg 올-NBA 세컨드 팀 (1993)

파일:NBA 로고.svg 올-NBA 서드 팀 2회 (1990, 1991)
파일:NBA 로고.svg NBA 올-디펜시브 퍼스트 팀 4회 (1989, 1990, 1992, 1993)
파일:NBA 로고.svg NBA 올-디펜시브 세컨드 팀 (1991)
파일:NBA 로고.svg NBA 스포츠맨십 어워드 (1996)
파일:NBA 로고.svg NBA 올-루키 퍼스트 팀 (1986)
파일:FIBA-Logo.png 1994 FIBA 세계 선수권 대회 캐나다 금메달

6. 이것저것

2014년에 단장에서 내려온 이후에는 경영에 관여는 하지 않지만, 그래도 팀 경영에 조언자로 남기로 했다. 그는 조 듀마스 필드하우스라는 인도어 운동 센터 및 엔터테인먼트 센터를 두개 운영중이고, 디트로이트에서 여러가지 비지니스를 하고 있다.

7. 관련 문서



[1] 참고로 미국식 문화에 대해 익숙지 않으면 생소하겠지만 트래쉬 토킹은 더티플레이가 전혀 아니라 그냥 일상적인 놀이문화다. 미국, 특히 흑인들 사이에선 서로 디스하고 장난스럽게 까면서 농구하는게 일상적이고, 이 때문에 NBA 경기를 실제로 보면 선수들이 정말 쉴세없이 떠든다. 베프인 조던과 바클리가 1998년에 붙은 경기를 보면 둘이 정말 쉴세없이 서로 디스하고, 일부러 바클리가 조던에게 부딫히는 등 신경전을 벌이는데, 이게 싸우려고 하는게 아니라 친하지만 이렇게 아웅다웅하면서 경쟁하는게 이들 문화인 것이다. 물론 트래쉬토킹도 장난스럽게 까는 것과 달리 악의를 담아 까면 상대방의 빈정을 상하게 하며, 문제가 되는 경우는 패드립이나 인종차별, 성소수자 비하같은 멘트를 하는 것. 듀마스가 한 트래쉬토킹의 경우 웃으며 받아들일 수 있는, 정말 애교에 불과하다. [2] 사실 80년대 중반까지 피스톤즈는 우리가 아는 강력한 수비팀보다는 아이재아 토마스가 이끄는 페이스가 빠른 공격과 준수한 수비를 갖춘 팀에 가까웠다. 83-84시즌엔 오펜스 레이팅 1위/디펜스 레이팅 16위였으며, 84-85시즌엔 9위/9위, 85-86시즌엔 7위/15위로 수비도 괜찮지만 연속으로 20득점 10어시스트 이상을 기록하던 특급 포인트가드 토마스를 중심으로 한 공격에 더 강세를 가진 팀이었다. 그러나 이후 준수한 공격력을 유지하고 수비력이 최상위권으로 올라가면서 질식수비팀이 된 것이다. 연속우승하던 89시즌 피스톤즈는 오펜스레이팅 7위/디펜스 3위, 평균득점은 리그 16위에, 90시즌엔 오펜스 11위/디펜스 2위에 평균득점은 19위였다. 실제로 토마스의 경우 기량은 그대로였지만 이때문에 스탯이 하락해 이때 수상실적은 커리어 초반보다 떨어진다. 또다른 질식수비팀인 90년대 닉스와 달리 피스톤즈의 공격력은 항상 중간수준은 되었는데, 피스톤즈는 안정적인 공격옵션이 패트릭 유잉 뿐이었던 이들과 달리 토마스와 듀마스란 안정적인 득점옵션에 벤치의 마크 어과이어, 비니 존슨 등도 있고 빌 레임비어도 준수한 득점지원을 해주며 공격력이 상당히 괜찮은 팀이었다. [3] 7차전 접전 끝에 4승 3패로 이겼다. [4] 샐리는 피스톤즈 이후 부상으로 기량이 크게 떨어졌지만 특유의 친화력 덕분에 동료들에게 인기가 많았고, 이 때문인지 필 잭슨이 레이커스 부임 당시 농구선수로서는 효용성이 거의 없어진 샐리를 굳이 데려가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 이렇게 성격이 좋은 선수였음에도 찰스 바클리가 꼽은 피스톤즈에서 싸움을 제대로 할 줄 아는 세 명 중 하나였다. 바클리 평에 따르면 "He's more of a lover than a fighter". 진짜 아이러니한 건 나머지 두명은 아이제아 토마스듀마스. 사실 80년대는 워낙 거칠어서 아무리 성격이 좋고 온순해도 싸움을 아예 안 하는 선수들은 거의 없었다. [5] 필 잭슨 감독이 샐리를 원했던 것은 윌 퍼듀가 나가면서 빅맨이 필요했는데 트라이앵글 오펜스에 익숙한 선수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샐리는 디트로이트에서 불스와 수없이 싸우며 트라이앵글 오펜스를 연구해야 했으니까. 그 외에 악동 데니스 로드맨의 말벗이 필요하기도 했다. 두루두루 성격 좋은 샐리는 이에 적격이었다. [6] 자세한 점은 디트로이트 피스톤즈 참조. [7] 마지막 픽으로 뽑힌 아이제아 토마스는 누구도 성공을 예상 못했으니 넘어가자. 결국 눈부시게 잘한 6번의 시즌, 무난하게 잘 운영한 두 시즌, 삽질을 한 6시즌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