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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객기/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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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대2. 20세기
2.1. 1900년대2.2. 1910년대2.3. 1920년대2.4. 1930년대2.5. 1940년대2.6. 1950년대2.7. 1960년대2.8. 1970년대2.9. 1980년대2.10. 1990년대
3. 21세기
3.1. 2000년대3.2. 2010년대3.3. 2020년대

1. 세대

세대 연도 대표 기체 특징
1세대 1910~1930 일리야 무로메츠 대부분 제1차 세계 대전 당시의 폭격기를 개조
2세대 1930~1950 보잉 247, DC-3, 마틴 M-130 금속으로 제작
3세대 1950~1970 DH-106 코멧, 보잉 707, DC-8 제트엔진 사용
4세대 1970~1980 보잉 737 오리지널, 보잉 747-100, 보잉 747-200, DC-10, L-1011, A300 300석 이상의 대형기, 고 바이패스비의 엔진 사용[1]
5세대 1980~1980년대 후반 보잉 737 클래식, 보잉 757, 보잉 767, A310 중형기의 탄생
6세대 1980년대 후반~2000 보잉 737 NG, 보잉 747-300, 보잉 747-400, 보잉 777, A320, A330, A340 글래스 콕핏이 사용됨. 항공 기관사 사라짐
7세대 2000~2010년대 보잉 787, A380, A350, 보잉 747-8, 보잉 737 MAX, A320neo 패밀리 탄소섬유 등 신소재 사용. 쌍발 중대형기가 시장의 축을 잡으며 4발 초대형 여객기들이 단종

2. 20세기

2.1. 1900년대

1903년 최초로 비행기가 동력비행을 한 후 10년 넘게 여객기라는 개념은 거의 없었다.
크기도 작고 안정성도 불확실한 당시 비행기 때문에 승객을 태우고 다니는 정기 노선을 개척한다는 개념은 사실상 없었다.

2.2. 1910년대

비행기의 안정성이 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크게 개선되었지만, 세계대전 시기라 이 당시 중요 전력중 하나인 비행기는 민간에서 그리 사용되지 않았다. 가끔 작은 비행기들이 극소수를 위한 여객노선을 만들기는 했다.

1913년에 제작된 러시아 제국 일리야 무로메츠는 가장 대표적인 여객기로, 1914년에 승객을 태우고 비행한 세계 최초의 여객기이다. 처음부터 여객기로 제작되었으나,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며 폭격기로 개조되어 동원되었다.

1919년 최초의 민간 항공사 KLM 네덜란드 항공이 설립 되었다.
1920년부터 운항했는데, 1920년 한 해 동안 345명의 승객과 25톤의 화물을 운송했다고 한다.

민간항공수송의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군용기를 개조한 비행기로서는 도저히 이를 충족할 수 없게 되자, 1919년에 처음으로 본격적인 민간수송기를 개발하여 정기항공노선에 취항시켰다. 이것이 독일의 융커스(Junkers)사가 개발한 전금속제의 저익단엽기인 F-13으로써, 세계 최초의 밀폐식 객실과 난방시설을 갖춘 것이었으며 3개의 넓은 창문과 4석의 객석을 갖춘 민간수송용 전용여객기였다

1919년에 핸들리 페이지 폭격기의 제작사로 유명한 핸들리 페이지 수송(Handley Page Transport)이 최초로 기내식을 제공하는 여객 서비스를 도입해 운영했다.

참고로 세계 최초의 정기노선은 1918년 우편물 수송 목적으로 뉴욕-시카고 사이에서 이루어졌으며,
여객 수송 목적으로는, 1919년 국내선:베를린-바이마르, 국제선:런던-파리 선이(베를린-바이마르 선보다 3일 늦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정기노선은 우편물 수송 목적으로 1929년 서울-평양-대구-신의주-도쿄 사이에서 이루어졌다.

2.3. 1920년대

이 시기의 여객기는 크기도 엄청 작아 커봤자 20인승으로, 대개 An-2보다 작았다.

항속거리도 짧아서 대서양은 고사하고 지중해나 건너는 수준이었다. 인접 국가간의 국제선이나 국내선 정도만 다니는 정도였으나, 이후 꾸준히 성장해 1929년에는 '여객 및 화물의 항공운송에 관한 운송인의 책임' 등을 다루는 항공분야 최초의 국제협약인 바르샤바 조약이 체결된다.

1925년 미국의 '항공 우편법'이(기존 정부가 운영하던 항공우편을 민간 항공사들에게 맡김) 발효되고, 1927년 우편항공기 조종사였던 찰스 린드버그가 대서양을 횡단 했을 정도로, 민간 항공사는 성행하였으나 당시에는 여객보다 우편이 항공사들을 먹여 살렸다.

2.4. 1930년대

1933년에는 전세계 최초로 날 수 있는 금속제 민항기인 보잉 247이 나왔다. 동체를 금속제로 하니 튼튼하고 춥지 않았으며, 더 고고도로 비행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유나이티드 항공에게만 이걸 독점으로 팔았고,[2] 그걸본 TWA 맥도넬 더글라스에 "보잉 247을 카운터칠만한 기종을 만들어 주세요"라는 주문을 넣는다. 원래는 DC-1을 추천한 상태였지만, DC-1을 엔진 하나가 고장나도 추락하지 않기 위해 3발기로 만드는게 낫다는 찰스 린드버그의 말을 그냥 씹고 쌍발기로 만들었는데... DC-1이 엔진 하나론 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개량을 통해 1936년 DC-3가 탄생했다. 어차피 유나이티드 항공에게만 파는 보잉 247을 살 수도 없고, DC-3도 금속제라 보잉 247을 살 필요가 없어진 항공사들은 모두 DC-3로 주문량을 돌렸고 DC-3은 날개 돋힌듯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또한 팬 아메리칸 항공 마틴 M-130으로 환태평양 정기노선을 뚫었다. 소련에서도 투폴레프가 넓은 소련 영토를 커버할 수 있는 대형 여객기 ANT-20을 개발했다.

이때만 해도 비행기의 항속거리가 짧아, 대륙간 노선은 중간에 고장나도 바다에 내릴 수 있는 마틴 M-130, 보잉 314, 도르니에 DO X등의 비행정이 주로 사용되었다.

한편 이 때까지 항공 여객의 주류였던 비행선의 시대가 끝나고 비행기로 그 자리가 옮겨가게 된다. 1937년 힌덴부르크 호 폭발 사고는 그 결정타였다.

2.5. 1940년대

전 세계가 전시상황이었음에도 신기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여객기에 여압장치가 생겨 고고도로 비행하면서도 쾌적하게 비행할 수 있었고, 록히드 컨스텔레이션 시리즈 보잉 377이 나왔다. 이제 항공기들은 대서양 횡단 정도는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항공기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제트 엔진이 나왔다. 1949년엔 세계 최초의 제트여객기 DH-106 코멧이 첫 비행을 마쳤지만, 기체 결함 문제로 크게 흥하지는 못했다.

2.6. 1950년대

위에서 말한 코멧이 첫 비행을 마친 후 여객기 시장은 크게 달라졌다.

코멧이 그렇게까지 히트를 친 건 아니지만, 제트 여객기라는 개념을 만들어 코멧 출시 이후 제트 여객기들이 나오기 시작해 쉬드 아비아시옹 카라벨이 1955년에 등장한다. 또한, 코메트가 준 영향은 다른 곳에도 있었는데, 바로 코메트 여객기 추락 사고의 원인이 사각형 창문의 꼭짓점에 일어난 피로파괴로 밝혀지자 모든 여객기들이 원형 형태의 창문을 채택하게 되었다.

1954년 보잉에서는 미군이 요구한 공중급유기와 수송기로 활용가능한 '보잉 367-80'이라는 이름의 프로토타입 기체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걸 여객기로 개조해서 팔았는데, 이게 보잉 707이다. 이 기체는 당시 세계 최대의 항공사였던 팬 아메리칸 항공에 의해 1958년에 처음으로 운항되었고, 이로 인해 본격적인 제트 여객기 시대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 367-80을 기반으로 만든 공중급유기가 KC-135다.[3]

더글라스[4]도 이를 보고 기존의 계획들을 철회하고 707에 대항할 새로운 제트 여객기를 만드는데 그 결과물이 바로 DC-8이다. 이 둘의 등장은 여객선의 몰락을 갖고 왔으며 본격적인 제트 여객기 시대가 열리는 시점은 보통 이쯤으로 본다.

한편 이를 본 미국의 컨베어 사는 '단거리 노선을 빠르게 주파하자'는 뜻으로 CV-880을 개발했지만, 여러 문제점으로 잘 팔리지는 않았고, 이후 개량형인 CV-990은 CV-880보다도 적은 판매량을 보이며 처참하게 실패했다.

2.7. 1960년대

보잉 707과 DC-8은 당시에 꽤나 혁신적인 기종이었지만, 문제점이 있었다. 나름 대형기라[5][6] 지방의 작은 공항엔 취향이 불가능한 것.

그리고 이 당시엔 ETOPS규정때문에 쌍발기는 바다를 건너는게 거의 불가능했다. 그래서 항공사들은 보잉 707을 약간 줄이고 엔진하나 줄인 후에 날개에 플랩으로 떡칠해서 작은 공항에도 취향시키도록 비행기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그래서 707의 동체를 기반으로 보잉 727을 만들었으며 한술 더 떠 여기서 더 작은 기종을 만드는데 그 기종이 바로 보잉의 역대급 베스트셀러이자 소형 여객기의 대명사인 보잉 737이다.[7] 이 당시엔 737의 성능이 그렇게 좋지 않아 727도 감당 못 할 정도로 수요가 작은 공항이나 거리가 짧은 노선에 들어갔다.

더글라스도 이에 맞춰 DC-8의 동체를 줄이고 T-테일 설계를 조합해 DC-9를 만들었다. 727보다 작은 사이즈로 소형 공항에 들어갈 수 있어 인기를 끌었으며 1960년대까지 서양 여객기 시장은 보잉-더글라스 체제의 협동체 기종들과 이루어졌다.

2.8. 1970년대

1969년, 최초의 상업용 광동체 여객기인 보잉 747이 첫 비행을 마친 이래로 1970년 8월의 DC-10, 11월의 L-1011로 1970년대는 대형기가 막을 열었다. 현재 웬만한 제트 여객기들에 달리는 고바이패스 터보팬 엔진도 보잉 747에 장착된 JT9D와 DC-10에 장착된 CF6, L-1011에 장착된 RB211을 시작으로 등장했다.[8]

보잉 707의 수송량이 200명 정도인데 747이 최대 580명, DC-10이 410명, L-1011이 435명을 수송할수 있게되었고, 항속거리가 8,000km~9,000km급으로 증가하여 대서양 횡단노선이 활발하게 개척되었으며, 한번 경유 해서 태평양 횡단도 할 수 있게 되었다.[9]

또한 아에로스파시알-BAC 콩코드가 출시되어 단 14대만 인도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줘 초음속 여객기에 대한 개발이 이뤄져 보잉이 보잉 2707을 계획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콩코드가 초음속 여객기에 대한 환상을 심어줌과 동시에 초음속 여객기의 문제를 몸소 입증해내서 보잉 2707은 747이 대체하게 되면서 취소되고, 원래 81대가 주문되어 있었던 콩코드는 전부 취소되어 영국과 프랑스에서 각각 7대씩 생산하여 총 14대만 생산되었다.

1974년엔 에어버스에서 자사 최초의 여객기인 A300을 출시했으며, 중단거리 가축수송을 책임졌다. 이 기종은 쌍발기여서 747, DC-10보다 연비가 좋았으며 수송량도 적절해 여러 항공사들에게 사랑받았다. 이렇게 해서 서양 여객기 시장은 보잉-더글라스 체제에서 에어버스까지 가세해 3강 체제를 완성한다.[10]

2.9. 1980년대

1960년대의 1세대 제트 여객기를 대체할 시점이라 707, DC-8, 727등의 대체기와 대형기와 소형기 사이의 시장을 메꿀 중형기들이 모습을 드러냈으며 글래스 콕핏이 슬슬 대중화되며 항공기관사라는 직업이 위협받기 시작한 시대이다. 그리고 이 시기에 더글라스가 맥도넬과 합병해 맥도넬 더글라스라는 이름과 MD-XX라는 기종명을 쓰기 시작했다.

보잉 707은 1979년을 끝으로 단종되었고, 727도 1984년에 단종되었다. 보잉은 "727의 연비가 낮으니 엔진을 하나 줄이고 단거리 공항에 취항 가능한 협동체 항공기를 만들어보자" 라고 생각해 727을 대체할 여객기를 개발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보잉 757이 탄생한다. 하지만 연비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고 737의 사이즈업, 767의 팀킬로 인해 미국 국내선 시장 위주로 팔렸으며 결국 2004년에 단종되었다.

한편 보잉은 DC-10, L-1011, A300을 1대1로 상대할 수 있는 기종이 필요하단 것과 707의 대체를 인지해 중형 광동체기를 개발했으며 그 결과물로 보잉 767이 모습을 드러냈다. 에어버스도 A300의 축소판인 A310을 개발해 이에 대항했다. 767은 적절한 사이즈와 쌍발기여서 연비가 좋다는 이점 덕분에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화물기 시장에서도 큰 파이를 차지하고 있지만 A310은 A300이 건재해서인지 인기가 없어 얼마 못 팔고 단종되었으며 현재는 대부분의 기체가 화물기로 운항 중이다.

소형기 시장에도 변화가 불었다. 보잉은 기존 보잉 737 오리지널의 사이즈를 키우고 JT8D에서 CFM56으로 엔진을 교체한 보잉 737 클래식을 출시했으며 맥도넬 더글라스는 DC-9의 사이즈를 키우고 글래스 콕핏을 적용해 MD-80을 출시했다. 에어버스도 이에 맞춰 자사의 첫 소형기 시리즈이자 현재까지 소형기 시장에서 보잉 737과 양대산맥을 구축 중인 A320을 출시했다.

대형기 시장 역시 발전했다. 보잉은 커진 어퍼덱을 기본 적용한 보잉 747-300을 거쳐 글래스 콕핏과 윙렛, 향상된 성능을 가진 엔진을 적용한 보잉 747-400을 출시했다. 에어버스는 A300에 글래스 콕핏과 윙팁 펜스, 새로운 엔진을 적용한 A300-600을, 맥도넬 더글라스는 DC-10을 기반으로 MD-11을 내놓았다.

2.10. 1990년대

1980년대에 출시된 기종들이 널리 퍼지기 시작한 시대이며 동시에 준대형기 시장이 개쳑된 시기이다.

보잉은 767과 747 사이의 수요를 담당할 기종을 구상했고 그 결과 보잉 777이 출시된다. 에어버스에서도 A300의 사이즈를 키워 A330 A340을 출시해 중형기 시장이 활성화되고 준대형기 시장이 개척되었다. 맥도넬 더글라스의 MD-11은 삼발기라는 태생 덕분에 연비가 경쟁 기종들에 비해 안 좋았고 그 외에 여러 설계 미스 덕분에 결국 시장에서 도태되고 말았으며 결국 맥도넬 더글라스는 보잉에게 흡수된다.

소형기 시장은 보잉에서 보잉 737 클래식을 더욱 발전시켜 윙렛과 새로운 플랩, 개선된 글래스 콕핏을 적용한 보잉 737 NG를 출시했다. 에어버스도 A320의 동체 사이즈를 변경해 A318, A319, A321을 출시했고 맥도넬 더글라스 역시 MD-80에 IAE V2500을 장착시키고 개선된 글래스 콕핏을 적용해 MD-90을 출시했다.

이 시기에 70년대에 출시한 보잉 747 클래식, DC-10, A300 등이 거의 대체되었다. 이 추세는 2000년대 중후반까지 이어진다.

3. 21세기

3.1. 2000년대

2001년 9.11 테러가 발생하며 항공 업계가 괴멸적인 피해를 입은 시대이다. 9.11 테러는 여러 안전 규정이 생기는 계기가 되었으며 동시에 콩코드의 퇴역을 불러왔다.

보잉은 777-200/ER, 777-300에 당시 제일 강력했던 여객용 제트 엔진인 제너럴 일렉트릭 GE90-115B를 장착해 2세대 777인 777-200LR, 777F, 777-300ER을 출시한다. 2세대 777의 출시는 A340에게 큰 타격을 입혔고 결국 A340은 2011년에 상업기 시장에서 단종된다.

에어버스는 747에 대항하고자 세계 최대의 여객기인 A380을 2006년에 출시했다. 그러나 항공사들의 노선망이 허브 앤 스포크 방식에서 포인트 투 포인트 방식으로 변해 그 수송 능력이 애물단지가 되어 버렸고 그 노선망 변화로 인해 B777과 A330 같은 쌍발 중형/준대형 기종들이 인기를 얻게 되었으며 엄청난 덩치로 인한 어마무시한 유지비 덕분에 결국 15년 남짓 팔리다가 2021년에 최종적으로 단종되었다.

3.2. 2010년대

기존 B747에 여러 신기술을 적용한 보잉 747-8이 출시되었다. 위에서 말한 원인과 같은 이유로 거의 주문량이 없으며, 2016년 12월 이래론 주문량이 없다. 마지막 여객형 보잉 747은 대한항공으로 인도되었다. 같은 이유로 A380도 주문량이 없어서, 2010년대 들어서 4발기의 시대는 사실상 끝났다.

보잉 747의 단종에 대비하기위해 보잉 777-200과 777-200ER이 담당하던 노선은 보잉 7E7 프로젝트로 계승 시켰고, 7E7프로젝트에 따라 보잉 787이 출시되었다. 초반엔 보잉 787에서 화재 관련 결함이 일어나 운행이 중단되고, 트렌트 1000 엔진 문제로 해당 엔진 장착 기체가 ETOPS 180으로 강등당하는등의 수모를 당하며 판매량이 330, 350에 추월당했었다.

보잉 787이 잘나가는걸 본 에어버스는 A330neo[11]의 개발에 착수하여 2018년 첫 비행을 마쳐 2019년 초에 상용 운항에 들어갈 전망이다. 주문량은 보잉 787보단 시원찮다.

보잉 777의 독주를 견제하기위해, 그리고 A340의 패배를 설욕하기위해 에어버스에선 777보단 약간 작은 급의 여객기 A350을 개발했다. 매우 잘팔리고 있으며, 2018년 말 에는 A350-900 ULR형이 출시되어 SIN - EWR이라는 20시간짜리 항로[12]를 재개했다.

보잉 787, A350등의 항속거리 15,000km급의 중대형기가 출시되어 작은 항공사들이 중간 규모 도시에서 큰 규모의 장거리 노선 개척을 집중적으로 하고있다.

보잉 737은 90년대의 737 NG를 대체하기위한 보잉 737 MAX를 개발했다. 2015년 공개되어 출시 3년만에 무려 5,000대라는 주문량을 확보했으나[13], 심각한 결함사태로 인해 몇천대의 주문량이 인도되지 못했다. 또한 10,000번째 보잉 737도 만들어져서 인도되었다.[14]

이에 대응하여 에어버스도 A320의 대체기로 A320neo를 만들었다. 아직 A320은 10,000번째 기체를 만들지 못하였으며, A320neo도 737만큼은 아니지만 꽤나 잘나간다.

요약하면 장거리의 시대라 할수 있겠다. 보잉 787, A350등 항속거리 괴물들이 연속으로 나오며 동남아에서 미주지역, 오세아니아에서 유럽으로가는 신규항로들이 개설 중이다. 대표적인 예로 싱가포르-뉴욕, 싱가포르-LA, 퍼스-런던, 등등 비행시간 15시간 이상, 비행거리 13,000km이상의 노선들이 있다.

3.3. 2020년대

2020년대에 출시될 것으로 예상 가능한 기체는 보잉 797, 보잉 737 MAX10, 보잉 777X, A321XLR, MC-21이 있다.
일단 이 시점에 퇴역할 기종들은 보잉 757, 보잉 767이 있다. 보잉 787은 767 대체기로 크기에 보잉은 항속거리 9,700km급의 좌석배열이 2-3-2인 중형기를 만든다는 NMA 프로젝트를 발주했고, 모두가 이는 보잉 797이라 생각한다. 실제로 보잉 767과 NMA의 좌석배열은 같다.
797이 767의 후속 기종임에따라 보잉과 에어버스는 757의 대체기로 보잉 737 MAX10과 A321의 항속거리 연장형을 추천할 가능성이 있다. 이미 에어버스에겐 A321neo LR이라는 대서양 횡단이 가능한 기체가 있으나, 에어버스에서 더 항속거리를 연장한 A321XLR을 출시하였다. 보잉 737 MAX 10은 이미 나와있으나 상업 운항에 들어가려면 2020년 초에나 가능할것으로 전망된다.
보잉 777X는 보잉 747의 단종에대한 보잉의 대책으로, 보잉 777을 사이즈 업해서 747의 대체기로 만든다는것. 다만 뭔가 이상한점이 보잉 747이 단종된 이유는 단순히 엔진이 4개거나[15] 전면부가 2층이어서가 아니라 대형기라서 단종되었다는 것. 그러니 777X를 만들어도 747과 같은 이유로 주문량이 저조할 수 있다.

다시 초음속 여객기 개발에 도전하고 있는 상태이다. #

하지만 희망적인 예측과 반대로 2020년 초부터 시작된 COVID-19의 여파로, 전세계 국제 항공교통은 완전히 마비되었다. 이 때문에 항공기 제작사를 포함한 항공 관련 업계 역시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보잉 회사가 망하기 직전이 되었다.

[1] 전문적으로 설명하면 압축기로 들어가는 공기 대 팬으로가는 공기인 바이패스비가 커졌다는것이고,(그러니까 팬이 커지고 압축기가 줄었다.) 쉽게 말하면 엔진이 커졌다는 것이다. [2] 유나이티드 항공은 이 당시 보잉의 계열사였다. [3] 즉 KC-135가 보잉 707에서 파생된 게 아니라 둘이 같은 뿌리에서 갈라져 나온 기체이며, 사실상 KC-135가 형이다. [4] 당시엔 맥도넬 사와 더글라스 사가 합병하기 전이었다. [5] 여담으로 오늘날에는 단거리용 기체로 취급받는 보잉 737의 최신형인 보잉 737 MAX 10과 보잉 707의 첫 양산형인 보잉 707-120의 길이가 20cm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당장 최대 좌석 수만 보더라도 전자는 230개고 후자는 179개다. [6] 물론 그 당시 기준으로는 대형기었는데, 이는 그 당시에는 좌석 수가 50개가 넘는 기체는 드물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세계 최초의 제트 여객기인 DH-106 코멧의 최종형인 4형의 최대 좌석 수가 81개에 불과하던 판이었다. [7] 사실 737의 첫 양산형인 737-100은 겨우 30대밖에 팔지 못하는 대참패를 기록한 반면, 후속 버전인 737-200은 단일 기종이 보잉 707의 총 판매량을 능가할 정도의 엄청난 판매량을 보이며 737의 성공의 서막을 알렸다. [8] 이후 DC-10은 JT9D을 40형에 썼으며 747은 한 술 더 떠 나머지 둘도 적용해 400형까지 장착했다. 그러나 L-1011은 롤스로이스의 파산으로 인한 개발 지연과 엔진 카울 자체가 RB211에 맞춰져 다른 엔진을 장착하지 못하는 문제가 결국 시장에서 도태되는 결과를 갖고 왔다. [9] 이때 발달한 공항이 앵커리지 테드 스티븐스 국제공항이다. 특히 이때 태평양 노선은 냉전 시기여서 소련 중국이 영공 개방을 하지 않던 시대라 앵커리지를 꼭 간다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지금도 화물기의 급유로 여전히 중요한 공항이다. [10] 이는 당시에는 개발도상국 플래그 캐리어 정도였던 대한항공의 큰 기여가 있었다. 당시 엑조세 미사일을 구매하려던 한국 정부가 프랑스가 엑조세 판매를 거부하자 유럽의 극소수 항공사들에게만 쓰이던 A300도 같이 구매해 준다고 선언해 거래가 성사되었으며 대한항공 역시 이 기종을 40대 정도를 굴리며 김포-제주 같은 단거리 고수요 노선부터 중단거리 국제선까지 골고루 써먹었다. 대한항공이 이렇게 A300을 잘 써먹는 걸 본 다른 항공사들도 이를 보고 A300을 구매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에어버스는 현재의 보잉-에어버스 양대 체제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11] neo는 New Engine Option의 약자로, 신형 엔진 장착형 이라는 뜻. [12] 직선은 15,400km, 실제론 제트기류를 타느라 17,500km가량 비행 한다고한다. [13] 출시 이후 50년간 판 물량이 9,000대인데 이거의 절반 이상을 3년만에 확보한 것이다. [14] 사우스웨스트 항공으로 인도 되었으며, 기종은 737-MAX8, 등록 부호는 N8717M [15] 물론 4발기의 연료 효율이 떨어지는 것도 한몫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