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25 19:07:39

러시아령 다롄

아르투르 항에서 넘어옴
만주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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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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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제국
중화민국
봉천군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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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연방 | 극동 연방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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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주
Квантунская область
달니
Дальний
파일:러시아 국기.svg
국기
1898 ~ 1905
성립 이전 해체 이후
일본 제국령 관동주
위치 랴오둥 반도
다롄
정치체제 전제군주제
군정체제
정부수반 사령관 → 행정관 → 최고행정관
언어 러시아어, 중국어(관화)
통화 러시아 루블

1. 개요2. 역사

[clearfix]

1. 개요

뤼순 다롄에 있던 러시아 제국 조차지이다.[1] 당시 러시아인들은 이 조차지를 Дальний(달니) 또는 Порт-Артур(아르투르 항)으로 불렀으며 일부는 관동주(Квантунская область)라고도 불렸다.

2. 역사

1895년 일본 제국 시모노세키 조약에 따라 이곳을 잠시 지배한 바 있으나, 러시아 제국, 프랑스 제3공화국, 독일 제국 삼국 간섭에 의해 되돌려 주었다. 이후 만주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이 강해졌다. 러시아는 만주에 철도를 놓을 수 있게 되었고, 1898년 3월 27일 여대조지조약(旅大租地条约, Русско-китайская конвенция)을 맺어 청나라로부터 뤼순과 다롄을 25년간 조차하게 되었다.

1897년, 청나라와 조차 조약을 맺기 이전에도 러시아는 이미 뤼순 일대에 12,500명의 러시아군을 주둔시키고 있었다. 독일 제국 교주만 일대를 점령하자 러시아도 이에 견제하기 위해 뤼순과 다롄을 점령한 것. 조차 조약 이후 규모는 더욱 커져 35,000명이 되었다. 이곳은 러시아 극동 주둔군의 거점이 되었으며, 해군 기지도 설치되었다.

1900년 6월에는 의화단 운동이 일어났고, 러시아 소유의 동청철도가 청군과 의화단의 공격을 받았다. 이를 빌미로 러시아는 20만명의 대규모 군대를 만주에 파견해, 동년 11월 만주 전체를 실질적으로 군사점령했다. 만주 강점에 항의하는 중국인들은 체포되거나 사살당한다. 한국의 독립운동가들이 수감되었던 일본의 뤼순감옥은 사실 러시아가 반러 중국인들을 수감하기 위해 지은 것이다. 1902년에는 뤼순에 만주를 관할하는 극동총독부를 설치했으며, 15만명의 러시아군을 주둔시켰다. 이는 일본에게 큰 위협으로 다가왔다.

일본이 각종 이권을 빼앗으며 호시탐탐 노리던 대한제국과 러시아가 국경을 완전히 맞대게 되었으며, 러시아는 한국까지 식민지 보호국으로 만들 기세였다. 어쩔 수 없이 러시아는 일본을 비롯한 열강들의 위협에 의해 뤼순과 다롄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러시아군을 철군시키지만, 한국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이 커지자 다시 철회하고 러시아군을 주둔시키는 등 러시아와 일본은 점점 대립하게 된다. 결국 1904년 일본 제국은 러시아 제국의 뤼순을 기습적으로 공격하면서 러일전쟁을 일으켰고, 이는 일본의 승리로 끝났다. 이후 1945년까지 이곳은 관동주로서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으며, 일본의 중국 대륙 침략의 거점이 되었다.

다만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소련은 만주를 점령했고 1955년까지 이 지역을 다시 중화인민공화국으로부터 조차받았다가 반환했다.


[1] 당시 뤼순은 별개의 도시였다. 그러나 다롄이 성장하면서 1951년 통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