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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서베를린에 세워진 종합대학에 대한 내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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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베를린의 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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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훔볼트 대학교 Humboldt-Universität zu Berl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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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iversitas Litterarum (학문의 총체) |
국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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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공립대학 |
설립 | 1810년 10월 15일 ([age(1810-10-15)]주년) |
소재지 | |
독일 베를린 Unter den Linden 6, 10117 Berlin | |
총장 | Peter Frensch |
학생 수 | 36,222명[1] |
교직원 수 | 2,408명[2] |
링크 | 공식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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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Humboldt-Universität zu Berlin)는 독일 베를린에 있는 공립대학교이다. 베를린에 종합대학(Universität)이 총 4곳(훔볼트대, 자유대, 베를린 공대, 베를린 예술대)이 있는데 그중 가장 먼저 건립된 대학이다. 현지에서 일반적으로 쓰는 약칭은 하우(HU)와 훔볼트이다.빌헬름 폰 훔볼트의 건의를 받은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가 1810년에 창립하였다. '인간의 인간다움 그 자체만을 위한 주체적 자아 형성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이라는 대원칙 하에 연구와 학습을 통일시키려 했던 훔볼트식 고등교육 모델(Humboldtsches Bildungsideal)을 최초로 도입했던 대학이다. 미국과 캐나다의 유수 연구중심대학들이 모두 훔볼트식 모델을 북아메리카에 최초로 도입한 대학인 존스 홉킨스 대학교를 벤치마킹하여 성장했고, 오세아니아 최초의 연구중심대학인 호주국립대학교도 존스 홉킨스 대학교를 본떠 설립됐음을 생각해보면 이 훔볼트식 모델의 영향이 매우 컸음을 알 수 있다.
처음엔 교명이 베를린 대학교(Universität zu Berlin)였다. 그러다 1826년에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의 이름을 따서 베를린 프리드리히 빌헬름 대학교(Friedrich-Wilhelms-Universität zu Berlin)로 교명을 변경하였다. 대학 본관이 자리잡고 있는 거리명을 따서 운터덴린덴 대학교(Universität unter den Linden)라 부르기도 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대학 소재지가 소련군 점령지역에 속하게 되었다. 이 지역에 들어선 독일민주공화국(동독)에서 1949년에 대학 건립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훔볼트 형제를 기념하여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로 명칭을 바꾸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공산주의에 반대하던 대학 관계자들은 1948년에 서베를린에 베를린 자유대학교를 세웠다.
건립 이후 전 분야에 걸쳐 괄목할 만한 연구 성과를 내왔다. 동독 붕괴 이후엔 인문사회 계열에서 강세를 보인다. 예컨대 2021년 QS 세계 대학 랭킹에서 인문학 19위, 사회학 24위, 2021년 THE 세계 대학 랭킹에서 인문학 20위, 사회과학 40위, U.S. 뉴스 & 월드 리포트의 2021년 세계 대학 랭킹에서 인문학 53위에 올랐다. 전체 순위를 보면, 2021년 QS 세계 대학 랭킹 117위, 2021년 THE 세계 대학 랭킹 80위, U.S. 뉴스 & 월드 리포트의 2021년 세계 대학 랭킹 82위, 2020~21년 CWUR 세계 대학 랭킹 66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2012년부터 우수대학육성정책을 통해 지원을 받고 있다.
2. 캠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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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대학 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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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 본관 정면 |
베를린의 자랑거리인 미테(Mitte)의 운터덴린덴(Unter den Linden) 한복판에 있기에 대학 찾기는 아주 쉽다. 다만 이는 총장실이나 입학처, 학생식당 등이 있는 본관(Hauptgebäude)이다. 많은 독일 대학들은 한국식 캠퍼스를 갖추고 있지 않는데, 훔볼트대도 단과 건물들이 미테 곳곳에 흩어져 있다. 게다가 수학·자연과학 학부(이른바 아들러스호프 캠퍼스)는 미테가 아니라 아들러스호프에 자리잡고 있다.
이 본관은 본래 호엔촐레른 가문이 소유하고 있던 하인리히 왕자 궁전(Palais des Prinzen Heinrich)이었다. 건축물 자체가 18세기의 바로크 스타일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역사성 높은 유적이면서 베를린 최중심지에 자리잡고 있는 종합대학의 본관이라는 특수성도 돋보이기에 연간 수십만명이 방문하는[3] 베를린을 대표하는 관광명소 중 하나로 발돋움해 있는 상황.
정문 앞 및 정문과 건물 사이의 정원을 낀 포장길에 자주 벼룩시장이 열리는데, 평범한 학술 서적은 물론 동독 시절의 서적, 배지, 우표 같은 기념품들도 같이 구입할 수 있다. 중앙홀 내부로 들어가면 1층에 대학 기념품들을 구매할 수 있는 훔볼트 스토어가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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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르크스 금박 문구 |
1층과 2층 사이의 계단 벽에는 이 대학 졸업생인 카를 마르크스가 <포이어바흐에 대한 테제>에서 언급한 명언[4]이 금박으로 새겨져 있다. 1953년에 독일 사회주의통일당의 발의로 장식된 이 문구를 놓고 동독 붕괴 이후 맹렬한 논쟁이 전개되었다. 과거사 청산을 이유로 철거를 주장하는 세력들이 상당한 압력을 넣었고 실제로 대학 본부도 철거를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었다.( 1997년도 기사) 하지만 옛 동독 관계자들과 진보 지식인들, 그리고 학생들이 철거안에 격렬하게 반발하였고, 결국 1998년에 대학 평의회가 보존하기로 결론을 냈다. 이 금박 장식물 앞에서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이 꽤 많다.
각층 곳곳에 대학 출신 유명인사들의 사진이 걸려 있는데, 노벨상 수상자들 사진이 모여 있는 2층 중앙부가 유명하다. 아무래도 아인슈타인을 촬영하는 관광객들이 많은 편이다.
2.2. 중앙도서관 '그림 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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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도서관(그림 센터)의 열람실 |
이 대학의 중앙도서관은 오랜 기간 베를린 국립도서관(Staatsbibliothek zu Berlin)과 역사를 공유해 왔는데, 1831년에 대학 중앙도서관이 창립되기 이전엔 베를린 국립도서관이 동시에 대학 중앙도서관을 의미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중앙도서관 소재지가 국립도서관의 관할 구역인 도로텐슈트라세 27(Dorotheenstraße 27)이었기에 완전한 독립이었다고 보기는 힘들었다. 참고로 국립도서관이 1913년에 현 위치(Unter den Linden 8)로 이전하기 전까진 베를린대 본관 맞은 편인 베벨플라츠 2(Bebelplatz 2)의 건물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현재 이 건물엔 (법대 도서관을 포함하는) 법대가 상주하고 있다.
그러다 2005년부터 국립도서관을 보수, 확장하기 시작하면서 헤시셰 슈트라세 1~2(Hessische Straße 1-2)의 건물(현재 캠퍼스 노르트 도서관)이 중앙도서관의 임시 거처가 된다. 이후 2009년에 이 대학에서 강사로 활약했던 그림 형제를 기려 명명한 야코프 빌헬름 그림 센터(Jacob-und-Wilhelm-Grimm-Zentrum)가 게슈비스터 숄 슈트라세 1~3(Geschwister-Scholl-Straße 1-3)에 개관하며 진정한 의미로 독립한 중앙도서관을 보유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이 대학에는 각 학과마다 도서관들이 따로 존재했지만, 새로운 중앙도서관이 개관하며 상당수 도서관들이 문을 닫고 소장 자료들을 모두 중앙도서관으로 옮겼다. 현재 남아 있는 도서관 분관은 총 10곳이다.
그림 센터는 대학의 랜드마크로서, 테라스식 열람실과 사각형으로 둘러싸인 디자인이 특징이다. 미적 우수성을 인정받아 독일은 물론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 중 하나로 꼽히며, 국내에서도 여러 차례 언론 보도를 탔을 정도로 건축물로서 상당한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예시) 도서관임에도 관광객들이 많고 아예 도서관 가이드 투어 프로그램도 존재할 정도다.
하지만 개관 이후 내부 시설이 급속도로 낙후되고 말았다. 독일의 대학 도서관은 기본적으로 공공 시설로 간주하기에 별다른 제재 없이 누구나 입장할 수 있는 데다, 상술한 대로 관광객들도 자주 방문하는 곳이라서 사용자 숫자가 상당히 많고 심지어는 노숙인들의 왕래도 빈번하다. 그럼에도 2010년대 이후까지 시설관리를 철저하게 해오질 못했는데 무엇보다 화장실이 꽤나 지저분한 편이었다. 다행히도 2019년 후반기에 보수 공사를 실시해 개선된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