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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민/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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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5f5f5,#2d2f34><colcolor=#152484,#fff> 생애 <colbgcolor=#fff,#1f2023> 생애
지역구 은평구 갑
비판 및 논란 비판 및 논란
지지자 박주민계
관련단체 더불어민주당 · 민변 · 참여연대 · 법제사법위원회
기타 국회의원 시키신 분 · 검찰개혁 · 디젤매니아 유저의 박주민에 대한 가짜 뉴스 유포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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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학창 시절2. 인권 변호사 시절3. 정계 입문
3.1. 20대 국회3.2. 21대 국회3.3. 22대 국회

1. 학창 시절

1973년 11월 21일, 서울특별시 성북구에서 태어났다. 원래부터 공부를 잘했던 건 아니었는데 중랑구 소재의 서울 봉화중학교 재학 시절 열심히 공부해서 대원외국어고등학교 중국어과(6회)에 입학했다. 그런데 막상 대원외국어고등학교에 들어와보니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워낙 많아서 거기선 한동안 하위권에 머물렀었다고 한다. 그래서 심기일전하여 공부를 더욱 열심히 했고, 공부 외엔 신경 끊으려고 화장실 가서도 거울을 안 봤다고 한다. 재수를 통해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에 합격한다. 사실 원래는 법학 쪽엔 관심이 전혀 없었고, 오히려 어릴 땐 돈 굴리는 것에 관심이 많아서[1] 그런 적성에 맞는 경영학과를 지망했었으나, 시험성적이 잘 나와서 경영학과를 지원하기 아까워서 법대를 지원했다고 한다.[2]

경쟁적인 학교 분위기에 압박되어 공부만 한 반작용으로, 대학 진학 후 사회운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대학 재학 중 21세기 진보학생연합에서 활동하면서[3] 법대 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하기도 하였다. 졸업 후 학사장교에 지원하여 1998년 7월 1일 공군 헌병 소위로 임관하여 제15특수임무비행단 제16전투비행단에서 복무하였고, 2001년 6월 30일 중위로 만기전역하여 병역을 마쳤다.

2. 인권 변호사 시절

파일:박주민 민변시절.jpg
2013년 6월 28일 민변 사무처장 시절
2003년 제45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2006년 1월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후 변호사로 활동했다. 담당했던 주요 사건들은 아래와 같다.

3. 정계 입문

파일:박주민 - 문재인.jpg
2016년 1월 26일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하는 모습
2016년 1월,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했다. # 그간 거리의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이리저리 뛰어다녔지만 역시 문제를 본질적으로 해결하려면 정계에 직접 뛰어드는 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어 영입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문재인 전 대표의 인재 영입으로 입당한 케이스임에도 불구하고, 공천이 계속 늦어지면서 출마 여부 자체가 불투명한 지경에 이르렀다. 2016년 3월 20일에 드디어 서울특별시 은평구 갑 지역에 전략공천이 확정되었다.[6]

국민의당 김신호 후보와의 단일화를 추진한 결과, 여론조사를 통해 4월 10일 박주민 후보가 은평 갑 단일 후보로 확정되었다. 단일화 경선 조건이 국민의당 후보 쪽에 유리한 방향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박주민 후보 측이 이를 수용하였고 반전이 일어난 것이라고 한다. 이는 서울 지역에서 이뤄진 더불어민주당 & 국민의당 간의 첫 야권 단일화이기도 하다.

외부 영입 인물이긴 하지만 당내 지지 기반이나 공직자 선출 선거 경험도 전혀 없는 사람이 비례대표가 아닌 지역구에 출마하여 한방에 성공한 셈이다. 초선에 바로 여당 최고위원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7] 서울 은평구라는 곳이 이전부터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지역이었고 박주민 의원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이미경 전 의원이 내리 3선을 하면서 지역 기반을 탄탄하게 다져놓은 것도 한몫을 했다. 이미경 전 의원은 당 지도부에 의해 컷오프되었으나 반발 없이 박주민 후보의 당선을 위하여 적극 후원하였다는 후문이 있다.

세월호피해자가족협의회의 법률대리인을 맡아서 열성적인 활동을 하여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신망이 두터운지라 유세 과정에서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에서 희생된 안산시 단원고등학교 학생들의 유족 여러 명이 자원 봉사를 하러 은평구까지 와서 전화 홍보, 사무실 청소, 선거 유세 등을 도왔다고 한다.
파일:도라에몽유가족.jpg
박주민 후보를 위해 인형탈을 쓰고 유세하는 세월호 유족들
특히 인형탈을 쓰고 춤추는 선거 운동원들도 세월호 유족들이었는데, 세월호에 대한 논란이 지속되고 있는 현실에 세월호 유족들이 직접 활동하면 선거 판세에 오히려 악영향을 끼칠까 봐 신원을 감추기 위해 일부러 도라에몽, 원숭이 등의 인형탈을 뒤집어쓰고 활동하겠다고 자청하였다고 한다.(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쓰인 <이기는 사람들>이라는 단편소설이 있다. 김탁환 작, 단편집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수록.)또한 세월호 수습에 헌신했던 김관홍 잠수사는 본인이 원래 그 지역에 산다며 도움을 자청해 선거 유세 기간 동안 후보차의 운전대를 잡았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 끝에 아무런 연고도 없었던 은평구 갑에서 54.9%의 득표율로 40.9%인 새누리당 최홍재 후보를 14%p의 표차로 제치고 당선되었다. #

3.1. 20대 국회

워낙 일 중독으로 유명하다보니 잠도 국회 개회 전 본회의장에서 행복하게 잤다고 한다. # 국회에서 단잠을 청하는 사진과 백남기 농민 빈소에서의 모습 등 여러 활동 사진에서 고생하는 사진과 이력으로 주갤에서는 '거지갑'으로 불린다. 물론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추레한 몰골이 될 만큼 국민을 위해서 발로 뛰며 고생한다는 뜻으로 바보 노무현의 '바보'와 같은 유형의 별칭으로 보면 된다.

때문에 정계 인사들을 중심으로 꾸준히 대권 꿈나무로 언급되고 있는데, 인권변호사 경력에다 우리나라 정계에서 보기가 드문 40대의 젊은 정치인이라서 기성 정치인들과 다를 수 있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8]

다만 박주민의 정치적 성향을 보면 이재명, 제윤경, 진선미와 함께 "좌고우면 않고 현실에 깊이 관여"하는 모습이라, 민주당보다 정의당이라 이러한 성향이 전국 단위 선거에서 이기려면 필연적으로 끌어 안아야 하는 무당파 중도층, 온건한 보수층의 지지를 얻어내는 데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또 그의 성격상 아직 정계에 갓 들어온 초선 의원에게 대권처럼 큰 자리를 잘 소화할 수 있을지도 의문인 데다가 역대 대권 주자들이 호남이든 충청이든 영남이든 다들 나름의 지역 기반이 있었지만 박주민은 지역 몰표 성향이 없는 서울 출신이라는 점도 약점으로 꼽힌다. 그리고 5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대권을 노릴 만한 입지가 커지는 건 불가능한 점을 고려했을 때 아직은 정치 경험을 더 쌓아가면서 본인의 기반과 체급을 키우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다만, '정치란 가능성의 예술이다'라는 말이 있듯,[9]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의 경우처럼 정치 경험이 거의 없었던 사람이 갑작스레 유력 대선 주자로 급부상하는 일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라 불가능하다고 단정지을 일도 아니다. 단적으로 검찰총장에서 정치 경험 없이 바로 대한민국 대통령이 된 사람도 있다.

일 중독 성향과 발의 법안이 온라인상에서 퍼지자 '거지갑'이라는 애칭이 붙었다. 게다가 후원금 지원도 엄청나게 늘어나 계좌 한도가 가득차 더이상 입금이 안 된다고 한다.

송영길 인천시장과 함께 러시아 특사행에 합류했다. # 이제 정치경력 만 1년이 좀 넘은 초선 의원이 특사단에 포함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물론 특사단에 초선급의 정치 경력이 짧은 정치인이 포함되는 경우는 있으나 대부분 그 이전에 행정 관료나 외교 분야 경력이 있는 경우가 많다. 또는 상임위가 외교와 관련된 외통위 소속이거나. 그에 반해 박주민 의원은 국회의원이 되기 전 인권 변호사 출신이었을 뿐 아니라 상임위도 법사위 소속이다. 여러모로 이례적이다.

일단 큰 이유는 러시아 특사였던 송영길 의원과의 친분이 두텁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송영길 의원도 특사로서 마음에 맞는 인물을 데려가고 싶었을 것이다. 다만 지위와 경력상 외교에 별반 도움이 안 되는 인물을 친분 때문에 주요 4강국 특사단에 포함했다고 보기에는 이유가 부족하다. 박주민 의원이 특사단에 포함된 것은 차세대 정치인을 지속적으로 성장시키기 위한 당 또는 대통령 차원의 배려나 의지일 것으로 보인다. 외교 경험이 전무한 초선 의원에게 특사단에 포함되어 인맥과 경험을 쌓는 것이 큰 자산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연히도 해외 특사로 파견된 인사들의 외모가 여러 가지 의미로 주목을 받아서 '외모 패권주의' '내수용과 외수용의 차이'라는 농담이 돌았는데, 이를 박주민 본인도 알았는지 트위터에 '외모 패권에 밀린 사람들 해외로 방출된 거 아니에요'라는 글을 올렸다. #

사회적 참사의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일명 '사회적 참사법')을 대표발의하였는데, 위 법안은 결국 2017년 11월 24일 본회의를 통과하여 12월 12일 공포되었다. 국회선진화법의 '패스트 트랙' 조항으로 통과된 얼마 안 되는 법안 중의 하나이다.

12월 28일 정치부 기자들이 꼽은 '최고 신사 의원'에게 수여하는 백봉신사상 대상을 받았다. 초선 의원이 백봉신사상을 받은 것은 박진 전 의원 이후 두 번째다. #

2018년 6월 제주도에 예멘 난민들이 몰려오면서 화두가 되고 있는 가운데, 박주민 의원이 지난 5월, 국내 불법체류자들의 자유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법안을 대표 발의해 차후 논란이 예상된다. #

2018년 7월 19일 더불어민주당의 새 지도부를 뽑는 전당대회 당 최고위원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2018년 8월 25일 정기전국대의원대회에서 열린 최고위원 선거에서 후보자들 중 득표율 1위로 당 최고위원에 선출되었다. 민주당 전체로 보면 이해찬 당 대표, 원내대표에 이어 당 서열 3위이다.

3.2. 21대 국회

21대 총선에서는 당에 단수공천을 받으면서 재선에 도전한다. 예비후보로 등록하면서 본격적인 선거운동을 시작한다. 64.29%를 얻으며 무난하게 재선에 성공하였다.

2020년 7월 21일,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경선 출마를 선언함에 따라 이낙연 전 의원, 김부겸 전 장관과 경쟁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임기 종료를 1달 남짓 남기고 당 최고위원직을 사퇴했다. 현재 당은 국민과 소통을 못 하고 있다고 비판한 것은 덤.

김남국, 김용민, 이재정, 장경태, 최혜영 등 당내에서 비교적 젊은 의원들이 전당대회에서 박주민을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2020년 8월 18일 밤에 한 지지자로부터 8.15 광복절 문재인 정부 규탄 집회 참가자들이 이용한 전세버스 79대의 섭외 책임자 명단을 제보받았다고 한다. 의원실은 8월 19일 아침 방역당국에 이것을 넘겨주었다.

8·29 전당대회결과 3위로 낙선했다. 그러나 대의원표에서 3위로 나왔고 일반당원, 일반여론조사, 권리당원에서 2위로 뽑혀 사실상 2위로 마무리한 셈이었다. 이는 당내 경선에서 대의원표의 영향력이 크기 때문인데, 대의원은 각 지역의 지역위원장 및 시도당 위원장의 입김이 많이 작용되는 직책으로 465개 지역구, 17개 시도당위원장 선출권이 주어진다. 상대적으로 대의원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조직력이 없던 박주민이 2위를 기록한 것은 매우 고무적인 결과나 다름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2020년 11월 11일 민주당 우원식 의원과 함께 중대재해기업 처벌법 법안을 발의했다. #

2020년 7월부터 2021년 재보궐선거의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2021년 1월 박영선 전 장관과 자주 만나 상의한 결과 박영선 전 장관은 서울시장에, 박주민 의원은 당대표에 출마하기로 '교통정리'가 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 관련 내용이 보도되고 이틀후인 1월 20일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서울시장 불출마를 선언하는 동시에 차기 당권 도전을 시사하는 내용의 입장을 밝혔다. #

그러나 같은 해 4월 1일, 임대차법 통과 직전 임대료 인상이 언론 보도를 통해 드러나 일주일 앞둔 4.7 재보궐선거 패배의 여러 요인 중 하나로 지목되었다. 이로서 다음 달 진행 된 2021년 5월 2일 전당대회에서도 불참하였다. 서울시장과 당대표 주요 후보군으로 거론되던 입장에선 큰 타격을 입은 셈이다.

2021년 5월부터 제21대 국회 전반기 법제사법위원회 간사로 일하게 되었고 같은 날 더불어민주당 제1정책조정위원장이라는 당직도 얻었다.
파일:이재정 이재명 박주민.jpg
2021년 7월 29일 이재정 의원과 이재명 캠프에 합류
민주당 대선 경선 국면에서는 이재정과 함께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열린 캠프에 합류하였고 총괄본부장의 역할을 맡았다. 이 지사는 영입 소식을 밝히며 "든든하다. 두 의원님 모두 당의 개혁적인 정책에 앞장서 주셨고 우리 정치의 미래를 밝힐 분들"이라며 "저뿐만 아니라 개혁적인 4기 민주 정부로의 재창출을 열망하는 국민께도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박주민 의원은 페이스북에 "후보님이 선뜻 캠프에서의 총괄본부장 역할을 제안하셨고 저도 흔쾌히 힘을 보태기로 했다"며 "준비된 후보, 늘 행동하는 후보, 이재명 후보를 도와 대한민국의 미래를 함께 준비하겠다"고 적었다. 이재정 의원도 "말로만 개혁이 아닌 실천으로 보여줄 수 있는 사람, 미래 세대를 위한 길을 만들고 정치 혁신을 할 수 있는 사람. 이재정은 이재명과 함께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

2022년 3월 12일,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서울특별시장 출마를 위해 지역위원장직 사퇴서를 중앙당에 제출했다. &

2022년 4월 19일, 같이 서울시장에 도전장을 낸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컷오프되었으나, 21일 더불어민주당 비대위에서 100% 국민경선으로 경선을 진행하도록 결정해 컷오프가 취소되고 경선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러나 검수완박의 최전선에 서있는 의원으로서 선거에 도저히 집중할 상황이 아니어서인지[10] 4월 26일 경선 후보에서 사퇴하였다.

더불어민주당/2022년 전당대회에서 당대표 후보로 출마했지만 컷오프되었다.

2023년 9월 29일 새로 선출된 홍익표 원내지도부의 원내수석부대표로 선임되었다. 첫 업무는 2023년 하반기 보궐선거 강서구청장 진교훈 후보를 지원하기 위해서 하루하루마다 강서구에 국회의원을 파견하는 표를 작성한 것이라 한다.

2024년 2월 23일, 민주당에서는 22대 총선에서 박주민 의원을 현재와 동일한 지역인 은평구 갑에 단수공천한다고 발표하였다. # 박주민 의원은 출마를 공식 선언하고 은평구를 '서울 서북권 경제 중심지'로 성장시키고, 고양-은평선 신사고개역 신설, 녹번천 복원사업 지속 추진, 교육여건 개선, 은평터널로 지하화 등을 공약으로 제시하였다. #

3.3. 22대 국회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됨에 따라 3선 의원이 되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 후보군으로 분류되었으나, 최종적으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에 내정되었다. #

7월 3일, 2024년 국회 무제한토론[11] 2번째 주자이자 찬성 측으로 토론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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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심지어 장난감을 친구들에게 돈 받고 빌려줄 정도로 일찍부터 이재에 밝았다고 한다. 이후 그의 임대료 논란을 생각해보면... [2] 이 당시 학력고사는 학교와 학과를 지원하고, 시험을 봤기 때문에 사실과 다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시험 성적이 꼭 학력고사 성적이 아니라 모의고사 성적일 수도 있으므로 사실일 수도 있다. 참고로 희망 학교 및 학과를 모의 지원하는 모의고사도 있었음. [3] 1996년 의장. [4] 실제로 이 소송에서 박주민을 비롯한 청구인단이 승소함으로써 야간집회가 합법적으로 가능하게 되었다. [5] 해당 사건 판결문에 변호인으로 기재되지는 않았다. [6] 이 무렵 사실은 동작구 갑을 제안받았었지만 같은 시기 영입인재로 들어와 국회의원이 된 국정원 출신 김병기 후보가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 줄 알았기 때문에 거절했다가 내심 후회중이었다고 한다. 측근으로부터 기자회견을 해서 불만을 표하라는 제안도 들었었는데 민주당에 피해가 갈까봐 기다렸다가 3월 19일 욕심을 버렸는데 바로 다음 날에 깜짝으로 전략공천을 받았다고. [7] 표창원, 조응천, 김병기, 김정우, 수도권에 출마한 소위 '문재인 키즈'들도 박주민 의원과 비슷한 성공 사례들이다. 특히 김병관 전 웹젠 의장은 새누리당 강세 지역이었던 분당구에 출마해 당선되는 기염을 토하기도. [8] 당에서도 이런 성향과 접촉점을 이유로 진보정당 소속 정치인과 민주당 사이의 가교 역할을 맡기고 있다. [9] 철혈재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했다고 한다. [10] 실제로 4월 25일 국민의힘 박병석 국회의장 주도의 양당 합의안을 뒤집자 이를 강행하기 위해 법제사법위원회 제1법안심사소위원회에 참석해야되는 상황에서 TV 토론회에 참석해야된다는 문자를 받아 불참하고 불만을 토로한 바 있다. [11] 순직 해병 수사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의 제정을 저지하기 위해 국민의힘에서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