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시밀리안 셸 Maximilian Schell |
|||||||||
출생 |
1930년
12월 8일 오스트리아 제1공화국 인스브루크 |
||||||||
사망 |
2014년
2월 1일 (향년 83세) 오스트리아 빈 |
||||||||
국적 |
[[스위스| ]][[틀:국기| ]][[틀:국기| ]] | [[오스트리아| ]][[틀:국기| ]][[틀:국기| ]] |
||||||||
묘지 | 오스트리아 케른튼 프라이터네크 공동묘지 | ||||||||
신장 | 180cm | ||||||||
학력 |
베른 대학교 취리히 대학교 |
||||||||
직업 | 배우, 각본가, 감독, 프로듀서 | ||||||||
영화 데뷔 | 1955년, '아이, 엄마, 그리고 장군' | ||||||||
활동 기간 | 1955년 ~ 2014년 | ||||||||
가족 |
누나
마리아 셸 슬하 1녀 |
[clearfix]
1. 개요
오스트리아 출신의 배우, 감독, 제작자.2. 상세
스위스에서 자랐다. 당시 대부분의 오스트리아인과 달리 나치 독일에 찬동하거나 히틀러 유겐트 활동 또는 독일군/SS로 복무한 일은 없다.전후에 많이 나온 할리우드 2차 대전 영화에서 큰 체격과 강한 인상으로 독일군 장교 역을 많이 맡았다. 진짜로 SS에 복무한 적이 있는 두 살 위 독일 배우 하디 크루거와 함께 나치 독일 전문 배우라고 할 만하다.[1] 2차 대전 영화 중 스케일로는 손꼽는 대작 머나먼 다리, 샘 페킨파 감독의 폭력 미학의 절정인 반전 영화 철십자 훈장(당시 국내 제목 17인의 푸로페쇼날)에서 인상적인 역할을 했고, 역시 2차 대전 영화인 뉘른베르크의 재판으로 아카데미 상까지 탔다.
노년에도 딥 임팩트같은 블록버스터에 나오며 미국에서 배우 작가 감독으로 활동하다가 숙환으로 83세에 사망.
3. 작품
3.1. 출연
- 1958 젊은 사자들
- 1960 The Fifth column[2]
- 1961 뉘른베르크의 재판
- 1968 Krakatoa, East of Java
- 1977 머나먼 다리(Bridge too far) - 빌헬름 비트리히
- 1977 철십자 훈장
- 1979 블랙홀
- 1986 Peter the Great
- 1994 리틀 오데사
- 1998 딥 임팩트
- 1999 Joan of Arc[3]
3.2. 연출
4. 여담
- 마리아 셸의 동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