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스(백야극광)

　라인하르트한테 들었는데, 네가 바로 이 하얀 콜로서스의 조종사라지? 딱히 대단해 보이진 않는데? 뭐, 라인하르트가 말한 것처럼 잠재력이 있는 사람일지도 모르지.
　나? 난 일루미나 근위군의 군단장이야. 비록 지금은 가장 높은 지휘관은 아니지만, 근위군단장도 물론 내 실력의 증거니까, 아직까진 만족하고 있어.
　내가 일루미나를 위해 일하는 목적은 물론 암귀를 죽이고, 내 힘도 증명하고, 점점 더 강해지는 거지. 더 깊은 목적이라면―― 너도 그 소문을 들었다면 당연히 맞출 수 있겠지?
　들어 본 적 없다고? 상관없어. 아직 시간은 많으니까 다음에 천천히 이야기하자고. 네 콜로서스에 대해서 아니면 나와...... 라인하르트에 대해서라든지.

내가 일루미나에서 근위대를 조직할 수 있었던 이유가 궁금한 모양이지?
그건 말하자면 길어. 난 라인하르트와 원래 사관학교의 동기였어. 사이도 꽤 나쁘지 않은 친구였다고 할 수 있지. 잠깐, 그 표정은 뭐야? 아무래도 오해를 한 모양인데, 내가 근위 군단장이 될 수 있었던 건 우리가 친구 사이인 것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고.
그 당시 난 실력이 부족해서... 라인하르트에게 지고 말았지. 하지만 내 자존심은 남에게 뒤처지는 걸 용납하지 않았어! 그래서 나는 라인하르트의 지위에 도전했지. 하지만 라인하르트는 그걸 흔쾌히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내게 충분한 지원을 제공했어.
하지만 이건 알아 둬. 사실 난 「일루미나 대원수」의 자리를 탐내고 있는 게 아냐. 난 그저 「라인하르트를 영원히 따라잡을 수 없다」는 불안감이 계속 날 붙잡고 있어서 내가 항상 긴장을 풀 수 없게 만드는 거야. 그래서 난 라인하르트에게 도전해야 할 적당한 이유를 찾을 필요가 있었지. 물론 내 실력도 그걸 가능하게 뒷받침하고 말이야. 그거 알아? 그때 내 직속 휘하 병사는 한 명도 없었지만, 그래도 난 능숙하게 지휘할 수 있었고 저들이 날 믿게 만들었어!
물론! 난 나의 것을 남에게 내준 적도 없어. 그 자리는 어차피 내 것이 될 거야── 그저 시간 문제일 뿐이라고.　

그때 난 중상을 입어서 병원에서 오랫동안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고, 연합군과 암귀의 대결전을 놓쳐버리고 말았지. 그건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가장 유감스러웠던 일이야.
졸업 후, 사관학교에서 가장 주목받았던 학생 중 한 명으로서, 모두가 내게 커다란 기대를 보냈지. 물론 나도 졸업 후 모두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여러 전쟁에서 큰 성과를 거두었어. 만약 내가 그 3년 동안 혼수상태에 빠져 큰 전쟁을 놓친 것만 아니었더라면, 더 빨리 승진했을 수도 있었을 거야...
깨어난 후, 나는 내 실력과 라인하르트의 지원에 힘입어 빠르게 군단장이 될 수 있었어. 비록 일부 군단장들은 내게 의문을 품고 있었고, 심지어 내가 일루미나를 배신할 거라고 의심까지 했지만... 흥, 웃기는 소리! 난 항상 정정당당하게 실력으로 말했어. 그런 삼류의 수법은 사용하지 않아! 설령 내가 정말 일루미나를 배신한다 해도, 정정당당하게 배신하겠어!
내가 다른 군단의 병사들을 이끌고 암귀를 소탕할 때 날 의심했던 사람들이 깜짝 놀라던 모습을 너도 봤어야 한다니까! 그때를 생각하면 나도 조금 뿌듯할 정도라고.　

그때 난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전쟁 경험이 별로 없었어. 아직 어려서 경솔할 때기도 했고. 하지만 난 계속 스스로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었어. 아마 그래서였는지, 당시 지하성에서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했을 때, 처음에 난 적극적으로 출전을 지원하려고 했지만... 갑자기 알 수 없는 생각이 들기 시작해서 잠시 망설였을 뿐이었는데, 결국 라인하르트가 먼저 나서고 말았지. 그 후 그녀는 지휘관이 되어 큰 공을 세웠어.
난 내 망설임이 너무나도 미웠지만, 선천적인 자존심 때문에 차마 고개를 숙일 수 없었어. 그때부터 난 「라인하르트를 넘어서는」 것이 가장 큰 목표가 되었지. 난 열심히 훈련하고, 끝없이... 끝없이 더 강해지는 수밖에 없었어. 그러다가 내가 중상을 입어 혼수상태에 빠지기 직전, 눈앞의 마지막 장면은 라인하르트가 내 앞에서 검을 휘둘러 적을 막는 모습이었어. 라인하르트가 날 구한 건 사실이야. 난 그게 고마우면서도, 그 애가 미워! 내 자존심은 그 애 앞에서 산산조각이 났으니까. 그때부터 나는 두려워지기 시작했어. 어쩌면 영원히 라인하르트를 넘어설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결국 내겐 더 강해지는 길밖에 없었지.
스트레스? 물론 있지. 난 평소엔 명상과 싸움으로 스트레스를 풀곤 해... 이런 거대한 콜로서스를 조종하는 너도 분명히 많은 스트레스가 있겠지. 만약 필요하다면, 네게도 방법을 가르쳐줄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