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5-25 22:41:48

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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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AA0044><colcolor=#FFF> 레온 왕국 보르고냐 왕조 4대 여왕
둘세
Dulce
출생 1194년
레온 왕국
사망 1243년 이후 (향년 49세 이상)
레온 왕국 비야부에나
재위 레온 왕국 갈리시아 왕국의 여왕
1230년 9월 24일 ~ 1230년 12월 11일
아버지 알폰수 9세
어머니 포르투갈의 테레자
친형제 산차, 페르난도
이복 형제 레오노르, 콘스탄사, 페르난도 3세, 알폰소, 베렝겔라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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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레온 왕국 갈리시아 왕국 보르고냐 왕조 4대 여왕. 언니 산차와 함께 짦은 기간 공동으로 재위했다.

2. 생애

1194년경 레온과 갈리시아 연합 왕국의 국왕 알폰수 9세와 포르투갈 국왕 산슈 1세의 딸 테레사의 둘째 딸로 태어났다. 형제로 산차, 페르난도가 있었다. 아버지 알폰수 9세는 포르투갈과의 동맹을 굳건히 하기 위해 테레사와 결혼했지만, 교황청이 사촌간의 결혼은 교회법에 어긋난다며 반발한 데다 산슈 1세가 결혼 동맹을 깨뜨리고 갈리시아를 연이어 침공해 상당한 피해를 입히자 결혼 생활을 지속해서 득이 될 게 없다고 판단하고 1196년 테레사를 포르투갈로 돌려보냈다.

그 후 알폰수 9세는 카스티야 왕국과 결혼 동맹을 맺기로 하고 1197년 카스티야 국왕 알폰소 8세의 딸인 베렝겔라와 재혼했다. 베렝겔라는 알폰수 9세와의 사이에서 레오노르, 콘스탄사, 페르난도 3세, 알폰소, 베렝겔라를 낳았다. 그러나 이번에도 교황 인노첸시오 3세로부터 사촌간의 결혼은 무효이니 당장 헤어지라는 압박을 받았고, 여러 차례 파문 위협을 받았다. 그는 이교도와의 항쟁을 위해 이웃 국가들끼리 단합하고자 단행한 것이니 인정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교황은 끝내 거부했다. 다만 그들의 자녀들이 왕위를 물려받을 권리는 인정받았다. 결국 알폰수 9세는 교황의 강요에 못 이겨 1204년 베렝겔라를 카스티야 왕국으로 돌려보냈다.

1217년, 알폰수 9세는 산차와 둘세에게 평생 연금과 토지를 수여했다. 1219년 알폰수 9세는 포르투갈 왕국과 보로날 협약을 체결하면서, 포르투갈은 자신이 죽더라도 두 딸과의 협정을 존중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1230년 9월 24일, 알폰수 9세가 사망했다. 알폰수 9세는 당초 첫 왕비 테레사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페르난도를 후계자로 지명했지만, 페르난도가 요절하면서 무산되었다. 이후 베렝겔라 왕비와의 사이에서 낳은 페르난도가 왕위 후계자로 거론되었지만, 페르난도가 이미 카스티야의 국왕인 점이 걸림돌이었다. 카스티야 왕국에 반감을 품고 있던 레온과 갈리시아 귀족들은 알폰수 9세에게 테레사 왕비와의 사이에서 낳은 두 딸 산차와 둘세를 후계자로 지명하라고 권유했다. 알폰수 9세 역시 자신의 동의 없이 카스티야 왕위를 아들에게 물려준 베렝겔라와 감히 자신에게 대항한 페르난도 3세 모자에게 반감을 품고 있었기에, 그들의 설득에 따랐다. 그리하여 알폰수 9세 사후 산차와 둘세가 레온과 갈리시아의 공동 여왕이 되었다.

그러나 다수의 성직자와 레온 시민들은 두 여왕을 인정하지 않고 페르난도 3세를 초청했다. 페르난도 3세는 즉시 군대를 이끌고 와서 토로에 입성해 자신을 지지하는 세력과 힘을 합쳐 레온과 갈리시아 귀족들을 제압했다. 이후 페르난도 3세의 어머니 베렝겔라가 산차와 둘세의 어머니인 포르투갈의 테레사와 협상한 끝에 1230년 12월 11일 베나벤테에서 연간 3만 메라베디(maravedí)에 달하는 거액의 연금과 토지를 받는 대가로 왕관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고 수도원에 들어가 여생을 보내게 했다. 둘세는 언니 산차와 함께 비야부에나에 있는 산타 마리아 엘 비에조 수도원에 들어가서 조용히 지냈다. 1243년 톨레도 대주교 로드리고 히메네스 데 라다는 저서 <이베리아 반도의 역사>를 출판하면서 산차는 이미 죽었고 둘세는 아직 살아있다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