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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fonso IV de León | ||
가문 | 아스투리아스 왕조 | |
생몰년도 | 미상 ~ 미상 | |
출생지 | 아스투리아스 왕국 | |
사망지 | 레온 왕국 산타 바실리사 데 루이포르코 수도원 | |
재위 기간 |
레온 왕국 국왕 | 926년 - 931년 |
갈리시아 왕국 국왕 | 929년 - 931년 | |
아버지 | 오르도뉴 2세 | |
어머니 | 엘비라 메넨데스 | |
형제 | 산추 오르도녜스, 라미루 2세, 가르시아 오르도녜스, 히메나 오르도녜스 | |
배우자 | 오네카 사노이츠 | |
자녀 | 오르도뉴 4세, 프루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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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레온 왕국 5대 국왕.2. 생애
아스투리아스 왕국의 왕자이자 레온 왕국 2대 국왕이었던 오르도뉴 2세와 갈리시아 귀족 헤르메네길도 구티에레스 백작의 딸인 엘비라 메넨데스의 차남이다. 형으로 산추 오르도녜스가 있었고, 남동생으로 라미루 2세, 가르시아 오르도녜스, 히메나 오르도녜스가 있었다. 924년 아버지가 사망한 뒤 삼촌 프루엘라 2세가 군대를 이끌고 와서 레온 왕국의 왕위를 가로채자, 형제들과 함께 갈리시아로 피신했다. 그는 이 시기에 팜플로나 왕국 국왕 안초 1세의 딸 오네카 사노이츠와 결혼했고, 산추 오르도녜스는 갈리시아의 세력가인 무니오 구티에레스 백작의 딸 고토 무뇨스와 결혼했으며, 라미루 2세는 포르투갈 귀족 구티에레스 오소레스의 딸이자 헤르메네길도 구티에레스의 외손자인 아도신다 구티에레스와 결혼했다.925년 8월 프루엘라 2세가 나병에 시달리다가 사망한 뒤 아들 알폰수 프루엘라스가 왕위에 오르자, 그는 두 형제와 함께 반란을 일으켰다. 그들의 반란은 팜플로나 왕국과 갈리시아, 포르투갈 귀족들의 전폭적인 후원을 받았고, 알폰수 프루엘라스는 이를 감당하지 못하고 926년 초 권좌에서 밀려나 아스투리아스 산악지대로 도피했다. 산추와 알폰수는 각각 갈리시아 왕국과 레온 왕국의 국왕으로 즉위했으며, 라미루는 코임브라를 비롯한 포르투갈 지역을 다스렸다.
얼마 후, 산추 오르도녜스는 레온 왕국까지 자신의 소유로 삼기 위해 알폰수 4세와 전쟁을 벌였다. 알폰수 4세는 이 전쟁에서 패배해 아스투리아스로 달아났다. 이후 알폰수 프루엘라스와 화해하고 그의 도움에 힘입어 산추 오르도녜스를 물리치고 레온 국왕에 복귀했다. 929년 여름 형 산추 오르도녜스가 사망하자, 알폰수 4세는 갈리시아를 레온 왕국에 편입시켰다.
931년 여름 알폰수 4세의 왕비 오네카가 사망했다. 자신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던 아내의 죽음으로 상심한 그는 왕위를 형제 라미루에게 넘기기로 하고, 사모라에서 귀족들을 소집해 자신의 결정을 밝인 뒤 사하군의 어느 수도원에 은거했다. 그러나 그는 얼마 안가서 양위한 것을 후회하고 복위를 꾀했다. 아스투리아스 산악지대에서 할거하던 알폰수 프루엘라스와 라미루 프루엘라스, 오르도뉴 프루엘라스는 오르도뉴 2세의 아들들간의 분쟁을 부추키기 위해 그를 지원했다.
932년 초, 톨레도에서 후우마이야 왕조군과 한창 대치중이던 라미루 2세는 알폰수 4세가 반역을 꾀하고 있다는 첩보를 접하자 즉시 군대를 돌려 주동자들을 체포했다. 이때 아스투리아스 귀족들이 배신하는 바람에 알폰수 프루엘라스 역시 두 동생과 함께 라미루 2세에게 넘겨졌다. 라미루 2세는 알폰수 4세와 알폰수 프루엘라스, 라미루 프루엘라스, 오르도뉴 프루엘라스를 실명형에 처하고 산타 바실리사 데 루이포르코 수도원에 감금했다. 연대기에는 그들이 수도원에서 죽을 때까지 갇혀지냈다고 기술했지만 언제 죽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사후 해당 수도원에 안장되었다가 훗날 레온 국왕 알폰수 5세가 루이포르코 수도원에 묻혀있던 모든 왕족의 유해를 산 이시도르 데 레온 대성당으로 이장시켰다.
그는 오네카 사노이츠 왕비와의 사이에서 오르도뉴 4세와 프루엘라를 낳았다. 이중 오르도뉴 4세는 훗날 레온 왕국의 국왕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