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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수(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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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수
金興洙 | Kim Sou[1]
<colbgcolor=#cdaca7> 출생 1919년 11월 17일
함경남도 함흥
사망 2014년 6월 9일 (향년 94세)
국적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직업 화가
미국 무어 미술대 초빙교수
덕성여대 교수
학력 도쿄미술학교
배우자 장수현
1. 개요2. 생애3. 조형주의(하모니즘) 선언문4. 작품
4.1. 승무도4.2. 파천4.3. 누드 19804.4. 염 Thought 1977
5. 여담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 화가. 하모니즘의 창시자.

하나의 캔버스를 화면분할하여, 한쪽에는 '여성의 누드나 한국적인 것을 그린 구상화'를 넣고, 다른 한쪽에는 '기하학적 도형으로 된 추상화'를 넣은 하모니즘 미술을 만들었다. 구상과 추상을 한 화면에 융합하여 조형주의 예술를 개척한 작가로 평가받는다.

2. 생애

3. 조형주의(하모니즘) 선언문

음과 양은 서로 상반된 극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세계로 어울리게 될 때 비로서 완전에 접근하게 되는 것이다. 예술의 세계에서도 예외일 수는 없다.

추상주의의 등장 이후 세계의 화단은 구상주의와 추상주의가 서로 반목적인 상극을 이루어 왔었다. 사실적인 표현은 틀 속에 얽매어 있다고 볼 수 있는 반면, 추상적인 표현은 우연성을 다분히 지니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 어느 한쪽에만 치우쳐 있다는 것은 완전치 못함을 의미한다.

음과 양이 하나로 어울려 완전을 이룩하듯 사실적인 것과 추상적인 두 작품 세계가 하나의 작품으로 용해된 조화를 이룩할 때 조형(造型)[2]의 영역을 넘은 오묘한 조형(調型)[3]의 예술세계를 전개하게 된다. 이것은 궤변이 아니다. 진실인 것이다. 극에 이른 추상의 우연의 요소들이 사실 표현의 필연성과 조화를 이룰 때 그것은 더욱 넓고 깊은 예술의 창조성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July 7, 1977, KimSou

4. 작품

4.1. 승무도

4.2. 파천

4.3. 누드 1980

4.4. 염 Thought 1977

5. 여담

  • 김흥수의 하모니즘은 한 때 미국의 데이비드 살르를 표절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았으나, '조형주의(하모니즘) 선언문'의 재발견을 통해서 데이비드 살르 보다 훨씬 더 빠른 시기에 김흥수가 먼저 작업하고 있었다는 것을 인정받았다. (데이비드 살르는 1983년 부터 김흥수와 비슷한 작품을 내놓기 시작했다. 김흥수의 하모니즘 선언은 1977년도이다.)
  • 프랑스의 저명한 미술평론가 피에르 레스타니에 의해 김흥수의 하모니즘은 독창적인 형식미학으로 인정받게 됐다. 레스타니는 '한불수교 100주년 양국 현대회화작가 교류전'에 출품한 김흥수의 그림에서 감동을 받고, 그의 회화가 하모니즘으로 전개되는 과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한다.
  • 어린 시절부터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였다. 어린 시절에는 자신과 친구들에게 "조선에는 군대도 없으면서 무슨 전쟁놀이냐"라고 비웃으며 시비를 거는 일본인 소년을 턱뼈가 부서질 정도로 두들겨 패기도 했으며, 그 소년의 아버지가 김흥수의 부모님이 보는 앞에서 김흥수를 구타하며 사과를 요구했지만, 끝까지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그리고 청년 시절에는 조선인을 괴롭히고, 금품까지 빼앗는 일본인 대학생들에게 찾아가 그들을 위협하여 금품을 되찾고, 조선인들을 괴롭히지 않겠다는 약속도 받아냈다. 비단 일제시대 일본인들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라, 해방 후에도 불의를 보면 절대 참지 않았다. 젊은 시절에는 체격도 건장하고, 싸움도 잘하는 편이었는데, 절대 그것을 약한 사람을 괴롭힐때 쓰지 않았다.
  • 사제지간으로 만난 43살 연하의 장수현씨와 3번째 결혼을 해서 화제를 모았다. 그전에 김흥수는 2번을 결혼하고 이혼한 이력이 있었다. 아이러니 한것은 이런 연하의 부인이 정작 김흥수 본인보다 2년 먼저 2012년에 난소암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것. 여기에서 자세한 내용을 볼수 있는데, 김흥수 본인이 스스로의 일대기를 수기형식으로 쓴것이라 볼만한 가치가 있다.

[1] 파리에서는 Kim Heung-sou 로 활동하고, 미국에서는 Kim Sou 로 활동하였다. [2] 형태(型)를 만들다.(造:만들 조) [3] 형태(型)를 조화롭게 하다.(調:조화로울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