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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장관 (1948~현재) | ||||
<nopad> 이승만 정부 | |||||
초대 이인 |
제2대 권승렬 |
제3대 이우익 |
제4대 김준연 |
제5대 조진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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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pad> 이승만 정부 | <nopad> 허정 내각 | ||||
제6대 서상환 |
제7대 조용순 |
제8대 이호 |
제9대 홍진기 |
제10대 권승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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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pad> 장면 내각 | <nopad> 장도영 내각 | <nopad> 송요찬 내각 | <nopad> 김현철 내각 | ||
제11대 조재천 |
제12대 이병하 |
제13대 고원증 |
제14대 조병일 |
제15대 장영순 |
|
<nopad> 김현철 내각 | <nopad> 박정희 정부 | ||||
제16-18대 민복기 |
제19대 권오병 |
제20대 이호 |
제21대 배영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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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pad> 박정희 정부 | |||||
제22대 신직수 |
제23대 이봉성 |
제24·25대 황산덕 |
제26대 이선중 |
제27대 김치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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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pad> 최규하 정부 | <nopad> 전두환 정부 | ||||
제28대 백상기 |
제29·30대 오탁근 |
제31대 이종원 |
제32대 정치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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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pad> 전두환 정부 | <nopad> 노태우 정부 | ||||
제33대 배명인 |
제34대 김석휘 |
제35대 김성기 |
제36·37대 정해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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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pad> 노태우 정부 | <nopad> 문민정부 | ||||
제38대 허형구 |
제39대 이종남 |
제40대 김기춘 |
제41대 이정우 |
제42대 박희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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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pad> 문민정부 | <nopad> 국민의 정부 | ||||
제43대 김두희 |
제44대 안우만 |
제45대 최상엽 |
제46대 김종구 |
제47대 박상천 |
|
<nopad> 국민의 정부 | |||||
제48대 김태정 |
제49대 김정길 |
제50대 안동수 |
제51대 최경원 |
제52대 송정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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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pad> 국민의 정부 | <nopad> 참여정부 | ||||
제53대 김정길 |
제54대 심상명 |
제55대 강금실 |
제56대 김승규 |
제57대 천정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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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pad> 참여정부 | <nopad> 이명박 정부 | ||||
제58대 김성호 |
제59대 정성진 |
제60대 김경한 |
제61대 이귀남 |
제62대 권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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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pad> 박근혜 정부 | <nopad> 문재인 정부 | ||||
제63대 황교안 |
제64대 김현웅 |
제65대 박상기 |
제66대 조국 |
제67대 추미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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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pad> 문재인 정부 | <nopad> 윤석열 정부 | ||||
제68대 박범계 |
제69대 한동훈 |
제70대 박성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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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정부 법무부장 | }}}}}}}}} |
역임한 직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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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3764><colcolor=#ffffff> 출생 | 1921년 9월 15일 | ||
경상북도
달성군
가창면 우록동 (現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 |
|||
사망 | 2009년 6월 15일 (향년 88세) | ||
본관 | 사성 김해 김씨 | ||
호 | 서봉(西奉) | ||
재임기간 | 제4대 중앙정보부 차장 | ||
1970년 1월 7일 ~ 1973년 12월 3일 | |||
제13대 검찰총장 | |||
1973년 12월 4일 ~ 1975년 12월 18일 | |||
제37대 내무부장관 | |||
1975년 12월 19일 ~ 1978년 12월 22일 | |||
제27대 법무부장관 | |||
1978년 12월 23일 ~ 1979년 12월 13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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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3764><colcolor=#ffffff> 배우자 | 김금숙 | |
자녀 |
3녀 1남 장녀 김윤희 차녀 김영경 장남 김형국 삼녀 김혜림 |
||
친인척 | 매제 김덕영 | ||
학력 | 주오대학 (법학 / 학사) | ||
경력 |
대구지방검찰청 검사 중앙정보부 차장 제13대 검찰총장 제37대 내무부장관 제27대 법무부장관 서우상역 회장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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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법조인. 제27대 법무부장관을 역임했다.2. 생애
1921년 경상북도 달성군 가창면 우록동(현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1] #에서 태어났다. 항왜 출신 장수로 유명한 김충선의 후손이다. 1943년 일본 주오대학 법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해 7월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했으며, 1945년 4월 일본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다.8.15 광복 후 귀국해 1946년 대구지방검찰청 검사로 근무하면서 검사 생활을 시작하였다. 4.19 혁명 이후 1960년 9월 서울지방검찰장에서 물러나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다.
1970년 1월 중앙정보부 국내 담당 차장에 임명되면서 관료로 복귀하였다. 1973년 8월 이후락, 이철희, 김기완과 김대중 납치 사건을 지휘하였고, 1973년 10월 최종길 교수 의문사 사건 같은 고문을 통한 간첩조작 사건에 관여하였으며 1973년 12월 제13대 검찰총장으로 영전하였다. 1974년 검찰총장으로서 중앙정보부와 함께 민청학련 사건, 2차 인민혁명당 사건에 관여하였다.
1975년 12월 제37대 내무부장관으로 영전하였다. 내무부장관 재임 중이던 1976년 서울특별시 용산구 남영동 대공분실을[2] 준공했는데 특이하게도 명패에는 기관명이나 건축가의 이름이 적히는 반면 내무부 장관 김치열의 이름이 쓰여져 있다. 1978년 12월 법무부장관이 되어서 1979년 12월까지 재임하였다.
5.17 내란 이후 전두환의 신군부로부터 부정축재자로 지목되어 중앙정보부에 연행당해 조사를 받고 재산을 몰수당했다. 그러나 2003년 소송을 통해 1,000억 원대의 부동산을 되돌려 받기도 했다.
3. 여담
- 내무부장관에 임명된 직후 내무부 직원들과 안면을 익힐겸 회식을 가졌는데, 이때 한 초임 직원이 "장관님의 조상이 일본 분이라는 게 사실입니까?"라는 당돌한 질문을 던졌다. 지금도 남의 집안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하는 것을 꺼리는데, 지금보다 더 분위기가 경직되고 일본의 침략으로 인한 반일감정까지 남아있던 1970년대 상황으로서는 거의 패드립으로 받아들여질 말이었다. 그러나 김치열은 "맞아. 근데 갔다가 돌아온 거지."라고 대답하며 회식 자리를 웃음바다로 만들었다고 한다. 김치열 본인도 껄껄 웃었다고. 아랫사람들에게는 대인배적인 풍모를 보여준 일화 중 하나다.
- 법무부장관 재직 당시 10.26 사건에 관해 보고받고는 " 차지철 그 기고만장한 새끼가 결국 일을 저질렀구나!"라며 길길이 화를 냈다고 한다. 그럴 법도 한 게, 박정희 대통령은 임기 말 즈음부터 여러 명의 2인자를 길러 서로를 견제한다는 원칙을 깨고 차지철을 집중적으로 밀어주었기 때문이다.
- 김충선은 후손들에게 8대까지 출세하지 말고, 자신이 죽은 뒤 300년이 지나면 넓은 세상으로 나가도록 후손들에게 당부했는데, 김충선이 사망한 1642년으로부터 300여 년이 지난 뒤 김치열이 법무부장관이 되면서 현실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