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colcolor=#fff> 김시덕 |
출생 | 1975년 8월 25일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동[1] | |
가족 | 아내 장누리,딸 김단비 |
학력 |
소사유치원 (졸업) [2] 서울반포초등학교 (졸업) [3] 반포중학교(서울) (졸업) 반포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일어일문학 / 학사) 고려대학교 대학원 (일어일문학 / 석사) 고려대학교 대학원 (일어일문학 / 박사 수료) 종합연구대학원대학 (문화과학연구과 / 박사 ) |
현직 | 도시문헌학자 |
경력 |
고려대학교 교양일본어 강사 일본 국문학연구자료관 리서치 어시스턴트 고려대학교 일본연구센터 HK연구교수 |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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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도시문헌학자이자 유튜버.처음 책을 낸 당시,보통 학자들의 고려,조선의 탈에서 벗어나 현대인의 아픔을 들어낸 책[4]으로 화제가 되었다.2022년 이후 인기를 얻기 시작하더니 2024년 현재는 부동산 전문가(...)란 인식이 생겨 매우 유명해졌다.[5]
본업은 역사학자이나,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으며,동시에 2021년엔 친일 논란까지 터져 서울대 규장각연구소에서 쫒겨나기까지 했다.하지만 이듬해 낸 책 우리는 어디서 살아야 하는가가 말그대로 초대박[6]을 쳐서 순식간에 떡상[7]하게 되었으며 2024년 초에 낸 책 한국 도시의 미래 역시 대박을 쳤다.그 후 2024년 7월 낸 저서 한국 문명의 최전선 역시 인기가 많아졌으며 구독자 역시 빠르게 증가 중이다.
강연도 자주 하는데 무료인데다가 인기도 좋다.다만 강연 중엔 절대로 질문을 받지 않는다.
답사는 거의 매일 하며,한국 최북단,최남단,최서단,최동단까지 다 가볼 정도로 끈기가 대단하다.
또한 철덕(...)인듯 하다.또한 철도를 공부하면 부동산을 잘 이해할수 있다고 언급하였다.
또 인기가 너무 많아지다보니 2024년 8월에는 아예 부동산 광고를 찍었다.광고 한 곳은 김포시 걸포북변역 초역세권 아파트 한강 수자인 오브센트.
하지만 그의 직업은 엄연히 도시문헌학자라는 것을 기억하자.하지만 최근 강연에선 역사학자라 생각하는 사람을 역사학자로 생각하고,문헌학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문헌학자라 생각하고,부동산 전문가라 생각하는 사람은 부동산 전문가라고 생각하라고 했다.본인도 직업이 여러개라고 생각한 듯.
2. 생애
1975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당시 신반포 한신아파트에서 거주했다고 하며, 유치원 시절은 부천시 소사구에서 보냈다. 그 후 초등학교 때 잠실주공1단지로 이사했고 잠일초등학교를 다녔다. 그 후 잠실주공4단지로 이사했지만 당시 아버지의 사업이 잘 되지 않아 결국 초등학교 5학년 때 안양시 평촌[8]으로 이사갔다. 당시 집안이 매우 안 좋았는지 김시덕 본인도 방배동 함지박사거리[9]의 자신의 큰아버지가 운영하는 주유소에서 알바까지 했다. 다행히 집안 사정이 다시 좋아져서 6학년때 반포주공1단지로 이사해서 초중고를 다 이곳에서 졸업했다고 한다. 고려대학교까지 이곳에서 다녔다고 한다. 그 후 대구와 경산 사이에서 군생활을 한 후 5개월동안 부산 해운대구 좌동 에서 지냈다. 그 후엔 성북구 안암동과 노원구 중계동의 무지개아파트[10]에서 지냈고 여기서 서울 지하철 7호선을 타고 중계역에서 대림역까지 매일매일 출퇴근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해 일본에서 2006년부터 2010년 2월까지 있었다. 그 후 일산의 한 오피스텔에서 1년간 지낸 뒤 개포동으로 이사했다.[11]여기서 딸을 낳았다고 한다.[12] 그 후 2013년 9월에 서울대학교 교수가 되었고 2022년까지 교수아파트[13]에 거주했다. 2022년 경 일산신도시 의 아파트로 이사한 듯하다.3. 특징
도시문헌학자라는 직업을 만든 인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초등학교 때 반포주공1단지와 서울고속버스터미널을 답사하고 중학교 때부터 42번 버스[14] 를 타고 종로와 광화문 을 답사 했다고 한다. 당시 피맛골 같은 곳들을 주로 답사했으며, 현재는 전라남도 고흥군 같은 국내 최남단까지 답사간다. 다만 운전면허가 없어서(...) 제주도 답사 때 고생 좀 했다는 듯.농어촌 답사 때는 답사팀의 차를 얻어 탄다고 한다.
그는 답사 때 허리에 크고 아름다운 가방을 메고 다닌다. 강연 때도 매번 목격되는데 가끔 가방이 바뀐다. 이 가방안에 과거의 지도를 넣어 다닌다.
한편 2021년경까지만 하더라도 규장각 재임용 논란으로 이미지가 영 좋지 못했으나 그 시기에 삼프로 티비에서 2022년 중부권 폭우 사태를 예언[15]했다. 당시엔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1년 후, 정말 강남 일대가 난리가 나자 순식간에 그의 이미지는 떡상했다.[16]
현재는 매우 유명해졌으며,본업인 역사학자나 도시문헌학자가 아닌 부동산 전문가(...)라는 인식까지 생겼다. 그런데 그의 책 우리는 어디서 살아야 하는가는 정말로 집을 매매 하려는 사람은 한 번쯤 꼭 읽어보면 좋은 책이다. 이 책에선 숲세권의 진실,[17] GTX의 진실[18], 지도에서 나무로 덮여있는 곳[19]의 진실 등등... 보통 공인중개사는 전혀 알려주지 않는 사실들을 알려준다.
그리고 낸 한국 도시의 미래에선 3대 메가시티를 언급한다.
대서울권, 동남권, 중부권 이렇게 3개를 언급한다. 이중 대서울권이란, 수도권 밖의 서울 근교 지역[20]까지 포함시킨 뜻이다. 동남권이란 울진, 포항, 울산, 부산, 광양 같은 부울경을 넘어 순천까지 이어지는 메가시티다. 그리고 중부권은 대전, 세종, 청주, 군산같은 중부권을 말한다.
또한 그가 가지고 다니는 지도는 주로 그 지역의 과거 5만분의 1 지도다.
4. 대서울권
보통 사람들이 쓰는 수도권이란 말을 쓰지 않는다.갈등 도시부터 대서울권이란 말을 쓰기 시작했다.갈등 도시,대서울의 길을 쓴 당시에는 용인까지만 대서울권으로 봤으나 [21] 이제는 북쪽으론 철원,남쪽으론 아산, 홍성,심지어 서산까지 대서울권에 포함시켰다. 이 대서울권은 최근 들어 개발이 되고 있는 천안아산역인근도 서울과 접근성이 좋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5. 경력
고려대학교 일본어 학부[22] 및 석사를 졸업했다. 일본의 종합연구대학원대학에 진학하고 국립 문헌학 연구소인 국문학 연구 자료관에서 일하면서 박사과정을 마쳤다.삼프로TV 경제의 신과 함께에 <김시덕 박사의 도시야사>라는 제목으로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의 생성과 발전등, 대한민국의 도시생성과 확장에 대해 부동산의 관점이 아닌 행정과 교통등 실생활의 관점에서 다룬 컨텐츠를 업로드하면서 인지도를 올렸다. 전국 도시를 돌면서 촬영하는 도시문헌학자를 하고 있다.
연구 주제는 크게 둘로 나뉘는데, 전공인 문헌학을 기준으로 일본의 역사 문헌학 및 인문학 연구 및 대한민국의 도시문헌 연구[23]로 나뉜다. 실제 저서도 위 둘로 나뉘고 있다.
2021년까지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교수로 재직하였던 경력이 있다.
<김시덕 박사의 도시야사>는 삼프로TV 채널에서 분할된 일프로TV에서 업로드 되었으며, ###.이후에는 따로 분리된 채널인 위즈덤 칼리지에서 과거의 이야기를 넘어 현재와 미래를 다루는 코너인 <김시덕의 지금 여기>로 변경하기로 하였다.
원래는 연세대를 가려고 했으나 일본어학과가 없단 이유로 일본어학과가 있는 고려대를 갔다.
6. 저서
일본에서 출간한 저서 『이국 정벌 전기의 세계』(2010)로 30년 넘는 전통과 권위를 자랑하는 〈일본 고전 문학 학술상〉을 외국인 최초로 수상했으며, 2018년과 2019년 잇달아 출간한 〈서울 선언〉 시리즈인 『서울 선언』과 『갈등 도시』는 기존 조선 왕조, 사대부 중심의 답사에서 탈피해 현대 서민 문화를 중심에 둔 답사기로서 언론과 대중에 큰 주목을 받았다. # 2023년에 3권의 저서를 냈다.그 후 우리는 어디서 살아야하는가,한국 도시의 미래,한국 문명의 최전선을 내었다.한국 문명의 최전선 이후로는 <서울 선언 시리즈>란 이름을 폐기하고 <한국 도시 아카이브 시리즈>란 이름으로 바꾼 후,그 전의 책들 커버를 통일화하였다.- 일본인 이야기(전2권)[24]
-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
- 전쟁의 문헌학
- 우리는 어디서 살아야 하는가
- 징비록
- 한국 도시 아카이브 시리즈(구 서울 선언 시리즈)
- 서울 선언(2018년) 갈등 도시(2019년) 대서울의 길)2021년 한국 문명의 최전선 (2024년)
- 한국 도시의 미래
7. 방송
2024년 현재는 매우 유명해짐에 따라 각 시의 시장같음 사람들과도 얘기를 한다.8. 강연
강연은 거의 매달 하며 책이 출간될 땐 거의 매주 하는 편이다. 강연은 2시간 정도이며 강연 중엔 절대로 질문을 받지 않으므로 주의하자.[25][26]강연이 끝나고 나면 싸인, 개별 질문 등을 받는다.2024년 현재 주요 강연했던 곳들 목록이다.
서울 성북구 정릉동 : 2024년 5월 4일
울산 중구 북정동 2024년 5월 18일
서울 금천구 시흥동[27]2024년 7월 8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 2024년 7월 18일
서울 도봉구 방학동 2024년 8월 29일
서울 중구 다산동 2024년 9월 26일
세종 아름동 2024년 9월 28일
9. 논란 및 사건 사고
- 교외선 철도 법 위반 논란
대서울의 길에서
교외선을 답사할 때 선로를 걸으며 답사했다.그러나 교외선은 법적으로 폐선이 아니므로 선로에 내려가면 처벌을 받게 된다.그러나 이때 김 박사는 그냥 내려가 답사를 한 것.
교외선은 2024년 12월부터 운행을 재개할 것이며 답사 당시엔 열차가 다니지 않았으나 지금은 개통 직전 준비로 매일 열차가 다니는 중이다.물론 별 논란은 생기지 않았다.
- 친일 논란
이는 최근까지도 있던 논란으로 그가 일본인 이야기 후속작을 내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다.예를 들어 임진왜란 관련 이야기에선 다른 역사학자들이 말하는 것이 아닌 정통 임진왜란 이야기였는데 이 내용의 친일적 내용이 많다는 이유 하나로 욕을 먹었다.
최근에 유명해지고 나선 이런 논란은 거의 없어진 상황.
10. 여담
-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인문강좌('우리는 어디서 살아야 하는가')에서 파워포인트를 사용하지 않고, 구글맵이나 카카오맵, 전국을 돌면서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다. 이 강좌에서 경기도 고양시, 여수시, 광양시, 광주광역시( 광산구, 서구, 동구), 새만금, 포항시, 동해안 등 여러 전국 도시를 강연했다. 질문을 받지 않고 강연을 끝내고 사진 촬영과 질문을 받았다. #
- 유스퀘어(광주버스터미널)이 광주 외곽으로 가면 안 된다고 하였다.
- 영광군 법성포, 새만금, 광산구, 나주시, 동해안, 광양만권 등을 전국 답사했다.
- 원래 전공이 동아시아 전쟁사, 그중에서도 임진왜란이며, 또 그중에서도 한국사에 기록된 임진왜란이 아닌 일본이나 중국 사료를 바탕으로 연구해 학위를 받았기 때문에 한국인들이 피상적으로 국사시간에 배우는 임진왜란과는 다른 방향의 사료를 가지고 해설을 하여 유튜브등에서는 임용한교수와 함께 임진왜란 최고의 이야기꾼으로 통한다. 주요 사료는 서애 류성룡의 징비록 일본판이며, 충무공 이순신에 관해서도 최고의 전문가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 다만 본인은 더이상 임진왜란에 대해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고 하여, 후속 연구활동은 기대하기 어려울 듯 하다.
- 외모가 배우 감우성과 닮아서 유튜브 댓글창에는 "감우성씨 이번엔 XXX에 가셨네~" 등의 드립을 많이 볼 수 있다.
-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에도 시대 일본과 조선 왕조를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게 무의미하다. 일본은 대항해시대까지 있었던 가능성과 비교해야 하고, 똑같이 유럽에 대해 문을 열었던 오스만 튀르크나 페르시아, 청나라와 비교해야 한다"며 "조선은 청 제국 내에서의 다른 성(省)들과 비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선 왕조의 지향점은 '자주적인 국가'라기보다는 화북의 완벽한 일부가 되기를 바란 것이었다며, "백성들이 갑오농민전쟁을 일으키니 당장 청나라에 군대를 보내 진압해 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자주국가라면 그럴 수 없지요"[28]라고 했다. #
- 평생 부동산 투자를 한 적이 없다고 한다.
- 최근엔 매우 유명해셔서인지 어떤 시의 시장 같은 사람과도 토론을 하고 있다.
- 서해선이 지나는 지역이 대한민국의 미래 모습이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 선거철 정치인들이 마구잡이로 내는 철도공약을 너무 믿지 말라고 하였다.
- 제주도에 철도가 개통해야 한다고 하였다.
- 원주시의 철도역들이 시내랑 너무 떨어져 있다고 비판했다.
- 건물에 붙어있는 머릿돌을 유심히 보는 것이 답사에 도움이 된다고 하였다.
- 답사 할때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이유에 대해서 밝혔다.2023년 7월, 안산에서 강연을 하러 버스를 타고 세 정거장을 가야 되는데 20분이 지나도 오지 않는 버스들이 갑자기 우르르 몰려왔고 자신과 같이 탔던 초지역역세권에 사는 한 할아버지가 손주를 업고 자신과 같이 타서 같이 내렸다고 한다.안산시는 차가 다니기 좋은 곳이지만 대중교통엔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 동해선 삼척 연장에 대해 대단히 긍정적이다.
- 강연 전에 자주 티타임을 즐긴다.
- 귀농과 귀촌이 인구 감소에 대책이 아니라고 하였다.
- GTX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다.
- 강남을 뛰어넘을 곳은 영원히 없을 것이라고 했다.
- 강연은 알려주는 경우도 많지만 간혹 예고 없이 강연을 하는 경우도 있다.
- 일본인 이야기 3는 내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 대구권 광역철도로 인한 구미,칠곡,경산에 발전에 대해 매우 긍정적이다.
- 오송역이 중부권 메가시티의 발전 공신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 그의 친구 중엔 외국인이 매우 많다.
-
정치 성향에 있어서는 꾸준히 보수 정당 후보에 투표했고, 민주당 정권에 대해 종종 강한 반감을 드러낸 바 있다.
-
대중교통 답사의 장점으로 언제든지 마음껏 술을 마실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라고 언급 한 바 있다.(...)
[1]
다만 서울 선언에서 첫 집이
마포구
서교동 이라 한 것을 보아,실제 고향은 마포구일수 있다. 실제로 해당 책에서 반포를 고향으로 여긴다고 하는 것을 보면 실제 고향이 서교동일 가능성이 높지만,최근 추석 직전에 반포를 올린 글에서 고향이라 한 것을 보아 정확하진 않다.일단 여기선 반포 출신으로 두겠다.
[2]
경기도
부천시
소사구에 있는 유치원이다.
[3]
그외
잠일초등학교에서 4학년까지 다니고
안양평촌초등학교도 다녔다.
[4]
특히 갈등 도시
[5]
정작 본인은 한번도 부동산 투자나 주식 투자를 한 적이 없다고...
[6]
무려 300만권이 넘게 팔렸다고 한다.
[7]
무엇보다
2022년 중부권 폭우 사태를 예언한 것이 컸다.
[8]
물론 당시에는
평촌신도시가 생기기 전이었다.
[9]
역시 당시엔 카페거리도 생기기 전이었다.
[10]
중계역 바로 앞에 있는 아파트다.
[11]
개포주공1단지
[12]
딸은 2011년 2월~2013년 9월 사이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
[13]
서울대학교 교수들이 거주하는 아파트다.
봉천동 (행정동 낙성대동) 에 있다.
[14]
현
서울 버스 406
[15]
강남은 원래 논밭이라 땅이 그다지 좋지 못하다고 하였다. 실제로 과거에도 강남 지역은
우면산 산사태,
도곡역 침수 등, 땅이 원래 좋지 못했다. 특히
대치역은 폭우만 쏟아지면 거의 바로 침수된다.[31][32]
[16]
사실 폭우 직전 낸 부동산 책 우리는 어디서 살아야 하는가 라는 책으로 점차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17]
산사태
[18]
기존 선로를 이용해서 GTX 고유의 속도를 내기 힘들다는 점. 실제로
GTX-A 외의 노선들은 거의 80% 이상의 노선이 기존 선로를 쓴다.
[19]
간혹 이런 곳들은 위성 모드에선
군부대나 국가 주요 시설이 있는 경우가 있다. 그나마
구글 지도에선 모자이크라도 나오지만
네이버 지도나
카카오 지도 같은 곳들은 그냥 녹지로 합성시킨다.
[20]
철원,
춘천,
원주,
천안,
아산,
당진,
홍성 등등...
[21]
실제로 이미 80년대부터
수원은 자족도시 느낌이 강했으며 당시엔
화성,
오산 같은 곳은 시골이었기에 수도권이라는 인식이 적었다.
[22]
1994학번
[23]
도서관 및 헌책방에서 과거의 도서 및 문헌을 구한 후 해당 자료를 바탕으로 필드로 나가 도시의 변천 양상을 사진을 찍고 거주민을 상대로 취합하여 발표한다.
[24]
2024년 9월 26일자 강연에서 밝히길,8권까지 분량을 완성했으나,한국 사회 분위기상 일본사가 팔리지 않을것을 생각하여 출간 계획이 없다고 언급하였다. 따라서 앞으로 후속이 나올 것이란 기대는 하지 말자.
[25]
말하면 무조건 끊는다.
[26]
이렇게 막 끊는게 기분이 나쁠 수 있지만 이렇게 끊는 이유는 한명 한명(특히 유명해진 요즘은 강연때 듣는 사람이 100명이 넘는다.)다 질문을 받으면 강연이 원활하게 진행이 되지 못해서라고 한다.
[27]
금천구청에서 진행.
[28]
동학농민운동의 사례 하나만 보면 그럴지 모르지만, 조선에서는 애초에 개국 이래로 자국의 민란 진압에 청의 군대를 파병해 진압에 도와 달라고 요구한 적이
조청수륙무역장정 체결 직전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것도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고도 할 수 있는 지점이다. 애초에 월간조선 논조 가운데 하나가 '조선 왕조는 덮어놓고 까야 제맛'이라서 그거에 맞췄는지는 모를 일이다.
[29]
세종역이 생기면
세종시 주민들이 계속 서울로 놀러갈 것이기 때문에 세종의 발전을 망칠 수 있다고 한 것이다.
[30]
실제로 봐도 굉장히 웅장하고 예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