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전검사 2의 살인사건에 대한 내용은 IS-7호 사건 문서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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ИС-7 (Объект 260) |
1. 개요
IS-7(오비옉트 260)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1945년 9월부터 1949년까지 개발됐던 소련의 중전차다.2. 제원
ИС-7 (Объект 260) IS-7 (Object 2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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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펼치기 · 감추기】 | 개발 및 생산 | ||
개발기관 | 키로프 공장 | ||
개발연도 | 1945~49년 | ||
생산기관 | 키로프 공장 | ||
생산연도 | 1946~48년 | ||
생산량 | 프로토타입 6대[1] | ||
제원 | |||
전장 | 7.38m(차체) // 10m(전체) | ||
전폭 | 3.4m | ||
전고 | 2.48m | ||
중량 | 68t | ||
탑승인원 | 5명(전차장, 포수, 조종수, 탄약수 2명) | ||
공격력 | |||
주무장 |
* 1945년형: 54구경장
130mm S-26 전차포 (30발) * 1948년형: 54구경장 130mm S-70 전차포 (30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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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준장치 | |||
부앙각 | −4 // +15° | ||
회전각 | 360° | ||
부무장 |
* 14.5mm
KPVT 중기관총 2정 (400발) * 7.62mm SGMT 다목적 기관총 6정 (2,500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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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무원 무장 | |||
탄약 적재량 |
*
APCBC: 발 * HE: 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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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동력 | |||
엔진 |
* 1945년형: * 1948년형: M-50T 액랭식 디젤엔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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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출력 // 회전 수 |
* 1945년형: 1,200hp(kW) // rpm * 1948년형: 1,050hp(882kW) // 1,850rp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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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력비 | 15.4hp/kW/t) | ||
현수장치 | 토션 바 | ||
무한궤도 폭 // 매수 | 720mm // 각 88매 | ||
최고속력 | 60km/h(도로) // 32km/h(야지) | ||
항속거리 | 300km(도로) // km(야지) | ||
접지길이 // 접지압력 | m // 0.97kg/cm² | ||
초호능력 | m | ||
초월능력 | m | ||
등판능력 | 30° | ||
도하능력 | 1.5m | ||
방어력 | |||
장갑형식 | 주조장갑, 균질압연장갑 | ||
차체 |
* 전면상부: 150mm / 65° * 전면하부: 150mm / 50° * 측면상부: 150mm / 45° * 측면하부: 100mm / 45~60° * 후면상부: 50mm / 55° * 후면하부: 100mm / 15° * 상하부: 20m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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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탑 |
* 전면: 250mm * 측면: 210mm / 51~60° * 후면: 150mm / 30~65° * 상부: 50~94m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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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개발
3.1. 오비옉트 257
소련군은 차세대 중전차 프로젝트를 제2차 세계 대전이 진행중이던 1944년부터 극비밀리에 구상하고 있었으며, 몇몇 공장 설계국들에서도 이 프로젝트를 선행 개발하기 시작했다. 차세대 중전차 프로젝트는 방어력을 강화하면서도 기동성과 안정성을 살리는 목표로 시작했으며, 당시 개발되던 IS-4를 미래에 대체할 계획도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먼저 개발된 IS-6의 후속 전차라는 의미에서 IS-7으로 명명될 예정이었다. 곧이어 3개의 프로젝트가 시작하면서 이들은 오비옉트 257, 오비옉트 258, 오비옉트 259로 명명되었다.[2]오비옉트 257은 IS-6(오비옉트 252) 프로젝트 계열에서 많은 요소를 가져왔는데, 오비옉트 252U에 적용될 예정이었던 포탑과 쐐기형 전면장갑 설계를 가져오고 여기에 엔진과 파워팩은 오비옉트 253의 것을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단 차체는 더 낮아졌고, 요구사항대로 방어력을 늘리기 위해 차체 측면에도 가파른 경사를 적용하면서 차체 전면과 측면 상단은 두께 150mm로 계획되었다. 오비옉트 257은 개발중에 먼저 IS-7이라는 명칭도 받았다.
그러나 오비옉트 257은 새로운 설계를 도입하면서 토션바를 포기하면서까지 방어력을 늘렸음에도 55톤 무게제한이라는 한계가 있었다. 결국 1945년에는 야크트티거의 12,8cm 주포에는 근거리에서 오비옉트 257의 장갑이 뚫릴 수 있는 반면 오비옉트 257에 계획된 122mm BL-13-1 주포로는 야크트티거의[3] 전면을 근거리에서도 뚫기 어렵다고 판단되어 성능 미달로 개발이 취소되었다. 이렇게 오비옉트 257의 계획은 취소되었고, 소련군부는 신형 중전차 프로젝트의 무게 제한을 60톤으로 늘리면서 더 강력한 함포 기반의 130mm S-26 포를 탑재하는 것을 조건으로 변경하였는데, 257의 포탑에는 더 큰 포를 탑재하기 곤란한 관계로 상당한 재설계가 필요했다.
오비옉트 257 프로젝트 취소 이후 키로프 공장은 257의 설계를 기반으로 새로 요구된 사항을 충족하게 재설계한 설계안을 만들기 시작했고, 이것이 바로 오비옉트 260이다. 즉 오비옉트 257이 현재 알려진 IS-7(오비옉트 260)의 전신이자 원조인 셈이다.
3.2. 오비옉트 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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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비옉트 260 프로젝트는 직전의 오비옉트 257과 258, 259의 개발 데이터를 바탕으로 장점들을 조합하고 여기에 40년대 당시 기준으로 최신 기술들과 설계를 적용하여 초강력 중전차를 만드는 것으로 프로젝트가 구상되었다. 프로젝트는 키로프 공장의 수석 디자이너 니콜라이 표도로비치 샤쉬무린(N.F.Shashmurin)[5]가 담당하기로 하였고, IS-6와 오비옉트 257의 개발에 참여했던 키로프 공장의 엔지니어들도 개발에 참여했다.
1945년 12월에 100번 공장( 키로프 공장)에서 나무로 만든 첫 1:1 스케일 목업이 제작되며 디자인의 윤곽이 잡혔고, 실차 무게는 약 65톤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1946년 9월과 12월에 초기형 프로토타입 모델이 1대씩 제작되어 총 2대의 초기형 프로토타입이 만들어졌다. 두 차량은 최고속도 측정과 현가장치 성능 시험에 활용되었다.
구동계로는 원래 V-2 엔진 기반의 V-11또는 V-16 디젤엔진을 2정 탑재하여 1200마력을 낼 계획이었으나[6], 엔진 개발을 담당한 77번 공장[7] 설계국의 사정과 신뢰성 문제로 조달이 늦어짐에 따라 최종적으로 Ach-30 항공용 디젤엔진을 손 본 TD-30 디젤엔진을 장착하였고 테스트를 진행했다. 또한 개발 초기에는 IS-6(Object 253)에 적용된 방식의 전기 변속기와 하이브리드 구동계가 고려되었지만 신뢰성 문제로 기각되어 무난한 기계식 변속기가 들어간 구동계를 적용하기로 결정되었다. 추가로 사격시험을 위해 Izhora 공장에서 포탑과 차체 2쌍이 추가로 생산되었다.
1947년에는 초기형 프토토타입 모델들의 테스트를 바탕으로 키로프 공장 측에서 설계 일부를 개선하는 과정을 거쳤다. 개선사항이 반영된 후기형 차량들은 1948년에 4대 제작되었다. 후기형 차량들은 초기형과 비교해서 여러 부분이 변경되었다. 차체 폭은 3.4m로 이전보다 넓어졌고 포탑이 더 납짝하게 바뀌면서 전고가 낮아지는 동시에 차체 측면이 경사진 형상으로 변경되었다. 이러한 변화를 거치면서 중량이 65톤에서 68톤으로 3톤 늘어났고, 추가된 중량만큼을 고려하여 엔진도 1050마력을 내는 신형 M-50T로 교체되었다.[8] 그리고 주포는 S-26에서 더 강력한 S-70으로 교체되었으며, 추가적으로 포탑 지붕 위에 14.5mm KPVT[9]와 포탑 양쪽 측후면에 뒤를 향하는 7.62mm SGMT 2정이 장착되었고, 내장 연료탱크가 800리터에서 1300리터로 증량되는 동시에 진동에 의한 피로파괴를 막기 위해 재질이 금속에서 고무 플라스틱 복합재로 변경되었다. 이 외에도 여러가지 크고 작은 개선점이 있었다고 한다.
4.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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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어력을 더 늘리기 위해 개발 당시 중량 제한이 60톤으로 늘어났고, 경사장갑 설계를 매우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차체 전면 기준으로 두께를 150mm로 설정하여 IS-3보다 장갑을 두껍게 늘리는 동시에 IS-3에 적용된 쐐기형 경사장갑 설계를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가장 두꺼운 포탑의 포방패 부위는 그 두께가 300mm에 달하였으며, 방어력 목표는 야크트티거에도 탑재되었던 12.8 cm PaK 44의 포탄을 막아내는 것이었다. 사격시험에서는 독일제 12,8cm뿐만 아니라 자신의 주포와 동일한 130mm도 막아냈다고 한다.[10] 그리고 전신 프로젝트 오비옉트 257와 더불어서 V자 바닥을 가졌는데, 이는 대지뢰 방호를 목적으로 한 것으로 추정된다. 차이라면 IS-7은 앞쪽 운전수석 부분과 차체 종방향 중심부근과 변속기 부근이 편평하지만 Obj.257은 변속기 부근만 편평하다.[11]
장갑 강화로 인해 늘어난 중량을 극복하는 기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최종적으로 1050마력에 달하는 M-50T 디젤엔진을 탑재한 결과 동시대의 다른 중전차들보다 뛰어난 기동력을 보여주었다. 시험주행에서 보여준 60km/h[12]에 달하는 최고속력은 참관한 장교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선사하기에 충분했다. M-50T 엔진은 Yer-2와 Pe-8에 사용된 ACh-30 항공용 디젤 엔진의 어뢰정용 파생형 모델을 다시 전차용으로 손본 것이다.[13]
측면에도 경사장갑 설계가 적용된 낮은 차체에 부피가 큰 엔진이 들어가는 구조상 이전의 IS전차들같은 전통적인 토션바 서스펜션을 장착하기 곤란해진 난관도 있었는데, 개발진은 토션바 봉의 길이를 줄이는 설계를 도입하여 이 문제를 극복했다.[14] 그리고 안정적인 주행을 위해 서스펜션 암에는 유압식 쇼크 업소버도 장착되었다.
주포가 130mm 구경의 B-13 함포 기반인 것도 IS-7의 특징이다.[15] 초기형 차량들에는 130mm S-26[16] 54구경장 강선포를 탑재했지만 최종적으로 후기형 차량들에는 동일 구경장의 130mm S-70으로 교체되었다. S-70은 S-26과 마찬가지로 함포에서 파생되었고 33.4kg 철갑탄을 900m/s(포구탄속)으로 발사하여 약 2000m거리에서 30도 경사를 둔 두께 163mm의 장갑을 관통할 수 있었다. 포구에는 다공식 포구제퇴기가 장착되었다.
이전 소련 중전차들이 겪은 무거운 분리장약식 포탄으로 인해서 장전속도가 떨어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장전수가 2명 탑승하였고, 여기에 준비탄 6발이 들어가는 반자동장전장치가 탑재되었다.[17] 먼저 수동으로 탄두와 장약을 버슬에서 컨베이어에 올려놓은 다음에 장전기의 컨베이어 벨트를 가동하면 장전기는 탄두와 장약을 포미까지 운반하는 역할을 했다.[18] 다만 마지막에 포미에 포탄을 밀어넣는 것도 자동이었는지는 불명확하다.[19] 결론적으로 이 시스템의 도움 덕분에 준비탄 기준으로 분당 최대 6~8발의 발사가 가능했졌다. 위의 2번째 영상의 3분 50초 부근에서 이 장전장치에 대해 다룬다.
부무장으로는 14.5mm KPVT(동축, 포탑 상부) 2정과 7.62mm SGMT 6정(동축 2정, 차체 후방 2정, 포탑 후방 2정)을 장착하여 총 8정의 기관총을 장착했다. 포탑 상부의 KPVT 기관총은 원래 전차장이 원격으로 조종하게 만들게 설계할 계획이었지만 실패하여 뒤에서 누가 수동으로 작동하는 식으로 변경되었다. 6정의 SGMT중에서 2정이 동축 기관총으로 배치되었고,[20] 2정은 차체 측후면의 공구상자에서 앞을 보도록 배치되었고 또 다른 2정은 포탑 측후면에 뒤를 보는 방향으로 배치되었다. 부무장으로도 이렇게 많은 기관총을 탑재한 것은 보병들을 상대로 저지력을 늘리기 위한 결과라고 한다.[21] 다만 초기형 프로토타입들은 포탑 상부의 KPVT와 포탑 측면의 SGMT 2정이 장착되지 않아서 총 5대의 기관총만 장착했다.
4.1. 오해
흔히 후술할 낭설들로 IS-7의 채택이 거부당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모두 틀린 말이다. IS-7은 당장 필요한 중형전차에 우선순위가 밀렸을 뿐만 아니라, 과도한 무게에 따른 철도수송 문제[22][23]가 있던 등, 실제 효율적인 운용에 대한 고려보다 고성능 스펙 위주로 만들어진 결과 중량과 배치 효율성 문제 등으로 실전에서 비효율적으로 판단되어 양산이 거부되었다.-
엔진의 내구도가 약하다?
흔히 IS-7이 엔진 내구도가 약해서 채택이 거부됐다고 하지만 이는 틀린 말이다. 1948년형에 달린 M-50T 엔진은 어뢰정에 쓰였던 엔진으로, 해상이라는 극한의 환경에서도 신뢰성을 검증받은 엔진이었고, 1,050마력으로 출력이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IS-7에 결합되어 최고속도 60km/h를 잘만 뽑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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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가 잘 난다?
앞서 언급된 엔진의 내구도가 약하다고 하는 것과 연관있는 낭설로, 테스트 도중에 윤활유가 떨어진 엔진을 무리하게 돌리다가 불이났는데, 자동소화장치가 제 역할을 못하고 플라스틱 재질[24]의 연료탱크를 홀라당 태워먹었다는 것을 근거로 IS-7은 화재가 잘 난다는 주장이다. 이후 GABTU에서 연료탱크 제질을 바꾸라는 지시가 내려왔을 뿐, 이 문제는 엔진 내구도와는 연관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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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가장치가 약하다?
프로토타입 한대의 측면 방호력 테스트 중, 측면장갑을 맞고 도탄된 포탄이 샷트랩을 일으켜 현가장치가 파괴됐는데, 이 사건이 흔히 현가장치가 약하다거나 중량을 받쳐내지 못했다는 이야기로 외전됐다. 야크트티거 따위와는 비교도 안되는 신뢰성을 가졌으며, 의외로 반응성과 정숙성도 좋았다고 한다.
5. 결말
총 6대의 차량이 만들어진 것을 끝으로 1949년에 개발이 공식적으로 중단되었다.기본적으로 장갑을 이전의 스탈린 중전차들보다 두껍게 키우다보니 전차의 중량이 원래 계획되었던 60톤을 한참 초과한 68톤이 되어버렸다. 이 무게로는 철도수송[25]이 매우 어려운 문제가 있었고, 과도한 중량으로 인해 운용과 유지에 드는 비용과 연비도 이전의 중전차들보다 좋지 않았다는 단점도 있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생산비용이 많이 드는 중전차인데다 IS-7은 당시 기준으로 여러가지 최신 기술들과 8정의 기관총을 비롯한 여러 추가적인 기능들도 다수 적용되었기 때문에 1대당 가격도 다른 소련제 전차들보다 비쌌다.
그리고 동시기에는 더 효율적이고 대량운용이 용이한 T-54가 개발되고 있었고[26], 소련군과 GABTU가 IS-7보다는 중형전차 T-54를 대량으로 생산하는게 더 났다고 결정하면서 IS-7은 채택에서 완전히 밀려났다. 일단 1949년에 50대가 주문되기는 했지만 생산비용 확보 문제로 양산분은 단 한대도 제작되지 않았다고 한다.[27] 참조
IS-7 프로젝트 취소 이후 중량 제한은 다시 50톤대로 돌아갔고, 이를 지키는 조건으로 새로운 차세대 중전차 오비옉트 730의 개발이 조제프 코틴의 주도로 시작되었다. 오비옉트 730이 T-10으로 채택 이후에도 기술의 발전에 힘업어 IS-7와 비슷하게 130mm 포로 무장한 신형 중전차들도[28] 개발되었으나 이들 역시 시제차에서 그쳤다.
현재 애국 공원(쿠빙카 전차 박물관)에 후기형(1948년식) 차량 1대가 유일하게 보존되었다고 한다. 문서 상단의 사진의 차량이 그것이다.
2024년 4월 들어서 쿠빙카 박물관 측에서 유일하게 남은 IS-7 시제차의 완전 리스토어 작업에 들어갔다고 발표했다.
2024년 9월 쯤 기동가능 상태로 복원을 완료했다. #
6. 파생형
IS-7의 차체를 기반으로 설계한 자주포들도 있었지만 1949년에 IS-7의 채택이 거부되면서 함께 개발이 중단됐다.6.1. 오비옉트 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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Объект 261 |
6.2. 오비옉트 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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Объект 263 |
6.3. 오비옉트 705
http://forum.worldoftanks.com/index.php?/topic/299901-object-705a-is-7s-big-brother/첼랴빈스크 키로프 공장 설계국에서 개발하다, 1948년 개발 작업이 모두 중단되었다. 152mm 주포를 사용하는 후방포탑형 중전차다.
7. 미디어
본국 러시아에게 마저도 잊혀졌던 전차지만, 게임 월드 오브 탱크의 영향으로 인지도가 상당해졌다.7.1. 게임
7.1.1. 월드 오브 탱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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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7 | Object 261 | Object 263 |
문제는 성능을 너무 희생한 것으로, 한때 10티어 중전차 최약체 소리를 들었으나, 2014년 11월 기준으로 HD 모델링 덕에 고증 수준으로 장갑이 좋아졌다. IS-7과 비견되는 10티어 중전차는 중국의 113이 있다.
파생형인 Object 261[33]과 Object 263도 각각 자주포 / 2차 구축전차 트리의 10티어/9티어로 등장했다. 원래 Object 263도 10티어였으나, 9티어 SU-122-54가 빠지게 되고
10티어 보상 전차로 1945년에 나온 극초기형 설계도면을 기반으로 하는 Object 260 mod. 1945도 출시되었다.
월드 오브 탱크 블리츠에서도 출시되었는데, 포탑 밑 쐐기장갑부 상단에 탄약고가 있는데 탄약고 내구력이 너무 낮은데다 전차 구조상 해당 부위는 쐐기장갑이다. 이 때문에 티타임을 잘못 줘서 연약한 약점을 노출하는 순간 고관통 구축전차에게 상단장갑을 뚫리기 쉬워 허구한 날 초고관통 구축전차에게 고화력탄을 맞고 탄약고 폭발로 포탑이 사출당하기 일쑤였고[34] 이로 인해 DON'T BUY IS-7이라는 밈이 생겼다. 이후 탄약고 내구성을 버프해 생존성이 약간 개선된 후엔 폴란드 중전차 트리의 60TP가 똑같은 문제로 지뢰 전차가 되었다. 하필이면 60TP는 IS-7과 달리 쐐기장갑이 아닌 정직한 정면 경사장갑이라 티타임을 주지 않는 순간 그대로 정면 상단이건 약점인 정면 하단이건 야이백의 포탄을 맞고 포탑이 승천한다. 야이백의 초고관통 포탄을 견딜 정도로 튼튼한 장갑도 아니다 보니 더 체감되는 건 덤...
7.1.2. 아머드 워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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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3. 강철의 왈츠
모바일 게임으로 의인화되어 등장한다. 기본형인 IS-7뿐만 아니라 파생형인 오비옉트 262, 263도 등장한다.7.1.4. 워 썬더
2018년 여름 연대기 이벤트 최종 보상 전차로 등장한다.8. 모형
8.1. 프라모델
8.1.1. 트럼페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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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viet JS-7 Heavy Tank 05586 |
전체적 형상과 조립성은 최신 키트답게 괜찮으며, 포구제퇴기가 초기형, 후기형 2가지가 들어있어 각 형식을 재현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35] 출시 전부터 포탑 전면부 형상 및 차체 후면 각도 문제로 해외 포럼에서는 문제제기가 있었는데, 고증파가 아니라면 크게 거슬리지는 않는 부분이다. 구성품 및 에칭도 적절하지만,
9.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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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기(1914~1945) | 냉전기(1945~1991) | 현대전(1991~) |
[1]
1946년에 2대, 47년에 4대가 제작됐다.
[2]
사실 별개의 프로젝트지만 세 설계안 모두 변속기나 엔진 정도를 빼면 큰 차이는 없었다.
[3]
덤으로 소련군이 이때
마우스 전차를 노획하면서 오비옉트 257의 공격과 방어 성능이 모두 마우스의 스펙에 밀린다고 판단했다는 말도 있다.
[4]
원래는 신형 122mm 포를 달 예정이었으나 조달이 지연되면서 130mm로 계획을 바꿨다는 말도 있다.
[5]
전차에 토션바 서스펜션 사용을 주장한 최초의 인물 중 한명으로 KV-1, KV-1S, KV-85, IS-1, IS-2 모두 그의 손을 거친 작품들이다. 그가 꿈구던 궁극의 중전차를 실현시킨 역작이었던 IS-7이 중량 제한으로 무산된 이후로는
PT-76,
BTR-50 등을 개발한다.
1,
2
[6]
개발 개시 당시에는 1500마력이 목표였다는 말도 있다.
[7]
V-16 엔진 2정은 임시 방안으로 원래는 800번 공장에서 신형 엔진을 조달할 계획이었으나 이 역시 지연되면서 계획이 바뀌었다.
[8]
단 베이스는 여전히 동일한 Ach-30 항공용 엔진이다.
[9]
원격조종이 가능하게 설계하였으니 이후 수동식으로 변경되었다.
[10]
테스트는 사격시험용 차체 내부에
개들을 태운 다음에 진행되었는데, 독일제 128mm와 IS-7의 130mm로 모두 사격해본 결과 방어에 성공하면서 차체에 탑승한 개들은 털끝 하나 다친곳 없이 무사했다고 한다.
[11]
참고로 경사장갑 바닥은 사실 냉전기 전차들은 대부분 갖고있는 형태이다. 미국제
M48 전차(국군운용분
M48A3K/A5K 포함)이나
T-54에도 바닥 양측끝에 있다. 그만큼 각국 군대는 그때부터 지뢰등 하부폭발 방호에 관심이 있었고 IS-7의 하부 역시 그 산물인 것.
[12]
도로 기준. 야지에서의 평균 최고속력은 32km/h에 달했다. 사실 야지에서는 더 느려지는게 당연하지만 32km/h도 동시기의 중전차들의 야지 주행 속도와 비교하면 매우 빠른 편이다.
[13]
출처(영문위키)
[14]
사진은 더 훗날에 완성된
오비옉트 277에 적용된 토션바 서스펜션인데 IS-7에도 이와 비슷하게 봉의 길이를 줄인 토션바 서스펜션이 장착되었다.
[15]
초기에는 이전의 소련 중전차들처럼 122mm 구경의 포를 장착할 계획이었지만 포가 제때 완성되지 않아서 더 강력한 130mm를 장착하는걸로 계획이 바뀌었다고 한다.
[16]
2차대전기 후반에 잠시 개발되었던
ISU-130의 주포로 장착된 적이 있다.
[17]
초기형부터 있던 시스템이라고 하며, 간혹 이것이 완전 자동식이라고 잘못 알려진 경우들도 종종 있는데 이는 잘못된 정보다. 다만 수동 과정이 들어가는걸 제외하면 IS-7의 장전 보조장치는
MBT-70과 이후 서방 전차들에 탑재된 완전
자동 장전 장치와도 구조적으로 비슷하긴 하다. 기계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우선 주포가 정해진 각도로 정렬되어야 하는 단점 역시 비슷하다.
[18]
버슬의 탄두와 장약은 각각의 수동식 크랭크를 돌리면 운반 컨베이어로 이어지는 출구쪽으로 이동하는 구조다. 버슬 위쪽에는 탄두가 수납되었고 아래쪽으로는 장약이 수납되었으며 크랭크는 탄두와 장약용으로 한쪽에 2개가 존재하였다. 그리고 버슬의 탄약고는 포탑의 중앙을 기준으로 왼쪽과 오른쪽에 탑승하는 2명의 장전수가 따로 담당하게 돌아가는 대칭적인 구조다.
[19]
유압식 장전 시스템을 장비했던 초기형에는 밀어넣는게 수동이었지만 장전 시스템이 덜 번거로운 전기 유압식 방식으로 개선된 후기형부터는 포미에 밀어넣는 것도 자동화되었다는 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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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써 14.5mm 1대와 7.62mm 2대로 총 3대의 동축기관총을 장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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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차체와 포탑에 장착된 기총들을 차체나 포탑을 선회하는게 아니면 조준할 방법이 없는거나 마찬가지라 적군 제압이나 위협 사격용 이외에는 효용성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 위의 영상 1부에서도 8:00 무렵에 니콜라스 모란(
워게이밍의 고증자문)이 포탑 후방의 기총에 대해 이야기할때, 포탑 후방의 기총들은 사실상 조준할 수 있는 방법이 없고, 승무원들이 무엇을 향해 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서 안심하게 하거나, 총탄 회사들이 망하지 않게 하는게 본인이 봤을때 이 기총들의 유일한 장점이라고 비판했다.
[22]
IS-7 때려치고 T-10을 뽑게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다. 50톤대 후반~60톤급인 IS-4도 너무 무거워서 운용이 어려워 3선급인 극동에 박아뒀다가 빠르게 퇴역시켰는데, IS-7은 IS-4보다도 10톤 가까이 더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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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송문제를 떠나 공세적 작전개념이던 소련군과는 맞지 않았다. 너무 무거우면 견디는 교량이 적어서 도하 장비나 세력이 향시 필요하고, 연료도 많이 먹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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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행중 발생하는 진동에 의한 연료탱크의 손상을 막기 위해서 금속재료 대신에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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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군은 IS-7보다 가벼운 IS-4도 수송이 어렵다고 극동에 짱박아놓았다 빠르게 퇴역시켰다. 당시 소련 철도의 수송능력은 최대 50~55톤이었기에, IS-7 이전의 무게 요구조건도 원래 이 한계에 맞춘 55톤이었다.
[26]
이미 1947년부터 선행 양산형 모델들이 생산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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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령 소련군이 IS-7을 배치했더라도 비싼 가격과 높은 중량에서 오는 문제들로 인해 이전의 IS-4처럼 소량 생산에서 그쳤을 가능성도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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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비옉트 277,
오비옉트 279,
오비옉트 7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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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대전차자주포
Mk.I 아처를 생각하면 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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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7 (Object 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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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의 곡사포 구축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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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오브 탱크에서는 밸런스를 위하여 고증을 희생한 것이 많다. 대표적으로
T-10과
T-62가 있다. T-10은 자신의 10티어 자리를 내어줘서 묻혔고, T-62는 돼지 위에 얹어도 상관없는 115mm 활강포를 주무장으로 썼지만 관통력이 다른 10티어 전차에 비해 너무 높은데다 워게이밍이 활강포는 절대로 넣지 않겠다는 방침에 따라 100mm 강선포를 쓰는 T-62A를 게임에 내놓았다. 9, 10티어 독일 전차들 역시 고증스펙이면 관통력이 티거 2의
88/71 미만이라 8티어 수준도 안 되어 게임이 안 되기 때문에, 탄을 창작해서 넣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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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mm B-1-P를 장착한 Object 261-3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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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으로 고화력 구축 하면 빠지지 않는 183, 야이백. 또한 268에게도 사출당하기도 했다. 심지어 한때는 T110E3한테도 탄약고가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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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초기형을 재현하려면 다른 손질이 많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