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일본시리즈 우승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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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세이부 라이온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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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세이부 라이온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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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세이부 라이온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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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일본시리즈 우승팀 | |
세이부 라이온즈 | |
MVP | 아키야마 코지 |
1. 개요
NIPPON SERIES 1991 | |
히로시마 도요 카프 | 세이부 라이온즈 |
당시 공격, 수비, 투수력 모두에서 리그 최강팀의 포스를 뽐내며 왕조를 구축하던[2] 세이부 라이온즈와 공격력이 약한 타선이란 단점을 철벽 투수진으로 커버하며[3] 우승에 성공한 히로시마 도요 카프가 사상 초유의 8차전 리버스 스윕이 나왔던 1986년 일본시리즈 이래 5년 만의 리턴매치로 맞붙었고, 격전 끝에 또 다시 세이부가 우승기를 들었다.
히로시마는 이 해에도 우승에 실패한 이후 점차 하락세를 타며[4] 2013년 전까지 암흑기에 돌입하게 되었기 때문에, 이 해 시리즈가 히로시마 시민구장에서 마지막으로 열린 일본시리즈가 되었다. 아울러 수동식 스코어보드를 쓰는 구장에서 개최된 마지막 일본시리즈이기도 하다.[5]
2. 일정 및 결과
경기 | 날짜 | 경기장 | 원정팀 | 점수 | 홈팀 | 중계 | |
1차전 | 10월 19일(토) | 세이부 라이온즈 구장 | 히로시마 도요 카프 | 3 | 11 | 세이부 라이온즈 | |
2차전 | 10월 20일(일) | 히로시마 도요 카프 | 4 | 2 | 세이부 라이온즈 | ||
3차전 | 10월 22일(화) | 히로시마 시민구장 | 세이부 라이온즈 | 1 | 0 | 히로시마 도요 카프 | |
4차전 | 10월 23일(수) | 세이부 라이온즈 | 3 | 7 | 히로시마 도요 카프 | ||
5차전 | 10월 24일(목) | 세이부 라이온즈 | 0 | 3 | 히로시마 도요 카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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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차전 | 10월 26일(토) | 세이부 라이온즈 구장 | 히로시마 도요 카프 | 1 | 6 | 세이부 라이온즈 | |
7차전 | 10월 28일(월)[6] | 히로시마 도요 카프 | 1 | 7 | 세이부 라이온즈 | ||
우승 : 세이부 라이온즈(2년 연속, 통산 10회) |
3. 경기 내용
3.1. 1차전
1991.10.19(土) 13:04 | 세이부 라이온즈 구장 : 31,770명 | |||||||||||||||||||||||||||||
<rowcolor=#ffffff> 팀 | 선발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H | E | ||||||||||||||||
広島 | 사사오카 신지 | 0 | 1 | 0 | 0 | 0 | 0 | 0 | 0 | 2 | 3 | 5 | 2 | ||||||||||||||||
西武 | 쿠도 키미야스 | 3 | 0 | 2 | 6 | 0 | 0 | 0 | 0 | X | 11 | 10 | 1 |
○ 승 : 쿠도 키미야스(1승)
● 패 : 사사오카 신지(1패)
※ 선발 투수
사사오카 신지 : 2⅔이닝 61구 4피안타 2볼넷 1사구 2탈삼진 5실점(5자책)
쿠도 키미야스 : 9이닝 124구 5피안타 1볼넷 7탈삼진 3실점(1자책) 완투승
※ 홈런
로드 앨런(2회 1점)
키요하라 카즈히로(1회 2점), 오레스테스 데스트라데(1회 1점), 아키야마 코지(3회 2점), 이시게 히로미치(4회 만루홈런)
1991년 센트럴 리그 MVP와 사와무라상을 휩쓸었던 사사오카 신지가 세이부의 강력한 타선 앞에서 손쉽게 무너졌고, 결국 세이부 타선은 홈런 네 방의 맹공으로 1차전을 가져갔다. 또한 타카하시 요시히코를 밀어낸 신예 유격수 노무라 켄지로가 실책을 두 개나 저지르는 등 경험 부족의 모습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반면에, 세이부 선발 쿠도 키미야스는 2회에 로드 앨런에게 홈런 한 방 맞긴 했지만 3회 이후에는 단 하나의 장타도 허용하지 않으면서 완투승을 거뒀다.
3.2. 2차전
1991.10.20(日) 13:04 | 세이부 라이온즈 구장 : 31,903명 | |||||||||||||||||||||||||||||
<rowcolor=#ff0000> 팀 | 선발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H | E | ||||||||||||||||
広島 | 카와구치 카즈히사 | 1 | 0 | 0 | 0 | 3 | 0 | 0 | 0 | 0 | 4 | 5 | 1 | ||||||||||||||||
西武 | 궈타이위엔 | 3 | 0 | 2 | 6 | 0 | 0 | 0 | 0 | X | 2 | 5 | 0 |
○ 승 : 카와구치 카즈히사(1승)
● 패 : 궈타이위엔(1패)
◎ 세 " : 오노 유타카(1S)
※ 선발 투수
카와구치 카즈히사 : 8이닝 118구 3피안타 2볼넷 7탈삼진 2실점(2자책)
궈타이위엔 : 4⅓이닝 84구 5피안타 4볼넷 5탈삼진 4실점(4자책)
※ 홈런
無
오레스테스 데스트라데(4회 2점)
카프가 1회부터 노무라의 안타와 볼넷으로 2사 1,2루의 득점권 찬스에서 코바야카와의 적시타로 선취점을 뽑았다. 세이부가 데스트라데의 홈런으로 역전에 성공했지만, 5회에 카프가 쇼다 코우조와 노무라 켄지로의 볼넷 출루 이후 마에다 토모노리가 2타점 3루타, 니시다 신지의 추가 적시타로 재역전에 성공했다.
선발 카와구치 카즈히사는 8이닝 2실점으로 호투하고, 오노 유타카가 스즈키 야스토모와 아키야마 코지에게 안타를 허용했지만 결국 실점없이 카와구치의 승리를 지켜주면서 시리즈 스코어를 1:1로 맞춰놨다.
3.3. 3차전
1991.10.22(火) 13:04 | 히로시마 시민구장 : 27,713명 | |||||||||||||||||||||||||||||
<rowcolor=#ffffff> 팀 | 선발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H | E | ||||||||||||||||
西武 | 와타나베 히사노부 | 0 | 0 | 0 | 0 | 0 | 0 | 0 | 1 | 0 | 1 | 6 | 1 | ||||||||||||||||
広島 | 키타벳푸 마나부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5 | 1 |
○ 승 : 와타나베 히사노부(1승)
● 패 : 키타벳푸 마나부(1패)
※ 선발 투수
와타나베 히사노부 : 9이닝 126구 5피안타 1볼넷 1사구 9탈삼진 완봉승
키타벳푸 마나부 : 7⅔이닝 145구 6피안타 4볼넷 6탈삼진 1실점(1자책)
※ 홈런
아키야마 코지(8회 1점)
無
1회초 세이부는 선두타자 츠지 하츠히코가 2루타로 출루한 이후 번트로 1사 3루에서 무득점을 기록했고, 2회말 카프 공격 때는 로드 앨런이 상대의 실책으로 출루, 코바야카와의 안타와 야마사키 류조의 번트로 1사 2,3루 득점권 찬스를 맞이했지만 와타나베가 타츠카와 미츠오와 키타벳푸 마나부를 삼진으로 돌려세우면서 양 선발 모두 스스로 위기에서 벗어났다. 그렇게, 양 선발의 호투가 이어지다가... 승부를 가른 것은 세이부의 주포 아키야마 코지의 단 한방이었다.
와타나베가 또 하나의 완봉승으로 지난 1990년 일본시리즈 1차전에 이어서 두 경기 연속 완봉으로 일본시리즈 타이 기록을 세웠다. 또한, 카프와의 1986년 일본시리즈 6차전 이후 일본시리즈 5연승을 거두면서 팀 레전드 이나오 카즈히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일본시리즈 타이 기록을 세웠다.
반면에, 카프의 황금기 에이스를 맡아왔던 키타벳푸 마나부는 세이부와 만났던 1986년 일본시리즈에서도 연장 12회까지 던지는 역투를 펼치고도 팀원이 도와주지 못해 패전을 뒤집어쓰는 등, 1979년 일본시리즈 1차전부터 일본시리즈 선발 5연패를 당하면서 후지타 모토시와 무라야마 미노루와 일본시리즈 타이 기록을 세웠다.
3.4. 4차전
1991.10.23(水) 13:04 | 히로시마 시민구장 : 28,591명 | |||||||||||||||||||||||||||||
<rowcolor=#ff0000> 팀 | 선발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H | E | ||||||||||||||||
西武 | 와타나베 토미오 | 0 | 0 | 0 | 0 | 0 | 0 | 0 | 3 | 0 | 3 | 3 | 1 | ||||||||||||||||
広島 | 사사오카 신지 | 1 | 1 | 0 | 3 | 0 | 0 | 2 | 0 | X | 7 | 12 | 1 |
○ 승 : 사사오카 신지(1승 1패)
● 패 : 와타나베 토미오(1패)
※ 선발 투수
와타나베 토미오 : 2이닝 43구 5피안타 2볼넷 2탈삼진 2실점(2자책)
사사오카 신지 : 8이닝 102구 2피안타 2볼넷 7탈삼진 3실점(3자책)
※ 홈런
無
오사나이 타카시(7회 1점)
카프가 1회부터 쇼다의 2루타와 앨런의 적시타로 빠르게 선취점을 뽑아내고 2회에도 노무라의 적시타로 2:0, 3회에도 무사1,2루를 만들며 와타나베를 압박하게 되자 세이부는 빠르게 교체에 들어갔다. 3회는 실점없이 넘겼지만 4회말에 카프가 연속 안타를 퍼부으면서 3점을 더 뽑아내면서 점수차를 착실히 늘려나갔고, 7회에도 오사나이의 홈런 등 2점을 더 뽑으면서 7:0까지 벌리며 사사오카의 부담을 덜어주었다.
사사오카는 7회까지 세이부의 공룡 타선을 노히트 노런으로 틀어막았고, 유일하게 허용했던 출루도 노무라의 실책이었을 정도로 압도적인 투구를 펼쳤다. 하지만, 8회초 대타 모리에게 볼넷을 내주더니 또다른 대타 스즈키 켄에게 첫 안타를 허용하면서 아웃 카운트 5개를 남겨두고 노히트 노런이 깨지고 말았다. 또다른(...) 대타 아베 오사무가 만루에서 싹쓸이 2루타를 치면서 결국 실점은 3점으로 늘어나고 말았다. 그래도 사사오카의 호투를 바탕으로 카프가 시리즈의 균형을 이루면서 5년전의 설욕을 노렸다.
3.5. 5차전
1991.10.24(木) 13:04 | 히로시마 시민구장 : 28,669명 | |||||||||||||||||||||||||||||
<rowcolor=#ff0000> 팀 | 선발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H | E | ||||||||||||||||
西武 | 카와구치 카즈히사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6 | 0 | ||||||||||||||||
広島 | 쿠도 키미야스 | 0 | 0 | 2 | 1 | 0 | 0 | 0 | 0 | X | 3 | 8 | 1 |
○ 승 : 카와구치 카즈히사(2승)
● 패 : 쿠도 키미야스(1승 1패)
◎ 세 " : 오노 유타카(2S)
※ 선발 투수
쿠도 키미야스 : 7이닝 104구 8피안타 5볼넷 4탈삼진 3실점(3자책)
카와구치 카즈히사 : 8이닝 104구 5피안타 2볼넷 7탈삼진 무실점
※ 홈런
無
로드 앨런(3회 2점)
3선발 로테이션인 카프와는 달리, 4선발 로테이션인 세이부는 1선발 쿠도 키미야스가, 카프는 2차전 선발 카와구치 카즈히사가 출전했다.
3회말 1사에서 쇼다의 안타와 앨런의 선제 투런포로 리드한 카프는 4회말에도 니시야마 안타 - 마에다 번트 - 타츠카와의 적시타로 착실하게 점수를 늘렸다. 4일만에 등판한 카와구치는 강력한 세이부 타선을 상대로 8이닝동안 5피안타 7탈삼진 무실점으로 틀어막았고, 오노가 이시게한테 장타를 하나 맞긴 했지만 9회를 마무리했다. 5년전 카프를 울렸던 난적 쿠도 키미야스까지 쓰러뜨리면서, 카프가 이번에야말로 설욕하고 우승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그러나 상술했다시피 카프는 우승기를 들고 이 구장에 돌아오지 못하였고, 이 경기는 공교롭게도 히로시마 시민구장에서 열린 마지막 일본시리즈 경기가 되고 만다.
3.6. 6차전
1991.10.26(土) 13:04 | 세이부 라이온즈 구장 : 31,900명 | |||||||||||||||||||||||||||||
<rowcolor=#ffffff> 팀 | 선발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H | E | ||||||||||||||||
広島 | 카와바타 쥰 | 0 | 0 | 0 | 1 | 0 | 0 | 0 | 0 | 0 | 1 | 4 | 0 | ||||||||||||||||
西武 | 궈타이위엔 | 1 | 0 | 0 | 0 | 0 | 5 | 0 | 0 | X | 6 | 12 | 0 |
○ 승 : 이시이 타케히로(1승)
● 패 : 카네이시 아키히토(1패)
※ 선발 투수
카와바타 쥰 : 3이닝 62구 5피안타 1볼넷 3탈삼진 1실점(1자책)
궈타이위엔 : 5이닝 63구 3피안타 1실점(1자책)
※ 홈런
無
아키야마 코지(6회 3점)
1회부터 세이부는 츠지의 안타와 키요하라의 적시타로 선취점을 뽑았지만, 4회에 카프가 용병 앨런의 적시타로 동점을 이뤘다. 카프는 카와바타를 3이닝만에 교체하고 4회에 이시누키, 5회 이후에는 카네이시를 등판시키면서 계투 작전으로 나섰다.
6회말, 세이부는 카네이시를 상대로 1사 만루를 만들어냈고 츠지가 아웃당했지만, 카프가 좌타자 아베 오사무를 상대하기 위해 5차전 선발 좌완 카와구치 카즈히사를 투입하였다. 그러자 세이부는 아베를 교체하고 대타로 우타 스즈키 야스토모를 투입, 2타점 적시타로 세이부의 노림수
결국, 이시이 타케히로가 4이닝 무실점으로 세이부의 승리를 지켜주면서 5년 전에 이어서 또다시 단두대 매치에서 승부를 가리게 되었다.
카와구치를 등판시킨 건에 대하여 오오시타 츠요시(大下剛史) 당시 수석코치가 해명했다. 당시에는 예고선발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좌우놀이로 좌완의 카즈히사인가, 아니면 우투수를 투입할 것인가 상대가 알기 힘들 심리전을 걸 생각이었다고 하는데, 야마모토 감독이 카와구치를 내고싶어하자, 오오시타 코치는 "카와구치는 내일(쓸 예정)이잖아요"라고 답했지만, 야마모토가 "(우승으로)가고싶다. 오늘 결착을 내고싶다."며 최종 결정 권한이 있는 야마모토가 카와구치 등판을 강행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 결정은 결국...
3.7. 7차전
1991.10.28(月) 13:04 | 세이부 라이온즈 구장 : 32,001명 | |||||||||||||||||||||||||||||
<rowcolor=#ffffff> 팀 | 선발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H | E | ||||||||||||||||
広島 | 사사오카 신지 | 0 | 1 | 0 | 0 | 0 | 0 | 0 | 0 | 0 | 1 | 4 | 0 | ||||||||||||||||
西武 | 와타나베 히사노부 | 0 | 0 | 0 | 0 | 3 | 0 | 4 | 0 | X | 7 | 11 | 0 |
○ 승 : 쿠도 키미야스(2승 1패)
● 패 : 사사오카 신지(1승 2패)
※ 선발 투수
사사오카 신지 : 4⅓이닝 74구 5피안타 3탈삼진 2실점(2자책)
와타나베 히사노부 : 4이닝 64구 2피안타 3볼넷 1사구 4탈삼진 1실점(1자책)
※ 홈런
無
아키야마 코지(7회 2점)
10월 27일 일요일 경기였지만 우천으로 순연되었다.
세이부 선발 와타나베가 경기 초반에 영 제구가 되지 않으면서 2회에 2사 1루에서 세 타자 연속 볼넷으로 밀어내기로 카프가 선취점을 뽑았다. 5회초까지 카프가 1점차의 리드를 잡은 상황에서 5회말, 세이부는 시리즈 세 번째 등판인 사사오카 신지에게 이시게 히로미치의 안타 이후 도루와 스즈키의 적시타로 동점을 만들었다. 이후 포수인 이토 츠토무가 번트를 대고, 히라노 타석에서 야마모토 감독은 또 카와구치 카즈히사를 마운드에 올렸다. 그러나, 세 경기 연속 등판시키는 데 컨디션이 정상일 리는 없었고, 히라노에게 1타점 2루타, 츠지에게 볼넷, 대타 타나베 노리오에게도 1타점 2루타를 맞고 세이부가 3:1로 역전하는 데 성공했다.
카프는 급한대로 아껴둔 키타벳푸까지 6회에 마운드에 올렸지만, 일본시리즈에선 패귀에 가까운 그는 이토, 히라노, 츠지에게 3연속 안타를 맞고 2실점하고 즉시 사라졌다(...) 카와바타까지 올려봤지만, 아키야마 코지가 시리즈 네 번째가 되는 투런포로 완전히 관짝에 넣고 박아버렸다. 여담으로, 아키야마가 5년 전에 이어서 또다시 백텀블링 세레머니를 시전하면서, 카프는 두 번 모두 시리즈 역전패를 당한 것만으로도 서러운데, 똑같은 세레머니 두 번이나 당하는 굴욕을 맛봤다.
되는대로 마운드에 올라오는 카프와는 달리, 쿠도가 5회부터 마운드에 올라와서 무실점으로 끝내면서 또다시 헹가래 투수가 되는 영예를 누리고, 사이타마 시절 세 번째 리핏에 성공하였다.
4. 타이틀 시상
- '''최고수훈선수(MVP) :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5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060b6; font-size: 0.8em"
- '''감투선수상 :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5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ff0000; font-size: 0.8em"
- '''우수선수상 :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5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060b6; font-size: 0.8em"
5. 여담
- 마쓰다 줌줌 스타디움 히로시마로 홈구장을 옮기기 전까지, 카프가 일본시리즈 진출을 하지 못했으므로 히로시마 시민구장에서 열린 마지막 일본시리즈가 되었다.
- 상술했듯이 수동식 스코어보드를 사용하는 구장에서 개최된 마지막 일본시리즈이다.
- 현재까지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구단 역사상 마지막으로 홈구장에서 일본시리즈 우승을 결정한 시리즈이다.[7]
- 1984년 일본시리즈와 마찬가지로 카프가 우승했을 경우, MVP에겐 마츠다社의 자동차가 증정되고 토요타는 상금을 수여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5년 전에 이어서 준비를 다 해놨으나 시리즈 역전패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원래대로 토요타의 자동차가 상으로 증정되었다.
6.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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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관련 문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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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업
세이부 철도 과거 모기업 서일본 철도 |
일본시리즈 우승 ★★★★★★★★★★★★★ |
1956 · 1957 · 1958 · 1982 · 1983 · 1986 · 1987 · 1988 · 1990 · 1991 · 1992 · 2004 · 2008 | |
리그 우승 (23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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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시픽리그 전·후기 우승 (1회) |
1982전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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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문서 | 2013-2021 · 2022 · 2023 · 2024 월별문서 · 2025 월별문서 | |
현역 선수 경력 |
쿠리야마 타쿠미/선수 경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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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무라 다케야/선수 경력 타이라 카이마/선수 경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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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 | 1군 베루나 돔 · 2군 CAR3219 필드 · 지방 홈구장 사이타마현영 오미야공원 야구장 · 조모 신문 시키시마 구장 | |
과거 헤이와다이 야구장 | ||
홈 중계 채널 | 후지 테레비 2 | |
주요 인물 | 구단주 고토 타카시 · 단장 공석 · 감독 니시구치 후미야 · 선수회장 토노사키 슈타 · 주장 겐다 소스케 | |
구단 상세 정보 | 선수단 및 등번호 · 역대 선수 · 응원가 · 유니폼 · 10.19(야구) · 미스터 레오 | |
틀 문서 | ||
세이부 그룹 |
코칭스태프 |
투수 |
포수 |
내야수 |
외야수 |
육성 선수 |
역대 감독 |
영구 결번 역대 1라운드 지명 선수 | 역대 개막전 선발 투수 | 미스터 레오 |
[1]
이후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가
2019년 일본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며 3번째
일본시리즈 10회 제패팀이 되었다.
[2]
당시 타선에선
아키야마 코지,
키요하라 카즈히로와 홈런-타점 2관왕을 달성한
오레스테스 데스트라데의 AKD포가 장타를 연발하며 공격을 주도해 나갔고, 투수진에선 평균자책점 1위를 달성한 와타나베 토미오와
쿠도 키미야스,
궈타이위안 등의 철벽 선발진이 역대 최소인 38실책을 기록하며
골든글러브 수상자 5명을 배출해낸 최강 수비진과 함께 상대팀 타선을 철저하게 틀어막았다.
[3]
80년대까지의
야마모토 코지,
키누가사 사치오를 위시한 강타선과 달리 이 해 카프 타선은 팀 타율 4위(.254)-홈런 5위(88)-득점 최하위(516)를 기록하며 공격에선 다소 약한 모습을 보여줬다. 특히 장타력에선 교타자 집합체에 가깝게 변화하여 투수진의 무덤으로 소문났던
시민구장을 쓰고도 20홈런은 고사하고 10홈런 이상을 친 선수가
에토 아키라(11, 팀내 최다),
노무라 켄지로(10) 단 2명이었을 정도. 그 대신 투수진은 여전히 강력하여 2년 전까지
마무리 투수를 맡았던
츠다 츠네미가 시즌 초
뇌종양으로 이탈하는 불운도 겪었으나(결국 츠다는 다시 돌아오지 못하고 1993년 사망했다.) 츠다를 대신한
오노 유타카가 36세의 나이로 구원왕을 수상하는 한편 선발진에서도 2년차인
사사오카 신지가 다승왕과 평균자책점 1위,
사와무라상과 리그 MVP를 싹쓸이하고 베테랑
카와구치 카즈히사,
키타벳푸 마나부도 건재를 과시하며 최소 실점, 평균자책점 1위 기록(466실점, 2.34)과 함께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4]
정확히는 이 시즌 직후 4위-최하위로 하락세를 탔으나 곧바로 4년 연속 A클래스를 기록하며 완전히 몰락하진 않았다. 그러나 91시즌과는 정반대로 타선은
카네모토 토모아키,
마에다 토모노리 등의 슬러거들이 즐비한 강타선이 구축되었으나 반대로 주축들이 연이어 은퇴하거나 FA로 이탈한 투수진이 무너져 내리며 점차 투타 밸런스가 망가진 끝에 결국 1998년부터 2012년까지 15년 연속 B클래스를 찍는 약체팀으로 전락하게 된다.
[5]
1970년대에
코라쿠엔 구장,
요코하마 스타디움,
세이부 라이온즈 구장이 프로팀
야구장으로써는 처음으로 전자동식 스코어보드를 도입한 이후 각 프로팀
야구장들의 스코어보드도 점차 전자동식으로 바뀌어가게 되었고, 1군 구장으로썬 마지막으로 수동식 스코어보드를 썼던
후지이데라 구장(철거 당시엔 2군 구장으로 사용)이 2005년
오사카 킨테츠 버팔로즈의 해체와 함께 철거되며 프로팀 1군 야구장의 수동식 스코어보드는 완전히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참고로
히로시마 시민구장은 1993년부터 전자동식 스코어보드를 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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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7일 개최 예정이었으나 우천순연되었다.
[7]
이후의 우승경력인
1992년은
메이지진구 구장,
2004년은
나고야 돔,
2008년은
도쿄 돔에서 우승을 결정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