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21 10:08:34

겐다 소스케/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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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43d69><colcolor=#ffffff> 모기업 관련 정보 모기업 파일:세이부철도 로고.svg 세이부 철도
과거 모기업 파일:서일본 철도 로고.svg 서일본 철도
일본시리즈 우승
★★★★★★★★★★★★★
1956 · 1957 · 1958 · 1982 · 1983 · 1986 · 1987 · 1988 · 1990 · 1991 · 1992 · 2004 · 2008
리그 우승
(23회)
1954 · 1956 · 1957 · 1958 · 1963 · 1982 · 1983 · 1985 · 1986 · 1987 · 1988 · 1990 · 1991 · 1992 · 1993
1994 · 1997 · 1998 · 2002 · 2004 · 2008 · 2018 · 2019
퍼시픽리그
전·후기 우승
(1회)
1982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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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라 카이마/선수 경력
경기장 1군 베루나 돔 · 2군 CAR3219 필드 · 지방 홈구장 사이타마현영 오미야공원 야구장 · 조모 신문 시키시마 구장
과거 헤이와다이 야구장
홈 중계 채널 파일:후지테레비2 로고.jpg 후지 테레비 2
주요 인물 구단주 고토 타카시 · 단장 공석 · 감독 니시구치 후미야 · 선수회장 토노사키 슈타 · 주장 겐다 소스케
구단 상세 정보 선수단 및 등번호 · 역대 선수 · 응원가 · 유니폼 · 10.19(야구) · 미스터 레오
틀 문서
세이부 그룹 코칭스태프 투수 포수 내야수 외야수 육성 선수 역대 감독 영구 결번
역대 1라운드 지명 선수 | 역대 개막전 선발 투수 | 미스터 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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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프로 입단 이전3.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3.1. 2017 시즌3.2. 2018 시즌3.3. 2019 시즌3.4. 2020 시즌3.5. 2021 시즌3.6. 2022 시즌3.7. 2023 시즌3.8. 2024 시즌
4. 국가대표 경력

1. 개요

겐다 소스케의 선수 경력을 서술한 문서.

2. 프로 입단 이전

오이타 상고 시절 팀의 주전 유격수를 맡았으나 팀이 약체인 탓에 고시엔에 가지는 못 했다.
고교시절 기록은 3학년 봄 현 대회 준우승이 최고 성적.

아이치가쿠인대학 진학 후 1학년 가을 리그부터 주전 유격수를 맡아 1학년 가을 리그에서 우승, 대학 전국 대회인 메이지 진구 대회에서는 준우승을 했다. 당시에는 수비력은 눈에 띄었지만 타격은 부족했다는 평가.[1] 3학년 때까진 타격에서 아쉬웠으나 4학년 때 주장을 맡고 타격도 좋아지며 봄 리그에서 우승했다. 본인에게는 대학 리그 첫 타율 10위 안에 랭크됐다. 그 후 대학 선수권 대회에서는 팀의 4강을 이끌었다. 가을의 도카이-호쿠리쿠-아이치 대학연맹전에서는 4강에서 츄부가쿠인대학에게 패배.
대학 리그 통산 기록은 타율 .285, 73안타 20타점 12도루를 기록했다.

대학 졸업 후 토요타에 입사. 곧바로 사회인 야구 공식 경기에 출전하면서 다음 해인 2016년 제87회 도시대항전에서 우승하고 대회 유격수 부문 우수선수로 뽑혔다. 이후 2016년까지 토요타 소속으로 사회인 야구에서 활약.[2]

2016년 드래프트에서 세이부 라이온즈에게 3순위로 지명되어 계약금 6000만엔, 연봉 1200만엔의 계약으로 입단했다.

3.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3.1. 2017 시즌

스프링 캠프를 거치고 시범경기에서 3할을 기록하며 좋은 모습을 보여준 덕분에 니혼햄 파이터즈와의 개막전에서 유격수로 출전했다. 이후 순조롭게 주전자리를 차지하며 6월 8일 요미우리와의 교류전에서 개인 프로 통산 첫 홈런을 기록했다. 원래는 올스타전 멤버가 아니었지만 기존 선수였던 모기 에이고로가 부상으로 빠지면서 대체 선수로 뽑혔다. 올스타전에서는 2경기 모두 무안타를 기록.
7월 26일 오릭스 전에서는 시즌 26도루를 기록하며 세이부 역대 신인 도루 기록을 경신했다. #
정규 시즌 막판인 9월 30일 니혼햄 전에서는 150안타를 기록하는 등, 신인 야수로 세이부의 정규 시즌 2위 수성에 공헌했다.

CS에서는 테이블세터로 나섰지만 12타수 1안타에 그치는 부진으로 라쿠텐에게 탈락하며 프로 첫 시즌을 아쉽게 마쳤다.

정규 시즌 최종 기록은 143경기 155안타 타율 .270 출루율 .317 장타율 .351 3홈런 57타점 85득점 37도루를 기록했다.
전 경기 출장 기록은 1997년 코사카 마코토 이후 처음이고 신인으로는 역대 4번째로 전 경기 풀 이닝 출장 기록을 세웠다.[3] 유격수 풀 이닝 출장은 역대 최초이며 155안타는 신인 역대 3위 기록이고 세이부 역대 신인 최다 안타 기록이다. #

모든 일정이 종료된 후 열린 2017 NPB 시상식에서 압도적인 표 차이로 퍼시픽 리그 신인왕에 뽑혔다. 퍼시픽 리그에서 야수 신인왕은 1998년 세이부의 외야수 오제키 타츠야[4] 이후 무려 19년만이다. #[5]

3.2. 2018 시즌

시즌을 앞두고 도루왕을 노려보겠다고 선언했다. #

스프링 캠프를 무사히 소화하고 시범경기에서도 작년과 마찬가지로 3할을 기록하며 개막전 준비를 끝냈다. 니혼햄과의 개막전에서 4타수 1안타 2타점을 기록하며 팀은 11대2로 완승을 거뒀다.

이후 아키야마 쇼고와 테이블 세터진을 맡으며 팀 타선의 첨병 역할을 맡는 중. 아사무라 히데토- 야마카와 호타카- 모리 토모야의 클린업에 토노사키 슈타, 나카무라 타케야, 쿠리야마 타쿠미 등이 하위타선에 포진한 막강타선의 일원으로 활약해줬으며 수비력 역시 건재하다.

최종적으로 143경기 전경기 풀이닝 출장해 .278/.333/.374 OPS .707 4홈런 57타점 34도루(8도실) 165안타의 성적을 거두었다. 수비에서는 271 풋아웃/112병살/526 어시스트 모두 퍼시픽리그 선두를 달렸으며 특히 526 어시스트는 유격수로서는 일본프로야구 단일시즌 최다 기록[6]이었다. # 실책도 11개로 전년도에 비해 10개를 줄였고 Delta사의 1point02.jp UZR도 30.1이라는 초월적 수치를 기록하며 클래식 스탯으로건 세이버 스탯으로건 일본 최고의 수비력을 갖췄음을 입증했다.

3.3. 2019 시즌

4월 초에 뜬금없이 에토 미사와의 열애설이 불거졌고, 4월 12일 양측이 모두 인정하였다. 그러나 하늘이 이를 시샘했는지... 4월 13일 오릭스 버팔로즈와의 경기에서 사구를 맞아 오른 손등 부상으로 교체, 299경기 연속 신인 전경기 풀이닝 출장 기록[7]이 중단되고 말았다. 다행히도 이후 건강하게 복귀하여 평소다운 활약을 보이고 있는 중.

시즌 후인 10월 24일에 에토 미사와 결혼을 발표했다. #

이후 프리미어12에 일본 국가대표로 출전했다.

3.4. 2020 시즌

전체적으로 세이부 타자들이 부진[8]하던 해였으나 유일하게 겐다만 꾸준히 좋은 모습을 보였다. 성적은 작년과 비슷하나 전체적으로 폭망한덕에 더더욱 부각되었다. 수비 역시 건재해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3.5. 2021 시즌

개막전부터 부상 없이 시즌을 잘 치르고 있던 중 5월 28일 부인 에토 미사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코로나바이러스-19에 감염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후 6월 18일 1군에 복귀하여 다시 좋은 활약을 보였고 팬투표로 올스타전에도 출장하였다.

이후 도루왕을 차지했는데 2021년에는 도루왕만 무려 4명이나 나왔다.[9]

3.6. 2022 시즌

부상없이 시즌을 치르던 도중 5월 6일 닛폰햄전에서 오른발에 타구를 맞아 8주재활이 필요하다고 소견이 나왔다. 빈자리는 지배하선수 타키자와 나츠오가 1군에 등록하고 6월 11일 히로시마전에서 복귀를 했다. 복귀 이후로도 작년처럼 좋은 페이스를 이어가고 있다.

시즌후 FA까지 1년 남은 상태에서 5년 15억엔의 장기계약을 하기로 결정을 했다. 사실 2023년 시즌후 FA가 되면 교진이 노린다는 소문이 파다한 선수라[10] 팬들은 언제나처럼 교진에서 렌탈해온 용병이라는 드립을 칠 정도였는데, 꽤나 의외인 결정.

3.7. 2023 시즌

WBC에서 입은 손가락 부상으로 인해 개막 엔트리에 들지 못했다. 5월 복귀 예정이다. 5월 복귀 이후 100시합에 출장했으며 발군의 수비력으로 6년 연속 골든 글러브를 수상했다.

3.8. 2024 시즌

코가 유토, 헤수스 아귈라, 토노사키 슈타와 공격진을 이끌고 있으며 4월 9일 기준 모두 퍼시픽리그 타율 10위 안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4. 국가대표 경력

4.1. 2017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

소속팀에서 쓰던 6번을 그대로 달고 출전했다.

한국과의 첫 경기에서 유격수로 선발 출전하여 3회말에 볼넷 출루 이후 박민우의 송구 실책을 틈타 득점 하는 등, 4타수 무안타 1볼넷 2득점을 기록했다.

대만과의 2경기에서는 교다 요타가 선발 유격수로 나오고 경기 후반 대수비로 출전했다.

한국과의 결승전에서는 유격수로 출전, 2타수 무안타 2볼넷을 기록했다.

4.2. 2020 도쿄 올림픽

2020 도쿄 올림픽 대표팀에도 선출되어 주로 대주자와 3루 대수비로 출전하며 3경기에 출전하며 금메달을 획득했다.

4.3. 202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주전 유격수 자원으로 선발되었다. 3월 10일 한국전에서는 선발 8번 타자 유격수로 출전했다. 3회말 김광현을 상대로 풀카운트 볼넷을 얻어내 김광현을 흔드는 데 성공했고 4득점 빅이닝에 기여했다. 다만 주루 중 손가락이 골절당하는 부상을 당해 보호 차원에서 경기에서 빠지게 되어, 4회초부터 나카노 타쿠무로 교체되었다.
그후 예선 2경기는 결장했으나, 8강 이탈리아전부터 테이핑을 한 채 출전을 감행, 결승까지 소화하며 일본의 우승에 공헌했다.

4.4. 2024 WBSC 프리미어 12

대만전에서 깜짝 솔로 홈런을 터뜨렸다. 타격 수비 다되는 만능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1] 지금 시점에선 다소 의외지만 대학 시절 겐다의 타격은 3학년 때까지 상당히 좋지 않았다. 대학 리그전에서 아예 안타를 하나도 기록하지 못한 때도 있었을 정도. 그리고 이 문제는 드래프트 때까지 여러 스카우트들이 지적하기도 했던 점.(대졸사회인 출신 선수들 보면 아닌 경우도 있지만 애초에 대학에서도 뭔가가 부족해서 지명을 못 받은 선수가 대부분이다. 대학 때부터 상위라운드 지명 보장수준으로 잘하면 뭐하러 26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프로에 데뷔해서 누적 기록도 손해를 보고, 빨리 자리잡지 못하면 제일 먼저 정리되는 대졸 사회인 입단을 택하겠는가? 물론 예외도 간혹 있다.) [2] 일본 프로야구 드래프트 규약 상 대학 졸업 후 사회인 야구로 진출한 선수는 2년 후에 드래프트 참가가 가능하다. [3] 앞선 3명은 1956년의 사사키 신야, 1958년의 나가시마 시게오, 1961년의 토쿠타케 사다유키 [4] 이승엽 요미우리 자이언츠 시절 뇌주루로 이승엽의 홈런을 도둑맞게 한 바로 그 선수 맞다. [5] 우타자만 따지면 1986년 기요하라 가즈히로까지 올라간다. 그러고 보니 모두 세이부 참고로 옆 리그에서 주니치 드래곤즈의 신인 유격수 교다 요타가 신인왕으로 뽑히며 NPB 역사상 최초로 양대 리그 신인왕이 모두 유격수가 되었다. [6] 이전 기록은 1948년 스기우라 키요시의 502보살. 이쪽은 현재로서는 센트럴 리그 기록. [7] 일본 신기록 [8] 모리, 야마카와, 토노사키, 쿠리야마, 나카무라 등 신예나 베테랑이나 할거없이 주축타자들이 싹다 실망스러운 성적을 남겼다. 그나마 토노사키가 수비라도 잘 봐서 골든 글러브를 얻은거 말곤 야수쪽에서 건질 요소도 거의 없았다. [9] 나머지 3명은 오기노 타카시, 니시카와 하루키, 와다 코시로. 이 중 와다는 시즌 내내 2경기에 선발출장했고 24타석만 들어서고도 꾸준히 대주자로만 나와서 도루왕을 차지했다. [10] 사카모토 하야토가 23시즌 후면 이제 30대 후반이 되는지라, 사카모토가 1루로 전향하고 대신 겐다를 주전 유격수로 기용한다는 구상안이 있었다. 그러나 23시즌 카도와키 마코토라는 신인 유격수가 나타났고 기존 유격수였던 사카모토 하야토를 3루로 3루였던 오카모토 카즈마를 1루로 밀어낸 반면 기회를 잃은 나카타 쇼는 옵트아웃을 선언해 주니치 드래곤즈로 이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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