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ordercolor=#143d69><tablebgcolor=#143d69> |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관련 문서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000000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000000,#e5e5e5 |
<colbgcolor=#143d69><colcolor=#ffffff> 모기업 관련 정보 |
모기업
세이부 철도 과거 모기업 서일본 철도 |
일본시리즈 우승 ★★★★★★★★★★★★★ |
1956 · 1957 · 1958 · 1982 · 1983 · 1986 · 1987 · 1988 · 1990 · 1991 · 1992 · 2004 · 2008 | |
리그 우승 (23회) |
1954 · 1956 · 1957 · 1958 · 1963 · 1982 · 1983 · 1985 · 1986 · 1987 · 1988 · 1990 · 1991 · 1992 · 1993 1994 · 1997 · 1998 · 2002 · 2004 · 2008 · 2018 · 2019 |
|
퍼시픽리그 전·후기 우승 (1회) |
1982전기 | |
클라이맥스 시리즈 | 2008 · 2010 · 2011 · 2012 · 2013 · 2017 · 2018 · 2019 · 2022 | |
시즌 문서 | 2013-2021 · 2022 · 2023 · 2024 월별문서 · 2025 월별문서 | |
현역 선수 경력 |
쿠리야마 타쿠미/선수 경력 ·
겐다 소스케/선수 경력 ·
이마이 타츠야/선수 경력 ·
나카무라 다케야/선수 경력 타이라 카이마/선수 경력 |
|
경기장 | 1군 베루나 돔 · 2군 CAR3219 필드 · 지방 홈구장 사이타마현영 오미야공원 야구장 · 조모 신문 시키시마 구장 | |
과거 헤이와다이 야구장 | ||
홈 중계 채널 | 후지 테레비 2 | |
주요 인물 | 구단주 고토 타카시 · 단장 공석 · 감독 니시구치 후미야 · 선수회장 토노사키 슈타 · 주장 겐다 소스케 | |
구단 상세 정보 | 선수단 및 등번호 · 역대 선수 · 응원가 · 유니폼 · 10.19(야구) · 미스터 레오 | |
틀 문서 | ||
세이부 그룹 |
코칭스태프 |
투수 |
포수 |
내야수 |
외야수 |
육성 선수 |
역대 감독 |
영구 결번 역대 1라운드 지명 선수 | 역대 개막전 선발 투수 | 미스터 레오 |
1. 프로 입단 전
효고현 고베시 출신으로 고베 시립 고데라 초등학교 시절에는 고베 시 소년단 리그에 소속되어 다케우치 신이치와 같은 리그에 있었다. 고베 시립 다이산지 중학교 시절 유소년 야구 팀인 ‘고베 드래건스’에서 활약했고, 이때 팀에는 1년 후배 관계인 사카구치 토모타카가 있었다.중학교 졸업 후 이쿠에이 고등학교에 진학해 2학년 때에는 3번 좌익수로서 제 72회 선발 고등학교 야구 대회, 제82회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대회에 춘계와 하계 대회에 연속으로 출전했다. 춘계 대회에서는 개회식 직후 1차전에서 고쿠가쿠인도치기 고등학교와 상대했지만 팀은 패했고 하계 대회에서는 첫 경기인 1차전에서 다무라 아키히로가 소속된 아키타 상업고등학교와의 접전 끝에 승리했다. 그러나 준결승전에서는 나카무라 잇세이와 야마다 겐 등이 소속된 도카이 대학부속 우라야스 고등학교에게 패했다. 쿠리야마는 5경기에서 타율 3할 4푼 8리, 9타점을 기록했고 고교 통산 47홈런을 기록했다.
2001년 프로야구 드래프트 회의에서 세이부 라이온스로부터 4순위 지명을 받고 입단, 이후 기자회견에서는 세이부에 대한 인상을 묻는 질문에 “훨씬 강한 팀이었고 동경하고 있는 팀이다”라고 말했다.
2. 프로 입단 후
2.1. 2002 시즌
2002년부터 2군에서 적극적인 활약으로 이스턴 리그에서 51경기에 출전했다.2.2. 2003 시즌
이듬해 2003년에는 2군에서 타율 2할 7푼 4리, 출루율 3할 5푼 9리, 7개의 홈런을 기록했다. 같은 해 프레시 올스타전에서 출전 선수로 발탁되어 선발로 출전해 풀 이닝을 소화했다.2.3. 2004 시즌
2004년에는 2군에서 타율 3할, 11개의 홈런을 기록하면서 우수 선수로 선정되었고 세이부에 있어서 정규 시즌 최종전이 된 9월 24일의 오사카 킨테츠 버팔로즈전( 교세라 돔 오사카)에서는 9번· 좌익수로서 1군에 첫 선발 출전함과 동시에 첫 안타도 기록했다. 여담으로 이 경기는 2004년까지 오릭스 블루웨이브와 합병한 오사카 긴테쓰 버펄로스의 홈구장 최종전이었다.2.4. 2005 시즌
3월과 4월에 타율 3할 대를 기록하면서 1군에 정착했고 교류전에서도 5개의 홈런을 날리는 등 84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2할 9푼 7리, 출루율 3할 5푼 7리를 기록했다.2.5. 2006 시즌
8월 1일 지바 롯데 마린스전에서 헛스윙을 했을 때 오른쪽 손목을 다쳐 그 직후에 고바야시 마사히데로부터 만루 홈런을 때려냈지만 다음날에 구상골 골절이라는 판명을 받아 전력에서 이탈했다. 시즌 종반에 1군에 복귀했고 시즌 종료 후에는 교육 리그에 참가했다. 같은 해 센트럴·퍼시픽 교류전에서는 우에하라 고지로부터 “센스가 훌륭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라이벌 선언’이 되었다.2.6. 2007 시즌
그 해에는 처음으로 100경기 이상을 출전(112경기)했고 팀내 2위가 되는 45개의 볼넷을 포함한 출루율 3할 8푼, 득점권 타율 3할 2푼 4리를 기록해 팀내 1위가 되는 10개의 결승타를 기록했다.2.7. 2008 시즌
5월 4일의 지바 롯데전에서 1루수 훌리오 줄레타가 놓친 쿠리야마의 타구를 2루수인 호세 오티즈가 글러브를 던져서 멈췄고 공인야구규칙에 준거해 안전진루권을 3개가 주어져 3루타가 되었다. 이것에 대해서 쿠리야마는 “규정을 몰랐다”라고 말했고 구로에 유키노부 수석 코치는 “40년이 넘는 야구 인생에서 이런 모습은 본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같은 해 2번으로 고정되면서 개인 최다인 138경기에 출전해, 4월에는 타율이 2할 5푼 전후였지만 그 이후에는 시즌 내내 쾌조의 타격감을 유지하는 등 처음으로 규정 타석을 채워 타율 3할 1푼 7리, 팀내 3위인 49개의 볼넷, 공동 2위가 되는 출루율 3할 7푼 6리, 득점권 타율 3할 2푼 5리, 72타점을 기록했다. 클린업 타자 전에 출루하는 것과 동시에 하위 타선부터 1번 타자까지 모은 주자를 돌려주는 역할도 했다. 본인으로서는 첫 타이틀이 되는 최다 안타를 석권한 것 외에도 22개의 희생타, 17개의 도루를 기록할 정도의 빠른 주루 플레이까지 보여주면서 팀의 리그 우승에 기여해 베스트 나인에도 선정되었다.
2.8. 2009 시즌
시범 경기에서 55타수 22안타, 4할의 타율을 기록하여 기대 이상의 성적을 남겼지만 시즌 개막 직후에는 21타석 연속 무안타를 경험하는 등 5월 종료 시점에서 2할 2푼의 저조한 성적을 남기며 극도의 부진에 시달렸다. 6월에는 18경기 중에 9경기에서 멀티 히트를 발했고 교류전에서 팀 내 1위인 타율 3할 3푼 3리를 기록하여 회복될 기미를 보였지만 시즌 종반에는 다시 부진에 시달리는 와중에 신종플루에도 감염되었다. 그 해에는 개인 최고 성적을 경신하는 140경기에 출전해 타율 2할 6푼 7리, 리그 9위인 106개의 삼진 등은 작년부터 악화되었지만 좌완 투수와 상대할 때 타율 3할 5푼, 리그 4위인 6개의 3루타, 공동 9위의 18개 도루를 기록했고 외야 수비에서는 리그 1위인 9할 9푼 7리의 수비율, 공동 3위인 8개의 보살을 기록했다.2.9. 2010 시즌
부상자가 속출하고 있는 팀의 사정도 있었지만 처음으로 3번과 4번 타자로도 활약했다. 시즌 초반부터 컨디션을 계속 유지해가며 팀 내에서는 유일, 외야수로서는 구단 역사상 최초로 144경기 풀이닝 출전 기록을 달성했고 2년 만에 3할 대가 되는 타율 3할 1푼, 모두 개인 기록을 경신하는 4할의 출루율과 74타점을 기록했다. 통산 두 번째가 되는 베스트 나인에 선정됨과 동시에 골든 글러브상을 처음으로 수상했다. 12월 21일에는 이전부터 교제하고 있었던 3살 연상인 일반인 여성과의 결혼을 같은 달 14일에 발표했다.2.10. 2011 시즌
2번과 5번 타자로 기용되고 있었지만 카타오카 야스유키의 부상으로 이탈한 7월 이후에는 1번 타자로서 기용돼 타격감이 강했던 팀에게 있어서 안정된 타격으로 팀 승리에 공헌했다. 2년 연속으로 모든 경기에 풀 이닝 출전 기록을 달성했지만 부상의 영향으로 9월 8일의 지바 롯데전(18차전)에서는 기존의 중견수에서 좌익수로 돌아왔고 그 후 시즌 종료까지 좌익수로서 기용되었다. 타격면에서는 시즌 내내 좋은 타격감을 유지했고, 타율은 우치카와 세이이치가 부상에서 복귀할 때까지 리그 선두를 유지하는 등, 최종적으로 리그 5위인 3할 대의 타율과 득점권 타율은 양대 리그를 통틀어 1위인 3할 8푼을 기록했다. 5월 6일의 라쿠텐전에서는 다나카 마사히로로부터 구단 통산 8000번째 홈런이 되는 2점짜리 결승 홈런을 때려냈고 11월에는 오른쪽 팔꿈치의 유리연골 제거 수술을 받았다.2.11. 2012 시즌
2번과 1번 타자로 기용되었지만 8월 21일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와의 16차전에서 왼쪽 앞팔에 사구를 받아 교체돼 연속 경기 풀 이닝 출장도 퍼시픽 리그 역대 2위에 해당되는 390경기로 중단되었다. 여담으로 이 이후에 팀동료였던 호소카와 토루가 시비를 거는 정황이 포착돼 쿠리야마는 분노했고 결국 벤치클리어링까지 번지게 됐다.2.12. 2013 시즌
2년만에 전 경기에 출전하며 개인으로서는 4년만에 통산 4번째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했고 개인 단일 시즌 최다 타이가 되는 12홈런을 기록했지만 타율은 작년보다 떨어졌다.2.13. 2014 시즌
작년에 이어 전 경기에 출전. 작년에 기록한 타율을 웃도는 .288의 타율, .394의 출루율을 기록하였으나 이번엔 반대로 타점과 홈런 수가 작년보다 저조해졌다. 그리고 이 해에 구단 사상 최초의 골든 스피릿 어워드를 수상했다.2.14. 2015 시즌
개막 직후 부진으로 5월 초순까지 타율 2할을 밑돌았다. 그래도 시즌이 진행되면서 차차 본 실력을 되찾는 모습을 보였고 최종적으로는 타율 .268을 기록하면서 시즌을 마쳤고 개인 통산 5번째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했다. 하지만 8월 16일 경기에 결장하면서 2013년부터 계속되고 있었던 연속 경기 출전이 396경기에서 중단되었다.2.15. 2016 시즌
6월 19일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전에서 역대 120번째 통산 1500안타를 기록했다. 7월 4일에는 감독 추천 선수로 선수 생활 15년만에 처음으로 올스타에 선정되었다. 7월 15일에 진행된 올스타전 1차전(후쿠오카 야후 오쿠 돔)에서 7회에 좌익수 대수비로 출전하였으며 9회초에 2점 홈런을 쳤다. 올스타전 첫 타석 첫 홈런은 역대 16번째 기록. 이 활약으로 1차전 감투상에 선정되었다.시즌 성적은 타율 .279 3홈런 41타점. 작년보다 홈런은 줄었지만 출루율과 타율이 올라가서 오히려 작년보다 더 높은 OPS를 기록했다. 시즌이 종료된 11월 10일, FA권을 행사한 후 세이부 잔류를 표명하였다.
2.16. 2017 시즌
4월 7일 소프트뱅크 전에서 역대 187번째로 1500경기 출장을 기록했지만 다음날 경기에서 오른발 부상, 4월 14일 롯데 전에서 도중 교체 후 지명타자나 대타로 주로 기용되었고, 10년만에 규정타석 달성에 실패했다. 그러나 5월 21일 소프트뱅크 전에서 프로 첫 끝내기 홈런을 치는가 하면 8월 17일 라쿠텐 전에서 대타 끝내기 3점 홈런. 9월 17일 소프트뱅크 전에서 끝내기 볼넷을 골라내는 등 작년보다 떨어진 시즌 성적과는 달리 경기 후반에 활약하는 인상적인 모습을 보이며 팀이 4년만에 A클래스로 복귀하는데 나름대로 공헌을 하였다.2.17. 2018 시즌
4월 30일의 라쿠텐과의 6차전에서 4회에 통산 309번째가 되는 적시타를 치고 이시게 히로미치의 구단 기록(308개)을 경신했다. 좌타 대타의 비장의 카드로서 활약하다가 9월 들어 토노사키 슈타가 부상으로 빠진 이후 5번에 정착, 10년만의 리그 우승에 공헌했다.2.18. 2019 시즌
개막전에서 선발 출전했다. 8월 11일의 롯데 전에서 통산 100홈런을 달성했다. 그리고 8월 31일 소프트 뱅크 전에서 3회말 안타를 기록하여 통산 1807안타를 달성, 이시게 히로미치가 가진 통산 안타 구단 기록(1806개)을 경신했다. 또한 2 년 만에 규정 타석에 도달했다.2.19. 2020 시즌
개막전부터 호조를 유지하였으며 시즌 막바지에는 4번에 기용되었다. 111경기 출전에 타율 .272 12홈런, 67타점을 기록했다. 시즌 종료 후 지명타자 부문에서 개인 통산 4번째 베스트 나인에 선출되었는데 지명타자 부문으로 수상하는 것은 처음. 시즌 종료 시점에서 통산 1926안타를 달성. 세이부 토박이 선수(전신 구단 포함)로 사상 첫 2000 안타 달성까지 앞으로 74개가 남은 상황을 고려하여 3년 계약을 체결했다.2.20. 2021 시즌
이 해에도 개막전에서 좋은 컨디션을 보였지만 왼 다리 부상으로 인해 3월 31일에 엔트리에서 말소되었다. 4월18일 2군경기에서 실전 복귀를 위해 리햅 경기를 가졌는데 2006년 9월 30일 이후 약 15년 만에 이스턴 리그(2군 리그) 공식전에 출전하게 되었다. 4월 20일에 1군으로 다시 복귀한 후 6월 12일, 주니치 드래곤즈전에서 역대 52번째로 통산 2000경기 출장을 달성했다.6월 23일에는 통산 1970안타를 달성, 2000안타가 가까워지자「ONE ROAD '라는 제목의 카운트다운 홈페이지가 공개되었다. 그러나 6월 이후 월간 OPS가 .600 → .583 → .584으로 떨어지며 부진했다.
통산 1998안타를 기록한 상태로 맞이한 9월 3일 라쿠텐 전에서는 사상 최초로 생일에 2000안타를 달성할 것인지에 대해 관심이 집중되었지만 아쉽게도 1안타에 그쳤다. 하지만 다음날 경기에서 옛 동료이기도 했던 마키타 카즈히사를 상대로 좌전 안타를 날려 역대 54번째로 2000안타를 달성. 세이부 프랜차이즈 최초의 2000안타라는 위업을 이루어냈다.
개인 통산 2000안타를 기록하는 모습 |
2.21. 2022 시즌
엄청 쎄게 노쇠화가 왔다. 결국 지명타자 자리도 야마카와 호타카한테 넘겨주면서 벤치신세가 되고 동갑내기 팀 동료인 나카무라 다케야와 함께 팀의 민폐가 되고있다. 이대로가다간 은퇴할수도 있지만 그래도 팀의 정신적 지주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2.22. 2023 시즌
부진하는 와중에도 통산 1000사사구를 기록했다. 주로 나카무라 타케야의 체럭인배로 출장을했고 77경기 .217 34안타를 기록했지만 여기서 눈에 띄는게 홈런이 무려 7개다![1] 이 홈런이 중요할때 터저서 정말로 의아한 기록.2.23. 2024 시즌
극도의 부진으로 결국 2군통보를 받았고 2군에서도 부진하는 모습을 보여 나카무라 타케야처럼 특별한 반등이 없는한 은퇴가 유력해보인다. 그러나 교류전 이후로 성적이 급등하더니 6월 야쿠르트전에서 통산 400 2루타를 기록했다. 9월 16일 나카무라 타케야랑 같이 현역연장을 선언했다.
[1]
참고로 2년간 홈런갯수가 총 7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