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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구의
행정동 한남동 漢南洞 | Hannam-do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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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4ea2><colcolor=#ffffff> 광역자치단체 | 서울특별시 | ||
기초자치단체 | 용산구 | ||
행정표준코드 | 3020108 | ||
관할 법정동 | 한남동 | ||
하위 행정구역 | 38통 284반 | ||
면적 | 3.01㎢ | ||
인구 | 14,699명[1] | ||
인구밀도 | 4,883.39명/㎢ | ||
정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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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 용산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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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복지센터 | 대사관로5길 1[2] | ||
한남동 주민센터 |
용산구의
법정동 한남동 漢南洞 | Hannam-do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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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4ea2><colcolor=#ffffff> 광역자치단체 | 서울특별시 |
기초자치단체 | 용산구 |
행정표준코드 | 1117013100 |
관할 행정동 | 한남동 |
면적 | 3.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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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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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동 전경 |
서울의 대표적인 부촌 중 한 곳으로, 부자가 많기로 유명한 용산구 안에서도 최대 부촌이다. 서쪽으로 이태원동, 보광동과 접하고, 북쪽으로는 중구 장충동2가, 신당동, 동쪽으로는 성동구 옥수동과 접한다. 남쪽으로는 한강을 건너 서초구 잠원동, 강남구 신사동[4], 압구정동과 마주하고 있다. 중구와의 사이에는 남산이, 성동구와의 사이에는 매봉산이 경계를 이루고 있다.
2.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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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부 남서 한강방 한강계 (漢城府 南署 漢江坊 漢江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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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 10. 1. |
경기도
경성부 남서 한강방 한강계 (京畿道 京城府 南署 漢江坊 漢江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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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동(上洞) | 중동(中洞) | 하동(下洞) | |||
1911. 4. 1. |
경기도 경성부 한지면 한강리 (京畿道 京城府 漢芝面 漢江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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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 4. 1. |
경기도 고양군 한지면 한강리 (京畿道 高陽郡 漢芝面 漢江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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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 4. 1. |
경기도 경성부 한남정 (京畿道 京城府 漢南町)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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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 6. 10. |
경기도 경성부
용산구 한남정 (京畿道 京城府 龍山區 漢南町)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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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 10. 9. |
서울특별자유시 용산구 한남동 (서울特別自由市 龍山區 漢南洞)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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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 6. | 북한남동(北漢南洞) | 한남동(漢南洞) | |||
1949. 8. 15. |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남동 서울特別市 龍山區 漢南洞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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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남동 | 한남동 | ||||
1955. 4. 18. | 한남동 | ||||
1970. 5. 5. | 한남2동(漢南二洞) | 한남1동(漢南一洞) | |||
2008. 6. 30. | 한남동 | }}}}}}}}} |
고려 시대 초부터 구한말에 이르기까지 한남동 일대는 용산구 서부와는 다른 행정구역이었고, 성동구와 역사를 함께했다. 983년( 성종 2년) 전국에 12목을 설치할 때에 양주(楊州)에 편제되어 있다가, 1067년부터는 양주목이 남경으로 승격되었을 때 이에 속했다. 얼마 가지 않아 남경이 다시 양주목으로 격하되었으나, 1104년( 숙종 9년)에 다시 남경이 설치될 때에 그에 속해 쭉 유지되었다.
1395년( 조선 4년)에 개경에서 한양으로 천도할 때에 한양도성 내부만 한성부가 되고 그 외 지역은 모두 양주군에 속하게 했는데, 지금의 한남동 지역도 양주군에 속하게 되었다. 1424년( 세종 6년), 한양에서 떨어져 나온 지 29년이 지나서 다시 한성부 성저오리(城底五里)에 편입되어 남부에 예속되었다.
1721년( 영조 27년)에 행정구역의 변동이 있을 때에 지금의 주성동, 보광동과 함께 신설 한강방 한강계(漢江坊 漢江契)에 예속되었다. 한강계에는 상동(上洞), 중동(中洞), 하동(下洞)이 있었다.
조선 초의 한남동은 지금의 국립극장 인근의 고갯길에 있던 남소문을 지나 남쪽으로 쭉 나오면 한남대교 인근의 한강진을 통해 신사동으로 넘어가던 나루터였다. 서울 지하철 6호선 한강진역의 역명 유래가 되었지만, 한강진은 한강진역이 아닌 지금의 한남대교 북단 근처에 있었다. 1969년에 한남대교가 놓이기 전까지는 그 자리에서 계속 나룻배가 사람들을 실어날랐다.
1911년에 한강방과 둔지방(屯芝坊)[5]이 합쳐지며 한지면이 되었고 한남동은 지금의 옥수동, 금호동, 행당동 지역과 함께 한지면에 예속되었다. 1914년, 경성부를 축소함에 따라 경기도 고양군에 편입되어 한강리(漢江里)가 되었고, 1931년, 한강리 남쪽으로 지나가는 경원선에 지금의 한남역이 된 한강리역이 개통되었다.
1936년에 다시 경성부에 편입되면서 한강리는 한강의 한( 漢)과 남산의 남( 南)을 합쳐 한남정(漢南町)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이 일대는 서울 변두리의 시골 농촌에 지나지 않았고, 공동묘지가 들어서 있었는데, 1936년에 대경성도시계획이 세워지고 이 일대를 주거지역으로 개발하면서 한남동은 급진적으로 변모하게 된다. 이때의 신문 기사를 보면 이 지역을 경남(京南) 지역으로 부르고 있다. 이 즈음에 공동묘지를 헐고 사대문안으로 통하는 남산주회도로(현재의 이태원로)가 뚫렸다. 이로 인해 그간 산지로 가로막혀 통행이 원활하지 않던 경성과의 교통이 원활해졌고, 한남대로가 개통되며 조금씩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1943년 6월 10일, 조선총독부령 제163호에 의해 구제 실시 때에 용산구에 편제되었다가, 해방 이후인 1947년 6월에 서울특별시령 제2호에 의해 동회제도가 실시되며 한남동회(漢南洞會)와 북한남동회(北漢南洞會)가 설치되었고, 1955년 4월 18일 서울특별시조례 제66호에 의해 행정동제가 시행되자 한남동회와 북한남동회가 한남동으로 통합되었다. 이후 인구가 계속해서 늘어나면서 1970년 5월 5일, 서울특별시조례 제613호에 의해 한남1동과 한남2동으로 분동되었다가, 2008년에 다시 한남동으로 통합되었다.
옛 일본군 병영이었던 자리에 미8군이 주둔하면서 용산기지 인근의 이태원동과 한남동은 미8군의 배후지가 되었고, 6.25 전쟁 직후부터 이 일대는 서울의 외국인들이 몰려사는 지역으로 발전한다. 유엔빌리지, 한남외인아파트가 다 이때 들어선 것으로, 이태원시장은 미군 PX에서 나온 물자로 상업을 이어가며 번영하게 되고, 외국 문화가 어우러진 독특한 풍경을 자아낸다. 이러한 배경으로 인해 대사관로와 독서당로 인근에는 각국의 대사관과 대사관저가 지어졌다.
조선 시대 중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서울 용산구 일대에 거대한 공동묘지가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1 #2 #3 사실 신도시, 유원지, 공원 등을 짓다가 무덤이나 시신이 발견되는 일은 종종 일어난다. 멀리는 삼국시대 고분부터 가깝게는 6.25 전쟁 당시 사망한 사람의 시신까지 발견되곤 한다.
1969년 12월 26일 제3한강교(지금의 한남대교)가 개통되면서 한남동은 경부고속도로의 기점이 되었고, 1970년 8월 15일에 남산1호터널이 뚫리며 고갯길을 거치지 않고도 명동 방향으로 바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196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서울의 변두리였던 한남동은 197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서서히 부촌으로 변모하였다.
3. 생활권
용산구에 편제되어 있기는 하지만, 중간에 떡하니 자리잡은 용산기지로 가로막혀 이태원동과 한남동 일대는 서쪽의 구용산, 신용산 일대와는 구분된 독자적인 생활권을 가지고 있다. 오히려 용산역을 중심으로 한 구용산과 신용산 일대보다는 한남대교를 건너면 나오는 강남대로 생활권과 연계가 되어 있는 편이다. 특히 교육 관련으로 같은 생활권인 압구정동과 학군을 일부 공유하며 일반적으로 한남동 부촌에 사는 사람들은 국제학교, 유학 등을 선호하나 압구정 쪽으로도 많이 자녀를 보내는 편이다.용산기지 본 기지 인근으로 여러 미군 기지가 있었다. 한남동 한가운데에 나인원 한남 부지는 원래 미군 부지였다가, 1972년에 그 자리에 한남외인아파트가 들어섰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부촌이다. 대한민국 굴지의 재벌그룹 회장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또, 한남대로의 동쪽에는 매봉산 서쪽 기슭으로 대한민국 대통령 관저를 비롯하여 3부 요인과 각 정부부처 장관들의 공관이 모여있는 한남동 공관촌이 자리잡고 있으며, 그 아래로는 매봉산 자락 경사로를 타고 단국대학교가 있었는데, 단국대가 서울 용산에서 용인 수지( 죽전동)으로 이전한 뒤, 지금은 한남더힐이 들어섰다. 또, 한남동에는 총 26개국의 대사관이 있는데 대사관로 주변에는 4개국의 대사관이 있고, 9개국 대사관이 독서당로를 따라 몰려있다.
4. 지리
남산을 북쪽에 두고 동으로 매봉산, 서쪽으로 남산에서 갈라져 나온 지맥이 둘러싸고 있으며, 남쪽으로는 한강이 흘러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지형으로서, 예로부터 명당으로 꼽혀 지금의 서울한남초등학교 부지는 조선 시대에 왕릉으로 삼으려고 했다고 하여 그 자리에 능터골이라는 자연부락이 있었다.조선시대에 동호(東湖)라는 이름이 붙어 알려진 곳이었다. 주거지역으로 개발된 지금은 산등성이에 주택이 가득 차서 알 수 없지만, 개발 이전의 한남동 일대는 풍치가 수려한 곳이었다. 때문에 조선시대부터 유원지로서 각광을 받아 세종대왕은 관리들을 위한 여름 휴양지로 매봉산 기슭에 동호독서당(東湖讀書堂)을 세웠으며, 신정왕후 조씨의 별장이 또한 매봉산 자락에 있었다고 한다. 특히 을밀대가 있어 유명한 평양의 모란봉과 지세가 닮아 구한말에는 이 일대를 경기모란봉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1938년에 뚫린 이태원로는 남산 중턱에서 한강을 훤히 내려다 볼 수 있어 드라이브 코스로 손꼽혔다고 한다.
이렇게 삼면이 산지로 둘러싸인 전형적인 골짜기 지형이다 보니, 고저차가 상당하고, 이태원동이나 신당동, 옥수동으로 통할 때는 필히 높은 고개를 지나가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고립되어 있다는 특성이 있다.
삼면의 산골짜기에서 갈라져 나온 소하천이 한남동 곳곳을 지나 한강으로 흘렀으나, 1978년에는 모두 복개되어 자취를 감췄고, 지금은 그 유로를 알기 힘들다. 한남천의 주 물줄기는 지금의 한남테니스장 인근에서 발원하여 한남대로 서편으로 흐르다가, 한남대로21길, 대사관로34길, 한남유수지를 지나 한강으로 흘러들었다. 한남오거리에서 한남역 삼거리 방향으로 가는 도로를 보면 세 갈래로 갈라지는데, 이 중 양 옆의 두 도로는 모두 한남천과 한남천 지류를 복개하여 만든 도로다.
풍수지리에서는 한남동 일대를 대한민국에서 손에 꼽는 명당 자리로 본다. 북으로는 남산이 병풍처럼 버티고 섰고, 남산에서 갈라져 나온 지맥이 좌청룡 우백호의 형세로 한남동을 감싸 안으며, 남쪽으로는 한강으로 탁 트인 형세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남동에 가 보면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아늑하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5. 교통
5.1. 도로
관내에 강변북로, 한남대로, 이태원로, 독서당로, 서빙고로, 대사관로, 소월로가 지나간다.한남대로는 북으로는 장충동 방향으로 이어지는 장충단로와 신당동 방향으로 이어지는 다산로와 교차하고, 한남제1고가차도를 통해 남산1호터널로 접속하게 되며, 남으로는 한남대교를 지나 강남대로와 경부고속도로로 이어지는 서울의 주요 간선도로이자 한남동의 메인 스트리트이다. 따라서 교통량이 매우 많아 늘 정체를 빚는 구간이다.
한남대로를 중심으로 한남동 한가운데의 한남오거리에서 대사관로와 독서당로가 교차하는데, 대사관로는 이태원동으로 이어지는 지선도로, 독서당로는 한남역에서 한남오거리를 거쳐 옥수동과 금호동, 왕십리역 방향으로 이어진다. 고개를 지나가지만 평탄하게 길이 닦인 한남대로와는 다르게, 독서당로는 1950년대 후반에 지어진 도로라서 능선을 구불구불하게 타고 가파르게 오른다. 폭설이 내리면 한남더힐 동쪽의 고개에서는 시내버스가 눈길에 헛바퀴를 구르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고, 실제로 이런 일이 있었다.[6]
이태원로는 북한남삼거리에서 한남대로와 분기하여 이태원역, 녹사평역 방향으로 나아가고, 남산 기슭을 따라 도는 소월로는 한남동에서 직접 진입이 불가능하므로 한남동 방면에서 이용할 일이 거의 없다.
서빙고로는 한강을 끼고 남쪽으로 도는 노선으로, 본래는 이 길이 강변북로 본선이었다. 1995년에 강변북로가 이설을 한 뒤부터는 일반도로로 사용 중이다. 용산역, 반포대교나 성수동 방향으로 갈 때 이용하게 된다. 특히, 성수동 방면으로 갈 때 한남대교 옆으로 아치형의 두무개다리를 지나가게 되는데, 밤의 드라이브 코스로 유명한 곳이다.
5.2. 철도
경원선 한남역에 경의중앙선이 지나다니고, 북쪽으로는 서울 지하철 6호선 한강진역이 있다.5.3. 버스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판교신도시나 분당신도시 등지에서 올라오는 광역버스가 사대문안 방면으로 갈 때, 남산1호터널을 타기 전에 한남동을 경유한다.6. 주거
기초수급을 받는 저소득층과 굴지의 재벌 총수가 같이 살고 있다 하여 한국의 빈부격차에 대해 얘기할 때 자주 언급되는 동네 중 하나였다. 한남동에 존재하는 달동네가 서울시의 재개발 사업 승인으로 곧 고급 주택화 되고 한남오거리의 고가도 철거되어 주변 전체가 고급화될 예정으로 이제 그런 말도 옛 말이 될 듯하다.[7]단위가 다르긴 하지만 강남구, 서초구와 더불어 서울의 대표적 부촌으로 유명하며 대한민국 5대 재벌 회장 일가가[8] 모두 여기에 자택을 두고 있다. 강북에서는 성북동, 평창동, 이태원동과 함께 강북 4대 부촌으로 꼽힌다. 같은 강북의 부촌이지만 한남동은 성북동과는 이미지가 약간 다르다. 성북동에는 전부터 고관대작들이 많이 살았고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도 근대화 이전에 부를 축적한 사람들의 후손들의 비중이 높은 편인 반면 주로 현대 일가와 정·재계 타 유명 인사들도 많이 거주한다. 또한 현재도 한남동 못지않게 많이 거주하고 있다. 한남동은 해방 이후 새롭게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 많다고 알려져 있다. 게다가 대한민국 대통령 관저 등이 있는 한남동 공관촌까지 있으니 최상위 지도자들이 모인 동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남동은 이름난 부촌이기도 하거니와, 사대문안과 강남을 잇는 교통의 요지이기 때문에 땅값이 매우 비싸다. 한남동과 이태원동의 지가가 용산구 지가의 평균을 높여 용산구가 강남3구와 함께 서울의 부촌 지역으로 인식되고 있다. 따라서 정치성향도 강남3구와 비슷하게 보수세가 강세인 지역으로, 보수정당이 열세일 때에도 서울에서 강남3구와 함께 부동의 보수정당 우세를 유지하는 지역이다. 강북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보수정당 계열이 항상 우세한 지역이기도 하다.
다만, 한남대로 동쪽과 서쪽이 서로 판이하게 다르다. 동쪽은 한남더힐과 유엔빌리지 같은 부촌이 자리잡고 있지만, 서쪽은 산등성이를 타고 올라간 달동네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어, 동쪽과 서쪽을 번갈아 가면서 볼 때, 꽤 이질감이 느껴진다. 크게 한남동의 주거지역을 나누자면, 부촌은 대사관로 이북, 한남대로 동쪽에 분포하고 있으며 서민들이 사는 곳은 한남대로 서쪽, 대사관로 이남 지역이다.
남산경관지구로 묶여있기 때문에 한남동 전역에 층고제한이 있다. 한남더힐과 나인원 한남도 층고제한으로 인해 10층 내외로 지어졌고, 한남3구역에 들어설 예정인 디에이치 한남도 층고제한을 적용하여 일부 동은 저층으로 지어진다.
6.1. 부촌
용산구 내에서 잘사는 지역으로 유명한 한강로, 이촌, 한남 중에서도 가장 잘사는 지역이다. 용산구도 경부선 서쪽의 서계, 청파, 효창 등지는 생활권을 공유하는 마포구 동부- 서대문구 남부와 같이 일반 서민 주거지이다. 반면 한남동에는 1950~70년대에 부를 축적한 누보 리쉬[9]와 그 가문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누보 리쉬라고 해도 2010년대의 시점에서는 올드 머니지만. 그래도 초호화 빌라와 타운하우스가 꽤 있는 사업가 등의 신흥 부자들의 유입도 계속 있는 편이다. 부촌인 평창동과 비슷한 분위기다.성북동이 종로구, 중구의 서울 도심 생활권을 공유한다면 이쪽은 중구, 종로구와 강남구 사이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면서 도심 생활권과 강남 생활권[10]을 공유한다. 특히 젊은 부자들, 셀럽들은 이런 이유로 성북동, 평창동 보다 한남/이태원을 훨씬 선호한다.
6.1.1. 지역
동부이촌동과 함께 소위 재벌 회장님 일가가 모여 사는 동네로 알려져 있는데 부촌으로 형성된 한남동 지역은 크게 세 지역으로 나뉜다. 이 점 역시 성북동, 평창동과 차이가 있는 한남동만의 특성이다.먼저 삼성미술관 리움 인근 및 그랜드 하얏트 서울 아래쪽으로 형성된 주택지들이 첫번째로 꼽힌다. 소위 4대 재벌 회장 가운데 이재용 회장, 최태원 회장이 이곳에 거주한다.[11] 이태원역 해밀턴 호텔 뒤편에 운동장만한 대형 주택촌이 이곳이다. 이태원로 27길과 55길에 형성됐다. 이 길에 한남동 북부와 이태원로 북쪽의 이태원1동은 언덕을 사이에 두고 시가지가 자연스럽게 이어져 있어 사실상 한 동네이다.
2016년 8월 말 기준으로 대한민국 주식자산이 1조 원이 넘는 주식 부자는 모두 24명이었는데, 이 가운데 58%인 14명이 동부이촌동과 한남동에 거주한다.[12] 전술한 것처럼 각국의 대사들도 여기에 많이 산다. 이렇게 부촌이 형성된 이유는 일단 교통이 좋은 점과 대사관과 주한미군부대가 가까워서 (당시) 신진 문화를 쉽게 접하며, 외교계 인사들과 사교관계를 맺을 수 있었던 점 등이 있다.
한강 바로 뒤 유엔빌리지와 한남더힐은 한남동 북쪽에 맞먹는 양대 부촌이다. 한강 조망권이 탁월한 전형적 배산임수 지역이라 고가 빌라와 일부 단독주택이 대규모 단지로 형성됐다. 고가 빌라들 사이에서도 격차가 상당한 편인데, 상대적으로 저렴한(?) 라인은 10억 후반~20억대이며 로열라인[13]은 40~70억대 매매가를 호가하며 보통 단독주택을 선호하는 재벌 오너 일가들도 많이 거주한다. 현대자동차그룹 정몽구 명예회장과 네 자녀들이 모두 모여산다. 두산그룹, 한진중공업,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오너 가문. 김준기 DB그룹 회장,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도 이곳에 빌라를 한 세대 소유하고 있고, 정치인들도 많이 살며, 개중에는 샐럽들이 산다.[14]
과거 단국대학교가 이곳에 있었으나 캠퍼스를 용인 죽전으로 옮기고 남은 부지를 금호건설에서 매입하여[15] 지금은 한남더힐이라는 아파트가 지어졌다. 2016년 일반분양이 실시됐는데 사상 최고가인 3.3평방미터당(평당) 8,150만원에 분양이 이루어졌다. LG그룹 구광모 회장,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 등이 거주한다.[16]
조선 왕실 소유였던 제천정 자리에 하이페리온과 힐스테이트가 있다. 특히 한남 하이페리온에는 최순천 일가 및 안재욱이, 한남 힐스테이트에는 동양그룹 현재현 회장의 부인인 이혜경 부회장, 서효림, 가희 등 재벌, 정치인, 샐럽이 다수 거주하는 고가 아파트이다.
2019년에는 한남외인아파트를 재건축한 나인원 한남이 들어섰다.[17]
6.2. 재개발
독서당로 서쪽에 한남뉴타운이 들어선다. 총 5개 구역 중 한남3구역의 절반만이 한남동에 걸쳐있고, 나머지 구역의 실제 주소는 한남동이 아닌 이태원동, 보광동, 주성동이다. 5개 구역 중에서 진행 속도가 가장 빠른 곳은 현대건설에서 짓는 디에이치 한남인데, 근시일에 이 단지가 완공이 되면 한남동은 전역이 고가 주거지로 변모하게 된다.6.3. 공동주택
주택명 | 건설사 | 입주 | 동수 | 세대수 |
나인원 한남 | 롯데건설 | 2019. 11. 13. | 9 | 341 |
남산맨션 | 1972. 04. 15 | 1 | 130 | |
대림아르빌 | 대림공영 | 2005. 05. 18. | 1 | 66 |
동원베네스트 | 동원시스템즈 | 2010. 03. 02 | 1 | 129 |
리버탑 | 신영종합건설 | 2001. 04. 03. | 1 | 119 |
상월대 | 동원건설산업 | 2003. 11. | 2 | 34 |
성아맨션 | 1970. 10. 27. | 1 | 94 | |
이태리하우스 | 대성산업 | 2006. 07. 25. | 1 | 49 |
장미아파트 | 1976. 09. 23. | 1 | 40 | |
태성아파트 | 1975. 07. 31. | 1 | 40 | |
트윈빌 | 신동아건설 | 2008. 12. | 1 | 138 |
한남더힐 |
금호건설 대우건설 |
2011. 01. 07. | 32 | 600 |
한남리첸시아 | 금호산업 | 2004. 04. 09. | 1 | 371 |
한남 시범아파트 | 1970. 10. 30. | 4 | 120 | |
한남신성미소지움시티 | 신성건설 | 2006. 02. 23. | 1 | 35 |
한남아이파크애비뉴 | 현대산업개발 | 2017. 03. 08. | 1 | 270 |
한남파라곤 | 동양건설산업 | 2011. 12. 23. | 1 | 42 |
한남 현대하이페리온 I | 현대건설 | 2002. 12. 27. | 2 | 122 |
한남하이페리온II | 현대건설 | 2004. 04. | 1 | 19 |
한남해피트리 | 신일 | 2016. 09. 29. | 1 | 68 |
한남힐사이드 | 삼성물산 | 2005. 05. 27. | 5 | 49 |
한남힐스테이트 | 현대건설 | 2003. 10. 12. | 6 | 283 |
한성아파트 | 세기건설 | 1974. 08. 08. | 2 | 125 |
현대리버티하우스 | 현대건설 | 2001. 02. 07. | 1 | 80 |
현대안성타워 | 현대산업개발 | 1998. 9. 16. | 1 | 56 |
힐탑트레져아파트 | 주머니건설 | 2003. 12.[18] | 2 | 84 |
DK밸리뷰 한남오피스텔 | 디케이건설 | 2021. 01. | 2 | 84 |
7. 상권
크게 한남동의 상권은 5가지 권역으로 나뉘는데, 한남대로 연선과 독서당로를 따라 옥수동 방향으로 난 상권, 한강진역 앞, 대사관로를 따라 이태원역 방향으로 난 상권, 우사단로이다.한남대로와 독서당로 상권은 명품샵과 카페들이 늘어서 있다. 서쪽의 상권에 비해서는 한적한 편이다. 나인원 한남 지하상가에 '고메이 494'와 블루보틀 한남 카페가 들어와 있다.
나인원 한남 뒷골목으로 올라가다 보면 한강진역 앞으로 제2의 가로수길로 불리기도 하는 꼼데가르송길이 나온다. 이태원 상권이 이곳까지 이어지며, 이곳에는 고급 매장과 카페, 레스토랑들이 제법 들어서 있다.
순천향대학교 부속 서울병원 앞쪽으로 난 상권은 약국과 패스트푸드점이 많다. 과거 단국대학교의 대학가 역할을 했던 곳으로 아직까지도 그 정취가 남아있다. 한남동에서 단국대를 나온 졸업생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개골목'이 이곳이다. 단국대가 있던 시절에는 한남오거리 건너편(현재 리첸시아 뒷쪽) 골목까지도 술집들이 많았지만 단국대가 죽전으로 이사간 후 대부분의 가게가 이 동네를 떠났고 현재는 양식 레스토랑과 소규모 펍들이 주로 있다.
서쪽 끝으로는 주택가 사이로 우사단길과 도깨비시장이 있는데, 위에 언급한 상권들에 밀려 많이 쇠락한 상태이고, 디에이치 한남이 들어서면 사라질 예정이다. 디에이치 한남 내부에는 현대백화점 한남점이 들어서게 된다.
8. 교육
국제학교는 서울용산국제학교와 서울독일학교가 있고, 초등학교는 서울한남초등학교가 있지만,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없다. 가장 가까운 중고등학교는 보광동에 있는 오산중학교와 오산고등학교, 성동구 옥수동에 위치한 옥정중학교가 있다.9. 주요 시설
9.1. 기업
9.2. 문화
9.3. 기관
- 한남동 공관촌
- 대사관 - 한남동 관내에 총 26개국의 대사관이 있다.
- 주한 가나대사관
- 주한 가봉대사관
- 주한 남아프리카공화국대사관
- 주한 라오인민민주공화국대사관
- 주한 라트비아대사관
- 주한 르완다대사관
- 주한 말레이시아대사관
- 주한 몽골대사관
- 주한 미얀마대사관
- 주한 벨기에대사관
- 주한 벨라루스대사관
- 주한 불가리아대사관
- 주한 사우디아라비아대사관
- 주한스페인대사관
- 주한 슬로바키아대사관
- 주한 시에라리온대사관
- 주한 아랍에미리트대사관
- 주한아제르바이잔대사관
- 주한 아프가니스탄대사관
- 주한우즈베키스탄대사관
- 주한우크라이나대사관
- 주한 이집트대사관
- 주한이탈리아대사관
- 주한인도대사관
- 주한타지키스탄대사관
- 주한 태국대사관
- 경찰청 인권센터
- 서울특별시 중부기술교육원
- 서울특별시 서부도로사업소 한남관리소
- 용산구 평생학습관
- 이슬람교 서울중앙성원
- 카바드유대인공동체[19]
9.4. 의료
9.5. 호텔
10. 출신 인물
11. 여담
- 재벌, 정치가, 유명 셀럽들이 많이 사는 곳이고, 동네가 상당히 고급스럽고 세련된 느낌을 준다. 주식으로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는 억만장자 재벌 일가를 비롯해서 이곳에 거주하는 정치가의 2020년 기준 평균 재산은 130억 원, 유명 셀럽의 평균 재산은 110억 원대로 백만장자가 많이 사는 것으로 확인된다.
- 블루보틀 한남 카페가 생겼다.
- 2020년 7월 2일 이 곳에 위치한 상가 뒤편 골목에서 1970년대에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산업용 다이너마이트 폭발물과 공포탄 40여 발이 발견되었다. 다행히, 다이너마이트는 내부가 삭아서 살상력이 없으며, 공포탄 또한 1970년대 군경에서 자주 사용했던 탄환으로 지금은 쓰이지 않는 것이라고. 경찰은 인근 CCTV를 확보해 이 장비들이 버려진 이유를 추적하기로 했다. #
-
이름 때문에
메갈드립의
희생양이 되기도 한다.
한남역,
한남대학교도 같은 이유로
사이좋게 희생양이 되곤 한다. 당연하지만 한남동과 비하 용어 한남과는 한자 뜻부터 전혀 다르다.[21]
- 현재 한남더힐 자리에 단국대학교가 있었으나 수지구로 이전했다. 하지만 단국빌딩, 단국사 등 단국대의 흔적이 남아있고 한때 단국대가 한남더힐을 관사로 가지고 있는 등 한남동과의 인연이 깊어 현재도 단국대와 한남동은 교류하고 있다.
[1]
2024년 5월 주민등록인구
[2]
한남동 685-43
[3]
본래 행정동은 한남1동과 한남2동으로 나뉘어졌으나, 2008년에 하나로 통합되었다.
[4]
월경지다. 본토는
한강 안쪽으로 들어가야 나온다.
[5]
現
이태원동,
용산동 일대
[6]
사실 이 일대에서는 겨울철만 되면 한 번씩 이런 일이 있을 정도로 굉장히 흔한 일이다.
[7]
2018년 7월10일에 철거하려고 했으나 하루 전날 연기되었다가 이후 철거가 백지화 되어 보수공사로 대신하였다.
[8]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이 동네에 위치한 저택에 살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의 부친인
이건희 회장도 2014년 쓰러지기 전까지 한남동에 살았고 정의선 회장의 부친인
정몽구 명예회장은 현재도 한남동 주민이다. 전까지 롯데월드타워 레지던스에 거주하던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도 저택으로 이주했다.
[9]
nouveau riche, 신흥 부유계층 또는
졸부라고 해석된다.
[10]
압구정동,
신사동,
반포동과는 강만 넘으면 되지만,
강남역까지는 대략 6km,
삼성동까지는 10km 정도로 아주 가깝진 않다. 단, 압구정동의 경우 직통으로 가는 도로는 없어서
한남대교를 건넌 후 샛길로 빠져나가던지, 옆 동네에 있는
성동구
옥수동을 경유해서
동호대교를 건너야 한다. 어차피 가까운 건 매한가지니 상관없다.
[11]
구광모 회장은 아파트인
한남더힐 100평형에,
정의선
현대자동차 회장은 한남동 유엔빌리지 내 단독주택에 거주하고 있다. 4대 그룹 총수가 모두 한남동에 거주하고 있는 셈.
[12]
다만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장충동에 주소를 두고 있으며 임성기
한미약품 회장은
송파구
방이동 본사와 가까운
신천동 자택에 주소를 두고 있고,
최태원
SK그룹회장은 2017년 한남동 주택을 매입해 이사왔다. 4대 재벌 회장이 모두 한남동으로 집결했다.
[13]
코번하우스, 헤렌하우스, 제이하우스, 클라인하우스, 한남리버힐 기타 등...
[14]
신민아,
이헌재,
소지섭,
이종석,
신영균,
엄정화,
견미리,
이혜영[22],
싸이[23],
T.O.P(
빅뱅),
강다니엘[24],
윤지성[25],
이창하,
박나래,
제니,
키 등 재벌가, 정치인, 유명 셀럽들이 주로 산다.
통일교 관련 종교수련시설도 있으나 실제로는
통일교의
문선명 일가도 여기에 주거지를 두고 있다고 알려지기도 했다. 이곳과 리첸시아 사이의
독서당로 골목에 여러 맛집,
카페가 있다. 또한 이 일대에는
독일인 들이 많이 거주하며, 그들의 자녀를 위한 서울독일학교도 있다.
[15]
당시 매각 대금이 무려 2천억 원. 한남더힐의 좁은 면적을 생각하면 한남동의 땅 가치는 정말 무시무시하다.
[16]
기타
빈지노,
안성기,
이승철,
한효주,
추자현,
방탄소년단의 샐럽들이 거주한다.
[17]
나인원 한남 역시
배용준&
박수진 부부,
도경완&
장윤정 부부,
주지훈,
G-DRAGON,
이종석,
RM,
지민 등 샐럽들이 거주하는 고가아파트다.
[18]
1968년 완공된 힐탑아파트를 리모델링하여 2003년에 재입주한 것이다.
[19]
다만 주한 랍비인 오셔르 리츠만씨가 한국 내
유대인 커뮤니티/이용 편의를 위해 사택을 개조한거라 사원 같은 분위기를 연상하고 갔다간 실망할 수도 있다.
[20]
2014년 5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심근경색으로 쓰러졌을 때 긴급 후송돼서
스텐트 시술을 받은 병원이 이곳이었다.
삼성그룹 소유의
서울시내 대형 병원이 아닌 이 병원으로 실려온 것은 순천향대 서울병원이 이 회장의 한남동 자택에서 가장 가까운 대형 병원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그만큼 당시 이 회장의 상태가 매우 위중했다는 증거로 볼 수 있는데 심혈관 계통 질환은 빠른 진단과 치료만이 생명을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순천향대병원에서 시술을 받은 이 회장은
삼성서울병원으로 옮겨졌고 그 곳에서 2020년까지 투병 생활을 이어가다가 세상을 떠났다.
[21]
지명 한남동의 한남은 한자표기가 漢南이고 그 단어의 한남은 한자표기는 韓男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