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르타뉴 공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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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FFFF><colcolor=#000000> 브르타뉴 공작 코난 1세 Conan 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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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코난 1세(Conan I) | |
별명 | 르 토르트(le Tort, 비뚤어진 인간) | |
출생 | 미상 | |
브르타뉴 공국 렌 | ||
사망 | 992년 6월 27일 (향년 불명) | |
브르타뉴 공국 페이 드라 루아르 지역 콩케뢰유 | ||
재위 | 렌 백작 | |
979년 ~ 992년 | ||
브르타뉴 공국의 공작 | ||
990년 ~ 992년 | ||
아버지 | 주헬 베렝거 | |
배우자 | 에르망가르드 당주 | |
자녀 | 조프루아 1세, 주디트, 주디카엘( 사생아), 카투왈론(사생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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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브르타뉴 공국의 공작.2. 행적
렌 백작 주헬 베렝거의 아들로, 965년에서 972년 사이에 교황 요한 13세가 브르타뉴의 유력 인사들에게 서신을 보내 투르 대주교에게 복종하라고 권고했을 때 처음으로 언급되었다. 그는 알려지지 않은 시기에 앙주 백작 조프루아 1세의 딸인 에르망가르드와 결혼했다. 앙주 백작은 카롤루스 1세 치세 때 낭트 백작을 겸임하기도 했기에, 그는 이 결혼을 토대로 렌에 대한 주권을 확보하려 했다. 이후 반(Vannes)의 주교인 오르스칸드와 동맹을 맺음으로써 반의 지원도 확보했다. 그러나 나중에 앙주 백국과 사이가 틀어졌다.981년, 앙주 백작 조프루아 1세의 지원을 받은 호엘 1세의 낭트군과 블루아 가문의 지원을 받은 코난 1세의 렌 군대가 콩케뢰유에서 맞붙었다. 전투 결과는 불분명하다, 다만 이후에도 전쟁이 쭉 이어진 걸로 볼 때, 어느 쪽도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지 못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코난 1세는 갈루론(Galuron)이라는 인물을 시켜 낭트 백작이자 브르타뉴 공작인 호엘 1세를 암살하게 했다. 당시 낭트 주교로 선임된 뒤 투르로 가서 대주교로부터 성직을 받고자 여행하던 게레흐는 이 소식을 접하자 곧바로 낭트 주교직을 포기하고 낭트로 귀환한 뒤 브르타뉴 공작에 선임되었다. 이후 코난 1세는 게레흐와 대적했다.
988년, 게레흐가 사망했다. 낭트 연대기에 따르면, 렌 백작 코난 1세는 그가 앙주 백작 조프루아 1세를 주권자로 받들게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장차 앙주 백국과 연합해 자기를 대적할 것을 두려워해 게레흐의 주치의이자 르동 수도원장이기도 한 헤로이쿠스를 설득해 그를 독살하도록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기록의 진위는 불분명하다. 이후 게레흐의 어린 아들 알란이 낭트 백작을 맡았지만 2년만인 990년에 병사했다. 코난 1세는 즉시 낭트로 진군해서 무혈 입성한 뒤, 브르타뉴 공작에 취임했다. 그 해 7월 28일, 돌에서 몽생미셸 수도원에 기부했으며, 돌 대주교 멘 2세와 브르타뉴 주교 7명이 참석한 가운데 "브르타뉴의 공"( ritannorum Princeps) 칭호를 취했다. 11세기 프랑크 수도자 라울 글레이버(Raoul Glaber, 985 ~ 1047)는 자신의 연대기에 그가 왕이 된 것처럼 왕관을 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고 기술했다.
그러나 새로운 앙주 백작 풀크 3세는 코난 1세의 권세가 강해져서 브르타뉴에 대한 자신의 이권이 잠식당하는 걸 우려해, 낭트 백작들을 연이어 살해한 그를 타도하여 정의를 실현하겠다고 선언했다. 992년 군대를 일으켜 브르타뉴로 진군한 풀크 3세는 그 해 6월 27일 콩퀴어뤼일 전투에서 코난 1세를 사살했다. 코난 1세의 유해는 몽생미셸 수도원의 생 마르탱 예배당에 안장되었고, 아들 조프루아 1세가 브르타뉴 공작을 칭했다.
3. 가족
- 에르망가르드 당주(956 ~ 1024): 앙주 백작 조프루아 1세의 딸.
- 사생아
- 주디카엘(? ~ 1037): 992년부터 1008년까지 반의 주교 역임.
- 카투왈론(? ~ ?): 1019년부터 1040년까지 르동의 생소뵈르 수도원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