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 롤로브리지다의 주요 수상 및 헌액 이력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역대 다비드 디 도나텔로상 시상식 | ||||
여우주연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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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 1956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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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 1957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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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 롤로브리지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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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 196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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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 196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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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 1964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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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자 없음 | → |
지나 롤로브리지다 / 실바나 망가노 (Venere imperiale / 베로나의 재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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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아 로렌 (사랑의 변주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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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회 ( 1968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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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회 ( 1969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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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회 ( 197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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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 (Il giorno della civett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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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 롤로브리지다 /
모니카 비티 (애인 관계 / 권총을 가진 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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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아 로렌 ( 해바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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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4a1a1><colcolor=#fff,#000> 이름 |
지나 롤로브리지다 GINA LOLLOBRIGID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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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파일: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영화 심볼.jpg 영화 | ||
입성날짜 | 2018년 2월 1일 | ||
위치 | 6361 Hollywood Blvd.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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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3153b><colcolor=#fff> 지나 롤로브리지다 Gina Lollobrigid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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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루이자 롤로브리지다 Luigia Lollobrigida |
출생 | 1927년 7월 4일 |
이탈리아 왕국 라치오주 수비아코시 | |
사망 | 2023년 1월 16일 (향년 95세) |
이탈리아 로마 | |
국적 |
[[이탈리아| ]][[틀:국기| ]][[틀:국기| ]] |
직업 | 배우, 저널리스트 |
신장 | 165cm |
활동기간 | 1943년 ~ 1997년 |
가족 |
배우자 밀코 스코픽(1949 결혼~1971 이혼) 아들 안드레아 스코픽(1957년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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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탈리아의 배우로, 소피아 로렌과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 이전에 이탈리아를 대표하던 섹스심벌이었다. 1970년대 저널리스트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노틀담의 꼽추의 에스메랄다, 솔로몬과 시바의 여왕에서 시바의 여왕 역으로 국내에서도 유명했으며, 이름을 외우기 어렵다는 점, 그리고 워낙 허리가 가늘다는 것 때문에 '지나 허리부러지다'라는 명칭으로 불리기도 했다고 한다.또한 각선미로도 유명해 "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눈에 데보라 카의 코, 마릴린 먼로의 입술에 제인 맨스필드의 젖가슴, 거기에 지나 롤로브리지다의 각선미를 갖추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이상적인 여성상"이라는 말이 한국 영화팬들 사이에서 유행했다고 한다. 출처
2. 주요 출연작
- 1953년 비트 더 데블 (Beat the Devil)
- 1956년 노틀담의 꼽추 (Notre-Dame de Paris)
- 1959년 솔로몬과 시바의 여왕 (Solomon and Sheba)
- 1959년 전쟁과 애욕 (Never So Few)
- 1961년 9월이 오면 (Come September)
- 1961년 고 네이키드 인 더 월드 (Go Naked in the World)
- 1964년 갈대 (Woman of Straw)
- 1968년 애인 관계 (Buona Sera, Mrs. Campbell)
3. 현재
70년대 들어 배우로서 주춤하자 사진기자 겸 기자 및 건축가로도 활동하기 시작했다. 1970년대에는 피델 카스트로와의 독점 인터뷰 특종으로 화제를 몰기도 했다. 어릴 적부터 할 말 다하고 당차게 행동하던 타입이라고 한다. 사진기자 및 온갖 일을 하면서도 이런 면을 더더욱 보이고 있는데 다른 유명한 일도 있다.1996년 미스 이탈리아 심사위원장이 되어 사상 처음 흑인인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 이민자인 데니 멘데스(Denny Mendez)를 1위로 선정하기도 했다. 그러자 이 당시 이탈리아에서 흑인, 게다가 이탈리아인 피가 전혀 없는 이민자라고 온갖 비난을 받았다. 이 미스 이탈리아 방송을 중계하고 이 대회를 후원하는 이탈리아 국영방송 RAI 방송차량 바퀴를 칼질하는 테러까지 벌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녀는 인터뷰로 당당하게 말하길,
흑인이고 백인이고 참가자에서 가장 예쁘기에 선정한 것인데 웬 난리법석이냐? 게다가, 그녀는 이민자고 뭐고 이탈리아 국적 시민권을 땄으니 이탈리아인이니까 참가 자격도 주어진 건데 뭔 백인만 고른라는 건지 더더욱 모르겠다! 그렇게 불만이라면 앞으로 미스 백인 이탈리아라고 따로 만들어 거기서만 백인만 골라라!
2023년 1월 16일 사망하였다.
4. 여담
- 난리법석 당시 멘데스가 태어나고 자란 도미니카 공화국 측에서는 이탈리아는 참 이상하다고 반발했는데, 바로 미스 도미니카같은 경우 인구 20%도 안되는 백인계가 다수를 차지할 정도로 도미니카 공화국 여론 반응은 같은 나라 사람이라고 흑인이니 백인이니 따지지 않으며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 난리로 왕년 배우로나 거론되던 롤로브리지다를 다시 세상에 알리게 한 셈이다.
- 조카가 조르자 멜로니 내각에서 농업·식량주권 장관으로 활동 중인 프란체스코 롤로브리지다이다. 조르자 멜로니 총리의 형부이기도 한다.
- 애연가 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