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영화 〈 전,란〉의 줄거리를 정리한 문서.전( 戰), 쟁( 爭), 반( 反), 란( 亂) 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장이 끝날 때마다 거대한 글자가 나타난다.
2. 줄거리
2.1. 전(戰)
|
모반죄로 고발당한 정여립이 스스로 목에 칼을 꽂아 자살을 하며 정여립의 난이 진압된다.[1] 그는 죽어가는 목소리로 "임금이나 노비나 대동하다"라는 유언을 남기는데, 이후 궁에서 정여립의 아들 정옥남을 문초하던 선조( 차승원 扮)는 이를 똑같이 읊조리며 "네 아비가 쓴 글이 맞느냐? 말하라!" 며 다그친다. 그리고 옆에 서 있던 나졸에게 다짜고짜 자신의 옥대를 풀고 곤룡포를 벗으며 "저 왕좌에 누구나 앉을 수 있다지 않는가?" 라며 가서 앉아보라 다그친다. 이어진 대낮에 효수된 정옥남과 그의 무리들의 머리가 광화문 앞 육조거리에 내걸린다.
거리에서는 사당패의 흥겨운 풍물놀이가 펼쳐지는데, 그들의 옆으로 천영( 강동원 扮)이 포박을 당한 채 추노꾼 무리에게 끌려간다. 무리의 대장인 광이는 정옥남의 머리를 보며 주제 모르고 까불면 저렇게 된다며 조롱을 한다. 그러다 다시 도망치려는 천영과 다시 제압하는 추노꾼들이 서로 실랑이를 벌이고 때 마침 대사헌 이덕형이 행차하며 소란의 연유를 묻는데, 광이[2]는 이 자가 두 번이나 달아난 도노(逃奴)이며 이번엔 주인님의 어사검(御賜劍)[3]까지 훔쳤노라 고한다. 이에 이덕형이 그 검을 뽑아보는데, '무과 장원 이종려' 라고 쓰여있다.
[과거][4] 12년 전, 천영은 본디 양인이었지만 그의 어머니가 빚을 갚지 못해 천민으로 강등 당했고 당시 어머니의 뱃 속에 있었다는 이유로 일천즉천 법에 따라 소년 시절에 뒤늦게 천민이 된 억울한 사연이 있었다.[5] 그래서 졸지에 아버지와 생이별을 한 뒤, 대대로 무과에 급제했다는 종2품 병조참판 이극조 대감 댁의 노비로 끌려가게 된다.[6]
노비로서 천영의 역할은 이대감의 아들 이종려의 몸종으로, 종려가 무예 스승과 검술 대련 중 실수를 할 때마다 이대감에게 '종려가 맞을 회초리'를 대신 맞는 것. 게다가 이대감의 매질은 매우 가혹해서 본디 이 역할을 하던 노비 부부의 아들 막동이 매를 맞다 맞다 거품을 물고 쓰러지기까지 했다.[7] 그 역할을 대신하며 하루 종일 이유도 없이 모진 매질을 받고 피범벅이 된 채 잠이 들었던 천영은 그날 밤 막동의 부모와 다른 노비들이 서로 부둥켜안고 오열하면서 죽은 막동의 시신을 거적에 수습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8]
그때 종려가 천영을 찾아온다. 먹을 것을 들고 와 천영에게 건네준 종려는 네 이름의 한자를 '따를 천'에 '그림자 영', '나를 그림자처럼 따른다' 고 하는 게 어떠냐는
|
[현재] (성인) 천영은 달아난지 몇년 만에 다시 이대감 댁으로 끌려오고, 대감 앞에서 되려 비웃으면서 "소인이 그리 좋소? 떠나면 자꾸 잡아 오고." 라며 대들기까지 한다. 이때 이종려( 박정민 扮)가 집으로 급하게 들어와 아버지 앞에 무릎 꿇려 있는 천영을 보고는 안타까워하고[10] 그의 입을 막으며 제발 닥치고 있으라 말하지만, 천영은 오히려 "번번히 낙방하던 우리 도련님이 어떻게 장원 급제를 하셨을까요?" 라며 도발을 한다. 크게 노한 이대감이 칼을 뽑아들어 겨누자 천영은 그 칼을 입으로 덥썩 물고서는 차라리 죽이라 한다. 이에 종려는 보는 눈이 많다며 아버지를 말리고 이대감은 마지못해 광에 가두라 명한다.[11] 하지만 이미 악에 받쳐 이성을 잃은 천영은 선을 크게 넘어 "그냥 죽여! 네 식솔들 모조리 내 손에 죽게 만들기 싫으면! 네 아비, 네 어미! 네 마누라! 네 새끼! 내가 너희를 산 채로 불구덩이에 쳐넣어 태워 죽이리!" 라며 길길이 날뛰고[12] 이러한 능욕까지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종려는 천영의 왼손 손등을 어사검으로 찍어버린다.[13]
[과거] 타고난 검술 재능은 없었던 어린 종려는 무예 스승과 대련 중 실수를 연발하기 일쑤였고, 이를 지켜보던 천영은 모진 회초리를 맞아가는 와중에도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 무예 사범의 움직임을 모두 파악해낸다. (천영의 천부적 재능을 알 수 있는 부분.) 그리고 밤에 종려의 방으로 숨어 들어가 깨운 뒤 자신이 회초리를 맞지 않기 위해 특훈을 시작한다.[14] 어느 날 밤, 이 둘이 검술 훈련을 하는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된 이대감은 깜짝 놀라고, 이후 나날이 실력이 늘어가는 종려를 보며 흡족해한다. 그리고 어느 날, 한창 '자신을 때릴' 회초리를 깎고 있던 천영은 종려의 검술 대련 및 지도를 자신에게 맡기기로 했다는 소식을 듣자 "그럼 이제 회초리 안맞아도 되는거야?" 라더니, 울먹이며 회초리들을 부숴뜨리고 종려도 기쁜 마음으로 함께 부순다. 그렇게 두 소년의 우정은 두터워진다.
|
성인이 된 두 사람.[15] 종려는 매사 독한 구석 없이 느긋한 성품이 있었고[16] 무엇보다 번번이 무과 시험에서 낙방을 하며 아버지 이대감의 불만이 높아가고 있었다. 이에 천영은 이대감에게 '자신이 종려를 대신해 몰래 대리시험을 칠터이니 무과에 급제한다면 면천(免賤) 해달라'는 제안을 하게 되고, 결국 장원으로 무과에 급제하여 왕에게 이종려의 이름으로 어사검(御賜劍)과 청 천익을 하사받는다. 이대감 댁에서는 이를 축하하는 잔치가 벌어지고[17] 종려는 천영의 방으로 가 본디 천영의 것인 청천익을 입혀주더니 "청천익의 주인은 역시 너로구나!" 라며 감탄한 뒤, 약속대로 아버지께 노비 문기[18]를 받아 오겠다며 방을 나간다.
[현재] 청지기 김서방은 정신을 잃고 쓰러진 천영을 광에 가두고 발에 족쇄를 채운다. 이어 대감님이 물 한 모금 주지 말라셨다며 힘 주어 말하고, 다른 노비들은 천영을 딱해 하다가 어쩔 수 없이 나간다.[19]
한편 같은 시간 남해 앞 바다, 어느 어부 부자는 해무가 자욱한 가운데 갈매기가 날갯짓도 없이 허공에 떠 있는 모습을 괴이하게 여기던 중, 그 갈매기는 사실 군함 뱃머리에 앉아있었단 걸 깨닫는다. 수십 대 군함이 몰려오며 임진왜란이 발발한 것이다.
화면 오른쪽에 거대하게 전(戰)이 떠오른다.[20]
2.2. 쟁(爭)
종려는 늦은 밤 다급히 집으로 돌아와, 자신이 선조의 피난길 행렬에 호위를 맡게 되었다 전하면서 어머니에게는 아버지가 오시는 대로 원산 숙부 댁으로 바로 출발하라 권하고, 아내에겐 갓난 아들 수윤의 보호를 부탁한다. 그리고 방을 나서려다가 어사검이 없어진 것을 발견하지만, 옆에 있던 김서방은 자신이 찾아서 빗자리[21] 편에 보내드릴 테니 일단 출발하라 권한다. 이어 종려는 광으로 가 정신을 잃고 쓰러진 천영을 안타깝게 바라보더니 (깨어나면 도망갈 수 있도록) 그의 족쇄를 풀어주고 집을 나선다.이후 피난 준비가 한창이던 노비들 중 한명에게 김서방이 다가가 다짜고짜 패며 어사검을 내놓으라 윽박지른다. 그때 막동의 아버지가 어사검을 들고 나타나고, 농기구들을 바닥에 내던지며 다른 노비들에게 "언제까지 개돼지 취급받을 거야?"라며 부추긴다.[22] 이에 종려의 모친이 지금 뭣들 하는 게냐며 윽박지르지만 눈이 돌아간 노비들은 앞다퉈 농기구를 하나씩 쥐어들고, 막동의 아비가 김서방의 가슴에 어사검을 박아 넣어 살해하면서 노비들의 반란이 시작된다. 그들은 퇴청하고 돌아온 종려의 부친 이대감을 낫과 호미로 찔러 살해하고, 종려의 모친은 손발을 묶은 뒤 방 안에서 불에 태워 살해한다.[23][24][25]
집안의 재물들을 나눠가진 노비들이 각자도생[26]하여 달아나고 저택에 불길이 치솟자, 광에 갇힌 천영도 매운 연기에 정신을 차리고 깨어난다. 바깥으로 나온 천영은 집안 광경을 보고 놀라다가 김서방의 시체에 꽂힌 어사검을 뽑아들고, 그 와중에도 도련님이 걱정되어 불타오르는 종려의 방에 들어갔다가 청천익만 급히 꺼내 챙기는데, 그때 종려의 처가 수윤을 안은 채 넋을 잃고 불타는 저택 앞에 서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하지만, 천영을 본 종려의 처는 "네놈 저주대로 되었구나!" 라며 소리를 치고[27] 도와주려는 천영을 뿌리치며 "이 짐승 놈아! 그 천한 손으로 감히 어디!" 라며 은장도로 천영을 찌른 후, 수윤을 안은 채 뒷걸음을 쳐 오히려 불타고 있는 안채로 들어가 버린다. 천영이 이들을 구하려고 뛰어들려던 찰나, 서까래가 무너지면서 종려의 처와 아들은 불구덩이 속으로 묻혀버린다. 잠시 후, 추노꾼 광이가 뒤늦게 도착해 불타버린 집과 이대감의 시신을 목격하는데, 천영이 말을 타고 도망치려던 중 그와 마주치고 잠시 노려보더니 떠나버린다.
한편, 피난길 중 말 위에서 꾸벅꾸벅 졸던 선조[28]는 갑자기 쏟아지는 빗줄기에 잠이 깨고, 앞에선 빗길에 가마가 넘어지고 부숴져 중전이 진흙탕에 나뒹구는 등 상황이 말이 아니다. 그러다 모두가 어딘가로 시선을 옮기며 경악하는데, 한양이 불타는 모습이었다. 선조는 왜구가 벌써 궁에 도착했냐 묻는데 이덕형이 백성과 노비들이 불을 지른 것이라 고하자, "내 백성이? 아니... 왜?" 라고 이해가 안된다는 듯 당혹스러워 한다.
|
도성에서는 백성과 천민들이 임금이 한양을 버리고 도망친 것에 분개하며 경복궁과 광화문을 불태우고 있었다. 그 시각 천영도 황급히 경복궁까지 달려왔지만[29] 무너지는 궁을 보며 허탈해할 뿐이다. 그때 청천익을 입고 어사검을 든 천영을 본 상문( 전배수 扮)이 그를 아직 도성에 남은 군관으로 오해한다.
다음날 낮, 군기시(무기 제조 담당 관청) 앞에서 천영과 상문은 나라를 위해 공을 세우면 면천이 될 수도 있다며 무기를 다룰 줄 아는 사람들을 모집하는데, 광대놀이를 하던 청년[30]과 백정[31]까지도 참여하며 의병의 기초를 세운다.
한편 왜군은 한성부로 들어와 조선 백성들을 무참히 살육하며 진격하고 있었다. 선봉장 깃카와 겐신[32]( 정성일 扮) 앞에 끌려온 한 무녀( 송유현 扮)는 "네놈은 네 손에 든 칼로 목이 꿰뚫려 죽으리라"라고 저주를 퍼붓는데, 겐신은 무심하게 "기억해 두지. 아, 이렇게?" 라며 그녀의 목을 검으로 뚫어버린다.
피난 도중 나루터에서 잠시 멈춘 선조는 배가 고프다며 투정을 부린다. 신하들은 수라상을 준비해 오지만, 음식 수급이 힘들던 탓에 보잘것없는 생선 한 마리가 반찬의 전부라 선조는 못마땅해한다. 그 순간, 분노한 백성들이 몰려와 돌을 던진다. 임금의 식사를 준비한답시고 자신들이 제사를 위해 아껴둔 마지막 식량까지 털어가자 이성의 끈이 끊어진 것. 호위하던 종려는 칼을 뽑아들긴 하지만 우선은 소극적으로 제지한다.[33]
그때 광이가 종려를 찾아와 집안 노비들이 폭동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전하고, 종려는 "내 노비들이 왜?" 라며 당황한다.[34] 그런데 이어서 아버지, 어머니, 처와 어린 아들까지 모든 식솔이 죽었으며 현장에서 청천익을 입고 어사검을 든 채 달아나는 천영을 보았다는 말을 듣자, 천영이 제 입으로 한 말을 그대로 행했다고 오해하며 엄청난 충격을 받은 종려는 극도의 분노에 휩싸인다.[35] 그리고 달려드는 백성들을 무참히 베어내기 시작하고, 피칠갑을 한 채 광이에게 천영을 잡아올 것을 명령한다.[36]
같은 시각, 의병을 조직한 천영은 왜군을 상대한다. 막내의 돌팔매를 통한 유인을 시작으로 방패 뒤에 숨어서 화살 공격을 통해 피해를 입히지만, 흥분한 의병들이 진형을 해체하고 달려들다가 왜군 정예병의 조총 2교대 사격에 당하고 만다. 천영은 총에 맞을 뻔한 막내를 구하고 왜군의 공격 패턴을 파악한 뒤, 옆으로 돌아가 침투하며 왜군 진형의 허리를 끊어버린다. 뒤에서 이를 관전하던 겐신은 한 명의 검술로 진형이 와해당하는 것을 보고, 차례로 부장들을 내보내지만 천영은 그들도 간단히 처리한다.
이어 천영은 겐신에게 다가가 부장의 잘린 머리를 던지며 도발하고, 둘은 결투를 시작한다.[37] 겐신은 검을 맞대는 과정에서 어사검에 각인된 이종려라는 이름을 눈여겨본다.[38] 둘은 호각으로 맞붙으며 천영은 갈비뼈 쪽에, 겐신은 왼쪽 뺨에 각각 상처를 입고, 겐신은 상대의 실력을 호평하며 와키자시를 뽑아 제대로 상대하기 시작한다. 그러자 천영은 서서히 밀리다가 검을 놓쳐버리고 본능적으로 검을 잡기 위해 낭떠러지 쪽으로 몸을 던지는데, 공중에서 검을 다시 잡아 겐신의 투구 뿔 왼쪽을 잘라낸 뒤 절벽 아래 물속으로 빠진다.
같은 시간, 종려는 선조가 올라탄 나룻배에 몰려드는 백성들을 무참히 베어버린다.[39] 어렵사리 나룻배를 출발시킨 선조는 적이 뗏목을 타고 오거나 땔감으로 쓸 수도 있으니 강을 건너면 나루터를 모두 해체하고 주변 민가까지 불태워 없애라 지시한다. 백성의 안위를 생각한 이덕형이 극구 만류하나 선조는 뜻이 굳건하다. 그리고 분노와 착잡함이 모두 서린 종려의 황망한 얼굴.
화면 왼쪽에 거대하게 쟁(爭)이 떠오른다.
2.3. 반(反)
7년 후, 왜란이 끝나고[40] 종려는 폐허가 된 옛 집 터[41]로 돌아온다. 광이가 도망쳤던 노비들의 시체 두 구를 가져 오는데,[42][43] 종려는 가장 찾고 싶은 천영의 소식이 없어 무덤덤하게 반응한다.천영, 상문, 막내(돌팔매 청년), 백정은 그동안 한성부에서 순천까지 내려와 김자령 장군[44]( 진선규 扮)의 의병대에 합류해 활동해 왔으며, 전란이 끝나고 하나둘씩 집으로 돌아가는 의병들을 동료인 범동 누님( 김신록 扮)과 함께 흐뭇하게 바라본다. 반면 천영, 범동, 상문[45], 구서방, 백정, 막내(돌팔매 청년) 등은 김자령 장군 휘하에 남는데, 전공(戰功)을 인정받고 싶지만 '조정의 승인을 못받았다', '이겼다는 증좌가 없다' 등등의 이유로 인정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
선조는 폐허가 된 경복궁 터를 거닐면서 궁궐을 오히려 크게 증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어 세자 혼에게도 의견을 물어보는데, 궁궐 재건이 그토록 시급한건지 이해가 안된다는 대답이 돌아오자[46] 도면에다가 궁(宮) 자를 쓰면서 '궁궐은 곧 왕실의 위엄을 의미한다'고 일갈한다.
이후, 임시거처에서 연회를 연 선조와 까마귀 고기로 잔치를 벌이는 김자령 의병단의 모습이 대비된다. 자령이 젓가락으로 다리 고기를 들고 머뭇거리자 한 의병은 아직도 양반 티를 못 벗었다고 놀리고, 자령은 손으로 잡아 뜯어 먹으며 유쾌하게 응수한다. 의병들은 면천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 한탄하고 자령은 다시 한 번 조정에 말해보겠다고 하지만, 범동은 차라리 우리들끼리 마을을 만들어 같이 평화롭게 사는게 어떠냐는 주장을 펼친다.[47]
한편 연회에서 선조는 종려에게 가족을 죽였다는 몸종(천영)의 일에 대해 묻는다. 몸종과 격의없이 지냈다는 종려의 말에 선조는 그게 상위 신분의 고충이 아니겠냐며 다독이고[48] 종려는 천부당하다며 전하야말로 전란 중에 가장 힘든 일을 겪었으니 궁을 재건하고 위엄을 찾으시라며 임금의 입맛에 맞는 말만 한다. 이를 듣고 있던 이덕형이 참다못해 '7년 전란으로 나라가 황폐하고 백성들은 굶어죽어가는 상황에 궁궐 공역은 무리이며, 심지어 왜군에게 코를 베인 백성도 많다' 고 충언을 올리나, 선조는 '코 베는 건 풍신수길이 시킨 건데 왜 나한테 뭐라 하나? 공역을 코로 하나?'
[과거] 천영과 종려는 늘 그렇듯 밤에 검술 대련을 하고 있는데, 이 광경을 본 종려의 처는 못마땅해 하는 티를 낸다. 이어 아들 수윤과 함께 강아지를 데리고 놀아주던 종려가 시간이 되어 일어서자, 종려의 처는 어째서 천한 종과 함께 어울리냐고 불만을 토한다. 그러자 종려는 "개와는 친구가 되어도 종과는 친구가 될 수 없소?"고 반문하지만[49] "개는 기르는 것이고 종은 부리는 것입니다." 라는 처의 강경한 반응에 떨떠름해한다.[50]
[현재] 종려는 처가 마지막으로 남긴 은장도를 바라보며 분노와 배신감을 곱씹는다.
한편, 의병단은 조선인처럼 차려입은 채 위장하고 다니던 겐신의 왜군 잔당을 발견하고 공격을 준비한다.[51] 겐신이 이끄는 왜군 잔당은 표시를 해둔 나무를 쫓아서 숨겨둔 무언가를 찾는데, 그때 의병들이 습격한다. 범동의 공격으로 전투는 시작되고, 왜군들은 도망치다가 반대쪽에서 나타난 천영을 보고 청의검신이라 부르며 두려워한다.[52]
|
겐신과 천영은 7년만에 재회해 다시 검을 겨룬다.[53] 마상 검술로 치열하게 싸우다 천영이 겐신의 말의 고삐를 잘라내고, 둘은 말에서 내려 싸움을 이어간다. 천영은 어사검을 놓치는 바람에 순간 위험에 처하나, 겐신이 찬 와키자시를 뺏은 뒤 음나무 가지를 꺾어드는 기지를 발휘해 싸운다. 그가 짧은 칼을 사용하는 모습에서 겐신은 '중조류' 라는 검술임을 파악한다.[54] 하지만 다른 의병들이 나타나더니 '왜군들을 생포해서 임금에게 데려가 거래를 할 거다'라며 그물을 던져 겐신을 포박해버리자 겐신은 '이러고도 무사라고 할 수 있느냐!'라고 분해하고, 천영도 '내가 이길 수 있었는데!'라는 식으로 툴툴댄 채 둘의 대결은 결말을 맺지 못하고 중지된다. 이후 의병들은 겐신이 무자비하게 조선인들의 코를 베고 다닌 '비귀'라는 사실을 알고서 경계하고, 동시에 그들 무리가 챙겨다니던 막대한 보물을 확인한다. 의병들은 이걸로 우리들끼리 마을을 지어 잘 살 수도 있겠다는 말을 하지만, 김자령은 이를 제지하며 보물까지도 조정에 진상하겠다는 방침을 정한다.
천영이 왜군 포로들에게 물을 나눠주던 중[55] 겐신은 앞선 대결에서 중조류를 쓰던 것에 대해 묻고, 천영은 예전에 남원에서 만난 토끼 모양 투구의 왜군 장수가 쓰는 검술이 특이해서 봐뒀다고 말한다.[56] (한번만 본 검술을 자신의 것으로 흡수할만큼 천영의 재능이 뛰어남을 보여준다.) 겐신은 재대결을 요청하지만 묵살당하고, 죽여달라는 말도 하지만 써먹을 곳이 많다면서 예쁘게 잘 살아있으라고 무시를 당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너의 왼쪽 손에 둘러진 붉은 천과 그 속에 무엇을 감추고 있냐고 묻자, 천영은 의미심장하게 과거를 떠올린다.
|
[과거] 천영이 대신 무과 시험을 보러 가던 날, 종려는 천영의 왼손 손등에 새겨진 도노(逃奴) 표시를 가려주려고 붉은 천을 직접 둘러준다. 그러자 천영은 칼로 종려의 왼손 손등의 대동한 위치에 상처를 낸 뒤 똑같은 붉은 천을 둘러주며 '이것이 무과 급제자 이종려의 상징이 될 것' 이라 장담한다.
이후 무과에 급제하고 돌아온 뒤, 종려는 약속대로 아버지 이대감에게 천영의 노비 문기를 받으러 가는데, 이대감은 천영을 면천시키려는 마음이 없었다. 이에 종려가 '천한 종놈도 약속을 지켰는데 어찌 사대부가 약속을 져버리려 하느냐'고 따지고 들자, 이대감은 아들의 뺨을 때리며 '놈이 어디 가서 비밀을 누설하기라도 한다면 우린 대역죄인이 된다' 는 논리를 편다. 다시 종려가 천영은 이미 떠날 채비도 마쳤다고 하자, 이대감은 자신도 광이를 보냈다고 답한다. 종려가 서둘러 천영을 찾아가보니 이미 사라진 뒤였고, 먼저 와 허탕을 친 광이가 '어르신이 놈을 잡되, 데려올 필요는 없다(죽이라)는 명이 있었다' 고 말하자, 종려는 검을 뽑아들며 그랬다간 너의 팔을 잘라버리겠다고 경고한다. 하지만 광이는 가소롭다는 듯이 검을 손으로 치우며 그럼 죽이지는 않겠다고 답한다.[57]
광이 일당이 떠난 뒤, 종려는 담 옆에 숨어있던 천영을 발견한다. 속았다고 착각한 천영이 화를 내며 그를 몰아세우는데, 종려는 그저 "살아있어서 다행이다," 라는 말만 반복하다가 직접 천영의 손에 어사검을 쥐어주며 "멀리 도망가라. 함경도에 출몰하는 오랑캐나 탐라에 출몰하는 왜구를 잡으면 면천(免賤) 받을 지도 모른다." 고 말한다. 천영은 격해진 감정에 "내가! 아직 네 동무냐?" 고 묻고, 종려는 울먹이며 끄덕인다. 그리고 천영은 종려의 어깨를 발로 딛고서 담을 넘어 탈출한다.
[현재] 종려가 자신의 손등의 상처를 바라보다 고개를 든다.
한편 선조는 김자령 의병대에 대한 칭찬과 그 공을 인정해달라는 상소가 빗발치자 언짢아 한다. 대신이 '물에는 순신, 뭍에는 자령' 이라는 세간의 평이 있다 전하자 "근데 왜 순신은 죽고 자령은 살아 있는가?" 라며 비아냥댄다. 그리고 궁궐도감을 설치했음에도 자신이 원하는 궁궐 증축/재건에 대한 진척이 여의치 않자 불만스러워한다.
김자령 의병대는 청주에 도착한다. 백성들은 굶주려있고 어린 아이가 다가와 구걸을 하는데, 바로 옆의 담벼락 너머에서 청주목사는 백성의 궁핍은 외면한 채 풍족한 연회를 벌이고 있었다. 게다가 이 청주목사가 잠시 갓을 떨굴 때 왜인처럼 머리를 민 (부왜(附倭): 왜군에 붙어서 목숨을 부지한) 흔적이 남아있는 걸 목격한 범동은 분노한다. 그날 밤, 범동이 의병단이 모인 자리에서 이에 대해 불만을 토하지만, 김자령은 유학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채 청주목사의 비리에 대해 조정에 알리겠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고, 천영은 자신의 면천만을 생각하는듯한 태도다. 이에 범동은 답답하다며 울분을 토하고, 결국 자신과 뜻을 함께 하는 의병 다수를 데리고서 갈라선다. 그리고 청주목사네 저택을 습격하여 살해한 뒤 그 곡식을 백성들에게 나눠준다.
김자령과 천영, 그리고 남은 의병들은 왜군 잔당 포로들을 데리고 한양에 도착하는데, 소덕문 앞에 온 도성 백성들이 몰려들어 그들을 환대한다. 그러나 선조는 자신보다 환영받는 김자령을 못마땅해하고 곁에 있던 종려도 이 광경을 보게 되는데, 청천익을 입고 김자령 곁에서 말을 타고 행진하는 천영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깜짝 놀란다. 때마침 충청도 감찰사가 보낸 편지가 전해지는데, 김자령을 따르는 이들이 청주목사를 살해했다는 내용이었다.
궁에 다다른 김자령은 혼자 들어오라는 요청을 받고, 천영에게 자신의 검과 나침반을 맡긴다.[58] 천영을 비롯한 나머지 일행은 고기와 술을 대접하겠다는 병졸을 따라간다. 그러나 그 이전, 종려는 충청도 감찰사의 보고를 선조에게 전하며 김자령을 죄인으로 취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고[59] 안 그래도 김자령이 마음에 들지 않던 선조 또한 이를 인준한 상태였다.[60]
김자령은 궁에 들어서자마자 역모죄로 고발당해 포위되고, 천영과 일행 역시 군병들에게 포위된다. 자령은 포졸의 칼을 뺏은 뒤 그들을 해하지 않는 칼등치기를 사용하며 대항하는데, 종려의 조총 사격에 제압당한다. 붙잡힌 자령은 '왕의 덕도 궁과 함께 무너졌소이까!' 라며 선조를 꾸짖으나, 선조는 '역모를 꾀한 자도 궁이 왕의 위엄을 상징한다 여기지 않느냐'는 답정너를 시전한다. 결국 '범동이 자네가 옳았다' 는 말을 마지막으로 김자령은 참수당해 머리가 거리에 내걸리고[61] 가까스로 도망친 천영은 형장 근처에서 걸인으로 변장한 채 숨어서 이를 지켜보며 눈물을 흘리는데, 때마침 형장을 방문해 지휘하는 종려를 발견하고는 치를 떤다.
|
그날 밤, 귀가한 종려는 열려있는 문과 바닥에 죽어있는 부하들을 보게 되고, 그 끝에 피 묻은 검을 든 채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천영을 마주한다. 그리고 한때는 친구였으나 지금은 서로에게 이를 가는 두 사람의 대결이 시작된다.[62]
천영: 기생집 개새끼도 도둑 잡으면 쉰밥이나마 그릇 가득 먹이거늘 전공을 세우면 상 주겠노라 약조한 왕은! 우리를 모함하고 주살하였다. 마치 네 아비처럼.
종려: 주인 무는 개는 죽일 수밖에.
천영: 그래도 너만은 다를 줄 알았다, 너만은! 어째서!
종려: 그게 네놈 입에서 나올 소리야?
(한참의 결투 후)
종려: 이 천한 놈을 벗 삼았던 내가... 원망스럽다.
천영: 나는 바란 바 없다.
종려: 내 차라리... 개를 기를 것을...[63]
천영: 과연 부부가 같은 종자로구나.[64]
종려: 주인 무는 개는 죽일 수밖에.
천영: 그래도 너만은 다를 줄 알았다, 너만은! 어째서!
종려: 그게 네놈 입에서 나올 소리야?
(한참의 결투 후)
종려: 이 천한 놈을 벗 삼았던 내가... 원망스럽다.
천영: 나는 바란 바 없다.
종려: 내 차라리... 개를 기를 것을...[63]
천영: 과연 부부가 같은 종자로구나.[64]
결국 대결에서 이긴 천영은 일전에 자신이 당했던 것처럼 종려의 왼손 손등[65]을 칼로 찌른다. 다만 차마 죽일 수는 없었는지 계속 망설이다가, 때마침 도착한 광이가 쏜 조총에 어깨를 한 방 맞는다. 하지만 천영은 총상을 입은 채로 단 2합 만에 광이의 왼팔을 자른 뒤[66] 다음 일격에 광이의 목을 한 방에 베면서 질긴 악연의 고리를 끊는다.[67] 그리고 종려에게 "나를 역도로 만들었으니, 소원대로 그리 되어주마" 라 선언한 뒤 달아나고, 그 길로 효수된 김자령 장군과 의병단의 목들을 챙긴 채 『大逆罪人』 『逆魁慈齡』(대역죄인 역괴자령)이라 적힌 깃발을 불태우며 비장한 얼굴로 말을 달린다.
화면 왼쪽에 거대하게 반(反)이 떠오른다.
2.4. 란(亂)
김자령을 참수한 일 때문에 민심이 안좋아지고 민란까지 발생하자 선조는 종려를 호되게 질책한다.[68] 이에 종려는 위기를 타개하고 천영에 대한 복수를 하기 위해 감옥에 갇힌 겐신을 이용할 계책을 짠다. 겐신 일당이 갖고 있던 보물을 선조에게 보여주면서 그들이 숨겨둔 보물이 더 있으니 궁궐 증축에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 설득하고, 겐신 일당을 항왜로 삼아 역도를 진압하자고 제안한다.[69] 이덕형을 포함한 신료들은 얼마 전까지 전쟁을 벌이던 왜군으로 다시 백성을 죽인다는천영은 나머지 의병들을 찾아가고, 범동은 그가 가져온 자령과 동료들의 머리를 보고는 오열하면서 천영과 한바탕의 드잡이질을 한다. 한참 후 천영은 김자령이 맡겼던 나침반을 꺼내 왕이 있는 방향인 子에 칼을 꽂으며, 조정을 상대로 들고 일어서자며 역모를 제안한다. 그들이 선택한 방법도 겐신 잔당이 남긴 보물을 차지하여 군자금으로 쓰며 군대를 조직하는 것. 그날 밤 천영은 자신의 왼손 손등에 도노(逃奴) 표시를 달궈진 칼로 지져 지워 버리고, 선조가 하사한 청천익도 불태운다.
이미 장소를 알고 있던 일행은 보물이 있는 곳에 먼저 찾아가 서둘러 옮긴다. 하지만 조정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한 천영과 범동과는 달리, 책사 상문을 비롯한 다수의 사람들은 계속된 투쟁에 지친 상태였고, 오히려 천영과 범동을 그물로 포박하고는 보물만 챙겨 떠난다. 하지만 조금 길을 걷던 중, 너무 슬퍼하며 미련을 보이는 막내는 다시 범동과 천영에게 돌려보내 준다.[72][73]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그들은 관군의 습격을 받고, 상문은 겐신을 보고는 놀라움과 허탈함을 보이다가 살해당한다. 멀리서 이 모습을 지켜본 막내는 천영과 범동에게 달려가 사실을 알리고, 뒤늦게 셋이 현장에 가보지만 모든 동료들이 머리가 베어진 모습을 보며 경악한다. 그리고 '머리를 매달아 놓고 기다리겠다. 이종려' 라는 경고문을 발견한다.[74]
종려와 금군은 바닷가에서 휴식을 취하며 보물을 챙겨 떠날 채비를 한다. 그때 주변을 경계하던 금군은 진형을 이루더니 갑자기 겐신과 왜군 일당에게 일제히 조총을 겨눈다. 종려는 처음부터 왜군들을 살려둘 생각이 없었던 것. 그리고 사격을 명령하는데... 조총이 일제히 터지면서 아군들만 부상을 입는다. 그들도 조선군을 믿지 못해서 조총을 정비하는 척 하면서 오히려 오폭되게끔 조치를 취해뒀던 것. 왜군은 이를 보며 비웃고, 겐신도 "출구를 억눌러 막아 두면 안에서 폭발하지."라 조총을 고장 낸 방법을 알려주며 "조선의 꼴과 같지 않나?"라고 경멸의 비아냥을 날린다. 이어 조선군과 왜군은 백병전에 돌입한다.
갑주를 챙겨입은 겐신[75]과 종려가 결투를 시작하고, 종려는 겐신의 투구 뿔 오른쪽을 자른다.[76] 이에 겐신은 종려와 천영의 관계를 궁금해하며 둘이 비슷하다는 걸 꼬집는다.[77][78] 그때 천영이 나타나 전장에 개입하고, 대결은 3파전으로 흘러간다.
앞이 보이지 않는 짙은 해무로 인해 겐신이 잠시 이탈한 사이, 천영과 종려 둘이 대결을 한다. 종려가 부상을 입자 천영은 "목 베여 죽은 사람도 있는데 엄살 떨지 말라" 하고, 종려는 "그럼 불에 타 죽은 이들은 어떻겠냐. 너도 불구덩에 집어넣어 주마. 내 아비, 어미, 아들, 아내에게 한 짓 그대로!" 라고 반문한다. 천영은 비로소 종려가 갖고 있던 오해를 알아채고, 검술을 멈춘 채 종려의 칼을 그냥 손으로 막아서다 왼손 손등을 관통 당한다. 그리고 "정녕 그리 믿고 있던 것이냐, 아니면 그리 믿고 싶은 것이냐?" 면서, 자신은 처를 구하려 했지만 되려 자신더러 짐승이라며 치를 떨고 스스로 불 속으로 뛰어들었다는 그날의 진실을 전한다. 종려가 충격에 빠져[79] 대화가 잠시 멈춘 틈을 타 겐신이 다시 습격해오고, 천영이 막아서려고 뛰쳐나갔다가 등을 베인다. 다시 종려가 겐신에게 달려들어 분투하지만 상대가 안 됐고 와키자시에 발등이 찔린 뒤 상체에 치명상을 입고 만다.
서로 이도류[80]를 든 천영과 겐신의 마지막 혈투가 시작되고, 겐신의 검이 천영의 검 손자루에 박혀 빼낼수 없는 상황이 되자 천영은 반대편 검으로 그의 손목째로 잘라버린다. 다시 겐신이 반격을 시도 하지만 이번에는 그의 남은 한쪽 팔마저 잘라버린다. 마지막으로 천영은 저항불능상태의 겐신의 목에 그의 잘린 손이 쥐고 있는 그의 검을 꽂아넣으며[81] 대결을 마무리 짓는다.[82][83][84]
천영은 죽어가는 종려를 안아든다. 종려가 "천영아, 내가 아직… 네 동무니?" 라고 묻자, 천영은 울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종려는 자기 손의 붉은 천을 풀어 천영의 손에 쥐여주며 "미안하다..." 라는 말과 함께 천영의 품에서 숨을 거둔다.
한편, 선조는 궁 재건 사업이 더딘 것에 언짢아하던 중, 한강진 나루에 내금위 깃발이 걸린 조운선 한 척이 도착했다는 보고를 듣고는 기다리던 왜군의 보물이 왔나 싶어 부리나케 달려나간다. 이종려와 금군, 왜투순군의 행방이 묘연한데 배만 왔다는 것에 의아해 하면서도 궤짝을 보고는 신이 나서 어서 열어보라 명한다.[85] 그런데 그 안에는 하얀 소금만 들어있었고 엎어보니 수많은 잘린 코가 쏟아지는 바람에 선조는 소스라치게 놀란다.[86]
화면 오른쪽에 거대하게 란(亂)이 떠오른다.
2.5. 에필로그
거리에서는 흥겨운 풍물놀이가 펼쳐지고,[87] 범동과 두 개의 검[88][89]을 찬 천영은 흐뭇하게 구경을 한다. 외팔이 광대[90]는 '본디 짐승이라는 말이 중생에서 나왔고 중생이 곧 짐승이니, 그 사나운 힘을 두려워해야 하지 않는가' 라며 풍악을 울린다.광대 중 하나였던 돌팔매 막내까지 합류해 네 사람은 세력 규합을 의논한다. 대동계가 망했으니 다른 이름을 써야한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천영은 '두루 모두가 하나다' 라는 뜻의 '범동계'를 제안하고, 범동이 그럼 이제 본인이 대장이냐고 하자 일동은 크게 웃는다.
어우러져 함께 춤을 추는 백성들 머리 위로 "전,란 UPRISING" 이란 타이틀이 뜨며 엔딩 크레딧이 오른다.
[1]
영화상에는 짧게 넘어가지만, 실제로는 1,000명이 넘는 자들이 연루되어 숙청당한 엄청난 사건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문서 참조.
[2]
자신을 소개하면서 지금껏 추쇄한 종놈의 숫자라며 팔뚝에 스스로 새긴 칼자국이 엄청 많은 것을 보여주는데 그의 엄청난 무예 실력을 가늠케 한다. 후에 나오지만 무려 '무과 장원 급제'한 천영을 잡아올 정도의 실력이다.
[3]
임금이 신하에게 내려 준 칼을 이르던 말.
[4]
본작은
플래시백 기법(과거 회상)을 많이 쓰는데, 특이하게 사건의 흐름이 아니라 이런 식으로 캐릭터성을 구축하기 위한 용도로 많이 쓴다. 그래서 바로 이어지는 이야기임에도 바로 보여주지 않고 해당 인물의 시점에서 보여주는 과거 회상 장면들이 많다.
[5]
천영의 아버지는 '지금껏 부자가 양인으로 살아왔는데 갑자기 아들을 노비로 데려가겠다는게 말이 되냐' 며 관아에 항의해 봤지만, 병조참판 댁
청지기 김서방이 "어미와 태아는 본래 한 몸이니, 어미가 노비가 되면서 태아도 노비가 되었다 봄이 옳다." 라는 말재간을 부렸다.
[6]
이때 청지기 김서방이 이대감 댁 가세를 읊으면서 다양한 종류의 노비를 소개하는
판소리
몽타주 장면이 굉장히 인상적이다.
[7]
그럼에도 종려의 모친은 끌려온 천영을 보고 ‘이번엔 얼마나 버티려나?’ 라며 미소를 짓는다.
[8]
막동의 부모는 어린 아들의 시체를 껴안으며 이대감 식구들에게 이를 갈고 결국 이 원한은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의 단초가 된다. 이렇게 매를 맞다 죽어나간 노비 아이가 앞전에 더 있었던 것으로 묘사된다.
[9]
이렇게 하루 종일
회초리를 맞아 피범벅에 쩔뚝거리는 다리로 단숨에 담을 넘는 모습, 직전에 김서방을 피해 요리조리 날리는 몸놀림, 아버지가 만들어준 나무 검을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는 모습 등을 통해 천영은 타고난
검신임이 묘사된다.
[10]
이후에 밝혀지기를, 천영은 도망친 게 아니라 종려가 놔준 것이며 어사검도 종려가 천영에게 준 것이었다. 종려는 아버지가 천영을 면천시켜주기는 커녕 죽이려고 한다는 것을 알고 그가 탈출하도록 도와줬었다.
[11]
여기까지만 보면 노비들을 인간 취급도 하지 않던 이대감이 왜 천영을 살려주는지 의아할수 있는데, 이후 과거 장면에서 밝혀진다. 천영이 유약했던 아들의 무예 실력을 기르도록 도와주고 무과 급제까지 도와준, 아들의 절친이었기 때문에 이대감도 그에 대한 일말의 고마움과 인정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결국은 굶겨 죽이라 명령했으니 다들 보는 앞에서 죽이지만 않았을 뿐 크게 다를 바는 없다.)
[12]
이 말이 이후 천영과 종려 두 사람 사이에 크나큰 오해의 단초가 되었다. 공교롭게도 바로 그날 밤 종려의 일가족이 모두 천영이 말한 바대로 죽게 되기 때문이다.
[13]
이런 모습이나 이후 광이가 '칼과 옷을 훔쳐 달아나는 천영을 봤다'라고만 전했지, '천영이 식솔들을 죽였다/죽이는 걸 봤다'라고 한 적이 없음에도 천영을 멋대로 오해한 것을 보면 이종려 역시 어느 정도의 계급의식을 가진 것으로 묘사된다.
[14]
그런데 천영이 가르쳐 주려던 사범의 패턴을 이미 종려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타고난 성품이 여려서 그렇지 종려도 아주 재능이 없는 건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15]
어린 시절의 대련 장면에서 바로 성인들의 대련 장면으로 바뀐다. 어린 시절과는 다르게 서로 진검을 주고 받는 시점으로 변하여 대련이 이어진다.
[16]
검술 대련 중 천영을 공격할 타이밍이 왔음에도 굳이 하지 않는다. 이에 천영이 "네 칼에는 분노가 없다."라고 타박하자 종려는 "진짜 적을 만나면 내 칼에도 분노가 실릴 거다" 라고 웃으며 대답한다.
[17]
이대감은 친지들 앞에서 하사받은 어사화를 직접 쓰고는 "나도 장원은 못 해 봐서..." 라며 너스레를 떨며 함박웃음을 짓는다.
[18]
노비 '문서'보다 노비 '문기(文記)'가 역사 재현에 맞는 표현이다.
[19]
마지막까지 천영을 딱하게 보던 이가 바로 막동 아비였다. 이때 이미 인내의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20]
4개 장의 제목 중 첫번째다. 참고로 이 제목이 장의 마지막에 뜨는 것인지 장의 시작을 알리는 것인지(지금까지 본 것의 제목인지 앞으로 볼 것의 제목인지) 헷갈릴수 있는데, 전자가 맞다고 한다. 즉, 전-쟁-반-란-에필로그의 형태.
[21]
마당 쓰는 노비 광자리(光自里)의 사투리이다.
[22]
어차피 왜군의 침공으로 나라가 망할지도 모를 판국이니 그동안 자신들에게 혹독하게 대한 종려의 일가족을 몰살하고 노비 문기를 불태워 양민이 되자는 것.
[23]
여종들은 그녀의 눈앞에서 노비 문기를 불태우며 "이제 네년이나 내년이나 똑같아!" 라고 말한다.
[24]
민란을 주도한 막동 아비는
방화까진 하지 않았고, 실제로 김서방과 이극조 대감을 살해할 때까지 집은 멀쩡했었다. 불을 지른 것은 여종들로 종려의 모친을 그녀의 방(당시 방엔 여종들 밖에 없었으므로 종려의 모친 처분은 여종들에게 맡긴듯하다.)으로 끌고 들어가 그냥 그녀만 살해해도 될 것을 굳이 불까지 질렀다.
[25]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지만 임진왜란 당시 모든 노비들이 반란을 일으킨 건 아니다. 가장 유명한 양반 출신 의병장인
곽재우는 휘하 노비들 10명으로 의병활동을 시작했다.
# 다만 기록상으론 《
쇄미록》부터 저자 오희문(吳希文)이
임란 이전부터인 1591년 11월 27일~1601년 2월 27일까지 떼먹힌 노비신공을 직접 추쇄하러 떠났다가 임란을 당하여 돌아오지 못하고 유랑한 전쟁현상에 대한 일기일 정도로 실제 이런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
[26]
'
各
自
圖
生' 자체가 임진왜란 시기인 선조 27년 9월 6일자
실록에 처음 만들어진
사자성어다.
[27]
사실, 상황만 놓고 보면 오해할 만도 했다. 낮에 천영이 내뱉은 말도 있는 데다, 하필 피 묻은 어사검을 들고 남편의 청천익을 입고 있는 상태였으니, 종려의 처로서는 복수를 하려나보구나 하며 공포에 질릴 만도 했다.
[28]
여담으로 이때
선조로 분장한 차승원은 실제 선조의 어진과 매우 높은 싱크로율을 보인다.
[29]
종려가 선조를 곁에서 모시는 입장이니, 아마 종려를 찾으려고 궁부터 찾아간 듯하다.
[30]
오프닝 육조거리에서 효수된 머리들 옆에서 공연하던 사당패 무리 중 한 명.
돌팔매질은 한수 이북에서 자신이 최고라고 이야기한다. 여기서 '한수 이북'을 사전적 의미로 '한강을 기준으로 윗 지역'을 의미하지만, 현재의 종로구, 중구, 용산구 일부만을 한양으로 삼았던 조선시대를 기준으로 지리를 파악해보면 '한양 전체'를 의미한다고 봐도 된다.
[31]
상문이 "백정님도 참여하라"고 말하자, 백정 남성은 "
갓쟁이한테 '님' 소리 듣기는 처음이다" 며 너스레를 떤다.
[32]
이름이나, 코베기로 조선에서 악명이 높았다는 내용으로 미루어보아
킷카와 히로이에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으로 보인다. 재밌는 점은 실존 인물 킷카와 히로이에는 몸이 허약해 검술에 능하지 못한 인물이었단 점이다.
[33]
종려도 어린 시절 무예 스승의 검법을 이미 파악할 정도로 재능은 있으나, 공격 기회가 왔음에도 굳이 하지 않을 정도로 심성이 착했던 인물이다. 여러 번의 낙방도 이런 투기(鬪氣) 부족이 원인으로 보인다. 이런 소극적 제지에 옆에 고참
겸사복이 "이종려! 뭐해!"라고 꾸짖는다.
[34]
앞서 선조가 보인 "내 백성이? ...왜?" 와 동일한 반응이다.
[35]
뭣보다 천영의 족쇄를 풀어준 게 종려 자신이었므로 종려는 처와 자식, 부모님을 살해한 새끼를 자신의 손으로 풀어준 것으로 오해할만했다. 단, 현실은 정반대로 그때 광에서 천영을 풀어주지 않았다면 천영은 불에 타죽거나 질식사했다..
[36]
이전에 천영과 훈련할 때 분노가 부족하다는 말을 듣고는 "진짜 적을 만나면 다를 것"이라고 응수한 적이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진짜 적'이 천영이 되었고 복수의 칼을 처음 휘두른 건 자국 백성들이었다.
[37]
통성명을 하는데 겐신은
자기 신분과 이름을 밝히지만, 천영은 '
내 신분은 개, 이름은 새끼'라고 응수한다. 그걸 그대로 다 번역하고 있는 앞잡이는 덤.
[38]
물론 이때까진 천영의 이름이 이종려인 줄 알았을 것이다.
[39]
이 장면에서 종려가 배에 매달려 가려는 사람들의 손을 떨어뜨리는 장면은 완전하게 같지는 않지만
동승(삼국지연의에서는
이락)이
헌제를 화음에서 안읍에서 피신시킬 때의 고사에 대한 레퍼런스로 보인다.
[40]
즉, 이 영화에서
임진왜란은 그저 배경일뿐 중요한 소재로 다루지 않는다. 이야기의 포커스를 천영과 종려의 관계에 맞추기 위함이다.
[41]
각본과 제작을 담당한
박찬욱은 이 폐허가 된 종려의 집은 불타버린
경복궁의 축소판을 상징한다고 한다.
영상 여러모로 종려의 캐릭터는 선조와 대구를 이루는 캐릭터.
[42]
이 중엔 봉기를 주도한 막동 아비의 시신도 있었다. (얼마나 분했던지
눈을 뜬 채로 죽었다.) 한편으로는 천영의 무고함을 증명해 줄 사람이 사라져버린 것이니, 만약 천영이 전공(戰功)을 인정받아 면천되어 양인이 됐다 하더라도 살인죄를 피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43]
이때 배고픔에 쓰러져가던 길가의 백성 중 하나는 광이에게
다리 하나만 떼주고 가라고 말한다...
[44]
이름이나, 덕망이 높다는 내용으로 미루어보아
김덕령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으로 보인다.
[45]
'책사 어르신'으로 더 불린다. 글도 읽을 줄 알고,
활을 매우 잘 쏜다. 심지어 일본어도 부대 내에서
통역장교 역까지 할 정도로 능숙하게 구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전공(戰功)을 조정에선 쉽사리 인정해 주지 않는다. 과거 역모에 연루되어 몰락한 양반 가문 출신이거나,
서얼 출신 등으로 추정.
[46]
선조와 혼이 실제보다 꽤 훈훈한 모습으로 연출된다. 선조는
분조 당시
왕위를 쪼갤 때 상벌권, 인사권만
세자 이혼에게 양도하고 나머지 군사권, 사법권, 외교권, 재정권은 자신이 가졌는데, 이때 준 상벌권, 인사권을 돌려받기 위해 맘에 없는
양위 소동까지 벌이며 이혼을 경계했었다. 심지어 아침 문안 인사 온 이혼을 내치기까지 했다.
# 이런 선조가 혼과 함께
근정전을 걸으며 "얘, 혼아 정자 이름은 네가 지어 보겠느냐?"라 사이가 좋게 묘사하는 것은 다소 어색하다.
[47]
이때 자령이 자기네 집은 몇 칸으로 지어줄 거냐고 묻자, 범동은 당연하게 한 칸 아니겠냐고 너스레를 떤다. 이렇게 양반과 노비가 어우러져 함께 술과 음식을 나눠먹으며 대동하게 어울리는 모습은 오프닝
정여립과 범동이 가장 꿈꿔왔고, 꿈꾸는 세상인 동시에
선조(전,란)가 가장
증오하는 세상이기도 했다. 여러모로 범동은 본작 선조의 가장 대척점인 인물이다.
[48]
이때 선조는 "한데 네게도 잘못이 아주 없다고는 못하지. 신분을 구별치 않았던 연유가 무엇이냐?"라며 자신의
우월 의식과
선민사상을 드러낸다. 또 정여립이 주장하던
대동인지 뭔지가 생각난다며 종려 너도 그런 것이냐고 긴장감을 조성한다. 이런 선조라면 범동이 청주목사를 죽이지 않았더라도 과연 김자령 의병단의 전공(戰功)을 곱게 인정해 주었을지 의문이다.
[49]
밖에서 책 읽으며 기다리고 있던 천영은 종려의 이 말을 듣고는 피식 웃는다.
[50]
그와중에 종려는 "그럼 종을 부리러 가볼까?" 라며 너스레를 떤다.
[51]
출정하기에 앞서 김자령을 중심으로 의병들은
나침반으로 방향을 가늠한 뒤 임금이 있는 곳에 절을 올리고, 범동은 매번 저런 짓을 하는 걸 이해 못하겠다며 혀를 찬다.
[52]
영화에서 임진왜란 7년 묘사를 생략했지만, 천영이 그기간 큰 활약을 하며 왜군들 사이에서 악명이 높았음을 암시한다. 청의검신은
홍의장군 곽재우에서 따온 별칭으로 보인다.
[53]
책사 상문과 왜군 쪽 통역이 각각 아군을 위해
통역을 해주는 게 은근히 개그 포인트다.
[54]
중조류는 현대 일본
검도에 영향을 끼친
넨류 계열의 검술이다. 자세한 내용은
전,란 문서의 '실제 역사 탐구' 문단 참조.
[55]
이때 손을 내민 겐신 앞에서
일부러 물을 흘린다. 비겁하다며 따지는 겐신에게 천영은 "너도 주먹밥 안 줬잖아"라며 째째하게 응수한다.
[56]
겐신이 이 토끼 모양 투구의 사무라이와 절친이었다는 해석이 있다. 그전까진 자신도 물을 달라며 살려는 강한 의지를 보였지만, 천영이 "내가 그놈 배를 갈랐더니, 창자가 다 쏟아지더라."라고 약을 올리자 정색하며 재대결을 요청하기 때문. 만약 사실이라면 종반부 종려를 벤 겐신은 천영에게 똑같은 상처를 준
숙적이 된다.
[57]
이렇게 해서 광이가 천영을 죽이지는 않고 잡아오는 것이 영화 초반 장면이다.
[58]
들어가기 전에 김자령은 천영에게 이름의 뜻을 묻는데, 천영이 모른다 하자 자신이 아버지였다면 '하늘 천(天)에 빛날 영(煐)'으로 이름을 지어줬을 것이라고 따뜻하게 말해준다. 이는 앞서 어린 종려가 천영의 이름에 '나를 따르는 그림자' 라는 해석을 내린 것과 대비된다.
[59]
물론 종려 자신의 목표는 그 밑에 있는 천영을 잡기 위함이다.
[60]
반대로 김자령의 모티브가 된
김덕령은 명성에 비해 실적은 없으면서 포악한 인물이었는데
이몽학의 난에 연루되었을 때
선조는 그래도
이순신,
곽재우만큼 민심의 큰 지지를 얻어 자신의
왕위에 큰 위협이 되지 않는 요긴한 선전용 인물이라 여겨 죽일 생각까지는 없었으나 신하들이 죄가 크다며 죽이라고 상소하여 결국 처형하였다.
[61]
얼마나 억울하고 원통했던지
눈을 뜬 채로
목이 잘렸다.
[62]
천영은 종려가 자령과 자신들을 역도로 몰아서 주살한 것에 대한 분노와 배신감, 종려는 천영이 자신의 일가족 모두를 살해하고 집안을 무너뜨린 것으로 오해하는 분노와 배신감.
[63]
과거에 종려의 처와 나눈 대화를 연상시킨다. 종려: "개와는 친구가 되어도 종과는 친구가 될 수 없소?" / 종려 처: "개는 기르는 것이고 종은 부리는 것입니다."
[64]
천영도 당시의 대화를 들었기 때문. 사실 천영은 종려의 처와 아이를 도우려고 했으나 그녀가 '천한 것'의 도움을 거부하다 사망한 것인데, 지금 상황에서는 그냥 뚜껑이 열려서 앞뒤 안 가리고 말을 받아친 것이라 볼 수 있다. 반대로, 천영이 식솔을 죽인 것으로 알고 있는 종려 입장에서는 이만한
고인드립도 없었다.
[65]
천영에겐 도노(逃奴) 표시, 종려에겐 천영이 징표로 새겨준 상처가 있는 서로의
형제애를 상징하는 위치다. 적으로 돌아선 그들은 집요하게 이 부분에 서로 상처를 주는 묘사가 계속 나온다.
[66]
천영을 죽이라고 이대감이 광이를 보냈던 날, 종려가 광이에게 경고했던 대로 팔이 잘렸다.
[67]
예전에 달아났을 때 추노꾼 광이에게 속절없이 잡혀왔던 것을 보면 임진왜란 이전에는 광이보다 무예 실력이 떨어졌던 것으로 추측되지만, 7년의 의병 생활로 실전 경험을 쌓으면서 어느덧 '청의검신'으로 거듭난 천영은 이젠 광이와 레벨이 다른 상대라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사실, 배부르게 굶지 않고 안전하게 피난도 가면서 먹고 살 수 있었을 광이와는 다르게, 7년동안 전쟁을 겪으면서 악으로 깡으로 버티고 생존을 위해 실전을 겪어왔던 전투의 경험치가 같을 수는 없다.
[68]
사실 종려가 천영에 대한 분노로 자령을 처벌할 것을 주장하긴 했지만, 선조 본인도 항상 김자령을 껄끄러워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의 선조 특유의 암군스러움이 잘 드러난다.
[69]
이때 종려는 그래도 어디까지나 은밀히 보화를 찾는데만 왜군을 이용하자 하지만 선조는 "민란도 제압하면 그야말로 일석이조 아니겠느냐?"라며 한술 더 뜬다.
[70]
왜란 초기 조선에 투항해
병자호란까지 참전했던 실존인물
김충선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물론 김충선은 조선에 공헌을 한 인물이고,
금군의 조총을 정비하는 척 출구를 억눌러 막아 안에서 오폭되게끔 조치를 취하거나 '내부에서 터지는 것이 지금 조선의 꼴과 같지 않으냐'란 비아냥을 남기며 처음부터 일본으로
조운선 훔쳐타고 종려를 인질로 잡아
궤짝 들고 튈 마음밖에 없었던 겐신과는 전혀 다르다.
[71]
김자령 의병단 입장에선 자신들 손으로 자신들을 죽일 후환을 키운 셈. 실제로 이후 겐신 손에 죽어가던 상문은 "어찌 비귀가…" 란 말로 허탈해하며 죽는다. 물론, 임금이 왜군에게 벼슬까지 주면서 풀어줄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상상하기 힘든 일이긴 하다.
[72]
범동이 막내를 무척 아끼는 모습이 보여졌고, 종반 왜투순군에게 막내가 베이자 눈깔을 뒤집고 그 왜군을
편곤으로
곤죽이 되도록 패 죽이기도 한다.
[73]
떠나던 의병들의 마음도 편치 않은 상황에서 그중 한 명인 구서방은 쥐어짜듯 '
쾌재라 청정이 나가네'를 부른다.
[74]
여담으로 천영은 까막눈이 아니다. 무과 시험 장원 급제자고, 무과 시험에는
손자병법 같은 병법서(兵法書) 관련된 필기시험도 엄연히 있었다. 또한 과거 플래시백에 천영이 책을 읽는 장면도 나왔다.
[75]
이때 통역과의 대화에서 투순군 역시 한양에서 보낸 배를 훔쳐타고 처음부터 궤짝 들고 일본으로 튈 계획이었음이 드러난다.
[76]
예전에 천영이 그의 왼쪽 뿔을 자른 적이 있다.
[77]
겐신 입장에서는 앞서 만난 천영의 검에 '이종려' 라 쓰여진걸 봐서 그가 이종려 인줄 알았는데 나중에 실제 이종려를 만난 것이다. 게다가 둘이 어릴 때부터 허구헌날 대련을 했으니 만약 검술 모양도 비슷했다면 더욱 흥미로웠을 것이다.
[78]
겐신은 처음엔 포로 교환 때 일본 병사 백 명 값은 할 테니 종려를 생포해 일본으로 데려가겠단 계획을 세웠지만, 이러한 종려의 실력을 보곤 그런 식으로 방심했단 자신이 죽겠다 싶어 마음을 바꿔 이젠 진심으로 종려를 죽이기 위해 붙는다.
[79]
아내가 생전에 했던 계급적인 언행을 떠올렸을 때 천영의 말이 틀린 게 아닐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80]
겐신은
일본도와 와카지시, 천영은 겐신이 부러뜨린 어사검과 종려의 검.
[81]
앞서 무녀가 예언했던 "네놈은 네 손에 든 칼로 목이 꿰뚫려 죽으리라" 가 그대로 실현되었다.
[82]
3인의 검술 실력은 결국 천영>겐신>종려로 보인다. 천영은 공히 두 사람과의 대결에서 모두 압승을 거둔 바 있고, 천영/종려 모두와 검을 부딪혀본 겐신도 천영의 검의 분노가 더 깊다고 평한 바 있다. 다만 앞서
삼파전을 벌일 때, 종려도 겐신/천영 모두에게 호각지세였던 것으로 보아 종려는 투기(鬪氣)가 있을 때(영화상 표현대로면 칼에 분노가 있을 때) 전투력이 상승하는 스타일로 보인다. 타고난 성격이 유약한 면이 작용을 하는듯.
[83]
임진왜란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국시대를 끝내고 일본을 통일한 이후에 조선을 침략한 것이고, 아마도 겐신은 전국시대 시절에 히데요시의 최측근이었거나 반대파로 수없이 실전을 치른 사무라이였을 것이고 선봉장인 만큼 겐신이 종려보다 실전에 더 강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또 천영은 겐신과 3번에 피 말리는 결투 중 2번이나 자신의 검을 놓쳤고, 마지막 혈투에선 겐신은 천영의 어사검을 박살내버렸다. 뭣보다 바로 눈앞에서 소중한 벗 종려를 벤 겐신에게 눈이 돌아간 천영의 파워업도 감안해야 한다.
[84]
셋 중에 쳐질 뿐 종려의 무예도 높은 편이다. 돌이켜 보면, 추노꾼 광이가 과거엔 종려가 자신의 목에 겨눈 검을 오른손으로 잡아 거둘 정도로 그를 얕잡아 보았으나, 7년 후의 시점에선 집을 나서는 종려를 배웅할 때 종려의 아버지 이극조 대감을 대할 때처럼 깍듯하게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85]
궤짝 하나만 열어본 흔적이 있는 것을 보아 천영 일행이 열어본 것으로 추정.
[86]
겐신과 그의 부대가 숨겼던 궤짝 속 보물들은 사실
본토로 돌아가 전쟁의 공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조선인들의 코였다. 말하자면, 그들에게만 보물이었던 것. 코를 잘라갔다는 비귀의 존재와 반복된 언급, 그리고 중간에 궤짝이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눈치가 빠른 사람들은 그 안에서 코가 나올 거라 예측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여담으로,
일본 드라마 〈
어떡할래 이에야스〉 39화에 이
귀무덤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나온다.
[87]
어우러져 함께 춤을 추는 백성들 모두 오른손 또는 왼손에 천영과 종려의 우정을 상징하는 붉은 천을 하나씩 들고 있다.
[88]
하나는 기존의 흰색 어사검, 다른 하나는 죽은 종려의 검.
[89]
천영의 어사검 손잡이 도파(刀把)는 흰색, 종려의 검에 손잡이 병(柄)은 검은색으로
태극문양을 연상시키고, 종려의 붉은
단령과 천영의 푸른 청
천익은
태극기를 연상시킨다.
[90]
오프닝에 효수된 정옥남과 그의 무리들의 머리들을 보며 한숨짓던 그 사내다. 돌팔매 막내와 같은 사당패 소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