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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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대군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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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대군파 초대 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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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94153e><colcolor=#ffd400> 조선 인조의 왕자
용성대군 | 龍城大君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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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624년 10월 14일 | ||
조선
한성부
경덕궁 (現 서울특별시 종로구 새문안로 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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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630년 2월 3일 (향년 5세) | ||
조선
한성부
경덕궁 (現 서울특별시 종로구 새문안로 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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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 | 경기도 양주시 풍양현[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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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94153e><colcolor=#ffd400> 본관 | 전주 이씨 | |
휘 | 곤(滾) | ||
부모 |
부왕
인조 모후 인열왕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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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자매 | 6남 1녀 중 4남 | ||
자녀 | 양자 1남[2] | ||
작호 | 용성대군(龍城大君)[3] | ||
시호 | 장의공(章懿公) |
[clearfix]
1. 개요
조선의 왕족. 인조와 인렬왕후 한씨의 넷째 아들이자 소현세자, 효종, 인평대군의 동복동생이다. 조선의 마지막 대군(大君)이다.[4]2. 출생과 사망
1624년( 인조 2년) 10월 14일 경덕궁에서 태어났다. 형들인 소현세자, 효종, 인평대군은 아버지가 능양군이던 시절 잠저에서 태어났지만, 용성대군은 형제들 중 처음으로 아버지가 즉위한 이후에 태어났다. 그런데 성인이 되어서도 생존했던 형들과는 달리, 1629년(인조 7년) 12월 22일[5] 불과 6살의 너무 어린 나이에 용성대군은 갑자기 죽고 말았다.3. 사후
묘소는 경기도 양주군 풍양현[A]에 있었다가 훗날 경기도 고양군으로 옮겼다. 이후 수진궁에 위패를 봉안하여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1692년(숙종 18년) 3월에는 숙종이 작헌례[7]를 행하고, 관원을 보내어 용성대군의 묘에 제사를 올리도록 하였다.
영조 역시 1736년(영조 12년)과 1745년(영조 21년)에 관리를 보내 용성대군의 묘에 제사를 드리도록 했다. 인원왕후의 능을 조성할 무렵인 1757년(영조 33년) 7월에는 고양군수에게 명해서 묘를 보수하도록 했다.
4. 여담
-
광주광역시에 있던
태봉산에 그의 태가 묻혀있었다. 원래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산에 있던
태실을 1625년(
인조 3년)에 이 곳으로 옮긴 것이다.
이괄의 난 당시 태어난 대군의 태를 피난지에 가까운 계룡산에 묻었다가 어린 대군이 잔병을 치러 불공을 드리러 갔을 때 만난 노승[8]의 말을 듣고 태봉산으로 옮겼다는 전설이 있다.
1929년 광주에 큰 가뭄이 들었을 때 이 태봉산에 누가 몰래 묘를 써서 재앙이 들었다는 풍문이 들자 몇몇의 사람들이 태봉산의 꼭대기를 팠더니 이 태실을 발견했다고 한다. 태봉산은 1967년 경양방죽을 메우면서 사라져 현재는 없다. 태를 담았던 태호(胎壺)는 국립광주박물관 전시관에서 전시하며, 태호를 담았던 태실석실은 광주민속박물관에서 전시한다.
5. 가족과 후손
혼인도 못하고 사망해서 당연히 실제 후손은 없다. 그러나 1871년 8월 1일, 고종이 용성대군의 바로 윗 형 인평대군의 6남 복평군 이연(福平君 李㮒)을 용성대군의 양자로 삼으라고 명해 형식상으로는 대를 잇게 되었다.이 복평군의 9대 종손이 신소설의 창시자로 불리며 소설 '자유종'으로 유명한 문학가이자 언론인인 이해조이며[9] 이해조의 손녀이자 용성대군의 양 12대손이 기독교 여성운동과 한국 여성노동운동의 대모 이우정 전 국회의원이다.
5.1. 역대 종주(宗主)
- 1. 용성대군 이곤(龍城大君 李滾).
- 2. 복평군 이연(福平君 李㮒).
- 3. 완계군 이찬(完溪君 李燦).
- 4. 낙춘군 이전(洛春君 李㙉)
- 5. 이진규(李鎭圭).
- 6. 이병한(李秉漢).
- 7. 이상중(李相重).
- 8. 이면응(李冕應).
- 9. 이재만(李載晩).
- 10. 이철용(李哲鎔).
- 11. 이해조(李海朝).
- 12. 이학주(李鶴柱).
- 13. 이우영(李愚英).[10]
- 14. 이염기(李炎基). - 현재 사손.
[1]
현재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진접읍, 오남읍 일대
[2]
바로 윗 형인
인평대군의 6남이다. 그리고 인평대군은 작은아버지인
능창대군의 양자로 갔다.
[3]
봉호는
전라북도
남원시의 별호였던 용성(龍城)에서 유래했다.
[4]
인조의 4남 이곤이 용성대군으로 책봉된 이후로 대군으로 책봉된 임금의 적자는 없었다는 이야기다. 조선 후기로 갈수록 왕실의 손이 귀해져 적자가 1명 뿐이거나 그마저도 없어 서자 중에서 세자가 되는 사례가 제법 늘어났기 때문이다. 또는 적자가 태어나더라도 대군으로 책봉하기 전에 사망하기도 했다.
[5]
음력. 양력 1630년 2월 3일.
[A]
현재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진접읍, 오남읍 일대.
풍양 조씨의 풍양이 이 곳이다.
[7]
酌獻禮. 문묘에 임금이 친히 제사하는 예.
[8]
도사라고 하기도 한다.
[9]
시인
고은은 이해조 비문에 '복평군의 십대 종손'으로 썼으나 계대를 보면 9대 종손이 맞다.
관련 포스팅. 실제로도, 인평대군파보에 합철된 용성대군파보를 보면 이해조가 종손이라는 부분이 나온다.
[10]
누동궁의 종손이자 그랜드힐튼서울호텔의 회장인 이우영과 동명이인이다. 심지어 한자이름까지 똑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