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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소설 눈물을 마시는 새에 등장하는 신. '춤을 추는 자'라는 별명이 있다.2. 상세
인간을 가호하는 신으로, 어디에도 속박될 수 없는 바람을 뜻한다. 바람은 어느 한곳에 멈추지않고 끊임없이 움직이기에 어디에도 없다. 그렇기에 바람은 어디에나 갈 수 있다. 그래서 인간은 어디든지 갈 수 있다.[1]어디에도 없는 신을 모시는 사원은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으며 그들의 총본산은 하인샤 대사원이다. 어디에도 없는 신을 섬기고자 하는 자는 머리를 깎고 속세를 벗어나게 된다. 아무리 봐도 불교의 승려와 매우 비슷하다.[2] 인간의 유일신인데도 불구하고 불교적 사상의 종교라는 점이 특이하다. 물론 인간만의 유일신이지 사람의 신은 넷인 다신론적 세계관인데다, 동양적 판타지인 관계로 불교식 종교여도 이상한 바는 아니다. 실제로 피를 마시는 새에서 얼비친 어디에도 없는 신의 교리는 색즉시공, 만물순환 등 불교의 논리를 어디에도 없는 바람에 비유해서 잘 표현한다. 더하여 기독교적인 색채도 가지고 있는데, 승려들은 죄라는 개념과 '모든 죄를 이고 간다'는 말을 자주 한다.
지금까지 화신을 찾을 수 있는 접시를 깨뜨리고 그 조각을 모아 신체를 찾아왔던 수탐자들은 마지막으로 그의 신체를 찾아야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두명의 화신을 찾게해준 접시는 깨지지 않았다.[3] 비형 스라블은 어디에도 없는 신은 말 그대로 어디에도 없기 때문에 접시가 깨지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추측하기도 했으나...[4]
- [ 이하의 내용은 눈물을 마시는 새의 최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클릭하여 열람할 수 있습니다. ]
- >"내가 곧 케이건 드라카다! 그리고 내가 살아 있는 이상 어떤 나가도 그것이 옛날 일이었다고, 자신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라고 말할 수 없어! 그들이 나라는 것을 만들어내었으니까!"
어디에도 없는 신의 신체는 사실 케이건 드라카였다. 화신을 찾는 접시가 깨지지 않았던 이유는 바로 앞에 어디에도 없는 신의 신체가 있었기 때문이며, 사실 접시의 능력은 눈속임이고 지금까지 다른 신체를 찾아온 것은 어디에도 없는 신과 동화된 케이건 자신의 능력이 접시를 통해 나타났던 것이다. 케이건은 자신이 천년에 가까운 오랜 세월을 살아올 수 있던 건 소드락을 먹은 나가를 포식해 몸에 소드락이 축적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으나, 시우쇠에 의하면 어디에도 없는 신의 화신이었기 때문에 자신이 죽기를 원하지 않아서 죽지 않았던 것이며, 케이건의 불사는 소드락과 전혀 상관 없거나, 자신이 화신임을 모르는 상태에서 불로불사에 대한 핑계거리를 찾기 위해 케이건이 소드락의 효과에 불로불사를 뒤집어 씌운 것이다. 어쨌건 본인은 소드락 때문이라 생각하기에 소드락을 먹은 나가를 섭취하지 않아 신체가 붕괴하는 현상을 겪기도 했다.
문제는 케이건이 자각하지는 못했으되, 천 년 전부터 어디에도 없는 신의 신체로서 살아오고 있었으나 죽기를 거부할 정도로 나가에 대한 증오심이 커져간 결과 모종의 이유로 화신이 되었고[5] 이후에도 죽기를 거부한 탓에 신과 케이건이 서로 동화되고 말았던 것이다. 예를 들어 다른 신체인 '시우쇠'는 피를 무서워하는 평범한 도깨비지만 '자신을 죽이는 신'의 인격이 전면으로 나와 화신이 되면 모든 것을 불사를 수 있듯이, 나가를 증오하는 '케이건'의 인격 대신 '어디에도 없는 신'이 전면으로 나오면 케이건과는 다른 성격이 되어야 하지만, 천 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둘이 한 몸에서 살아버린 관계로 '어디에도 없는 신' 역시 케이건의 증오에 동화되어 '나가를 증오하는' 나가 살육신이 되어버린 것. 단순히 신이 케이건의 증오에 영향을 받은 정도가 아니라 어디까지가 '신'이고 어디까지가 '인간' 케이건인지 나눌 수도 없을 정도로 두 인격이 하나로 합쳐져 케이건 드라카라는 인격이 된 것이다.[6][7] 다만 스스로가 화신이라는 것을 자각하지 못했던 케이건은 신체이자 화신이지만 자신이 신임을 자각하기 전까지 권능을 쓰지는 못했다.
에필로그에서 소드락을 먹은 나가를 먹으면 각성 효과가 있으며, 150년 이상 장복할 경우 특별한 효과가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는 키탈저 사냥꾼의 저주와 같은 논리이다. 영생하기 위해서는 소드락을 150년 이상 먹어야 한다. 그런데 소드락을 150년간 먹기 위해서는 이미 영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오래 살려면 신과 합쳐져야 하지만, 신과 합쳐지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즉, 이미 그의 존재 자체가 키탈저 사냥꾼의 모순 바로 그것인 셈이다.
어쨌든 어디에도 없는 신이 케이건의 몸 안에 하나되어 갇혀버린 탓에 한참동안 세상에는 변화가 찾아오지 않고 정체가 유지되고 있었다. 1차 대확장 전쟁 당시에 사용되던 언어가 천 년이 가까운 세월이 지났는데도 그대로 통용되고 있고, 한계선이 생겨난 뒤에도 나가와 다른 선민 종족들 사이의 의사 소통에는 문제가 없었다. 심지어 각 종족들의 생활 양식과 개성마저도 변화없이 유지가 됐다. 이는 윷놀이에 참여해야 할 어디에도 없는 신이 케이건의 몸에 갇혀버림으로써 놀이(세상의 변화)가 진행되지 못했기 때문에 생겨난 일이다.
여담으로 팬들 사이에 어디에도 없는 신만이 변화를 담당한다는 착각이 있는데, 이는 약간의 오해가 있다. 어디에도 없는 신이 네 신의 교류를 담당하긴 하지만, 세상의 변화는 어디에도 없는 신 뿐만 아니라 네 선민종족의 신 모두가 있어야 변화와 발전이 이루어진다. 눈마새 후반부에서 라수의 입을 빌려 네 신이 모두 모이지 않으면 세상은 정체되며, 따라서 네 선민종족 가운데 하나라도 완전성을 갖추지 못하면 이미 완전성을 이룬 종족들은 기다려 주어야 한다고 분명히 언급된 사실. 즉, 변화의 정체는 어디에도 없는 신이 직무를 수행하지 못한 것 자체가 아닌, 그로 인해 (윷놀이로 비유되는) 네 신의 교류가 끊긴 것이 원인이라 봐야 한다.[8][9]
이 모든 것은 자신을 죽이는 신의 화신인 시우쇠가 성질을 못 이기고 하텐그라쥬의 심장탑에서 케이건에게 말해 줌으로써 밝혀졌다. 이로써 케이건은 자신이 화신임을 알게 되지만, 어디에도 없는 신이라는 자아와 케이건 드라카라는 자아는 이미 합쳐졌고 그는 나가를 여전히 증오했기 때문에 나가 살육자에서 나가 살육신으로 각성해 버린다.[10]
눈마새에 자주 등장하는 ' 셋이 하나를 상대한다' 라는 격언에 따라 다른 신 셋이 어디에도 없는 신 하나를 상대하려 했지만 발자국 없는 여신의 신체인 카린돌 마케로우가 깨어있지 않아 셋이 아닌 둘이었기 때문에 열세에 몰린다. 게다가 권능에 휘말려 모두들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다만 각성한 후에도 아라짓 전사로서의 케이건과 나가 살육신으로서의 케이건으로 나뉘어 갈팡질팡하다 결국 사모 페이를 죽이려하고, 소드락과 모든 이보다 낮은 여신의 풀 버프를 받아 17분 동안 지상 최속의 생명체가 된 카루와 맞붙기도 했다.
아무튼 자신이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한 나가 살육신은 나가의 멸망을 목표로 도시를 파괴하는데, 결국엔 심장탑을 중심으로 하텐그라쥬를 둘러싼 회오리바람을 만들어 천천히 조여오게 한다. 그러나 데오늬 달비와 그리미 마케로우의 모습을 빌린 륜을 만나면서 어디에도 없는 신이 인간에게 준 것이 아직 남아있다는 것을 깨닫고 증오를 풀게 된다. 인간이 받은 것은 바로 나늬. 케이건의 아내인 여름 또한 나늬였다.
파괴를 중단한 뒤에는 심장탑을 대선풍으로 감싸 누구도 들어올 수 없게 봉인해 마지막 아라짓 전사로서 대호왕의 심장병을 보호한다. 그리미 마케로우의 말을 빌리면 그는 최후까지 아라짓 전사였던 셈이다. 그리고 자신은 실종되어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다.[11]
후속작인 피를 마시는 새의 '돌 속에 갇힌 바람' 챕터에서 사모의 독백으로하라는 등장은 안하고잠시 언급된다. '마음이 돌처럼 굳어버린 남자, 그의 가슴 속에 터무니 없이 오랜 기간 동안 정체된 바람이 갇혀 있었다.' 등.
3. 능력
'바람'답게 어디에도 없는 신의 화신은 한 가지 특권을 가진다. 어디에도 없는 신이 갇혀 있을 때 화신끼리는 서로를 인지할 수 없으나 어디에도 없는 신의 화신만은 다른 신들의 화신을 인지할 수 있다. 또한 신체를 찾아낼 수도 있는데, 눈으로 보거나 피부로 느끼거나 아니면 정신적인 교감이 있는 등의 "인지"의 영역이 아니라, 그저 자기 발걸음 닿는 대로 걷다보면 결국 그들과 만나고야 마는 그런 능력이다.[12] 즉, 자신을 죽이는 신이 신체를 찾는 접시를 준 것은 그냥 눈속임일 뿐, 화신을 찾아낸 것은 모두 엄연히 어디에도 없는 신 자신이 지녔던 힘이었던 것. 말 그대로 운명적이다.'바람'답게 멀리 있는 존재에게 말을 전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고,[13] 종잡을 수 없는 바람처럼 대상을 목표없이 빙글빙글 돌게 만들 수도 있다. 그리고 공기를 자유자재로 다뤄 바람의 칼날로 도시를 파괴하고 회오리로 도시자체를 갈아버리는 압도적인 위력을 과시한다. 시범삼아 검을 휘둘러 하텐그라쥬에 거대한 상흔을 남기고 하텐그라쥬를 외곽부터 천천히 조여올 정도의 거대한 회오리 바람을 만드는 등.
시우쇠 정도를 제외하면 다른 신들은 각자 사정상[14] 권능을 파괴적으로 사용하진 않았다.[15] 그러나 어디에도 없는 신은 거리낌 없이 권능을 행사했으므로, 시우쇠, 그리고 2차 대확장전쟁 당시 발자국 없는 여신의 수호자들과 함께 작중에 등장하는 신의 권능이 모두 대적이 불가능한 자연재해급임을 제대로 보여주는 좋은 예시가 된다.
[1]
도깨비는 유혈이 낭자한 곳에서, 레콘은 물 근처에서, 나가는 너무 덥거나 추운 지역에서 활동이 자유롭지 않다. 반면 인간은 이 세 곳을 포함해 모든 곳을 갈 수 있다.
[2]
작중에서도 스님, 중 이라고 칭한다.
[3]
손에서 놓아도, 집어던져도, 발로 밟아도 안 깨졌고 심지어 빡친
티나한이 수십 미터 높이에서 혼이 담긴 일격을 내리 꽂아도 실금 하나 안 갔다.
[4]
비형의 한탄이 섞인 농담이었으나, 주변 사람들(케이건 드라카 포함)이 지나치게 진지하게 반응하자 농담이라고 황급히 말한다.
[5]
연재 당시
시우쇠가 피, 훗날의
타이모가 물을 마셨기 때문에 신체가 화신이 되기 위해선 각 종족이 두려워하는 것을 섭취함으로써 화신이 된다는 이유로, 케이건이 나가나 소드락을 섭취했기 때문에 화신이 된거라는 설도 돌았지만 시우쇠는 접시는 그냥 장난이라고 말한 것을 보면 딱히 의미는 없었다.
[6]
두 개의 칼이 하나로 합쳐진 케이건의 검
바라기는 이 합일을 드러내는 상징으로 해석된다.
[7]
동화되었다고 해도 완전한 것은 아닌지 사모 페이가 해답으로 "왕"을 제시하자 아주 잠깐 왕으로 대하지도 죽이지도 않고 자신이 준 것은 왕이 아니라고 부드럽게 설명하기는 한다. 직후 도로 나가 살육신으로 되돌아가지만.
[8]
다른 곳에 비유하자면 눈마새의 세상은 4명이 모여야 플레이할 수 있는 TRPG 게임, 다른 신들은 플레이어, 어디에도 없는 신은 GM(게임 마스터)이자 자신 역시 플레이어인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게임 전체를 통솔하는(=세상의 변화를 주도하는) 것은 어디에도 없는 신(GM)이지만, 네 신 중 한 명이라도 빠진다면 인원이 모자라게 되므로 어디에도 없는 신이 있더라도 게임은 중단된다.
[9]
물론 그것도 있지만 바람 자체가 변화의 속성도 가지고 있는 만큼 변화 자체는 네 종족의 신들의 합의가 있어야 하지만 그 변화를 주도하는 것은 어디에도 없는 신이라고 할 수도 있다. 비슷하게 네 종족의 신들은 서로를 인지하지 못 하지만 어디에도 없는 신이 이끌면 만나는 것 자체는 가능하게 된다.
[10]
물론 시우쇠는 얼른 그 몸에서 나오라는 의미로 한 말이겠지만 이미 케이건 드라카와 어디에도 없는 신은 둘이 아니었고 시우쇠는 이 사실을 몰랐다.
[11]
다만 케이건이 살아있었기에 시대가 정체되어있던 것이므로, 시대가 흐르기 시작한 뒤부터는 인간으로서의 케이건은 사망했다고 보는 의견이 많다. 하지만 케이건이 죽지 않았다고 보는 의견도 상당한데, 케이건이 꼭 죽어야만 변화가 시작되는 것은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작중 시우쇠가 케이건을 죽이려 한 건 '어디에도 없는 신이 저 신체에 갇혔으니 저놈을 죽여 전령시키면 된다' 는 단순한 마인드였고, 실제로는 어디에도 없는 신과 케이건 드라카는 이미 일체된 상태였다. 즉 변화가 멈춘 것이 어디에도 없는 신이 세상에 보내야 할 관심마저 케이건 드라카가 나가에 대한 증오에 쓴 것 때문이라면 그가 증오를 버리고 다시 세상에 관심을 보내는(=윷놀이에 참가하는) 것으로 변화가 다시 시작된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 하지만 그 모든 걸 떠나 팬들이 논하는 가장 큰 논쟁거리는 "신위로 돌아간 뒤에도 케이건의 인격이 그대로일까?"라는 측면일 것이다.
[12]
"너만이 자신을 죽이는 자를 죽음에서 다시 살려내며 모든 이보다 낮은 자를 위로 떠오르게 하며 발자국 없는 자의 발걸음을 추적할 수 있다! 누가 그렇게 할 수 있나? 바로 너다! 네가 바로 바람이다!" -
시우쇠
[13]
(스포일러)가 이 권능을 훔쳐 쓰고 있었다.
[14]
발자국 없는 여신은 봉인(?), 모든 이보다 낮은 여신은 아기고 본인 성격이 느긋하다. 같은 편이 휘말리는 이유도 있었다.
[15]
그러나 발자국 없는 여신의 힘은 여신의 힘을 탈취한 수호자들로 인해 간접적으로 보여지는데, 특히 갈로텍은 산꼭대기에서 폭풍을 일으키거나 광역으로 지하수를 폭발시키고, 때로는 강의 흐름을 바꿔 도시를 통째로 수몰시키는 위용을 보였다. 더불어 모든 이보다 낮은 여신은 본인의 언급으로 지반이 안정되지 않은 땅이면 지진을 일으킬 수 있다고 넌지시 언급하기도. 심지어 이마저도 못 하는게 아니라 위험해서 안 한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