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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부 바크르, 우마르, 우스만, 알리 등 이 4명만 정통 칼리파로 인정받으나 하산도 잠깐동안 칼리파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포함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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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스 왕조 제25대 칼리파
알 카디르 القاد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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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이름 |
아부 알 아바스 아흐메드 이븐 이스하크 أبو العباس أحمد بن إسحاق |
출생 | 947년 9월 28일 |
아바스 왕조 바그다드 | |
사망 | 1031년 11월 29일 (향년 84세) |
아바스 왕조 바그다드 | |
재위 기간 | 아바스 칼리파 |
991년 11월 22일 ~ 1031년 11월 29일 (40년) | |
전임자 | 알 타이 |
후임자 | 알 카임 |
별명 | 알 카디르 빌라흐(القادر بالله: 신에 의해 강해진 자) |
부모 |
아버지 : 이스하크 어머니 : 딤나 |
종교 | 이슬람 수니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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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바스 왕조 제25대 칼리파.2. 생애
947년 9월 28일 바그다드에서 알 무크타디르의 아들 이스하크와 노예 출신의 첩 딤나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아흐메드 이븐 무함마드 알 하라위의 법학에 통달했다고 전해진다. 988년 3월 아버지 이스하크가 사망하자, 아버지의 재산 상속을 놓고 이복 여동생 아미나와 다투었다. 아미나는 당시 칼리파였던 알 타이에게 그가 반역을 꾀하고 있다고 거짓 고발했다. 그는 붙잡히지 않기 위해 잠적했다가 바스라 총독 무하디브 알 다울라에 의탁했다. 그는 알 타이가 지난날 부와이 왕조와 맞서 싸웠던 튀르크 장군 사부타킨에 의해 옹립되었지만, 자신은 부와이 왕조를 절대적으로 따른다며 부와이 왕조가 알 타이를 몰아내고 자신을 새 칼리파로 옹립해달라고 청원했다.991년 11월 22일, 바그다드의 실권자 바하 알 다울라는 병사들에게 급료로 지급할 돈을 마련하기 위해 궁궐에 쳐들어가 약탈을 자행하고 알 타이를 폐위했다. 이후 칼리파가 된 그는 이전 칼리프들과는 달리 전임자를 실명시키지 않고 궁궐에서 여생을 보내게 했다. 이후 바하 알 다울라의 뜻에 순순히 따랐고, 시아파적인 행동을 보여 인정받았으며, 바하의 딸과 결혼하기도 했다. 동방의 사만 왕조와 가즈니 왕조는 그를 칼리파로 인정하지 않고 금요일 기도와 동전에 알 타이의 이름을 계속 사용하다가 1000년이 되어서야 인정했다. 그가 집권한 이래 10년간 행한 유일한 독자적인 행동은 모스크를 하나 건설하고 1001년에 9살 밖에 안 된 아들 무함마드를 후계자로 공표한 것뿐이었다.
997년, 동방의 부하리 왕조 통치자 파흐르 알 다울라가 사망했다. 이에 바하는 동방으로 진격해 파르스를 장악했다. 이후 바하는 거주지를 시라즈로 옮기고 바그다드와 이라크를 사실상 속주로 격하했다. 바하가 바그다드를 떠나자, 그는 이 때를 틈타 재상을 세우고 신하들을 독자적으로 지명했다. 여기에 바하가 이끄는 부와리 왕조가 가즈니 왕조의 술탄 마흐무드의 침략에 시달리느라 이라크에 별다른 신경을 쓰지 못하면서, 그의 입지는 점차 강화되었다.
1000년 이라크의 여러 지역에 서신을 보내 지역민들에게 자신을 따르라고 촉구했으며, 1003년에 바하로부터 수석 에미르로 임명된 아부 아흐마드 알 무사위가 수니파 관행에 반대하는 12명의 법관들을 임명하는 걸 강력히 반대해 민중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1006년 4월 쿠란 개정판에 대해 수니파가 반대하고 시아파가 지지하자, 그는 개정판을 비난하는 학자 위원회를 소집하여 쿠란 개정판을 불태우게 하고, 이를 저주한 시아파 당주들을 처형시켰다. 바하는 병력을 보내 바그다드를 진정시켰지만, 대놓고 수니파를 옹호하는 그를 어찌하지 못했다.
1010년 8월, 메소포타미아 상부의 우카일 에미르 키르와시 이븐 알 무칼라가 파티마 왕조의 종주권을 인정했다. 파티마 왕조는 아바스 왕조를 철저히 부정하고 독자적인 칼리파를 세운 시아파 정권이었기에, 바그다드 코 앞까지 그들의 영향력에 귀속된 것은 실로 큰 위협이었다. 이에 바하에게 사절을 보내 우카일 에미르에게 압력을 가하도록 촉구했고, 키르와시는 바하의 강한 압력에 굴복하여 아바스 왕조로 돌아섰다. 한편, 메카의 에미르들이 파티마 왕조의 종주권을 인정하고 이라크에서 순례하러 온 이들을 박대하자, 사절을 보내 아바스 왕조를 따라달라고 호소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011년 11월, 그는 수니파 학자들이 서명한 바그다드 선언문을 발표했다. 이 선언문은 파티마의 교리는 거짓이라고 규탄하며,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를 신격화시키는 그들은 이슬람교의 적이라고 비난했다.
1012년 바하가 사망한 뒤, 그의 아들인 술탄 알 디올라가 뒤를 이어 부와이 왕조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그러나 또다른 부와이 왕족 무샤리프 알 다울라가 반기를 들면서, 부와이 왕조는 심각한 내전에 시달렸다. 그는 이 덕분에 부와이 왕조로부터 별다른 간섭을 받지 않고 독자적인 행보를 이어갈 수 있었다. 1017년, 무타잘리 학파와 시아파의 교리를 비난하고 무타잘리 성향을 보인 하나피파 법학자들에게 속죄하라고 명령했다. 1018년 수니파 교리를 공식화한 리살라 알 카디리야(Risála al-Qadiryya)를 공표했다. 그는 이 칙령에서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만 참된 칼리파이며 아부 바크르, 우마르, 우스만을 찬탈자로 규탄하는 시아파를 비난하고, 모든 무슬림은 무함마드의 후계자인 칼리파들의 선례를 받들라고 명령했다.
1023년, 술탄 알 다울라로부터 이라크에 대한 통치권을 탈취한 무샤리프 알 다울라가 바그다드에 찾아왔다. 그는 무샤리프에게 영예를 부여했지만, 무샤리프가 자신의 허락을 구하지 않고 튀르크 장교들에게 충성 맹세를 갱신하자 항의했다. 이에 무샤리프는 그를 달래기 위해 앞으로는 칼리파의 동의 없이는 결정을 내리지 않겠다고 약조했다. 1025년 무샤리프가 사망한 뒤 무샤리프의 형제 잘랄 알 다울라와 조카 아부 칼리자르간의 권력 분쟁이 벌어졌다. 처음에는 아부 칼리자르가 권력을 장악했고, 그는 수석 에미르를 칼리자르에게 수여했다. 그러나 1026년 잘랄 알 다울라가 칼리자르를 물리치고 바그다드에 입성했다. 잘랄은 칼리파의 권한을 축소하려 했지만, 군대가 다시 한 번 잘랄에게 등을 돌리자 어쩔 수 없이 바그다드를 떠나야 했다.
1030년, 아들 알 카임을 차기 칼리파로 지명했다. 1031년 11월 29일 병사했고, 처음에는 칼리팔 궁전에 묻혔다가 1032년에 알루사파로 옮겨졌다. 이후 알 카임이 새 칼리파로 등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