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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슬라우그 Áslaug Sigurðardóttir아슬라우그는 《 스노리 에다(신 에다)》, 《 볼숭 일족의 사가》, 《 라그나르 로드브로크의 사가》 등에 등장하는 볼숭 가문이자 부들룽 가문(Buðlungar)의 일원이다. 이복동생으로 시그문드와 스반힐드가 있었다.
영웅 시구르드와 발키리 브륀힐드의 자식이라는 유니크함과 에다에 별다른 행적이 적혀있지 않다는 창작하기 좋은 설정 덕에 후기 게르만 전설에 자주 등장한다. 다만 1100년대에 작성된 '크라쿠말'(Krákumál)은 물론이고, 1180년에서 1200년 사이에 쓰인 '스쿌둥 일족의 사가'(Skjǫldungasaga)에서도[3] "라그나르는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전사이자 스웨덴 왕의 후손인 ' 포프니르를 죽인 시그바르두스'(Sigvardus Foffnisbane)의 딸 아슬라우가(Aslauga)와 결혼했다. 둘 사이에서 장남 이바르, 윗세르크, 비오른, 라우근발드(청소년기에 전투 중에 사망), 그리고 막내 시그바르두스 다섯 형제가 태어났다." 고 적혀있는 걸로 보아 시구르드의 딸이라는 설정의 범상찮은 여자가 라그나르의 두번째 아내가 돼서 많은 아들을 낳았다는 전설 자체는 의외로 '신 에다'나 '볼숭 일족의 사가' 이전부터 전해지고 있던걸로 보인다.
아슬라우그의 전설은 노르드 민족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위대한 바이킹 왕의 격을 보다 더 높이기 위해, 혹은 뱀눈 시구르드의 손자로 전해지는 미발왕 하랄 1세 하르파그리의 노르웨이 왕조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창작되었거나 특정한 지방의 전승에서 편입된거라 분석된다. 또한 그녀의 전설이 아이슬란드를 포함한 스칸디나비아 북부 중심으로 형성됐으며, 라그나르 사가의 마지막 부분에서 아이슬란드 초기 이주민 중 하나인 토르드(Þórðr)가 비요른의 증손주로 기록돼있는 점을 들어, 당시 아이슬란드인들이 스스로를 볼숭의 후예로 여기던 풍조가 반영된거란 분석도 있다.
또한 그 자체로 현명하고, 용감하고, 리더십도 갖춘 등 노르드인들이 귀감으로 여길만한 여성상이 반영된 캐릭터라는 말도 있다. 즉 라그나르가 집을 떠나서 모험하고 약탈하는 오드라면, 아슬라우그는 집에 남아서 가정은 물론이고 왕국 전체를 관리하는 프레이야에 비견되는 속성[4]을 가지고 있다고도 한다.[5]
2. 《크라쿠말》(Krákumál)
Hjuggu vér með hjörvi.
Hér mundu nú allir
burir Áslaugar bröndum
bitrum hildi vekja,[6]
ef vandliga vissi
um viðfarar ossar,
hvé ófáir ormar
eitrfullir mik slíta.
Móðernis fekk ek mínum
mögum, svá at hjörtun dugðu.
짐은 검을 들고 내리쳤노라.
아슬라우그의 아들들이
내가 어떤 대우를 받았고
얼마나 많은 뱀들이 독니로 날 찔러댔는지
충분히 이해한다면,
그들 모두가 예리한 칼날을 휘두르며
이곳에 전쟁을 불러오겠지.
나와 맺어진 그들의 어머니로 하여금
아들들의 심장은 강인해졌다네.
Hér mundu nú allir
burir Áslaugar bröndum
bitrum hildi vekja,[6]
ef vandliga vissi
um viðfarar ossar,
hvé ófáir ormar
eitrfullir mik slíta.
Móðernis fekk ek mínum
mögum, svá at hjörtun dugðu.
짐은 검을 들고 내리쳤노라.
아슬라우그의 아들들이
내가 어떤 대우를 받았고
얼마나 많은 뱀들이 독니로 날 찔러댔는지
충분히 이해한다면,
그들 모두가 예리한 칼날을 휘두르며
이곳에 전쟁을 불러오겠지.
나와 맺어진 그들의 어머니로 하여금
아들들의 심장은 강인해졌다네.
12세기 초중반에 노르웨이 지배하의 오크니 제도에서 쓰여진걸로 추정되는 시. 26연에 아슬라우그는 라그나르의 마지막 아내이며, 그녀의 모든 아들들이 아버지가 뱀굴에서 죽은 사실을 알면 복수하러 올 것이라고 적혀있다. 시구르드나 브륀힐드의 자식이라는 말은 없지만 아들들의 강인한 심장(혹은 굳건한 마음)은 아슬라우그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라는 구절을 통해 범상찮은 여인이라는 암시를 준다.
추정상 '신 에다'보다 이른 12세기 초중반에 쓰여졌으니 연대추정이 틀린게 아니라면 구전이 아닌 문헌으로 남은 아슬라우그의 기록중에 가장 오래된 작품일 가능성이 있다.
3. 《스노리 에다》(신 에다), 《볼숭 일족의 사가》
스노리의 《신 에다》(산문 에다)에선 시구르드가 젊어서 본 자식이며, 흘륌달리르(Hlymdalir)[7]에 있는 헤이미르(Heimir 혹은 Heimer)의 손에서 자랐고, 그녀의 슬하에서 위대한 가문이 많이 나왔다는 짧은 설명만 있으며, 특이하게도 어머니가 누구인지 적혀있지 않다.[8][9] 동시에 헤이미르가 누구이며 시구르드와는 어떤 관계인지, 흘륌달리르는 어디인지, 아슬라우그는 어쩌다가 아버지인 시구르드와 떨어져서 자라게 되었는지도 마찬가지로 생략되었다. 신 에다의 부록인 스칼드 목록(Skáldatal)에 남편 라그나르와 아들들과 함께 시인으로 이름이 올라있다.《고 에다》(운문 에다)에서는 등장하지 않는다. 시구르드가 시그드리파(=브륀힐드)와 언약을 맺은 직후부터, 브륀힐드가 사기결혼을 당한 것을 깨닫고 시구르드를 죽이라고 요구하는 시점 사이를 연결하는 시들이 전부 유실되었기에 이 공백으로 남은 부분에 아슬라우그에 대한 언급이 있었을 지도 모르지만 진실은 불명이다.
《볼숭 사가》에서는 브륀힐드가 군나르와 결혼하러 떠나기 전 헤이미르에게 시구르드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인 아슬라우그를 부탁하는 장면에서 짧게 언급된다.
4. 《라그나르 로드브로크의 사가》(Ragnars Saga Loðbrókar)
대중들이 알고 있는 아슬라우그의 행적은 대부분 《 라그나르 로드브로크의 사가》에서 나온다.이 《라그나르 로드브로크의 사가》는 제목대로 라그나르가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아슬라우그와 헤이미르의 이야기를 프롤로그에 배치시켜 《볼숭 사가》와의 연결고리를 강조하며,[10], 아슬라우그와 그녀의 아들들도 라그나르 못지않게 주인공에 가까운 비중과 활약을 보여준다. 이에 핀누르 욘손(Finnur Jónsson)이나 요나스 크리스티안손(Jónas Kristjánsson) 같은 일부 학자들은 저서에서
"아슬라우그가 라그나르보다 훨씬 독특한 캐릭터로 그려져 있다."
"남편보다 더 진주인공에 가깝다."
라고 평하기도 했다. <
TV Tropes>에서도 아슬라우그를 진주인공(The Protagonist)으로
분류한다."남편보다 더 진주인공에 가깝다."
4.1. 어린 시절
영웅 시구르드와 발키리 브륀힐드의 딸로 태어난 아슬라우그는 브륀힐드가 군나르와 결혼한 이후, 어머니의 형부이자 대부였던 흘림달뤼르의 군주 헤이미르에게 맡겨졌다. 불행히도 그녀가 세 살 되던 해에 친부모가 모두 비극적으로 죽었고, 이 소식을 전해들은 헤이미르는 브륀힐드의 죽음을 애도하며 자기 왕국을 다스리는 것도 잊을 정도로 슬퍼했다. 그러다가 아슬라우그도 부모님을 따라 살해당할지도 모른다는 사실[11]을 깨달은 헤이미르는 정신을 차리고 큼지막한 하프를 만들어서 그 안의 빈 공간에 아슬라우그를 집어넣어 숨긴 뒤[12] 왕국을 떠나 스칸디나비아를 향해 방랑길에 올랐다. 그는 전사임과 동시에 뛰어난 연주자이기도 했기에 아슬라우그가 울면 하프를 연주해 그녀를 재웠고, 길을 걷다가 폭포가 나오면 손수 씻겨주기도 했으며, 굶주림에 대비해 하나만 먹어도 꽤 오랜 시간 동안 식사할 필요가 없어지는 포도주 부추(Vinlauk, wine-leek)라는 마법 채소[13]도 먹여주는 등 지극 정성으로 돌봤다.어느 날 헤이미르는 노르웨이의 린데스네스 지방을 여행하다가 스판가르헤이드(Spangarheið)라고 불리는 농가[14]에서 묵게 되었는데, 그곳엔 아키(Aki)와 그리마(Grima)라는 가난한 부부가 살고 있었다. 헤이미르가 방문할 당시 남편인 아키는 일을 하러 나갔기 때문에 집에는 그리마만 남아있었는데, 그녀는 처음에 헤이메르의 차림새를 보고 그를 거지라고 생각했으나 헤이미르가 입은 낡은 옷 아래에서 반짝이는 금반지와, 하프 밖으로 살짝 빠져나온 비단옷을 보고 사실은 부자라는 것을 눈치챘다. 욕심에 눈이 먼 그리마는 일터에서 돌아온 남편 아키를 꼬드겨 헛간에 마련된 숙소에서 잠자고 있었던 헤이미르를 살해했다. 아키는 그나마 양심이 있었는지 헤이미르를 살해하길 주저했지만, 그리마는
"당신이 없는 동안 헤이미르가 내게 음탕한 말을 하며 추파를 던졌고(당연하지만 거짓말이다), 그를 죽이지 않는다면 난 내게 반한 헤이미르와 결혼해서 당신을 내쫓아 버리겠다."
라며 몰아세웠다. 결국 아키는 날카롭게 갈린 도끼를 들고 잠이 든 헤이미르를 죽였다.그후 부부는 하프 속에 있었던 아슬라우그를 발견하고 살인을 은폐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자신들이 키우기로 결정한다. 그리마는 아슬라우그에게 자기 모친의 이름을 따서 까마귀라는 뜻의 '크라카'(Kráka)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못생긴 자신들과는 전혀 닮지 않은 아슬라우그를 딸이라고 주장했다가 주변 사람들의 의심을 살 것을 우려해서 머리를 밀어버린 뒤에 두피에 타르를 발라 머리카락이 자라지 못하게 만들고,[15] 후드를 쓰고 다니도록 강요했다. 여기에 더해 까마귀라는 이름에 걸맞게 낡은 검은 옷만 입힌데다가, 장성해서 그들을 떠날 때까지 허드렛일을 시키며 부려먹었으니 그야말로 아동 학대였다.[16]
4.2. 라그나르 로드브로크와의 만남
세월이 흘러 크라카는 장성했고, 친척과 친구들을 만나러 노르웨이를 찾아온 덴마크의 왕 라그나르의 부하들이 여행 중에 먹을 빵을 굽기 위해 마침 근처에 있었던 아키와 그리마의 농장을 방문했다. 부하들은 그리마에게 빵 굽는 것을 도와달라고 요청했으나 그녀는 빵을 굽기엔 자기 손이 너무 뻣뻣하니 대신 딸을 불러주겠다고 했다. 이때 근처에서 양을 치고 있었던 크라카는 라그나르의 배들이 집 근처 항구에 정박하는 것을 발견하고 일부러 목욕을 해서 타르를 씻어내리고 부하들 앞에 나타났다. 그녀의 미모에 반한 부하들은 멍하니 있다가 그만 굽던 빵을 홀랑 태워먹었고,[17] 그 일로 라그나르가 질책하자 부하들은 크라카를 본 것을 설명했다."그녀를 데려오되,
옷을 입지도 벗지도 않고, 굶지도 먹지도 않으며, 혼자도 여럿도 아닌 상태에서 찾아오게 하라."
는 명령을 내렸다. 부하들에게 수수께끼를 전달받은 크라카는 그물로 몸을 가려 말 그대로 입지도 벗지도 않은 어정쩡한 차림을 하고, 식사를 한다고 볼 수는 없는 양파를 먹으면서, 여러 사람이 아니라 개 한 마리를 끌고 찾아가는 것으로 지혜롭게 답을 보였고, 그 지혜에 감탄한 라그나르는 그녀에게 전처인 토라의 소유였던 금실이 수놓아진 옷들을 선물하며 청혼했다.[18] 그러나 크라카는 그런 귀한 옷은 농부의 딸인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다고 말하며 거절했고, 라그나르가 여행을 마친 후에도 자신을 아내로 맞아들이고 싶다는 마음이 변치 않는다면 그때 다시 찾아와서 청혼해달라고 요구했다. 라그나르는 자신의 마음은 변치 않을거라 장담했고, 그 말대로 노르웨이에서의 볼 일을 마칠 때까지 크라카를 잊지 않았는지 돌아오는 길에 다시 농장으로 찾아가서 그녀를 맞아들였다.라그나르가 돌아오자 크라카는 양부모를 찾아가서
"너희가 내 대부였던 헤이미르를 죽인걸 이미 알고 있다."[19]
라고 밝힌 뒤에 "여태 같이 살았던 정이 있으니 지금 당장 너희를 벌하진 않겠지만, 앞으로 매일 매일이 그 어느 때보다 고통스러울 것이다."
라며 자신이 손대지 않아도 어차피 얼마 안가 파멸할 운명인 양부모를 뒤로 한 채 남편과 함께 떠났다고 한다. 라그나르는
덴마크 왕국으로 돌아가는 배 위에서 크라카와 첫날 밤을 보내려 했지만, 그녀는 돌아가서 제대로 된 결혼식을 치른 뒤에 관계를 갖고 싶다고 부탁했으며 라그나르는 이를 들어주었다. 그들은 라그나르의 왕국으로 돌아가 호화로운 결혼식을 치렀는데, 정작 그날 밤 크라카는 예지력으로 미래를 본 후 "우리는 사흘 동안 같은 공간에서 지내되 결코 몸이 닿아서는 안되며, 또한 거룩한 신들께 희생제를 지내야 합니다. 그래야 제 아들이 무사히 태어날 수 있으며, 이를 따르지 않고 성급하게 관계를 가진다면 아이는 뼈 없이 태어나게 될겁니다."
라고 라그나르에게 충고했으나 그는 듣지 않았고 결국 그날 관계를 가지고 말았다.[20]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결혼생활은 행복했으나, 크라카의 경고대로 장남 이바르는 뼈가 있어야 할 자리에 연골만을 가지고 태어나서 뼈 없는 이바르(이와르 힌 베인러우시, Ívarr hinn Beinlausi)[21]로 불리게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 시절부터 또래들에 비해 키가 크고 건장했으며, 잘생긴데다, 지혜까지 갖춘 사기 캐릭터였다고 한다.
그 이후로도 차례대로 차남 굳센 비요른(뵤른 요른시다 Bjǫrn Járnsíða), 삼남 하얀 셔츠 할프단(할브단 휫세르크,[22] Halfdan Hvítserkr), 사남 로근발드(Rǫgnvaldr)로 총 네 명의 형제를 낳았다.[23]
4.3. 에위스테인과의 불화와 다섯 번째 아들의 탄생
어느 날 라그나르 로드브로크의 대리로 스웨덴을 통치하던 섭정왕이자 친우였던 에위스테인 벨리(Eysteinn Beli)[24]가 축제를 열고 라그나르를 초대했다.[25] 에위스테인은 자신의 딸이었던 잉기뵤르그(Ingibjǫrg)[26]를 데려다가 라그나르에게 술시중을 들게 해서 둘이 같이 있는 모습이 보여지게끔 유도했고, 그 모습을 본 라그나르의 부하들은"미천한 크라카와의 결혼만 아니었다면 폐하께선 저 고귀하신 공주님과 맺어졌을텐데!"
라고 안타까워하며 라그나르에게 크라카를 내치고, 잉기뵤르그를 아내로 맞으라고 부추기기 시작했다.[27]라그나르는 그 말을 듣고 귀족 집안과의 결혼에 욕심이 난건지, 아니면 부하들의 등쌀에 떠밀린건지 결국 잉기뵤르그와 약혼을 맺고 말았다. 다만 라그나르도 막상 크라카를 내치려니 조금 망설여지긴 한 건지 그 자리에서 바로 공주를 데리고 자기 왕국으로 돌아가도 됐을 것을 굳이 언약만 맺은 상태로 기다리라고 한데다가, 귀가하는 길에 부하들을 모아놓고 약혼한 사실을 함부로 떠벌리지 말라고 명령했으며 이를 어기는 자는 사형에 처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하지만 과거 아버지 시구르드가 파프니르의 심장을 먹고 얻은 새들의 이야기를 알아듣는 능력을 물려받은 크라카는, 마찬가지로 새들의 말을 듣고 그 사실을 눈치챘고, 덴마크로 돌아온 라그나르를 찔러보며 자신에게 할 말이 있지 않냐고 여러 차례 물어봤으나 라그나르는 여전히 망설이고 있었는지 계속해서 답변을 회피했다. 라그나르가 끝까지 시치미를 떼자, 크라카는 그가 스웨덴의 공주와 약혼한 사실을 알고 있으며,[28] 마침내 자신이 영웅 시구르드와 발키리 브륀힐드의 딸 아슬라우그라는 것을 밝혔다. 그리고 자신이 드래곤 슬레이어의 딸이라는 증거로, 곧 태어날 막내아들의 눈에 뱀(혹은 용)의 형상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했으며, 예언이 틀린 것으로 밝혀지면 그땐 잉기뵤르그와 결혼해도 좋다고 장담했다. 얼마 후 아슬라우그는 아들을 낳았고, 과연 예언대로 아기의 눈동자에는 뱀의 형상이 새겨져 있었다. 아이를 받아본 라그나르는 외할아버지처럼 훌륭한 전사가 되라는 의미로 이름을 시구르드라고 지어주고, 아들이 오딘의 후예들 중에서 으뜸으로 꼽힐 것이며, 그 눈 속의 뱀(ormr í auga, 오름 이 아우가)으로 하여금 많은 적을 무찌를 거라 덕담을 남긴다.
한편 이 '눈 속의 뱀'은 안구에 뱀의 형상이 새겨진 것이 아니라 시선 자체가 무시무시한 힘을 가진, 즉 볼숭 일족에게 내려오는 일종의 마안을 은유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 볼숭 사가》에 따르면 시구르드는 맹렬하게 이글거리는 눈동자를 가지고 태어났는데, 그를 암살하려던 구토름도 시구르드의 눈을 보고 쫄아서 몇 번이고 돌아갔다고 한다. 그리고 아슬라우그의 이복여동생이었던 스완힐드도 아버지 시구르드로부터 이 마안을 물려받은 덕분에 그녀와 눈을 마주보려는 사람이 거의 없었고, 간통죄를 저질러 말에 짓밟히는 방법으로 처형당할 때 스완힐드가 눈을 크게 부릅뜨자 말들이 두려워하며 짓밟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의 머리에 자루를 뒤집어씌워서 시선을 차단시킨 뒤에야 겨우 형을 집행할 수 있었다고 한다. # 혹은 뱀의 눈과 같은 강렬한 세로동공이었다는 말도 있다.
아무튼 이후 라그나르는 당연하게도 잉기뵤르그와의 약혼을 무효로 돌렸으며, 에위스테인과의 우정도 깨지고 말았다.
"상냥하신(혹은 고우신) 숙녀 아슬라우그"
라고 부르며 그녀가 자신이 죽은 걸 알면 분노해서 이복동생들을 데리고 복수해 줄 것이라 믿은 것을 보면
계모에 대한 통념과는 다르게[31] 아슬라우그는 전처인 토라의 자식들과 매우 원만한 관계였던 것으로 보인다.그 유언대로 에이렉과 아그나르 형제의 죽음에 분노한 아슬라우그는 자신이 낳은 아들들에게 이복형제들의 복수를 해야 한다고 적극적으로 주장했으나, 맏이인 이바르는 에위스테인의 잔혹한 성미와 웁살라를 수호하는 시빌야의 마력을 우려해서 나서길 주저했다.[32] 그런데 고작 세 살이었던 막내 시구르드가 어머니의 뜻이 그렇다면 에위스테인은 웁살라의 왕좌에서 내려와야 하며, 우리를 막겠다고 제물을 낭비해가며 마술을 부려봤자 소용 없을 것[33]라고 결의를 내비치자, 이바르와 다른 형제들도 마음을 바꿔서 다함께 스웨덴으로 쳐들어가게 된다. 아슬라우그 역시 갑옷을 입고 1,500기의 기병들을 지휘하며 친히 스웨덴으로 진격했는데 이 모습을 본 사람들은 그녀를 아슬라우그 대신 '란달린'(Randalin)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이 '란달린'이라는 명칭의 의미는 확실하지 않으나 '방패의 가장자리'라는 뜻의 Randa[34]와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보호의 여신 Hlin의 합성어, 즉 보호(방패)의 여신으로 쉴드메이든 혹은 발키리를 의미하는 케닝(Kenning)이었다는 설이 있다. 이 설이 맞다면 역시 피는 못속이는 걸지도.
4.4. 라그나르 로드브로크의 죽음
란달린과 그녀의 아들들은 긴 전쟁 끝에 스웨덴의 섭정왕 에위스테인을 쓰러뜨리고 에이렉과 아그나르 형제의 원수를 갚았으며, 모험과 약탈을 통해 라그나르를 능가하는 명성을 얻게 되었다. 하지만 이에 왕권이 흔들릴 것을 우려한 라그나르는 아들들의 명성을 넘어서기 위해 친히 배 두 척을 이끌고 잉글랜드 원정을 나가기로 결정했다. 이에 란달린은 배 두 척으로는 부족할테고, 잉글랜드의 개울과 얕은 강들을 고려해서 랑스킵(롱십)은 물론이고 작은 보트들도 몰고 가라고 충고했지만, 라그나르는 배 두 척만 가지고 잉글랜드를 약탈하는 최초의 바이킹이 되고 싶다면서[35] 그녀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라그나르가 떠나기 직전 란달린은 결혼할 때 받은 토라의 비단옷들에 대한 답례라며 직접 만든 솔기 없는 옷[36]을 건네줬고, 라그나르는 이를 고맙게 받아들이며 작별을 고했다.
라그나르는 준비해간 배 두 척이 전부 난파하는 일을 겪으며 겨우겨우 잉글랜드에 도착했으나, 결국 역으로 노섬브리아의 왕 앨라 2세에게 포로로 잡혀 뱀굴에 던져졌다. 처음엔 란달린이 준 옷 덕분에 무사할 수 있었지만 옷에 걸린 마법을 간파한 앨라 2세가 이를 벗겨냈고, 라그나르는 결국 뱀의 독으로 인해 목숨을 잃게 되었다.[37] 이복형제들도 모자라 아버지까지 돌아가셨다는 비보를 들은 아들들은 마침내 분노가 폭발해버렸고,[38] 바이킹으로 대규모 군대를 조직하여 대노섬브리아 전쟁을 개시했다.
이후의 묘사를 보면 란달린은 노인이 될 때까지 별일 없이 잘 살았으며, 아들 휫세르크가 죽었을 때 아들을 기리는 짧은 시를 지은 후 사가에서 퇴장한다.
5. 그 밖의 전승들
- 《라그나르의 아들들의 이야기》(Ragnarssona þáttr)에서는 아슬라우그의 행적들이 위와 유사하지만 조금 간략한 버전으로 전해지며, 뱀눈 시구르드가 아르눌프(Arnulf)와의 싸움에서 전사한 뒤에 그의 딸[40]을 데려다가 대신 키워줬다고 한다.
- 아슬라우그가 크라카로 살았던 노르웨이 린데스네스의 크라케베켄(Kråkebekken)이라는 강이 크라카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졌다는 설이 있다고 한다. 또한 17세기의 기록에 따르면 한 소녀가 하프를 타고[41] 린데스네스의 해안으로 흘러들어왔고 이후에 덴마크의 왕비가 되었다는 전설이 아주 옛날부터 구전되고 있으며, 아슬라우그의 이름을 딴 작은 고분(Asløgshaugen)도 있었다고 한다. 이때문에 아슬라우그 이야기는 라그나르 로드브로크와 별개로 존재하던 린데스네스 지방의 전설이었으나, 린데스네스와 덴마크 사이에 교류가 발생하면서 자연스럽게 합쳐진 것이 아닌가 하는 분석도 있다. 이 설이 사실이라면 덴마크의 왕이었던 라그나르가 스판가르헤이드의 항구에 정박했다가 크라카를 만난 에피소드는 현실에서 서로 다른 지방의 전승들이 만나서 섞인 상황을 상징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 삭소 그라마티쿠스의 저서인《데인인의 사적》(Gesta Danorum, 게스타 다노룸) 9권에 등장하는 레그네루스(Regnerus, 라그나르의 라틴어식 이름)의 세 번째 아내[42]인 수안로가(Suanlogha)[43]가 아슬라우그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수안로가의 비중은 크지 않지만 윗세르쿠스(Withsercus, 휫세르크)의 죽음을 전해들은 레그네루스가 슬픔을 못이기고 폐인이 되자 그런 남편을 질책하고 아들의 복수를 하도록 격려했고, 삭소는 그녀를 남자보다 더 용감하다고 서술했다. 그러나 이후 레그네루스가 스코틀랜드를 터는 도중에 토라처럼 병사한다.
5권에서 마법을 사용해 의붓아들인 '웅변가' 에리쿠스(Ericus Disertus)를 도와주는 크라카(Craca)라는 마녀[44]가 아슬라우그의 전설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하는 추측이 있다.[45] 이 수안로가와 크라카에 대해선 삭소가 아슬라우그의 전설을 알고는 있었지만 자세히 언급했다가는 덴마크가 아닌 노르웨이 왕조가 주목받을걸 염려해서 일부러 그녀의 행적을 파편화했고, 수안로가라는 이름 또한 스완힐드와 아슬라우그의 이름을 섞어서 그녀가 드래곤 슬레이어 시구르드의 딸이란걸 간접적으로 드러낸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있다.[46]
- 덴마크의 민담에 등장하는 크라겔릴(Kragelil)이라는 소녀 역시 아슬라우그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측되며, 특히 <카를과 크라겔릴>(Karl og Kragelil)이라는 발라드에서 설명되는 크라겔릴의 사연은 아슬라우그의 캐릭터와 몇 가지 유사점을 보인다.[47]
- 페로 제도의 민요인 <브륀힐드의 발라드>(Brynhildar Táttur)에서도 역시 브륀힐드와 시구르드의 딸이며 여기선 '어슬라'(Ásla)라고 불린다. 그러나 그림힐드의 음모로 시구르드를 잃고, 설상가상으로 약혼자를 뺏어간 구드룬의 조롱으로 인해 우울증에 걸린 브륀힐드는 어슬라를 낳자마자 아이를 보고 싶지 않다며 시녀들을 시켜 딸을 강물에 버렸다. 강에 떠내려간 어슬라의 운명은 다른 발라드에서 이어지는데, 본문과 유사한 과정을 거쳐 라그나르 로드브로크와 만나 덴마크의 왕비가 되었다. 그나마 세 살 때까진 어머니와 함께 살았으며, 헤어질 당시에도 믿을 만한 보호자에게 맡겨진 메이저 전승과는 달리, 여기선 멘붕한 어머니에겐 버림을 받고 아버지는 물론이요, 외조부에게도 잊혀진 탓에 취급이 더 나빠졌다. 그래도 덴마크의 왕비가 되었다는 결말은 동일하니 모두가 죽거나 패망한 와중에 호그니 2세와 더불어 유이하게 끝이 좋은 인물이다.
6. 기타
인생에 비극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가인 볼숭 일족들은 물론이고, 웬만한 사가에 나오는 등장인물들과 비교해도 잘 살다 갔다. 남편인 라그나르 로드브로크를 먼저 떠나보내긴 했지만 그땐 이미 둘 다 중년을 훌쩍 넘긴 나이였을테고, 특히 연상인 라그나르는 노년에 가까웠을테니 일찍 사별한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어려서 전사한 로근발드를 제외한 나머지 자식들이 대성한 것을 보면 자식 농사도 성공했다.어머니인 브륀힐드와 좋은 의미로도 닮았지만 그 험난한 연애운까지 닮아버렸는지 마찬가지로 남편을 다른 여자에게 뺏길 뻔 했다. 다행히 아슬라우그 쪽은 자신의 숨겨진 혈통을 무기로 삼아 남편을 지켜냈지만, 기억을 잃었다는 정당성이라도 있는 아버지 시구르드와는 다르게 라그나르는 거의 자의로 넘어갔다.[48] 사실 신분제 사회에서 자기 정체를 숨긴 아슬라우그도 특이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정체를 드러냈을 당시 아들들이 모험을 떠날 만큼 성장했으니 결혼하고도 10여 년 넘게 일부러 평민인 척 했고, 그동안 주변 사람들이 신분을 트집잡아 멸시하는 것도 전부 견뎠다는 말이다. 이유는 불명이나 양부인 헤이미르가 염려했던 것을 기억하고, 니블룽 가문의 추적을 피하려 그랬을수도 있으며, 자신의 혈통을 증명할 기회는 뱀눈 시구르드가 태어나는 순간이라는 미래를 봤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슬라우그의 예지력은 어머니 브륀힐드에게서 물려받은 것일 수도 있고, 또는 《볼숭 일족의 사가》에서 시그니가 시게이르의 아내가 되기 싫다고 애원하는 장면에서
"우리 가문에 흐르는 예지력이 제게 알려준 바에 따르면[49] 이 결혼을 무르지 않으면 가족들에게 끔찍한 일이 생길겁니다."
라고 말한 것을 보면 이 힘은 볼숭 일족의 내력일 수도 있다.헤이미르가 어린 아슬라우그를 돌보는 장면과, 아키와 그리마가 하프에서 아슬라우그를 발견하는 장면, 그리고 크라카(아슬라우그)가 나신에 그물을 휘감고 덴마크 왕 라그나르를 찾아간 장면들이 북유럽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줬는지 각각 여러가지 버전으로 그려지기도 했다. 또한 19세기 스웨덴에서는 <헤이메르 왕과 아슬라우그>(Kung Heimer och Aslög)라는 발라드가 작곡되기도 했으며, 아이슬란드의 에이나르 욘손 박물관에는 어린 아슬라우그를 재우는 헤이미르를 묘사한 조각상이 있다.
노르웨이의 스판게레이드에서는 여전히 토속적인 캐릭터로서 명맥이 이어지고 있는지 라그나르를 만나러 가는 크라카의 모습을 본뜬 조각상이 세워지거나[50] 라그나르와의 만남을 각색한 연극이 상영되기도 했다.
962번째 소행성이 아슬라우그의 이름을 땄다. (962 Aslög)
7. 각종 매체에서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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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덴마크& 페로 제도의 포크 트로니카(Folktronica) 밴드 Valravn의 노래 Kraka. 아케와 그리마의 농장에서 노예로 살던 크라카가 그물을 뒤집어쓰고, 양파를 씹으며, 큰까마귀 한 마리를 데리고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내용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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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
바이킹스>에서 라그나르의 두 번째 부인으로 등장한다. 전승을 반영해서 환시를 보는 예지의 힘을 가지고 있으며, 용살자 시구르드와 쉴드메이든 브륀힐드의 딸을 자칭한다. 다만 사가와는 다르게 라그나르의 첫 번째 부인이었던 라게르사가 진히로인급으로 각색된데다가, 아슬라우그는 그 진히로인의 심기를 거스르는 포지션이라 그런지 주인공급 활약을 하는 라게르사에 비하면 불륜을 저지르거나
이건 안하는 캐릭터를 찾는게 더 드물다[51], 자식들을 공정히 대하지 않거나, 술에 빠져 가정을 돌보지 않다가 비요른의 딸이 죽도록 방치하는 등 부정적인 모습으로 그려진다. 물론 전처 라게르사의 자식인 비요른의 사랑을 이뤄주거나, 반역자의 아내인 토르비를 거둬서 보호하고, 시기와도 친분을 다지는 등 나름대로 노력은 하지만 결국 본인 과실로 인해(드물게는 단순히 운없이) 말아먹고 최후에는 모두 그녀에게 등을 돌린다.
사가에서는 전사와 지휘관으로서의 면모도 보이나 여기선 쉴드메이든인 라게르사와의 대비를 위해서 생략된 듯 하며[52], 어린 시절도 험난하지 않았는지 라그나르의 부하들에게 목욕하는 모습을 들킬 때부터 쉴드메이든들의 시중을 받고 있었고, 보르그에게 카테가트를 빼앗겨 피난민 신세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더러운 오두막에서는 못살겠다며 징징대는 등 곱게만 자란 귀족의 전형적인 모습처럼 그려진다.[53] 또한 그녀는 더 많은 자식을 원했던 라그나르가 라게르사를 내치게 되는 원인 취급을 받는데, 정작 사가에서는 아슬라우그 본인이 손익을 따진 남편에게 버림받을 뻔한 위기에 처했던 것과 비교하면[54] 아이러니하다. 이때문에 해외에서는 아슬라우그가 지나치게 미움받을 포지션으로 만들어졌다거나, 사가 속의 아슬라우그의 행적 중에 대중에게 공감대를 살만한 것들을 뺏어다가 라게르사에게 심어줬다는 비판도 보인다. 아무튼 아슬라우그의 이야기는 북유럽 신화 매니아가 아니면 비교적 마이너한 인지도를 가진 반면, 드라마 <바이킹스>는 세계적으로 유명하기에 신화속 아슬라우그도 저런줄 아는 경우가 종종 있다.
- < 크루세이더 킹즈 2>의 올드갓 시나리오에서 이미 고인이 된 라그나르 로드브로크의 아내로 구현되어 있으며, 본인도 자연사하기 직전의 노인이지만 시작 시점에서는 살아있다. 역사적으로 검증하기 힘든 볼숭 일족이 미구현이기 때문에 아슬라우그 본인도 천한 신분(lowborn)이다. 당연하지만 부모로 알려진 시구르드와 브륀힐드도 미구현이다. 다만 트레잇과 능력치만큼은 라그나르가 신분차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아내로 삼고 싶어 했을 정도로 뛰어나다.[55] 정작 2대부터 라그나르로 플레이해볼 수 있는 샤를마뉴 시나리오에서는 시간이 지나도 등장하지 않는다는게 아쉬운 점이다. 여담이지만 전설에 따르면 두 사람이 결혼할 당시 라그나르는 이미 전처인 토라와의 사이에서 아들들을 두고 있었다는 점을 고려해서 둘의 나이차는 무려 36살이다. < 크루세이더 킹즈 3>에서도 등장하며 트레잇은 2편과 유사하다. 그리고 라그나르와의 나이차가 6살로 확 줄었다. 같은 사가 내에서 토라와 결혼했을 당시의 라그나르가 15살이었고, 아그나르와 에이렉 형제가 아슬라우그를 양어머니로 인식하고 따를 정도로 어린 나이였다면 3편의 나이차가 훨씬 납득할 만 하다. 덤으로 막내아들인 뱀눈 시구르드는 전승이 반영된건지 눈동자가 조금 특이하다.
- < Fate: Lost Einherjar 극광의 아슬라우그>에서 라그나르 로드브로크와 함께 서번트로 등장한다. 클래스는 아처. 자세한건 아처(Fate: Lost Einherjar) 문서 참조.
- 코드 기아스: 탈환의 로제의 나이트메어 프레임 퀸 크라카와 퀸 아슬라의 어원. 같은 인물을 모티브로 한 탓인지 둘은 동형기이기도 하다.
[1]
"오슬로우그" 혹은 "어슬로우그"에 가깝게 발음한다.
[2]
"아우슬로이그"라고 발음한다.
[3]
대부분 실전됐고 '사가 단편'(Sögubrot)와 아른그리뮈르 욘손(Arngrímur Jónsson)이 라틴어로 번역한 '스웨덴 왕들의 목록'(Svíakonungatal Arngríms lærða)만 남아있다.
[4]
헤임스크링라에도 프레이야를 매우 영광스러운 존재이며 모든 귀부인들이 그녀의 이름을 따서 마님(Frúvor)이라는 칭호를 얻었고, 아내를 가정의 프레이야 - 후스프레야(húsfreyja)라고 부르는 것도 프레이야에서 따왔다는 문장이 있다.
[5]
아이슬란드의 학자 올라피아 에이나르스도티르(Ólafía Einarsdóttir)의 '아이슬란드의
여왕 아슬라우그'(Dronning Aslaug i Island).
[6]
보통 전투를 시작한다고 번역되나, 아슬라우그의 혈통을 고려해서 "
힐드의 분노를 불러일으킨다."라고 번역한 버전도 있다.
[7]
의미는 '시끄러운 골짜기'이다. 흘륌탈(Hlymtal), 흘륀달레(Hlyndale) 등의 변형이 있다.
[8]
《
볼숭 사가》나 《고 에다》(운문 에다)와는 달리, 스노리가 집필한 《신 에다》(산문 에다)에서는 시구르드와 브륀힐드의 로맨틱한 관계가 생략되었기 때문에 브륀힐드의 딸로 보는건 무리이다. 그렇다고 구드룬의 딸로 보기도 힘든 것이, 스노리는 두 사람 사이의 자식으로 시그문드와 스반힐드만을 거론했고, 결정적으로 구드룬이 마지막으로 낳은 세 아들의 죽음으로 인해 규키 가문은 멸족되었다고 적었기 때문이다. 이는 살아서 자식을 낳아 여러 가문의 시조가 되었다는 아슬라우그의 운명과는 모순된다. 즉 정황만 보면 시구르드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자와의 사이에서 본 혼전 혹은 혼외 자식이라는 것이다. 다만 시구르드가 구드룬 이전에 만난 여자는 브륀힐드 밖에 없는데다가, 후술할 헤이미르와의 관계라던지 기타 등등 간략하게만 짚고 넘어간 것들이 많기 때문에 여기서도 결국 생략되었을 뿐 브륀힐드와 썸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도 있다.
[9]
이에 대해 시구르드의 딸이라는 정체성이 먼저 생긴 뒤, 어머니가 정해지는 과정에서 아슬라우그에게 방패여전사나 여군주 같은 속성들을 물려줄 수 있는 브륀힐드가 선택된 것이라고도 한다.
[10]
《라그나르 로드브로크의 사가》는 《볼숭 사가》보다 대략 50년 뒤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되지만 일단은 후속작으로 취급되며, 경우에 따라 아예 《볼숭 사가》와 함께 묶어서 출판하는 경우도 있다.
[11]
이 시점에서는 아직 망하지 않은
니플룽 일족이 그들에게 파멸을 가져온 브륀힐드의 자식을 노리고 있었을 것이다. 사가의 배경이 된 당시의 북유럽에는 집안끼리의 분쟁은 중재를 받거나 한 쪽이 보상을 지급하지 않는 한, 양측 구성원끼리 죽고 죽이며 대를 넘어서 자식이나 손주대로 넘어가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아슬라우그의 배다른 동생이었던 시그문드가 살해당한 것도 이런 이유였고 영화 <
노스맨>이 이런 복수의 연쇄에 대해 다루고 있다.
[12]
아슬라우그 뿐만이 아니라 여행 경비로 쓸 금은보화는 물론이고 값진 옷들도 챙겨다가 하프 속에 보관했다.
[13]
리크,
부추,
양파,
마늘 같은 채소로 추정된다고 한다. 이름에 붙은 포도주가 색을 의미한다면 자색 양파와 비슷할 듯 하다.
[14]
린데스네스 지방에 있었다고 전해지는 농장인 듯하며, 현존하는 마을
스판가레이드는 이 농장의 이름을 따온 것이라고 한다.
[15]
그러나 라그나르 로드브로크를 만났을 때 머리카락이 땅에 닿을 정도로 길었다는 것을 보면 소용이 없었던 것 같다.
[16]
전부 그리마가 계획했으며 아키는 아슬라우그를 발견한 직후 헤이미르를 죽인 것을 후회하는 등 약간의 양심을 보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수양딸에게 잘 대해준 것도 아니었으니 후하게 쳐도 방관자나 다름없긴 하다.
[17]
부하들은 이때 "저 아가씨는 어머니랑 너무 다르게 생겼는데 진짜 딸이 맞는건가?"라며 의심했고, 이에 대해 그리마는 "나도 젊었을 땐 예뻤다."는 거짓말로 변명했다.
[18]
페로 제도의 민요
Ragnars Kvæði(Ragnars táttur, 라그나르의 발라드)에서는 토라가 죽기 전에 "새로운 왕비가 될 여자에겐 내 옷이 딱 맞을 겁니다." 라고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19]
부부에게 처음 발견된 당시의 아슬라우그는 그녀의 신변을 묻는 질문에도 마치 아직 말을 배우지 못한 마냥 침묵을 지켰고, 실제로 어리기도 했기에, 그리마도 그녀가 아무것도 모르리라 여기고 실컷 부려먹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20]
여담이지만 우연의 일치인지 크라카가 라그나르에게 인내를 요구한 것이 세 번이며, 최종적으로 인내해야 했던(하지만 지켜지지 않았던) 날도 3일이다.
[21]
국내 한정으로 아이를 가질 당시의 아슬라우그가 미성년이었기에
기형아가 태어난 것이라는 설이 돌아다닌다. 하지만 이에 대한 신화학자들의 분석이나 학술적인 근거는 없으며, 기형아가 태어나는 원인들도 천차만별이기에 억측이라고 볼 수 있다. 애초에 아슬라우그는 라그나르보다 어릴 뿐 적령기의 다 큰 처자로 묘사된다.
[22]
'흐빗세르크'라고도 부르지만
고대 노르드어에서는 자음 뒤에 오는 v는 w로 발음한다고 하며, 영어 단어 화이트의 wh처럼 읽힌다고 한다. 하얀 셔츠라는 이름의 유례는 그가 유독 청결함을 유지했다는 설과 아예 흰 옷만 입고 다녀서 그렇다는 설, 혹은 그와 함께 정복 활동을 이어나가다가
애설레드 1세 휘하 웨식스군과 벌인 애쉬다운 평원 전투에서 전사한 바이킹 지도자(Bagsecg)와 합쳐져 하나의 인물로 인식되면서 별명으로 변했다는 설 등이 있다.
[23]
로근발드는 어린 나이에 형들을 따라 모험을 떠났다가 전사했는데, 자기 의지로 용맹하게 싸우다가 죽었기에 그의 어머니였던 아슬라우그도 로근발드가
발할라에 갔을 것이라 믿고 크게 비통해하지 않았다. 혹은 형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무턱대고 나섰다가 죽어버린 성급함 때문에 살아있어봤자 사고만 쳤을테니 차라리 명예롭게 전사라도 한 게 다행이라는 식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24]
현명하지만 심성이 고약하다고 언급된다. 그 탓인지 별명도 '그릇된 지도자'라는 뜻의 Illråde였다. 《라그나르 로드브로크의 사가》에선 에위스테인과 라그나르가 절친한 친구 정도로만 묘사되지만, 《라그나르의 아들들의 이야기》에서는 자식들이 통제를 벗어나자 화가 난 라그나르가 일부러 에위스테인에게 자신의 영토를 넘겨주고 아들들을 견제할 것을 명령하고 있다.
[25]
정황상 크라카는 초대받지 못했고, 아들들은 모험을 떠나서 오지 못한 듯 하다.
[26]
《라그나르의 아들들의 이야기》에서는 보르그힐드(Borghild)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27]
적어도 10여년 동안 왕비로서 의무를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가신들이 농부의 딸이라고 무시하는 것도 모자라서, 깡도 좋게 라그나르 앞에서 대놓고 업신여기는걸 보면 타고난 신분의 영향이 상상 이상이었던 걸로 보인다.
[28]
라그나르가 부하들에게 입단속시킨 것도 전해들었는지 "당신 부하들이 명을 어긴 것이 아니라 새들이 말해준 것이다."라고 덧붙여준다.
[29]
또다른 사가인 《라그나르 아들들의 이야기》에서는 라그나르가 발트해 쪽으로 원정을 떠나자 눈치볼 것이 없어진 아그나르와 에이렉 형제가 에위스테인에게 "이제 우리가 스웨덴을 통치하겠으니 복종하라" 며 압박을 넣은 탓에 전쟁이 발발했다고 되어 있다.
[30]
북유럽 청동기 시대부터 전해지던
황소 숭배 신앙(Blótnaut)에서 비롯된 존재라고 하며, 이름은
라마야나를 비롯한
인도 신화에 나오는 풍요의 소 사발라(Savala)와 어원을 같이 한다고 한다.
[31]
실제로 노르웨이나
페로 제도의 동화에서는 까마귀(크라카, 페도 제도의 경우에는 Krákudóttir=까마귀의 딸)라는 단어를 못된 계모에 빗대는 용도로 쓰기도 했다.
[32]
이바르는 겁쟁이이긴 커녕 용감했으나 그런 이바르조차 주저할 정도로 시빌야가 막강한 존재였고, 그 시점에선 마땅한 해결책도 없었기에 승패를 장담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33]
"혹은 돈을 내밀며 목숨을 구걸해봤자 소용 없을 것" 이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34]
아이슬란드어 rönd가 여기서 파생되었다고 한다.
[35]
원정에 실패해서 배를 잃을 경우까지 고려하면 두 척만 끌고 가는 편이 훨씬 싸게 먹힐 거라는 계산도 있었다.
[36]
어떤 피해도 막아주는 마법이 걸려 있었다. 번역에 따라선 란달린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만들었다고도 한다.
[37]
사실 앨라 2세는 라그나르 로드브로크를 생포하려고만 했지 죽일 생각은 없었다. 그래놓고 정작 라그나르가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해서(...) 죽여버리는 큰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사실 라그나르가 뱀굴에 빠진 뒤에 자기가 누구인지 밝히기만 했어도 앨라 2세는 바로 건져줬을테지만, 라그나르는 포로 신세가 되기 보단 명예롭게 발할라에 가고 싶었는지 끝까지 입을 다물고
난죽택을 시전했다.
[38]
소식을 들은 둘째 비요른은 창자루에 손자국이 패일 정도로 창을 움켜쥐어버렸으며, 휫세르크는 쥐고 있었던 태플(당시 북유럽에서 즐겨하던 보드게임)용 말을 손톱 밑에서 피가 흘러나올 정도로 거세게 박살냈다. 또한 시구르드는 나이프로 손톱을 다듬고 있었는데 비보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칼날이 손가락을 찔렀으며, 손가락 뼈를 찌르기 직전까지도 고통을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이바르 역시 얼굴이 시뻘개질 정도로 분노했으나 소식을 가져온 앨라 2세의 전령을 죽여버리자는 휫세르크를 진정시키고, 그들을 무사히 돌려보내며 침착하게 대응했다.
[39]
참고로 라그나르는 죽기 직전, 이렇게 될 것을 예상이라도 한 듯 유언으로 "새끼 멧돼지들이 늙은 아비의 죽음을 안다면 어떻게 꿀꿀거리겠냐?"라고 말했다고 한다. 앨라 2세는 그제서야 자기가 죽인 바이킹이 라그나르인걸 깨달았지만 이미 때는 늦은 상태였다. 앨라 2세는 라그나르의 아들들이 자신에게 복수하러 올 것을 예상했고, 노섬브리아 왕국을 지키기 위해 철저히 대비했다. 실제로 초반엔 제대로 방어해냈지만, 결국 이바르의 통수로 인해 자기가 라그나르보다도 끔찍하게 죽는 결과로 끝이 났다.
[40]
손녀의 이름 역시 아슬라우그였다.
[41]
소녀는 공주였으며, 계모가 황금 하프에 소녀를 넣고 호수에 던졌다고 한다.
[42]
첫 번째 아내인
라드게르다와는 이혼했고, 두 번째 아내인 토라는 사가에서와 마찬가지로 병사했다. 여담이지만 레그네루스는 수안로가와의 결혼 생활 중에 이름없는 귀족 영애와 바람을 피우고 그녀에게서 우보(Ubbo, 우바에 해당함)를 얻었다.
[43]
스완라우그(Svanlaug)의 라틴어식 이름
[44]
크라카는 도움이 필요하면 자신의 이름을 부르라고 에리쿠스에게 말했었는데, 이후 암살자들에게 공격받던 에리쿠스가 크라카의 이름을 외치자 그 즉시 천장에서 방패가 떨어져 에리쿠스를 보호해줬다고 한다.
[45]
그녀의 남편 역시 이름이 레그네루스지만 라그나르 로드브로크와 동일인물처럼 묘사되진 않는다.
[46]
Elizabeth Ashman Rowe의 《Vikings in the West》
[47]
농부들에 의해 부모님이 죽었고(아슬라우그의 경우에는 양부지만) 그 농부들에 의해 양육되었으며, 어머니의 이름은
브뤼닐드(Brynild)였고, '아델룬'(Adelrun)이라는 본명이 따로 있는 것 등이다.
[48]
당시에는 고위층끼리의
정략결혼이 일반적이었던 점을 보면 평민(으로 알려진)인 아슬라우그와 결혼한 것이 오히려 기행에 가까웠고, 부하들의 은근한 압박도 있었기에 공주를 두고 갈등한 라그나르도 이해못할 것은 아니다. 다만 애도 넷이나 낳아준 아내를 버릴 마음을 먹었다는게 참 거시기 할뿐이다.
[49]
또는 "내 예지력과 볼숭 일족의 수호령(퓔기야)들이 일러준 바에 따르면~"이라고 번역되기도 한다.
[50]
개 대신 염소를 데리고 라그나르를 만나러 가는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51]
주인공인 라그나르는 물론이고, 라게르사도 시동생인 롤로와의 불륜을 통해 굳센 비요른을 낳았음이 암시된다.
[52]
작중에서 라게르사를 동경하는 마을 여인들이 그녀를 반기며 친근하게 구는 모습을 보고, 아슬라우그가 복잡한 심경을 느끼는 듯한 장면이 등장한다.
[53]
이 역시 라게르사를 진히로인으로 굳히려는 각색으로 보인다. 고귀한 혈통을 타고나서 귀족으로 살아왔으며 신통력까지 가진 아슬라우그와는 달리, 라그나르와 라게르사는 평민으로 태어났지만 스스로의 노력을 통해 영주가 된 자수성가형 인물로 그려지며, 이혼한 후에도 둘 다 평범한 농민 부부로 살았던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등의 공감대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원전에선 반대로 라그나르가 라게르사를 아내로 맞은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자신과 격이 맞는 귀족 출신이었기 때문이었고, 정작 필요한 순간이 오기 전까지 수십년 동안 자신의 출신을 숨기고 농부의 딸로 가장해서 살았던건 아슬라우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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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그나르가 둘 다 놓치기 싫은 나머지 그 사이에서 간을 본 것도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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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다스의 손, 영재, 매력, 신비주의자, 절제(온화), 독실을 고정으로 가지고 나온다. 안타깝게도 아들들은 저 유전 트레잇을 물려받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