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부지방검찰청 검사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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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임한 직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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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e4a71><colcolor=#fff> 대한민국 제14대 서울동부지방검찰청 검사장 송찬엽 宋讚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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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60년 6월 24일 |
전라북도 부안군 | |
학력 |
전주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사회교육학 / 학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법학 / 석사) |
가족 | 아내 김숙, 슬하 2녀 |
현직 | 변호사 |
경력 |
제27회
사법시험 합격 제17기 사법연수원 수료 대검찰청 공안1과장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공안1부 부장검사 창원지방검찰청 통영지청장 인천지방검찰청 제2차장검사 서울서부지방검찰청 차장검사 법무부 인권국장 부산지방검찰청 제1차장검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제1차장검사 서울고등검찰청 차장검사 대검찰청 공안부장 서울동부지방검찰청 검사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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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전직 검사이자 현직 변호사.2. 생애
1960년 6월 24일에 전라북도 부안군에서 태어났으며 1980년, 전주고등학교와 1984년, 서울대학교 사회교육과를 졸업한 뒤 1985년 제27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1988년에 사법연수원을 수료했다. 사법연수원 기수는 17기. 1986년에는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법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그 뒤 군법무관을 하다가 1991년에 서울지방검찰청 검사에 임용되었고 1992년에는 서울지방검찰청 서부지청 검사를 거쳐서 1993년에는 광주지방검찰청 순천지청 검사로 발령났으며 1995년 인사에서는 수원지방검찰청 성남지청 검사로 발령났다.
수원지방검찰청 성남지청 검사로 있을 때 전두환과 노태우를 구속하는 데 있어서 특별수사본부 검사로 수사에 참여했으며, 이 때 당시 채동욱, 임성덕, 이재순, 임수빈, 박태식, 이종대 등이 같이 수사에 참여한 검사였으며 최환 당시 서울지검장, 이종찬 당시 서울지검 3차장과 김상희 당시 서울지방검찰청 동부지청 특수부장의 지휘를 받았다.
그 이후 1998년 인사에서는 서울지방검찰청 부부장검사로 승진했고 2001년에 서울지방검찰청 특수1부 부부장검사로 있으면서 이승구 당시 서울지방검찰청 특수1부장과 함께 사회 지도층의 병역비리 수사에 참여했다.
이후 2001년 인사에서 춘천지방검찰청 원주지청장으로 승진했고, 2003년 인사에서는 대전지방검찰청 특수부장으로 영전했다. 대전지검 특수부장 시절에는 한화그룹의 불법 비자금 의혹을 수사했다. 그 뒤 2004년에는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부부장검사로 발령났다.
그러다가 2005년 인사에서 대검찰청 공안1과장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공안검사의 길을 걷기 시작했으며, 이 때 당시 권재진 당시 대검찰청 공안부장, 김학의 당시 대검찰청 공안기획관을 보좌했고 당시 권재진 당시 대검찰청 공안부장, 김학의 당시 대검찰청 공안기획관, 황교안 당시 서울중앙지검 2차장, 박청수 당시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장과 함께 국정원 불법도청 사건, 강정구 교수 사건 등의 수사에 참여했다.
이후 2006년에는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공안1부장으로 영전해서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관련한 선거사범들의 수사를 맡았고 김덕룡 당시 한나라당 국회의원과 박성범 당시 한나라당 국회의원의 공천헌금 의혹도 수사를 했으며 강정구 교수 사건의 공소유지를 맡아서 징역4년을 구형했다. 그리고 그 외에도 범민련 북한정권 충성 서약서 사건, 직파간첩 정경학 사건, 비전향 장기수 송환추진위원회 사건 등 국가보안법 관련 대공사건들도 맡았고 노무현 정부의 최대 공안사건이었던 일심회 사건을 수사하면서 장민호 등 5명을 기소했다. 당시 지휘라인은 이귀남 당시 대검찰청 공안부장, 신종대 당시 대검찰청 공안기획관, 안창호 당시 서울중앙지검 2차장이었다.
2007년 인사에서는 창원지방검찰청 통영지청장이 되면서 차장검사로 승진했으며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이후 2008년 인사에서는 인천지방검찰청 제2차장검사로 영전했다. 2009년 인사에서는 서울서부지방검찰청 차장검사로 영전했는데 이 때 청와대 전 행정관 성접대사건의 수사를 지휘했다. 그 뒤에 다시 법무부 인권국장으로 영전했다.
2010년 인사에서는 검사장으로 승진해서 부산지방검찰청 제1차장검사를 맡았다. 이 때 김길태 사건의 수사 지휘를 맡기도 했다. 2011년 인사에서는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제1차장검사로 영전했다. 하지만 서울중앙지검 1차장으로 있을 때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사찰 사건 재수사와 내곡동 사저의혹 수사를 지휘했지만 꼬리짜르기 수사를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2012년 인사에서는 서울고등검찰청 차장검사가 되었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이후 2013년 인사에서는 대검찰청 공안부장이 되었으며 2013년 전국철도노동조합 파업사건의 수사지휘를 맡았다가 이후 서울동부지방검찰청 검사장이 되었고 2015년 1월 22일에 사의를 표명했다.
사직 이후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와 롯데푸드 사외이사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