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8-27 19:26:05

북한이탈주민/문화 및 북한 내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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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문화, 북한 내 경험
2.1. 직설화법2.2. 종교2.3. 증언에 대한 오해2.4. 북한 사회 이해의 어려움

1. 개요

대한민국에서 나타나는 북한이탈주민들의 문화와 북한 내 경험에 대해 서술한 문서.

2. 문화, 북한 내 경험

함경도계가 80%대로 많은 만큼 북한에서도 함경도와 비슷한 문화를 간직한 경우가 많다. 탈북민을 두고 여성의 생활력이 강하다든가, 직설화법을 추구하는 성향, 억센 말투를 썼다는 것은 북한에서도 함경도에서 두드러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주도 여성의 생활력에 대한 이야기와 비슷한 설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억센 말투는 동북 방언을 말하는 것인데, 동남 방언과 비슷한 성질의 특유의 고저 악센트가 있다. 그 사투리는 이런 전문적인 용어 대신 '함경도 사투리', '함북도 사투리' 등으로 불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처음 정착하면 경상도 말투와 어감이 유사한 말투를 쓰고, 서울 근처의 말투가 상냥하다는 반응을 보이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고향에서 가장 흔한 말투는 국어학자들이 ' 육진 방언'이라고 부르는 사투리의 영향을 받은 말투다. 탈북민이 북한에서도 서울말과 가장 말투의 차이가 클 수 있다고 볼 수 있는 곳에서 오다보니 북한에 대해 많이 접하는 사람도 북한말 자체가 남한과 크게 달라졌다, 북한말이 많이 바뀌었다고 오해할 정도다. 이건 한국에서 평안도 사투리를 옛날부터 함경도에서도 쓴 걸로 오해해서 생기는 경우도 많다. 들어보면 북한을 전혀 모르는 사람도 분별이 가능할 정도로 차이가 크다.

그런데 오히려 북한의 표준어인 문화어는 언어적인 측면에서는 서울말에서 유래하였기에 노인보다 젊은 세대가 억양과 표현 일부만 남은 서울말과 유사한 말투를 썼을 정도다.

그 밖에도 북한 음식은 다 싱겁다고 알려진 경우가 많으나 맵거나 짠 음식이 있는 것도 매운 것도 잘 먹기도 하는 함경도의 식습관이 싱거운 음식을 먹는 평안도 쪽에 비해 알려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부산의 밀면, 함흥냉면조차 함경도의 영향을 받은 음식인데 매운 경우가 많을 정도다.

중국 연변 근처의 북한에서 온 사람들이 많아 말투가 비슷해 조선족으로 오인받기도 한다. 부산 쪽의 고저 악센트를 반대로 뒤집으면 억양이 비슷해지며, 경북 쪽의 방언과 비슷한 면이 있다는 경험담이 있다. 강원도는 삼척 인근을 빼면 이런 '성조'로 불리는 억양이 없어 오히려 차이가 크다. 북한에 관심없는 사람들은 억양만 듣고는 이런 말투를 북한말인 줄 모르는 경우가 많다. 흔히 평안도 쪽 방언이 '북한말'로 인지도가 높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상당히 사투리를 고치라는 압력이 크기 때문에 경상도와 비슷하게 사투리를 고치기 힘들어도 젊은 세대는 말투를 고친 경우가 많다.

기본적으로 '정'과 비슷한 정서라든가, 김치를 먹는 등의 식생활, 자식을 아끼는 성향, 꾸미기를 좋아하는 성향과 같은 한민족의 성향은 북한에서부터 있던 것이다. 그러나 체제 차이로 인해 남한에서 이들의 경험 등을 이해 자체를 못하는 경우도 있다.

2.1. 직설화법

북한이탈주민들의 정착에서 어려움을 겪는 가장 큰 요소로 완곡어법을 들 수 있다. 직장에서 완곡어법이 쓰이는 경우도 많아 탈북민을 고용한 회사에서는 탈북민들이 솔직함을 중시한다는 것을 모르고 탈북민들이 예의가 없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반면 탈북민들이 이런 화법을 보고 예의를 차린다는 의도를 몰라 가식적이라는 생각을 가질 때도 있다. 그러면서도 탈북민들은 이런 화법을 적응을 위해 배우고 싶어하여, 완곡한 거절 방법 등을 알려주면 좋아하기도 한다. 탈북자의 고향 중 상당수를 차지하는 함경도, 북한의 행정구역으로는 함경남북도와 양강도는 북한 내에서도 직설적이라는 평이 있을 정도다. 함경도가 아닌 다른 지역에 대한 평가는 비교적 '순하다', '온화하다'는 말이 많다. #

물론 지역에 관한 평가가 다 그렇듯 개인차가 있다. '밥 한 번 먹자'라는 말을 진짜 밥을 먹자는 말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다. 또한 '도움이 필요하면 찾아오라'는 사장의 예의 상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여 진짜로 예고없이 찾아오는 경우가 있다. 이외에도 불만사항 같은 것도 솔직하게 표현하여, 왜 저렇게 예의가 없냐는 말을 듣기도 한다.
이런 건 평양 출신도 마찬가지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쪽은 불만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자신을 낮추는 말을 덧붙이거나 사정을 먼저 말하는 식으로 좋게 표현하려는 경우가 있다는 증언이 있다. 남쪽은 모든 것이 발달되어 욕이 발달되어 있는가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는 증언도 있다. # 그런데 북한만 해도 함흥 같은 곳은 남한 사람도 살벌하다고 느낀다. #

한국인들이 자본주의의 상징격인 미국인들도 솔직하다고 평하는 경우가 있고 남한 안에서도 직설적인 지역과 완곡어법을 쓰는 지역이 구분된다는 평이 있듯이, 북한도 이럴 가능성이 있다. 북한 안에서도 평양과 같은 곳에서는 '예의'를 중시한다는 경향도 있었다는 주장을 하는 외교관이 있으며, 탈북자인 김길선 기자는 평안도 사람은 불만을 입밖으로 내뱉지 않았다는 언급을 하기도 하였다. # # 함경도 출신 배우 김아라 씨는 평양 사람이 내숭을 떤다는 말을 들었다는 주장도 하였다. 2020년에 한국에 정착한 다른 평양 출신 탈북민은 심지어 통일되면 북한 사람들은 '사회주의적 세뇌'로 인해 아첨을 했지 큰 불만은 내뱉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도 한다. # 개성공단 운영 당시에도 북한 사람들이 감정 표현 폭이 크지 않다든가 심지어 예의바르다는 평이 있었다. #

이런 점을 감안하면 사회주의식 세뇌라기보다는 북한 지역 안에서도 각자의 지역적 기질이 반영된 면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80년대 북한 문헌을 인용한 1991년의 논문에서는 북한 표준인 문화어의 규범에도 '말법을 바꾸는 수법'이라고 하는 '갔다 오너라'를 '갔다 오겠니'라고 하는 등의 예절이 있다고 언급한다. # 즉, 함경도 사람들은 생활총화 같은 자리에서는 남들을 비판하는 북한 당국의 규범에는 적응하였지만, 다른 쪽에서는 북한식 예의를 갖추라는 부분에서는 오히려 북한 당국의 규범대로 행동하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는 것이다.

어떤 탈북자들은 이런 남한과 두드러지는 차이를 보이는 규범을 사회주의적 교육의 영향으로 여기는 경향도 있는데, 오히려 이런 교육이 지역적 기질의 영향을 받은 경향이 있을 수 있다. 2010년대 후반 들어 탈북민들이 유튜버를 하는 경우가 늘어났는데, 종종 시청자들이 이런 직설적 화법을 두고 당혹스러워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화법을 두고 돌려말하지 않아 시원하다는 평도 있는데, 예민한 사항에서도 불만을 너무 솔직하게 말을 하여 비난을 듣는 경우가 있다. 일반 국민 중 많은 사람이 불만이 매우 클 때야 불만을 직설적으로 털어놓지만, 자신들 입장에서는 불만이 많지 않아도 불만을 직설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이런 점은 개선되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할 것을 '이게 싫었다'라고 표현하는 식으로 말이다. 농담도 강한 표현을 선호하는 경향도 있다. 여기서 책으로 보고 안 것과 직접 경험한 것을 크게 구분하지 않는 등, 간접적인 경험도 직접적으로 말하는 습관이 남아있는 경우에는, 남한 주민들이 탈북민들의 증언을 들으면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오죽하면 질문 끝에 꼭 '직접 봤느냐'라는 식으로 확인하라는 조언도 있을 정도다. #

2.2. 종교

탈북자들이 하나원에서 남한 정착 교육을 받을 때는 종교 교육도 함께 받게 되는데 불교, 천주교, 개신교 3가지 종교 중에 선택하여 종교행사에 참가할 수 있다고 한다. 그 중 대부분이 가톨릭 아니면 개신교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특히 대부분 개신교를 선택하는데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후술하다시피 중국에 있던 개신교 선교사들[1]의 도움을 상당히 받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예배 때 간식이 나오는 것도 한몫한다고 한다.

불교신문 보도에서 인용한 <2016 북한종교자유백서>에 따르면 이들이 종교적 영향을 받는 주된 요인은 북한에서부터 비밀리에 시작된 종교적 접근과 탈북과정에서 도움을 받은 종교인 및 단체로부터 받는 지원에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중국과 제3국에서 북한주민들에게 경제적 지원을 하고 지하교회를 운영하며 종교 교육과 신앙생활을 하도록 이끄는 목사들로부터 종교를 접하다 보니 이미 하나원에서 종교 교육을 받기도 전에 개신교에 심취해 있는 경우가 많고 개신교 단체의 도움을 받아 탈북해 남한으로 건너오는 과정에서 하느님이 자신들의 목숨을 살렸다고 여기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

탈북자 출신의 기자인 주성하는 탈북자들 대부분이 개신교를 믿게 되는 이러한 경향에 대해 우선적으로 탈북자들의 탈북 지원은 물론 탈북 이후 남한 정착까지 돕는 단체들 대부분이 개신교와 닿아있다. 그리고 하나원에서 교육 받으면서도 개신교가 퍼붓는 막대한 지원 탓에 개신교가 돈 많은 종교라는 인식을 갖게 되면서 개신교를 택하는 탈북자들이 늘어난다고 해석했고, "개신교는 평양을 제2의 예루살렘으로 만들려는 꿈을 꾸고 벼르고 있는 듯하다"고 평했다. 물론 이것과는 별개로 한국 개신교 역사는 평양과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고 1907 평양 대부흥 등의 표현이 자주 돌아다니긴 한다. #

그렇지만 가톨릭과 원불교에서도 탈북민 정착 지원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개신교에 비해 그 숫자는 적지만 쉼터, 대안학교 등을 운영하며 탈북민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다. 가톨릭의 경우에는 교구별로 민족화해위원회가 설치돼, 교구를 중심으로 지역별 맞춤 탈북지원을 하고 있다. 이들은 가족여행, 활동가 모임, 가정방문 및 상담, 문화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해 탈북민들의 안정적 사회정착을 도모하고 있다. 특히 가톨릭은 탈북민 쉼터(그룹홈) 운영이 눈에 띄는데, 대부분 여성 탈북민들을 위한 공간이다. 부천성가쉼터가 대표적인 예로 하나원에서 퇴소한 거주지 미배정자들이 머물고 있다. 원불교는 대안학교인 한겨레중고등학교를 설립, 학습공백을 메우고 남한사회 제도를 익혀 적응력 향상을 돕고 있다. 또 무연고탈북여성청년들의 공간인 한울안한겨레의 집을 개소해 운영하고 있다. 이곳은 쉐어하우스로 한겨레중고등학교 재학생, 졸업생이 장·단기 거주 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탈북자들이 개신교에 쉽게 귀의하는 또 다른 이유는 의외로 '익숙함'이다. 의외로 김일성이 독실한 개신교[2] 집안 출신이다. 어머니 강반석은 권사, 아버지는 김형직은 초등학교 교사로 선교 활동을 했고, 김일성이 어린 시절 북만주 길림성에 살 때는 개신교인들과 친분이 있었다. 김일성이 개신교에 대해 잘 알기 때문에, 북한의 주체사상을 비슷하게 설계했다고 추측된다. 물론 개신교뿐만 아니라 여러 사상, 종교가 잡다하게 섞여있는 게 현재 북한 체제다.

이슬람일 경우 약간 까다로워지는데 일부 중동 국가 중 가급적 가지 말아야 할 친북 국가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 애초에 2024년 현재까지 대한민국과 수교하지 않고 북한과 우호적 외교관계를 유지하는 국가가 정상적인 국가가 아닐 확률이 높으므로 일반적인 한국인들도 방문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예시로 중동의 대표적 북한 단독 수교국 시리아 시리아 내전으로 인해 여행금지국가이다. 북한에게 지원을 받는 후티 반군과 정부군이 내전 중인 예멘 역시 여행금지국가. 종파불문 무슬림으로서 일생에 한번은 방문해야 할 의무가 있는 메카가 위치한 사우디아라비아는 큰 문제가 없지만 또 다른 이슬람 종파 공동의 성지인 예루살렘은 그 특성상 국제적으로 입지가 매우 애매하므로 현지에서 탈북자임이 밝혀질 경우 곤란해질 가능성이 있다. 수니파가 아닌 시아파인 경우 시아파 성지들이 다수 분포된 이란의 경우 순수 한국인이라면 나중에 미국 입국할 때 곤란해지는 걸 빼면 출장과 여행에 문제가 없지만 탈북자의 경우 이란과 북한의 외교안보분야 협력을 감안하면 탈북자라는 걸 현지에서 밝혀서 좋을 건 없을 것이다. 한국인들도 여행이나 출장 목적으로 자주 방문하는 이집트 또한 남북한 동시수교국이지만 북한과의 관계도 은근 돈독한 편이므로 탈북자인 것을 밝혀서 좋을 건 없을 것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아랍인들은 미국과 서방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어 미국에 대항하는 북한에 우호적인 감정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으니 여튼 탈북자인 것을 이런 나라들을 여행하면서 밝히는 것은 좋지 않다. 아랍인들이 그 생지옥을 빠져나온 입장에서 복장터지는 소리를 하더라도 단순히 미국이 싫어서 그러는 경우가 많으니 그냥 그려러니 하고 넘어가자. 한편 현재로선 동남아권 이슬람 국가중에 탈북민이 가장 방문하기 안전한 곳은 말레이시아다. 말레이시아는 김정남 피살 사건 이후 북한과 단교했고 탈북민을 적극적으로 수용해주는 나라이므로 가장 안전한 곳에 속한다. 대신 이스라엘 입국한 기록은 없어야 한다.

2.3. 증언에 대한 오해

어떤 탈북자의 발언은 불분명한 걸 싫어하는 지역적 기질을 바탕으로 한 발언을 허위 증언이라고 오해하는 경우도 있다는 시각도 있다. 더구나 언론의 자유가 없는 북한에서는 정권의 치부를 드러내는 정보는 차단을 강요당하니 이에 대해선 부정확할 수 있는 기억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이 부정확함을 고의로 거짓말을 하는 것, 과장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남한 사람도 복잡한 남한 사회 모든 분야를 직접 겪지는 못한다. 대신 간접 경험( 매체, 주변 인간관계)를 통해 한국 사회의 엄청난 양의 정보를 받아들인다. 북한도 마찬가지인데 북한의 문제는 통제사회라 매체나 지인을 통해 알 수 있는 정보량이 적다. 북한은 인터넷 자체가 금지된 것을 넘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까지 허가를 받아야 할 정도로 이동의 자유가 없다시피하기에 다른 지역의 소식을 듣는 것도 쉽지가 않고, 시대에 따라 의외의 변화도 자주 일어나는 곳이라 지역이나 시대, 계층마다 경험이 상당히 다르다. 언론의 자유가 없기도 하여 이러한 계층들은 다른 지방의 소식, 다른 계층의 사정에 어두운 경우가 많다.

이렇기 때문에 한 탈북민이 자신이 아는 사실을 말해도 그동안 탈북이 흔했던 2000년대 중후반이나 2010년대 초반, 지역적으로는 함경도 북부의 북한 관련 증언에 익숙한 남한 사람이 믿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탈북민 끼리도 앞서 언급했듯 사실이라도 못 믿겠는 증언도 있을 정도다. 즉 통제 사회기때문에 같은 북한 사람도 남한에 와서야 북한 내부 다른 지역의 실상을 알게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때로는 같은 탈북자끼리도 저 사람이 북한에 대해 거짓말을 한다고 느끼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자면 사투리에 대한 언급에서 이런 경향이 있는데, 어떤 말은 북한에 없다고 주장해도 다른 지역에서는 있는 경우가 있다. 탈북자들은 특히 '~합네다'라는 말이 없다고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건 한국 전쟁 당시의 평안도나 황해도 출신 실향민의 말투다. 즉 '~합네다'라는 말을 안 쓰는 함경도 사람에게서 나온 말투가 아니다. 한국으ㅔ 실향민의 수가 1세대만 60여만 명에서 많게는 139만 명 정도로 추산되니 한국전쟁 직후 2천만 명이던 남한의 인구에서 이들의 영향력이 3만 명을 좀 넘는다는 지금 탈북자보다 강했다. # 평안남도 출신 실향민 작가 황순원이 이런 표현을 자신의 소설에서 썼고, 이민복 씨 같은 황해도 출신 탈북자, 정유나 씨 같은 평안도(자강도) 출신, 다른 평안도(평안남도) 출신인 강은정 씨가 이런 말투를 사용한다. 북한 어문 규범인 문화어 보급으로 사라져 가는 말투일 수는 있으나, 이런 말투를 쓴 적이 아예 없지는 않다.

참고로 북한 어문 규범에 대해 현재도 남한에서 쓰이는 언어와의 이질성, '평양말'이라는 선전, 언어 순화 선전에 대해 무척 과장이 심하다. 공교육 차원에서까지 실제와 다르게 북한 언어의 이질성을 과장시켰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들어 못 봤다' 같은 표현을 많이 쓰거나 해요체를 별로 쓰지 않는 함경도 사투리를 북한 표준어로 오해한다든지[3], '똑똑손전화'급의 순화어인 '얼음보숭이'를 대중적인 북한말처럼 묘사하는 경우, '괜찮다'라는 표현처럼 북한에서도 쓰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는 식으로 매체에서 차이가 과장되는 경우가 많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대한민국은 미제의 괴뢰 정권이라면서 그 언어도 영어나 일본어나 한자어에 오염되었고 남한보다 민족 언어를 잘 지키고 있다는 거짓말[4]을 하려고 든 김일성의 망령이 한국 교육과 정치를 어지럽히고 남북간 화합을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고뿌', '뽀뿌라', '시리카트', '라지오' 같은 일본어 유래 외래어까지도 아예 어문 규범의 일환으로 서슴없이 사용된다. 북한 주민 사이에서는 이게 일본어에서 유래된 것을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실제로 북한에서 은폐되는 사실이다.), 한국에서 'ㅓ'와 ㄹ받침의 발음이 가능하며 '디'를 표기할 수 있는 한국어에 맞게 '컵', '포플러', '실리케이트(규산염)', '라디오' 같이 순화된 단어를 보면 북한이 언어 순화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위 '뽄트'라고 불리는 '폰드', '이신작칙'[5], '료해' 같은 한자어 등 남한도 대중적으로 모르는 외래어나 한자어, 심지어 가장 경계받는 기독교의 용어인 삼위일체도 '수령, 당, 대중의 3위1체'라며 쓰는 북한 표준어의 현실을 남한에서도 모르는 경우가 많고 아예 북한이 순화어를 간혹 쓸 때 그것만이 전부인 것처럼 매체에서 묘사하는 경우가 많아 '남한말이 북한 당국의 선전대로 영어 일본어 투성이로구나'라며 세뇌에서 탈북민마저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북한에서도 비슷하게 쓰는 IT용어를 가지고도 북한에서 안 쓴다고 오해하기도 한다.

즉, 최신 기술이나 경제 상황을 가리키는 말을 두고 북한에서도 비슷하게 묘사할 말이 그런 것을 접하지 못할 환경에 기인한 모습을 두고 언어가 아예 다른 것으로 남북한 출신 모두가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댓글', '누리집'에 해당하는 표현을 북한 사이트는 ' 독자감상글', '홈페지' 정도로 영어나 한자를 섞어 쓰고 남한처럼 순우리말로 순화시킨 단어가 없다. 참고로 언어 순화의 정도는 같은 분야를 묘사하면 축구 같은 일부를 제외하고 공학분야 용어까지 남한과 비슷하다. # 다만 북한에서 너무 세뇌 교육이 심하고 남측에서 반박을 안 해 '이신작칙'이 한자어인 줄 모르거나 '아파트(북한식으로 아빠트)'가 외래어[6]인 줄 모르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정치 의식의 편차도 꽤 크다. 2010년대 중후반 이후 함경도 국경지대 같은 곳에서는 '파리보다 파리채가 더 많다'면서 정치에 대한 불만이 눈에 띄다가도, 다른 곳에서는 오직 수령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전자기기도 2010년대 초반까지는 CD, DVD플레이어를 쓰다가 그 이후부터는 USB나 SD 카드가 대세다. 그 동안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이라고 알려진 생활 문화도 2010년대 후반에는 남편이 아내에게 선물을 주고 자식도 돌보는 경우가 생겨난다는 말이 있다. 자본주의화도 진행 중이라 강나라 같이 2010년대 중반 이후에 탈북한 사람은 노래방 사장이 된다, 집을 산다는 말을 언급하기도 한다. '부'에 대한 언급에서도 서로 오해하기도 한다. 한국 정치계에서는 진보 진영에서는 식량 지원 등을 뒷받침하기 위해 가난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고, 보수 진영에서는 북한 정권의 핍박으로 역시 가난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고난의 행군을 계기로 탈북한 사람도 많아 이 시기의 북한이 대표적 북한 이미지로 굳어진 것도 있다. 북한의 부는 확인이 어려운 것이 같은 신문이 조사결과를 인용해도 1년 만에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잊어버리고 정반대의 주장을 하기도 할 정도다. # # # 신문이 이러니 일상이 바쁜 일반인은 사실상 북한 서민의 제대로 된 경제 여건을 알 기회가 없다시피 하다. 이렇다보니 나쁜 의도 없이 정말 몰라서 북한에 이런 게 없냐는 물음에도 자신을 무시하는 줄 알고 상처를 받는 탈북자가 있다. 반대로 검정 고무신 같은 만화에서 크림빵에 눈물 흘리듯, 단지 이들 기준에서 잘 사는 것을 언급하는 것을 두고 그냥 말하는 것을 보고 별것도 아닌 것으로 허영심을 드러낸다고 오해하는 경우도 있다.

2.4. 북한 사회 이해의 어려움

비록 한국의 박정희, 전두환 정권이 아무리 민주화 운동가들을 탄압하고 독재를 했다고 해도 북한 수준까지는 자유를 옭아맨 적이 없다. 의외로 사람들이 간과하는 감이 큰데, 애초에 북한의 인권 탄압과 자유 억압은 오늘날의 중국, 러시아, 이란 같은 나라들은 가볍게 뛰어넘고 마시아스 응게마 시기 적도 기니, 민주 캄푸치아,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 단체 같은 현대사에서도 극히 극단적인 사례를 제외하면 적수가 사실상 없는 수준이다.

하다못해 이사이아스 아페웨르키 에리트레아에서도 수도에서 독재자의 퇴진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를 하는 것이 가능했으며, 마오쩌둥 시기 중국에서도 문화대혁명 시기를 제외하면 제한적으로나마 종교를 믿거나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는 것이 가능했고, 심지어는 '검은 히틀러'라 불릴 정도로 잔혹했던 이디 아민 시기 우간다에서조차(!) 변호사가 정치범을 (적극적으로) 변호하는 것과 (작가와 연출가가 비밀리에 사형 선고를 받긴 했어도) 독재자를 '모욕'하는 연극을 상영하는 것이 가능했다.

북한은 2024년 현재 세계에서 유일하게 인터넷이 금지된 나라이다.인터넷 사용률이 2022년 기준으로도 남한의 1992년 사용률보다도 낮은 0.07%이다. 참고로 아프리카의 웬만한 극빈국들도 ( 서사하라, 남수단, 에리트레아를 제외하면) 인터넷 사용률이 10%대는 된다. 그 대신 북한에서는 내부적으로는 인트라넷( 광명망)이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이며, 평양 등 극히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2016년까지 TV 채널이 한 가지였다. 2023년 기준으로도 북한은 TV 채널이 3개밖에 없다.

북한에서 언론은 정부의 홍보 기능만 하며, 그 정도는 중국의 언론통제따위는 아득하게 뛰어넘는다. 애초에 북한 언론은 주민들에게 ' 지상락원' 이미지를 심어줘야 하기에 북한에서 일어나는 살인(예시: 박명식 장기적출 연쇄 살인사건), 대규모 교통사고(예시: 개고청년역 열차 전복 사고, 단천시 여객열차 전복 사고) 등 사건사고들도 전혀 보도하지 않을 정도다. 룡천역 열차 폭발사고, 평양 아파트 붕괴 사고 정도나 되어야 겨우 언론에서 보도할 정도다. 주거지 바로 옆 지역을 넘어갈 때도 당국의 허가가 필요하다. 법이 상황에 따라 유명무실하기도 하며, 외부 정보 유입은 매우 조심스럽게 해야 한다. 이제는 '한국식 서체'로 글을 쓰거나 '한국식 말투'로 말해도 징역을 넘어 공개처형을 당할 수 있다.

반면 남한은 독재를 사라지게 한 6월 항쟁37년 전인 1987년의 일이라, 이제 일반 남한 사람들은 법치나 민주적 의사 결정이 원래부터 있던 것처럼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래서 탈북민의 유튜브, 탈북민을 다루는 신문 기사를 보면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댓글이 많다.

예를 들면 북한을 한국에서는 북한을 동독과 비슷하게 여기거나 북한의 인권 침해 수준이 단순히 중국, 러시아 수준이라고만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동독은 정말 어느 정도는 잘 살았고, 원형의 사회주의 이념도 실현되어 나름 체제에 자부심을 가진 경우도 있었지만 북한은 고위 간부까지 외부사정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북한 체제 선전의 대표로 알려진 현송월이 KTX를 타고 놀라는 장면이 보도된 적이 있으며, 외교관 출신 탈북자 태영호는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2~3인자도 외부 정보를 볼 기회가 차단된다고 주장했다. 때문에 북한의 고위층조차 그냥 속아서 체제에 자부심을 가지거나, 고위층으로서 북한 체제가 끝나면 자신이 처벌받거나 지위가 추락할 것을 걱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북한에서도 외부 세계를 직접 경험하는 해외 파견 노동자, 무역 간부, 외교관, 유학생 같은 사람은 상당한 자괴감에 빠져 있는 경우가 많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자식을 인질로 잡는 북한의 제도 등으로 속을 잘 못 드러낼 뿐이다.

인터넷이 없는 세계는 이제 상상하기 힘든 것이 되었다.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북한에 인트라넷 같은 것이 보편화되어 있다든가, 심지어는 북한 사람들이 외부 소식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기도 한다. 이에 따라 북한 사람들이 남한 정치제도를 이해하면서 북한을 찬양한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 북한 선전매체가 남한 소식을 잘 아는거 아닌가 하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북한의 매체는 외부용과 내부용이 분리되어 있다. 태영호 같은 고위층 출신도 주변에 삼권분립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하였다. 애초에 김정일은 생전에 대놓고 삼권분립을 부정하는 발언을 했다.

북한의 모든 정보는 이처럼 민주화된 사회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나, 그들을 통제하는 외부 물정을 어느 정도 아는 사람들에 의해 통제 시도가 이루어진다. 어느 나라나 정치범수용소가 있는 데다가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하고, 대다수의 남한 사람들이 미제 등을 몰아내기 위해 투쟁하며, 가택에 대한 임의적인 수색이 국제 기준으로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진심으로 믿게 되는 것이다. 보고 듣는 것이 그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트라넷조차도 2010년대 후반에도 직접 써 본 비율이 탈북민 기준 10%를 넘지 못한다. 그나마 휴대전화는 어느 정도 보급이 되어 있으나, 도청 대상이다. 정부 수립 때부터 자유 진영과 단절된 세계였고, 지금의 북한은 그냥 사람을 속이기 위한 세트장과 같은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 실제로 언뜻 그럴듯하게 보이는 평양(정확히는 평양 중심부 일대)의 야경도 실체는 인근 지역으로 가야 할 전력까지 다 끌어쓰고도 이로도 충분하지 않았는지 건물 외벽의 LED 조명으로 연출한 것이라고 한다.

다만 이런 지시를 순순히 따르기만 하다가는 굶어죽으니 알음알음 CD, 최근에는 USB 같은 것이 퍼지는 것이다. 그것도 요새는 단속을 피해 점조직식 네트워크로 퍼진다고 알려져 있다.

북한은 법 자체가 정당하지 않은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무역 등의 경제 활동이 경우에 따라 금지되거나, 외부 소식을 접하려는 노력 등을 통제하기도 한다. 사실 법부터 집행이 자의적인 경우도 많고, 뇌물로 처벌이 잘 안되는 경우도 있지만, 있고 없고 정도의 차이는 존재한다. 남한에서 합법이며, 심지어 헌법에 의해 보장되며 지켜지는 것이 북한에선 불법이거나, 위헌이어도 그냥 무시된다는 것이다. 려행증 제도 같은 예가 있다. 그래서 남한에 와서 '북한 기준' 법을 어기는 것이나 그냥 단속되는 것을 보고 불법을 조장한다고 오해하기도 한다.

또한 거꾸로 탈북자 중 고령층은 이를 잘 모르고 있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박근혜 탄핵을 남침 등을 막을 '대안'이 없어서 반대한다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는 탄핵을 하면 국정 운영을 어떻게 할 지가 이미 법으로 정해져 있으며, 이는 사법부의 독립으로 그 위반을 통제하여 지켜질 수 있다는 것을 잘 알지 못한 것이다. #

물론 남한에서도 불법인 강도, 살인 같은 것을 미화하면 안 되겠지만, 무역 같은 것을 남한식으로는 정당하게 했는데도 불법이라고 못마땅하게 여기기도 한다. 북한 여권도 남한 같으면 당연히 일반인이 받을 수 있는 것을, 북한에서는 일반인은 아예 그 용도를 모르거나 뇌물을 줘야만 받을 수 있기도 한다.

80년대 이전에는 대한민국도 단순 개인의 해외여행이나 무역이 금지였다고 하나, 기업을 설립하여 하는 무역이나 유학 목적의 해외 여행은 할 수 있었는데, 사실 당시 한국이 해외여행을 통제한 것은 국민 통제라기보다는 경제발전기에 외화 유출을 우려했던 것에 가깝다. 실제로 일본 1964 도쿄 올림픽 직전까지는 외화 획득을 위한 업무나 시찰, 유학을 목적으로 한 해외여행 정도만 허용했다.

그리고 북한은 개인이 기업을 설립할 수는 없는 대신 나라가 정한 직장에서 일해야만 하고, 일반인의 해외 출국 자체가 완전히 금지되었으며, 정치적 신분 때문에 공산권 국가라도 유학이 금지할 수 있다.


[1] 선교뿐만 아니라 아예 탈북민들을 안전하게 이동시키고 정착시켜 주는 것을 전문으로 하기 위해 온 목사들도 상당하다고 한다. 실제로 그것 때문에 감옥에 갇히기도 한다고 한다. [2] 현재는 김일성과 별개로 이단으로 판별된 종교이다. [3] 문화어는 다 서울말 같이 쓴다. 여기에다가 사투리였던 말이라도 '-자요', '-기요'처럼 '요'자가 쓰이는 표현 몇 개를 어문 규범에서 쓸 수 있도록 인정했다. 함경도 사투리와 북한 표준어를 헷갈려하는 경향은 한국의 지방 사람이 가끔 사투리를 쓰며 '사투리를 쓰지 않는다'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탈북민에게도 간혹 있다. [4] 단적으로 북한에서는 수많은 민족 언어나 문학을 발전시킨 사람들에 대해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다.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를 남한에 와서 알았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유명하고, 고전문학은 물론이거니와 김소월이나 백석, 윤동주의 업적도 한국에 비해 부실하게 교육된다. [5] 이건 유교 경전인 논어에서 등장한 표현을 풀어서 쓴 것이다. # 북한에서는 조선시대의 유교적 가르침을 '봉건유교교육'이라고 하여 조선 왕조 당시 지배층의 적폐로 깎아내리면서 정작 자신들은 자신은 모범을 보인다고 우기기 위해 이 논리를 써먹고 있다. [6] 일본어('アパート')를 거친 외래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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