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시민 혁명(市民革命)/부르주아 혁명영어: bourgeois revolution
봉건 사회에서 근대 자본주의 사회로의 이행 과정에서 봉건제, 절대군주제를 타도하고 부르주아가 헤게모니를 쥔 사회를 건설하는 정치적, 사회적 혁명이다.
여기서 시민은 citizen이 아니라 부르주아의 번역어로, 원어로는 부르주아 혁명이라 불린다. 시민혁명이라는 용어를 만들고 규정한 학자는 카를 마르크스고 어디까지나 시민혁명은 부르주아 계급이 권력을 획득하는 혁명을 의미한다. 영어 위키백과에서도 마르크스주의 이론에서 사용되는 용어라고 정의하고 있다. #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구별을 위해 만든 용어이기 때문에 서구권에서는 사회주의자가 아닌 사람들 사이에서는 잘 사용되지 않는다. 사실 한국에서는 보수주의자들까지도 유래를 모르고 사용하는 경우가 많을 뿐 그들도 시민혁명이 아닌 부르주아 혁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그리 이상하진 않다.
2. 역사
2.1. 근대
시민 혁명은 부르주아가 중심이 되어 특권을 가진 왕 또는 귀족에 의해 모든 것이 이루어지던 정치 제도를 없애고 모든 사람이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신념을 바탕으로 신분제 폐지, 영업의 자유, 의회제의 확립 등 민주 정치를 확립하려는 데 목적이 있었다.근대 시민 혁명의 토대는 잉글랜드에서 발생하였다. 잉글랜드 내전이 그 시초였는데, 그러다가 다시 왕정 복고가 이루었으며 이후 명예 혁명으로 제대로 된 입헌군주제 국가가 완성되었다. 명예 혁명은 당대에서 처음으로 혁명이란 단어를 쓴 최초의 혁명이 되었다. 그리고 이는 존 로크의 사회 계약설에 큰 영향을 주게 되었다. 그리고 이 존 로크의 사상이 곧바로 이어지는 미국 독립 혁명에 영향을 주었다.
한편 프랑스에서는 장 자크 루소가 일반의지를 강조하며 새로운 사회 계약설을 제시하였는데, 이것은 곧바로 미국 독립 전쟁에 참가한 프랑스 군인들의 영향력과 결합하면서 곧바로 프랑스 혁명이라는 거대한 물줄기를 만들어냈다. 프랑스 혁명은 나폴레옹에 의해 법전으로 정리되고, 전쟁을 통해 전 유럽으로 전파가 되면서 19세기 초중반에 그야말로 큰 영향력을 준 사건이 되었다.
2.2. 현대
현대에 이르러서도 봉건적 권력이나 독재정부가 장악한 국가들이 존재하기에, 정치적인 자유와 평등, 자유주의적 대의민주주의와 근대적 재산권의 신성불가침성[1] 등에 대한 요구를 내건 혁명이 등장하고는 한다.3. 구조
- 초기에는 부르주아들이 주동자가 되고, 농민들이 따르는 형태를 취했다. 지식과 재산,기술로 귀족못지 않게 성장한 부르주아들은 기본의 지배층인 왕과 귀족들을 대신할 능력과 조직력을 갖추었고 기본 지배층의 무능과 수탈에 폭발한 농민과 노동자들이 부르주아들을 지지하는 구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