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26 16:24:04

몰다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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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Moldavia_map.jpg
노란색으로 표시된 지역이 바로 몰다비아.

1. 개요2. 역사

1. 개요

몰다비아는 루마니아, 몰도바, 우크라이나에 걸쳐있는 옛 루마니아 왕국을 구성하던 지방이자 중세 몰다비아 공국이 있던 곳이다.

현대 루마니아를 구성하는 세 지역, 트란실바니아, 왈라키아, '몰다비아' 중의 한 곳이다.

인도양의 섬나라인 몰디브와는 전혀 상관 없으니 주의.

2. 역사

2.1. 고대사

이 지역은 고대 킴메리아인, 켈트족 등 여러 부족들이 거쳐가던 지역이었다. 서기 2세기 로마 제국 다키아 왕국을 정복하고 다키아 속주를 세우고 모이시아 속주를 확장하던 과정에서 이 지역도 로마 제국과 국경을 접하고 활발한 교류를 이어나갔다.

이후 유틀란트 반도 고트족이 남하하여 이 지역에 대거 정착하였고, 고트족이 납치한 로마인 및 선교사들의 노력으로 이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 역시 기독교로 개종하기 시작했다. 고고학적 발굴 결과 5세기 보토샤니에서는 많은 예배당이 발견되었다.

고트족이 대거 이탈리아반도 이베리아반도로 이주한 이후 이 지역에는 아바르 칸국의 군대를 따라서 슬라브인이 이 지역에 대거 정착했다. 트란실바니아와 왈라키아 너머 남하한 슬라브인은 남슬라브족이 되는 반면 몰다비아에 정착한 슬라브인은 동슬라브족의 일파 루신인 혹은 오늘날 우크라이나인 일부의 기원이 되었다. 그러나 몰다비아 지역의 주민의 대다수는 로망스어군 언어를 사용하는 중세 루마니아인이기도 했다. 해당 지역 주민들이 어떻게 슬라브화를 피하고 남부에 이웃한 로마화된 민족들의 영향을 받았는지는 사료의 부족으로 자세히 알기 힘들다.

러시아 측 사료에는 중세 몰다비아 지역에 거주하던 부족 집단을 볼로호비아족(Болоховци, Bolokhovtsy)이라고 지칭했다. 키예프 루스의 영향을 받던 부족들은 몽골 제국의 침략 당시 몽골 제국군의 직접 공격을 피해갔지만 대신 몽골 제국 측으로부터 무리한 공물을 요구받았다. 이후 이웃한 키예프 루스의 방계 국가 갈리치아-볼히니아 공국의 공작 다닐로가 볼로호비아족을 격퇴하고 이들에 대한 역사 기록은 자취를 감추었다.

2.2. 몰다비아 공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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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마니아인이 킵차크 칸국의 영향력을 일소하고 세력을 키운 것을 계기로 1346년 몰다비아 공국이 건국되었다.

본래 몰다비아는 루마니아 역사에서 직접적으로 로마화의 영향을 받은 남쪽의 왈라키아에 비해 비교적 비중이 낮은 지역이었으나, 슈테판 대공이라고 불리는 슈테판 3세 시점을 기준으로 전성기를 맞으면서 중세 루마니아 역사를 이끌게 되었다. 슈테판 3세가 이끄는 몰다비아 공국은 바이아 전투에서 승리하여 헝가리 왕국의 예속화 계획을 좌절시키고 1471년 왈라키아 공국을 침공하여 영토를 확대하였으며, 1475년에는 바슬루이 전투에서 당시 유럽에서 무적의 군대로 악명높았던 오스만 제국군을 격퇴하는 데에 성공했다. 1476년에 메흐메트 2세가 친정한 발레아 알바 전투에서 몰다비아 공국 측이 패배하기는 했으나 오스만 군대가 승전 이후 전염병으로 후퇴하면서 몰다비아 공국은 국력을 보존하는데 성공하였다. 이 시기 몰다비아 공국은 폴란드 왕국 리투아니아 대공국과 교류하고 오스만 제국과 보다 인접한 왈라키아 공국을 통치한 블라드 3세를 지원하거나 견제하는 정책을 반복하면서 오스만 제국의 침공을 최대한 지연시키는 외교 정책을 펼쳤다.

오스만 제국군은 남쪽으로 육로를 통한 공격이 좌절되자 크림 반도에 있던 번국인 크림 칸국 군대를 이용하여 몰다비아를 계속 약탈하였다. 결국 1484년 오스만 제국은 몰다비아 공국의 해안 지대를 정복하였고 1494년부터 몰다비아 공국은 오스만 제국에게 조공을 바치게 되었다. 다만 왈라키아 공국처럼 오스만 제국의 전쟁에 군대를 파견할 의무는 면제되었다.

1600년 왈라키아 공국 미하이 2세 에르데이 공국[1]과 몰다비아 공국의 공위를 가지게 되고, 역사적으로 루마니아를 구성하는 세 지역이 잠시나마 통일되었다. 미하이 2세 치하에서 중심도시인 이아시에는 정교회 수도원이 대거 개축되었는데, 이는 주변 가톨릭 및 이슬람 국가들로부터 루마니아 정체성을 확립한다는 의의가 있었다.

그러나 왈라키아, 몰다비아, 트란실바니아의 통일은 이웃 국가들의 간섭으로 오래가지 못하고 1601년 다시 세 지역은 분리되었다. 미하이 2세의 루마니아 통일은 이후 루마니아 민족주의자들이 루마니아 왕국을 운영하는 방향에 직접적인 영감을 주었다.

2.3. 부코비나의 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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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폴란드 분할 갈리치아 지역을 얻은 합스부르크 가문 요제프 2세 카르파티아산맥을 두고 떨어진 신생 갈리치아-로도메리아 왕국 에르데이 대공국을 육로로 잇기를 원했다. 1774년 요제프 2세는 갈리치아와 에르데이 사이에 있는 지역을 점거하고 이 지역을 내놓으라고 오스만 제국을 압박했고, 이듬해 부코비나 공국을 수립하여 합스부르크 제국의 일부로 병합시켰다. 1776년, 팔라무트카 조약으로 오스만 제국의 파디샤 압뒬하미트 1세는 오스트리아의 부코비나 합병을 인정해버렸고 부코비나 강탈에 반대하던 몰다비아 공작 그리고레 3세 기카를 암살하여 몰다비아 공국의 반대 의견을 찍어 눌렀다.

오스트리아로 병합된 부코비나는 본래 루마니아인 다수 거주 지역이었으나 19세기 중후반부터 가난한 갈리치아 우크라이나인 농민들이 다수 넘어오면서 루마니아인보다 우크라이나인이 더 많아졌다.

2.4. 베사라비아의 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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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6년 러시아 튀르크 전쟁 및 1812년 부쿠레슈티 조약을 통해 러시아 제국은 당시 오스만 제국의 봉신국이었던 몰다비아 공국 프루트강 동쪽 절반에 해당하는 영토를 점령하고 해당 지역을 베사라비아 현(Бессарабская губерния)으로 명명하였다. 이는 결국 현대 루마니아 몰도바가 분리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러시아 제국의 지배를 받으며 베사라비아에 루마니아계 외에도 여러 정착민들이 이주하면서 인구 구성이 다소 복잡해졌다. 오스만 제국의 영향력이 일소되자 도회지에는 독일인 이주자들이 몰려들었다. 이미 몰다비아와 이웃한 트란실바니아에서는 트란실바니아 작센인이 상권을 장악했던 상황이었다. 또한 오스만 제국 불가리아 영토에서 온 기독교인 난민들이 이 지역에 대거 정착하였는데 부자크 지역에는 불가리아인이 정착하였고, 가가우지아 지역의 가가우즈인이 정착하였다. 러시아 제국은 또한 카스피해 유역의 무슬림 유목민 노가이인을 베사라비아에 강제 정착시키기도 했으나, 알렉산드르 수보로프가 정착 과정에서 도망가지 못하도록 거주용 천막을 전부 다 불지르는 바람에 노가이인 다수가 얼어죽고 살아남은 노가이인 대다수가 오스만 제국으로 탈주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2.5. 루마니아 왕국의 건국

베사라비아 상실 이후 몰다비아 공국은 1859년 알렉산드루 이오안 쿠자 왈라키아 공국의 군주로 선출되어 동군연합을 이루면서 ' 몰다비아 왈라키아 연합공국'이 수립되었다. 이후 1862년 두 공국이 동군연합 상태에서 완전히 통일하여 루마니아 왕국의 전신에 해당하는 루마니아 공국을 이루게 되었다.

루마니아 공국은 1877년 러시아-튀르크 전쟁에서 러시아 편을 들면서 오스만 제국과의 관계를 청산하였다. 그 대가로 1878년 러시아 제국에게 돌려받았던 베사라비아 영토 일부를 다시 러시아 제국에 양도하였는데 이렇게 변경된 국경선은 오늘날 루마니아와 몰도바, 우크라이나 국경으로도 이어졌다.

1881년부로 루마니아 공국은 루마니아 왕국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었다. 근현대 민족주의의 영향과 보통 교육의 보급으로 루마니아 왕국 주민들은 루마니아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게 되었다.

2.6. 현대

제1차 세계 대전때 루마니아 왕국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러시아 제국의 멸망으로 베사라비나와 부코비나를 되찾았으나, 1940년 이오시프 스탈린의 압력으로 베사라비아 지역와 부코비나 북부를 소련에게 다시 강탈당했다. 루마니아는 독소전쟁 때 베사라비아를 잠시 탈환했지만 제2차 세계 대전이 추축국의 패전으로 끝나면서 다시 소련에게 빼앗겼다. 그리고 소련은 합병한 베사라비아 지역 중 흑해 연안의 부자크 지역을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에게 넘겼고 나머지 지역에는 몰도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을 수립하였다.

소련 붕괴 이후 몰도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은 루마니아와의 통일을 포기하고 몰도바라는 완전히 다른 나라로 독립하게 되면서 몰다비아는 서쪽의 루마니아령과 동쪽의 몰도바 및 우크라이나령으로 나누어졌다. 몰도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경우 소련 해체 당시 가장 독립 열기가 강한 지역이었으나 해당 지역은 자체적인 산업이 부실한 농업 지역이었고 소련 해체 이후 우크라이나와 함께 유럽 최빈국으로 전락하였다.

몰도바에서는 독립 직후 잠시 루마니아와의 통합 움직임이 일었으나 러시아인을 비롯한 비루마니아계 소수민족 인구가 있던 몰도바의 상황이 간단하지 않았다.[2] 몰도바가 트란스니스트리아와의 전쟁에서 패전한데다가 그렇다고 경제가 엉망이 된 상황에서 자국 내 러시아인을 때려잡았다가는 후환이 두렵고, 결국 자국 내 트란스니스트리아라는 미승인국을 둔 어정쩡한 상태로 남아있다. 루마니아 입장에서는 몰도바와 통일할 경우 트란스니스트리아를 어떻게 처리할 지 다른 나라들의 눈치가 보이는 상황이 되었다. 그나마 몰도바보다는 상황이 나았던 루마니아 역시 경제난을 겪으면서 통일을 추진하지 못했고, 몰다비아 지역은 프루트강을 경계로 한 쪽은 루마니아에 한 쪽은 몰도바에 북부와 동부 일부 지방은 우크라이나에 귀속된 상태로 오늘날에 이른다.

오늘날 루마니아는 EU에 가입하며 완전히 친서방 진영 국가가 된 반면에 몰도바는 트란스니스트리아, 가가우지아 같은 내부 문제 등으로 러시아와 밀접한 관계였으나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루마니아와의 통일 움직임과 EU 가입 논의가 다시금 진행되고 있다. 트란스니스트리아는 이제 사실상 시한부 판정을 받은 상태이고, 가가우지아도 트란스니스트리아와 마찬가지로 몰도바와 우크라이나 사이에 끼어있기는 하지만 하지만 몰도바의 기득권 대부분이 친러 성향이 많아 루마니아와의 통일 운동은 아직까지는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1] 본래 헝가리 왕국의 영토로, 지배층은 헝가리인, 세케이인, 독일인이었으나 대부분의 인구는 루마니아인 농노들이 차지했다. [2] 물론 루마니아도 헝가리계 루마니아인, 세케이인 헝가리계 소수민족이 트란실바니아에 남아있다. 트란실바니아가 과거 헝가리 영토였기 때문. 클루지나포카는 인구 1/4가 헝가리계이며 트르구무레슈는 인구 절반이 헝가리계일 정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