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조직의 특징
- 이탈리아계 마피아 조직의 특징으로 견고한 서열구조와 조직 체계를 들 수 있다. 이탈리아계 마피아 조직은 피라미드형의 중앙 집권적인 권력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직제 또한 체계적이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이탈리아계에 의해 지배되던 미국 내 조직범죄에 점차 다른 인종이 유입되기 시작한다. 그런 와중에 유대인들은 이스라엘 등지로 이주를 하는 등 유대인 조직범죄자와 아일랜드계 조직범죄자는 점차 그 수가 감소한 반면, 이탈리아계는 그 수가 충분할 정도로 유지되었다. 이렇듯 다른 범죄조직들은 명멸해도 마피아만은 끈질기게 살아남는 또 다른 이유로 라 코사 노스트라의 일부 인사들이 본인의 아들, 조카와 같은 친족들이 자신의 뒤를 이어주길 원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경제적인 지위를 얻은 이탈리아계 마피아 조직원들조차 범죄 세계를 떠나지 않으며 대부분의 경우 그들의 후손들도 그들을 따라 마피아 구성원이 된다. 이러한 견해는 확실한 경험적 근거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현재 많은 마피아 멤버의 자식들이 실제로 그들의 부모를 따라 같은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1][2] 많은 마피아 조직원들은 자신들이 '패밀리 사업'으로 번 돈이 자식들에게 물려줄 만큼 가치 있는 것이라고 믿는다. 단순히 이러한 생각이 기성세대의 전유물만이 아니라 일부 신세대 이탈리아계 미국인들도 자기네 마피아 사업의 유산과 역사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또 그중 일부는 실제로 조직에 가담하고 있는 실정이다.[3] 중류층에 속하는 젊은 이탈리아계 미국인 남성들은 라 코사 노스트라에 끊임없는 매력을 느끼며 그들에게 마피아란 낭만과 동경의 대상이다. 이것은 영화나 드라마 등 매스미디어의 연출에 의해 더욱 강화된다. 특히 그들이 살고 있는 사회적 환경 - 바, 레스토랑, 나이트클럽 등 - 에서 마피아와의 연줄은 그들에게 위세와 명예를 가져다준다.
- 대부 2편의 톰 헤이건의 대사 중 콜레오네 패밀리가 고대 로마 제국을 본떠서 조직되었다는 부분이 있는데 실제로 미국 마피아의 기반을 세운 두목 중의 두목(Capo Di Tutti I Capi) 살바토레 마란자노 (사진)가 라 코사 노스트라를 로마 제국의 체계를 본떠서 조직했다. 한 마디로 두목(Boss)은 황제고 행동대장(Caporegime)들은 군단장이 되는 셈인데, 때로는 두목의 수감 같은 내부 사정에 따라서 두목의 대리인 역할을 하는 두목 대행(Acting Boss)을 필두로, 다수로 구성된 지도부가 집단지도체제로 조직을 운영하며 수감 중인 두목을 대리하는 경우가 있다. 이것도 로마의 삼두정치를 연상시킨다.[4]
- 또 다른 특징으로 이들은 대부분이 살인을 금하는 가톨릭 교회의 신자들이고 가톨릭 전통을 따른다는 점이다. 자신들(마피아 조직원)은 일종의 이탈리아인의 전통과 권리를 지키는 군인들이고 군인들은 언제든지 국가의 명을 받아 전쟁터에서 적을 죽이고 본인도 적에게 죽임을 당할 수 있듯이 자기네 마피아들도 마찬가지라는 사상체계를 가지고 있다.[5] 그래서 자신들은 마피아 관련 비즈니스로 살인을 해도 지옥에 갈 거라고 생각지 않는다. 사후에 천국까진 아니어도 연옥에 가는 정도로 합리화하는듯 하다.[6] 이러한 것의 연장선상에서 마피아가 가톨릭 관련 지역 축제를 돕고[7] 각종 자선사업도 하는 것인데 프란치스코 교황이 칼라브리아의 은드랑게타를 (비록 교회법에 따른 정식파문은 아니지만) 구두로 파문한 것은 파급력이 있는 사건이다.
- 많은 마피아 두목(Boss)들이 독실한 신앙인인데 성경공부도 자주 한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살바토레 리이나는 성인들의 성화가 잠자리에 없으면 잠을 자지 않았고 베르나르도 프로벤자노는 체포될 때 성경의 구절들에 밑줄과 주석들을 단 4개의 성경책을 가지고 있었다. 이탈리아의 반 마피아 사제 니노 파술로는 "이탈리아에는 종교적이지 않은 마피아는 단 한 명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지적 정당성이 전혀 없는 마피아 같은 집단은 종교가 참고할 수 있는 유일한 이념적 기구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미국에서 활동한 마피아도 마찬가지인데 카스텔람마레세 전쟁 당시 살바토레 마란자노는 마이크 미란다라는 갱스터에게 왜 일요일에 교회를 가지 않느냐고 힐책했다고 한다. 미란다가 어떻게 사람을 죽이고 바로 교회를 가겠냐고 반문하자, 종교는 인간의 영혼과 관계된 것이기 때문에 그딴 것은 아무 상관 없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 이탈리아계 마피아는 야쿠자, 레드 마피아, 대다수의 미국 바이커 갱•스트리트 갱단들이 가지고 있는, 조직을 상징하는 문신 체계가 없는데, 그 이유는 예로부터 시칠리아에 문신 풍습이 없었고, 비밀결사로 시작한 마피아 조직의 특성상 조직이 최대한 노출되지 않아야 하는데, 문신만큼 그 정체를 드러내는 수단이 또 없기 때문이다. 다만 조직 차원에서 조직원들이 개별적으로 하는 문신은 따로 금지하지 않고 자율에 맡기는 것으로 보인다. 문신을 한 루케시 패밀리 행동대장(Caporegime) 유진 카스텔(Eugene Castelle), 문신을 한 보나노 패밀리 조직원들.
- 많은 사람들이 미국 마피아에 이탈리아 혈통 조직원만 있다고 생각하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다. 마피아/역사 문서의 서술처럼 러키 루치아노가 살바토레 마란자노를 제거하고 암흑가의 패권을 잡았을 때 다민족 국가인 미국에서 순혈주의만 고집하면 안된다는 걸 깨닫고 인종 상관없이 조직원으로 받아주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의 한계는 추종세력(Associate)이라 부르는 '준 구성원 혹은 준조직원' 신분이고 Made member라고 부르는 정규조직원은 이탈리아 혈통이어야 한다. 링크 속 조직도(2010년에 수사기관에서 공개한 22억 달러 규모의 루케시 패밀리의 도박업 자료)를 참고하면 상층부에는 이탈리아 혈통의 남성 조직원만이 위치하지만 맨 아래 말단에는 백인 뿐 아니라 흑인, 히스패닉, 심지어 여성까지 존재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 중요했던 규칙 중 하나로 "여자와 아이는 여간해선 죽이지 않는다."였는데, 이 때문에 사람들이 마피아를 로맨티시스트로 보는 경향이 생겼다. 아무리 원수 같은 놈이라도 그의 아내와 자식의 목숨은 상관없다고 이해한 모양이다. 그렇지만 실상은 아이들과 아내를 살려 두어 마음만 먹으면 그들도 죽일 수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하고, 그들을 본보기로 삼음으로써 더욱더 공포를 퍼뜨리려는 행동에서 비롯된 규율이다. 실제로 이탈리아 본토 마피아는 정부 증인으로 돌아선 조직원들의 가족을 집요하게 노리고 죽였다.
- 특정 패밀리에 속한 마피아 정규조직원(Made member)이 조직을 옮길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 수 있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아주 드문 경우지만 가능하다. 1980년대에 자신의 두목(Boss)과 사업상 마찰이 있었던 콜롬보 패밀리 소속 마이클 프란지스는 절대 사람을 쉽게 만나지 않는 제노비스 패밀리 두목 빈센트 지간테로부터 직접 만나자는 제안을 받아 만남이 성사되었는데 그 자리에서 지간테가 뒤처리는 모두 자신이 할 테니 소속을 제노비스 패밀리로 옮기라는 제안을 했고 자신이 정중히 거절했다고 한다. 또한 2차 콜롬보 항쟁을 마피아 위원회가 개입해 중재했는데, 알버트 갈로와 그를 따르는 부하들이[8] 콜롬보 패밀리와 평화 협정을 맺은 후 그들이 제노비스 패밀리로 이적하는 것으로 결론지어졌다. 그 뒤로 알버트 갈로와 부하들은 제노비스 패밀리 소속으로 활동했다.
- 이탈리아의 견종 카네 코르소는 실제 마피아들이 즐겨 기른다 하여 국내에서 ‘마피아개’라는 별명이 있다.[9] 이런 대중적 이미지에 걸맞게 2007년 영화 아메리칸 갱스터에서 조연으로 등장하는 이탈리아계 마피아 두목(Boss) 캐릭터가 카네 코르소를 경비견으로 기르는 장면이 등장한다.
- 미국 마피아들이 주로 타는 차량으로는 고급 승용차, 혹은 검은색 대형 SUV가 스테레오 타입이나, 실제로 이러한 차량들은 눈에 튀기 때문에 미디어의 주시를 신경쓰지 않는 고위층의 마피아들이 타거나,[10] 혹은 미디어가 만들어낸 환상인 경우가 많다. 실제로 하급 단원이나, 히트맨들의 경우 왜건이나, 패널 밴, 혹은 눈에 잘 안띄이는 조금 연식이 있는 차를 타는 경우가 많다고.[11] 이 중 특히 왜건과 패널 밴의 경우 여차하면 작업용 장비들을 눈에 띄지 않게 수납 가능한데다, 시신도 쉽게 운반 가능하기에 1960~70년대부터 마피아들의 머스트 헤브 아이템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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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르타를 어기고 정부 측 증인이 된 이탈리아계 범죄조직 두목(Boss)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12]
시칠리아 코사 노스트라
조반니 브루스카 - 산 주세페 자토 만다멘토 두목 (2000년)
안토니노 주프레 - 카카모 만다멘토 두목 (2002년)
미국 라 코사 노스트라
랄프 나탈레 - 필라델피아 패밀리 두목 (1999년)
조셉 마시노 (사진) - 보난노 패밀리 두목 (2004년)
나폴리 카모라
파스콸레 갈라소 - 갈라소 클랜 두목 (1992년)
카르미네 알피에리 - 알피에리 클랜 두목 (1993년)
루이지 줄리아노 - 포스텔라 클랜 두목 (2002년)
안토니오 이오빈 - 카살레시 클랜의 두목 중 한 명 (2014년)
파스콸레 크리스티아누 - 아르자노 167 클랜 두목 (2021년)
칼라브리아 은드랑게타
필리포 바레카 - 바레카 은드리나 두목 (1992년)
마리오 프라노 - 프라노 은드리나 두목 (2000년)
니콜라 그란데 아라크리 - 아라크리 은드리나 두목 (2021년)
2. 마피아의 사업
- 마피아 사업은 통상 도박, 고리대금, 마약 같은 불법적인 상품과 서비스(goods and services that happen to be illegal)를 공급하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마피아 사업의 핵심은 그러한 상품이나 서비스의 공급 활동이 아니라 기생체적인(parasitic) 활동이다. 즉 마피아 사업은 기본적으로 갈취 혹은 착취(extortion)이며 불법적인 상품과 서비스를 공급하는 범죄자들(those criminals who provide goods and services)이 그들의 희생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마피아가 지배하고 있는 지역에서 영업을 하는 도박업자(bookmaker)는 그러한 영업을 할 수 있는 특권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든지, 폭력으로 고통 받든지, 부패한 경찰에게 일제 검거를 당하든지 셋 중 하나이다. 마피아는 그러한 사업에 대한 허가를 하고 다른 범죄자들은 폭행, 살해, 경찰의 단속 등을 당하지 않기 위해 자릿세(street taxes)라는 명목으로 그러한 허가를 사야만 한다. 일례로 뉴욕의 잘나가는 도박업자의 임금대장에는 마피아 정규조직원을 뜻하는 '와이즈가이(wiseguy)'에게 주당 수백 달러씩 지급한 내역이 적혀 있다. 이것은 다른 범죄자들이 영업을 방해하거나 자릿세를 갈취하는 것을 막아주므로 보험이나 마찬가지이다. 또한 마피아는 빚을 받아내는 것도 도와주는데, 이에 대한 수수료(commission)는 보통 50-100% 정도이다. 특히 장물 매매는 기본적으로 마피아 사업의 부업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 외에 도박, 고리대금 등의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마피아와 연계되어 있다.
- 돈 되는 건 합법•불법 가리지 않고 다하는 마피아 조직이지만 그들의 핵심 사업은 노조(Union) 개입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일찍이 갬비노 패밀리 두목(Boss) 폴 카스텔라노는 '우리의 일은 노조를 경영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노조 장악을 통해 각종 이권에 개입하고 노조의 자금을 횡령•유용하는 등의 목적도 있지만, 더욱이 미국은 주요 선거때마다 노조에서 특정 지지 후보를 발표하고 그에 따라 노조원들의 표가 특정 후보로 몰리게 되는데, 표심에 민감한 민주국가의 정치인들은 노조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다른 말로 마피아 입장에서 정계와의 유착을 강화하는 데는 노조만 한 게 없다. 괜히 대부나 소프라노스를 보면 노동조합(Union)이 심심찮게 등장하는 게 아니고, 때로는 조합(Union)이라는 단어 자체가 마피아 조직원 당사자들이 자신들의 조직을 부르는 완곡한 표현으로 쓰이기도 하는데( 조직폭력배들이 자신이 속한 조직을 회사라고 부르는 것처럼) 영화 이레이저에선 토니(조 비터렐리)가 이끄는 조직원들이 사이레즈 사 요원들을 기습해 쓰러뜨리고 "아무도 조합을 엿 먹일 순 없지(Nobody Screws With The Union)" 라는 표현을 쓰며, 게임 맥스 페인 3 에서는 디마르코 패밀리 소속 적들의 대사[13] 중 "아무도 조합에게 개길 순 없어(Nobody fucks with the Union)!" "니 애미는 조합에게 대들면 안 된다고 가르쳐 줬어야 했어(Momma should a taught you not the fuck with the Union)!" "조합끼리 영역 싸움 했을 때가 생각나는구만!(Remind me of the Union turf wars!)" 같은 대사들이 있다.
- 대부의 비토 콜레오네가 작중 표면적으로는 합법적인 ‘젠코 올리브기름’이라는 회사의 사장으로써 수입•유통업자로 알려져 있듯, 유통업은 실제로 마피아가 선호하는 직종이다. 마피아가 관련되어 있는 사업은 여러가지 이유로 빡세게 관리를 하다보니 역설적으로 꽤나 건실한 기업이 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당시 마피아들은 세금 세탁을 위해 열악했던 우유 배달 사업을 자신들이 장악하면서 우유 사이사이에 마약이나 밀주 등을 숨겨서 유통하는 수법을 즐겨썼는데, 이 과정에서 유통망을 장악해 납품기한을 맞출수 있는 자기들 이외의 유통업자들을 말려죽일 목적으로 자신들과 연줄이 있는 정치인들과의 커넥션을 동원해서 우유에 유통기한을 반드시 표기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는 식으로 우유의 품질 관리에 엄청나게 신경 쓴 덕분에 상한 우유가 배달되는게 일상이였던 우유 배달 사업이 순식간에 깨끗한 우유만 공급하는 업그레이드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이러다보니 소비자들 사이에서 좋은 인식이 퍼져서 우유 배달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자 바로 그 우유 배달 시장을 장악하고 업그레이드시킨 장본인이였던 알 카포네는 돈세탁을 할 필요가 없는 합법적인 돈을 꽤나 짭짤하게 벌게 되자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에 이 일을 할걸 우리 그동안 사업 아이템을 완전 잘못 잡고 있었구만."라고 하기도 했다. 최근까지 갬비노 패밀리 부두목(Underboss)이었던 프랭크 칼리는 ‘Bontel USA’라는 이탈리아 식재료와 와인을 수입하는 회사의 사장이었다. 이탈리아 요리를 바탕으로 하는 레스토랑도 마피아의 주사업이다. 이탈리아계 미국인들은 동부에 주로 머물던 다른 영국계 미국인, 독일계 미국인, 아일랜드계 미국인, 그리고 이런저런 금기가 많았던 유대계 미국인들보다는 음식 솜씨가 한참 좋았기 때문에 식당을 하는 경우가 정말 많았는데 같은 맥락에서 마피아들이 하는 식당들은 보통 맛이 좋기로 유명하다. 무엇보다 마피아가 관리를 봐주고 있으니 뭔 어중이떠중이들이 와서 행패를 부릴 일이 없는 안전한 장소이기도 했다.
- 마피아는 합법•불법 가리지 않고 다양한 방법으로 막대한 수익을 벌어들이지만 가장 전통적인 범죄조직 수법 중 하나인 갈취도 여전히 큰 부분을 차지한다. 노조 연금에 손을 댈 수 있는 노동조합의 간부나 중견기업 이상의 큰 사업을 하는 관련자들을 상대로 마피아가 공갈•협박•회유•공모를 통해 수억~수십억 원을 갈취•횡령하는 경우를 언론 보도를 통해 종종 볼 수 있다. 반면 작은 사업체를 운영하는 소상공인 대상으로는 미국 마피아가 얼마의 보호비를 갈취하는지 2018년의 기소 내용을 통해 밝혀졌는데, 겨우 연간 400달러(약 50만 원)다. 어느 익명의 갬비노 패밀리 행동대장(Caporegime)에게 매해 400달러를 상납한 뉴욕시의 한 피자 가게 사장이 2015년 경에는 상납을 하지 않고 피해 다녔다. 결국 3명의 말단 조직원들이 자영업자의 차인 2014년식 벤츠 승용차를 불태워버렸고 자영업자는 그제서야 행동대장에 상납을 했다. 그 방화 장면이 자영업자의 집에 설치된 감시 카메라에 찍혔고 2018년에 그 화면을 증거로 3명의 말단 조직원들이 방화죄와 갈취죄로 기소되면서 언론에 알려졌다.
- 1950년대와 1960년대에 네덜란드의 도박 클럽들은 그림자 속에서 운영되었다. 그 클럽들은 경찰들이 입장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몇 가지 보안 대책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러한 보안 조치들 때문에 "적절한 사람"을 알고 있는 고객들만 입장할 수 있었다. 네덜란드에 이탈리아계 범죄조직이 처음 진출한 때는 1974년에 미국 마피아가 암스테르담의 도박 시장을 블루오션으로 보고 조사하러 온 때였다. 뉴욕 제노비스 패밀리 소속의 빈센트 알로와 마이어 랜스키의 부하인 디노 첼리니가 그 무리를 이끌었다. 당시 네덜란드 도박계의 거물인 마우리츠 드 브리스(Maurits de Vries)는 이들과 접촉했고 결국 마피아와 파트너십을 맺게 되었다. 미국 마피아의 첫 번째 투자는 1976년에 문을 연 도박장 '클럽 카발라(club Cabala)'에 출연한 100만 달러였다. 네덜란드의 범죄 기자 바트 미들버그는 "그 100만 달러는 여러 마피아 패밀리로부터 왔다. 물론 마피아에게는 푼돈이긴 하지만, 어쨌든 카발라는 암스테르담 최초의 전문 카지노였다."라고 암스테르담 지하세계 소식통의 말을 인용했다. 마피아는 영국이나 라스베이거스, 쿠바, 바하마의 카지노에서 일했던 숙련된 직원들을 공급했다. 이내 곧 카발라는 1년에 400만 달러에서 500만 달러를 벌어들였는데, 이 돈은 마피아와 네덜란드 조직폭력배 페노제 사이에서 50 대 50으로 나누어졌다. 1980년대에 마피아는 새로운 도박장인 '클럽 26'에 500만 달러를 투자했다. 클럽 26은 드 브리스의 아이디어였고 마피아는 주저하며 투자했다. 클럽 26은 카발라보다 더 고급스럽고 훨씬 컸다. 마피아 측에서는 그게 문제를 일으킬 거라 생각했고 결국 그들이 옳았다. 너무 많은 주의를 끈 나머지 법 집행기관에서 그 클럽을 자주 단속했고, 1983년에는 13명이 사망한 화재로 카발라와 클럽 26이 모두 전소되었다. 그 화재는 드 브리스를 타깃으로 하는 단독 범죄에서 시작되었고 그에게 타격을 입혔다.[14] 네덜란드는 여전히 여러 이탈리아계 범죄조직의 중요한 마약 루트로 남아있다. 로테르담은 세계에서 가장 큰 항구로, 서유럽의 중심적 위치 때문에 유럽으로 마약을 수송할 수 있는 완벽한 기지이기 때문이다. 1970년대~2000년대에 여러 이탈리아계 범죄조직의 주요 인사들이 네덜란드를 안전한 피난처로 여겼다. 2003년에는 사크라 코로나 우니타 파벌의 두목(Boss) 필리포 세르페다가, 2005년에는 은드랑게타 파벌의 두목인 세바스티아노 스트란지오가 네덜란드에서 체포되기도 했다.
- 마약과 신용카드 등 각종 불법거래가 이루어지는 인터넷 다크 웹을 소개받은 전 콜롬보 패밀리 행동대장(Caporegime) 마이클 프란지스는 견해를 묻는 질문에, 자신이 현역이던 1980년대까지는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아 이 시스템을 본 적이 없지만 “의심의 여지없이, 거리의 사람들은 이 시스템을 사용할 것이다.(No doubt, guys on the street would be using this.)”라는 의견을 밝혔다. 하지만 그리 효율적인 범죄 시스템은 아니라고 보았는지 “그들(다크 웹을 이용하는 범죄자들)은 일정 시점에 반드시 잡히게 될 것.(They’d probably get caught at some point.)“이라고 예상했다.
- 범죄조직의 전통적인 사업 중 하나인 포르노 업계에서 단연 전설적인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는 1972년작 목구멍 깊숙이(Deep Throat•딥 스로트)는 뉴욕 콜롬보 패밀리에서 제작한 영화다. 당시 패밀리 부두목(Underboss) 존 프란지스 (사진)와 행동대장(Caporegime) 앤서니 페라이노 (사진) 등이 주축이 되어 만든 이 영화는 4만 7500 달러(2020년 기준 29만 1000 달러)의 제작비와 음악비를 들여 6억 달러(2020년 기준 37억 달러) 상당의 총수익을 올렸는데, 이는 포르노 영화 역사상 가장 높은 수익을 올린 작품으로 남아있다.[15] 이 작품의 성공 이후 행동대장(Caporegime) 앤서니 페라이노는 패밀리 내 성 관련 사업을 총괄하며 뉴욕주에서 캘리포니아주를 가로지르는 포르노 제국을 건설했다. 1976년 앤서니 페라이노는 음란물유통죄 기소를 피해 이탈리아로 약 5년간 도피했다가 자수했고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다. 비슷한 시기 그의 아들 루이스 페라이노도 아버지와 같은 혐의로 수감되어 약 4년간 복역했다. 1982년 앤서니 페라이노는 사업 수익 배분 문제로 형제 조셉 페라이노와 갈등을 빚었다. 당시 두 사람 모두 콜롬보 패밀리의 조직원이었지만 패밀리 수뇌부는 행동대장 앤서니 페라이노의 손을 들어 주었다. 얼마 뒤 조셉 페라이노가 총격을 당해 중상을 입고 그의 아들이 살해되었다. 이후 앤서니 페라이노는 천수를 누리다 1996년에 사망했고 그의 아들 루이스 페라이노도 1999년에 암으로 사망했다. 한편, 2005년에 1970년대 초반 목구멍 깊숙이 신드롬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제작되었고 2013년엔 목구멍 깊숙이의 주연이었지만 출연료로 고작 1200 달러 밖에 받지 못한 러브레이스의 불운한 삶을 다룬 전기 영화가 제작되었다. 이렇듯 미국 내 포르노 사업은 마피아로 대표되는 조직범죄 집단의 독점적인 통제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점차 포르노 사업이 합법화되고 휴 헤프너의 플레이보이, 래리 플린트의 허슬러 같은 합법적인 기업체들이 사업을 시작하자 오늘날의 마피아는 업계에 침투하여 보호비(protection money)를 갈취하는 단순한 기생체로 변모하게 되었다.
- 의외로 마피아들은 전업으로 마피아 짓을 하기보다는 식당이나 주점 등의 본업을 하면서 '가끔' 마피아 짓을 부업으로 했다. 이유야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들 중 하나는 미국 국세청의 세금 추적을 회피하기 위해서였는데, 폭력단이 하는 짓은 당연히 불법이고 그 불법 행위로 벌어들이는 돈 또한 당연히 검은 돈이 되는데, 일단 그 돈을 쓰지 않고 쥐고 있기만 한다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쓰려고 벌어들인 돈을 안쓸수는 없으니 결국은 쓰게 되어있고 그렇게 사용된 모든 돈들은 미국 국세청에서 대체 뭔 짓을 해서 이 돈을 벌어들인 건지를 입증하는 자료를 요구하게 되어있다. 여기서 자료를 성실히 제출하지 않으면 국세청이 바로 조사를 위해 들이닥쳐서 그동안 저지른 불법 행위가 죄다 탄로나게 되고, 그렇다고 당당하게 불법 행위로 번 더러운 돈이라고 정직하게 밝히면 국세청과 더불어 연방수사국을 위시한 각종 수사기관이 이걸 보고 들이닥치기 때문에, 결국엔 합법적인 사업으로 번 떳떳한 돈이라는 식으로 자금 세탁을 할 목적으로 합법적 사업을 병행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수법은 간단하게 그냥 적당히 운송비, 시설유지비, 기술진단비 같은 명목들을 적당적당히 붙여넣어서 합법적으로 번 것처럼 위장만 잘 하면 되지만, 예컨데 운송비라고 한다면 트럭 운전수에게 그만큼 급여를 지급했다는 뜻인데 정작 그 트럭 운전수가 자기는 급여를 조금밖에 안받았다고 신고하면 마피아와 트럭 운전수가 신고한 금액이 어마무시하게 차이가 나는걸 본 국세청에게 제대로 찍히니 입도 미리 맞춰둬야 하는 등 신경써야 할 것도 부지기수이다. 엘리엇 네스가 알 카포네를 체포할때 쓴 방법도 이런 식으로 돈 세탁을 하려다가 미처 놓치고 못한 부분들을 짚어내서 체포한 것으로, 실제 알 카포네가 저지른 온갖 범죄행위들을 전부 적발한다면야 영원히 감방에서 썩게 만들 수 있었겠지만 관련 증거들은 사라지고 증인들은 매수되어서 알 카포네가 원래 저지른 다른 범죄들은 기소하지 못한 대신, 세금 문제만이라도 걸고 넘어져서 체포한 것이다.
- 1990년대 중반까지 뉴욕 마피아는 쓰레기 수거업을 독점하여 카르텔을 구성해서 시카고에 비해 3배나 높은 비용을 물리며 막대한 이익을 벌여들었다. 민간업자들을 내몰기 위해 폭행, 살인, 소이탄까지 쓰면서 갖은 압력을 가했다. 1995년 뉴욕경찰이 대거 검거를 통해 마피아의 쓰레기 카르텔을 소멸시켰다. 이후 쓰레기 처리 비용이 크게 감소하였으나 민간 시장에 대기업들이 끼어들어 다시 카르텔을 만들어 쓰레기 비용이 상승했다고 한다. 관련 글
3. 정관계와의 관계
- 정치인, 검사, 육군대장 등 가리지 않고 정관계 인사를 암살한 시칠리아의 마피아와 달리 미국 마피아의 러키 루치아노는 자신을 기소한 토머스 듀이 지방검사를 암살하려는 부하들을 만류하고 순순히 재판을 받고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그 밖에도 미국 마피아는 제2차 세계 대전 때 미국 정부를 도와 전쟁에 협력한 점, CIA와 연계하여 피델 카스트로 암살 작전을 시행한 점, 21세기에 IS가 기승을 부리자 다시금 미국 정부에게 연합하여 함께 싸우자는 제안을 하는 등 정부와의 마찰을 최대한 지양하는 특징을 보인다. 전 갬비노 패밀리 두목(Boss) 폴 카스텔라노가 '우리는 경찰과 정부 요원을 죽이지 않는다. 다만 서로 죽일 뿐이다.(we don't kill cops, we don't kill agents, we kill each other.)'라고 얘기한 사례도 있다. 하지만 미국 마피아 또한 잔혹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범죄조직이므로 예외 사례 또한 있는데, 1933년 시카고 아웃핏이 자행했다는 음모론이 있는 앤턴 서맥 시카고시장 살인사건, 1963년 미국 마피아가 두루 관여했다는 음모론이 있는 케네디 대통령 살인사건[16] 1987년 뉴욕 마피아가 논의한 루돌프 줄리아니 연방검사장 살인공모, 1987년 콜롬보 패밀리가 자행한 조지 아론왈드 지방판사[17] 살인사건, 1987년 제노비스 패밀리가 자행한 FBI-NYPD 합동 조직범죄전담반 수사관 앤서니 벤디티 살인사건, 1997년 콜롬보 패밀리가 자행한 NYPD 경찰관 랄프 돌스 살인사건, 2004년 보나노 패밀리가 논의한 연방검사 그렉 안드레스 살인공모, 2005년 뉴욕 마피아가 논의한 FBI 요원 호아킨 가르시아 살인공모 같은 사례가 존재한다.
- 1992년경 현재 뉴욕 주지사인 앤드루 쿠오모의 아버지인 전 뉴욕 주지사 마리오 쿠오모를 이탈리아 마피아가 암살하려 했다는 증언이 2016년에 나왔다. 당시 한창 미국-이탈리아의 마피아 수사가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탈리아를 방문한 마리오를 마피아가 경고 차원에서 암살하려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위험한 상황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던 마리오 쿠오모가 막강한 호위 병력과 방탄차까지 끌고 와서 보안을 철저히 했기 때문에 마피아는 암살을 포기하였다고 한다. 가디언지 기사 마리오 쿠오모는 2015년 자연사했고 그 아들 앤드루 쿠오모가 현재 뉴욕 주지사로 있다. 코로나19가 뉴욕에 퍼지자 그 동생인 CNN 앵커 크리스토퍼 쿠오모와 함께 언론에 많이 노출되어 차기 대권후보로까지 물망에 올랐으나 성추문으로 낙마했다.
- 미국 마피아의 전성기 시절 정치인과의 유착은 두 말하면 입 아프니 넘어가고 현대의 정치인들 중, 45대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와 마피아의 관계가 흥미로운데, 과거 '에디 가로팔로'라는 갬비노 패밀리 조직원이 체포되었을 때 소지품 중 트럼프가 운영하는 리조트의 무료 이용권이 나왔고 그는 과거 트럼프 타워 건축 때 석면 폐기물을 처리하기 위해 고용된 인물이었다. 또 트럼프가 1984년 애틀랜틱시티에 플라자호텔을 지을 당시, 1981년에 암살 당한 필라델피아 마피아 두목(Boss) '필립 테스타 (사진)'의 아들인 '살바토레 테스타'라는 인물에게 굳이 당시 시가의 2배인 110만 달러를 주고 호텔 부지를 구입한 적이 있다. 또 필라델피아 마피아의 재정을 관리하던 '케네스 샤피로'라는 재정 전문가도 트럼프의 여러 프로젝트에 관련되었다. 또한 플라자호텔은 철강으로 짓는 게 더 저렴하고 트렌디함에도 콘크리트로 지어졌는데 당시 콘크리트를 납품한 S&A 콘크리트는 제노비스 패밀리의 일선 두목 앤서니 살레르노의 회사였고, 당대의 갬비노 패밀리 두목 폴 카스텔라노도 콘크리트 사업을 하고 있었다. 1990년대 FBI의 도청 자료에 의하면 갬비노 패밀리 두목 존 고티와 트럼프가 카지노 사업과 관련된 결탁 관계라는 것이 드러났다. 또한 2010년에 완공된 '트럼프 소호'를 지을 때 관련 업체 중 하나였던 '사피르'의 부회장 '프레드릭 콘티니'는 2004년에 갬비노 패밀리와 결탁한 범죄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전적이 있는 마피아 쪽 사업가(동업자)다. 단, 전 콜롬보 패밀리 행동대장(Caporegime) 마이클 프란지스는 트럼프가 마피아와 함께 사업상 여러모로 엮인 것은 뉴욕에서 건설 사업을 하면서 어쩔 수 없는 필연적인 부분이고 트럼프는 결코 마피아와 사적인 관계를 맺거나 친분을 가지기 위해 아첨하는 부류의 사업가가 아니었다고 밝혔다.[18] 트럼프는 2013년 데이비드 레터맨쇼에 출연했을 당시 진행자로부터 "당신은 알면서도 조직범죄와 거래를 한 적이 있습니까?(Have you ever knowingly done business with organized crime?)"라는 질문을 받자 "당신도 알다시피, 뉴욕에서 성장하고 뉴욕에서 사업을 하는 와중에 그러한 사람들 중 하나가 있었을 수도 있지만, 저는 그 집단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저는 그 사람들을 가끔 만났습니다. 그들은 매우 좋은 사람들입니다. 당신은 단지 그들에게 돈을 빚지지 말아야 할 겁니다. 그들에게 돈을 빚지지 마세요.(I’ve really tried to stay away from them as much as possible. You know, growing up in New York and doing business in New York, I would say there might have been one of those characters along the way, but generally speaking I like to stay away from that group. I have met on occasion a few of those people. They happen to be very nice people. You just don’t want to owe them money, Don’t owe them money.)"라고 대답했다. 2022년엔 트럼프의 대통령 시절 참모였던 스티브 배넌과 함께 부패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이 정부 측 증인으로 추정되는 사람에 대해 "뒤를 조심해라, 뉴욕 마피아 패밀리 사람들을 알고 있다.(Watch his back, knows people in a New York mafia crime family.)"라고 얘기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트럼프 말고도 이탈리아 혈통의 55대 뉴저지 주지사 크리스 크리스티도 마피아 연관설이 있는데, 2010년에 췌장암으로 사망한 '티노 피우마라 (사진)'라는 뉴욕 제노비스 패밀리 고위 간부의 조카가 바로 크리스티다. 2000년에는 뉴저지 주 캠든 시의 시장이 필라델피아 마피아와 연관된 부패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고 공직을 내려놓기도 했다.
- 정관계, 특히 수사기관과 거대 범죄조직이 결탁하는 경우는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상당히 흔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선을 넘어버린 사례가 있는데, 1980~1990년대에 뉴욕 마피아 패밀리에 매수되어 최소 8건의 살인에 관여한 2명의 NYPD 소속 형사가 있다.[19] 루이스 에폴리토(Louis Eppolito)와 스티븐 카라카파(Stephen Caracappa)가 그 주인공인데, 에폴리토는 아버지와 삼촌이 갬비노 패밀리의 조직원인 마피아 집안에서 자랐고[20] 카라카파는 마피아 배경은 없지만 파트너의 영향을 받아 암흑가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에폴리토는 여러 사건을 해결하여 NYPD 역사상 11번째로 훈장을 받는 등 전설적인 형사로 이름이 높았고, 카라카파의 경우 NYPD 조직범죄 전담반의 창립멤버 중 하나였다. 이들은 각종 비밀 정보들을 마피아 측에 흘렸고, 때로는 마피아 조직을 이용해 범죄와 관련된 내부 정보를 얻은 뒤[21] 이 정보를 수사에 이용함으로써 여러 사건을 해결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은 루케시 패밀리로부터 매달 4000달러를 받으면서[22] 살인을 포함한 수많은 범죄행위에 개입했다.[23] 둘의 우정은 에폴리토가 1990년, 카라카파가 1992년에 경찰관을 은퇴한 뒤에도 지속되었는데 은퇴 이후 라스베이거스에서 이웃으로 살았다. 둘은 2005년에 체포되어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2015년에는 에폴리토와 카라카파가 잘못 흘린 정보로 마피아에게 억울하게 살해당한 26세 청년의 유족에게 뉴욕시가 28년 만에 과실을 인정해 500만 달러를 배상했다.[24]
- 21대 라스베이거스 시장인 오스카 굿맨은 변호사로 여러 마피아 두목(Boss)들과 갱단에 관련된 주요 인물들을 변호했다. 마이어 랜스키, 필 리오네티, 니키 스카포, 스타더스트 카지노 사장 프랭크 로젠탈, 미국 판사 존 우즈 주니어를 살해한데 연루된 마약상 지미 차그라 등등. 오스카 굿맨은 영화 카지노에 본인 역으로 카메오 출연했으며 프랭크 로젠탈을 모티브로한 '에이스 로스스틴' 역인 로버트 드니로를 변호한다. 오스카 굿맨은 마피아에 관심이 많아 시장을 퇴임하고 난 뒤 2012년에 라스베이거스에 마피아 박물관을 세우는데 큰 도움을 줬다. 마피아 박물관은 처음에는 이탈리아계 미국인들의 반대에 직면했지만 오스카 굿맨과 FBI 전직 국장들이 지지해서 개관하는데 성공했다. 이후 라스베이거스의 관광 명물이 됐다. 트립 어드바이저, 홈페이지
- 20세기 후반의 전설적인 제노비스 패밀리 행동대장(Caporegime) 제임스 나폴리 (사진)의 막내아들 로코 나폴리에 의하면 그는 과거 베트남 전쟁 전선에 배치되기 약 1달 전쯤 아버지의 부름을 받고 본가로 향했다. 이윽고 서재에 들어선 그는 미 육군 현역 준장과 함께 있는 아버지를 볼 수 있었다. 알고 보니 자신의 아들이 베트남에 끌려가 목숨을 잃는 걸 볼 수 없었던 제임스 나폴리가 장군을 매수해 막내아들을 의가사 전역시키기 위한 자리였다. 하지만 로코 나폴리는 전쟁에 참전하려는 의지가 강했고 베트남에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결국 제임스 나폴리도 아들의 의중을 받아들이고 참전을 허락했다. 이후 여러 전공을 세우고 무사히 귀국한 로코 나폴리는 아버지를 따라 제노비스 패밀리의 추종세력(Associate)으로 활동했다. 얼마 뒤 로코 나폴리는 뉴욕 플라자호텔에서 하객 750여 명의 축하 속 유명 가수의 축가를 들으며 성대한 결혼식을 올렸다. 한편, 로코 나폴리의 결혼식이 있기 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딸도 같은 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렸는데, 이후 뉴욕 타임스에 「플라자호텔에서 대통령보다 더 나은 대우를 받은 마피아(Plaza Said to Treat Mob Figures Better Than the President)」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그 요지인즉 닉슨 대통령은 호텔을 예약하려고 보증금과 하객 목록까지 내야 했지만 제임스 나폴리는 악수만으로 충분했다는 것이다. 당시 호텔지배인은 "제임스 나폴리는 돈을 쓰지만 정부는 아니다."라고 밝혔다.[25]
4. 연예계와의 관계
- 미국 마피아와 연예인과의 관계를 말하자면 프랭크 시나트라는 두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고[26] 그 이외에 어떤 형태가 되었건 일단 관계가 있다고 공식적으로 확인된 경우만 마릴린 먼로[27], 로버트 드 니로[28], 토니 베넷[29], 배우 제임스 칸[30], 배우 지아니 루소[31], 미키 루크[32], 배우 안소니 퀸[33], 여배우 엘리자베스 헐리[34], 스티븐 시걸[35], 존 트라볼타[36] 전 NFL 선수 조 네이머스[37], 라스베이거스 연예인 웨인 뉴턴[38], 배우 리처드. S. 카스텔라노[39], 퍼프 대디[40], 노토리어스 B.I.G.[41], 우탱 클랜[42], 믹 밀[43], 50 센트[44], 알 마르티노[45], 배우 아맨드 아상테[46] 정도가 있다.
- 마피아 영화나 드라마에 출연한 배우들 중 실제 마피아 출신들도 있는데, 대부에서 콜레오네 패밀리의 해결사 루카 브라시 역을 맡은 배우 레니 몬타나는 실제 콜롬보 패밀리의 추종세력(Associate) 출신이었다.[47] 소프라노스에서 마피아 폴리 역을 맡은 토니 시리코 또한 콜롬보 패밀리의 추종세력 출신으로 수감 경력까지 있는 인물이다.[48] 마찬가지 소프라노스에서 마피아 래리 바레시 역을 맡은 토니 대로우는 2009년의 갈취죄 재판 과정에서 갬비노 패밀리의 추종세력으로 밝혀졌다.[49]
- 2000년 뉴욕시 브루클린에 위치한 어느 레스토랑 VIP 룸에서 배우 스티븐 시걸과 영화 제작자 줄리어스 나소(Julius Nasso)가 만남을 가졌다. 평소 둘은 돈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었는데, 나소는 시걸과의 만남 장소에 악명 높은 갬비노 패밀리 행동대장(Caporegime) 앤서니 시코네 (사진)와 그 부하 조직원들을 대동하고 나타났다.[50] 시코네는 그 자리에서 총 300만 달러를 나소에게 지불하고 계속 동업할 것을 강요했다. 특히 대화 도중 시걸이 눈을 감자 화를 내며 자신과 대화할 땐 항상 눈을 맞추라고 요구했다. 나소는 회동이 끝난 뒤 시걸에게 "한마디라도 잘못했었다면 당신은 그들(마피아)의 손에 죽었을 것.(If you would have said the wrong thing, they would have killed you.)"이라고 위협했다. 시걸은 연예인 생활을 포기해야 하는 증인보호 프로그램에 들어갈 수 없었기에 피해 사실을 FBI에 신고하지 못했고, 그날 일을 함구했다. 우연히 시코네의 부하들을 감시하는 FBI 도청기가 그날 시걸이 얼마나 공포에 질렸었는지 묘사하는 내용의 대화를 포착하면서 수사가 본격화되었다. 약 3년 뒤 열린 재판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시걸은 시코네가 분쟁에 개입한 사실을 알게 된 후 나소에게 50~70만 달러 사이의 돈을 건넸고, 나소가 그 돈의 일부를 시코네 측에 전달한 걸로 안다고 밝혔다. 동시에 시걸은 시코네를 만난 뒤 당시 주립교도소에 수감 중이었던 제노비스 패밀리 행동대장(Caporegime) 안젤로 프리스코 (사진)를 찾아가 1만 달러를 지불하며 자신을 도와달라고 부탁한 사실도 인정했다. 또 연방검사와 마피아 행동대장을 사이에 두고 법정 증언대에 서는 일은 상당히 괴로운 일이라고 심경을 밝혔다. 재판 끝에 시코네는 스티븐 시걸 갈취 혐의, 국제항만노동자연맹(ILA) 갈취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아 수감되었고 2013년에 출소했다. 나소 역시 2년 형을 선고받았다.
- 갱스터 랩을 표방하는 미국 힙합 가수들의 가사 중 마피아를 언급하는 경우가 심심찮게 있는데 대표적으로 JAY-Z[51], 나스[52], 릴 웨인[53], 블러즈 갱 출신 래퍼 YG[54], 릭 로스[55], 드레이크[56], 크립스 갱 출신 래퍼 스쿨보이 큐[57], 고스트페이스 킬라[58] 정도가 있다.
- 미국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마피아는 환영받는 소재인데, 존 고티의 딸 빅토리아 고티와 세 아들의 호화로운 삶을 다룬 'Growing Up Gotti'[59]가 2004~2005년 사이 방영되었고 2011~2016년에는 전 보나노 패밀리 상담역(Consigliere) 앤서니 그라지아노의 딸 제니퍼 그라지아노가 제작하고[60] 또 다른 딸 르네 그라지아노가 출연하는 'Mob Wives(마피아 부인들)'라는 프로그램이 방영되었다. 2012년에는 외전 격으로 시카고 마피아 관련자들의 조카와 딸들이 출연하는 Mob Wives 시카고 편이 방영되었다.[61]
- 뉴욕 아침 뉴스 진행자인 ‘로잔나 스코토’도 거물 마피아인 앤서니 스코토의 딸인데 재밌는 점은 공동 진행자였던 그렉 켈리는 경찰 국장의 아들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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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의
쟈니 폰테인역의 알 마르티노는 실제 유명한 가수이자 배우로 프랭크 시나트라와 동시대에 활동한 사람이다. 쟈니 폰테인의 역할이 실제 알 마르티노의 삶과 비슷하다고 느낀 친구에게 그 배역을 추천 받았고, 제작자 알버트 루디에게 가서 역할을 따게 되었다. 그런데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가 감독으로 오자 배역은 같은 이탈리아계 유명 가수인
빅 더몬에게 돌아갔다. 그러자 알 마르티노는 그의 대부이자 후원자였던 버팔리노 패밀리의 두목(Boss) 러셀 버팔리노에게 찾아갔고, 버팔리노는 언론을 동원해 원래 쟈니 폰테인 역은 알버트 루디가 알 마르티노에게 약속 한 거라고 하는 기사를 내게 했다. 버팔리노 패밀리를 자극하기 싫었던 빅 더몬은 역할에서 하차하고 쟈니 폰테인 역은 알 마르티노에게 돌아갔다. 그야말로 영화 대부와 비슷한 이야기. 알 마르티노 역시 훌륭한 가수였기 때문에 영화 대부의 주제곡인 Speak softly love를 부르기도 했다.
영상
5. 스포츠계와의 관계
- 마피아는 프로복싱 미들급 세계 챔피언 제이크 라모타를 다룬 영화 레이징 불에서 보이는 것과 같이 복싱계에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1960년대에 미 상원 의원 에스테스 케포버는 프로복싱을 “갈취자와 깡패로 들끓는 곳(Infested by racketeers and hoodlums)”이라고 묘사했다. 특히 헤비급 세계 챔피언 ‘소니 리스턴’의 마피아 연관설은 정설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1960년에는 당시 헤비급 세계 챔피언 플로이드 패터슨이 소니 리스턴의 범죄조직 연관성을 이유로 타이틀전을 피하기도 했다. 패터슨의 자서전에 의하면 케네디 대통령 역시 리스턴의 조직범죄 연관성을 거론하며 경기를 만류했고, 미국 연방 법무부 또한 리스턴의 범죄조직 연줄을 우려했다. 2014년 FBI는 무하마드 알리와 소니 리스턴이 벌인 2번의 시합을 마피아가 승부조작했다는 의혹을 정식으로 조사했다. 알리가 조작에 가담했다는 내용은 아니고, 압도적인 탑독이었던 리스턴이 마피아의 사주를 받고 일부러 져주었다는 의혹을 파헤친 것. 훗날 소니 리스턴의 석연치 않은 사망에도 도박빚을 갚지 못한 리스턴을 마피아가 제거했다는 음모론이 존재한다. 또한 갬비노 패밀리 부두목(Underboss) 살바토레 그라바노 (사진)가 1993년 미 상원의회에 출석해 밝힌 얘기로, 갬비노 패밀리는 1960년대를 끝으로 복싱 비즈니스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1980년대 후반에 들어 다시금 진출했다고 한다.[62] 그라바노에 의해 직간접적으로 마피아와의 관계가 거론된 복싱계 인물로는 바비 치즈(Bobby Czyz)[63], 버디 맥거트(Buddy McGirt)[64], 로날도 스나입스(Renaldo Snipes)[65] 프란시스코 다미아니(Francesco Damiani)[66] 아이런 바클리(Iran Barkley)[67], 마빈 해글러[68], 비토 안투오페르모(Vito Antuofermo)[69], 복싱 프로모터 돈 킹[70], 복싱 트레이너 루 두바(Lou Duva)[71]가 있다. 그라바노는 자신과 패밀리 간부 조셉 코로조 (사진)가 조직이 하는 복싱 사업의 주요 인물이라고 증언했다.[72] 이 외에도 제노비스 패밀리 행동대장(Caporegime) 제임스 나폴리 (사진)가 WBA•WBC 라이트헤비급 세계 챔피언 밥 포스터의 1969년 경기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있고 여러 세계 챔피언을 길러낸 전설적인 복싱 트레이너 토미 갤러거가 자신과 마피아와의 사적인 관계를 매체를 통해 인정한 사례도 있다.
- 무하마드 알리와 마이크 타이슨의 프로모터로 유명한 복싱계의 대부 돈 킹은 복싱 사업에 뛰어들기 전에는 클리블랜드의 흑인 조직폭력배였다. 1992년에는 돈 킹과 마피아 사이의 연줄이 지적되어 당시 유죄판결을 받은 갬비노 패밀리 두목(Boss) 존 고티와의 관계에 대해 미국 상원의회에 출석해 증언하라는 통지를 받기도 했는데, 돈 킹은 헌법에서 보장하는 불리한 증언의 거부를 주장하며 증언하지 않았다. 그 외에도 돈 킹은 과거 2건의 살인으로 기소된 바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73] 전 갬비노 패밀리 부두목(Underboss) 살바토레 그라바노 (사진)의 인터뷰에 따르면, 하루는 갬비노 패밀리 측에서 한 뒷골목 폭력배를 돈 킹에게 보내 당시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던 마이크 타이슨과 자신들이 데리고 있는 선수 간의 경기를 주선해 큰돈을 벌자고 제안한 적이 있는데, 계약 내용이 터무니없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돈 킹은 일언지하에 거절하며 덧붙인 말이 "나도 터프가이고 교도소도 갔다 왔다, 존 보고 엿이나 먹으라고 해라! 나는 그 헛소리를 따를 수 없다."라고 대답했다. 즉, 제노비스 패밀리의 고위 관계자(High-level Associate)였던 돈 킹이 갬비노 패밀리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한 것이다.[74] 이에 전령으로 갔던 인물이 부두목인 살바토레 그라바노에게 보고했고 그라바노가 존 고티에게 보고했는데 다음은 그라바노가 기억하는 고티와의 대화 내용이다.
살바토레 그라바노: 존, 돈 킹이 우리가 원하는 걸 하지 않겠다는군.
존 고티: 그놈이 내 이름을 들었는데도 그래?
살바토레 그라바노: 그가 자신이 터프가이고 교도소도 갔다 왔다는데.
존 고티: 정말 그랬다고?
(잠시 생각하고 나서)
존 고티: 돈 킹을 죽여버려.
살바토레 그라바노: 내가 돈 킹을 죽이라고?
존 고티: 자네 말고 (전령으로 갔던) 그 꼬마가.
그 후 그라바노는 전령으로 갔던 그 폭력배에게 지시를 하달했고 다시는 그를 볼 수 없었다고 한다. 그라바노는 웃으며 "그 친구는 나라를 떠났을거다(He must've left the country)"라고 말했는데, 그 폭력배가 돈 킹 암살 임무가 감당이 안 돼서 스스로 뉴욕을 떠났다는 말인지, 암살을 거부해 조직으로부터 처형 당했다는 말인지, 암살 작업에 착수했으나 돈 킹(혹은 그 배후의 제노비스 패밀리) 측에 역으로 당했다는 말인지는 불분명하다. 공개 인터뷰에서 자세히 얘기할 수 없기 때문에 두루뭉술하게 얘기한 것으로 보인다.
존 고티: 그놈이 내 이름을 들었는데도 그래?
살바토레 그라바노: 그가 자신이 터프가이고 교도소도 갔다 왔다는데.
존 고티: 정말 그랬다고?
(잠시 생각하고 나서)
존 고티: 돈 킹을 죽여버려.
살바토레 그라바노: 내가 돈 킹을 죽이라고?
존 고티: 자네 말고 (전령으로 갔던) 그 꼬마가.
그 후 그라바노는 전령으로 갔던 그 폭력배에게 지시를 하달했고 다시는 그를 볼 수 없었다고 한다. 그라바노는 웃으며 "그 친구는 나라를 떠났을거다(He must've left the country)"라고 말했는데, 그 폭력배가 돈 킹 암살 임무가 감당이 안 돼서 스스로 뉴욕을 떠났다는 말인지, 암살을 거부해 조직으로부터 처형 당했다는 말인지, 암살 작업에 착수했으나 돈 킹(혹은 그 배후의 제노비스 패밀리) 측에 역으로 당했다는 말인지는 불분명하다. 공개 인터뷰에서 자세히 얘기할 수 없기 때문에 두루뭉술하게 얘기한 것으로 보인다.
- 세계 최대 종합격투기 단체인 UFC의 전 회장 프랭크 퍼티타 3세와 로렌조 퍼티타는 성씨에서 보듯 이탈리아 혈통이다.[75] 퍼티타 형제가 설립한 UFC 모회사의 이름은 'Zuffa'인데, 이는 이탈리아어로 '격투'라는 의미를 가졌다. 퍼티타 가문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역시 마피아가 나온다. 샘 마세오(Sam Maceo)와 로사리오 마세오(Rosario Maceo) 형제는 1901년에 시칠리아에서 미국으로 이민 와 텍사스 주의 항구도시 갤버스턴을 기반으로 하는 범죄조직의 두목(Boss)이 된다. 비록 형제가 이끌던 범죄조직이 라 코사 노스트라 마피아에 정식으로 속한 패밀리가 아닌 독립된 조직이긴 했지만[76] 이들은 뉴올리언스 라 코사 노스트라 마피아 두목 카를로스 마셀로와도 연줄이 닿는 암흑가의 거물이었다.[77] 한편 퍼티타 가문의 조셉 퍼티타(Joseph Fertitta)란 인물이 마세오 형제의 여동생인 올리비아 마세오(Olivia Maceo)와 혼인하며 두 가문이 가까워지게 되었다. 이윽고 마세오 형제가 자신들의 사업을 라스베이거스 카지노로 확장하기에 이르고 1950년대에 사망하며 퍼티타 가문에 자신들의 사업을 물려주는데, 그 퍼티타 가문의 후손이 UFC의 회장인 프랭크•로렌조 형제다. 2001년에 복싱 트레이너 데이나 화이트가 어린시절 친구인 카지노 재벌 퍼티타 형제를 설득하여 UFC를 헐값에 인수한 뒤, 퍼티타 형제는 회장을 맡고 자신은 사장을 맡아 라스베이거스를 기반으로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해 세계 최고의 종합격투기 단체로 만들었다. 이러한 배경 탓에 해외 네티즌들도 UFC의 마피아 연관설을 제기하고 있지만 그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다.[78] 2016년 UFC가 4개 그룹 연합체에 매각되었지만 인수 이후에도 로렌조 퍼티타가 일정 지분과 수익을 가져가고 데이나 화이트는 여전히 UFC 사장으로 남아있는 등, 영향력은 여전하다. 공교롭게도 경쟁 단체이자 결국 파산하여 Zuffa에 인수당한 일본의 Pride는 야쿠자 조직에서 실질적인 운영을 했다는 게 밝혀져 도산했다. 또 하나 재미있는 사실은 데이나 화이트가 보스턴에서 복싱 체육관 트레이너로 일하던 당시, 악명 높은 범죄조직 윈터 힐 갱단의 상납 요구를 받은 후[79] 생명의 위협을 느껴 라스베이거스로 도피성 이사를 갔는데 그게 그의 인생을 바꿨다고 털어놓았다.
- 마이크 타이슨이 15살 때 테디 아틀라스(Teddy Atlas)라는 트레이너의 12살 처제의 엉덩이를 만졌다가 총을 들고 찾아온 아틀라스에게 살려달라고 빌었다는 일화가 있다. 아틀라스는 경고의 말을 한 뒤 타이슨의 머리를 잡고 귀 옆쪽으로 총을 발사했다고 한다. 후에 타이슨이 아틀라스를 묘사하기를, 갱스터처럼 껄렁거리며 "내 삼촌이, 즉 우리 엄마의 남동생이 (당대 갬비노 패밀리 두목) 폴 카스텔라노의 인공 항문 주머니를 씻었어"라며 으스대는 타입(큰 연줄도 없는 사람이 암흑가 거물의 이름을 팔고 다니는 걸 풍자한 표현)이었다고 본인의 공개 코미디에서 발언했다. 실제로 아틀라스는 얼굴에 400바늘을 꿰맨 거대한 칼자국이 있는데 수감 경력도 있는 등 운동을 하지 않았다면 충분히 암흑가의 폭력배가 되었을 인물이다. 그는 권총 발사 사건으로 커스 다마토의 체육관을 떠나야 했지만, 훗날 마이클 무어러라는 헤비급 세계 챔피언을 키워낸다. 그는 현재 유명 권투 해설가로 활약 중이다. 테디 아틀라스는 갬비노 패밀리 부두목(Underboss) 살바토레 그라바노 (사진)와도 이야깃거리가 있다. 하단 서술 참고.
- 19명을 살해했다고 알려진 전 갬비노 패밀리 부두목(Underboss) 살바토레 그라바노는 일명 ' 히트맨 중의 히트맨(Hitman of Hitman)'이자 1960년대부터 복싱을 수련한 아마추어 복서이기도 했다. 그는 테디 아틀라스라는 복싱 트레이너에게 훈련받기도 했는데 아틀라스는 과거 15세의 마이크 타이슨이 목숨을 구걸할 정도로 손봐주기도 했으며 훗날 마이클 무어러라는 헤비급 세계 챔피언을 길러내기도 한 세계적인 트레이너다. 그라바노는 1990년대부터 미디어에 등장할 때면 자신은 “누구도 두렵지 않다.(I'm not afraid.)”라고 얘기하곤 했는데 아틀라스는 인터뷰에서 “모든 복서는 링 위에 올라갈 때 두려움을 가진다.(every boxer is afraid.)”라고 얘기하며 그라바노의 말을 돌려서 반박한 바 있다. 이것에 대해 그라바노에게 질문한 2019년의 인터뷰 영상이 있는데, 그라바노는 그야말로 대노하며 테디 아틀라스를 향해 각종 욕설을 퍼부었다. 그는 아틀라스가 뛰어난 트레이너임은 인정하지만 싸움꾼은 아니라고 함과 동시에 "나는 74~75세의 나이다. 당장 망할 글러브를 가지고 와라. 내가 너를 두렵게 해주겠다.(I’m 74 pushing 75 Teddy, Come down Put the fucking gloves on with me I'll show you how scared I am of you)"라며 일갈했다.[80] 이에 유튜브 댓글 창의 반응은 '그라바노가 저 나이를 먹었는데도 분노하는 게 저 정도라면, 그의 전성기 시절의 분노는 상상조차 안된다.(if sammy is this angry at this age, I can't imagine this guy when he was in his prime.)'는 코멘트가 달려있다.
- 미국 마피아는 투기종목 이외 MLB나 NBA 같은 구기종목에서도 승부조작, 경기장 건설 등 많은 관계를 맺고 있다. 자세한 사항은 마피아/국가/미국 문서의 감비노 패밀리 문단 속 '팀 도너기' 참고.
- 프로권투 세계에서의 마피아의 영향력을 파헤친 크라운 로열 수사는 메인 타깃인 돈 킹을 기소하지 못한 용두사미로 끝났다. 수사가 엎어진 결정적인 원인으로 1982년 11월에 발생한 한국 권투선수 김득구 사망사건이 꼽힌다. 당시 FBI 요원 조셉 스피넬리는 사건을 접으라는 상부의 지시에 강하게 반발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권투선수가 경기 중 사망해서 난리 난 이 시국에 FBI가 권투 프로모션에 관여하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라는 질책이었다. 훗날 스피넬리는 4년 동안의 수사 과정에서 가장 가슴 아팠던 순간으로 1981년에 WBC 헤비급 세계 챔피언 래리 홈즈를 만난 순간을 꼽았다. 당시 스피넬리는 홈즈의 프로모터이자 제노비스 패밀리의 고위 관계자(High-level Associate)인 돈 킹을 수사하는 데 도움을 달라고 그에게 부탁했는데, 홈즈가 눈물을 글썽이며 "돈 킹은 나쁜 친구들이 많습니다. 전 생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전 가정이 있습니다. 제 가족 때문에 두렵습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그는 절 해칠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때 스피넬리는 지구에서 가장 강한 남자인 헤비급 권투 세계 챔피언이 자신이 알고 있는 그 어떤 남자보다 두렵고 슬픈 표정을 지었다고 회상하며 스포츠 팬으로서 기분이 매우 착잡했다고 한다.
- 2020년에 프로복싱 전 헤비급 세계 챔피언 마이크 타이슨이 진행자로 있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전 콜롬보 패밀리 행동대장(Caporegime) 마이클 프란지스가 출연한 영상을 보면, 타이슨 역시 뉴욕에서 거칠게 자란 인물로 여전히 암흑가에 많은 관심이 있는 걸 알 수 있다. 어릴 적 타이슨이 기억하는 마피아 정규조직원(Made Guy)이란 '내가 저 여자와 사귀고 싶으니까 남자친구인 저 사람을 죽여버려야겠다.'라고 생각하면 충분히 행할 수 있는 존재로 인식되었다고 한다. 타이슨은 프란지스를 향해 당신 아버지인 소니 프란지스는 러키 루치아노를 만났느냐?[81] 당신 아버지는 알 카포네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당신은 존 고티를 아느냐?[82] 살바토레 그라바노 (사진)를 아느냐?[83] 로이 디메오를 아느냐?[84] 등의 질문을 했다. 타이슨은 다른 진행자가 프란지스에게 질문한 "마피아가 언제 시작되었나?"라는 질문에 자신이 대신 대답하고, 조 콜롬보 (사진)가 저격된 연도까지 기억하고 있는 등 마피아 역사를 꽤나 자세히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타이슨이 프란지스에게 질문한 것 중, 도대체 일부 마피아들이 100년 형을 선고받은 뒤에도 "난 조또 신경 안 써.(I Don't give a fuck.)"같은 대담한 사고방식을 견지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었고 프란지스는 그런 부류가 바로 자기 아버지 같은 사람이라고 대답하며 "나는 교도소에서 죽을 거야."라는 생각을 아주 당연하게 여기는 경우라고 대답했다. 스쳐 지나가는 사소한 부분이지만 영상을 보면, 타이슨이 과거를 회상하며 브루클린 출신들은 암흑가에서 다소 약한 편이었다.(Brooklyn ain't tough.)"라고 진행자에게 얘기하자 브루클린 출신인 프란지스에 의해 1초 만에 반박된다. 정확하게는 "프란지스가 "No"라고 대답한 뒤, 브루클린 사람들도 강했다고 덧붙였다.[85] 직후 타이슨이 “브루클린이 약한 건 단순히 자기만의 생각이었다."라고 정정하는 장면이 재미있다.[86] 프란지스는 예전부터 마피아가 많은 노조를 통제하고 있었는데 자신이 활동하던 시절의 마피아는 미국 내 9개 원자력 발전소의 경비 노조를 통제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타이슨이 오늘날 대기업들의 행태와 비슷하다고 지적하자 프란지스는 대다수 대기업들의 경영철학과 마피아는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사상을 기반으로 하는 공통점이 있다고 긍정했다. 진행자가 프란지스에게 오늘날의 마피아에 대한 질문을 하자 지금은 자신이 활동하던 시절과 많이 달라졌다고 대답하며 별로 아는 바가 없다고 답했다. 이후 프란지스가 현역 시절 미국 전역에 집을 사고 헬리콥터를 구매한 얘기를 했는데 타이슨이 " 카를로 감비노 같은 옛날 사람들은 그런 사치스러운 행동을 좋아하지 않았겠는데요?"라고 물었고 프란지스가 "확실히 그는 침대 밑에 돈을 숨겨놓는 스타일이었다."라고 답했다.
6. 사건사고
- 전 갬비노 패밀리 행동대장(Caporegime) 앤서니 가지(Anthony Gaggi)에 관한 흥미로운 일화가 있는데, 1979년에 가지와 부하 조직원은 두목(Boss) 폴 카스텔라노의 지시를 받고 다른 갬비노 행동대장 제임스 에폴리토(James Eppolito)를 살해하기 위해 차에 태우고 이동하는 중에 에폴리토가 낌새를 눈치채자 가지는 그 즉시 차 안에서 방아쇠를 당겨 에폴리토를 살해한다. 결국 가지의 온몸에 피가 묻게 되었고 차량과 시체를 정리하고 거리를 걷다가 온몸에 피가 묻은 가지를 수상하게 여긴 한 경찰관이 가지를 불렀는데 가지는 이때도 망설임 없이 총을 빼들어 경찰관을 겨냥해 사격을 개시했다. 근거리에서 총을 쏘는데만 익숙했던 가지의 총알이 모두 빗나가고 가지가 오히려 경찰관이 쏜 총을 목에 맞고 쓰러진다. 그로 인해 에폴리토 살인죄로 재판을 받게 되었는데 놀랍게도 폭행죄만 인정되어 단기 5년 장기 15년의 징역형을 받고 2년 뒤인 1981년에 가석방되었다. 이게 가능했던 이유로 첫째, 배심원 중 하나가 가지의 고리대금 고객이었는데 그 사람을 매수했고 둘째로 가지의 부하들이 구치소에 접견을 가서 총알을 건넸고, 가지는 자신의 방에 돌아와 그때까지 목에 박혀있던 총알을 제거하고 변기에 흘려보낸 뒤, 부하에게 받은 총알을 재판정에서 증거로 내밀었다.[87] 한편 1986년에 장물 자동차 판매 공모죄로 5년형을 받고 수감된 가지는 1988년 두 번째 재판을 앞두고 있었다. 하루는 교도소에서 가슴에 통증을 느끼고 이를 교도관에게 말했으나 대수롭지 않게 여긴 교도관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고, 다음 날 심각한 심장마비가 온 가지는 몇 시간이 지체돼서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이튿날 숨졌다. 가지의 아내는 교정당국의 과실이 있다고 판단해 고소를 진행했고 동료 재소자들이 증언했다. 결과적으로 가지의 죽음은 뉴욕주 교정 시설의 의료 환경을 향상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 2018년 10월, 71세의 실베스터 조톨라(Sylvester Zottola)라는 인물이 뉴욕 맥도날드 드라이빙 스루에서 총에 맞아 숨지는 일이 벌어졌다. 3달 전에는 그의 아들이 총에 맞아 부상을 입었지만 목숨을 건진 일이 있었다. 조톨라는 보나노 패밀리의 추종세력(Associate)으로, 마피아들이 관리하는 클럽과 술집에 포커 기계를 공급하던 사업가이면서 DAZ Entertainment라는 이벤트 플래너 회사의 사장이었다. 조톨라 살해의 용의자는 흑인 갱단 블러즈의 고위 조직원 부숀 셸턴(Bushawn Shelton)인데, 그는 도박 기계 사업을 노리는 알바니아계 범죄조직의 지시를 받고 범행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찰은 셸턴의 체포 과정에서 총과 현금 4만 5천 달러를 발견했다고 전했다. 조톨라의 딸은 인터뷰를 통해 아버지를 마피아로 묘사하는 언론들에 반박하며 "아버지는 좋은 사람(Good man)이었지만 좋은 친구들(Goodfella)은 아니었고, 현명한 사람(Wise man)이었지만 마피아(Wiseguy)는 아니었다."고 얘기했다. 그러나 FBI 가 수사를 진행하면서 놀라운 점이 발견되었는데 처음엔 갱단이나 알바니아 마피아의 항쟁 시도가 아닌가 했으나 이상한 점이 발견되어 계속 수사한 결과 놀랍게도 실베스터 조톨라의 작은 아들 앤서니 조톨라 시니어가 살인교사 혐의로 기소되었다! 앤서니는 아버지를 죽이고 형의 살해를 시도해서 재산을 빼앗으려 했으며 마치 그것이 알바니아 조직의 범죄로 은폐하려고 했던 것. 결국 가족 간 존속살인 극이었던 것이다. 물론 현재 계속 수사 중이니 정확한 건 재판을 봐야 할듯싶다. 그 외에도 같은 시기 뉴욕에 거주하는 77세의 고리대금업자 빈센트 지토(Vincent Zito)가 자택에서 머리에 총을 맞고 살해된 채 발견되었는데, 그는 루케시 패밀리의 추종세력이었다. 수사기관에서는 침입의 흔적이 없고 뒤에서 총을 맞은 모습으로 미루어 보아 전형적인 마피아식 처형으로 보고 있었다. 범인은 DNA 흔적을 남기는 등 프로답지 못한 뒤처리를 했는데, 그로 인해 사건 발생 5개월 후 갬비노 패밀리 추종세력인 용의자가 검거되었다. 이처럼 마피아 조직에 연관된 주위 사람들도 위협의 주체가 마피아 조직이 되었건, 반대 파벌이 되었건 항상 살해의 위험 속에 살아간다는 걸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시들이다.
- 2019년 극우 음모론 사상( QAnon)에 경도된 평범한 24세 청년이 갬비노 패밀리 부두목(Underboss) 프랭크 칼리를 살해한 일이 있듯, 이외에도 마피아와 일반인이 얽힌 자칫 황당한 일화들이 있는데 1986년에 갬비노 패밀리 두목(Boss) 존 고티가 주차시비 끝에 37세의 냉장고 수리공인 로뮤얼드 피시크(Romuald Piecyk)를 일행과 함께[88] 때려눕히고 지갑에서 300달러를 강탈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으나, 후에 상대방의 신분을 알게 된 피해자가 재판정에서의 증언을 피하기 위해 병원에 입원하기도 하고 재판정에 출석해서는 기억상실증에 걸린 척을 함으로써 존 고티가 무죄판결을 받은 사례가 있다. 한편 1996년에는 제노비스 패밀리 두목 빈센트 지간테의 94세 노모가 산책을 하던 중[89] 윌리엄 킹(Willie King)이라는 할렘 사람에게 강도를 당했으나, 강도는 몇 구역을 못 벗어나 경찰에 붙잡혔고, 뉴욕시 타블로이드 신문은 그를 '세계에서 가장 멍청한 강도(The World’s Dumbest Mugger)'로 꼬집었다.[90] 1년 6개월에서 3년의 부정기형을 선고받은 강도는 재판정에서 지간테 가문에 진심 어린 사과를 하는 걸로 끝났다.
- 뉴욕의 무시무시한 마피아 패밀리의 아지트를 습격해서 강도 짓을 한 용감한 부부가 있는데 거리의 보니 앤 클라이드라고 불리는 토마스 우바(Thomas Uva)와 로즈마리 우바(Rosemarie Uva) 부부가 그 주인공들이다. 1992년에 교도소에서 출소한 28세의 토마스 우바는 마피아 조직원들이 현금이 많고 주로 명품을 착용한다는 점과 의외로 마피아 아지트의 보안이 허술하다는 점[91]을 노리고 자신이 복면과 기관총으로 무장하고 아지트 안의 마피아들을 상대로 강도를 하고 빠져나오면, 차에서 대기하고 있던 아내 로즈마리 우바가 운전하는 차에 탑승해 빠르게 범행 현장을 빠져나가는 방식으로 갬비노 패밀리와 보나노 패밀리가 소유하고 있던 여러 아지트를 털며 큰돈을 벌게 되었다. 이에 뉴욕 5대 패밀리 전체에서 그들에게 현상금을 걸었고 갬비노 패밀리, 보나노 패밀리, 콜롬보 패밀리가 서로 자신들이 우바 부부를 살해하겠다고 논쟁을 벌이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우바 부부는 1992년 크리스마스이브에 차량 안에서 총상을 입고 살해된 채 발견되었다. 후에 정부 측 증인이 된 보나노 패밀리 부두목(Underboss) 살바토레 비탈레에 의하면, 당시 갬비노 패밀리 두목 대행(Acting Boss) 존 고티 주니어 (사진)가 자신에게 "(둘을) 우리가 처리했다."라고 얘기한 적 있다고 증언한 바 있다. 직접 총을 들고 부부를 살해했다고 알려진 갬비노 패밀리 행동대장(Caporegime) 도미니크 피조니아 (사진)가 2005년에 우바 부부 살인 혐의로 기소되었지만 살인 공모 혐의만 인정되어 15년 형을 선고받았다.[92] 당시 검찰 측에서는 고티 주니어가 암살을 완료한 뒤 연방교도소에 수감 중인 자신의 아버지이자 갬비노 패밀리의 두목(Boss)인 존 고티에게 사후 보고를 하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고티 주니어는 증거 불충분으로 법망을 피했다. 우바 부부의 이야기는 2014년 롭 더 몹(Rob The Mob), 2015년 더 워너비(The Wannabe)로 두 차례 영화화되었다.
- 2013년에 뉴욕시 브롱스와 할렘의 마약 밀매를 관리하는 퍼플 갱(Purple Gang)이란 범죄조직의 두목(Boss)인 62세의 마이클 멜디시(Michael Meldish)가 브롱스에서 총상을 입고 살해된 채 발견되었다. 2019년 정부의 기소 내용에 따르면, 멜디시는 당시 루케시 패밀리 두목 대행(Acting Boss) 매튜 마돈나 (사진)에게 10만 달러(약 1억 원)를 빌렸고 마돈나가 상환을 독촉하자 그에게 "엿이나 먹어라(fuck off)"라고 한 뒤 얼마 안 있어 살해됐다고 한다. 연방 검사 실리아 코헨(Celia Cohen)은 "(마피아) 두목에게 돈을 갚지 않는 건 위험한 게임이다.(Not repaying a boss is a dangerous game.)"라며 배심원단에 말했다.
- 1970년, 뉴욕시의 이스트 할렘에서 디시데리오 카반(Desiderio Caban)이라는 재단사가 5발의 총격을 받고 살해된다. 근처에서 총격 소리를 들은 NYPD 소속 경찰관 2명이 범인을 추격하여 6 블록만에 범인이 순순히 차에서 내리는데, 그는 훗날 갬비노 패밀리의 부두목(Underboss)까지 되는 34세의 아널드 스퀴티에리 (사진)였다. 스퀴티에리는 경관들에게 "걱정 마시오, 그는 단지 팔에 총을 맞았을 뿐이니까 나를 보내주시오. 친구들이 당신들을 보살펴 줄 거요.(Don't worry about it, he's only shot in the arm. Let me go; the boys will take care of you.)"라고 얘기했는데, 이탈리아 억양으로 말하는 히트맨의 얘기를 듣고 마피아와 연관된 살인임을 감지한 부패한 경관들은 스퀴티에리를 보내줬다. 일주일 후 알폰스 시스카(Alphonse Sisca)라는 마피아 조직원이 경관 중 하나를 만나 5천 달러를 전달했고, 경관들은 보고서에서 스퀴티에리의 이름을 지웠다. 하지만 이내 매수 사실이 밝혀져 경관들은 모두 기소되고 스퀴티에리는 도망자 신세가 된다. 그는 1973년에 카반 살인 혐의와 20만 달러의 수입을 차명을 이용해 탈세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도합 11년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약 8년간 복역한 후 1981년에 가석방된다. 석방 이후 당시 갬비노 패밀리에서 행동대장(Caporegime)을 맡고 있던 존 고티의 행동대(Crew)에 소속되어 마약 관련 사업을 하다가 존 고티가 패밀리의 두목(Boss)이 된 1986년에 정규조직원(Made member)으로 승격된다. 그는 1988년에 헤로인 유통 공모 혐의로 11년 형을 선고받아 복역한 후 1999년에 가석방된다. 석방 이후에는 2차례에 걸쳐 오메르타를 증명했고, 두목 존 고티의 측근으로써 어느덧 조직의 중역이 된 스퀴티에리가 패밀리의 부두목이 되었고, 2002년에는 패밀리의 두목 대행(Acting Boss) 중 한명이 되어 조직을 이끌었다. 2000년대 중반 갬비노 패밀리는 퀸스의 도박업 이권을 노리는 루다이 조직(Rudaj Organization)이라는 알바니아 마피아의 도전을 받는데, 초기에는 행동대장 그레고리 데팔마(Gregory DePalma)가 사소한 분쟁을 해결할 수준이 되었지만 점차 루다이 쪽에서 비협조적으로 나오게 되면서 69세의 패밀리 두목 아널드 스퀴티에리가 직접 37세의 알렉스 루다이(Alex Rudaj)에게 뉴저지 주의 한 주유소에서 담판을 하자고 제시했다. 6명의 루다이 패거리가 차에서 내리자 20명의 무장한 갬비노 조직원들과 직면했는데 그 시기 갬비노 패밀리 조직원으로 잠입해 현장에 직접 있었던 FBI 요원 호아킨 가르시아가 증언하기를, 스퀴티에리가 루다이 패거리를 향해 "너희가 가진 건 너희가 가졌다. 그걸로 끝이야, 만일 그러지 않겠다면 그땐 문제가 생길 거다.(You took what you took and that's it or there's gonna be a problem.)"라고 위협을 했고 20 대 6으로 수적 열세 상황이었던 루다이는 부하 중 한 명에게 만약 총격전이 벌어지면 가스탱크를 쏴버리라고까지 지시했지만 이내 이성을 되찾고 스퀴티에리와 합의했고 그 후로 다시는 갬비노 패밀리를 방해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알렉스 루다이는 2006년에 공갈과 갈취, 도박업 혐의로 27년형을 선고받아 복역 중이다.[93] 한편 앤서니 스퀴티에리도 2006년에 도박업과 탈세 혐의로 7년형을 선고받고 2012년에 출소한 뒤 일선에서 물러났다. 한 가지 재미있는 일화로 FBI 요원 호아킨 가르시아가 잠입 수사를 하던 2004년에 두목에게 TV를 선물했는데, 어느 날 스퀴티에리가 선물 받은 TV로 마피아 드라마 소프라노스를 시청한 직후 그 TV를 버리고 새로 구매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그 이유가 극 중 토니 소프라노가 문제를 일으키는 부하 조직원에게 장물 TV를 선물하는 방법으로 가석방 규정을 어기게 만들어 다시 교도소로 보내버리는 에피소드를 보고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한다.
- 콜롬보 패밀리 조직원 그레고리 스카르파는 1962년에 무장 강도죄로 체포되었다. 그는 당시 기소를 피하기 위해 FBI의 정보원이 되기로 했다. 2년 후 FBI 현장 요원들은 실종된 민권 운동가 앤드루 굿맨, 제임스 차니, 마이클 슈워너를 찾기 위해 스카르파를 불렀다. FBI는 이 세 남자가 살해되었다고 확신했지만, 그들의 시체를 찾을 수는 없었다. 요원들은 스카르파가 자신들은 이용할 수 없는 불법 심문 기법(고문과 협박)을 사용하여 용의자로부터 정보를 얻는데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스카르파와 요원은 로렐에 있는 자신의 가게에서 TV 세일즈맨으로 일하고 있는 인종차별 조직 KKK단의 일원 로렌스 버드를 납치한 뒤, 현지 육군기지인 캠프 셸비로 데려갔다. 셸비에서 스카르파는 버드를 심하게 때리고 그의 목구멍에 총구를 꽂았다. 버드는 마침내 세 사람의 시체의 위치를 스카르파에게 밝혔다. 스카르파는 1966년 1월에 미시시피 주에서 KKK단이 지른 화재로 사망한 버논 다머 살인 사건에 대해서도 FBI를 도운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마피아와 협력해 불법 심문을 통해 이 사건들을 해결했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FBI에서는 그 사실을 부인했다. 이 일화는 2007년에 스카르파의 오랜 애인이었던 린다 스키로가 자신이 스카르파에게 들은 내용을 폭로해 알려졌다. 한편 스카르파는 1966년 이후부터는 십수 년간 정보원 활동을 하지 않았으나, 1980년에 FBI 요원 린들리 데베키오가 그에게 접촉해오면서 다시 시작했다. 데베키오와 스카르파는 시간이 갈수록 인간적으로 서로에 매료되어 아주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스카르파는 FBI 측에 마피아 조직에 대해서는 중대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지만 여러 암흑가의 정보를 제공했고 신용 카드 사기로 재판에 넘겨져 실형을 선고받아 마땅할 때에도 집행유예를 선고받는 등 특권을 누린다. 패밀리의 행동대장(Caporegime)이 된 스카르파는 1990년대의 내부 권력 다툼이었던 3차 콜롬보 항쟁 당시 페르시코 파벌의 편에 섰다. 그는 항쟁의 중심에 있었고 이 시기에 알려진 것만 4명의 상대 마피아를 살해했다.[94] 또한 이시기에 총격전 과정에서 한쪽 눈을 잃기도 한다. 그는 1993년에 10년형을 선고받지만 얼마 안 있어 수용자 병원에서 에이즈로 인한 합병증으로 사망한다. 한편 데베키오는 1996년에 FBI를 은퇴하는데 2006년에 여러 수사정보를 스카르파 측에 흘린 혐의와 3차 콜롬보 항쟁 당시 경쟁 파벌의 소재를 스카르파에게 제공했다는 등 불법적으로 마피아를 지원한 혐의로 기소된다.[95] 이 기소는 스카르파의 여자친구였던 린다 스키로가 데베키오의 결백을 입증해 주어 취하된다. 한편 스카르파의 아들 스카르파 주니어도 전면전이었던 3차 콜롬보 항쟁 당시의 살인 공모와 공갈 혐의로 40년 형을 선고받아 복역 중인데 1993년 세계무역센터 폭탄 테러의 주범인 알 카에다 테러범 람지 유세프와 교도소에서 나눈 대화로 얻은 정보와[96] 1995년 오클라호마 폭탄 테러로 수감된 테러범 테리 니컬스와 대화하면서 알게 된 니컬스의 집에 숨겨진 잔여 폭발물에 대한 정보를 당국에 제공했다. 스카르파 주니어는 아마도 가석방 심사에서 더 높은 점수를 받아 조기 출소하려는 의도의 정보 제공이었겠지만[97] 진작에 동료 마피아들을 밀고하고 사법거래를 해도 되는데도 불구하고 테러범들의 정보만 제공한 사실을 보면 부자가 모두 오메르타로 똘똘 뭉쳐있는 마피아임에도 나름의 공적인 정의감도 있는 듯 보인다.
- 1976년에 3명의 무장강도로부터 총격을 당한 후 역으로 총을 빼앗아 1명을 살해한 뒤 그 시체를 차에 싣고 경찰서로 갖다 준 전적이 있는 인물이 2003년에 4건의 살인사건과 강탈 및 도박업 혐의로 기소되었다. 그는 당시 콜롬보 패밀리의 두목 대행(Acting Boss)으로 여겨지던 조엘 카카스(Joel Cacace)다. 카카스는 재판 끝에 모든 혐의를 인정하고 20년 형을 선고받는다. 4건의 살인 중 특기할만한 살인은 1987년에 마피아의 정보원으로 활동하던 NYPD 경찰관 카를로 안토니오 살인사건과 같은 해에 살해당한 뉴욕시 주차 위반국 행정법률 판사(Administrative-law judge for the city’s Parking Violations Bureau) 조지 아론왈드 살인사건이다. 경찰관 카를로 안토니오는 당시 패밀리의 행동대원(Soldier)이던 카카스를 경찰 측 정보원이라고 의심하다 살해되었고, 판사 조지 아론왈드는 1970년대에 마피아를 수사하는 연방검사로 이름을 날렸던 아들 윌리엄 아론왈드 대신 살해되었다. 당시 종신형을 선고받은 콜롬보 패밀리 두목(Boss) 카마인 페르시코 (사진)는 윌리엄 아론왈드가 마피아를 존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를 "문질러 없애(rubbed out)" 살해하라는 지시를 내렸는데, 카카스가 이 일을 도맡아 처리했다. 그러나 일선 히트맨이었던 카리니 형제가 아들이 아닌 아버지를 잘못 살해하여 마피아 두목들을 격분하게 했고 얼마 못가 에디 카리니와 빈센트 카리니 형제 모두 살해된 채 발견된다. 16년이 지난 2003년에 아버지를 살해한 사건의 전모가 밝혀져 기소가 이루어지자 윌리엄 아론왈드 전 연방 검사는 "달콤 씁쓸하다(bittersweet)"라고 표현했다.[98] 그렇게 수감 생활을 이어가던 카카스는 2008년에 또 다른 살인죄로 추가 기소되는데, 1997년에 집 앞에서 총상을 입고 살해된 NYPD 경찰관 랄프 돌스를 살해한 혐의가 그것이다. 당시 랄프 돌스 경관은 카카스의 전 부인과 결혼했었는데, 마피아의 전 부인이 히스패닉 인종을 가진 경찰관과 재혼한 것에 수치심을 느긴 카카스가 돌스의 살해를 지시했다고 검찰 측에서 주장했다. 그러나 이 재판은 검찰 측이 유력 증언자를 확보했음에도 불구하고 혐의 입증에 실패했다. 카카스는 2020년에 출소했다.
- 2008년 뉴욕시의 보석상 루이스 안토넬리(Louis Antonelli)가 제노비스 패밀리에 지불하던 보호비 상납을 중단했다. 그 후 안토넬리는 자신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전직 경찰관 제이슨 아이엘로를 경호원으로 고용했음에도 얼마 못 가 살해되었다. 법 집행기관에서는 마피아 상부에서 상납을 거부한 안토넬리로부터 돈과 보석을 강탈할 것을 지시했고 하급자들이 실행에 옮기는 과정에서의 우발적인 충돌로 살인사건이 났다고 평가했다. 또한 법 집행기관에서는 안토넬리가 총격을 받아 살해될 당시 경호원으로 고용된 아이엘로가 비무장 상태로 레스토랑에 앉아있었던 점 등을 이유로 그가 '살인으로 끝난 강탈 음모'에 가담했다고 여겨 체포영장을 집행하려 했지만 아이엘로는 체포 과정에서 총을 쏘며 저항했고 경찰에 사살되었다. 검찰은 살인사건의 실행자와 감시자 등 몇몇 관련자들을 기소했는데, 그 정점에는 제노비스 패밀리 행동대장(Caporegime) 앤서니 앤티코가 있었다. 내부 증언자가 존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앤티코는 살인죄에 대해 무죄판결을 받았다. 그는 함께 기소된 공갈죄는 유죄판결을 받았고 9년을 복역하고 2018년에 석방되었다. 나머지 피고인들은 살인에 가담한 경중에 따라 10년~30년에 걸쳐 다양한 형량을 선고받았다. 2009년에는 윌리엄 로마노(William Romano)라는 71세의 제노비스 패밀리 추종세력(Associate)이 보나노 패밀리로부터 20만 달러를 빌리고 갚지 않던 중 자신의 37살 여자친구와 함께 살해되었다. 하지만 2020년까지 이 사건으로 기소된 사람은 없다.
- 2003년에 발생한 제노비스 패밀리 행동대장(Caporegime) 아돌포 브루노 살인사건은 7년이 지난 2010년에 이르러 사건의 배후와 실행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기소가 이루어졌다. 브루노는 내부 권력투쟁 중 살해된 것으로 밝혀졌고, 피의자 중 일부가 정부 측 증인으로 선회하며 3명의 피고인들이 종신형을 선고받은 그 재판에서 마리오 임베시(Mario Imbesi)라는 남자가 정부 측 증인으로 대배심 증언대에 섰던 바 있다. 비극적으로 임베시는 재판 3년 후인 2013년에 코네티컷 주 댄버리에 위치한 자신의 집 앞에서 살해된 채 발견되었다. 언론에서는 마피아 측의 보복이 아닌가 의심하면서 특히 살해 시점이 브루노 살인사건의 4번째 피고인인 제노비스 패밀리 행동대원(Soldier) 에밀리오 푸스코(Emilio Fusco)가 이탈리아로 약 3년간 도피했다가 현지에서 체포된 뒤 미국으로 인도되어 재판을 앞둔 시점이었던 탓에 증인 살해가 아닌가 하여 더욱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99] 결론적으로 임베시를 살해한 범인을 검거하는데 실패하였기 때문에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지 않아 마피아의 보복 살상인지, 제3자에 의한 단순 살인사건인지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 1960년대 결성된 필라델피아의 군소 범죄조직 ‘10th and Oregon crew’의 지도자 루이스 투라가 1995년에 거리 세금을 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필라델피아 라 코사 노스트라 조직원들로부터 호되게 구타를 당한 후 자신의 롤렉스 시계를 강탈당했다. 이에 루이스 투라는 자신의 집에서 아버지와 부하 조직원들을 불러놓고 당시 필라델피아 마피아의 부두목(Underboss)이었던 조셉 멀리노를 살해할 계획을 세운다. 계획이 누설되고 루이스 투라는 수감되어 교도소에서 목을 매 자살한다. 얼마 안 있어 계획 수립에 동참한 루이스 투라의 아버지 앤서니 투라는 마피아 측으로 의심되는 복면 쓴 괴한으로부터 총에 맞아 살해당한다. 3년 후 조셉 멀리노는 앤서니 투라 살인죄로 재판에 회부되지만 무죄판결을 받는다. ‘10th and Oregon crew’는 1990년대 말 필라델피아 최대의 바이커 갱단 페이건스 MC와 마찰을 빚는다. 루이스 투라 이후 조직을 장악한 유진 밀러가 소유한 술집에서 양 조직원 간 패싸움이 벌어졌는데, 페이건스가 승리했다. 유진 밀러는 주먹과 권총으로 호되게 두드려 맞은 뒤 엉덩이와 다리에 총을 맞았다. 양측의 분쟁을 당시 필라델피아 마피아의 두목(Boss)이 된 조셉 멀리노가 중재했지만 어떠한 합의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얼마 안 있어 페이건스 두목 스티브 몬데베르긴이 8발의 총격을 당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몬데베르긴은 생존했고 경찰에 습격자들의 신원을 밝히길 거부했다. 몸을 회복한 몬데베르긴은 총격 사건의 배후로 의심되는 존 헨드리를 찾아가 자신이 직접 총격을 가하지만 2발 모두 빗나갔다. 그 후 몬데베르긴이 공갈 혐의로 재판에 회부되어 3년형을 받고 항쟁은 수습되었다.
- “너는 밀고자로 태어난 거야, 밀고자로 만들어진 게 아니고.(You're born a rat, you're not made a rat.)” 이 말은 오늘날의 미국 마피아 조직원들도 주로 인용하는 말로, 갬비노 패밀리 행동대장(Caporegime) 앤서니 루지에로가 조직을 배신한 밀고자들을 평가할 때 자주 사용한 말이다. 일명 ‘팻 앤디’라고 불린 그는 뼛속까지 마피아였는데, 영화 좋은 친구들에도 1컷 등장한다. 플로리다 주에서 조직 사업을 주관했던 루지에로는 수사기관의 눈을 피하기 위해 가죽 재킷을 입고 수염을 기른 뒤 헬스 엔젤스 플로리다 지부에서 조직원 생활을 했다. 검거 당시 그의 머그샷을 보면 마피아라기보다는 영락없는 바이커 갱단 소속 조직폭력배의 외형을 하고 있다. 재판에서 13년 형을 선고받은 그는 수감 중 자신의 아내를 계단에서 밀어 넘어뜨린 처남 프랭크 보치아를 살해하라고 부하에게 지시했고, 당시 패밀리 수뇌부가 이를 인정해 암살이 이루어졌다. 1997년에 출소한 그는 당시 영화 애널라이즈 디스에 마피아 두목(Boss) 역으로 캐스팅된 배우 로버트 드 니로가 직접 연기 자문을 구해온 마피아였다. 루지에로는 이후 1999년에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아들 역시 갬비노 패밀리의 추종세력(Associate)이었는데 2006년에 조직을 배신한다. 아들은 “아마 아버지가 살아서 이 광경을 보셨다면 자살하셨을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 전설적인 뉴욕 보나노 패밀리 행동대장(Caporegime) 빈센트 아사로는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현금 강탈 사건인 1978년 루프트한자 강탈 사건에 가담했다고 지목되어 사건 발생 36년 만인 2014년에 기소되지만 결국 무죄판결을 받았다.[100] 2017년에 아사로는 공갈, 살인, 강도, 갈취, 고리대금, 도박업 등의 불법 행위에 대한 참여와 더불어 자신의 차를 가로막은 운전자의 자동차를 방화하라는 명령을 내린 혐의로 기소되어 8년 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경찰서 데이터베이스에 접근할 수 있는 갬비노 패밀리 조직원으로부터 정보를 빼내 차주의 인적 사항을 알아낸 후 자동차 방화를 명령했다. 2022년에 출소할 예정이었던 그는 수용자 병원에서 복역하고 있었는데, 80대 고령의 나이로 인해 코로나 바이러스 유행 사태로 시설 내 집단 감염에 취약한 점이 감안되어 2020년에 조기 가석방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 보나노 패밀리 추종세력(Associate) 코스타빌 '거스' 퍼라치는 10대때 증오범죄로 동성애자를 살해하고 10년 징역을 썩다가 가석방 되었다. 주변 친척들이 전부 마피아에 가입되거나 관계인이었으며 감옥에서 보나노 패밀리의 카포였던 제리 칠리 시니어를 만나 그의 수하가 되었다. 석방된 후 마리화나 장사를 하다가 DEA의 비밀 잠복요원이었던 에버렛 해처와 코카인 거래를 했는데 해처를 의심하여 총으로 쏴죽이는 큰 사고를 쳤다. DEA 요원이 뉴욕에서 죽은건 1972년 이후 처음이었다. 결국 전국적인 추적이 이루어졌고, 보나노 패밀리에도 정부요원들이 찾아와 압박을 하자, 보나노 패밀리는 퍼라치를 제거하기로 했다. 한편 DEA와 FBI, 경찰, 보내노 패밀리의 추적에 쫒기던 퍼라치는 루케이시 패밀리의 동료 페트루첼리 및 제리 칠리의 딸의 도움을 받으며 숨어있었다. 이때 제리 칠리의 딸과 잤으며 아지트에서 퍼라치가 빠져나간 틈을 타 경찰이 습격하여 딸을 체포하면서 이 사실이 알려졌다. 당시 그는 유부남이었기 때문에 제리 칠리의 분노를 샀다. 결국 제리 칠리는 페트루첼리에게 퍼라치를 죽이라고 했는데 페트루첼리는 거절했고 2달 뒤 살해당한 시체로 발견됐다. 쫒기던 퍼라치는 결국 보나노 패밀리의 히트맨들에게 걸려 에버렛 해처를 살해한 방식과 동일하게 총을 맞고 사망했다. 한편 갬비노 패밀리 부두목(Underboss) 살바토레 '새미' 그라바노에 따르면 FBI 요원들이 자신의 집에 찾아와 존 고티에게 전하라며 퍼라치가 죽던 말던 우리는 상관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를 죽이길 원하느냐고 묻자, 그건 아니지만 죽던 말던 상관없다고 했다고. 영상 퍼라치의 일화는 TV영화인 Dead or Alive: Race for Gus Farace 와 스티븐 시걸 주연의 1991년 영화 복수무정2(Out for Justice)의 모티브가 되었다.
- 2022년 기준으로 각 뉴욕 5대 패밀리의 정규조직원(Made member) 중 가장 최근에 살해당한 인물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101] 갬비노 패밀리는 2019년에 살해된 부두목(Underboss) 프랭크 칼리가 해당된다. 칼리 문서를 참고하면 잘 알 수 있듯 이 사건은 마피아와 전혀 관련 없는 젊은 정치 음모론자의 소행으로 밝혀졌다. 루케시 패밀리는 2007년에 살해된 행동대원(Soldier) 프랭크 라가노가 해당된다. 그는 제노비스 패밀리 행동대장(Caporegime) 조셉 가토가 주축이 되어 매주 30~50만 달러의 수익을 올린 뉴욕 마피아의 코스타리카 도박 사업에서 루케시 패밀리의 사업 이익을 대변한 인물이었다. 2004년에 이 도박 사업을 노린 수사기관의 단속이 있었지만 모든 피고인들은 무혐의로 풀려났다. 얼마 뒤 마피아들 사이에서 라가노가 수사기관의 단속을 도운 정부 측 정보원이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로부터 3년 뒤 라가노는 자신의 BMW 차량에서 총에 맞아 살해되었다. 이 사건은 범인이 검거되지 않은 미제사건으로 남았다. 훗날 라가노의 유족들은 마이클 모르다가 수사관이 라가노의 정보원 신분을 마피아 측에 고의로 누설한 바람에 그가 살해되었다고 주장하며 고소를 제기한다. 제노비스 패밀리는 2007년에 살해된 행동대원 루돌프 이지가 해당된다. 그는 자신의 자택 침실에서 총에 맞아 살해되었는데, 공교롭게도 사건이 일어나기 6년 전에도 자신의 자택에서 괴한의 습격을 당해 상해를 입은 전적이 있었다. 이 사건은 비밀스럽기로 유명한 제노비스 패밀리의 다른 사건들과 마찬가지로 범행 동기나 용의자가 전혀 특정되지 않았고 범인이 검거되지 않은 미제 사건으로 남았다. 보나노 패밀리는 2009년에 살해된 행동대원 앤서니 세카피코가 해당된다. 그는 수감 중인 보나노 패밀리 행동대원 존 스피리토의 가족에게 금전 지원을 할 의무가 있었는데,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는 불명이나 제대로 된 지원을 하지 않았다. 이에 스피리토의 아들이 세카피코를 찾아와 자신의 어머니에게 전달할 돈을 요구했지만 세카피코는 오히려 스피리토의 아들을 폭행하고 "문제가 있으면 네 아버지한테 출소하고 나서 날 찾아오라고 전해라."라고 말했다. 그로부터 4년 뒤 세카피코는 총에 맞아 살해되었다. 수사당국에서는 이 사건을 보나노 패밀리 수뇌부의 승인하에 이뤄진 조직 내 처형으로 추정했지만 결국 범인이 검거되지 않은 미제사건으로 남았다. 콜롬보 패밀리는 1999년에 살해된 부두목(Underboss) 윌리엄 쿠톨로 (사진)가 해당된다. 당시 종신형 수감 중이었던 콜롬보 패밀리 두목(Boss) 카마인 페르시코 (사진)는 신임 부두목 쿠톨로가 조직의 실권을 장악할 것을 우려한 나머지 자신의 대리인으로 패밀리의 두목 대행(Acting Boss)을 맡고 있었던 아들 알폰스 페르시코를 필두로 한 측근들에게 그를 살해하라고 지시했다. 사건이 벌어진 당시엔 관련자들이 검거되지 않았지만 그로부터 8년이 지난 2007년에 알폰스 페르시코가 포함된 관련자 2명의 혐의가 입증되어 종신형 유죄판결이 내려졌고 그 이듬해 암매장된 쿠톨로의 시신이 발견되어 유가족 측에 인계되었다.
- 2022년 5월 ~ 7월 사이 라스베가스의 미드 호수의 수위가 가뭄으로 낮아지자 드럼통에 담겨진 총에 맞은 시체가 연달아 발견되고 있다. 경찰은 마피아와의 연계를 의심하고 있으며, 아직 수사가 진행 중이지만 언론은 80년대 날뛰던 앤서니 스필로트로 갱단의 소행으로 보고 있다. 영화 카지노의 시기가 딱 이 시기였으며 앤서니 스필로트로 갱단[102]은 적어도 24명 이상의 살인 혐의를 받고 있다. 2022년 8월에도 시체가 계속 발견되고 있다. 7일에는 네번째 # 21일에는 다섯번째 시체가 발견됐으며, 언론은 앤서니 스필로트로가 이끌던 시카고 아웃핏의 분가조직의 소행으로 거의 확정하고 있다. #
- 필라델피아 마피아와 바이커 갱인 페이건스는 서로 협조를 하는 관계였지만 80년대에 니키 스카포가 두목(Boss)으로 있으면서 지역의 다른 갱단에게 '거리세'를 내라고 강요하자 양쪽의 관계는 순식간에 험악해졌다. 니키 스카포는 반항하는 스트리트 갱스터들을 제압하고, 그리스 마피아인 첼세이즈 부라즈를 살해하는 등 위세를 떨쳤다. 그러나 페이건스 M.C는 니키 스카포의 거리세 요구를 정면에서 거절했다. 니키 스카포는 부하들을 보내 거리세를 내라고 강요했지만 그런 제안이 비웃음을 받자 페이건스와 관련된 인물들을 납치해서 협박을 했다. 그러자 페이건스는 멤버인 지미 D는 바로 보복을 하여 1981년 마피아 멤버 2명[103]을 납치해 뒤에서 총을 겨누고 같이 운전을 하다가 마피아 멤버들이 차에서 내려 도망치자 총격까지 하였다. # 결국 부하들은 페이건스를 제압하기 보다는 같이 일하는게 좋다고 조언을 했고 니키 스카포는 한발 물러나 페이건스에게 거리세를 면제했다. 이후 양측은 꺼림칙하게 동맹관계를 이어갔지만 1982년 4월 살바토레 '처키' 멀리노가 페이건스 갱의 오토바이에 자동차를 들이박아 바이커들에게 부상을 입히면서 암묵적인 휴전은 끝이 났다. 페이건스는 곧장 보복을 가해 멀리노의 어소시에이트 차에 화염병 공격을 가하고 살바토레 테스타의 집과 처키 멀리노의 어머니 집에 총을 쏘는 것으로 보복을 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라델피아 마피아는 페이건스에게 5천달러의 손해배상을 했고 결국 휴전은 성립이 됐다. #
- 다른 강력한 바이커 갱인 아웃로즈와 디트로이트 마피아의 관계도 흥미로운데, 70년대 디트로이트 마피아의 지아칼론 크루와 아웃로즈 MC는 동맹관계였다. 그렇지만 아웃로즈는 지아칼론 크루의 크랩스 주사위 게임에서 나오는 수익을 원했다. 결국 90년대에 아웃로즈 리더 해리 '타코' 보우먼은 크랩스 운영자들에게 자신들에게 보호비를 바치라고 요구했다.이에 디트로이트 마피아는 보우먼을 공격하는 것으로 응답했다. 이 임무는 지아칼론 크루의 히트맨인 노브 타코와 폴 코라도에게 맡겨졌다. 그러나 반복적인 암살시도가 실패한 뒤 FBI의 도청에 따르면, 히트맨들은 아웃로즈 MC와 싸우는 것에 경계심을 갖게 되었다. 지아칼론 크루의 히트맨이었던 토코의 아버지 폴에 의하면 재키 지아칼론은 자신이 타코에게 크랩스 게임을 진 것에 대해 화가났으며, 따라서 토코와 코라도에게 타코를 밀어버리도록 선동했다는 것이다. 이후 재키와 빌리 지아칼론이 도박 북메이킹 혐의로 체포되자 보우먼에 대한 히트 지시는 취소됐다. 나중에 보우먼과 토니 잭이 만나 화해가 성립됐다. #
7. 일화
- 갬비노 패밀리 산하의 도박업자 아버지를 둔 조셉 볼라로(Joseph Vollaro)는 어린 시절에는 건설업 인부일을 하며 여러 체육관에서 코치로 일하기도 했지만, 결국 1990년대에 갬비노 패밀리와 관계를 맺어 이내 마약 거래와 고리대금업 혐의로 교도소에 가게 된다. 별 볼일 없는 그저 그런 잡범이었던 그의 인생은 수감 중에 갬비노 패밀리의 두목급 간부인 니콜라스 코로조 (사진)와 같은 방에 살게 되면서 바뀌게 되었는데, 건설 업계에 마피아가 미치는 영향력을 잘 알고 있던 그는 출소하자마자 코로조 형제를 찾아가 상납금을 바치며 자신의 회사 앤드루스 트럭(Andrews Trucking)을 뉴욕시에서 가장 주도적인 건설회사로 만든다. 그는 갬비노 패밀리 행동대원(Soldier) 조셉 스피나토(Joseph Spinnato)와 스태튼 아일랜드에서 벌어지는 여러 사업의 공동 소유주로써 막대한 부를 축적했는데, 그 과정에서 생기는 수익은 패밀리에 상납하면서 다른 경쟁자들의 돈을 갈취하기도 했다. 이 시기 볼레로는 갬비노 패밀리가 세계적인 레이싱 경주 NASCAR 대회에 개입하는데도 관여했다. 거대한 3대의 요트를 소유하며 승승장구하던 볼레로는 2004년에 2kg의 코카인을 소유하고 있다가 체포되어 마약 거래 혐의로 최대 종신형까지 처해질 수 있는 위기에 빠지는데, 이때 정부의 정보원이 되기로 협력해 약 4년간 수사를 돕는다. 이를 통해 2008년 갬비노 패밀리와 시칠리아 마피아 조직원 62명을 기소한 FBI의 올드 브리지 작전(Operation Old Bridge)이 실현될 수 있었다. 시칠리아와 미국 마피아의 오랜 커넥션을 상징하는 작전명에서 알 수 있듯 대서양을 잇는 마약거래 루트를 적발하며 당시 갬비노 패밀리의 두목 대행(Acting Boss) 존 다미코 (사진)와 니콜라스 코로조, 부두목(Underboss) 도메니코 세팔루 (사진), 상담역(Consigliere) 조셉 코로조 (사진) 등 조직 지도부 전원을 기소하는데 성공한 의미 있는 작전이지만, 코로조 형제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피고인이 3년 이하의 단기형을 선고받는데 그쳐 조직원들이 금세 복역을 마치고 거리로 복귀했다는 점과[104] 1명의 시칠리아 조직원을 제외하고는 61명의 피고인 중 어느 누구도 오메르타를 깨고 내부 증언자가 된 인물이 없는 점이 이 작전의 한계라고 할 수 있다. 작전 개시 직후 갬비노 패밀리 수뇌부의 권력 공백기를 메운 인물이 시칠리아 파벌의 존 갬비노 (사진)이다. 이후에도 기소 명단에 있었지만 1년 만에 석방된 도메니코 세팔루와 프랭크 칼리, 애초에 기소 명단에서 빠져있던 로렌조 만니노 (사진) 같은 시칠리아 파벌 인물들이 꾸준히 갬비노 패밀리의 주도권을 장악하게 된다. FBI 내 인력 부족으로 1980~1990년대에 비할 바는 안되지만 마피아와 싸우는 수사기관의 헌신은 2009년 갬비노•루케시 패밀리 대상의 퓨어 럭 작전(Operation Pure Luck), 2014년 갬비노•보나노 패밀리와 이탈리아 본토 은드랑게타 대상의 뉴 브리지 작전(Operation New Bridge) 등 계속 이어지고 있다.
- 국가 안정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멕시코의 마약왕 호아킨 구스만 로에라의 경우 2번이나 수감 중인 교도소 밑에 땅굴을 뚫어 탈옥하는 등, 정부를 대놓고 기만하고 결국 멕시코 차원에서 감당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결국 3번째 검거 때는 미국으로 송환되어 종신형을 선고 받고 미국 교정 시설에 구금된 상태다. 반면 국가 안정성이 높은 미국의 마피아의 경우 니콜라스 코로조 (사진)라는 갬비노 패밀리의 두목급 간부는 2008년에 FBI에서 수년간 진행해온 마피아 수사(일명 'Operation Old Bridge' 작전)의 결실인 체포 소식을 미리 접하고 도주한다.[105] 코로조는 구스만처럼 영원히 잠적하는 선택을 하지 않고 4개월의 도피 생활 끝에[106] 물밑에서 정부 당국과 협상을 거친 뒤 자수했다.[107]
- 뉴욕 타임 스퀘어에 위치한 유명 나이트클럽 코파카바나(Copacabana)에도 유흥업소 아니랄까 봐 당연히 마피아와 얽힌 이야기가 있다. 본래 1940년에 최초로 문을 열 당시 클럽의 주인은 몬테 프로서(Monte Proser)였지만, 이내 마피아 두목(Boss) 프랭크 코스텔로에 의해 심어진 줄스 포델(Jules Podell)이 프로서의 파트너로 경영진에 들어왔고 1950년 즈음에는 포델이 클럽의 완전한 주인이 되었다. 코파카바나는 수많은 할리우드 영화의 촬영지로 쓰였고[108] 이후로도 수차례 주인과 위치가 바뀌었지만 여전히 타임 스퀘어의 나이트클럽 중에서 가장 전통 있는 클럽으로 남아있다. 2019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영화 그린 북의 주인공 '토니 발레롱가'가 코파카바나의 웨이터다.[109] 실화에서 영감을 얻은 1963년 배경의 이 작품은 코파카바나의 사장 줄스 포델도 몇 차례 언급되고, 클럽에서 마피아와 연줄을 가진 진상 손님을 폭행한 발레롱가가 마피아들에게 호출되는 장면도 잠깐 나오는 등 작품 초반부에서 뉴욕의 암흑가를 약간 엿볼 수 있다.
- 도니 브래스코로 영화화된 FBI 요원 조 피스톤의 보나노 패밀리 잠입수사가 유명한데, 극 중 최후를 맞이하는 것으로 묘사되는 '레프티' 벤자민 루지에로(Benjamin Ruggiero)는 사실 조직으로부터 처형당하기 전, 미리 첩보를 입수한 FBI에 의해 체포되어 정부로부터 증인이 되기를 권유받지만 단호하게 거절하고 15년의 징역형을 선고받는다. 그는 끝까지 조 피스톤이 FBI 요원이 아니라고 믿었고 변호사에게 "그 녀석은 절대 우리를 배신하지 않을 거야(He'll never go against us)"라고 얘기했지만 법정에 나타나 증언하는 그를 본 후 "할 수만 있다면 마지막으로 그 개자식을 제거하고 싶다.(I'll get that motherfucker Donnie if it's the last thing I do.)"라고 했다. 루지에로는 1992년에 11년 복역 후 출소했고 1994년에 사망했다.
- 마약 유통 혐의로 25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던 캘리포니아 LSD 마약왕 세스 페란티(Seth Ferranti)는 출소 후 작가로 활동하면서 자신이 경험한 교도소 내 마피아들에 대해 글을 썼는데, 그 내용을 대충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110] 페란티 자신은 수감생활 중 수많은 동부 출신 마피아 타입(East coast mafia types) 수용자를 봤다. 그들 중엔 진짜(Real genuine thing)도 있지만, 대부분의 나머지는 가짜(Fake)이거나 단순히 마피아를 동경하는(Wanna-be) 수용자들이다.[111] 영화 좋은 친구들에서 마피아들이 스테이크를 굽고 와인을 마시며 호화로운 수감생활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에서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교도소 내에서 수용자들의 파티가 벌어진다. 비록 파티가 마피아들만의 전유물은 아니고 흑인이나 히스패닉 무리들도 자신들의 파티를 즐긴다. 그러나 교도소 내에서는 어느 집단도 마피아들이 하는 정도의 파티를 열 수 없다.(In prison nobody can throw a party like the wiseguys.) 대부분의 평범한 신출내기 수용자들은 파티에 끼지 못하고 괴롭게 식탁을 떠나야 한다. 마피아 파티의 준비는 대개 콜롬비아계나 멕시코계 수용자들이 도맡아 했다. 마피아들은 교도소 내에서 자기네들끼리 카드게임을 하고 직접 음식을 만들어 먹기도 하는데 이탈리아계 아니랄까 봐 파스타는 반드시 포함한다. 동부 출신 대부분의 백인 수용자들은 마피아들과 관계를 맺기 위해 주위를 설득하거나, 그런 그들을 (위험하다는 이유로) 만류하려 한다. 자신이 볼 때는 그리 복잡할 게 생각할 건 없는데 그들이 영화를 너무 많이 본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한편, 교도소 수용자들은 마피아 영화의 대사를 곧잘 인용하곤 하는데 심지어 실제 마피아 조직원들도 인용한다. 그중 제일 인기 있는 대사는 좋은 친구들에서 조 페시가 레이 리오타에게 하는 "내가 어떻게 웃겨? 어릿광대처럼? 자넬 즐겁게 해주나?(What are you laughing at me? What am I a clown? I'm here to amuse you?)"라는 대사이다. 페란티 자신의 경우 이탈리아 혈통 덕에 여러 마피아 조직원들과 어울리게 되었는데[112] 처음으로 만난 마피아는 전설적인 국제 헤로인 밀수망 프렌치 커넥션의 일부로 지목되어 수감된 늙은 시칠리아 출신 갬비노 패밀리 조직원이었다. 교도소 내 수많은 깡패, 마약상, 밀수꾼들이 신체적으로는 충분히 그 노인을 때려눕힐 수 있었지만 다른 수용자들은 어릴 적 보고 자란 영화 속의 실제 인물인 노인을 존경했으며 모든 마약상, 은행 강도, 가석방 위반자들은 일종의 경외감에 사로잡혔다. 1996년에 이감된 FCI 베클리에서는 갬비노 패밀리 총잡이 조 왓츠를 만났는데[113] 그는 엄청난 재력으로 돈을 뿌려대는 걸로 유명했고 동료 수용자 중에서 뽑은 개인 요리사, 청소부, 경호원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왓츠의 눈에 들려고 노력하는 다른 수용자들은 마치 그와 사귀기 위해 구애하는 것 같아 보였다. 페란티는 1999년에 FCI 포트 딕스로 이감되는데, 그곳에서 8년형을 받고 복역 중이던 갬비노 패밀리의 두목급 간부 니콜라스 코로조 (사진)와 함께 수감생활을 했다.[114] 교도소 내 가장 존경받는 마피아 인사였던 코로조는 많은 불량배들을 거느렸는데, 항상 보스턴 출신 수용자 무리들이 그의 옆을 지켰다. 직원을 포함해 교도소 내 모두가 그가 누군지 알고 있었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에게 친절한 태도를 보였다. 뉴욕과 뉴저지 주, 필라델피아의 마피아 조직원들로 가득한 교도소에서 자기네들끼리 불화가 생기면 코로조가 그들을 중재했다. 그가 원하면 교도소의 다목적실이 곧 마피아 사교클럽이 되었다. 2002년에 이감된 FCI 페어튼에서는 자신이 만난 가장 멋진 마피아인 루케시 패밀리 행동대원(Soldier) 마이키 페르나를 만났다. 그는 마치 영화에서 갓 튀어나온 사람 같았다.[115] 교도소에서 페르나의 크리스마스 파티는 전설적이었다. 페르나에 의하면 페란티가 오기 직전에 자신과 함께 있던 ‘뚱뚱한 잭’ 지아코모 디노르시오란 마피아가 교도소장의 허가를 받아 갬비노 패밀리 두목(Boss) 존 고티의 임종을 지켜보러 스프링필드 연방수용자 의료센터로 이감되었다고 한다.[116] 또 마피아 조직원끼리는 서로 마주칠 때마다 유럽식 인사인 비쥬를 하는데, 자신은 마피아 구성원이 아니라 결코 거기에 낄 수 없었지만 교도소에서는 매일 그런 광경을 볼 수 있다고 한다. #
- 존 고티와 뉴욕 메트로폴리탄 교정센터에서 함께 수감생활을 했던 사람의 증언에 의하면, 고티는 시설 내에서 엄청난 존재감을 풍겼고 아랫사람들을 철권통치했다. 그는 남들과 함께 있을 때는 그리 우호적이지 않았으나 1:1로 대면할 때는 꽤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으며 교정시설 밖 자신의 범죄 제국에 대한 걱정을 했다. 고티가 교정시설 내에서 특권을 누렸냐는 질문엔 ‘확실한(Absolutely)’ 특권을 누렸으며, 수감된 모든 마피아 두목(Boss)들은 예외 없이 특권을 누린다고 설명했다. 동시에 한 가지 예를 들었는데, “교정시설에는 이미 다수의 마피아 조직원들이 수감되어 있고 그 존 고티가 전화기를 쓰겠다고 하는데 어느 누가 거절할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증언자의 눈에 비친 교도관들은 “고티 씨가 조금이라도 더 편안하게 있을 수 있기 위해서 제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요?”라며 아첨하는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또 증언자가 밝히길, 하루는 마피아 두목들이 수감되어 있는 분리된 지구에 내려갈 일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두목들이 랍스터를 먹으며 코냑을 마시고 시가를 피우는 걸 직접 목격했다고 한다. 그 모든 것들은 당연히 교도관들에 의해 반입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117][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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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후반 조셉 피스톤의
도니 브래스코 작전 외에도 뉴욕 마피아 패밀리에 깊숙이 침투한 또 다른 FBI 요원이 있는데, 2002년부터 2005년까지 잭 팔코네(Jack Falcone)란 가명으로 약 3년간 갬비노 패밀리에 잠입한 호아킨 가르시아(Joaquín García)가 그 주인공이다. 가르시아는 시칠리아인 보석 도둑과
마이애미에서 온 마약상이라는 신분으로 갬비노 패밀리 행동대장(Caporegime) 그레고리 데팔마(Gregory DePalma) 산하 조직원으로 입단했는데 데팔마가 가르시아를 정규조직원(Made member)으로 승격시키는 논의를 했을 정도로 두각을 나타냈다.[119] 이후 2005년에 가르시아가 수집한 증거를 토대로 데팔마를 포함한 갬비노 패밀리 조직원 32명이 기소되었고 주범격이었던 데팔마는 12년형을 선고받는다. 데팔마는 복역 중인 2009년에 수용자 병원에서 77세로 사망했다.
- 2009년에 약 648억 달러(약 76조 7,232억 원) 규모의 미국 역사상 최대의 폰지사기를 일으킨 버나드 메이도프가 150년의 형량을 선고받고 교도소에 갔을 때, TV 채널을 바꾸면 안 된다는 불문율을 어겨 동료 수용자로부터 뺨을 맞았다. 그 교도소에는 1987년 마피아 위원회 재판 때 139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임에도 불구하고 대리인을 통해 실질적으로 뉴욕 콜롬보 패밀리를 관리해온 두목(Boss) 카마인 페르시코 (사진)가 있었는데 그가 자신의 부하들을 보내어 뺨을 때린 수용자에게 "매우 엄중한 경고"를 한 후 비로소 메이도프는 자신이 보고 싶은 채널을 마음껏 볼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두 노인의 우정이 시작되었고 페르시코는 샤워 슬리퍼 등을 챙겨주며 교도소에 익숙하지 않을 메이도프를 도왔다. 메이도프는 페르시코를 "매우 착한 남자"라고 묘사했는데 페르시코의 손자들이 할아버지를 면회 온 장면을 묘사하면서 그것이 얼마나 부드러운 장면이었는지, 그리고 가족 간에 얼마나 온화했었는지를 이야기했다. 한편 메이도프는 본인 가족들의 방문 부족을 한탄했다.[120] 시간이 흐른 뒤 2019년에 페르시코는 민간병원인 듀크 대학교 병원에서 생을 마쳤고[121] 메이도프는 2020년에 변호사를 통해 그가 만성 신부전으로 고통받고 있으며 앞으로 18개월도 못 산다고 주장하며 연민 가석방(compassionate release)을 신청했으나 이후 2021년 4월 14일에 사망하였다.
- 버락 오바마의 2013년 연설에 언급되는 미국 마피아 조직원이 있다. 그는 2019년에 갬비노 패밀리의 부두목(Underboss)이 되는 ‘로렌조 만니노 (사진)’다. 오바마는 FBI 국장 취임 연설에서 자신이 임명한 신임 국장 제임스 코미가 1993년에 갬비노 패밀리 조직원들을 기소했을 때 피고인 중에 조직의 행동대원(Soldier)이었던 만니노가 있었으며 재판 도중 코미는 뉴욕 변호사 협회로부터 상을 받게 되었는데 그 후에 벌어진 일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아침 법정이 소집되었을 때, 갑자기 피고의 테이블에서 통로를 가로질러 검사 테이블로 메모가 전달되었습니다. 그것은 코미에게 건네졌고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습니다: '제임스에게, 상을 받으신 걸 축하합니다. 당신보다 더 자격 있는 사람은 없어요. 당신은 진정한 프로예요. 진심으로요, 로렌조." 곧이어 대통령은 "자, 우리는 그가 얼마나 진심이었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이것이 베일에 싸인 협박인지, 아니면 관용을 베풀어 달라는 간청인지, 솔직한 칭찬인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임스가 마피아 히트맨인 로렌조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고 말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얘기했고 청중들 사이에서 웃음꽃이 피었다.[122] 하지만 만니노의 당시 변호사 찰스 카네시는 편지를 쓴 일 자체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백악관은 이에 관한 논평을 거절했지만 FBI 대변인은 이 일화가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여담으로 당시 진행된 재판은 피고 측이 승소했지만, 1년 후 진행된 재심에서 패소하여 15년 형을 선고받았고 만니노는 2004년에 출소했다.
- 마이클 프란지스는 정규조직원(Made member)으로 입단하기 전인 1970년대에 롱아일랜드에서 청과물 사업을 했다. 당시 기준으로 거액인 2만 5천 달러를 투입한 그 가게에 닭고기를 납품하던 인물은 전설적인 갬비노 패밀리 두목(Boss) 폴 카스텔라노의 친척 피터 카스텔라노였다.[123] 어느 날 한 여성이 험상궂은 표정으로 나타나 구더기가 득실거리는 닭고기를 내밀었다. 그녀가 당일 납품된 고기를 사갔기 때문에 가정에서 상할 리 없었다. 프란지스는 보상을 해준 뒤 피터에게 전화를 걸어 아주 공손하게 사태를 설명했다. 그럼에도 그가 책임을 인정하지 않아 프란지스는 썩은 닭고기는 다른 데다 갖다 주라고 언성을 높인 뒤 전화를 끊었다. 이후 수뇌부에 사태를 알리기 위해 조직의 아지트로 차를 몰았고 그곳에서 당시 콜롬보 패밀리의 수괴였던 토마스 디벨라(Thomas "Old Man" DiBella)[124]와 자신의 행동대장(Caporegime) 앤드루 루소 (사진)[125]가 심각한 표정으로 자신을 기다렸다. 그들은 이미 갬비노 측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상태였다. 미국을 주름잡는 마피아 두목이 고작 몇백 달러 닭고기 때문에 사람을 죽이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닭고기가 마피아의 사업이었고 그건 곧 명예가 걸린 문제이기에 충분히 살해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프란지스는 30분간 두목의 엄한 심문을 받았고 두목은 그에게 콜롬보 패밀리의 단순 추종세력(Associate) 신분으로 갬비노 패밀리 두목에 도전장을 낸 상황이라고 이해시켰다. 곧이어 프란지스가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침묵하던 둘은 폭소를 터트렸다. 알고 보니 카스텔라노의 닭고기는 악명이 자자했고 피해 사례가 많았다. 프란지스는 그때 비로소 두 사람이 자신을 지켜줄 같은 패밀리 소속이라는 실감이 들어 안도감이 밀려왔다고 한다. 어찌 되었건 갬비노 측과 담판을 해야 하는데 거기에 앞서 디벨라는 ‘항상 카스텔라노를 존중하고 있다는 태도를 보여줄 것, 누군가 말하라고 하기 전에는 입을 다물 것, 자신의 질문에는 단호하고 명확하게 대답할 것, 폴 카스텔라노의 질문에는 절대 반응하지 말 것, 그들의 거짓말이 지나치게 뻔뻔하더라도 거짓말쟁이(Liar)라고 하지 말 것, 자존심이 상하더라도 일일이 대응하지 말 것, 그 전화 통화 중 네가 피터를 모욕한 사실을 끝까지 부인할 것, 이번 담판에서 내려진 결론은 군말 없이 수용할 것.’ 등의 주의사항을 알려줬다. 담판이 시작되자 예상대로 갬비노 측에서 거칠게 몰아붙였고 프란지스가 함정에 빠져 감정적 대응을 하거나 피터를 모욕한 사실을 인정하면 그대로 죽은 목숨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각본대로 성실히 수행했고 두목 대행 디벨라와 행동대장(Caporegime) 루소가 프란지스에 대한 결정적인 증언을 해주면서 피터가 썩은 닭고기값을 변상해 주는 대신 양측 모두 예전처럼 거래를 계속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프란지스는 그 후에도 폴 카스텔라노가 자신을 노리지 않을까 한참을 주의 깊게 처신했다.
- 대한민국 국민 중 미국 마피아와 만남을 가진 뒤 그 경험을 기록한 사람이 있다. 바로 후암미래연구소장 차길진 대표이다. 2019년 타계한 그는 생전 '구명시식'이라고 이름 붙인 '초혼위령제'로 명성이 높았다. 영혼을 불러내어서 달래는 '천도재' 의식인데, 최면이나 영매 같은 보조 수단 없이 바로 ‘영'과 통하는 능력자로 꼽혔다. 그는 대한민국의 2002년 월드컵 4강 진출과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을 예언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런 그가 뉴욕에 기거할 당시 마피아와 만났다고 한다. 어느 날 교포사회에서 마당발로 소문이 난 지인이 연락도 없이 찾아와 마피아를 만나고 싶지 않느냐며 물었고 처음에는 영화 대부 생각이 나 거절했지만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그들을 만날 수 있고 마피아 때문에 한인 교포들의 장사에 어려움이 많다는 얘기를 자주 들었기에 이 기회에 협조를 구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 승낙 했다고 한다. 맨해튼의 한 건물에서 만남이 이루어졌고 마피아 두목(Boss)은 바로 본론을 꺼냈다.[126] “당신 친구에게서 당신이 매우 특별한 영적 능력을 가졌다고 말을 들었소. 그러니 부탁 하나만 들어 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때 차길진 씨는 영능력과 마피아와 무슨 관계가 있나 싶어 순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옆방에 자신들의 친구가 누워 있는데, 사인을 정확하게 밝혀 줄 수 없겠느냐 하는 것이었다. 교통사고로 판명되었지만 자신들의 친구는 결코 사고로 죽을 사람이 아니며, 분명 누군가에 의해 폭행을 당해 교통사고로 위장 살해됐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러면서 가해자가 누구인지 밝혀달라는 것은 아니니 살해의 동기나 방법만 알려달라고 하였다. 다시 말해 마피아를 위한 구명시식을 해달라는 것이었고 만약 거절한다면 이곳을 쉽게 나가지 못할 거라며 은근히 협박까지 하는 마피아의 위협에 순간 ‘잘못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마피아와 한인상인 간의 갈등을 해결해 주는 조건으로 그들의 요구에 응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차길진 씨가 본 사인은 단순 교통사고가 아니었고, 그 자신이 영적으로 본 사실을 마피아에게 말해주고 그곳을 나왔다. 그 후 마피아와 한인상인들 간의 문제는 원만하게 해결이 되었다. 소득은 있었지만 영화 ‘대부’를 떠오르게 하는 정말 잊지 못할 구명시식이었다고 한다. #
- 전직 마피아를 인터뷰한 기사는 셀 수 없이 많다. 이에 2019년 GQ 매거진에서는 뉴욕 5대 패밀리 소속 현직 행동대장(Caporegime)과의 인터뷰를 성사시켰다. 그 마피아는 만남 장소를 비밀로 할 것과 질문을 받지 않고 인터뷰를 간단하게 끝낼 것을 요구했다. 기사를 보면 그 마피아의 옷차림만을 기록했고 당연히 그의 이름이나 어느 패밀리 소속인지는 기재하지 않았다.[127] 약속의 날에 그 마피아는 기자와 악수를 하고 이탈리아 팝 음악이 재생되고 있는 조용한 건물로 안내한 뒤 커피를 대접했다. 그는 ‘지하실에서 시체를 보여 주는 것’에 대한 농담을 한 직후 "우리 세계에는 세 가지 선택이 있다. 밀고자가 되는 것, 감옥에 가는 것, 죽는 것. 그것들이 유일한 탈출구이고 조직 생활을 그만둘 수 없다.”라고 설명했다. 대화 도중 근육질의 부하 조직원이 들어와 “그놈들이 빌어먹을 가방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They didn’t have the fucking bags.)”라고 얘기했고 그 마피아는 “내가 그놈들을 두드려 팼어야 했는데.(I should have beaten ’em.)”라고 대답했다. 짧은 만남이 끝나고 헤어질 시간이 되자 그 마피아는 기자에게 “언제든 환영한다.”라고 환하게 배웅했다.
- 갬비노 패밀리 두목(Boss) 존 고티의 아들이자 한때의 후계자였던 존 고티 주니어 (사진)는 21세기 들어 4번의 재판을 모두 승소한다. 2001년을 기점으로 마피아 세계를 떠났다고 주장하는 그는 2015년에 집필한 자서전을 통해 2009년에 치러진 재판에서 스티비 뉴웰(Stevie Newell)이라는 아일랜드 혈통의 패밀리 추종세력(Associate)이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했다고 서술했다. 사실 뉴웰은 고티 주니어 측에 유리한 증언을 한 인물임에도 책을 통해 밀고자로 알려졌고 그 바람에 당시 지역 건달들과 3~4차례 실랑이가 벌어졌다고 한다. 특히 한 번은 자신이 차를 타고 가는 도중 한 괴한이 차를 나란히 세우고 “내가 네놈을 죽여버려야겠어.(I should fucking kill you.)”라고 협박하는 사건이 있었다. 뉴웰은 그 일이 있고부터 신변을 지키기 위해 여러 총기들을 샀는데 중범죄 전과자인 뉴웰은 총기 소지가 금지되어 있었다. 결국 그는 불법무기소지죄로 약 4개월간 수감되게 된다. 그는 수감되기 전 가진 언론 인터뷰에서 낮에는 거리의 인파 속에 섞여있으면 안전하지만 혼자 있는 밤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총기를 장만했으며, 고티 주니어가 자신이 밀고자가 아니라고 내용을 정정해 주길 2년 넘게 기다려왔다고 밝혔다. 기자는 마피아 측의 복수를 우려해 불법 총기를 소지하다 교도소에 수감되는 일이 21세기 미국 땅에서 벌어지는 걸로 보아 여전히 마피아 관례(Mafia Code)가 살아있다고 전했다.
- 마피아 패밀리의 두목(Boss)이 되는 건 영화 좋은 친구들의 오프닝 독백처럼, 뒷세계 사람들에게는 미국 대통령이 되는 기분과 견줄 수 있을 것이다. 두목이 되면 그만큼의 막대한 권력과 명성, 돈이 따라온다. 어쩌면 전설의 러키 루치아노나 알 카포네처럼 후대에도 길이길이 악명을 떨쳐 자신을 주제로 한 영화가 제작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두목이 되면 수사기관과 언론의 관심 또한 불러오는 법이다. 즉, 독이든 성배와 같다. 오히려 마피아의 역사를 살펴보면 범죄 세계에서 정상에 오르지 않고 그 언저리에서 묵묵히 맴돌았던 인물들 중에 아주 성공적인 삶을 살다간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2019년에 85세로 사망한 루케시 패밀리의 아니엘로 밀리오레(Aniello Migliore), 2020년에 92세로 사망한 갬비노 패밀리의 리카르도 세팔루(Riccardo Cefalu)가 있다. 루케시 패밀리의 아니엘로 밀리오레는 3명의 두목을 섬기며 자신이 맡은 행동대장(Caporegime) 역할 그 이상을 결코 넘보지 않았다. 한평생 마피아로 살며 딱 4년의 수감 경력만 가지고 있는 그는 1992년 당시 수감된 채 종신형을 구형 받은 패밀리 두목 비토리오 아무소가 ‘내가 유죄판결을 받으면, 조직 내에서 두루 존경받는 밀리오레가 나한테 올라오는 상납 체계를 허물고 자신이 두목 자리를 꿰찰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내린 살해 명령으로 샷건에 맞아 생사를 오간 적 외에는[128] 사망하기 직전까지 패밀리의 원로로서 존경받는 아주 부유한 마피아로 남았다. 갬비노 패밀리의 리카르도 세팔루는 1965년에 시칠리아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이민자로, 조직 내에서 마약 사업을 맡았다. 그는 1980년에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이란과 같은 중동 국가에서 재배된 양귀비 수액에서 추출한 모르핀을 이용해 가공한 9천만 달러 상당의 마약을 프랑스와 스위스를 경유하여 모국인 이탈리아를 거쳐 미국으로 밀수한 혐의로 기소되었고 이 사건은 '시실리안 커넥션'이란 이름이 붙었다. 최종 책임자로 지목된 그는 재판에서 승소했는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가 한평생 마피아로 살면서 겪은 형사재판은 이 1건밖에 없다. 리카르도 세팔루는 2011년에 갬비노 패밀리의 실권을 잡은 도메니코 세팔루 (사진)의 삼촌이다. 리카르도 세팔루는 자신의 조카가 조직을 장악하는 와중에도 본인은 전면에 나서는 일이 결코 없었고, 결국 사망할 때까지 성공적인 범죄 경력을 이어갔다. 이상 소개된 2명 외에도 이들 못지않게 수사기관과 언론의 감시망을 피한 채 조직으로부터 존경받으며 암약하는 마피아들이 여럿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 1982년 갬비노 패밀리는 FBI 도청기가 설치된 장소를 눈치채고 그 장소에 더는 모이지 않았다. 그곳이 도청되고 있다는 사실을 제노비스 패밀리의 페데리코 지오바넬리가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1985년에는 지오바넬리와 브루클린 민주당 지도자 미드 에스포지토가 대화하는 장면이 수사기관에 의해 포착되었다. 이 사건은 연방하원의원 마리오 비아지가 연루된 부패 스캔들로 이어졌고 2명의 정치인은 유죄판결을 받는다. 이듬해 지오바넬리를 미행하던 NYPD 형사 앤서니 벤디티가 총에 맞아 살해되었고 그의 파트너도 중상을 입는다. 지오바넬리는 살인사건으로 기소되지만 무죄판결을 받는다. 이후 지오바넬리는 3차례에 걸쳐 도박업과 고리대금업, 가석방 위반으로 수감되고 2004년 5월에는 1999년에 뉴저지 데카발칸테 패밀리를 향한 기소가 있을 것이란 기밀 정보를 알려준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는다. 기소 직후, 뉴욕 FBI의 총책임자는 어느 여성 속기사 공무원이 지오바넬리의 정보원이라고 밝혔지만, 담당 검사가 공판정에서 “속기사가 정보원이라는 정황증거는 있지만 구체적인 정보는 없다.”라고 밝힘으로써 현재까지도 그가 어떤 경로를 통해 연방 정보를 빼내왔는지는 규명되지 않았다. 정보원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지오바넬리의 사법방해 혐의는 인정되었고 10년형 선고를 받는다. 그는 약 7년간 복역하고 2011년에 출소한 뒤 2018년에 사망했다.
- 마피아 두목(Boss)의 대리인으로 패밀리를 이끄는 인물을 두목 대행(Acting Boss)이라고 부른다. 수감된 아버지를 대신해 갬비노 패밀리의 실질적 수괴가 된 존 고티 주니어 (사진)는 아버지와 달리 담판이나 이권싸움에 능하지 못했고 경험도 적었다. 그가 재직하던 시기의 갬비노 패밀리는 다른 조직과의 이권 담판에서 깨지기 일쑤였고 제노비스 패밀리는 아예 고티 주니어와 상대하는 것조차 거부했다.[129] 후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부하들이 이러한 고티 주니어를 제거하는 쿠데타를 계획하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2010년대에 수감 중인 두목을 대신해 보나노 패밀리의 두목 대행을 맡고있던 토마스 디피오레도 조직원들의 원성이 자자했다. FBI 도청에 잡힌 보나노 패밀리 행동대장(Caporegime)이 자신의 부하에게 한 말 중에 “이제 우리는 쓰레기 같은 새 지도자를 가졌다. 그 개자식은 조셉 마시노 (사진)가 성자로 보일 정도야.”라는 부분이 있다. 조셉 마시노는 사형선고에 직면하자 2004년에 뉴욕 마피아 두목 중 최초로 배신자가 된 인물로, 마피아를 이 사람에 비유하는 건 가장 높은 수준의 모욕이다. 디피오레는 2014년에 체포되어 1년여의 짧은 수감을 마치고 거리로 돌아오는데 그 사이 패밀리의 두목 대행 직책은 다른 사람으로 낙점된 뒤였다.
- 스코어스(Scores)라는 뉴욕의 스트립 클럽은 천박한 이미지의 기존 스트립 클럽과 달리 상류층과 유명 인사들을 위한 최고급 유흥업소를 표방한다. 이 클럽의 사장이었던 마이클 블러트릭(Michael Blutrich)은 1994년에 국가유산보험공사를 붕괴시킨 4억 달러 사기 사건의 배후로 지목되어 25년형을 선고받자 형량을 축소하기 위해 FBI의 마피아 수사를 돕는다. 그는 출소 이후 인터뷰를 통해 13년을 교도소에서 혼자 살았는데 아무도 모르는 외딴곳에 가면 너무 슬플 것 같다는 이유로 증인보호 프로그램에 들어가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한 탓에 그는 여전히 뉴욕에 살고 있는데, 혹시 있을지 모를 마피아의 보복이 두렵지만 두려움에 잠식되지 않고 최대한 긍정적으로 살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위장 정보원 시절, 본의 아니게 할리우드 배우들 덕에 목숨을 건진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하루는 클럽에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토비 맥과이어, 마술사 데이비드 블레인이 왔다. 블러트릭은 그들을 2층으로 안내했는데 그들이 블러트릭에게 같이 식사하기를 청했다. 블러트릭은 그날 콜롬보 패밀리의 두목 대행(Acting Boss) 알폰스 페르시코를 만나 브루클린으로 유흥업소 사업을 확장하는 논의를 하기로 한 날이라 몸에 도청기를 차고 있었다. 유명 배우들의 저속한 술자리 대화를 녹음하고 싶지 않았던 그는 대기하고 있던 FBI 밴으로 가 도청기를 벗었다. 10분 뒤 페르시코 일행이 도착했고, 블러트릭은 그날 마피아들에게 알몸 수색을 받았다. 그가 도청기를 벗지 않았다면 수사가 망하는 건 둘째치고 당장 본인이 그대로 납치되어 살해되었을 일이다. 또 한 번은 어느 루케시 패밀리 행동대장(Caporegime)이 도청기 유무를 검사한다고 자신의 온몸에 물을 끼얹은 적도 있다고 한다. 이런 우여곡절들 끝에 블러트릭은 무사히 정보원 생활을 마쳤고 갬비노 패밀리 두목 대행 존 고티 주니어 (사진)가 포함된 여러 마피아 재판에 쓰일 증거들을 수집했다. 현재 스트립 클럽 스코어스는 프랜차이즈화 되어 뉴욕을 포함한 미국의 주요 도시에서 여전히 성업 중이다. 블러트릭은 정보원 생활이 끝나는 1999년 이후로는 스코어스와 관계를 맺고 있지 않다.
- 1명의 경찰관이 포함된 5건의 살인으로 1988년에 종신형을 선고받은 리처드 쿠클린스키(Richard Kuklinski)는 '아이스맨'이란 별명으로 유명하다.[130] 폴란드 혈통의 쿠클린스키는 포르노 사업을 했고 강도를 전문으로 하는 갱단의 두목(Boss)이었다. 그는 갬비노 패밀리 소속의 로이 디메오와 가까웠다고 주장했다. 한 번은 고리대금 이자를 제때 갚지 못한 그를 디메오가 권총으로 폭행했고, 그로 인해 이마에 상처가 생겼다고 한다. 쿠클린스키는 판결이 확정된 5명 외에도 100~250명의 사람을 더 살해했으며, 자신은 뉴욕 5대 패밀리와 뉴저지 주 데카발칸테 패밀리 수하에서 계약 암살자로 활동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갬비노 패밀리 부두목(Underboss) 살바토레 그라바노가 행동대원(Soldier)이었던 시절 그라바노의 지시를 받아 사람을 죽였다고 밝혔다. 그가 자신이 직접 살해했다고 밝힌 사람들은 단순히 운전 시비가 붙은 운전자나 길거리 히치하이커에서부터 자신의 상관이었던 갬비노 패밀리의 로이 디메오, 전미트럭노조 위원장 지미 호파, 보나노 패밀리 두목 대행(Acting Boss) 카마인 갈란테 (사진), 갬비노 패밀리 두목 폴 카스텔라노가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쿠클린스키의 주장은 마피아 전문가들과 관련자들에 의해 '터무니없는 헛소리'로 치부되고 있으며, 그를 인터뷰한 전기 작가가 "당신은 에이브러햄 링컨도 본인이 쐈다고 말할 거 같은데요?"라고 얘기하자 쿠클린스키가 긍정한 것도 유명한 일화다. 어찌 되었든 유명해지기 위한 그의 의도는 성공했고 그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3편, 전기가 2권, 영화와 연극이 1편씩 제작되었다. 쿠클린스키의 아내는 남편이 무슨 일을 해서 돈을 벌어오는지 몰랐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저 성공한 사업가인 줄로만 알고 있던 배우자가 체포되어 기소되었을 때 비로소 정체를 알았고, 1993년에 경제적인 어려움을 이유로 수감 중인 남편과 이혼했다. 그녀는 그 후에도 1년에 1번은 남편을 방문했다. 복역중이던 쿠클린스키는 2006년에 이송된 민간병원에서 사망했다.
- 2008년, 베벌리힐스에 거주하는 이탈리아 혈통의 오리 스파도(Ori Spado)라는 인물이 뉴욕 콜롬보 패밀리와 관련된 공갈 혐의로 기소되어 약 5년간 복역했다. 출소한 그는 자서전을 내는 등 외부 활동을 이어갔는데, 유튜브에 인터뷰 영상이 있다. 스파도는 프랭크 코스텔로, 마이어 랜스키 (사진), 러셀 버팔리노 (사진), 카를로스 마셀로, 존 고티를 만나본 적 있고 2020년에 사망한 콜롬보 패밀리 부두목(Underboss) 존 프란지스 (사진)의 40년 동업자라고 밝혔다. 그는 LA에서 4~5명의 측근으로 구성된 독자적인 조직을 거느렸는데 자신이 마피아의 정규조직원(Made member)은 아니었지만 그들과 사업 상 아주 가까운 관계를 맺었다고 밝혔다. 특히 의뢰를 받아 나오미 캠벨의 스토커를 물리치고, 슈그 나이츠의 돈을 대신 받아준 일화를 언급하며 자신이 할리우드 연예계의 대부이자 일종의 해결사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소니 프란지스의 아들이자 전 콜롬보 패밀리 행동대장(Caporegime) 마이클 프란지스는 스파도를 밀고자, 사기꾼으로 묘사하며 자신은 그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에 스파도는 프란지스를 향해 자신이 밀고자가 아닌 사실이 재판 기록에 다 나와있으며 마이클이 마피아 생활을 중도에 그만둔 사실을 비판하며 그가 아버지 소니 프란지스를 향한 열등감으로 가득 차 있다고 맞섰다. 마이클은 또 다른 인터뷰에서 "암흑가 사람들은 모두 존 고티와의 친분을 과시하며 자신의 가치를 드높힌다. 스파도가 자신의 아버지를 언급하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라고 말하며 스파도는 전혀 마피아 세계에서 입지 있는 인물이 아니라고 밝혔다. 즉, 더는 언급할 가치가 없다는 것.
- 전 콜롬보 패밀리 행동대장(Caporegime) 마이클 프란지스는 20대 초반에 겪은 동네 불량배와의 다소 황당한 일화를 소개했다. 당시 그는 패밀리의 부두목(Underboss)이었던 아버지 존 ‘소니’ 프란지스 (사진)의 뒤를 따라 암흑가에 갓 투신한 상태였다. 어느 날 마이클은 아버지가 지분을 가진 나이트클럽에 일행들과 함께 앉아있었다. 잠시 후 나이트클럽 사장이 마이클에게 ‘저기 바에서 여자들에게 해코지를 하는 불량배가 있는데 처리를 해줄 수 있는지’ 물었다. 마이클은 그 즉시 불량배에게 다가가 그만둘 것을 요구했는데, 불량배는 “내가 누군지 알아?”라고 허세를 부렸다. 마이클이 “당신이 누군지 모르니 가르쳐달라.”라고 대답하자 불량배는 “소니 프란지스를 아나?”라고 얘기했다. 마이클이 “잘 알고 있다.”라고 대답하자 기세등등한 불량배는 “내 전화 한 통이면 수감 중인 소니 씨의 아들 마이클이 이리로 달려올 거야.”라고 협박했다. 이윽고 마이클이 신분을 밝혔고 자신이 윽박지른 상대가 그 소니 프란지스의 아들 마이클 프란지스임을 확인한 불량배는 새파랗게 질린 뒤 석고대죄하고 사라졌다.
- 2023년 2월, 1990년대 폭탄테러로 종신형을 선고 받고 복역 중인 시칠리아 마피아 쥐세페 그라비아노가 옥중에서 소설 고모라의 작가 로베르토 사비아노를 고소했다. 이유는 자신의 별명을 잘못 설명했다며, 책의 회수를 요구했다. 검찰은 쥐세페의 요구를 거부했지만 판단은 법원에 달려있다고 한다. 한편 로베르토 사비아노는 이런 행동은 마피아의 위협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반발했다. #
[1]
대다수의 다른 범죄조직의 경우 비록 자신이 암흑가에서 성공했어도 자식 세대는 자신이 몸 담았던 세계와 멀리하기를 바란다. 이 점이 이탈리아계 마피아와 다른 범죄조직의 차이점이다.
[2]
대부에서 비토가 아들인 마이클에게 조직을 물려주고 마이클은 조카인 빈센트에게 물려주듯, 현실에서 갬비노 패밀리의 예시를 봤을 때, 최근까지 패밀리의 부두목(Underboss)을 맡은 '
프랭크 칼리'의 집안 내력을 살펴보면, 그는 2017년에 사망한 조직의 원로 '존 갬비노
(사진)'의 조카사위였는데, 존 갬비노는 조직의 이름을 명명한 전설적인 두목(Boss)
카를로 감비노와 사촌 지간이다. 결국 21세기의 갬비노 패밀리 부두목도 카를로 갬비노와 연관되어 있었다. 카를로 갬비노 또한 후계자로 부두목이었던 '아니엘로 델라크로체
(사진)'가 아닌 자신의 처남
폴 카스텔라노에게 조직을 맡기기도 했다. 물론 이탈리아 마피아 조직에서 반드시 혈연관계가 있어야만 출세한다는 건 아니고 아닌 예시도 상당히 많다. 그저 혈연이 출세에 유리하다는 말.
[3]
악명높은 신세대 마피아를 대표하는 사례로 1973년생인 갬비노 패밀리 추종세력(Associate) 존 미칼리(John Micali)가 등에 새긴
문신을 보면 정장을 입은 남자가 손발이 묶여있는 남자의 머리에 총구를 대고 처형하는 모습을 새겨놓았는데, 그림 주위에 시칠리아어로 '모든 경찰관의 머리에 총알을 박아 죽여라.(kill all cops with a bullet in their head.)'라고 새겨놓았다. 19세기 말~20세기 초 이탈리아 이민 1세대 마피아 단원들과 비교해서도 잔인성과 배타성이 크게 다를 바 없는 모습이다. 또 필라델피아 마피아 두목(Boss)
조셉 멀리노의 뉴욕 재판 당시 그를 수행해 눈길을 끌었던 1993년생의 젊은 갬비노 패밀리 추종세력 피터 투치오(Peter Tuccio)는 막강한 루케시 패밀리 행동대장(Caporegime) 조셉 데세나(Joseph DeSena)의 조카로, 역시 마피아 집안 내력을 가졌고 본인도 암흑가의 길을 걷고 있다.
[4]
소프라노스에서 토니 소프라노가 내부 권력투쟁 중인 다른 패밀리에 집단지도체제를 권유하며 로마의 삼두정치를 언급하는 장면이 있다. 일본
야쿠자의 경우 두목이 수감되거나 하면 부두목(와카가시라) 정도 되는 인물이 두목 대행을 맡거나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서열을 따져서 대개는 거의 1명의 지도자를 세운다. 마피아는 그런 면에서 야쿠자에 비해 유연한 편.
[5]
다만 마피아는 일반적으로 공무원이나 군인들을 법을 준수하고 박봉을 받아가며 생활하는, 권력자들에게 이용당하는 바보라고 생각한다.
[6]
이들이 생각하는 지옥행 대상이란 이교도, 소아 대상 성범죄자, 명분 없는 살인자(예컨대 단순 강도 살인), 불특정다수를 상대로 한 테러리스트 등이다.
[7]
대표적으로 영화
대부에도 두 차례 나온
뉴욕시 리틀 이탈리아에서 매년 개최하는
산 제나로 축제(Feast of San Gennaro)가 있다. 좋게 말하면 축제를 도와주고 나쁘게 말하면 이권에 개입하는 것.
[8]
알버트 갈로는 항쟁 과정에서 살해된 조셉 갈로의 동생이다.
[9]
한국뿐 아니라 영문 웹사이트에서도 관련 서술이 심심찮게 보인다.
[10]
링컨 타운 카 오너였던
폴 카스텔라노와,
빈센트 지간테가 대표적인 예. 아이러니하게도 폴 카스텔라노는 맨하탄 스파크 스테이크 하우스 바로 앞에서 자신의 애마에서 내인 직후 피살당하는 운명을 맞았다.
[11]
연식이 있는 중고차의 경우, 신차와 달리 실제 차주와 구매자를 다르게 차명으로 구매하기 쉬운데다, 자동차 가격이 한 두푼이 아니기에 가급적이면 가격이 싼 중고차를 선호했으며, 여차하면 중고차를 산 뒤, 시신을 실어 유기하는 일이 자주 있었다. 대표적인 사건으로는 1980년
빈센트 지간테의 개입으로 자신들의 보스였던 필라델피아 패밀리의 "안젤로 브루노"를 패밀리의 허가 없이 살해한 대가로 상담역(Consigliere)인 "안토니오 카포니그로"와 행동대장(Caporegime) "프랭크 신돈"이 살해된 사건과, 1983년 '켄 에토'의 암살 실패에 대한 대가로 시카고 아웃핏에 의하여 벌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일명 '볼보 트렁크 사건'이 있다.
[12]
두목 대행(Acting Boss) 같은 두목급 간부 및 부두목(Underboss) 제외.
[13]
해당 음성 파일은 ny_lrg_04.awc
[14]
1986년에 드 브리스는 자연사했다.
[15]
사실 포르노 영화냐 아니냐를 떠나서 2020년 기준 역대 최고의 흥행 영화인
아바타의 총수익이 28억 1077만 달러다. 즉, 제작비와 물가 상승률을 고려하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제치고 역사상 가장 높은 순이익을 낸 영화는 목구멍 깊숙이가 된다. 아예 2005년 다큐멘터리 '인사이드 딥 스로트'의 도입부에는 '제작비 2만 5천 달러로 6억 달러 이상을 벌어들인 역사상 가장 큰 수익을 올린 영화 이야기'라는 자막이 나온다. 다만 FBI에서는 목구멍 깊숙이의 총수익을 보수적으로 추정해 1억 달러(2020년 기준 6억 1000만 달러) 정도로 예상했다. 이에 영화 평론가
로저 이버트는 당시 마피아 측에서 자신들의 범죄수익을 은폐하는
돈세탁을 목적으로 목구멍 깊숙이를 필두로 한 여러 포르노 영화들의 박스오피스 수익을 부풀렸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16]
어디까지나 입증된 근거가 없는 음모론이다. 다만
하버드 대학교의 데이비드 카이저 교수 같은 사학자가 케네디 암살을 자체적으로 조사한 끝에 마피아 배후설을 주장한 책을 쓰기도 했다.
[17]
마피아 수사를 주도한 윌리엄 아론왈드 연방검사의 아버지
[18]
보통 우두머리 수컷(alpha male)으로 묘사되는 트럼프의 성격을 고려해보면, 마피아 같은 조직폭력배들과 함께 사석에서 자리를 가질 경우 상당히 불편해했을 것으로 추정되며 용의주도한 그의 성격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도 훗날 트집 잡힐 마피아와의 위험한 관계를 적극적으로 가지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19]
이들은 마피아의 지시를 받고 직접 대상을 살해하기도 했다.
[20]
은퇴 이후 에폴리토는 영화
좋은 친구들에 마피아 '뚱뚱한 앤디' 역으로 출연하기도 했고 1992년에는 책을 한 권 썼는데 제목이 '마피아 경찰:가족이 마피아인 한 정직한 경찰의 이야기'이다.
[21]
물론 마피아 소속이 아닌 군소 갱단이나 단독 잡범죄자들에 대한 정보.
[22]
에폴리토의 삼촌과 사촌이 갬비노 패밀리 조직생활 도중 처형당했다.(위의 앤서니 가지 설명에 나오는 그 인물이다.) 그러한 이유 때문인지 이들은 루케시 패밀리의 지시를 받아 갬비노 측을 살해하는 일을 맡기도 했다.
[23]
확정된 혐의만 갈취, 노조 공갈, 마약, 도박업, 사법 방해, 살인, 살인 공모죄가 있다.
[24]
http://www.radiokorea.com/news/article.php?uid=165217
[25]
제임스 나폴리에 관한 자세한 사항은
빈센트 지간테 문서의 여담 문단 참고.
[26]
특히 루치아노 패밀리(현 제노비스 패밀리) 부두목(Underboss) 윌리 모레티가 시나트라에게 첫 데뷔 무대를 제공하고 본인의 클럽에서 노래를 부르게 해주면서 연예계에 발을 들였다. 현대 호사가들은 모레티가 아니었다면 전과자에다 당시에 많은 차별을 받은 이탈리아계 후손인 시나트라는
할리우드에 입성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한다. 모레티는 시나트라의 대부였다. 후에 인기가 상승한 시나트라가 밴드 리더 토미 도시와의 전속 계약을 깨고 밴드를 떠나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자, 이 소식을 들은 모레티가 밴드 리더를 찾아가 입에 총구를 박아 넣고 1달러만 받고 계약서를 양도하는데 서명하게 했다.(대부에 나오는 이야기의 모티브가 되는 실화다.) 시나트라는 그 밖에도 쿠바에서 열린 마피아 위원회 행사장에서 노래를 부르고
러키 루치아노에게 금제 라이터를 선물하고 시카고 마피아 두목(Boss) 샘 지앙카나
(사진)에게 우정의 사파이어 반지를 선물하고 갬비노 패밀리 두목
카를로 감비노•
폴 카스텔라노와 함께 사진을 찍고 갬비노 패밀리 두목
존 고티에게 협박을 당하는 등 당대 마피아들과의 관계로 유명하다.
[27]
시카고 마피아 두목 샘 지앙카나의 연인.
[28]
1999년에 드 니로가 마피아 두목을 연기한 영화
애널라이즈 디스 촬영에 앞서 갬비노 패밀리 고위 간부 앤서니 루지아노(Anthony Ruggiano)에게 연기 자문을 구했다.
[29]
보나노 패밀리와 관계가 있다고 추정. 특히 베넷은 1970년대에 시카고 마피아 조직원 앤서니 스필로트로
(사진)의 여자친구와 노닥거리다가 전화번호부로 호되게 두드려 맞았다고 알려져 있다.
[30]
영화 대부에서
산티노 콜레오네를 연기한 제임스 칸은 콜롬보 패밀리와 관계가 깊다.
제임스 칸 아들의 대부가(
가톨릭 대부-대자) 바로 콜롬보 패밀리 두목 대행(Acting Boss) 앤드루 루소
(사진)다. 2011년에는 칸이 앤드루 루소의 보석금을 대신 지불하고 탄원서를 제출한 사례가 있다.
[31]
영화 대부에서
카를로 리치를 연기한 지아니 루소는 특히 갬비노 패밀리와 관계가 있다. 루소는 2019년 갬비노 패밀리 부두목(Underboss)
프랭크 칼리 암살 직후 이뤄진 인터뷰에서 "칼리와 가깝지는 않았지만 몇 차례 직접 만난 적 있고 '좋은 젊은이'(Good Kid)였다."라고 얘기하는 인터뷰 영상이 있다.75세의 루소에게 53세는 젊은이다
[32]
갬비노 패밀리 두목
존 고티와 고티의 아들이자 한때의 후계자였던 존 고티 주니어
(사진)와 친분이 있다. 루크는 직접 존 고티의 재판을 방청하기도 했다.
[33]
2차례 아카데미 남우 조연상 수상자. 여러 영화에 마피아 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존 고티의 재판을 방청하기도 했으며 고티를 배신한 살바토레 그라바노
(사진)를 신랄히 비판하기도 했다.
[34]
헐리의 전 남편인 부동산 재벌 겸 영화제작자 스티브 빙은 콜롬보 패밀리의 부두목 대행(Acting Underboss)을 맡기도 했던 도미니크 몬테마라노(Dominic Montemarano)의 동업자로 일하던 사람이다. 헐리 본인이 몬테마라노와 함께 찍힌 사진도 존재한다.
[35]
2000년 갬비노 패밀리 행동대장(Caporegime) 앤서니 시코네에게 협박을 받았다.
[36]
2018년에 갬비노 패밀리 두목
존 고티를 다룬 영화에 존 고티 역으로 출연하면서 고티의 아들이자 한때의 후계자였던 존 고티 주니어와 함께 영화 홍보 차 여러 미디어에 얼굴을 비침.
[37]
과거
맨해튼 시내에서 '이혼남들(Bachelors III)'이라는 술집을 운영하면서 갬비노•루케시 패밀리와 관계를 맺었다고 알려져 있다.
[38]
LA에서 활동한 갬비노•루케시 패밀리 수하의 마약상 귀도 페노시(Guido Penosi)를 사적으로 안다고 공개적으로 시인.
[39]
갬비노 패밀리 두목
폴 카스텔라노의 조카. 대부에서
피터 클레멘자 역을 맡았다.
[40]
갬비노 패밀리의 앤드루 캄포스
(사진)와 고등학교 동창이다. 학창 시절 같은
미식축구 팀에서 캄포스는 쿼터 백, 퍼프 대디는 수비수였다. 둘 다 돈으로 유명한데 퍼프 대디는 모든 래퍼를 통틀어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부자고 캄포스는 2000년대에 사이버 범죄를 통해 패밀리로 하여금 1조 원 상당의 수익을 올린 경력이 있다. 마피아 조직원들이 퍼프 대디의 녹음실에 들어간 적도 있다.
[41]
1997년부터 2005년까지 작성된 FBI 보고서에 따르면 제노비스 패밀리와 관계가 있다고
적혀있다. 또 비기가 결성한 그룹 이름이 주니어 마피아(Junior M.A.F.I.A.)다.
[42]
여러 갱스터 래퍼를 표방하는 가수 중에서도 독보적인 악명을 자랑하는 우탱 클랜은 음악의 길을 걷기전에는 아예
르자, 즈자, 올 더티 바스타드 등 그 외 멤버들이 뉴욕
스태튼 아일랜드 지역에서 불법 무기와 마약 거래를 담당하던 갬비노 패밀리 추종세력(Associate)이었다. Wu-Gambinos라는 노래도 있다.
[43]
필라델피아 마피아 두목
조셉 멀리노와 관계가 있다. 함께 찍은 사진이 있다.
[44]
존 고티 주니어와 사진을 찍는 등 친분을 과시했다.
[45]
영화
대부에서
쟈니 폰테인 역을 맡은 가수 겸 배우. 갬비노 패밀리의 로렌조 만니노
(사진)가
프랭크 시나트라에게
라스베이거스에서 마르티노의 일자리를 구하는 데 도움을 달라고 요청했다.
[46]
존 고티 역할을 했던 마피아 전문 배우. 제노비스 패밀리 행동대장(Caporegime) 앤서니 페데리치
(사진)와 함께 찍은 사진이 있다.
[47]
그의 아들 레니 몬타나 주니어는 1990년대에 LA 마피아의 정규조직원(Made member)이 되었다.
[48]
본래 밀고자가 되는 캐릭터였던 '폴리' 캐릭터의 스토리가 바뀐 이유가 "비록 드라마지만 밀고자 연기는 못하겠다."라는 시리코의 주장 때문이라고 한다.
[49]
대로우는
좋은 친구들에서
조 페시한테 병으로 얻어맞는 레스토랑 주인으로도 출연했다. 아마 당시에는 마피아 활동을 하지 않았을 듯.
[50]
1985년에 행동대장이 된 시코네는
뉴욕시
브루클린과
스태튼 아일랜드의 항구에서 활동하며
코스타리카에서 전개하는 불법 도박업에도 관여했다.
[51]
Never prayed to God, I prayed to Gotti, That's right it's wicked, that's life I live it/ 신 대신
존 고티에게 기도했지. 그래 미친 짓이지, 그게 내가 사는 삶. (D'Evils 中), A cut from the cloth of the Kennedy's Frank Sinatra having dinner with the Genovese/
케네디 대통령의 옷에서 잘려나온 천, 비토 제노비스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하는
프랭크 시나트라. (Pray 中), Lucky Luciano is what that call me, paisano/ 날
러키 루치아노라고 부르지, 동료라고. (FuckWithMeYouKnowIGotIt 中)
[52]
and lamp like Capone, with drug scripts sewn/ 마약은 마무리 하고,
알 카포네 처럼 지내는 꿈을 꾸지. (N.Y. State Of Mind 中)
[53]
I’m calm as a Don is supposed to be, Cosa Nostra/ 난 두목답게 차분해, 코사 노스트라 같이. (Hit 'Em Up 中)
[54]
That's why I move like the Mob, I'm watchin' movies too much/ 그래서 내가 마피아처럼 움직이는 거야, 영화를 너무 많이 봤지. (Really Be 中)
[55]
Mob ties, Genovese/ 마피아 연줄, 제노비스 패밀리. (Quintessential 中) + 릭 로스의 앨범 중 하나인 'Teflon Don'은
존 고티의 별명이기도 하다.
[56]
Crime family like the Genovese/ 제노비스 패밀리 같은 범죄자 가족. (Sandra's Rose 中)
[57]
TDE family the Genovese/ TDE 가족이 바로 제노비스 패밀리지. (03 X 中, TDE는 스쿨보이 큐의 소속사다.)
[58]
I gotta ill Gotti-Gigante connect./ 난
고티와
지간테의 나쁜 관계를 잘 알지. Wise guys that kill Bilotti, catching bodies, earnin' respect./ 빌로티를 죽인 마피아들, 시체를 보여주고, 존경을 얻지. Alex (Stolen Script) 中
[59]
한국명 고티 가족 길들이기
[60]
제니퍼 그라지아노는 할리우드의 프로그램 제작사 사장이다.
[61]
8년 복역 후 2011년에 출소한 앤서니 그라지아노는 자신의 딸들이 마피아를 소재로 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걸 보고 2년간 딸들과 대화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2003년에 보나노 패밀리의 3인자였던 앤서니는 당시 뉴욕 마피아 사상 초유로 패밀리의 두목(Boss)이
오메르타를 어기는 와중에도 자신은 끝내 오메르타를 어기지 않은 인물인데, 그런 골수 마피아의 입장에서 마피아를 소재로 한 내용 자체도 불만이겠지만 특히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여러 전•현직 마피아의 아내, 딸, 손녀들 중 과거 마피아를 배신한 전 갬비노 패밀리 부두목(Underboss) 살바토레 그라바노의 딸도 있기 때문에 본인의 딸들에게 더욱 실망했을 가능성이 크다. 2013년 르네의 인터뷰에 의하면 아버지와 조금씩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앤서니는 2019년에 사망했다.
[62]
갬비노 패밀리에 국한되는 얘기로, 다른 패밀리들은 20년간 어떠했는지 알 수 없다.
[63]
전 WBA 크루저급, IBF 라이트 헤비급 세계 챔피언. 이탈리아계 미국인이다.
[64]
전 WBC 웰터급, IBF 라이트 웰터급 세계 챔피언. 그라바노는 맥거트의 공동 매니저인 스튜어트 와이너, 알 크레토와 동업관계를 맺어 웰터급 복싱계의 지분을 공유했다고 증언함.
[65]
헤비급 세계 챔피언 도전자. 평소 복싱을 수련했던 살바토레 그라바노와 함께 같은 체육관에서 함께 운동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다. 그라바노는 스나입스의 커리어를 위해 부정한 청탁으로 랭킹을 올려주는 등 손을 써주기도 했다고 증언함.
[66]
이탈리아의 WBO 헤비급 세계 챔피언. 그라바노에 의하면 다미아니의 두 형제가 모두 이탈리아 마피아의 정규조직원(Made member)이었다고 한다. 그라바노는 그 마피아 형제들과 함께 사업 구상을 했었다고 증언함.
[67]
전 WBA•IBF 슈퍼 미들급, WBC 미들급 세계 챔피언.
[68]
말이 필요 없는 전설의 미들급 복서.
[69]
전 WBA•WBC 미들급 세계 챔피언. 뉴욕에서 자란 이탈리아계 미국인이다. 현역 시절
마빈 해글러와 무승부를 기록하기도 했으며 은퇴 이후에는 영화
대부 3편 속 마피아 두목(Boss) 조이 자자의 오른팔로 출연했다.
[70]
클리블랜드의 흑인 조직폭력배 출신으로
무하마드 알리,
마이크 타이슨,
조지 포먼,
에반더 홀리필드,
훌리오 세자르 차베스, 앤드루 골로타, 펠릭스 트리니다드,
로이 존스 주니어, 래리 홈즈,
마르코 안토니오 바레라의 프로모터. 제노비스 패밀리의 고위 관계자(High-level Associate).
[71]
레녹스 루이스,
에반더 홀리필드,
퍼넬 휘태커 등을 키워낸 트레이너로 제노비스 패밀리와 가깝다는 증언이 나왔다.
[72]
조셉 코로조는 갬비노 패밀리의 두목급 간부인 니콜라스 코로조
(사진)의 동생으로, 1992년부터 약 19년간 상담역(Consigliere)을 맡았다. 그는 2008년에 기소되어 약 8년의 복역을 마치고 2016년에 출소했다.
[73]
첫 번째 살인은 돈 킹의 도박장을 습격한 무장 강도를 사살한 정당 살인으로 인정되었지만, 두 번째 살인으로 돈 킹은 4년 5개월의 수감생활을 한 바 있다. 여담으로 타이슨은 돈 킹을 "1달러 때문에 어머니도 죽일 사람"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74]
1980년대 프로권투 세계에서의 마피아의 영향력을 파헤친 크라운 로열 수사에서 콜롬보 패밀리를 통해 돈 킹과의 접촉을 시도한 FBI 요원이 제노비스 패밀리 행동대원(Soldier)으로부터 "왜 콜롬보 측과 접촉했어? 돈 킹은 우리와 함께 있는데."라는 말을 들은 사례로 알 수 있듯 돈 킹은 명실상부 제노비스 패밀리 쪽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75]
2019년 기준 프랭크 퍼티타 3세의 순자산은 19억 달러(약 2조 2,810억 원)이다.
[76]
갤버스턴이란 도시가 정식 마피아 패밀리가 있을 만큼 큰 규모의 도시가 아니기 때문.
[77]
이 당시 뉴올리언스 마피아는 뉴욕이나 시카고에도 뒤지지 않는 거대 조직이었다.
[78]
UFC와 마피아, 퍼티타 형제와 마피아의 연관설은 구글 검색창에도 자동완성이 될 만큼 잘 알려진 주제인데, 해외 네티즌 중에는 단순 루머로 치부하는 사람도 존재하지만, 꽤나 관심을 가지고 퍼티타 가문의 뿌리를 찾아본 사람들은 대체로, 가문의 선조라 할 수 있는 마세오 가문에 마피아와 연줄이 닿는 범죄조직 두목이 있는 데다가 마피아가 세운 도시인 라스베이거스에서 여전히 가문 대대로 카지노 사업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금도 마피아 조직과 여러 사업상 관계를 맺고 있지 않겠느냐는 막연한 추측을 하거나, 라스베이거스의 조리사 노조(Culinary Workers Union)와 UFC의 관계 등을 거론하며(현대 마피아의 핵심사업은 노조 장악이다.) 나름대로 근거를 가지고 추론하는 사람도 있는 등 다양하다.
[79]
아일랜드와 이탈리아 혈통으로 구성된 윈터 힐 갱단은 지역 내 라 코사 노스트라 마피아 조직인 페트리아카 패밀리와 대립하다 사라진 거대 범죄조직이다.
[80]
테디 아틀라스는 1956년생으로 그라바노보다 11살 어리다.
[81]
프란지스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82]
프란지스는 그렇다고 대답하며 구치소에 함께 수감되었을 때 고티와 항상 카드게임을 했다고 말했다.
[83]
프란지스는 그렇다고 대답한 뒤, 자신은 고티와 그다지 가깝지 않았음에도 고티 최악의 날이 그라바노 최고의 날보다 더 낫다고 얘기하며 그라바노를 비판했다. 타이슨은 최근에 그라바노가 출소했다는 소식을 접하자 놀란 반응을 보였다.
[84]
타이슨은 특히 디메오에 큰 관심을 가졌다. 갬비노 패밀리 소속 디메오는 두목(Boss)은 아니었지만 마피아들 사이에서 가장 폭력적인 인물로 꼽힌 전설적인 암살자였다. 프란지스는 디메오와 친분이 있었다고 대답했고, 그와 비슷한 사람이 콜롬보 패밀리에도 있었는데 바로 그레고리 스카르파이며 그의 머리 주위에는 항상 죽음의 기운이 가득하다고 말했다. 타이슨은 어떤 느낌인지 알겠다고 대답.
[85]
아마 타이슨은 프란지스가 브루클린 출신인 줄 모르고 얘기한 듯.
[86]
여담으로 당대 제노비스 패밀리 두목
빈센트 지간테는
맨해튼 출신, 갬비노 패밀리 두목
존 고티는 태어난 곳은
브롱스지만, 실질적으로는
퀸즈 쪽으로 평가받는다.
[87]
이렇게 되면 법적으로 가지는 경찰관에게 총을 맞은 게 아닌 게 된다.
[88]
일행은 프랭크 콜레타(Frank Colletta)란 인물.
[89]
그녀는 막내아들 루이스 지간테(Louis Gigante)와 함께였는데 루이스는 마피아인 형들과 달리
가톨릭
신부다.
[90]
한낱 길거리 강도가 하필이면 미국에서 가장 악명 높은 마피아 두목의 모친 지갑을 훔친 것도 모자라 몇 구역도 못가 경찰에 붙잡혔으니 그럴만하다.
[91]
아지트에 들어가는 마피아 조직원들은 비무장 상태로 들어가야 한다는 규칙 탓.
[92]
2020년 1월 출소. 살인 혐의가 인정되었다면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을 예정이었다.
[93]
1993년부터 이어진 루다이 조직은 2000년대 중반에 두목과 대부분의 구성원들이 체포되어 기소되면서 조직 계보가 끊긴 것으로 추정된다.
[94]
FBI에서는 입증하지 못했을 뿐 스카르파가 총 살해한 사람의 수를 100~120명 사이로 추산하고 있다.
[95]
데베키오와 스카르파의 관계는 대중들에 알려진 사례 중에는 유일한 라 코사 노스트라 마피아와 FBI 요원의 우정이다.
[96]
스카르파 주니어는 함께 수감돼 있던 유세프에게 접근해 "사실 마피아도 알 카에다와 생각이 같다."라고 거짓말을 치며 정보를 빼냈다고 한다.
[97]
보통 40년 형을 받은 경우 20~30년 넘게 복역하면 가석방된다.
[98]
카리니 형제가 왜 아버지와 아들을 구분하지 못했는지에 대해서 의문점이 많다. 즉, 원래 살해 대상이 조지 아론왈드 판사였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조지 아론왈드는 마피아와 전혀 상관없는 불법 주차 관련 재판 업무를 수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살해 동기가 모자라다. 애초에 윌리엄 아론왈드의 아버지를 살해해 그에게 심리적 고통을 주려는 의도였다면 살해 동기가 충족되긴 하지만, 그렇게 되면 임무를 깔끔하게 수행한 카리니 형제들이 살해된 이유가 불명확하기에 오인 사격이 제일 합리적인 추측이다. 카카스는 재판 과정에서 상부로부터의 지시를 자신이 어딘가로 전달했다는 사실까지만 인정하고 입을 닫았기 때문에 이런 의문점이 남았다. 당시 방청석에서 재판을 지켜보던 윌리엄 아론왈드는 모르쇠로 일관하는 카카스의 모습을 보고 분통을 터트리기도 했다.
[99]
푸스코는 진행된 재판에서 25년 형을 선고받았다.
[100]
영화
좋은 친구들에서 다룬 그 사건이다.
[101]
물론 정규조직원이 아닌 추종세력(Associate) 신분의 조직원들까지 포함하면 결과가 달라진다.
[102]
시카고 아웃핏의 분가조직으로 라스베가스 카지노의 자금을 시카고 본가에 보내는 역할을 맡았다. 또한 각종 도둑질과 보석 사업도 했다. 영화에서는 조 페시가 앤서니 스필로트로의 역을 맡았다.
[103]
관련된 게시물 댓글에서는 패밀리의 메이드가이는 아니고 콘실리에리 해리 리코벤의 크루 멤버(어소시에이트)라고 주장한다. 이 주장이 사실인지는 알 수 없다.
[104]
볼레로의 사업 파트너였던 갬비노 행동대원 조셉 스피나토 역시 단 1년 만에 석방되었다.
[105]
코로조가 도주한 이유를 추측하면 공갈•갈취•살인 미수 등의 혐의를 받던 다른 조직원들과 달리 자신은 기업 부패죄와 더불어 2건의 살인 혐의를 받고 있어서 장기 징역형이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106]
도피 기간 중 미국 지상파 방송에서 전국 지명수배까지 되었다.
[107]
79세의 코로조는 2019년 11월에 출소했다. 침묵의 계율을 지킨 그가 조직에 복귀하기를 원한다면 충분히 패밀리의 행동대장(Caporegime)으로 한 축을 맡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시칠리아 파벌이 이끄는 현 갬비노 패밀리 지도부가 그보다 더 높은 직책을 부여할지는 알 수 없다.
[108]
대표적으로
좋은 친구들,
레이징 불,
아이리시맨
[109]
실존 인물 발레롱가는 후에 코파카바나의 총 지배인까지 올라간다.
[110]
미국의 사법체계는 연방정부 체계와 주 정부 체계가 구분되어 있다. 미국 내 90%의 형사재판은 주 정부 차원에서 진행되지만, 이탈리아계 마피아 패밀리 같은 대형범죄조직에 소속된 구성원은 대부분
연방수사국(FBI)의 수사를 받고 연방검사에 의해 연방법으로 기소되어 연방법원에서 재판을 받아 유죄가 확정되면 연방교정시설에 수감된다. 그렇기 때문에 주 교정시설엔 마피아 조직원이 많이 없지만 연방교정시설엔 마피아 조직원이 많다. 물론 1920~1930년대
금주법 시대 땐 지방자치를 인정하는 경향이 지금보다 훨씬 강했기 때문에 마피아 사상 최고의 거물인
러키 루치아노도 주 정부의 재판을 받았다. 다만
알 카포네는 연방 탈세 혐의로 연방정부의 재판을 받았다.
[111]
존경을 받는 진짜 마피아와 달리 그런 가짜들은 뒤에서 조롱의 대상이 된다.
[112]
마피아의 영향력이 적은
캘리포니아 주 출신이라 마약왕이었음에도 교도소에 오기 전에는 마피아와 마주칠 일이 크게 없었다고 한다.
[113]
왓츠는 독일 혈통이라 마피아 정규조직원(Made member)은 아니다.
[114]
코로조는 2004년에 출소한다.
[115]
페르나는 2015년에 출소한다.
[116]
지아코모 디노르시오는 2002년에 출소한 후 2004년에 사망한다. 1980년대에 배심원을 매수해 재판에서 승소한 디노르시오를 다룬 영화 'FInd Me Guilty'라는 영화가
빈 디젤 주연으로 2006년에 제작되기도 했다. 페란티는 디노르시오를 만나볼 수 없었던 게 참 아쉽다고 밝혔다.
[117]
영상에서 ‘마피아 두목들’이라고 묘사하는 걸로 보아 그가 1985년 마피아 위원회 재판으로 수감된 두목들을 목격한 것으로 보인다.
[118]
한국의 교정시설과 다르게 미국 연방교정시설은 2000년대 중반까지 수용자들의 흡연이 가능했다. 단, 술을 마시는 건 역시 허용 범위 밖이며 명백한 특권이다.
[119]
위장 요원이 마피아 정규조직원으로 고려된 경우는 조셉 피스톤과 호아킨 가르시아가 유일한 경우.
[120]
메이도프의 장남은 아버지의 범죄로 인한 소송에 시달리는 등 생활고와 수치심에 자살했고, 둘째 아들도 암 투병을 하는 등 상황이 안 좋았다.
[121]
기사가 없어서 언제 민간병원으로 이송되었는지 알 수 없다. 100년 넘는 형을 선고받은 마피아 두목의 형 집행을 정지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교정당국이 세간의 비난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굳이 보도자료를 안 낸 것으로 보인다.
[122]
오바마는 달변가이자 유머감각으로 유명하다.
[123]
당연히 선택권은 없었다고 한다.
[124]
수감된 패밀리 두목 카마인 페르시코의 대리인으로, 당시 콜롬보 패밀리의 두목 대행(Acting Boss). 후에 상담역(Consigliere)을 맡는다. 1983년에 은퇴.
[125]
이 일화로부터 40여 년이 지난 2020년 기준 콜롬보 패밀리의 최고위 인사다.
[126]
차길진 씨가 자세히 밝히지 않았기에 뉴욕의 다섯 마피아 패밀리 중 어느 조직의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그가 행동대장(Caporegime)을 두목으로 착각했을 가능성도 있다.
[127]
취재 과정에서 뉴욕시를 여기저기 수소문하던 중 마피아 측에서 먼저 연락이 왔기 때문에 기자도 그 마피아의 인적 사항을 몰랐을 가능성이 높다.
[128]
밀리오레는 사건 직후 두목과 오해를 풀고 계속 마피아로 활동했다.
[129]
출처: 셀윈 랍의 서적 5대 패밀리 458 페이지.
[130]
유죄판결이 확정된 경찰관 살해는 마피아의 요청을 받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