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쿠스 푸리우스 카밀루스 라틴어: Marcus Furius Camillu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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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년도 | 기원전 26년 ~ 18년 이후 |
출생지 | 로마 공화국 로마 |
사망지 | 로마 제국 로마 |
지위 | 파트리키 |
국가 | 로마 제국 |
가족 |
푸블리우스 푸리우스 카밀루스(아버지) 리비아 스크리보니아(아내) 마르쿠스 푸리우스 카밀루스(아들) 루키우스 아룬티우스 카밀루스 스크리보니아누스(아들) 리비아 메둘리나 카밀라(딸) |
직업 | 로마 제국 집정관 |
로마 제국 집정관 | |
임기 | 8년 |
전임 |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크레티쿠스 실라누스 루킬리우스 롱구스 |
동기 | 섹스투스 노니우스 퀸크틸리아누스 |
후임 |
루키우스 아프로니우스 아울루스 비비우스 하비투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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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제국 집정관.2. 생애
로마 공화국 초기 위기에 빠진 로마를 구원하여 '제2의 건국자'라는 영광스런 별명이 붙은 명장 마르쿠스 푸리우스 카밀루스의 후손이다. 그러나 푸리우스 가문은 이후엔 이렇다할 뛰어난 인물이 등장하지 않아서 서기 1세기경에는 위상이 쇠락했다. 아버지 역시 프라이노멘이 '푸블리우스'라는 것 외에는 행적이 전혀 전해지지 않는다.서기 8년 섹스투스 노니우스 퀸크틸리아누스와 함께 집정관에 선임되었다. 이는 300년만에 처음으로 푸리우스 카밀루스 가문 출신 집정관이 나온 것으로,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옛 파트리키 가문을 후원한 정책의 도움을 받은 것으로 여겨진다. 17년 아프리카 총독으로 부임했고, 전임 총독이 치르던 누미디아 반군 타크파리나스와의 전쟁을 물려받았다. 타키투스에 따르면, 타크파리나스는 사하라 사막 북쪽 변두리를 떠라 아프리카 남부 지역인 프로콘술라리스에 거주하는 부족인 무술라미 족을 지휘했으며, 자기 부하들을 로마군 방식으로 훈련했다고 한다. 카밀루스는 수적으로 열세한 1개 군단으로 타크파리나스와 교전해, 반란군을 크게 격파했다. 타크파리나스는 목숨을 건진 채 도주했고, 24년 최종적으로 사살될 때까지 저항을 이어갔다.
18년, 카밀루스는 리쿠이수 아프로니우스로 교체된 뒤 로마로 귀환해 티베리우스로부터 개선 훈장을 받았다. 타키투스는 이에 대해 "푸리우스 가문 출신자가 수 세기만에 처음으로 군사적 명예를 얻었다."라고 논평했다. 이후의 행적은 전해지지 않는다.
카밀루스의 아내는 기록상에 전해지지 않으나, 자식들의 이름을 볼 때 리비아 스크리보니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아내와의 사이에서 두 아들과 딸 하나를 낳았다. 장남은 아버지와 같은 이름이라고 전해지나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다. 둘째 아들 루키우스 아룬티우스 카밀루스 스크리보니아누스는 어렸을 때 루키우스 아룬티우스에게 입양되었고, 32년 집정관을 역임했다. 그러나 클라우디우스 1세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켰다가 진압된 뒤 자살했다. 딸 리비아 메둘리나 카밀라는 클라우디우스 1세와 약혼했지만 9년 또는 10년에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