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쟁 The Great War |
||
날짜 | ||
4시대 171년 ~ 4시대 175년 | ||
장소 | ||
해머펠 남부, 시로딜 중남부와 임페리얼 시티 | ||
교전국 |
제4제국 * 제국군 * 스카이림 * 하이 락 해머펠 * 크라운 * 포어베어 |
알드머 자치령 * 앨리노어 * 발렌우드 |
지원국 |
엘스웨어 * 아네퀴나 * 펠리틴 |
|
지휘관 |
티투스 메데 2세 잊혀진 영웅 데키아누스 장군 조나 장군 |
군주
나리핀 레이디 아나렐야 |
결과 | ||
제국과 알드머 자치령 간의 휴전, 화이트 골드 협정의 체결, 제국 내 탈로스 신앙의 금지, 해머펠의 독립 |
1. 개요
The Great War제4제국과 탈모어( 알드머 자치령) 간의 전쟁. 탐리엘 역사상 최대 규모의 전쟁이다.
2. 타임라인
-
개전
세월이 흘러 4시대 171년 10월(Frostfall) 30일,[1] 탈모어의 사절단이 선물 수레 하나를 끌고 황제 티투스 메데 2세를 찾아온다.
그들은 막대한 공물의 납부, 탈모어의 완전한 자치 인정, 블레이드 해체, 탈로스 숭배 금지, 해머펠 남부를 탈모어에게 양도 등 터무니 없는 것들을 요구했다. 하나하나 따져보자면 제국을 외교적(자치 인정), 물리적(블레이드 해체), 정신적(탈로스 금지), 군사적(해머펠 양도), 경제적(막대한 공물 납부)으로 말려죽이는 내용들이었다. 티투스 메데 2세는 당연히 거절했고, 이에 사절단은 선물 수레를 뒤집어 그 안에 담겨있던 블레이드 요원의 머리통 100개를 쏟아낸다. 애초에 탈모어는 전쟁의 준비까지 이미 다 끝내놓고, 선전포고 삼아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를 한 것이었다. 제국군은 즉각 공격에 나섰으나 탈모어는 수일만에 군대를 출격, 나리핀 공(Lord Naarifin)이 지휘하는 양동 부대는 미리 협정을 맺어놨던 엘스웨어의 길을 이용해 우회, 시로딜 남부를 기습, 순식간에 레이아윈을 함락시키고 브라빌을 포위해 고립시켰다. 그리고 주력군은 아라넬랴(Lady Arannelya)의 지휘하에 발렌우드에서 출병, 앤빌과 크바치를 거쳐 북상해 해머펠 남부 해안을 침공했다. 해머펠은 당시 북부의 센티넬을 중심으로 한 크라운 세력, 그리고 남부의 올드 헤가테를 중심으로 한 포어베어 세력으로 양분되어 있었다. 반제국인 크라운은 제국한테 협조할리가 없고 크라운과 포어베어도 서로 원수로 여길만큼 험악하다보니 포어베어의 힘만으로 탈모어에 맞서야 했던지라 순식간에 남부 영토 대부분을 탈모어에게 빼앗기고 헤가테(Hegathe) 정도만이 남아 외롭게 버티고 있었다. 심지어 아라넬랴 휘하의 본대도 아니고 소수의 선발대에게 연전연패를 당했는데, 얼마나 피해가 심했는지 그 일대가 피바다였다고 한다. 어쨌든 해머펠의 제국군은 탈모어군에게 밀려났고, 알라키어 사막을 건너 북부로 퇴각, 지원하러온 하이 락의 군대와 합류했다. 이 때의 퇴각은 갈증의 행군(March of Thirst)으로 불리는데, 제국군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짐작되는 호칭이다.
-
172년
탈모어의 본래 전략은 나리핀의 양동부대가 남부에서 제국군을 분산시키거나 붙잡고 있는 동안, 주력군은 해머펠을 점령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리핀의 부대가 남부 기습에서 워낙 압도적인 대승을 거두었기에, 탈모어 지휘부는 제국군이 자신들의 생각 이상의 당나라 군대라는 판단을 내려 주공을 시로딜 본토로 돌려 제국 자체를 붕괴시키는 것으로 전략을 수정했다. 그 뒤 탈모어의 예상대로 브라빌이 함락되고 앤빌도 연이어 함락되었다. 그리고 172 년 말, 나리핀은 임페리얼 시티의 남쪽에 근접했다. 임페리얼 시티는 루메어 호수(Lake Rumare)에 둘러싸여 보호받고 있었고, 이 호수는 니벤(Niben) 강을 통해 남쪽의 바다로 연결되었다. 양군의 함대는 수도의 동쪽 언덕을 차지하기 위해 강과 호수에서 치열한 수상전을 벌였다. 이 와중에 스카이림에서 지원군이 남하해 제국군을 보강했고 이 와중에 탈모어 군대는 시로딜 동부까지 진출했다.
-
173년
탈모어가 시로딜의 서쪽, 남쪽, 동쪽의 삼면을 장악했고, 오로지 북쪽의 브루마만이 남아 스카이림과의 통로를 지키고 있었다. 한편 해머펠에서는 센티넬의 군대가 사막을 건너와 헤가테를 지원, 탈모어군의 포위를 풀면서 탈모어를 물리치기 위한 크라운과 포어베어 두 세력의 역사적인 화해가 성사되었다.[2] 하지만 아라넬랴 휘하의 탈모어 주력군은 헤가테의 해방과는 상관없이 알라키어 사막을 돌파하는데 성공, 해머펠 중심부에 위치한 도시인 스카벤(Skaven)에 접근한다. 데시아누스(Decianus) 장군 휘하의 제국군은 이곳 외곽에 포진한 채 탈모어군을 기다리고 있다가 요격했고, 도시 주변이 피바다가 됐다고 할 정도의 대혈전이 벌어진다. 아라넬랴는 스카벤을 점령하는데는 성공했지만, 손실이 컸는지 진격도 멈춘다.
-
174년
174년 봄, 탈모어는 승부수를 띄우기로 결정하고 증원군을 파병, 시로딜 남부에 집결시켰다. 그리고 5월(Second Seed) 12일, 나리핀의 지휘 하에 임페리얼 시티에 대한 전면 공격이 개시되었다. 나리핀은 임페리얼 시티의 서쪽, 남쪽, 동쪽에서 삼면 포위공격을 가하며 제국군을 북쪽으로 몰아 붙였다. 전세가 기울어 남아 죽던가 수도를 포기하고 튀던가의 양자 택일을 해야 한다는 상황이 명백해졌지만, 황제에게 수도를 버리자는 제안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황제는 과감하게 수도를 버리고 북쪽으로 퇴각하기로 결정했으나... 임페리얼 시티의 시민들에게 사전 경고를 해주지 않아 많은 시민들이 대피를 하지 못했다. 직후 임페리얼 시티로 들어온 탈모어군은 황궁을 약탈하고 불태웠으며, 미처 대피못한 수많은 주민들을 학살했다.
황제는 임페리얼 시티의 재탈환을 위해 전력을 집결시켰고, 해머펠 등에 파견되어 있던 제국군들이 시로딜로 모여들었다. 하지만 데시아누스 장군은 동쪽으로 행군하기 전 정예병들을 부상병이라고 보고해서 남겨둔 채 떠났고, 남겨진 부대는 174년 말에 대대적인 반격을 가해 아라넬랴의 탈모어군을 격파한 다음, 스카벤을 탈환하고 탈모어 주력군을 격퇴하는데 성공한다. 퇴각하던 탈모어군은 사막에서 레드가드 전사들의 유격전에 큰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
175 년
티투스 메데 2세는 우선 탈모어 측에 이런저런 협상을 제안해서 항복 의사가 있는 것처럼 기만했고, 해머펠에서 복귀한 데시아누스 장군 휘하의 부대를 코롤 인근의 콜로비안 고원에 숨겨 해머펠에 남아있는 것처럼 위장했다. 스카이림에서 온 군대는 노르드 위주로, 요나(Jonna) 장군의 지휘하에 쉐이딘홀 근방에 배치했고, 주력군은 자신이 직접 지휘해서 임페리얼 시티 북쪽을 공격하기로 결정했다. 4월(Rain's Hand) 30일, 요나 장군의 부대는 레드 링 도로로 남하했고, 니벤 강을 건너 데시아누스 장군의 부대와 연계하면서 임페리얼 시티를 포위하기 위해 서쪽으로 전진했다. 브라빌과 스킨그라드에 주둔 중이던 탈모어 부대가 이를 저지하기 위해 튀어나와 진격이 약간 둔화되었지만, 요나는 결국 탈모어군을 작살내고 포위망을 완성시켰다. 이 때 황제가 골드 브란드를 들고 최전선에서 직접 싸우기도 했다는 소문이 있다.[3] 어쨌든 임페리얼 시티의 탈모어군은 작살났고, 남쪽에서 올라오던 지원군도 요나 휘하의 노르드군에게 격파되었다. 탈모어군의 주요 공신이던 나리핀은 생포당했고, 산채로 화이트 골드 타워에 매달렸는데 숨이 끊어질 때까지 33일을 버텼다고 한다. 그의 시신이 묻힌 곳은 알려지지 않았는데, 어째서인지 34일째에 날개달린 데이드라를 타고 튀었다는 소문도 있다.[4] 주력부대가 패하고 사령관까지 생포되어 교수형당한 것은 탈모어에게 큰 충격을 주었을 것이 뻔하다.
이후 황제는 탈모어와 백금 조약을 맺어 전쟁을 끝냈는데, 그 조건은 탈로스 숭배 금지, 해머펠 남부 양도, 탈모어의 자치 인정, 블레이드 해체였다. 즉 처음에 요구한 걸 그대로 들어줬다. 그런데 이걸 처음에 그냥 들어줬으면 제국이 더 큰 내전에 빠져들었을 거라고 한다.
-
175~180 년
한편 해머펠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자기들 영토 남부를 탈모어에 넘기는 조약에 동의하지 않았다. 이에 황제 티투스 메데 2세는 쿨하게도 해머펠을 제국에서 강퇴시켜 버렸고, 탈모어는 해머펠에 있던 부대를 움직여 해머펠 남부 점령에 나섰지만... 안 그래도 지난 전쟁으로 인한 병력손실이 컸는데, 해머펠의 저항도 엄청나서 별 소득 없이 5년 넘게 죽만 쑤다 레드가드 측과 협정을 맺고 해머펠에서 철수했다.본격 승자없는 전쟁[5]
3. 동명의 책
엘더스크롤 시리즈의 책 |
숫자 |
A |
B |
C |
D |
E |
F |
G |
H |
I |
J |
K |
L |
M |
N |
O |
P |
Q |
R |
S |
T |
U |
V |
W |
X |
Y |
Z ( 개별 문서) |
엘더스크롤 5: 스카이림에서 대전쟁의 과정을 정리한 책을 발견할 수 있다.
원문
제국과 알드메리 자치령간의 대전쟁에 대한 간략한 문서
사령관 저스타이누스 퀸티우스 지음
저자문 : 이 책에 쓰여진 대부분의 내용은 전쟁 기간 동안에 적군으로부터 압수한 문서들과, 죄수들의 심문내용 그리고 살아남은 제국 관료와 군인들의 목격담을 모아 구성되었다는 것을 밝힌다. 나는 임페리얼 시티를 향하여 진군중이던 175년도에 부상을 입을 때까지 해머펠과 시로딜의 제10군 군단장을 역임하고 있었다. 그러나, 몇몇 사건들에 관해서는 모든 진실을 알아낼 수 없다. 단지 내가 적군에게서 힘들게 얻은 지식들과 나의 경험에 기반한 학자적 추측들로 그 공백을 채우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탈모어의 발흥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서머셋 아일즈는 시로딜이 겪었던 것과 비견될 만큼 오블리비언 사태를 거쳤다. 엘프들은 오블리비언의 침략자들을 공격했고, 종종 오블리비언 게이트를 닫기 위해 그곳으로 넘어가는 경우도 있었다. 지배자로서 그들은 시로딜보다는 훨씬 성공적으로 기능했다.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데이드라 무리들 때문에 피할 수 없는 결과가 나왔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탈모어는 서머셋 섬 지역내에서는 강력한 세력으로 존재했지만 그 영향력은 적었었다. 대격변기 동안에 크리스털 타워는 탈모어에게 더 강력한 힘과 권위를 줄 수 밖에 없는 상황을 계속해서 만들었다. 그리하여 급속도의 혼란 속에서 서머셋 섬을 거의 확실히 진정시켰다. 그들은 제 4 시대 22년도에 강력한 통치력을 틀어쥐고자 그들의 성공담을 책으로 출판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국명을 알리노어로 재명명했고, 이것은 인간이 지배하기 이전의 초기 시대로 돌아가자는 의미였다. 알드메리 자치령 밖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식함 또는 귀찮음 때문에 여전히 섬머셋 섬이라고 부른다.
제 4시대 29년에 발렌우드의 통치기구는 탈모어 협력자들과 알리노어라고 칭하는 연합에 의해 전복되었다. 이것은 탈모어 대리인들이 오블리비언 대란 이전부터 일부 보스머족 파벌들과 더욱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다는 점을 드러낸다. 완벽한 준비를 갖추지 못한 제국과 보스머 연합들은, 사태가 끝나자마자 밸런우드를 침공한, 훨씬 잘 준비된 알트머 세력에 의해 신속하게 패퇴했다. 그리하여 알드머 자치령이 탄생했다.
바로 직후 알드메리 자치령은 제국과의 모든 연락을 끊어버렸다. 그리고 70년 동안 그들은 침묵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알리노어 진영 내부에 어떤 종류의 내분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나, 탈모어가 섬머셋과 발렌우드에서 그들의 지배력을 공고히 하는 동안 지배지역 내에서 발생한 당파적 분규내용에 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제 4 시대 98년에 두개의 달, 메서와 세쿤다가 사라졌다. 이것은 제국의 전 지배지역에서 두려움과 공포로 여겨졌다. 엘스웨어에서는 훨씬 더 심각했다. 문화적으로 달들은 카짓에게 훨씬 더 많은 영향을 주고 있었다. 텅 빈 밤하늘이 발생하고, 2년 후에 달들이 나타났다. 탈모어는 예전에 알려지지 않은 여명의 마법을 사용하여 달들을 돌아오게 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정말 그들이 달을 불러냈는지 아니면 단지 달이 다시 나타날 거라는 예지를 이용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 문제에 진실이 무엇이든간에, 카짓들은 탈모어를 구원자로 믿기 시작했다. 15년간 엘스웨어 지역에 제국의 영향력은 계속 약화되어 황제는 엘스웨어 연합을 해체시키게 된, 4 시기 115년도에 발생한 쿠데타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었고, 알드메리 자치령 속주의 형태로 아네퀴나와 펠레틴 고대 왕조가 재건되었다.
티투스 메데 2세가 제 4 시대 168년에 왕좌에 올랐을 때, 그는 쇠락한 황권을 물려받았다. 셉팀 치하의 영광스런 시기는 오래된 기억 속에서나 존재했다. 발렌우드와 엘스웨어는 제국에서 분리되어, 탈모어라는 적에게 지배권이 이양되었다. 블랙 마쉬 지역은 오블리비언 대란의 여파로 제국의 통치력이 상실되었다. 모로윈드 지역은 바덴펠 화산의 분출이후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해머펠 지역은 크라운과 포어베어들 사이의 내분으로 시끄러웠다. 오직 하이락 지방과 시로딜, 스카이림 지역만이 번영과 평화로운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황제 타이투스 미드 2세는 그의 영도력에 대해 적합한 평가를 받고 그의 지배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아직도 몇년이 더 필요한 상태였다.
전쟁의 시작
제 4 시대 171 년 10월 30일, 알드메리 자치령은 새 황제에게 보내는 최후통첩과 함께 덮개로 가린 수레에 실린 예물을 지참한 대사를 제국 수도에 파견했다. 아주 길게 이어진 최후통첩서는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는데, 블레이드의 해체, 탈로스 숭배 금지령과 함께 해머펠 대부분의 지역을 자치령에 양도하라는 내용이었다. 제국 장군들이 군사력이 부족하다는 경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황제 타이투스 미드 2세는 최후통첩을 거절했다. 탈모어 대사가 수레를 뒤집으라 말하자, 수백개의 머리가 바닥에 쏟아져 내렸다. 서머셋과 발렌우드 지역에서 활동하던 블레이드단 소속 전원의 목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대전쟁은 황제와 알드메리 진영사이에서 5년 동안 지속되었다.
수일만에, 알드메리 군대들은 해머펠과 시로딜을 동시에 침공했다. 탈모어 장군 나리핀(Lord Naarifin)이 지휘한 강력한 군대는, 북쪽 엘스웨어 지역의 숨겨진 거점밖으로 진군하여, 발렌우드 국경을 따라 제국방어선의 측면을 돌아 남쪽에서부터 시로딜을 공격해 들어갔다. 레야윈 지역은 곧 침공자들의 손에 떨어졌고, 브라빌은 고립되어 봉쇄되었다.
동시에, 아라넬랴 (Lady Arannelya) 가 이끄는 알드메리 군대는 앤빌과 크바치를 거쳐, 해머펠을 가로질러 밸런우드 방향에서부터 시로딜 서쪽지역을 가로질렀다. 그 외의 소규모 알드메리 군세는 해머펠의 남쪽해안선을 따라 상륙했다. 흩어져 있던 레드가드 세력들만이 침략자들에게 산발적인 저항을 하고 있었고, 남쪽해안선의 대부분의 지역이 점령되었다. 대부분 수적우세에 밀린 제국군은 알리키어의 사막지역을 가로질러 퇴각했으며, 그 퇴각작전은 현재 갈증의 진군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하다.
4E 172-173: 알드메리의 시로딜 침공
초기 알드메리의 목적은 실제 해머펠 지역의 정복이라고 알려졌고, 시로딜 침공은 단지 해머펠을 점령하는 동안 제국군을 묶어두기 위한 방편이라고 여겨졌다. 그러나, 나라핀의 최초 공격이 놀라운 성과를 내자, 탈모어들이 황제의 군대가 생각보다 훨씬 약하다는 생각을 굳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로 인해 제국 수도 점령과 완전한 제국정복이 이후 2년 동안 그들의 최우선 과제로 변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탈모어는 그들의 목적을 거의 달성해가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히 황권의 가장 암흑기에 즉위했으며, 이 재앙을 피할 수 있었던 황제의 무모한 지도력 때문이었다.
제 4 시대 172년에, 알드메리 진영은 시로딜로 점점 더 깊숙히 진격했다. 브라빌과 앤빌 양 지역은 침략자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다. 그 해의 끝자락에, 나라핀은 제국 수도의 방벽까지 진격했다. 제국군은 동쪽 제방을 유지하기 위해 여러가지를 시도했으며, 니벤 인근과 루매어 호수에서 양국 해군간의 격렬한 전투가 발생했다.
해머펠에서 탈모어는 실제로 황제에게 전달된 최후통첩의 주된 목적이던, 남부해안 전체를 지배하면서 그들의 소유권를 강화하고 있는 것에 만족하고 있었다. 남부 도시들 중, 헤가스 (Hegathe) 만 여전히 저항하고 있을 뿐이었다. '갈증의 진군'생존자들은 해머펠 북쪽지역에 다시 모여들었고, 하이락 지방의 지원병력과 합세했다.
제 4 시대 173년에는 시로딜 지역내 제국군의 저항이 강화되는 것이 보였으나, 외견상으로 변함없는 알드메리 진영의 공격이 계속되었다. 스카이림에서 새로 보충된 신병들이 제국 수도 내부에 있던 황제 주력군의 위세를 북돋았다, 그러나 알드메리 진영은 니벤을 무력으로 가로질렀고, 대거 동쪽 제방 인근까지 진격하기 시작했다. 그 해의 끝에, 수도는 삼면이 포위되었고, 단지 북쪽 브루마 지역으로의 보급선만 열려있었다.
해머펠 지역의 제국군의 운명은 약간 좋은 방향으로 바뀌고 있었다. 제 4 시대 173년 초에, 센티넬 지방의 토착세력 군세가 헤가스의 봉쇄를 깼고, 이것은 두 세력의 화해를 이끌었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아라넬랴의 주력부대는 알리키어 사막을 가로지르는데 성공했다. 데시아누스 (Decianus) 장군이 이끄는 제국군대가 스카벤 (Skaven) 외곽에서 그들을 맞아 무모하고도 피비린내나는 전투를 벌였다. 데시아누스는 퇴각했고, 아라넬랴는 스카벤의 점령자가 되었다. 그러나, 알드메리 세력은 너무 약화되어 계속 진격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4E 174 : 임페리얼 시티 약탈
제 4 시대 174년, 탈모어 지도자들은 모든 가능한 군세를 시로딜 지역의 군사작전에 집중하기로 했고, 이것은 전쟁을 끝내기 위한 마지막 단 한번의 결정적 승리를 위한 도박이었다. 봄이 지나갈 동안, 알드메리 지원병력은 시로딜 남부에 집결했고, 5월 12일에, 제국 수도를 향한 대규모 공격을 감행했다. 한 부대는 완벽하게 수도를 포위하기 위해 북쪽으로 올라갔으며, 나라핀의 주력군은 남, 동, 서부의 방벽을 공격했다. 최후의 한사람까지 싸우기 보다는 포위망을 뚫고 나가자는 황제의 결정은 주목할만한 것이었다. 제국 장군들은 감히 황제에게 수도를 버리라는 말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에는 타이투스 2세가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다.
제 8 제국 군단이 도시방벽을 향한 광란의 (피할 수 없는) 무모한 싸움을 진행하는 동안, 타이투스 2세는 그의 주력군을 도시 밖 북쪽으로 잘게 분산시켜, 알드메리 군세의 포위망을 분쇄시키며, 스카이림 남쪽에서부터 진군하던 요나 장군이 이끄는 지원병력과 연계했다. 그러나, 그 사이 수도는 침략자들에 의해 무너졌고 불명예스러운 노략질이 시작되었다. 황궁은 불타올랐고, 백금 타워는 약탈되었으며, 복수심에 불타는 엘프들에 의해 수많은 잔혹행위들이 무고한 백성들에게 자행되었다.
해머펠 지역, 데시아누스 장군은 시로딜로 향하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스카벤 방향에서 알드메리 진영의 후방을 치기 위해 준비하던 도중이었다. 해머펠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 그는 동쪽으로 진격하기 전에 각 진영에서 대부분의 부상자들을 제대시키기로 했다. 이 숙련된 병사들은 174년 말에 아라넬랴의 부대가 알리키어 사막을 가로질러 후퇴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든 공격부대의 핵심전력이 되었으며, 아라넬랴의 부대는 알리키어 전사들의 끈질긴 공격으로 엄청난 손실을 입게 되었다.
4E 175 : 레드링 전투
제 4 시대 174-175년의 겨울에, 탈모어 측은 시로딜에서의 전쟁이 거의 끝났다고 믿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타이투스 2세와 협상을 하기위해 여러가지를 시도했다. 황제는 그들에게 그가 항복을 준비하고 있다는 믿음을 계속해서 심어주며, 그 사이에 제국 수도를 탈환하기 위하여 병력을 집결시켰다.
이후 세대에 와서는 제국 전략의 모범사례로 알려진 전투인 레드링 전투에 대해서 지금까지 알려진 것은, 타이투스 2세가 그의 군세를 세개로 나누었다는 부분이다. 데시아누스 장군이 이끄는 해머펠 지역의 부대와 합류한, 한부대는 코롤 지역 근처의 콜로비안 하이랜드로 잠입했다. 알드메리 진영은 데시아누스 장군이 해머펠 지역을 떠났다는 사실을 몰랐고, 그가 후방에 남겨둔 제국의 숙련병들이 아라넬랴로 하여금 여전히 제국군 군대와 마주하고 있다고 믿게 만드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4월 30일에, 데시아누스 장군이 서쪽에서 도시를 급습하면서 피로 물든 레드링 전투가 시작되었으며, 동시에 요나 장군의 부대원들은 레드링을 따라 남쪽으로 진격했다. 이틀간의 공격으로, 요나 장군의 군대는 니벤을 가로질러 서쪽으로 진격하여, 데시아누스 부대와 연계를 시도했고, 결국에는 제국 수도를 포위하는데 성공했다. 나라핀은 데시아누스의 공격에 당혹감에 사로잡혔으나, 요나 장군의 부대는 브라빌과 스킨그라드 방면에서 역습을 가한 알드메리 군세의 강력한 저항에 직면했다. 용감무쌍한 노드 병사들은 알드메리의 차륜공격을 물리쳤다다. 전투가 시작된 지 5일 째에, 수도의 알드메리 군대는 완전히 포위되었다.
타이투스 2세는 북쪽방면 공격을 지휘했고, 나라핀 장군을 직접 포로로 잡았다. 제국정부에 의해서 공식적으로 확인된 적은 결코 없지만, 황제는 명예로운 검 골드 브란드를 휘둘렀다고 전해진다. 알드메리 측의 수도 외곽 남쪽방면의 산개를 통한 탈출 시도는 요나 장군 부대의 숙련병들에 의한 든든한 방패 장벽으로 무산되었다.
결국, 시로딜의 주력 알드메리 군대는 완전히 분쇄되었다. 제 4 시대 174년 황도에서 탈출한다는 황제의 결정은 참혹한 피로 그 결단이 옳음을 입증했다.
나라핀 장군은 화이트 골드 타워에서 교수형에 처해지기 전 33일간 목숨을 연명했다. 그 사체가 매장된 위치는 기록되지 않았으며 실제로 묻혔는지 조차도 알 수 없다. 한때의 연구자료에는 사체가 34일째 날에 날개달린 데이드라에 의해 옮겨졌다는 주장이 있다.
백금협정과 전쟁의 결말
승리자의 진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제국군은 전쟁을 진행할 여유가 없었다. 제국 군대의 모든 잔존부대가 시로딜 내로 모여들었고, 레드링 전투로 인해 대량으로 살상되었으며 소모되었다. 모든 군단들이 임무 수행에 적합한 병사 숫자의 절반도 유지되지 않았다. 이전 해에 수도에서 후퇴할 때 발생한 제 8군단의 손실을 논외로 하고도, 2개의 군단이 완전히 전멸했다. 타이투스 2세는 평화협상에 매우 적합한 시기가 왔다는 것을 알았고, 제 4 시대 175년 말미에 황제 측과 알드메리 자치령는 백금협정에 서명했으며, 전쟁이 끝났다.
혹독한 시기였으나, 타이투스 2세는 평화를 확실히 할 필요성과 황권을 다시 강하게 잡을수 있는 기회가 왔다고 믿었다. 이 협약의 두가지 주요 논쟁점은 탈로스 숭배 금지와 남부 해머펠의 많은 영역 ( 이미 알드메리 군세가 점유하고 있는)의 할양이었다. 비평가들은 이 협약이 (전쟁 발발의) 5년 전 황제가 거절했던 최후통첩과 거의 동일하다는 점을 지적해왔다. 그러나, 전쟁에 대한 단순한 위협하에 그런 문서 (최후통첩)에 동의하는 것과, 길고 파괴적인 전쟁의 끝에 그에 동의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제 4 시대 171년에는 제국의 어느 누구도 탈모어측의 칼끝으로 쓰여진 이러한 문구를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타이투스 2세는 오히려 내전에 직면하게 되었을 것이다. 제 4 시대 175년에는 제국의 대부분이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평화협정이 필요하다고 환영했다.
이후 : 해머펠 외로운 투쟁
그러나, 해머펠 지역은 그들의 영토 대부분을 잃어야하고 기꺼울리 없는 패배를 인정해야만 하는 백금협정에 반발했다. 타이투스 2세는 힘겹게 얻은 평화조약을 유지하기 위해서 공식적으로 해머펠을 제국의 관할지역이 아니라는 점을 선포하라는 압박을 받았다. 당연히 레드가드 측은 이것을 배반으로 생각했다. 사실상, 탈모어는 해머펠과 제국사이에 지속적인 불씨를 남김으로써 그들의 오랜 목적 중의 하나를 분명히 이루었다.
결국, 용맹한 레드가드들은 알드메리 자치령에 대항하여 투쟁했다. 비록 전쟁이 5년 더 연장되고, 남부 해머펠이 황폐해졌지만. 레드가드들은 이것은 백금협정이 불필요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고, 타이투스 2세가 대담하게 밀어붙였더라면, 알드메리 측은 틀림없이 해머펠과 제국의 나머지 지역의 연합세력에 의해 패배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레드가드들은 레드링전투에서 흘렸던 제국군의 피 - 브리튼, 노드 그리고 시로딜 시민들- 의 희생으로 이루어진 알드메리 세력의 약화와, 그에 이어진 제 4 시대 180년 스트로스 므'카이 (Stros M'kai) 두 번째 조약으로 인하여 해머펠 지역에서 알드메리 군대가 철수하게되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현재의 평화가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탈모어는 대전쟁을 발생시켰던 연이은 사건이 보여주듯이 장기적 관점에서 일을 도모할 것이다. 압제보다 자유의 가치를 아는 모든 이들은 너무 늦기 전에, 해머펠과 제국이 화해하고 탈모어의 위협에 대항하여 연합하기만을 바라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탐리엘 전역을 휩쓸고 있는 탈모어의 지배 흐름을 막을 가능성은 점점 줄어들 것이다.
제국과 알드메리 자치령간의 대전쟁에 대한 간략한 문서
사령관 저스타이누스 퀸티우스 지음
저자문 : 이 책에 쓰여진 대부분의 내용은 전쟁 기간 동안에 적군으로부터 압수한 문서들과, 죄수들의 심문내용 그리고 살아남은 제국 관료와 군인들의 목격담을 모아 구성되었다는 것을 밝힌다. 나는 임페리얼 시티를 향하여 진군중이던 175년도에 부상을 입을 때까지 해머펠과 시로딜의 제10군 군단장을 역임하고 있었다. 그러나, 몇몇 사건들에 관해서는 모든 진실을 알아낼 수 없다. 단지 내가 적군에게서 힘들게 얻은 지식들과 나의 경험에 기반한 학자적 추측들로 그 공백을 채우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탈모어의 발흥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서머셋 아일즈는 시로딜이 겪었던 것과 비견될 만큼 오블리비언 사태를 거쳤다. 엘프들은 오블리비언의 침략자들을 공격했고, 종종 오블리비언 게이트를 닫기 위해 그곳으로 넘어가는 경우도 있었다. 지배자로서 그들은 시로딜보다는 훨씬 성공적으로 기능했다.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데이드라 무리들 때문에 피할 수 없는 결과가 나왔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탈모어는 서머셋 섬 지역내에서는 강력한 세력으로 존재했지만 그 영향력은 적었었다. 대격변기 동안에 크리스털 타워는 탈모어에게 더 강력한 힘과 권위를 줄 수 밖에 없는 상황을 계속해서 만들었다. 그리하여 급속도의 혼란 속에서 서머셋 섬을 거의 확실히 진정시켰다. 그들은 제 4 시대 22년도에 강력한 통치력을 틀어쥐고자 그들의 성공담을 책으로 출판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국명을 알리노어로 재명명했고, 이것은 인간이 지배하기 이전의 초기 시대로 돌아가자는 의미였다. 알드메리 자치령 밖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식함 또는 귀찮음 때문에 여전히 섬머셋 섬이라고 부른다.
제 4시대 29년에 발렌우드의 통치기구는 탈모어 협력자들과 알리노어라고 칭하는 연합에 의해 전복되었다. 이것은 탈모어 대리인들이 오블리비언 대란 이전부터 일부 보스머족 파벌들과 더욱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다는 점을 드러낸다. 완벽한 준비를 갖추지 못한 제국과 보스머 연합들은, 사태가 끝나자마자 밸런우드를 침공한, 훨씬 잘 준비된 알트머 세력에 의해 신속하게 패퇴했다. 그리하여 알드머 자치령이 탄생했다.
바로 직후 알드메리 자치령은 제국과의 모든 연락을 끊어버렸다. 그리고 70년 동안 그들은 침묵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알리노어 진영 내부에 어떤 종류의 내분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나, 탈모어가 섬머셋과 발렌우드에서 그들의 지배력을 공고히 하는 동안 지배지역 내에서 발생한 당파적 분규내용에 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제 4 시대 98년에 두개의 달, 메서와 세쿤다가 사라졌다. 이것은 제국의 전 지배지역에서 두려움과 공포로 여겨졌다. 엘스웨어에서는 훨씬 더 심각했다. 문화적으로 달들은 카짓에게 훨씬 더 많은 영향을 주고 있었다. 텅 빈 밤하늘이 발생하고, 2년 후에 달들이 나타났다. 탈모어는 예전에 알려지지 않은 여명의 마법을 사용하여 달들을 돌아오게 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정말 그들이 달을 불러냈는지 아니면 단지 달이 다시 나타날 거라는 예지를 이용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 문제에 진실이 무엇이든간에, 카짓들은 탈모어를 구원자로 믿기 시작했다. 15년간 엘스웨어 지역에 제국의 영향력은 계속 약화되어 황제는 엘스웨어 연합을 해체시키게 된, 4 시기 115년도에 발생한 쿠데타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었고, 알드메리 자치령 속주의 형태로 아네퀴나와 펠레틴 고대 왕조가 재건되었다.
티투스 메데 2세가 제 4 시대 168년에 왕좌에 올랐을 때, 그는 쇠락한 황권을 물려받았다. 셉팀 치하의 영광스런 시기는 오래된 기억 속에서나 존재했다. 발렌우드와 엘스웨어는 제국에서 분리되어, 탈모어라는 적에게 지배권이 이양되었다. 블랙 마쉬 지역은 오블리비언 대란의 여파로 제국의 통치력이 상실되었다. 모로윈드 지역은 바덴펠 화산의 분출이후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해머펠 지역은 크라운과 포어베어들 사이의 내분으로 시끄러웠다. 오직 하이락 지방과 시로딜, 스카이림 지역만이 번영과 평화로운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황제 타이투스 미드 2세는 그의 영도력에 대해 적합한 평가를 받고 그의 지배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아직도 몇년이 더 필요한 상태였다.
전쟁의 시작
제 4 시대 171 년 10월 30일, 알드메리 자치령은 새 황제에게 보내는 최후통첩과 함께 덮개로 가린 수레에 실린 예물을 지참한 대사를 제국 수도에 파견했다. 아주 길게 이어진 최후통첩서는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는데, 블레이드의 해체, 탈로스 숭배 금지령과 함께 해머펠 대부분의 지역을 자치령에 양도하라는 내용이었다. 제국 장군들이 군사력이 부족하다는 경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황제 타이투스 미드 2세는 최후통첩을 거절했다. 탈모어 대사가 수레를 뒤집으라 말하자, 수백개의 머리가 바닥에 쏟아져 내렸다. 서머셋과 발렌우드 지역에서 활동하던 블레이드단 소속 전원의 목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대전쟁은 황제와 알드메리 진영사이에서 5년 동안 지속되었다.
수일만에, 알드메리 군대들은 해머펠과 시로딜을 동시에 침공했다. 탈모어 장군 나리핀(Lord Naarifin)이 지휘한 강력한 군대는, 북쪽 엘스웨어 지역의 숨겨진 거점밖으로 진군하여, 발렌우드 국경을 따라 제국방어선의 측면을 돌아 남쪽에서부터 시로딜을 공격해 들어갔다. 레야윈 지역은 곧 침공자들의 손에 떨어졌고, 브라빌은 고립되어 봉쇄되었다.
동시에, 아라넬랴 (Lady Arannelya) 가 이끄는 알드메리 군대는 앤빌과 크바치를 거쳐, 해머펠을 가로질러 밸런우드 방향에서부터 시로딜 서쪽지역을 가로질렀다. 그 외의 소규모 알드메리 군세는 해머펠의 남쪽해안선을 따라 상륙했다. 흩어져 있던 레드가드 세력들만이 침략자들에게 산발적인 저항을 하고 있었고, 남쪽해안선의 대부분의 지역이 점령되었다. 대부분 수적우세에 밀린 제국군은 알리키어의 사막지역을 가로질러 퇴각했으며, 그 퇴각작전은 현재 갈증의 진군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하다.
4E 172-173: 알드메리의 시로딜 침공
초기 알드메리의 목적은 실제 해머펠 지역의 정복이라고 알려졌고, 시로딜 침공은 단지 해머펠을 점령하는 동안 제국군을 묶어두기 위한 방편이라고 여겨졌다. 그러나, 나라핀의 최초 공격이 놀라운 성과를 내자, 탈모어들이 황제의 군대가 생각보다 훨씬 약하다는 생각을 굳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로 인해 제국 수도 점령과 완전한 제국정복이 이후 2년 동안 그들의 최우선 과제로 변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탈모어는 그들의 목적을 거의 달성해가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히 황권의 가장 암흑기에 즉위했으며, 이 재앙을 피할 수 있었던 황제의 무모한 지도력 때문이었다.
제 4 시대 172년에, 알드메리 진영은 시로딜로 점점 더 깊숙히 진격했다. 브라빌과 앤빌 양 지역은 침략자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다. 그 해의 끝자락에, 나라핀은 제국 수도의 방벽까지 진격했다. 제국군은 동쪽 제방을 유지하기 위해 여러가지를 시도했으며, 니벤 인근과 루매어 호수에서 양국 해군간의 격렬한 전투가 발생했다.
해머펠에서 탈모어는 실제로 황제에게 전달된 최후통첩의 주된 목적이던, 남부해안 전체를 지배하면서 그들의 소유권를 강화하고 있는 것에 만족하고 있었다. 남부 도시들 중, 헤가스 (Hegathe) 만 여전히 저항하고 있을 뿐이었다. '갈증의 진군'생존자들은 해머펠 북쪽지역에 다시 모여들었고, 하이락 지방의 지원병력과 합세했다.
제 4 시대 173년에는 시로딜 지역내 제국군의 저항이 강화되는 것이 보였으나, 외견상으로 변함없는 알드메리 진영의 공격이 계속되었다. 스카이림에서 새로 보충된 신병들이 제국 수도 내부에 있던 황제 주력군의 위세를 북돋았다, 그러나 알드메리 진영은 니벤을 무력으로 가로질렀고, 대거 동쪽 제방 인근까지 진격하기 시작했다. 그 해의 끝에, 수도는 삼면이 포위되었고, 단지 북쪽 브루마 지역으로의 보급선만 열려있었다.
해머펠 지역의 제국군의 운명은 약간 좋은 방향으로 바뀌고 있었다. 제 4 시대 173년 초에, 센티넬 지방의 토착세력 군세가 헤가스의 봉쇄를 깼고, 이것은 두 세력의 화해를 이끌었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아라넬랴의 주력부대는 알리키어 사막을 가로지르는데 성공했다. 데시아누스 (Decianus) 장군이 이끄는 제국군대가 스카벤 (Skaven) 외곽에서 그들을 맞아 무모하고도 피비린내나는 전투를 벌였다. 데시아누스는 퇴각했고, 아라넬랴는 스카벤의 점령자가 되었다. 그러나, 알드메리 세력은 너무 약화되어 계속 진격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4E 174 : 임페리얼 시티 약탈
제 4 시대 174년, 탈모어 지도자들은 모든 가능한 군세를 시로딜 지역의 군사작전에 집중하기로 했고, 이것은 전쟁을 끝내기 위한 마지막 단 한번의 결정적 승리를 위한 도박이었다. 봄이 지나갈 동안, 알드메리 지원병력은 시로딜 남부에 집결했고, 5월 12일에, 제국 수도를 향한 대규모 공격을 감행했다. 한 부대는 완벽하게 수도를 포위하기 위해 북쪽으로 올라갔으며, 나라핀의 주력군은 남, 동, 서부의 방벽을 공격했다. 최후의 한사람까지 싸우기 보다는 포위망을 뚫고 나가자는 황제의 결정은 주목할만한 것이었다. 제국 장군들은 감히 황제에게 수도를 버리라는 말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에는 타이투스 2세가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다.
제 8 제국 군단이 도시방벽을 향한 광란의 (피할 수 없는) 무모한 싸움을 진행하는 동안, 타이투스 2세는 그의 주력군을 도시 밖 북쪽으로 잘게 분산시켜, 알드메리 군세의 포위망을 분쇄시키며, 스카이림 남쪽에서부터 진군하던 요나 장군이 이끄는 지원병력과 연계했다. 그러나, 그 사이 수도는 침략자들에 의해 무너졌고 불명예스러운 노략질이 시작되었다. 황궁은 불타올랐고, 백금 타워는 약탈되었으며, 복수심에 불타는 엘프들에 의해 수많은 잔혹행위들이 무고한 백성들에게 자행되었다.
해머펠 지역, 데시아누스 장군은 시로딜로 향하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스카벤 방향에서 알드메리 진영의 후방을 치기 위해 준비하던 도중이었다. 해머펠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 그는 동쪽으로 진격하기 전에 각 진영에서 대부분의 부상자들을 제대시키기로 했다. 이 숙련된 병사들은 174년 말에 아라넬랴의 부대가 알리키어 사막을 가로질러 후퇴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든 공격부대의 핵심전력이 되었으며, 아라넬랴의 부대는 알리키어 전사들의 끈질긴 공격으로 엄청난 손실을 입게 되었다.
4E 175 : 레드링 전투
제 4 시대 174-175년의 겨울에, 탈모어 측은 시로딜에서의 전쟁이 거의 끝났다고 믿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타이투스 2세와 협상을 하기위해 여러가지를 시도했다. 황제는 그들에게 그가 항복을 준비하고 있다는 믿음을 계속해서 심어주며, 그 사이에 제국 수도를 탈환하기 위하여 병력을 집결시켰다.
이후 세대에 와서는 제국 전략의 모범사례로 알려진 전투인 레드링 전투에 대해서 지금까지 알려진 것은, 타이투스 2세가 그의 군세를 세개로 나누었다는 부분이다. 데시아누스 장군이 이끄는 해머펠 지역의 부대와 합류한, 한부대는 코롤 지역 근처의 콜로비안 하이랜드로 잠입했다. 알드메리 진영은 데시아누스 장군이 해머펠 지역을 떠났다는 사실을 몰랐고, 그가 후방에 남겨둔 제국의 숙련병들이 아라넬랴로 하여금 여전히 제국군 군대와 마주하고 있다고 믿게 만드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4월 30일에, 데시아누스 장군이 서쪽에서 도시를 급습하면서 피로 물든 레드링 전투가 시작되었으며, 동시에 요나 장군의 부대원들은 레드링을 따라 남쪽으로 진격했다. 이틀간의 공격으로, 요나 장군의 군대는 니벤을 가로질러 서쪽으로 진격하여, 데시아누스 부대와 연계를 시도했고, 결국에는 제국 수도를 포위하는데 성공했다. 나라핀은 데시아누스의 공격에 당혹감에 사로잡혔으나, 요나 장군의 부대는 브라빌과 스킨그라드 방면에서 역습을 가한 알드메리 군세의 강력한 저항에 직면했다. 용감무쌍한 노드 병사들은 알드메리의 차륜공격을 물리쳤다다. 전투가 시작된 지 5일 째에, 수도의 알드메리 군대는 완전히 포위되었다.
타이투스 2세는 북쪽방면 공격을 지휘했고, 나라핀 장군을 직접 포로로 잡았다. 제국정부에 의해서 공식적으로 확인된 적은 결코 없지만, 황제는 명예로운 검 골드 브란드를 휘둘렀다고 전해진다. 알드메리 측의 수도 외곽 남쪽방면의 산개를 통한 탈출 시도는 요나 장군 부대의 숙련병들에 의한 든든한 방패 장벽으로 무산되었다.
결국, 시로딜의 주력 알드메리 군대는 완전히 분쇄되었다. 제 4 시대 174년 황도에서 탈출한다는 황제의 결정은 참혹한 피로 그 결단이 옳음을 입증했다.
나라핀 장군은 화이트 골드 타워에서 교수형에 처해지기 전 33일간 목숨을 연명했다. 그 사체가 매장된 위치는 기록되지 않았으며 실제로 묻혔는지 조차도 알 수 없다. 한때의 연구자료에는 사체가 34일째 날에 날개달린 데이드라에 의해 옮겨졌다는 주장이 있다.
백금협정과 전쟁의 결말
승리자의 진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제국군은 전쟁을 진행할 여유가 없었다. 제국 군대의 모든 잔존부대가 시로딜 내로 모여들었고, 레드링 전투로 인해 대량으로 살상되었으며 소모되었다. 모든 군단들이 임무 수행에 적합한 병사 숫자의 절반도 유지되지 않았다. 이전 해에 수도에서 후퇴할 때 발생한 제 8군단의 손실을 논외로 하고도, 2개의 군단이 완전히 전멸했다. 타이투스 2세는 평화협상에 매우 적합한 시기가 왔다는 것을 알았고, 제 4 시대 175년 말미에 황제 측과 알드메리 자치령는 백금협정에 서명했으며, 전쟁이 끝났다.
혹독한 시기였으나, 타이투스 2세는 평화를 확실히 할 필요성과 황권을 다시 강하게 잡을수 있는 기회가 왔다고 믿었다. 이 협약의 두가지 주요 논쟁점은 탈로스 숭배 금지와 남부 해머펠의 많은 영역 ( 이미 알드메리 군세가 점유하고 있는)의 할양이었다. 비평가들은 이 협약이 (전쟁 발발의) 5년 전 황제가 거절했던 최후통첩과 거의 동일하다는 점을 지적해왔다. 그러나, 전쟁에 대한 단순한 위협하에 그런 문서 (최후통첩)에 동의하는 것과, 길고 파괴적인 전쟁의 끝에 그에 동의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제 4 시대 171년에는 제국의 어느 누구도 탈모어측의 칼끝으로 쓰여진 이러한 문구를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타이투스 2세는 오히려 내전에 직면하게 되었을 것이다. 제 4 시대 175년에는 제국의 대부분이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평화협정이 필요하다고 환영했다.
이후 : 해머펠 외로운 투쟁
그러나, 해머펠 지역은 그들의 영토 대부분을 잃어야하고 기꺼울리 없는 패배를 인정해야만 하는 백금협정에 반발했다. 타이투스 2세는 힘겹게 얻은 평화조약을 유지하기 위해서 공식적으로 해머펠을 제국의 관할지역이 아니라는 점을 선포하라는 압박을 받았다. 당연히 레드가드 측은 이것을 배반으로 생각했다. 사실상, 탈모어는 해머펠과 제국사이에 지속적인 불씨를 남김으로써 그들의 오랜 목적 중의 하나를 분명히 이루었다.
결국, 용맹한 레드가드들은 알드메리 자치령에 대항하여 투쟁했다. 비록 전쟁이 5년 더 연장되고, 남부 해머펠이 황폐해졌지만. 레드가드들은 이것은 백금협정이 불필요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고, 타이투스 2세가 대담하게 밀어붙였더라면, 알드메리 측은 틀림없이 해머펠과 제국의 나머지 지역의 연합세력에 의해 패배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레드가드들은 레드링전투에서 흘렸던 제국군의 피 - 브리튼, 노드 그리고 시로딜 시민들- 의 희생으로 이루어진 알드메리 세력의 약화와, 그에 이어진 제 4 시대 180년 스트로스 므'카이 (Stros M'kai) 두 번째 조약으로 인하여 해머펠 지역에서 알드메리 군대가 철수하게되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현재의 평화가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탈모어는 대전쟁을 발생시켰던 연이은 사건이 보여주듯이 장기적 관점에서 일을 도모할 것이다. 압제보다 자유의 가치를 아는 모든 이들은 너무 늦기 전에, 해머펠과 제국이 화해하고 탈모어의 위협에 대항하여 연합하기만을 바라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탐리엘 전역을 휩쓸고 있는 탈모어의 지배 흐름을 막을 가능성은 점점 줄어들 것이다.
[1]
스카이림 본편에서 30년 전.
[2]
물론 공동의 적인 탈모어를 물리치기 위한 화해라서 탈모어 물러가고 나서는 다시 적대적인 상태로 돌아가 싸움을 벌인다.
[3]
실제로는 티투스 메데 2세는 암살자의 기습에 당해 살아남긴 했으나 전장에 나서긴 힘든 상황이었고,
엘더스크롤: 레전드의 주인공이
임페리얼 드래곤 아머를 입고 대신 공성전을 이끌었다. 갑옷이 얼굴이 드러나지 않는 디자인이었기에 역사에는 황제가 공성전을 이끈 것으로 기록되었지만.
[4]
엘더스크롤: 레전드에서 나리핀을 직접 작살내볼 수 있는데, 드레모라를 소환해 부관으로 써먹는 등 강력한 마법사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주인공에게 패퇴당하고 무슨 영혼이 오블리비언으로 빨려들어가는 듯한 일러스트가 나온 것으로 보아, 튀었다는 소문은 그야말로 소문일 듯. 반병신 상태로 매달려 서서히 죽어갔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5]
제국은 수도 함락, 군사력 약화, 영토 손실 등으로 큰 피해를 입었고, 탈모어는 막대한 국력을 소모했음에도 개전 당시의 전략 목표조차 달성하지 못했다. 백금 조약이라는 성과가 있긴 하지만 소모한 국력과 군사력에 비하면 손해보는 장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