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5 15:48:42

대원 석씨

한국의 성씨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8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bgcolor=#00a495,#2d2f34><colcolor=#fff> · · · · · 강전 · · · · · · · · · · · · · · · · · · · · ·
· · · 남궁 · · · · ·
· · · · · · · 독고 · · · 동방 · · · 등정
· · · · · · · ·
· · 망절 · · · · · · · · 무본 · · · ·
· · · · · · · · · · · · · ·
· 사공 · · · · · 서문 · · · 선우 · · · · · 소봉 · · · · · · · · ·
· · · · · · 어금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장곡 · · · · · · 제갈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황목 · 황보 · ·
초록색: 2015년 기준으로 총 인구 100명 미만인 성씨
한자 표기가 다르더라도 한글 표기가 같으면 합산됨
}}}}}}}}}
{{{#!wiki style="margin: -15px -10px" <tablealign=center><tablewidth=160><tablebordercolor=#fff> 大元 石氏
대원 석씨
}}}
<colbgcolor=#000><colcolor=#ece5b6> 관향 대원국
시조 -
집성촌 -
인구 0명

1. 개요2. 역사3. 인물

[clearfix]

1. 개요

대원 석씨는 고려 말기부터 18세기까지 제주도에 있던 원나라 출신 내성(來姓)이다.

2. 역사

원 간섭기 제주도에는 한반도와는 별개의 통치 기구가 들어섰고 13세기 후반부터 몽골인 다루가치가 파견되는 탐라총관부의 관할지였다. 기후가 온화하고 말을 생육하기에 적합한 환경이라 제주도에는 목마장이 설치됐으며 말을 관리하기 위한 몽골인 목호들이 다수 유입됐다.

이렇게 유입된 몽골인들은 조선시대에 들어서 '대원'을 본관으로 하고 있었다는 것이 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에서 처음 나타난다. 대원 석씨의 존재는 남환박물(1703년)까지는 나타났으나 1793년 쓰인 '제주대정정의읍지'에서는 석씨 자체가 나타나지 않았다. 대원 초씨(大元趙氏) 등 10개 본관이 여전히 남아있고 좌씨 등이 추가되는 중 석씨는 대원 본관에서 탈락한 것이다.[1] 즉 대원 석씨는 1793년 이전 멸성했다. 남환박물의 제주 성씨 기록은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것과 일치해 과거의 기록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렇다면 대원 석씨가 멸성한 것은 1703년보다 더 이전일 수도 있다.

3. 인물



[1] 조선후기 제주거주 몽골 후손들의 사회적 지위와 변화 -호적중초에 보이는 본관명 大元 가문의 사례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