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0 19:42:15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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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6699><colcolor=#fff> 모기업 관련 정보 <colbgcolor=#ffffff,#191919><colcolor=#006699,#ffffff>파일:닛폰햄 로고.svg 닛폰햄
일본시리즈 우승
★★★
1962 · 2006 · 2016
리그 우승
(7회)
1962 · 1981 · 2006 · 2007 · 2009 · 2012 · 2016
퍼시픽리그 전·후기 우승
(2회)
1981후기 · 1982후기
클라이맥스 시리즈 2007 · 2008 · 2009 · 2011 · 2012 · 2014 · 2015 · 2016 · 2018 · 2024
시즌별 요약 2023 · 2024
현역 선수 경력 키요미야 코타로/선수 경력
경기장 1군 에스콘 필드 홋카이도 2군 카마가야 파이터즈 스타디움
과거 고라쿠엔 구장 · 메이지진구 야구장 · 도쿄 돔 · 삿포로 돔
지방 구장 스타루힌 구장( 아사히카와) · 오비히로노모리 야구장( 오비히로) · 쿠시로 시민구장( 쿠시로)
오션 스타디움( 하코다테)
홈 중계 채널 파일:가오라스포츠 로고.png
주요 인물 구단주 이카와 노부히사 · 단장 키다 마사오 · 감독 신조 츠요시 · 선수회장 마츠모토 고 · 주장 공석
구단 상세 정보 역사 · 선수단 및 등번호 · 역대 선수 · 응원가 · 유니폼
틀 문서
코칭스태프 투수 포수 내야수 외야수 육성 선수 역대 감독 영구 결번 1라운드 지명 선수 | 역대 개막전 선발 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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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6298><colcolor=#fff>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Hokkaido Nippon-Ham Fighters
[ruby(北海道, ruby=ほっかいどう)][ruby(日本, ruby=にっぽん)]ハムファイターズ
구단 법인명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1]
(株式会社北海道日本ハムファイターズ)[2]
창단 1945년 11월 6일([age(1945-11-06)]주년)
연고지 홋카이도 키타히로시마시
연고지 변천 도쿄도 (1952~2003)
홋카이도 (2004~)
구단명 변천 세네터스 (1946)
토큐 플라이어즈 (1947, 1949~1953)
큐에이 플라이어즈 (1948)
토에이 플라이어즈 (1954~1972)
닛타쿠홈 플라이어즈 (1973)
닛폰햄 파이터즈 (1974~2003)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2004~)
홈 구장 코라쿠엔 구장 (1948~1953, 1964~1987)
코마자와 구장 (1953~1961)
메이지진구 야구장 (1962~1963)
도쿄 돔 (1988~2003)[3]
삿포로 돔 (2004~2022)[4]
에스콘 필드 홋카이도 (2023~)
2군 구장 카마가야 파이터즈 스타디움 (1997~)
모기업 토큐 전철 (1947~1953)
토에이 (1954~1972)
닛타쿠홈 (1973)
닛폰햄 (1974~)
CBO 쿠리야마 히데키 (栗山英樹)
단장 대행 키다 마사오 (木田優夫)
감독 1 신조 츠요시 (新庄剛志)
킷 스폰서 미즈노
워드마크 파일: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워드마크.svg
마스코트[5] 파일: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마스코트.svg
브리스키 더 베어[6] & 프렙 더 폭스 & 폴리 폴라리스 & 커비 더 베어
구단기 파일: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구단기.svg
역대
한국인 선수
장훈[7] (1959~1975)
백인천 (1962~1974)
주동식[8] (1972~1981)
홈 경기 중계 채널
(CS)
파일:가오라스포츠 로고.png
링크 파일: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심볼.svg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일본시리즈 우승 (3회)
1962, 2006, 2016
퍼시픽 리그 우승 (7회)
1962, 1981, 2006, 2007, 2009, 2012, 2016
전, 후기 리그 우승 (2회)
1981 후기, 1982 후기
클라이맥스 시리즈 우승 (4회)
2007, 2009, 2012, 2016
플레이오프 우승 (2회)
1981, 2006
교류전 우승 (1회)
2007
아시아 시리즈 우승 (1회)
2006
포스트시즌 진출 (1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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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이맥스 시리즈 2007년, 2008년, 2009년, 2011년, 2012년, 2014년, 2015년, 2016년, 2018년, 2024년
퍼시픽 리그 플레이오프 1981년, 1982년, 2004년,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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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구단 역사3. 홈구장4. 유니폼5. 응원가6. 관중 수 추이7. 팀 컬러
7.1. 드래프트 지명 방식: 상남자 스타일7.2. 유쾌한 덕아웃 분위기7.3. 골든 글러브
8. 이야깃거리
8.1. 라이벌리
9. 선수단10. 역대 선수11. 역대 감독12. 영구 결번13. 역대 성적
13.1. 단일리그 시대13.2. 양대리그 분리 이후
14.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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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프로야구 퍼시픽 리그 소속 프로 야구단. 연고지는 홋카이도. 모기업은 일본의 식품회사인 닛폰햄이다.

팀 명칭인 파이터즈는 싸움꾼들이란 뜻으로 1974년 닛폰햄이 구단을 매입할 당시 팬 공모로 새롭게 개칭한 이름이며, 팀을 줄여서 부를 때는 보통 ハム[9] 혹은 日ハム라 부른다.

한국에서는 NPB 레전드 장훈 백인천이 활약하고 몸 담은 팀으로 잘 알려져있고, 일본 내에서는 메이저리그에서 활약 중인 다르빗슈 유, 오타니 쇼헤이의 친정 팀으로 유명하다.

한국에서는 일본의 국명이 ' 니혼'이라는 발음으로 잘 알려져 있고 '닛폰'에 비해 어감이 부드러워서 이 구단을 니혼햄이라고도 부르지만, 닛폰햄은 기업의 상호명이므로[10] 니혼햄이 아닌 닛폰햄이라고 부르는 것이 옳다.

2. 구단 역사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역사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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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홈구장

2003년 홋카이도로 연고이전 후 삿포로 돔을 제 1홈구장으로 사용했다가 2023년 신구장 에스콘 필드 홋카이도로 이전했다. 건설 비용은 무려 600억엔.[11]

기존에 사용하던 홈구장인 삿포로 돔이 삿포로시의 소유였기 때문에 연간 26억엔을 삿포로시에 지불해야 했고, 경기 종료 때마다 트레이닝 기구를 일일이 치워야 하는 불편함까지 있었다. 게다가 인조잔디[12] 등 주요 시설 보수에 제약이 걸리는 까닭에 닛폰햄은 2016년부터 신구장 이전계획을 수립하였다. 이 계획은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를 성공적으로 살려낸 사업총괄본부장 마에자와 켄이 주도했고, 닛폰햄과 기타 프로야구 팀 팬들로부터 폭넓은 지지를 얻었다. 2017년 10월 시점에서는 삿포로시 키타히로시마시 두 곳으로 후보지가 좁혀졌으며, 두 시 모두 신구장 유치에 적극적이었다.

이후 키타히로시마시 새 구장 건설을 공식 발표하였으며, 2020년에 착공, 2023년에 완공하였다. 공식PV 건설 도중에 온천이 터져서 온천시설을 같이 둘 계획이며, JR 홋카이도에서는 2027년에야 신구장 앞에 역을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기사

2023년에는 신구장으로 옮기면서 신구장 이외의 경기를 치르지 않지만[13] 원래 도쿄 돔과 홋카이도 지역 곳곳에서 지방구장 경기를 치렀다. 대표적으로 다음과 같다.

홋카이도 지방경기의 경우 주로 평일에 개최하며 2013년 조명탑을 설치한 아사히카와시에 있는 스타루힌 구장 이외의 곳은 야간경기가 불가능하다.[15] 한편 스타루힌 구장은 일본프로야구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한 야간경기 개최 구장으로 기록되었다.

이외에도 홈이 치바현에 있는 2군도 종종 홋카이도에서 2군 경기를 치른다. 보통 1군이 사용하는 구장은 가지 않고 몬베츠, 시베츠, 토마코마이, 네무로 등 1군 경기가 치러지기는 어려운 구장에서 경기를 한다.

4. 유니폼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유니폼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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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응원가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응원가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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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관중 수 추이

<rowcolor=#fff> 연도 총 관중 일일 평균
삿포로 돔
2009년 1,992,172명 27,699명
2010년 1,945,944명 27,027명
2011년 1,990,338명 27,644명
2012년 1,858,524명 25,813명
2013년 1,855,655명 25,773명
2014년 1,897,789명 26,358명
2015년 1,959,943명 27,221명
2016년 2,078,981명 29,281명
2017년 2,086,410명 28,978명
2018년 1,968,916명 27,731명
2019년 1,970,516명 27,368명
2020년 276,471명 4,608명
2021년 544,818명 7,673명
2022년 1,291,495명 17,937명
에스콘 필드 홋카이도
2023년 1,882,046명 26,508명

7. 팀 컬러

도쿄에서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함께 코라쿠엔 구장, 도쿄돔을 공유할 적엔 좁은 구장을 사용했기에 구장 조건에 맞게 전반적으로 타격이 강점인 팀이었다. 오오스기 카츠오, 장훈, 토미 크루즈, 오가사와라 미치히로, 나이젤 윌슨, 타무라 후지오 등등 수많은 강타자들이 이 팀의 역사를 수놓으며 빅뱅 타선이란 애칭으로 불렸다. 다만 시대를 안 가리고 에이스 투수들을 꾸준히 배출하며 투수진도 풍부하게 갖췄던 요미우리와는 정반대로 니시자키 유키히로 같은 에이스 투수 자체는 나왔을지언정 그 에이스 이외의 투수진이 허약했던 탓에 성적이 별로 좋지 못했다. 이렇게 성적이 잘 안 나오다 보니 같은 동네의 요미우리와 야쿠르트 스왈로즈는 물론, 사이타마현으로 이사를 와 최전성기를 누리던 세이부 라이온즈한테도 인기에서 밀려 서글픈 세월을 보내야 했다.

이 암울한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2004년 팀이 홋카이도로 이전함과 동시에 투수 중심의 팀컬러로 바뀌게 되는데, 새로 옮긴 삿포로 돔이 홈런 테라스 설치 이전의 후쿠오카 돔이나 나고야 돔에 비견되는 넓은 외야와 높은 펜스를 가진데다 다목적 구장이라는 점 때문에 파울지역 또한 광활한 전형적인 투수친화 구장이었기 때문. 특히 넓은 외야 때문에 닛폰햄은 신조 츠요시, 모리모토 히초리, 이나바 아츠노리, 이토이 요시오, 양다이강 등 발이 빠르고 수비력이 좋은 외야수를 위주로 타선을 꾸렸고, 슈퍼 에이스 다르빗슈 유를 중심으로 타케다 마사루, 야기 토모야 등이 뒤를 받쳐주고 타케다 히사시, 마이클 나카무라, 마스이 히로토시 등의 불펜진이 걸어잠그는 단단한 투수진을 갖추어 기동력 좋은 중거리포들의 연속 안타와 도루로 점수를 뽑고 강력한 투수진과 철벽수비로 점수를 내주지 않는 야구를 했다. 여기에 도쿄돔 시절의 거포 위주의 공격 스타일도 완전히 버리진 않았기에 오가사와라 미치히로, 페르난도 세기뇰, 터멜 슬레지, 미첼 아브레이유, 브랜든 레어드 같은 홈런 타자들도 중심타선에서 팀을 지탱했다.

이렇게 공격만 좋던 야구에서 공격, 수비, 투수 모두 조화된 야구로 탈바꿈한 덕에 2006년에 44년 만의 일본시리즈 제패를 이뤄낸 것을 시작으로 10년 가까이 퍼시픽 리그의 강팀으로 군림했다. 2000년대 후반에는 단연코 독보적인 퍼시픽 리그 최강팀이었으며, 2010년대에는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가 치고 올라왔음에도 파이터즈 역시 호크스와 항상 리그 우승을 놓고 다퉜다. 이 기간 동안에는 세대교체도 잘 되어 다르빗슈가 가니 오타니 쇼헤이가 오고 이나바가 가니 나카타 쇼가 오는 식으로 오랜 시간 강팀으로 군림했다.

그러나 2016년 오타니가 이끈 우승을 마지막 불꽃으로 암흑기에 빠져들었다. 잇따른 드래프트 1픽의 실패와 팜의 황폐화, 메이저 리그로 진출한 오타니와 아리하라, FA로 떠난 양다이강이나 레어드, 불미스러운 일로 방출된 나카타와 니시카와 등 유출되는 전력에 비해 세대 교체가 진행되지 않았고, 이 참에 리셋버튼 한번 누르자는 팀의 리빌딩 기조로 인해 노쇠화가 온 베테랑들을 대거 방출하며 경험이 부족한 어린 선수들로 팀을 운영하고 있다.

삿포로 이전 이후로는 넓은 투수구장 탓에 장타형 타자 육성에 어려움을 겪는 팀이었으나, 2023년 상대적으로 좁은 편인 에스콘 필드로 이전 후 타자들이 단체로 잠재력이 만개하기 시작해 기존의 이토 히로미를 필두로 수준급의 투수진에 더해 만나미 츄세이, 노무라 유키, 키요미야 코타로 등 젊은 타자들이 잠재력을 뽐내고 있어 다시금 비상할 희망이 보이고 있고 2024년 6년 만의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로 결실을 봤다.

7.1. 드래프트 지명 방식: 상남자 스타일

연고지 이전 이후에 참가한 신인 드래프트에서 뽑은 1라운더들이 대박을 치는 경우가 많다. 다르빗슈 유, 나카타 쇼, 손수건 왕자 사이토 유키, 아리하라 코헤이 등이 드래프트 1라운더들이다. 또한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의 추파를 받았을 정도로 2012 시즌 일본 고교야구의 핫이슈였던 오타니 쇼헤이 역시 이 팀에 지명되어 입단했다.

이처럼 1라운더들이 다른 팀에 비해 대박을 치는 가장 큰 이유는 고졸/대졸/사회인을 안 가리고 그해 아마추어 최고 유망주로 평가받는 선수를 무조건 지명하기 때문이다. 이상한 말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이는 일본프로야구의 신인 드래프트 1순위 지명 방식 때문인데, 해당 선수가 2팀 이상의 지명을 받았을 경우 제비뽑기로 팀을 선정하지만 딱 한 팀만 그 선수를 지명했을 경우 무조건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원하는 선수를 제비뽑기를 통해 뽑았다고 해도, 넘어야 할 산이 있다.

과거 일본에서는 특급선수들이 보통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선호하기에[16] 이런 선수가 다른 구단의 1순위 지명을 받게 되었을 때 "난 요미우리가 아니면 프로에 안 가겠다"라며 지명 거부를 선언하고 사회인야구로 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요미우리에 가고 싶어서 2번이나 드래프트에서 지명을 거부한 쵸노 히사요시. 굳이 요미우리가 아니라 다른 구단을 원할 때도 마찬가지라서 이런 경우 구단들은 1순위 지명권을 그냥 날려버리기 때문에 선수가 드래프트 전에 선호하는 팀을 언급하면 다른 팀들은 해당 선수의 지명을 피한다. 그러나 파이터즈는 그런 것을 신경쓰지 않고 그냥 입단하길 원하는 특급선수가 있으면 그 선수의 희망사항와 상관없이 드래프트에서 지명해버린다.[17] 그리고 최종적으로 지명한 선수들이 못 하더라도 중박은 쳐주는 편이다.

닛폰햄의 경우 일본 최북부의 홋카이도라는 연고지 위치[18]도 그렇고, 강팀이라는 이미지가 약해서 물을 먹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런 소신있는 지명 방식 및 체계적인 육성시스템 덕에 1라운더 대박이 자주 나오는 것이기도 하다. 자세한 내용은 로또 전쟁: 일본의 신인지명 이야기라는 글을 참조.

2017년에 또 그렇게 지명했는데 무려 7구단이나 지명을 한 키요미야 코타로를 제비뽑기에 성공하면서 당당하게 데려왔다! 쿠리야마 감독이 추첨픽을 할 때마다 삽질을 해서 GM 보좌인 키다 마사오가 왼손으로[19] 뽑았는데 결과는 대성공.

그리고 2018년 드래프트에서도 당초 내야수 최대어인 네오 아키라를 뽑으려고 추첨에 지원했으나 네오는 추첨에서 승리한 주니치 드래곤즈로 갔는데, 어부지리로 코시엔 준우승팀인 카나아시 농업고등학교의 에이스인 요시다 코세이를 데려왔다.[20][21]

드래프트 뿐만 아니라 선수 선방, 트레이드 면에서도 사건 사고를 일으키거나 워크에씩 면에서 평판이 나빴던 선수들을 과감히 데려와서 갱생시키는 사례가 많아[22] 아바시리 형무소 <북쪽의 갱생시설>로 불린다. 니오카 토모히로, 하쿠무라 아키히로[23]가 그 좋은 사례다. 그 덕에 선수가 사회면에 나오는 일이 별로 없고[24] 사이토 유키는 오히려 교통사고를 당한 시민의 목숨을 구해내 좋은 쪽으로 화제가 되었다.
  • 본인들 스타일대로 갔다가 날려먹은 사례
    • 스가노 토모유키는 대학야구를 씹어먹고 2011년 드래프트에 참가, 당대 최고 선수로 많은 구단들이 탐을 냈었다. 그러나 스가노는 요미우리 자이언츠 팬이자,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감독이었던 하라 타츠노리의 외조카였기에 요미우리가 아니면 절대 프로에 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당연히 뽑더라도 계약을 거부할 게 뻔해서 다른 구단들은 그냥 스가노 쟁탈전에서 빠졌지만, 닛폰햄은 그런 거 상관없이 스가노를 강행지명.[25] 제비뽑기에서 승리하며 지명권을 따냈지만 스가노는 예상대로 지명을 거부한 채 대학의 졸업유예 제도를 이용해 드래프트를 1년 재수했고, 결국 다음해 드래프트에서 그토록 원하던 요미우리의 1순위 지명을 받고 입단했다. 이 선택은 스가노 본인에게 행복과 동시에 독이 되었는데, 요미우리에서 에이스로 성장한 것과는 별개로 요미우리가 포스팅 시스템을 불허하는 방침과 부실한 선발투수 사정이 합쳐져 사실상 메이저리그 진출이 힘들어지게 되었다.[26] 재밌게도 닛폰햄이 그 다음 순위에서 뽑은 선수가 2022년 퍼시픽리그 베스트나인, 수위타자 타이틀을 수상한 마츠모토 고와 요미우리를 거쳐 치바 롯데의 외야수로 있는[27] 이시카와 신고, 2020 도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퍼시픽리그 베스트나인 3회 수상을 거두면서 소프트뱅크로 FA 대박을 친 콘도 켄스케, 올스타 2회 수상한 팀 선발자원 우와사와 나오유키. 정작 그 해 요미우리 드래프트는 좌완 선발 이마무라 노부타카, 히로시마로 간 이치오카 류지 이외에는 모두 망했으며, 2012년 드래프트에서 스가노를 뽑았지만 그 외에는 모두 실패하는 등 큰 대가를 치렀다.

    • 2013년 드래프트에서 당당히 소신 픽을 했지만 일본프로야구 역사상 첫 제비뽑기 3연패를 달성하며 1라운드 꼴찌 픽을 하게 된다. 이는 전년도 꼴지팀이 1라운드 꼴찌 픽을 한 사례이기도 하다. 결국 닛폰햄은 울면서 와타나베 료를 지명했다.[28][29] 와타나베 료는 18시즌 까지는 그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지만 19시즌엔 공갈포로, 20시즌부터는 4번 나카타 쇼를 이은 5번 타자로서 쏠쏠히 활약해주었다. 허나 22시즌엔 전혀 활약하지 못했고, 2:2 트레이드를 통해 한신으로 이적했다.
  • 본인들 스타일대로 갔다가 대박을 친 사례
    • 다르빗슈 유는 당시 고교야구 최고의 투수중 한명이었지만, 자기관리에 대한 물음표가 있었다.[30] 그러나 닛폰햄은 신경 안 쓴다며 당당하게 소신픽 했고, 단독 1픽을 뽑아내며 입단에 성공하게 된다. 그리고 다르빗슈는 프로에 와서 금연을 하는 등 나아진 모습을 보여주었고, 20세의 어린 나이부터 일본프로야구를 폭격하고 거액의 포스팅비로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까지 건너갔다.

    • 오타니 쇼헤이는 고교야구 시절 최고의 타자라는 평가를 받았고, 투수로서도 하드웨어적인 측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당연히 많은 구단들도 관심을 가졌지만 오타니는 "나 메이저 갈꺼임 건들지 마셈"이라고 선언해 다들 눈치보고 빠질 기미를 보였다. 그러나 상남자 닛폰햄 파이터즈는 또 다시 "어쩌라고."라며 패기있게 1픽으로 지명,[31] 결국 지명권을 따낸후 설득을 거쳐 오타니를 데려오는 데 성공했다.[32] 그리고 오타니는 투수와 타자에서 역대급 성적을 찍으며 2016년 일본시리즈 우승에 절대적으로 공헌하였고, 선배 다르빗슈를 따라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로 진출했다. 다만 포스팅 비용에 관해서는 네임밸류와 성적에 비하면 좀 낮은 편인데, 이는 MLB와 NPB간의 협약에 의해 상한치를 20M으로 고정해버린 탓이 크다. 이 때문에 다르빗슈의 반도 안되는 금액으로 책정되었다. 물론 상한치가 20M이라 매우 큰 돈이긴 하므로 닛폰햄 입장에서 큰 이득이긴 하지만 오래오래 잘 써먹고 비싸게 판 다르빗슈에 비해서 몇 년 못 쓰고 싸게 판 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최근에는 키요미야 코타로, 요시다 코세이 등을 지명했는데 성장이 더디면서 드래프트 명가라는 명성의 빛이 바래고 있는 중이다. 더구나 그 해 최고의 선수를 뽑는다는 전략으로 1순위 지명에서 네오 아키라[33], 사사키 로키 등을 지명하면서 다른 구단과 경합했다가 추첨에서 패하면서 그 사이에 다른 쓸 만한 선수들도 타구단에 뺏기고, 원래 보강이 필요한 포지션이 아닌 다른 포지션의 2티어급 선수들을 1순위로 지명하면서 처음에 구상했던 계획이 어그러지는 등 상남자 스타일 지명의 부정적인 측면이 두드러지는 중이다. FA 등 외부에서 전력을 보강할 생각이 없다면 아마추어 시절의 화제성만 쫓지 말고 히로시마처럼 면밀한 조사를 바탕으로 쓸만한 선수들 단독으로 낚는 틈새전략을 취하는 방향으로 전환하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결국 2020년 드래프트에서는 최대어인 하야카와 타카히사를 포기하고 연고지 출신이며 대졸 투수 중 2-3번째로 평가받던 이토 히로미 단독지명으로 선회했다. 그리고 이토는 첫 시즌부터 선발진에 합류하여 연이어 호투를 펼치며 성공적으로 데뷔했고, 2020 도쿄 올림픽 202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 차출되어 우승에 기여하기도 했다.

여담으로 2023년 콘도 켄스케의 FA 보상 선수로 타나카 세이기를 데려오면서 졸지에 1순위 지명 선수를 데려오게 되었다. 당시 타나카를 놓치고 1순위로 데려온 선수가 2021년 퍼시픽 리그 최우수 중간 계투인 호리 미즈키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타나카에게 나름의 기대를 건 셈. 그리고 그 타나카는 마무리 투수로 47경기 25세이브를 기록하며 프로 첫 풀타임 시즌을 성공적으로 소화해냈다.

7.2. 유쾌한 덕아웃 분위기

파일:attachment/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1.jpg
파일:attachment/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2.jpg 파일:attachment/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3.jpg

괴짜 야구선수로 유명한 신조 츠요시의 영향 때문인지 몰라도 비범한 장난들이 많은 편이다. 그러나 단순한 장난 이상으로 생각해야 할 것이, 홋카이도로 막 이전한 미미한 구단이 존재감을 확보할 수 있었던 데는 이러한 팬서비스가 크게 도움이 되었다. 똘끼의 주범인 신조가 프로야구계에서 팬서비스를 유달리 강조한 선수이기도 했고. 파이터즈 프랜차이즈 역대 모기업 중에 특촬물 제작기업이던 토에이 산하의 야구단이었다 보니 위의 사진처럼 특촬물과 연관지어서 장난치기도 했다.[34]

이후 신조가 닛폰햄 유니폼을 입고 은퇴하고 난 후 모리모토 히초리가 대를 이어가고 있다가 요코하마 베이스타즈로 이적했다. 모리모토 이후 묘한 정신 세계의 외야수 계보는 이토이 요시오가 이었지만, 이토이도 현재는 오릭스 버팔로즈를 찍고 한신 타이거스로 가버렸다.

2022년 신조가 감독으로 부임하며 팬들은 감독부터 선수까지 어떤 개그가 펼쳐질지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워크에씩을 중요시하는 신조의 방침에 따라 심한 개그는 치지 않는 편. 대신 부임 첫 해에는 신조 스스로 <빅 보스>라고 칭하며 시즌을 진행했다. 본인도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1년만에 포기하고 자신의 실명으로 돌아와 웃음을 자아내기도.

7.3. 골든 글러브

팀은 1993년부터 2020년까지 단 한 해도 빼놓지 않고 매년 최소 1명씩 골든글러브 수상자를 배출했었다. 이는 퍼시픽 리그 최장기록. 특히 오가사와라 미치히로(5회 수상)가 거쳐갔고 나카타 쇼가 지켰던 1루수 부문은 무려 수상 16회. 그러나 2021시즌, 아무도 골든글러브를 수상하지 못했고,[35] 28년간의 전통은 과거의 이야기가 되었다.

8. 이야깃거리

  • 구단 공식 응원가로 파이터즈 찬가가 있는데, 1977년에 제작된 곡으로 퍼시픽 리그 구단가 중 가장 오래된 응원가이기도 하다. 참고로 원판 가수는 애니송 가수로 유명한 사사키 이사오.

  • 2022 시즌부터 이닝 교대마다 키츠네 댄스(여우 댄스) 타임이 생겼다. The Fox를 차용해서 중독성있는 음악과 귀여운 춤동작으로 인기를 얻었고, 그 영향으로 인해 2022년도에 일본에서 The Fox가 역주행까지 하였으며 유행에 편승해 Ylvis 삿포로 돔에서 The Fox를 열창 했다.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2022 홍백가합전에서 닛폰햄 파이터즈 치어리더들이 노기자카46와 이 곡으로 키츠네 댄스를 선보여서 간접적으로 출현하는 쾌거를 이뤘다.[36]
  • 닛폰햄의 야구 중계 시 닛폰햄 타자가 홈런을 치면 'It's going! It is Gone! See You Later! Good Bye!'라는 영어 멘트를 들을 수 있었는데, 이는 콘도 유지(近藤祐司) 아나운서 특유의 홈런콜이다. 그의 홈런콜만 모은 동영상이 유튜브에 있다. 2022년 시즌을 끝으로 닛폰햄 중계를 그만두었기에 아쉽게도 현재는 들을 수 없다.
  • 모기업 닛폰햄이 주요 주주를 맡고 있는[37] 세레소 오사카와 친밀한 관계로 양 구단 관계자들이 서로의 구장을 찾아 행사를 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삿포로 돔에서 세레소 서포터들이 "닛폰햄 고맙습니다"라는 걸개를 걸어 놓아 홋카이도 콘사돌레 삿포로 팬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8.1. 라이벌리

  • 팀 자체가 그동안 뭔가 뚜렷한 팀 컬러를 보여주지 못해서 이렇다 할 라이벌이 없었다. 토에이 시절에는 도쿄 오리온즈 정도가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었으나 두 팀 다 바닥에서 헤매는 팀이라 자기 앞가림하기도 바빠서 라이벌까지 챙길 여력이 안 됐고, 오리온즈가 롯데에게 넘어가고 일본 전국을 떠도는 신세가 되고서는 그나마 그런 라이벌 의식도 희석되었다.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가 사이타마로 이사오자 간토 지역의 팀이라는 배경으로 세이부를 라이벌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었으나 황금기 시절의 세이부와는 모든 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아서 두 팀을 라이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그냥 혼자만의 희망사항에 가까웠다. 또 같은 구장을 홈으로 쓰고 있다는 이유로 요미우리 자이언츠와도 엮이려고 했으나 일단 그 홈구장의 세입자 신세인 데다가 리그 자체가 달라서 시범경기 때를 제외하면 붙을 일이 거의 없었고, 1981년 일본시리즈를 제외하면 일본시리즈에서도 맞붙지 못했다. 이후 홋카이도로 이전하게 되어 안 그래도 희미했던 라이벌 의식은 거의 사라져 버렸다. 이전 후 요미우리와의 일본시리즈를 두번 더 치렀지만 이미 그 때는 같은 홈구장을 쓰는 덕아웃 라이벌이 아닌 도쿄의 전국구 강팀 대 홋카이도를 연고로 하는 지역 팀의 대결구도가 돼서 딱히 라이벌전이라고 하기도 애매한 상태였다.
  • 현재 라이벌로 꼽으라면 대표적으로 나오는 팀은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본래 2000년대엔 닛폰햄이 파리그 최강팀이었으나, 호크스도 항상 닛폰햄의 자리를 위협하는 2인자 그룹에 있었고 2010년대 강팀으로 성장한 호크스가 급격히 치고 올라와 최강팀이 되며 2010년대 초중반에는 파이터즈와 파리그 우승을 두고 항상 다투는 사이가 되었기에 포스트시즌에서도 자주 맞붙어서 볼 만한 승부를 연출하기도 했다. 게다가 NPB의 최북단 팀과 최남단 팀이자 각각 도쿄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팀이라는 관계가 작용해서 실력적인 측면에서는 닛폰햄 팬들은 소프트뱅크를 라이벌시 한다. 이건 소프트뱅크 팬덤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아 전통의 라이벌인 세이부 다음으로 라이벌시하는 중이다.
  • 또 하나의 라이벌은 오릭스 버팔로스가 있는데, 악연보다는 7회 초 오릭스의 럭키 세븐 타임에 나오는 개그 멘트 때문. 이에 장난식 라이벌리로 치부되기도 한다.

9. 선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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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역대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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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카이도 시대에 이 팀을 대표했던 선수는 다름아닌 다르빗슈 유.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자주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한국인에게도 친숙한 선수다. 이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로 진출하여 텍사스 레인저스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시카고 컵스를 거쳐 현재는 김하성과 함께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소속이다.

또 한 명을 꼽자면 역시 10년만에 우승을 가져다 준 오타니 쇼헤이. 2015 WBSC 프리미어 12에서 어마어마한 구속과 함께 한국 대표팀을 완벽하게 틀어막아 한국인들에게 큰 인상을 남겼고,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 진출해 투타겸업을 완벽히 해내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202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우승의 주역이 되며 야구팬 뿐만 아닌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많은 인지도가 생겼다.

재일한국계 레전드 장훈도 이 팀에서 장기간 활약했다.

이외에 공수겸장 2루수 타나카 켄스케[38], 야쿠르트 스왈로즈에서 이적해온 강타자 이나바 아츠노리, 한국계 카네코 마코토 모리모토 히초리, 팀의 수석코치를 역임한 오가사와라 미치히로 등이 이 팀을 빛냈다.

11. 역대 감독

{{{#!wiki style="margin: -10px -10px" <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06298> 파일: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엠블럼(유색배경).svg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역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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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펼치기 · 접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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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초대
요코자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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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
2대
가리타
파일:일본 국기.svg
(1947~1948)
3대
이노카와
파일:일본 국기.svg
(1949~1950)
4대
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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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
5대
이노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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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1954)
6대
야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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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
7대
이와모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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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1960)
8대
미즈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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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1967)
9대
오시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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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
10대
마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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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1970)
11대
타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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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1973)
12대
도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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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
13대
나카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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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1975)
14대
오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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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1983)
15대
우에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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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16대
다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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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1988)
17대
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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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1991)
18대
도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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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
19대
오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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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1994)
20대
우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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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1999)
21대
오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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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2002)
22대
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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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2007)
23대
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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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2011)
24대
쿠리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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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2021)
25대
신조
파일:일본 국기.svg
(20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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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영구 결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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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구 결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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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ccac00> No. 100
<rowcolor=#000000> 오코소 요시노리
}}}}}}}}} ||
  • No. 100 : 오코소 요시노리(大社 義規) - 닛폰햄 초대 구단주.
그 외의 영구 결번은 아직 없는 상태이나 구단 역사상 최고의 선수들이자 메이저리그로 진출한 다르빗슈 유 오타니 쇼헤이의 11번은 오타니의 메이저리그 진출 이후 어떤 선수에게도 지급되지 않고 있다.

13. 역대 성적

­ 리그 우승[41]
­ 2위
­ 3위
B클래스

13.1. 단일리그 시대

<rowcolor=#ffffff> 연도 정규시즌 순위 최종순위 팀이름 경기수 승률
1946 5위/8팀 <colbgcolor=#0066b3><colcolor=#ffffff> 5위 세네터스 105 47 58 0 .448
1947 6위/8팀 6위 도큐 플라이어즈 119 51 65 3 .440
1948 5위/8팀 5위 큐에이 플라이어즈 140 59 70 11 .457
1949 7위/8팀 7위 도큐 플라이어즈 138 64 73 1 .467

13.2. 양대리그 분리 이후

<rowcolor=#ffffff> 연도 정규시즌 순위 최종순위 팀이름 경기수 승률 포스트시즌
1950 6위/7팀 <colbgcolor=#0066b3><colcolor=#ffffff> 6위 도큐 플라이어즈 120 51 69 0 .425
1951 6위/7팀 6위 102 38 56 8 .420
1952 6위/7팀 6위 108 49 59 0 .454
1953 6위/7팀 6위 120 50 67 3 .427
1954 7위/8팀 7위 토에이 플라이어즈 140 52 86 2 .377
1955 7위/8팀 7위 143 51 89 3 .364
1956 6위/8팀 6위 154 58 92 4 .390
1957 5위/7팀 5위 132 56 73 3 .436
1958 5위/6팀 5위 130 57 70 3 .450
1959 3위/6팀 3위 135 67 63 5 .515
1960 5위/6팀 5위 132 52 78 2 .400
1961 2위/6팀 2위 140 83 52 5 .611
1962 1위/6팀 우승 133 78 52 3 .600 일본시리즈 (4-1-2 vs 한신)
1963 3위/6팀 3위 150 76 71 3 .517
1964 3위/6팀 3위 150 78 68 4 .534
1965 2위/6팀 2위 140 76 61 3 .555
1966 3위/6팀 3위 136 70 60 6 .539
1967 3위/6팀 3위 134 65 65 4 .500
1968 6위/6팀 6위 135 51 79 5 .392
1969 4위/6팀 4위 130 57 70 3 .449
1970 5위/6팀 5위 130 54 70 6 .436
1971 5위/6팀 5위 130 44 74 12 373
1972 4위/6팀 4위 130 63 61 6 .508
1973 전기 5위/6팀
후기 3위/6팀
5위 닛타쿠홈 플라이어즈 130 55 69 6 .444
1974 전기 6위/6팀
후기 6위/6팀
6위 닛폰햄 파이터즈 130 49 75 6 .395
1975 전기 4위/6팀
후기 4위/6팀
6위 130 55 63 12 .466
1976 전기 4위/6팀
후기 4위/6팀
5위 130 52 67 11 .437
1977 전기 4위/6팀
후기 4위/6팀
5위 130 58 61 11 .487
1978 전기 3위/6팀
후기 4위/6팀
3위 130 55 63 12 .466
1979 전기 3위/6팀
후기 4위/6팀
3위 130 63 60 7 .512
1980 전기 2위/6팀
후기 2위/6팀
3위 130 66 53 11 .555
1981 전기 4위/6팀
후기 1위/6팀
우승 130 68 54 8 .557 플레이오프 (3-1-1 vs 롯데)
일본시리즈 (2-4 vs 요미우리)
1982 전기 4위/6팀
후기 1위/6팀
2위 130 67 52 11 .563 플레이오프 (1-3 vs 세이부)
1983 3위/6팀 3위 130 64 59 7 .520
1984 6위/6팀 6위 130 44 73 13 .376
1985 5위/6팀 5위 130 53 65 12 .449
1986 5위/6팀 5위 130 57 65 8 .467
1987 3위/6팀 3위 130 63 60 7 .512
1988 3위/6팀 3위 130 62 65 3 .488
1989 5위/6팀 5위 130 54 73 3 .425
1990 4위/6팀 4위 130 66 63 1 .512
1991 4위/6팀 4위 130 53 72 5 .424
1992 5위/6팀 5위 130 54 73 3 .425
1993 2위/6팀 2위 130 71 52 7 .577
1994 6위/6팀 6위 130 46 79 5 .368
1995 4위/6팀 4위 130 59 68 3 .465
1996 2위/6팀 2위 130 68 58 4 .540
1997 4위/6팀 4위 135 63 71 1 .470
1998 2위/6팀 2위 135 67 65 3 .508
1999 5위/6팀 5위 135 60 73 2 .451
2000 3위/6팀 3위 135 69 65 1 .515
2001 6위/6팀 6위 140 53 84 3 .387
2002 5위/6팀 5위 140 61 76 3 .445
2003 5위/6팀 5위 140 62 74 4 .456
2004 3위/6팀 3위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133 66 65 2 .504 퍼스트 스테이지 (1-2 vs 세이부)
2005 5위/6팀 5위 136 62 71 3 .466
2006 1위/6팀 우승 136 82 54 0 .603 세컨드 스테이지 (3-0 vs 소프트뱅크)
일본시리즈 (4-1 vs 주니치)
2007 1위/6팀 우승 144 79 60 5 .568 세컨드 스테이지 (3-2 vs 롯데)
일본시리즈 (1-4 vs 주니치)
2008 3위/6팀 3위 144 73 69 2 .514 퍼스트 스테이지 (2-0 vs 오릭스)
세컨드 스테이지 (2-4 vs 세이부)
2009 1위/6팀 우승 144 82 60 2 .578 세컨드 스테이지 (4-1 vs 라쿠텐)
일본시리즈 (2-4 vs 요미우리)
2010 4위/6팀 4위 144 74 67 3 .525
2011 2위/6팀 2위 144 72 65 7 .526 퍼스트 스테이지 (0-2 vs 세이부)
2012 1위/6팀 우승 144 74 59 11 .556 파이널 스테이지 (4-0 vs 소프트뱅크)
일본시리즈 (2-4 vs 요미우리)
2013 6위/6팀 6위 144 64 78 2 .451
2014 3위/6팀 3위 144 73 68 3 .518 퍼스트 스테이지 (2-1 vs 오릭스)
파이널 스테이지 (3-4 vs 소프트뱅크)
2015 2위/6팀 2위 143 79 62 2 .560 퍼스트 스테이지 (1-2 vs 롯데)
2016 1위/6팀 우승 143 87 53 3 .621 파이널 스테이지 (4-2 vs 소프트뱅크)
일본시리즈 (4-2 vs 히로시마)
2017 5위/6팀 5위 143 60 83 0 .420
2018 3위/6팀 3위 143 74 66 3 .529 퍼스트 스테이지(1-2 vs 소프트뱅크)
2019 5위/6팀 5위 143 65 73 5 .471
2020 5위/6팀 5위 120 53 62 5 .461
2021 5위/6팀 5위 143 55 68 20 .447
2022 6위/6팀 6위 143 59 81 3 .421
2023 6위/6팀 6위 143 60 82 1 .423
2024 2위/6팀 2위 143 75 60 8 .556 퍼스트 스테이지(2-1 vs 롯데)
파이널 스테이지 (0-4 vs 소프트뱅크)
<rowcolor=#000> NPB 통산 79시즌 리그우승 7회 10600 4902 5307 391 .480 일본시리즈 우승 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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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립국어원 용례에서는 '닛폰 햄 파이터스'로 표기한다. [2] 현재의 구단 법인은 2003년 8월 설립되었고, 2004년 연초에 기존의 구단 법인인 닛폰햄구단㈜(日本ハム球団株式会社)으로부터 프로야구단 사업 일체를 넘겨받았다. 참고로 현재 구단 법인은 닛폰햄㈜이 필두주주로써 홋카이도 소재의 주요기업들이 출자한 상태이며, 이전의 구단 법인은 닛폰햄㈜이 100% 지분을 보유한 완전자회사 형태로 존재하였다가 프로야구단 사업 일체를 2004년 연초에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에 양도한 후 같은 해 6월에 특별청산 형태로 법인이 청산되었다. [3] 2004년 홋카이도로 연고지를 옮긴 후에도 도쿄의 파이터즈 팬들을 위해 2022년까지 매년 정기적으로 홈경기를 개최하고 있다. 다만 2020년엔 코로나19 문제로 개최가 취소됐고, 에스콘 필드 홋카이도로 홈구장을 옮긴 2023년 이후엔 도쿄돔 홈경기를 개최하고 있지 않다. 도쿄돔 정기 홈경기를 완전 폐지한 것인지는 불명. [4] J리그 홋카이도 콘사돌레 삿포로와 공용 [5] 도쿄 연고 시절에는 야구 배트를 든 기사 모양의 로고 마스코트 # 태양을 모티브로 한 교로탄, 익룡을 모티브로 한 파이티를 사용했으나 홋카이도 연고 이전 후 홋카이도 토착종인 곰과 다람쥐를 모티브로 새로 마스코트를 만들었다. [6] 본명보다 이니셜인 BB로 더 자주 불린다. [7] 일본식 이름은 하리모토 이사오(張本 勳). 재일교포.  일본프로야구 역대 최다 기록인 3085안타 기록 보유자. 이외에도 여러 기록을 가지고 있다. 현재까지 대한민국 국적을 가지고 있다. [8] 일본식 이름은 우다 도쇼쿠(宇田東植). 재일교포. [9] 인터넷에서는 야민정음 식으로 으로 줄여부르기도 한다. [10] 알파벳 표기(Nipponham)는 물론 일본 현지 발음 역시 '닛폰하무'이다. [11] 과거 1988년 당시 도쿄돔 건설 비용이 350억엔이었다. [12] 특히 인조잔디의 경우 12구단 중 최악으로 다른 돔구장이 다 쓰는 필드터프가 구장구조로 인해 사용이 불가능하다. 같은 구장을 쓰던 콘사도레는 천연잔디를 쓸 수 있던 것을 감안하면 불공평하다고밖에 할 수 없는 사안이라 2016년에 선수회에서 삿포로돔 측에 직접 잔디를 바꿔달라고 했다. [13] 비용 및 새 구장 적응 문제로 보인다. 2024년 이후에도 이럴지는 미정. 도쿄돔 경기를 매년 4-9경기씩 치러왔고, 홋카이도 도민들을 위해 지방경기를 많이 편성하기 때문에 원상복귀할 가능성이 높다. [14] 시즈오카시 인근에 닛폰햄 공장이 있어 직원 복지 차원에서 개최한다. [15] 덕분에 평일 1시에 경기가 치러지고, 일몰 콜드가 일어나기도 한다. [16] 그러나 2010년대 들어 OB 등의 간섭, 시스템상 문제로 유망주가 크지 못하는 요미우리 2, 3군 육성시스템의 악명이 높아지면서 전보다는 신인 선수들의 선호도가 떨어지는 편. 오죽하면 오카모토 카즈마가 2018년 포텐이 폭발할 때 팬들도 놀랐다. [17] 다만 이렇다고 다른 구단이 닛폰햄 같은 강행지명은 안한다는 얘기가 아니라서, 롯데는 닛폰햄 전략을 따라하여 쵸노를 강행지명했다가 결국 바비 발렌타인이 감독 자리에서 물러났다. 단 롯데는 쵸노 전에도 오미네 유타처럼 타팀 입단을 희망했던 선수의 강행지명 사례가 있었고, 1991년 코이케 히데오 강행지명 사태 등으로 인해 카네다 마사이치 감독이 해임된 사건이 있었다. [18] 다만 선수육성을 위한 2군 구장은 나리타 국제공항 근처 치바현 카마가야시에 있으며, 2군 홈구장에도 대형 컬러 LED 전광판을 설치하는 등 볼파크화에 공을 많이 들이고 있다. 홋카이도는 가을부터 기후가 쌀쌀해지기 시작해 2군 구장을 세우기가 어려운 편이기 때문. 메이저리그의 북부지구 팀들도 그래서 마이너리그 산하팀을 따뜻한 곳에 둔다. [19] 이 때 아카시야 산마가 왼손으로 뽑으라고 조언했다. [20] 요시다는 2018년 고시엔대회에서 지역예선부터 전국대회 준결승까지 10연속 완투승을 거뒀으나, 혹사의 여파로 결승전에서는 오사카 토인 고교를 맞아 5이닝 12실점 끝에 강판되었고, 원래부터 전국구로 주목받던 선수는 아녔기 때문에(혹사 때문에 지명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말도 있으나 전반적인 일본 현지의 평은 혹사랑 상관없이 고졸 최대어 수준의 선수는 아니라는 평가가 중론이었다. 좀 완고하고 거만한 일본 고교야구 팬들은 요시다가 혹사 때문에 지명받지 못했다고 하면 다짜고짜 야알못 취급할 정도다.) 아무도 먼저 지명하는 구단이 없었다. 드래프트 전 제 12회 U-18 BFA 야구선수권대회에서도 물빠따의 여파로 두산 베어스에 지명된 김대한에게 쓰리런을 맞은 뒤 득점지원을 1점만 받은 채 그대로 패전투수가 되었다. [21] 다만 요시다는 닛폰햄에서 크게 성장하지 못하고 2024년에 오릭스 버팔로즈로 이적했다. [22] 삿포로는 계획도시로 도시구조가 미국 대도시와 비슷해 의외로 삿포로역, 스스키노를 제외하면 유흥가도 없는 편이다. [23] 2013년 드래프트 6위 지명으로 입단한 투수. 입단 이전에는 명문 케이오 대학 야구부 주장으로, 실력은 있는데 잦은 규칙위반을 해 근신처분 받을 정도로 행실이 불량해서 팀 메이트 사이에서도 문제아 취급 받았지만 입단 이후로는 이전의 행실불량의 모습과는 180도 달라진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2015년을 빼면 투수로서 좋은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고, 2019년 감독과 GM의 권고를 받아들여 외야수로 전향했지만 그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해 2020년을 마지막으로 은퇴하고 금융회사에 취직했다. [24] 사고사례가 아예 없진 않아서 전직 선수이자 2군 매니저였던 미야모토 켄이 2013년 강간치상혐의로 사회면에 나오는 사건이 발생하였고, 2021년 나카타 쇼가 후배 이구치 카즈토모를 폭행하면서 근신처분을 받고 쫓겨나듯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무상 트레이드되는 사건이 터졌다. [25] 당시 요미우리의 스가노 지명이 8번째 순서로 발표되었는데, 바로 뒷 순서인 닛폰햄이 스가노를 지명하자 요미우리를 뺀 11구단 팬들의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닛폰햄이 제비뽑기까지 승리하자 현장은 요미우리를 제외하고 축제 분위기였다. [26] 다만 2020년에 구단이 이례적으로 포스팅 시스템을 허용해준 덕분에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길이 열렸으나 원하는 오퍼가 없었는지 본인이 잔류를 선언했고, 4년 후인 2024년 시즌 종료 후에 해외 FA로 메이저리그에 재도전하게 되었다. [27] 이시카와는 요미우리의 외야 뎁스가 12구단 중 가장 두터워 오히려 트레이드가 독이 된 케이스였고, 결국 2023년 롯데로 갔다. [28] 조금 더 설명하자면, 전년도 우승팀인 라쿠텐은 제비뽑기에 성공해 최대어를 가져갔다. KBO로 말하자면 2007 신인 지명에서 2006 시즌 우승팀 삼성이 양현종을 지명하고, 꼴지팀 기아가 백정현을 지명하게 된 셈. 참고로 이때 라쿠텐이 데려간 최대어가 마츠이 유키. [29] 여담으로 2픽에서 요코하마에게 밀려 빼앗긴 카키타 유타는 1군 기록 없이 입단 4년만에 방출당하면서 최악의 망픽으로 전락했고, 3픽에서 빼앗긴 카지야 렌은 소프트뱅크에 입단하여 입단 4년차인 2018년에 중간계투로 31홀드를 거두며 터졌다. [30] 2004년 9월에는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걸리는 바람에 일본고교야구연맹으로 부터 엄중경고를 받기도 했고, 도박(빠칭코)중독자이기도 했다. [31] 당시 닛폰햄의 지명자 발표는 마지막 순서였다. 바로 앞인 11번째 순서가 요미우리 자이언츠였고, 이들이 2년 연속 스가노 도모유키를 부른 직후에 나온 오타니 지명이었다. [32] 이 때 닛폰햄이 협상과정에서 오타니를 설득하기 위해 만든 보고서는 지금까지도 일본의 스포츠구단 운영 및 마케팅에서 모범적인 자료로 쓰이고 있다. [33] 다만, 네오 아키라는 포지션 변경이 너무 잦은 탓에 타츠나미 카즈요시와 주니치 프런트가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34] 사실 따지고 보면 큰 연관이 있다고 하기는 어렵다. 토에이가 마지막으로 팀을 운영했던 1972년은 가면라이더 시리즈가 시작한 지 1년이 막 지난 시점이었고 슈퍼전대 시리즈 메탈히어로 시리즈는 아직 나오지도 않았다. 재밌게도 위의 탈의 모티브인 비밀전대 고레인저의 최종보스인 흑십자총통을 맡았던 배우 야나 노부오 옹은 원래 그 야구단(토에이 플레이어즈 시절)의 투수 출신 배우다. [35] 사실 이 해에 팀 실책 1위를 찍을 정도로 수비 상태가 매우 부실했다. [36] 키츠네 댄스 그 후가 더 압권인데 The Fox가 엔카 가수 야마우치 게이스케의 곡인 恋する街角랑 리믹스 되어 당시 일부 한국 사람들이 충격 아닌 충격을 먹기도 했다(..) [37] 모기업은 아니나 지분 30% 정도로 얀마와 함께 최대 주주다. [38]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텍사스 레인저스를 거쳐 2015년 닛폰햄 복귀. [39] 일본시리즈에선 작년에 4승1패로 박살낸 주니치 드래곤즈에게 똑같은 전적으로 박살나면서 주니치의 53년 만의 일본시리즈 V2를 허용했다. 심지어 패배가 결정된 5차전은 합작 노히트 노런까지 당했다. [40] 원래 시구를 할 예정이었으나 시포 예정인 쿠리야마 히데키 감독에게 시구를 양보하고 본인이 포수 마스크를 썼다. [41] 볼드체는 일본시리즈 우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