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07 04:10:36

김혜리(평론가)

김혜리
Kim Haery
파일:김혜리 기자.jpg
출생 1971년 7월 10일 ([age(1971-07-10)]세)
서울특별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선화예술중학교 (미술과 / 졸업)
선화예술고등학교 (미술부 / 졸업)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서양사학 / 학사)
이스트 앵글리아 대학교 (영화학 / 석사)
직업 영화 평론가, 기자
경력 씨네21》 창간 준비팀 (1995년)
로테르담 영화제 심사위원 위촉 (2008년)
씨네21》 편집위원 (현직)
링크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씨네21 아이콘.pn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파일:네이버 블로그 아이콘.svg 파일:한국영상자료원 심볼.svg 파일:왓챠 아이콘.svg [1] 파일:Letterboxd 아이콘.svg

1. 개요2. 라디오/팟캐스트 출연3. 영화평 및 별점4. 저서5.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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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영화 평론가, 기자.

높은 인지도, 인기를 가지고 있는 평론가로 비디오 잡지와 프리랜서 생활을 거쳐, 1995년 한겨레신문사의 씨네21 창간팀에 채용되어 본격적으로 영화평론가 활동을 시작했다. 입사한 지 2년만에 퇴사하여 유학을 떠났다가 1998년 11월 씨네 21에 재취업. 유학은 "영화 글 쓰는 일의 밑천을 마련"하기 위한 과정이었다고 한다. 현재 씨네21 편집위원을 맡고 있다.

뛰어난 인터뷰어로도 잘 알려져 있으며, 씨네 21에서 담당했던 인터뷰 코너 '김혜리가 만난 사람'을 모아 책으로 출간하기도 하였다. 본인의 말에 따르면 "인터뷰어로서 붙임성과 순발력은 좋지 않지만, 어딘가 절박해 보이는 인상의 도움을 받고 있다"고 한다.

2. 라디오/팟캐스트 출연

2009년 9월 부터 SBS 파워 FM < 송은이 신봉선의 동고동락>에서 일요일 코너 '김혜리 바이러스'를 진행했다.

2011년 6월 1일 부터 2014년 4월 13일까지 MBC FM4U 성시경 FM 음악도시에서 금요일 코너 '영화, 사람을 만나다'를 진행했다. 흥미있게 본 영화 속 캐릭터를 분석 해설하는 코너로, 풍부한 배경지식과 인물에 대한 깊이있는 공감대를 끌어내는 설명으로 많은 고정팬들을 만들어냈다. 음악도시의 처음과 끝까지 함께한 코너이기도 하며, 반복 청취가 가장 많은 코너였다고한다. 김혜리 표현으로 덩치 큰 막내동생 같은 성시경의 짓궂은 진행과 공부 잘하고 착한 큰누나 같은 김혜리의 케미가 나름의 재미를 만들어냈다. 심현보[2]와 더불어 음악도시의 맏이 이미지(...)가 있었다. 물론 심현보는 장난으로 1953년생으로 아는 사람들이 있다 카더라[3]

2014년 4월 14일 부터 2015년 5월까지 SBS 파워 FM 이동진의 그럼에도 불구하고에서 고정코너 '김혜리의 주간영화'를 진행했다. 매주 2시간이 넘는 시간동안[4] 그 주 개봉작들에 대해 이동진과 이야기를 나누는 코너로, 김혜리 특유의 잔잔한 목소리를 마음껏 들을 수 있어 고정팬이 많았다.

2015년 11월 4일 부터 SBS 파워 FMFMzine에서 '수요 재개봉관'이라는 코너를 맡게 되었다. 조정식 DJ가 새벽1시부터 3시까지 진행하는 프로그램으로 ​'귀로 듣는 음악잡지'라는 컨셉을 갖고 있다는 듯. 이동진의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연출한 최다은 PD와 차명선, 한혜진 작가가 함께 한다. 프로그램 코너 게시판에 영화 이야기를 올리면 조정식 편집장(잡지 컨셉이라...)과 함께 소개하며 간접적인 영화 수다를 나누는 방식. 2016년 3월부터 sbs라디오 봄개편으로 새벽4시부터 6시까지 방송시간이 변경되었다. FMzine 폐간에 따라 2016년 10월 19일 방송을 끝으로 마무리되었다.

2016년 12월 20일부터 팟캐스트 김혜리의 필름클럽을 진행하고 있다. 라디오 프로그램 둘을 함께했던 최다은 피디클로이 최 임수정 배우가 함께하여 3인 체제로 하고있으며, 임수정 배우의 작품촬영 기간에는 잠시 빠지고 2인 체제로 진행되기도 한다.[5]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매주 수요일에 업로드되고 있다. 선정된 작품을 영화적(김혜리 기자) / 음악적(최다은 피디) 측면에서 서로 의견을 나누는 방식이다. SBS 팟캐스트에 속하지만 공식적인 지원은 없는 프로그램인 것으로 추정되며 그로 인해 후원을 받고 있다. 또한, 청취자 선물은 원래는 없었으나 점점 협찬이 늘어나고 있는 중. 플레인 아카이브 최소 영화요정팬

3. 영화평 및 별점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와 온기어린 시선을 보여주는 영화를 상대적으로 선호하는 듯 보인다. 영화에 등장하는 여성의 역할이나 여성 캐릭터가 활용되는 방식에도 관심이 많다.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에도 애정을 보이는 편. 의외로 인도네시아 액션 스릴러 레이드, 시리즈에도 평가가 좋다.[6]

영화 별점을 매기는 것에 대해서는 탐탁지 않아 하면서도 일종의 절충과 타협에 따른 방안이라고 여기는 듯. 2011년부터 매년 마지막 날 자신의 블로그에 한 해 관람한 극장 개봉작의 평점을 정리하여 공개한다. ★★★★★를 받은 영화는 아래와 같다.

이외에도 나의 삼촌(1958), 소매치기(1959), 플레이타임(1967), 황무지(1973), 방랑자(1985), 베로니카의 이중 생활(1991), 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2000), A.I.(2001), 투 러버스(2008), 아녜스의 해변(2008)에 만점을 줬다. #

2022년 사이트 앤 사운드 선정 역대 최고의 영화에 아래와 같은 열 편을 꼽았다. #

< 사형수 탈출하다> (1956, 로베르 브레송)
< 하나 그리고 둘> (1999, 에드워드 양)
< A.I.> (2001, 스티븐 스필버그)
< 천국의 아이들> (1945, 마르셀 까르네)
< 플레이타임> (1967, 자크 타티)
<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2015, 홍상수)
< 엉클 분미> (2010,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 자객 섭은낭> (2015, 허오샤오시엔)
< 잔느 딜망> (1975, 샹탈 아커만)
< 퍼스트 카우> (2019, 켈리 라이커트)

4. 저서

제목 발간연도
<colbgcolor=#fff,#1f2023> 《영화야 미안해》 <colbgcolor=#fff,#1f2023> 2007년
《그녀에게 말하다》[8] 2008년
《영화를 멈추다》
《진심의 탐닉》 2010년
《그림과 그림자》[9] 2011년
《다시 동화를 읽는다면》[10] 2014년
《우리가 참 아끼던 사람》[11] 2016년
《나를 보는 당신을 바라보았다》 2017년
《아가씨 아카입》[12]
《묘사하는 마음》 2022년

5. 여담

  • 대한항공 광고 "내 마음속엔 호주가 On-Air 되고 있다"에서 목소리 나레이션을 했다.
  • 서태지의 엄청난 팬으로 알려져 있다. 대학생 시절 때부터 팬클럽 활동도 활발히 했다. 음악평론가 강헌의 증언에 의하면,[14] 서태지가 한창 활동할 때, 서태지 팬클럽 사업과 관련하여 자신을 찾아왔던 어느 대학생이 나중에 보니 씨네21의 영화 기자가 되고, 유명한 영화 평론가가 되었는데, 그 사람이 바로 김혜리였다고. 김혜리는 너의 이름은.에 관한 이야기 중에 서태지의 7집 수록곡인 '10월 4일' 의 가사가 잘 어울린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왠지 요즘에 난 그 소녀가 떠올라
  • 신화에 대해 방송과 SNS에서 종종 애정 가득한 언급을 하는 편이다. 이그럼에서는 나이트크롤러를 소개하면서 순전히 영화의 소재 때문에 신혜성의 몰래카메라를 선곡한 적이 있다. 필름클럽에서는 음악중심 5분 딜레이 신화 파트를 이번 한 주 본인을 즐겁게 한 것으로 뽑기도 했다.


[1] 계정 [2] 1971년생으로 동갑이다. [3] 엄밀히 따지면 윤종신(1969년생)도 있지만 2013년 초반에 하차하면서 사실상 맏이 역할은 이 두 사람이었다(...) [4] 방송시간인 1시간을 초과하는 내용은 팟캐스트로 업로드 하는 방식 [5] 9회에서 임수정 배우의 tvN 드라마 '시카고 타자기' 합류로 인해 촬영 동안에는 참석못함을 알렸다. [6] 1편은 6점으로 무난한 점수지만 2편에 "싸움의 기술 뿐 아니라 영화 만드는 기술도 고강하다"라는 20자평과 함께 9점을 주었다. [7] 첫 평가에는 4.5개 였으나 연말결산에서 상향조정되었다. [8] 페드로 알모도바르 그녀에게에서 따온 제목이다. [9] 그림 산문집 [10] 공저 (부분 저술) [11] 공저 (부분 저술) [12] 공저 (부분 저술) [13] 이에 관해선 "회사의 부르심이 있으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이 있구나' 하는 회사원의 애환"이라 밝혔다. [14] 서태지와 아이들이 데뷔하며 엄청난 신드롬을 일으키기 시작했던 때, 서태지의 여러 음악적 시도들과 새로운 문화적 코드들을 높이 평가했던 몇 안되는 평론가 중의 하나가 바로 강헌이었다. 그래서 강헌은 서태지 팬클럽이 개최했던 음악 저작권 관련 국회 공청회나 기타 여러 기념 사업에 가장 자주 초대되는 패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