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3-11 19:23:09

귄터 랄

제 2차 세계 대전 전투기 에이스 일람
{{{#!folding [ 보기 · 닫기 ] 순위 이름 국적 격추 수 주 기종 비고
1위 에리히 하르트만 독일 352대 Bf109 세계 1위
2위 게르하르트 바르크호른 독일 301대 Bf109 세계 2위
3위 귄터 랄 독일 275대 Bf109 전후 서독 공군 총감 부임
4위 오토 키텔 독일 267대 Fw190 Fw190 톱 에이스
5위 발터 노보트니 독일 258대 Fw190
6위 빌헬름 바츠 독일 237대 Bf109
7위 에리히 루도르퍼 독일 222대
8위 하인츠 베어 독일 220대
9위 헤르만 그라프 독일 212대 Bf109 세계 최초 적기 200기 격추
10위 하인리히 에를러 독일 208대
▼ 11~20위
}}} ||


1918년 3월 10일 ~ 2009년 10월 4일

파일:external/bemil.chosun.com/ColorGuntherRall.jp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Bundesarchiv_Bild_146-2004-0010,_Ukraine,_G%C3%BCnther_Rall_mit_Kameraden.jpg
???: 이걸 위장이라고 한거냐....?
1. 개요2. 기록3. 상세

1. 개요

독일 공군의 전투기 조종사이다. 슈퍼 에이스이다.

Günther Rall, 군터 랄 / 귄터 랄이라는 두 표기가 공존하고 있는데 원어 표기상 귄터가 맞다. 아마 국내에선 인터넷에 원어를 옮기는 과정에서 Ü(U 움라우트;변모음)에 있는 점이 누락되어 귄터가 군터로 알려진 듯하다. 또 움라우트 발음이 애매하다. 귄터가 맞지만 군터라고 잘못 쓰는 사람들 마음을 이해 못 할 것도 없다. (미국 영어도 실제로 들어보면 발음이 심한 경우가 수도 없이 많지 않다.)

2. 기록

루프트바페 격추수 3위, 세계 격추수 3위

격추수 : 275

3. 상세

( 참고 주소, 1996년 9월에 잡지에 실린 인터뷰, 번역)

귄터 랄은 275기의 스코어를 기록한 독일 공군 제 3위의 에이스이면서 부상을 딛고 1년 8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240기를 격추시킨 경이적인 기록의 소유자다. 또한 랄은 아프리카의 별로 불리는 한스 요아힘 마르세이유처럼 디플렉션 슈팅(편차 사격)에 천재적인 감각을 가졌던 파일럿으로 알려져 있다.

귄터 랄은 1918년 3월 1일 바덴주에서 태어나 1936년에 고교를 졸업한 다음 곧바로 육군에 입대했지만, 2년 후인 1938년 8월 공군 파일럿으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비행훈련이 끝난 1939년 8월 그는 소위의 계급으로 JG 52 제 3 비행대에 배속되게 되는데, 이후 1944년까지 JG 52에 몸 담으면서 JG 52의 영광을 이룩하게 된다.

랄의 첫 격추는 1940년 5월 18일 프랑스 침공에서였지만, 이후 벌어진 영국 본토 항공전에서는 JG 52가 그러했듯이 그 역시 별다른 전과를 올리지 못했다. 1941년 6월 개시된 소련과의 개전에서부터 그 역시 중위로서 제8비행중대장으로 승격한 그는 그해 11월까지 30기를 격추시키게 된다.

그러나 11월 28일 공중전에서 36기째의 격추를 기록한 직후, 그가 격추한 적기의 공중 폭발로 시계가 가려진 사이 그의 비행기에 적기의 총탄이 박히기 시작했다. 동체의 날개가 크게 파손된 상태에서 그는 가까스로 애기를 몰고 아군 지역으로 귀환, 불시착했으나 이때 기체가 전복되면서 척추뼈 세 곳(8번, 9번 흉추, 15번 요추) 다치는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만다.

그는 가까스로 생명을 건졌으나 일주일 넘게 전신 깁스를 해야만 했으며, 야전병원이 자리잡고 있던 루마니아에는 엑스레이가 없어 까지 후송되었다. 한동안 몸의 오른편이 마비되었고, 의사는 당연히 앞으로 더 이상 비행기를 탈 수 없다는 진단을 내렸다. 하지만 병원 신세를 지면서도 다시 하늘을 날아야 한다는 집념으로 초인적인 의지를 발휘했다. 이때 빈에서 자신을 진찰하러 온 의사 헤르타(Hertha)와 만나고, 나중에 결혼한다.

그로부터 9개월이 지난 1942년 8월 그는 기적적으로 전선으로 복귀했다. 그가 동부전선으로 복귀한 때에는 이미 독일 공군에는 100기 이상을 격추시킨 슈퍼 에이스들이 즐비했으며, 이에 자극받은 그는 이전보다도 더욱 정력적으로 출격을 계속하여 복귀 후 1개월도 채 안돼서 65기까지 스코어를 기록, 기사 철십자장을 수여받았고, 10월 22일에는 대망의 100기 격추를 달성하게 된다.

1943년 들어서서도 그의 격추 행진은 계속되어, JG 52 제3비행대장으로 승격한 직후인 그해 8월 29일에는 헤르만 그라프 한스 필리프에 이어 전군에서 세 번째로 200기를 격추시키는 위업을 이룩한다. 부상에서 복귀한 후 약 1년만에 164기를 격추시킨 것이다. 이 공적으로 9월 12일에 전군에서 34번째로 곡엽검 기사 철십자장이 수여되었고, 그해 10월에는 한 달동안 무려 40기를 격추, 당시 톱 에이스였던 발터 노보트니와 엎치락 뒷치락하는 격추 경쟁을 전개하기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노보트니는 250기 격추후 본국으로 귀환했고, 랄은 1943년 11월 28일 두번째로 250기를 격추한 후 이듬해 4월까지 23기 격추를 보태 독일 최고 에이스의 자리에 올랐다.


좌에서 우로 각각 하르트만 그라서, 하인리히 프린츠 추 자인 비트겐슈타인, 귄터 랄, 발터 노보트니가 히틀러에게 훈장을 받고 있다. 이 장면은 제684호 독일 주간뉴스를 통해 독일 본토와 각 점령지에서 상영되었다.

1944년 4월 19일, 그는 오랫동안 몸담은 JG 52를 떠나 JG 11의 제 2 비행대장으로 임명되어 서부전선에 참가하게 된다. 동부전선과는 전혀 다른 상대를 맞아 랄은 격추 페이스가 떨어졌고, 2기 격추를 추가한 후에도 여전히 감을 잡기가 어려웠다. 그러던 중 1944년 5월 12일의 출격에서 그의 탑승기 Bf 109G-5는 미 육군항공대의 P-47 전투기에 피탄, 그는 엄지 손가락을 잃는 부상을 당하고 가까스로 낙하산 탈출을 한다. 이 부상으로 그는 디프테리아에 감염되어 또 다시 6개월간의 병원 신세를 져야만 했다. 퇴원 후 그는 JG 300의 사령관으로 부임하긴 했지만, 더 이상의 격추 전과를 올리지 못한 채 패전을 맞고 만다. 만약 이 두 번의 부상이 없었더라면 에리히 하르트만이나 게르하르트 바르크호른을 능가했을지도 모른다.

그의 총 스코어는 275기, 총 출격횟수는 621회였다. 그리고 그가 격추당한 것은 총 5차례였다고 한다.

파일:/pds/200910/24/70/e0019270_4ae25bd451c95.jpg

전쟁 후 미군의 심문을 받은 귄터 랄은 그 뒤 영국으로 보내진다. 영국 전투기 지휘관 학교에서 3주간 취조를 받을 때 한스 울리히 루델과 같이 한 방을 썼는데, 이때 루델이 자기 중심적이고 자기가 최고라고 생각하고 있어서 역겨웠다는 회고를 남기기도 했다. 그 후 서독 공군에 남아, 1956년에는 나토에서 F-104 전투기의 도입에 절대적인 공헌을 하였고,[1] 서독공군 총감, 나토 국방군 대표까지 역임한 후 중장의 계급으로 퇴역한다.

파일:/pds/200910/24/70/e0019270_4ae25bdedec01.jpg

퇴역 후에는 방산업계 쪽에서 조언자가 되고, 미국을 여행한다. 심지어 엄지 손가락을 날린 파일럿이 소속된 비행대의 지휘관과 친구가 되기도 한다.

인터뷰에 따르면, 아내 헤르타는 1988년에 죽었고, 큰 딸은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서 미술 복원가로 일하는 프랑스인과 결혼해 1982년에는 손자 클레망(Clement)이, 1984년에는 손녀 안나 루이즈(Anna Louise)가 태어났다고 한다. 그리고 작은 딸인 펠리시타(Felicita)는 BMW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는데, 같은 일을 하는 남자와 미국 캘리포니아의 패서디나(Pasadena)에서 1년간 공부를 했으며, 뮌헨에서 결혼해 1989년 1992년에 딸이 태어났다고 한다.

그는 기동전사 건담 시리즈 람바 랄, 스트라이크 위치스 시리즈의 군들라 랄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다들 아직도 정정한 척 예거에 묻혀 잊힌 감이 있는데, 스트라이크 위치스가 애니화 됐을때 아직 살아있었다.[2]

다큐멘터리 등에서 인터뷰한 장면이 남아있는걸 보면 영어도 매우 잘했다. 독일 공군 에이스들과 인터뷰를 보면 보통 독어로 말하고 영어로 보이스 오버해주는 게 보통인데, 랄은 혼자 직접 영어로 이야기하고 발음도 수준급이다.[3]


[1] 이 과정에서 군 상층부는 F-104는 못 믿을 결함기라고 주장하던 에리히 하르트만 대령을 반강제로 퇴역시켜 버렸는데, 실제 F-104는 하르트만의 우려처럼 엄청난 사고율을 기록했다. 당시 F-104G형 개수 책임자였던 귄터 랄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담당한 프로젝트로 인해 절친한 전우가 잘린 상황이라 난감했을듯. [2] 그러나 정작 본인을 모티브로 한 캐릭터는 당시 애니에 안 나와서... 나중에 2012년 극장판과, 2016년 브레이브 위치스에 등장한다. [3] 다른 2차대전의 에이스들과 비교해도 워낙 독보적으로 인터넷 시대까지 장수했다 보니 유튜브에서 인터뷰 영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