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 대전 전투기 에이스 일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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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위 | 이름 | 국적 | 격추 수 | 주 기종 | 비고 |
<colbgcolor=#156b94> 1위 | 에리히 하르트만 | 독일 | 352대 | Bf109 | 세계 1위 | |
2위 | 게르하르트 바르크호른 | 독일 | 301대 | Fw190 | 세계 2위 | |
3위 | 귄터 랄 | 독일 | 275대 | Bf109 | 전후 서독 공군 총감 부임 | |
4위 | 오토 키텔 | 독일 | 267대 | Fw190 | Fw190 톱 에이스 | |
5위 | 발터 노보트니 | 독일 | 258대 | Fw190 | ||
6위 | 빌헬름 바츠 | 독일 | 237대 | Bf109 | ||
7위 | 에리히 루도르퍼 | 독일 | 222대 | |||
8위 | 하인츠 베어 | 독일 | 220대 | |||
9위 | 헤르만 그라프 | 독일 | 212대 | Bf109 | 세계 최초 적기 200기 격추 | |
10위 | 하인리히 에를러 | 독일 | 208대 | |||
▼ 11~20위 |
<colbgcolor=#156b94><colcolor=#fff> Gerhard "Gerd" Barkhorn 게르하르트 "게르트" 바르크호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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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19년 3월 20일 |
프로이센 자유주 쾨니히스베르크 | |
사망 | 1983년 1월 11일 (향년 63세) |
서독 쾰른 | |
매장지 | 독일 바이에른 테게른제 |
군사 경력 | |
복무 | 독일 국방군 루프트바페 (1937년 ~ 1945년) |
독일 연방군 루프트바페 (1956년 ~ 1975년) | |
최종 계급 | 소령 (독일 국방군) |
소장 (독일 연방군) | |
참전 | 제2차 세계 대전 |
주요 서훈 | 백엽검 기사십자 철십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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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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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크호른의 Fw 190 D-9[1] |
2. 생애
1919년 3월 20일 프로이센 자유주 쾨니히스베르크에서 태어나 1937년 11월 18세의 나이로 루프트바페에 입대, 2차 대전 발발 직후 소위의 계급으로 JG 2 제3중대에 배속되어 전투기 파일럿으로의 첫발을 내디뎠다.1940년 8월 1일에는 JG 52 제6중대로 전속되었고, 이후 4년반 동안 그는 JG 52 제2비행대에서 지냈는데 바르크호른은 영국 본토 항공전에선 21차례 작전 비행을 하는 동안 단 1기의 격추도 기록하지 못한 들러리였고, 독소전이 개시되어서야 약체인 소련 공군을 상대로 1941년 7월 2일, 자신의 120번째 출격에서 1기를 격추하여, 최초의 스코어를 올린다.
1941년말이 되어서도 그의 격추수는 10기에 지나지 않았지만 1942년 3월 1일 JG 52의 4 중대장으로 승격함과 동시에 슬럼프를 탈출, 격추 스코어는 급상승하기 시작했다 통산 스코어 64기가 되었을 때, 그 공적으로 기사철십자 훈장을 수여 받게 되었고, 12월에는 17기의 스코어를 올려 마침내 대망의 100기 격추를 달성했다. 그리고 다음해인 1943년 1월 11일 통산 105기를 격추한 시점에서 곡엽기사철십자 훈장을 수여받은 뒤, 9월 1일에는 162기 격추를 달성하고 대위로 진급함과 동시에 JG 52 제2비행대 지휘관으로 부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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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하인리히 슈투름, 게르하르트 바르크호른, 빌헬름 바츠, 오토 푀네콜트 |
그러나 5월 31일에 통산 272기 격추를 달성한 후 공중전에서 피탄, 부상을 당해 5개월간 전선을 떠나야 했다.[2] 그해 10월에 겨우 전선에 복귀, 1945년 1월 5일 마침내 에리히 하르트만에 이어 두번째로 300기 격추를 달성했다.
1월엔 JG 52를 떠나 본토 방공 부대인 JG 6의 사령관으로 부임하였고, 이어 4월 15일 아돌프 갈란트 장군이 이끄는 JV-44로 스카웃되어 Me 262 제트전투기를 타기도 했다. 그러나 절망적인 상황하에서 더 이상의 스코어는 기록하지 못한 채 통산 301기로 종전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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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의 바르크호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