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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동음이의어)

1. 고려(高麗)
1.1. 고구려의 국호1.2. 보덕국1.3. 요동 지방의 소고구려1.4. 서북한 일대의 고구려계 토호 세력1.5. 발해의 구명(舊名)1.6. 후삼국시대의 국가 태봉의 극초기 국호1.7. 왕건이 건국한 고려1.8. 조선조 극초기 국호1.9. Korea, 한민족, 한국계 국가, 한국 문화권의 통칭1.10. 대체역사물에서의 고려
2. 무협지에서 나오는 새외 세력3. 태권도 초단 품새4. 고려()5. 보드게임 고려

1. 고려(高麗)

1.1. 고구려의 국호

장수왕 시대에 국호를 '고려'로 변경한 것으로 추정된다. 고구려를 구성하는 세 자 중에 다른 두 글자와는 달리 句가 별로 좋은 뜻이 아니어서 빼었거나[1] 발음의 변화[2]를 반영했다고 여겨진다. 중국사서에는 장수왕 이후 '고려'라고 기록되어 있으나[3] 삼국사기》에는 국호의 통일성 및 당대 왕씨의 고려 와의 구분을 위하여 고구려라고 표기했고 이를 따라 구분의 편의성을 고려하여 오늘날까지 일반적으로 고구려는 고려가 아니라 고구려라 지칭하고 있다.[4]

麗(려) 자가 나라 이름으로 사용될 때는 '리'라고 읽힌다는 점을 들어 고구려를 고구리, 고려를 고리라고 불러야 한다는 주장이 있지만[5] 고구려가 최초로 음차표기된(중국 전한시대의 서적인 '논형') 단어인 高離(고리)의 離(리)는 음차표기 되었던 전한시대 당시에는 rje(례)에 가까운 발음을 가지고 있었다.

이를 보여주는 예로 《 한서》에서는 '알렉산드리아'가 烏弋山離(아익산리)로 적혀 있다. ria를 離로 적었음을 알 수 있다. 당시에 녹음기가 없는 이상 고구려인들이 자신을 뭐라고 불렀는지 현재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일단은 고려시대 후기, 조선시대에도 고구려는 고려라고 불렀던 것으로 추정된다. 소고구려나 후고구려( 보덕국)도 같은 이름을 썼을 것으로 추정된다.

후에 918년에 왕건이 건국한 고려도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의미로 국호를 그대로 가져와 고려로 지었다. 사실상 아래 항목에 나온 고려들은 다 여기서 나온 것이다.

1.2. 보덕국

신라 왕조가 고구려부흥군 세력의 망명을 받아서 세운 괴뢰국.

보덕국이란 이름도 사용했지만 이 나라가 존재하던 그 당시엔 그냥 고구려 후기와 마찬가지로 '고려(高麗)'라는 이름을 공식적으로 사용했다. 사실 검모잠 등 고구려 유민들이 보장왕의 왕통을 잇기 위해 고구려 땅인 현 황해도 지방에서 안승을 옹립했던 게 이 나라의 시작이라서 당대 고구려 유민들은 보덕국이란 나라가 새로 세워진 게 아니라 고구려가 그대로 쭉 이어지는 연장선으로 보았다. 그래서 1차 사료에는 고구려와 구분 없이 그냥 고려라고 부른 것이다. 신라의 속국화가 된 것도 나당전쟁을 치르는 와중에 황해도에서 당나라에 패배하고 쪼그라들면서 그런 것이라 나중의 이야기였다.

훗날 왕건이 건국한 고려와 구분하기 위해 현대에는 이렇게 부르지는 않지만, 일본에 보내는 보덕국 사신은 자기 나라의 국호를 고려로 칭했다.

일본 측 기록인 일본서기에도 등장하는데, 668년~685년에 일본이 사신을 주고받은 '고려'는 이 나라를 말한다. 일본이 여기에 보내는 사신은 견당사, 견신라사 비슷한 맥락으로 견고려사라고 불렀다.[6]

별칭으로 고구려국, 후고구려국이 있었다.

1.3. 요동 지방의 소고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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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존재와 독립국가로서 정체성에 의문, 논란이 있다.

1.4. 서북한 일대의 고구려계 토호 세력

고구려 멸망 이후 등장. 평안도 함경도 일대의 토호의 경우 외연상으론 신라의 통제하에 있었으나 사실상 독립 세력이었다. 이 중 일부는 후일 패서 호족으로 발전한다. 황해도와 현 개성시 일대는 평안도에 비해 신라의 실제 통치가 이루어졌다. 태조 왕건이 송악을 기반으로한 패서 호족 중 일부였다.

1.5. 발해의 구명(舊名)

발해는 당에서 책봉한 국호인 '발해'를 이름을 일방적으로 사용했지만, 문왕과 무왕 때 일본에 보낸 외교 문서에서 발해가 고구려 영토의 부여 민족이라고 주장하거나 발해왕이 고려 국왕이라고 주장한 기록이 있다. 무왕의 경우는 고씨들을 사신으로 많이 보냈으며, 또한 무왕과 문왕은 아예 자신들을 '고려 국왕 대무예', '고려 국왕 대흠무'로 지칭하였다. 즉, 발해의 고(구)려 계승을 나타내는 기록과 발해가 '고려'라는 이름으로 불린 기록이 존재한다.

다만 이것이 타칭인지 자칭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어차피 발로로서는 일본에 보낸 서신에 고려국왕이라 자칭한 것과 부여의 풍속을 이어받고 고려의 옛 땅을 회복했다는 기록이 주라서 전후 맥락을 따저보건대 일본인들이 과거에 고구려와 친선관계를 유지하던 것을 이용한 외교적 수사일 확률이 있다.[7] 이로 인해 외교 관계인 일본인들이 속일본기에서 '일본 천황은 삼가 고려 국왕에게 문안한다'라는 문장을 적기도 했고, 이외에도 발해를 고려로 많이 기록을 남긴 것으로 보인다.

1.6. 후삼국시대의 국가 태봉의 극초기 국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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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1년 궁예가 세운 나라. 처음에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의미에서 붙은 국호다. 그러나 904년 국호가 마진으로 바뀌었고, 911년 태봉으로 국호가 바뀌었으며 918년 멸망했다. 흔히 알려진 후고구려라는 국호는 궁예가 지은 것이 아니라 후대에 두 나라를 구별하기 위해 '후'와 '구'를 붙인 것이다. 고조선의 '고'와 같은 경우다. 관찬사서인 삼국사기는 왕씨 고려의 정통성 훼손을 막기 위해 궁예가 901년 왕을 칭했다는 사실만 기록하고 국호는 생략했다. 그러나 삼국유사 연표에 고려라는 국호로 901년 건국한 것이 기재되어 있다.

1.7. 왕건이 건국한 고려

918년 왕건이 위의 태봉국의 왕인 궁예를 축출하면서 태봉국을 멸망시키고 건국한 나라. 쭉 고려라고 불렸다. 한국 사람이라면 대부분 이 고려를 떠올릴 것이다.

1.8. 조선조 극초기 국호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실이지만 이성계 조선이라는 국호를 개국 직후 바로 쓰지 않았다. 공양왕에게 선양을 받은 후에도 1393년 2월 15일까지는 고려라는 국호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즉위식도 개경 수창궁에서 거행하였다.

1.9. Korea, 한민족, 한국계 국가, 한국 문화권의 통칭

한자 문화권을 벗어나면 남북한이 함께 '고려'라는 말에서 나온 'Korea/Corea' 계통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데다가, 남한의 고려대학교나 북한의 고려항공에서 보이듯이 한국계 국가의 통칭으로도 쓰인다.

이런 쓰임새를 가진 비슷한 단어로 계림,[8] (삼)한 조선이 있다.

한자 문화권인 옆나라 중국이나 일본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통용된다.[9] 한반도의 왕조가 고려에서 조선으로 바뀐 후에도 중국, 일본에선 당시 조선 사람을 '고려인'(혹은 '한인(韓人)')이라 부르거나 신라에서 고려로 바뀌었을 때에도 고려를 신라로 부른 사례가 있다.[10] 조선의 임진왜란 당시 항왜원조(抗倭援朝)(중국식 표현)에 적극적이었던 명나라 만력제의 별명 역시 '고려천자'였고, 프랑스 출신 예수회 선교사 장 바티스트 레지(1663~1738) 신부의 보고서에 따르면 18세기에도 중국인( 청나라)들은 조선을 일상적으로 까우리궈(고려국)으로 부르고 있었다. 중국의 경우엔 지금도 한국계 사람을 욕하는 말로 ' 가오리방쯔'(高麗棒者, 고려 놈)란 말을 쓸 정도. 러시아 연해주와 구 소련 지역이었던 중앙아시아의 ' 고려인' 역시 이러한 예다. 구한말인 대한제국도 'Korea Empire'로 불려 'Daihan Empire'로 불러달라고도 했다. 이후 1948년 정부수립 시기에 한국민주당에서 국호를 '고려공화국'으로 주장했지만 27표 중 7표가 나와서 17표가 나온 '대한민국'이 국호로 결정되었다.

1.10. 대체역사물에서의 고려

대체역사물에서 주인공들이 많이 쓰이는 국호 중 하나[11]로 나온다.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 역시 조선 건국이후 멸망후 고려가 아메리카 대륙으로 재등장한다.

2. 무협지에서 나오는 새외 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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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태권도 초단 품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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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고려()

'생각하고 헤아려 봄'이라는 의미를 지닌 명사. 안 하겠다는 뜻을 우회적으로 표현할 때 주로 이용되기도 한다. 비슷한 용례로 '선처하다', '생각해보겠네'가 있고, 후자로서는 '힘들겠습니다', '나중에'가 있다.

'고려에 넣다'라는 영어 번역체가 있는데, 이렇게 활용하면 생각하고 헤아리는 것에 무엇을 넣는다는 이상한 뜻이 되므로 '고려하다'나 ' 염두에 두다'로 바꾸는 게 좋다. ' 자문을 구하다'도 이와 관련되어 있어 보인다.

상당히 완곡한 표현이다 보니 외교적 수사에선 거부를 뜻하는 대표적인 표현으로, 이는 '외교관이 그렇다고 말하면 고려해보겠단 뜻이며, 고려해보겠다고 말하면 안 된단 의미다. 그러나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은 외교관이 아니다.'란 말이 격언으로도 남아있을 정도로 유명한 표현이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고려하겠다는 것일 뿐, 하겠다고 말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한다.

한마디로 고려하겠다는 말은 완곡하게 거절한다는 뜻과 유보하는 뜻을 가지는 중의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5. 보드게임 고려

대한민국 보드게임 작가인 김건희가 약 1년에 걸쳐 개발하여 프랑스 보드 게임 회사인 문스터게임에서 퍼블리싱한 작품으로, 10세기 고려 시대가 배경이다.


[1] 글귀 구(句) 자가 특별히 나쁜 뜻을 가진 글자는 아니지만, 이 글자를 제외한 나머지 두 자가 높을 고(高), 아름다울 려(麗)로서 구 자만 빼면 완벽한 미칭이 된다. 게다가 고구려와 가까운 주요 국가의 공식적인 국명이 부여(夫餘), 백제(百濟), 신라(新羅) 등으로 대개 두 글자라는 사실도 신경쓰였을 것이다. [2]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것은 두 번째 음절의 연구개 파열음이 탈락한 경우. 쉽게 말해서 고구려의 구에서 ㄱ을 제대로 발음하지 않아 '고우려'와 같이 된 경우. 실제로 고구려를 빠르게 발음하면 고우려에 가까워진다. [3] 이를 통해 이 시점에 국호가 바뀌어 고정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4] 사실 고구려사 700년사 중 고구려라는 이름이 더 오래 쓰이기도 하였고 전(前), 후(後)를 붙이기에는 고씨 고구려나 왕씨 고려나 한국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크기 때문에 고구려를 '고려'라고 표기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따르기도 했다. 만약 고구려도 고려라 불렀다면 각각을 고씨 고려와 왕씨 고려로 구분했을 가능성이 높다. [5] 고구려발해학회에서 발표했던 서길수 교수의 高句麗 소리값 연구. 이 연구에 따르면 高句의 소리값은 '고구'가 맞지만 麗의 소리값은 '리'다. [6] 마지막 견고려사는 이 나라가 사라지고 없는 685년에 보냈다. 실제 보덕국은 683년에 망했지만, 통신기술이 없는 당시 시대 한계상 소식이 넘어가는 속도가 느렸기 때문에 일본은 보덕국이 망한 줄 모르고 685년에 마지막 견고려사를 보냈다. 먼 훗날 다시 견고려사를 보내는데 이건 발해를 말한다. 즉 그 당시 일본은 현대인이 구분해 부르는 고구려, 보덕국, 발해 셋을 전부 그냥 고려라고 기록했다. 애초에 이 3나라 사신들 스스로가 그렇게 자칭했기 때문에 그렇게 받아적은 것이다. [7] 반대로 발해라는 국호가 외교적 수사일 수 있다. 당나라 자체가 수십년간의 전쟁으로 고구려 기피증이 있기에 대놓고 고려라는 국호를 쓰면 당나라에 쓸데없는 어그로가 끌렸을 것이다. 따라서 실제로는 고려를 표방하더라도 표면상으로는 당이 책봉한 국호인 발해라는 간판만 걸었다는 것이다. 일본은 우호관계에 있어 고려와 발해를 혼용했고 당나라도 나중에는 조금씩 눈감아주기 시작했으나, 고구려를 668년 이미 자기들이 멸망시켰다고 간주하는 신라에서는 발해가 자국을 고려라 칭하는 것을 절대 용납할 수 없어 발해와 고구려의 연속성을 부정하고 마지막까지 발해로만 불렀다. [8] 고려~조선시대까지만 쓰였고 현재는 쓰이지 않는다. [9] 다만 '고려'보다는 '조선'이 더 많이 쓰인다. [10] 일본이 당이 망한 뒤에도 중국을 가리켜 당이라 부른 것과 비슷한 듯하다. [11] 다른 하나는 대한제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