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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양식


파일:경양식 돈가스.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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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양식 돈가스(좌)와 나폴리탄 스파게티(우)의 모습.

1. 개요2. 어형3. 역사
3.1. 기원3.2. 서울역 그릴3.3. 20세기 후반의 흥망성쇠
4. 특징
4.1. 과거의 일반적인 풍경4.2. 오늘날4.3. 메뉴 목록
5.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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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경양식(輕洋食)은 특히 간소한 유럽식 요리를 가리키는 한국의 식사 분류이다.

2. 어형

경-양식「명사」
간단한 서양식 일품요리[1].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경양식의 한자를 풀이하면 '가벼운 서양 요리'라는 뜻이다. 이 표현은 한국에서만 사용하는 분류명으로, 본고장은 물론이고 한자문화권에서도 같은 명칭을 사용하지 않으며 메뉴도 완전히 겹치지 않는다. '가벼운 서양 요리'이기는 하지만 이와 반대되는 '양정식'이 있는 것은 아니다.[2]

일본에서는 '일본식 서양 요리'라는 의미에서 화양식(和洋食, 와요-쇼쿠)이라고 한다.

3. 역사

3.1. 기원

19세기 말, 쿠로후네 사건을 계기로 미일화친조약을 맺음으로써 서구화의 문을 열었고, 메이지 유신 이후로 일본이 서양을 본받아야된다면서 단발령, 한의학 배제, 철도 도입 같은 정책을 시행하자, 국력과 기술에서 크게 앞섰던 서양을 본받아야된다는 분위기가 조성되었고[3] ' 서양인들이 먹는 세련된[4] 음식들'을 소개받은 뒤, 일본에서 마련할 수 있는 식재료들을 이용하여 현지화된 양식을 만들었는데, 이것을 화양식이라고 불렀고, 이 화양식에는 돈가스와 함박스테이크, 카레라이스[5] 등 고기요리가 많았기 때문에 고기를 많이 먹어야 서양인들처럼 체격도 커지고, 교양인이 된다는 홍보까지 하였다. 물론 이 당시에는 이 화양식이 아무때나 쉽게 먹을수있던 음식은 아니라서 일본에서도 대중들이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이 된것은 훨씬 뒤인 1950년대 후반 정도의 일이었다.

한국의 경양식은 이 화양식이 일제강점기 때 본격적으로 한반도에 전래되면서 시작되었다. 구한말에 양식집이 들어서기는 시작했지만, 이 당시에는 영어나 프랑스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 안되기도 했고, 양식레시피는 일본책 아니면 중국책으로 공부해야 했기 때문에, 일본식으로 현지화된 양식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일제강점기 까지만 하더라도 화양식이라고 불렀으나 1960년대 이후 경양식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한국에 들어온 일본 문화가 대부분 그렇듯, 서양 음식을 일본에서 일부 리뉴얼한 화양식이 한국에 상륙한 것이니 일본풍이 다소 가미된 서양식 요리가 많이 포함되어 있다. 다만 이 경양식은 상류층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갈렸던 모양으로 1920 ~ 1930년대 초반의 경성에 있는 백화점에서 양식집과 중식집, 일식집을 주로 취급했고, 한식집은 화신백화점이 오픈하기 이전까지는 흔하다는 이유로 들어서지 않았는데, 돈있는 조선인들이 양식을 먹고나서, 기름지다거나 더부룩하다는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 뒤로 8.15 광복 이후 이 간단한 양식 메뉴들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다시금 현지화되었으며, 이것이 경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3.2. 서울역 그릴

한국에서는 개화기부터 세워진 각종 호텔들의 양식당을 제외한다면 1925년 당시 경성역사 준공과 더불어 역사 내 식당으로 개점한 ' 그릴(서울역그릴)'이 한국 최초의 경양식당이자 실질적으로 남아 있는 한국 양식당의 본류로 추정된다. 개점 당시에는 꽤 제대로 된 양식을 내놓았다. 당시 메뉴를 살펴보면 코스요리가 주였는데, 낮엔 수프부터 생선과 빵, 쇠고기 닭고기, 후식으로는 아이스크림, 과일 파이, 푸딩이 나왔다. 밤엔 칵테일과 오트볼빵, 수프, 생선 혹은 감자, 쇠고기, 닭고기가 샐러드와 함께 나왔고, 후식으로는 과일과 커피 또는 홍차가 나왔다고 한다. 개점 초 가격은 3원 20전으로 당시 15전에 불과하던 설렁탕의 21배에 달하는 수준이었다. #

그릴은 해방 후 대한민국 철도청이 운영을 맡았다. 경양식이 고급 먹거리로 인기를 끌던 1970~80년대에는 서울역뿐만 아니라 부산역, 동대구역 대도시 주요 역에도 분점을 개점했고, 1983년 더 플라자에 경영권을 넘긴다.[6] 당시 시가 10,000원에[7] 7가지 코스요리가 제공되었으며, 서울의 양식당 중 제대로 된 프랑스식 정찬을 선보인 곳으로 평가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경양식이 쇠퇴하고 외환 위기가 찾아오면서 다른 역의 분점은 문을 닫고, 다시 서울역 그릴만 남게 되었다. 2004년 서울역 신역사 건설과 함께 그쪽으로 자리를 옮겨 신역사 4층에서 운영을 이어갔고, 그 사이 프라자호텔도 경영에서 손을 뗐다. 그냥저냥한 경양식집들 보다 좀 더 격조가 있지만 그렇다고 파인 다이닝처럼 진지하게 무거운 분위기는 아니었다.[8] 코로나 사태 등으로 경영에 어려움이 생겼는지 결국 2021년 11월 30일을 마지막으로 폐점하였다.

그릴 역사 관련 글 1 2 3 4 5

3.3. 20세기 후반의 흥망성쇠

1960년대는 아직 최빈국[9] 수준이라서 경양식은 일반인들에게 사치였고, 미군 병사[10]와 기업가 및 임원, 고위공직자같은 돈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이엇다.

본격적으로 경양식이 한국에서 유행한 것은 1970년대~ 1980년대로, 당시에는 중국집과 함께 그 시기 외식문화의 상징으로 중산층들이 어느정도 생겨냐자, 이에 발맞추어서 경양식집도 확산된것이었다.[11] 70년대 후반쯤 가면 지방에도 경양식당이 슬슬 생기며 1988 서울 올림픽을 기점으로[12] 패밀리 레스토랑이 보급되기 전까지 쭉 이어진다. 물론 경양식집이 대중화되었다해도 아무때나 쉽게 찾아가기에는 부담이 갔고, 생일날, 데이트날같은 기념할일이 있는 날이나, 주말에 날 잡아서 가족들이랑 같이 외식해서 음식을 먹던 이미지였다.

1980년대 말엽인 1988년~ 1989년 이후 이탈리아 요리가 경양식을 대신해 서양식 레스토랑의 메인으로 자리잡고[13], 1990년대부터는 패밀리 레스토랑들이 많이 등장해서 경양식으로 대표되던 이른바 양식 외식 시장을 주도하였다. 반면 오므라이스나 돈가스는 분식으로 분류되며 간단한 식사 메뉴 수준으로 떨어졌다. 지금은 오므라이스 돈가스를 외식 메뉴라고 하기도 민망해졌지만, 1990년대 초반까지도 이런 음식들이 외식 메뉴로 인기가 있었다. 여러모로 패밀리 레스토랑의 전신격인 식당이다. 1990년대 후반 이후에는 외식 장소로는 레스토랑에, 메뉴로는 김밥천국 등에 밀려서 많이 자취를 감춘 수준이다.

2010년대 들어 다시 패밀리 레스토랑 시장이 쇠퇴하고[14] 복고 열풍과 함께 과거 경양식풍의 음식을 파는 가게들이 많이 생기면서 인기가 다시 올라가고 있다. 주요 상권이나 쇼핑몰, 백화점 지하 식당가, 제법 고급스러운 상권에 가도 옛날 7080식으로 만들어진 햄버그 스테이크를 맛볼 수 있다. 물론 가격도 옛날 위상을 그대로 반영했는지 꽤 비싸다.

4. 특징

4.1. 과거의 일반적인 풍경

7080 시대의 일반적인 경양식 풍경

옛날에는 양식당이라고 해서 제법 그럴듯한 인테리어와 깔끔하게 와이셔츠를 입고 나비넥타이를 맨 웨이터가 있었다. 웨이터가 주문을 받고서 "으로 하시겠습니까, 으로 하시겠습니까?"라고 물어보았다. 빵을 고르면 모닝빵과 스테인리스 접시에 담긴 이 나오고[15] 밥을 고르면 (종종 깨를 뿌린) 쌀밥 한 덩이와 김치, 단무지가 반찬으로 나왔다. 김밥천국 같은 분식점에서 돈가스와 함께 밥 한 덩이를 주는 것은 이 시절로부터 내려온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주식을 제공하기 전에 스프가 제공되기도 하였다.[16] 옛날에는 처음 양식당에 간 사람들이 이 스프가 돈까스인 줄 알고 스프만 먹고 계산을 하려 했다는 에피소드도 가끔 있었다.

간혹 오전에는 커피와 식사를 제공하며 오후에는 도 판매하는 점포도 있었다. 지금도 좀 발전이 더딘 구시가지를 가보면 '레스토랑&호프'라 표기돼있는 간판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경양식과 그렇지 않은 곳을 가르는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절대 돈까스나 다른 고기메뉴들을 썰어서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경양식 집에서는 절대 돈까스를 썰어서 내오지 않고, 고기 덩어리를 튀긴 채 소스를 얹어서 내왔다. 그것이 사실상 경양식집의 아이덴티티가 되어서 "칼질하러 간다"는 말이 곧 "양식집에 간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4.2. 오늘날

지금까지 남아있는 경양식 식당은 기사식당의 형태로 설렁탕이나 갈비탕, 찌개, 냉면, 라면등의 메뉴를 추가한 상태거나,[17] 학생들이 많은 학원가에서 분식 메뉴를 몇 개 더하는 식으로 애매한 정체성을 유지한 채 남아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므라이스 돈가스 분식[18]으로 살아남기도 했지만, 경양식집은 일반 분식 수준의 메뉴가 아니라 좀 더 고급화, 전문화의 길을 걷는 전략을 통해 살아남았다. 이 음식들은 대충 만드는 것도 가능하지만 전문적으로 조리를 하자면 방법도 쉽지 않고 맛에서도 많은 차이를 보이는 메뉴이다.

다만 햄버그 스테이크의 경우 대충 만들기는 힘든 메뉴인데다가 원재료인 쇠고기가 분식집에서 취급하기엔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많이 사라졌다.[19] 그래도 최근에는 편의점 도시락 등에서도 자주 보이는 등 햄버그 스테이크 역시 상당히 대중화되었고, 분식집과 같은 작은 점포나 매장에서도 무리 없이 햄버그 스테이크를 내놓게 되었다. 실제로 지금도 소규모 양식 레스토랑의 주력메뉴는 파스타, 돈까스, 햄버그 스테이크다.

4.3. 메뉴 목록

주로 오므라이스, 카레라이스, 하이라이스, 돈가스, 햄버그 스테이크 나폴리탄 느낌의 파스타 등을 취급하며, 돈가스의 경우 분식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넓적한 돈가스[20]와 소박한 마카로니, 피클 양배추 샐러드 등이 특징이다. 여기에 수프을 곁들이기도 한다.[21] 종종 넓은 의미의 분식[22]과 메뉴가 겹칠 때도 있다.

(일) 표시가 있는 메뉴는 일본 경양식당에서만 볼 수 있는 메뉴.
  • 돈가스: 20세기 일본식[23] 포크 커틀릿.
  • 햄버그 스테이크
  • 스파게티: 특히 정통 이탈리아풍이 아닌 퓨전 요리의 느낌이 많다.
    • 나폴리탄(일)
    • 크림소스 스파게티 카르보나라: 크림소스 스파게티는 유럽식이라기보다는 미국식에 가까우나, 경양식 레스토랑에서 스파게티를 구비할 경우 빠지는 법이 없다. 또 예전에는 카르보나라와 크림소스를 혼동하여 크림소스 스파게티(알프레도)에 카르보나라라는 이름을 붙이는 경우도 많았지만, 오늘날에는 진짜 카르보나라를 취급하는 곳도 많아졌다.
    • 명란젓 스파게티(일)
    • 성게알 파스타(일)
    • 앙카게 스파게티(일)
  • 수프: 크림, 야채, 양송이 수프가 제일 흔하다.
  • 오므라이스
  • 하이라이스
  • 카레라이스: 카레라이스는 오늘날에는 가정에서 흔히 접할 수 있어 경양식의 대명사가 아니지만, 처음 일본에서 화양식 분류가 마련되었을 때는 '양식' 하면 바로 카레라이스를 떠올렸다. 현재 일본에서는 일본식 육수 토핑을 곁들인 일식화된 카레가 주류지만, 부이용을 첨가하고 각종 향신료를 배합하는 서양식 요리법을 고수하는 식당들도 있다. 지금도 레스토랑이나 킷사텐에서는 카레가 주요 메뉴인 곳이 많으며, 한국에서도 일식집 등지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 비프스튜 라이스(일): 원조인 영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경양식화된 비프스튜에는 밥을 곁들인다. 니쿠쟈가가 비프스튜가 일본 현지화된 요리라는 설이 있다.
  • 크림스튜(일)
  • 굴후라이(일)
  • 토루코라이스(일): 접시에 볶음밥 스파게티를 담고 그 위에 돈까스를 얹어낸 요리. 일종의 경양식당풍 정식으로, 나가사키의 명물로 꼽힌다. 딱히 튀르키예와는 상관없는 요리지만, 유럽을 상징하는 스파게티와 중국을 상징하는 볶음밥 사이에 돈까스가 튀르키예처럼 양대륙을 연결하는 것 같다고 붙여진 이름이란 설이 있다. 돈까스+토마토 스파게티+볶음밥 조합이 가장 기본적인 구성이며, 주방장 재량에 따라 고로케나 크림스파게티 등으로 된 바리에이션도 존재한다.
  • 치킨라이스(일): 닭고기를 주재료로 야채와 케첩을 같이 볶은 볶음밥이다. 일본 만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어린이 정식에서 일장기가 세워진 주황색 밥이 치킨라이스이다. 밥만 먹기도 하지만 오무라이스의 속재료로도 쓰인다. 원조 레시피는 케찹을 쓰지만, 시세이도 팔러 같은 격식을 차린 경양식당에서는 케찹 대신 토마토 소스를 사용하기도 한다.
  • 치킨난반(일)
  • 도리아(일): 그라탱과 비슷한 요리로 밥위에 재료를 얹고 오븐에서 구워 만든다.

5. 여담

  • 1970~1980년대를 재현한 드라마 등에서는 특별한 날 부모님이 자녀를 이런 식당에 데리고 가서 맛있는 것을 사주는 장면이 일종의 클리셰처럼 등장한다. 이때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은 특별한 날 외식으로 가본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그 후 세대는 패밀리 레스토랑이 이 포지션을 대신했기 때문에, 경양식에 대한 기억은 잘 없는 경우가 많다.
  • 돈가스 문서에서 보듯 한국에서는 "돈가스 사주겠다고 해놓고 포경수술했다"는 밈이 있는데, 해당 일화를 직접 겪은 세대는 경양식집에서 돈가스를 먹었을 가능성이 높다.

[1] '매우 훌륭하다'는 뜻의 일품(逸品)이 아니라, '주식과 부식이 함께 담겨 그대로 한끼를 이루는 요리라는 뜻'의, 한마디로 일체형 메뉴를 뜻하는 일품요리3(一品料理)이다. [2] ' 한정식'과 달리 '양정식'이라는 용어는 표준어에 존재하지 않는다. [3] 이 당시 일본에서 사회진화론이 유행하면서 정한론과 결합한 탈아입구 담론이 이때 나왔고, 서양인과 혼혈하여서 일본인들의 인종을 개량하자는 인종개량론까지 나왔을 지경이었다. [4] 당시 일본인들은 서양의 발전된 문명을 하이칼라(ハイカラ)라 하여 동경했고, 적극적으로 모방하고자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5] 인도의 알루마살라에서 유래한 음식이지만, 영국에서 많이 먹게 되었기 때문에 양식으로 들어왔다. [6] 그 당시 쓰이던 식탁과 식기는 경기도 의왕시 철도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7] 1984년 기준으로 설렁탕 가격이 1,250~2,500원에 근로자 평균 월급이 252,300원이었으니 지금 기준으로 치면(2022년 근로자 월평균임금이 3,274,000원) 약 13만 원 포지션이다. 그리고 1983년 기준 1만 원이면 2023년 가치로는 39,570원이다. [8]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고급 레스토랑의 대명사였기 때문에, 과거 용사의 집 양식당 또는 일반적인 경양식당들에 비해 가격이 다소 높았다. 그렇다고 양이 콩알만큼 나오거나 하지는 않았다. [9] 한국이 최빈국을 벗어난 것도 1969년 ~ 1970년 정도다. [10] 이 당시에는 한국과 미국의 소득차가 지금보다도 훨씬 컸던 시대였었고, 미국은 거의 모든 집이 흑백 TV와 자동차를 갖췄던 것에 반해 한국은 이제 막 라디오가 대중화된 시기라서 미군병사는 좀 과장하면 1등 신랑감 취급받던 시대였다. [11] 그때는 중국집도 큰맘먹고 외식하러 가는 곳이었다. [12] 마침 그로부터 1년 전인 1987년 한국의 민주화가 성사됨과 동시에 1인당 GDP가 세계 평균을 넘겼다. [13] 이 때문에 지금도 한국의 양식 레스토랑은 이탈리아 요리를 기반으로 하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이 많다. 중저가 서양식의 경우 미국화된 이탈리아 요리들이 많은 것은 덤. [14] 2020년대 이후 패밀리 레스토랑도 2000년대에 대한 레트로 열풍을 타고 부활 중이다. [15] 보통은 딸기잼이나 사과잼 한 가지만 나왔지만 좀 고급스런 곳은 버터, 사과잼, 딸기잼이 한꺼번에 나왔다. [16] 이 때도 "크림 스프로 하시겠습니까? ( 토마토 양송이 스프를 위시한) 야채 스프로 하시겠습니까?"라고 물었다. [17] 대체로 포만감이 오래 간다는 이유로 기사들이 선호한다고 하며 연령대의 특성상 사이드 메뉴로 청양고추 풋고추 쌈장을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18] 다만, 경양식 돈까스와는 차이가 있다. 분식집들은 주로 시판 소스를 썼던 데 비해, 당시 경양식집들은 그레이비 소스를 베이스로 한 경양식 소스를 사용했다. [19] 오히려 이후에 패밀리 레스토랑을 통해서 스테이크를 먹을 수 있게 되면서 맛보기가 힘들어졌다. 이런 스테이크 집에서는 오히려 햄버그 스테이크를 먹기가 힘들다. [20] 이는 당시에 돈가스를 만들 때 21세기와는 달리 덩어리를 쓰는 것이 아니라 고기망치로 두들겨 펴서 만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썰지 않고 소스를 끼얹어서 나오는 것이 특징이었다. [21] 빵과 함께 딸기잼이 주로 제공된다. [22] 원래 분식은 밀가루를 뭉쳐 만든 음식만을 뜻했다. [23] 경양식 돈가스라고 하면 떠오르는 넙적한 전 느낌의 튀김옷이 유럽식 포크 커틀릿과 가까운, 즉 바로 처음 일본에서 돈가스가 만들어졌을 당시의 모습이다. 오늘날의 두툼한 일본식 돈가스와는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