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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연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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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정부상징.svg 대한민국 사적 제117호 경복궁
<colbgcolor=#bf1400> 경복궁 연길당
景福宮 延吉堂
소재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로 161 ( 세종로)
건축시기 1867년 (창건)
1888년 (중건)
1995년 (복원)
파일:external/www.cha.go.kr/1624504.jpg
<colbgcolor=#bf1400> 연길당[1]
1. 개요2. 용도3. 이름4. 역사5. 구조6. 여담

[clearfix]

1. 개요

경복궁의 침전 강녕전의 보조 건물로 강녕전 동북쪽에 있다.

2. 용도

당초엔 단순히 경성전, 연생전보다 약간 격이 낮은 보조 침전이나 접견소 정도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2019년 6월 일본 와세다대학에서 소장중인 《경복궁중건일기》가 번역, 공개되면서 정확한 용도가 드러났다. 바로 식사를 데워 수라상에 올려 들이던 중간 부엌이었다. 음식을 만드는 소주방과 강녕전 간 거리가 꽤 있어 상을 가지고 오는 동안 음식이 식을 수 있었기 때문에 중간에 음식을 한 번 더 데울 곳이 필요했던 것이다.

3. 이름

'연길(延吉)' 뜻은 '길함(吉)을 맞는다(延)'이다. 중국 연길시와 한자까지 같다.

현판 글씨는 1995년에 효당 김훈곤(金勳坤, 1942 ~ 2024)이 쓰고 각자장[2] 철제 오옥진(吳玉鎭. 1935 ~ 2014)이 새겼다. '吉'의 '士' 부분이 '土'로 적혀있는 것이 특징이다. 잘못쓴 것은 아니고 속체이다.

4. 역사

조선 전기에는 없었고 1867년( 고종 4년)에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처음 지었다. 그러나 1876년( 고종 13년)에 화재를 입었고 1888년( 고종 25년)에 재건했다.

일제강점기인 1917년에 불타 없어진 창덕궁 내전을 재건할 때 조선총독부가 경복궁 내전 건물을 자재로 쓰기 위해 해체, 이전했다. 이후 80년 가까이 빈 터로 남아있다가 1995년에 복원하여 오늘에 이른다.

5. 구조

※ 반대편에 있는 응지당과 구조가 거의 같다.
  • 장대석 3벌대로 만든 기단 위에 단층으로 세운 1고주 5량가 목조 전각[3]이다. 기단 위는 전돌로 마감했다.
파일:연길당 배치도.png
<colbgcolor=#bf1400> 연길당 내부 구성도
  • 정면 4칸, 측면 3칸, 총 12칸이다.
  • 정면에서 볼 때 동쪽 2칸은 대청으로, 서쪽 2칸은 온돌방이다. 앞면에는 퇴간을 두었고 그 중 서쪽의 한 칸을 제외한 나머지 3칸은 툇마루가 건물 밖으로 나오게 했는데 출입은 동쪽 2칸의 대청으로만 가능하게 했다. #
  • 서남쪽 가장자리 벽면에는 창이나 벽이 아닌 문이 달려있는데, 강녕전 복도로 이어졌던 흔적이다.
  • 양 측면의 벽면을 보면, 동편은 전부 창이고 서편은 전퇴 쪽만 창이고 나머지는 중방을 두고 벽으로 마감한 형태이다.
  • 지붕은 팔작지붕이며 용마루 끄트머리에 용두를 올렸으며 지붕 마루에 양성바름을 하지 않고 적새단만 쌓았다. 합각은 벽돌로 쌓아 만들었고 합각 중앙부에는 역시 벽돌로 길상문을 만들어두었다.
  • 아궁이는 서쪽 기단 측면에 2개 있다.

6. 여담


[1] 사진 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2] 나무판에 글자 그림을 새기는 각자(刻字)의 제작 기능을 가진 장인. [3] 보통 한옥의 경우 1층보다는 단층(單層)으로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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